최근 수정 시각 : 2019-07-22 16:05:33

삼성 라이온즈/암흑기


1. 소개2. 개요3. 1차 암흑기(1994년~1996년)
3.1. 원인3.2. 리빌딩3.3. 여담
4. 2차 암흑기(2007년~2009년)
4.1. 원인4.2. 리빌딩
5. 3차 암흑기(2016년~현재)
5.1. 원인5.2. 리빌딩5.3. 과연 탈출이 가능한가?
6. 같이 보기

1. 소개

프로야구의 구단인 삼성 라이온즈의 암흑기에 대하여 정리해 놓은 문서이다.

2. 개요

2010년대 초중반까지 전통의 강팀 이미지가 강했던 삼성에게도 구단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현 암흑기 시절 말고도 부진하던 시기는 있었다.

순위로 따졌을 때 삼성의 첫 암흑기라 하면 우용득 감독의 임기 중반인 1994년부터 백인천 감독이 부임한 첫 해인 1996년까지의 순위를 가리킨다. 각각 1994년 5위, 1995년 5위, 1996년 6위를 기록하며 삼성은 3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였고, 이는 삼성 라이온즈최다 연속 포스트시즌 실패 기록이며 특히 1996년의 6위는 삼성 라이온즈 역사상 두 번째로 낮은 순위이다.

그러나 이 기간동안 착실히 리빌딩을 해내며 1997년부터 이승엽이 홈런왕 대열에 들어서고 김한수, 최익성, 김태균, 정경배 등이 자리를 잡으며 팀의 공격력이 강해지면서 이후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17년만의 2번째 우승이자 감격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하게 된다.

그 이후 선동열 감독 시기인 2007년부터 2009년까지를 2차 암흑기라고 부른다. 사실 선 감독 재임 시절에 우승도 했고 마지막 해인 2010년에도 준우승을 했다. 심지어 삼성 팬들이 암흑기로 간주하는 2007년과 2008년에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기 때문에 다른 팬들 '저게 암흑기라고?'라고 기막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삼성 라이온즈의 전통적인 팀 컬러와는 맞지 않는 지키는 야구와 2006년의 배영수 혹사[1], 2009시즌에 13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 좌절, 2010년에 양준혁의 갑작스러운 강제은퇴와 그 해 타격감이 좋은 박한이를 두고 이유 없이 강봉규와 플래툰으로 돌리는 등[2] 삼성 팬 입장에선 암흑의 시기라 일컬을 일이 많긴 했기 때문에, 성적과는 별개로 선동열 감독 재임 시기가 멍게강점기라는 의견이 삼성 팬들 사이에서는 공감을 많이 얻는 편이다. 실제로 선 감독 재임기의 삼성은 우승은 두 번 했지만 관중은 줄어드는 추세였다.

하지만 이 시기에 발굴해 낸 최형우-채태인-박석민이 2010년대 초중반에 최강의 클린업을 이루게 되고 삼성의 토종선발 에이스가 될 윤성환[3] 좌완 강속구 투수 차우찬도 발굴해내면서 왕조시절의 기반을 다진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는 정5통4로 불리는 왕조 시기를 거치며 승승장구했지만, 2015년 도박 사건을 기점으로 생각보다 빠르게 침체기에 접어드는 위기를 맞이했다. 2016년2017년에 2년 연속으로 9위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구단 역사상 가장 낮은 최종 순위이다. 특히 다른 때와는 달리 모기업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루로 시스템 자체가 불안해진 상황이라 리빌딩과 인기 둘 다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낳고 있다. 게다가 KBO 리그 심판 최규순 금전요구 사건에도 엮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구단에 대한 팬들의 신뢰마저 흔들리게 되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2016년부터 시작된 부진을 털어내지 못한다면, 삼성의 3차 암흑기는 말 그대로 성적도 못 내고 재미도 없는 진짜 암흑기가 되는 것이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에 적어놓았다.

3. 1차 암흑기(1994년~1996년)


삼성 라이온즈가 1994년부터 96년까지 5위, 5위, 6위를 기록한 것을 의미하는 숫자. 이 3시즌은 삼성의 최다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기록이며, 특히 1996년 6위(0.448)는 삼성 역사상 세 번째[4]로 가장 저조했던 성적이다. 삼성이 창단 이래 꾸준히 강팀의 위치에서 매년 우승을 노리던 팀이었기 때문에, 겨우 3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것만으로도 삼성 팬들은 이 시기를 흑역사 취급한다. 하지만, 당당하게 8888577, 6668587667, 5886899678이라는 비밀번호를 가진 타 팀의 팬들에게는 '겨우 556찍은게 무슨 흑역사냐'며 비아냥 소리를 듣는다.하지만 지금은 김한수제일기획과 함께 진짜 비밀번호 찍게 생겼다

대체로 전임 감독 김성근이 개판치고 떠난 팀을 후임인 우용득, 백인천 감독이 수습하느라 욕을 먹던 시기로 이해된다. 한마디로 김성근의 저주. 특히 백인천 감독은 당시 이만수를 비롯한 올드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홀대한다고 비난 받으면서도[5][6] 이승엽양준혁으로 대표되는 젊은 선수들을 과감하게 기용하는 리빌딩으로 2000년대 삼성 전성기의 발판을 만들어 놓았다. 나중에 성적만 보고 이때를 암흑기라 칭하는 경우도 있으나 인기는 좋았다. 이 시기에는 삼성 특유의 화끈한 공격야구가 대구아재들을 환장하게 하며 빛을 발하면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 구름 관중이 몰려들었다.[7]

3.1. 원인

삼성이 556의 순위를 찍게 된 원인으로는 보통 1991년부터 1992년까지 삼성 감독이었던 김성근 책임론이 거론된다.

김성근 감독이 첫 해 3위, 2년차 4위로 생각만큼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경질된 후 556을 찍게 되었기 때문에, 이를 김 감독의 투수혹사 경향과 엮어서 언급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도 아닌 김성근 본인이 자서전에서 인정한 바 있는데, 프런트가 최대한 지원해줬는데 본인이 엘리트 의식에 빠진 선수들을 휘어잡지 못한 실책의 결과라 시인했다. 다시 말해 선수단 장악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 거기에 급격하게 추진한 리빌딩과 조범현을 비롯한 자신의 제자 중용 등으로 선수들과 마찰이 심했다고 한다. 웬만해선 김성근식 감독야구를 옹호하는 김은식 작가조차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김성근의 방식이 삼성에는 맞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또한 직전 감독이었던 정동진 감독을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 재계 라이벌인 LG를 상대로 스윕패하면서 우승에 실패한 것을 구실로 경질해버린 프런트의 조급함이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리고 그 전년도에는 최동원-김시진 트레이드라는 병크도 있었고.

대구, 경북 팜에서 이승엽 이전까지 괜찮은 선수들이 나오지 않았던 것도 이 암흑기의 원인이다. 비록 양준혁이 팀타선을 캐리하기는 했지만 그를 받쳐줄 선수들이 부족했다.

3.2. 리빌딩

비밀번호(?)를 끊은 감독이 바로 롯데 팬 한정으로 금지어모 골프 전문 감독이다. 또한 베이징 올림픽의 퍼펙트 골드 감독인 김경문이 이 시기의 산증인이다. 미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후 삼성 라이온즈의 배터리코치로 영입되어 이 때 코치 실전 수업을 받았다. 그것도 정확하게 1차 암흑기 동안.

일부는 부임 첫 해에 6을 찍었다는건 함정이라느니 비하하기도 하지만, 백인천의 잘못이라고만 보긴 어렵다. 김성근 감독이 추진했던 리빌딩과 자신의 제자들의 주전화 등으로 팀 케미스트리가 망가지자 우용득 감독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장들을 방출하면서 세대교체가 너무 급격하게 진행되었고 부임 첫해인 1993년에는 이 세대교체 효과가 있었으나 많은 선수들이 소포모어 징크스에 걸린 후 극복을 해내지 못하는 등 이래저래 문제가 많았고, 하필 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만수 등 경험 있는 고참은 리빌딩 과정에서 전멸하다시피하는 바람에 삼성 팀의 분위기가 상당히 망가져있던 상황. 오히려 고작 1년만에 팀을 추스리고 유망주를 발굴한 걸 높게 평가하는 게 맞다.

사실 성적만 놓고 보면 556의 시기를 암흑기라 여길 수 있긴 하지만, 타팀 팬 입장에서는 겨우 3년 정도 가을야구를 못 가고, 그것도 꼴찌도 하지 않고 리빌딩이 착착 진행되며 기대를 모으던 시기를 어떻게 암흑기라 할 수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우승 아니면 의미가 없던 당시 삼성으로서는 충분히 암흑기였다고 말할 근거가 있겠지만. 그리고 꼴찌를 한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관중 수 신기록을 쓰는 등 흥행은 했기 때문에 당시 야구를 봤던 삼성 팬[8]들 또한 이 시기를 암흑기라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통 90년대부터 야구를 봐온 삼성팬들이 손꼽는 진짜 1차 암흑기는 556 시기가 아니라 김성근 강점기인 1991~1992년이다.

3.3. 여담

그리고 당시 창단 이래 최하위였던 6위를 찍은 1996년에는 전년도에 포스트시즌에 탈락하던 다섯 팀[9] 중 네 팀이 올랐는데 유일하게 못 오른게 바로 이 암흑기에 있던 삼성이다.

4. 2차 암흑기(2007년~2009년)

여기서 포스트시즌 탈락은 5를 찍은 2009년 뿐인지라 타팀 팬 입장에서는 "44는 비밀번호도 안 들어가는데 참 배부른 소리 한다"며 1차 암흑기때보다도 어이없어할 시기이다. 다만 여러 이유로 대수 삼성팬들은 3차 암흑기가 도래하기 이전까지 멍게 강점기라며 그렇게 좋게 보고 있지는 않다.

4.1. 원인

김응룡 감독 시절 삼성은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두면서 준우승의 한을 드디어 풀게 된다. 하지만 이승엽이 일본 진출하고 마해영도 이적하면서 장타력이 급감했고 외국인 타자로 데려온 선수 마저도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라이벌 현대에게 우승을 내준뒤 대대적인 개혁을 통해 김응룡 감독을 사장으로 영전시키고 김응룡 감독 밑에서 수석코치로 있던 선동열 감독을 앉히게 된다.

선동열 감독 체제 하에서 삼성은 거포의 부재를 해결하기 위해서 라이벌 현대 의 중심타자였던 심정수를 FA로 영입하고 주전 유격수였던 박진만까지 영입하면서 화끈한 투자를 한다. 특히 심정수에게는 당시 최고액인 4년 60억이라는 거액을 들여서 영입할 정도였다.[10]으로 기존의 타선에서는 베테랑 김한수양준혁 진갑용이 버티고 있었고 팀의 외야를 담당했던 박한이[11] 가 있었다. 선동열 감독은 또한 불펜 야구 스타일로 팀을 운영하면서 선발 유망주였던 권오준을 불펜으로 전향시키면서 필승 계투조로 만들고, 안지만과 박석진의 활약과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오승환을 처음에는 일반 계투 위주로 쓰다가 필승조로 승격 시키면서 불펜진을 한층 더 강화 시킨다. 선발진에서는 배영수의 건재함과 전병호의 쏠쏠한 활약과 더불어서 외국인 투수들까지 활약해주면서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게 된다.

하지만 2년간의 우승동안 삼성은 거의 모든걸 끌어다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2년간 선동열 특유의 불펜야구를 바탕으로 리그 정상급 필승조를 구축했었으나 그 이면에는 혹사가 있었다. 또한 에이스 배영수는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투혼을 발휘하면서 팀을 정상으로 이끌었으나 역시 혹사로 팔꿈치 상태가 심하게 말하면 걸레짝처럼 되어 있었다.[12] 거기다 심정수는 60억이라는 값에 못미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13] 김한수는 노쇠화가 심하게 찾아오면서 내야진의 세대교체가 절실해 졌다. 선발진도 마찬가지였다.[14]

하지만 선동열은 2007년에도 계속된 불펜야구로 일관했는데, 2006년 잠깐 몇경기 뛰었던 선발 유망주 권혁[15]을 불펜으로 완전 전향 시키면서 불펜진을 다시한번 보강했고 제대후 복귀한 윤성환도 불펜으로 돌리면서 권오준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안간힘을 썻다. 내야진에서도 김한수의 대체자를 발굴하기 위해 조동찬이나 조영훈 같은 선수들을 써봣지만 역시 역부족이었고 결국에는 준플레이오프 탈락에 그치고 만다. [16]

이렇게 무리하게 운영한 댓가는 고스란히 암흑기로 찾아왔는데, 배영수의 재활로 인한 이탈과 권오준과 오승환이 혹사 누적으로 이탈하면서 투수진에는 심각한 구멍이 생겼다. 타선은 김한수[17]의 은퇴와 박진만[18]박종호[19]의 부상으로 인한 키스톤 콤비 공백 으로 초토화가 되었고, 양준혁도 노쇠화가 찾아왔다. 거기다 진갑용도 부상으로 이탈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포수진 공백도 생기면서 이렇게 암흑기가 찾아오고 만다.[20]

4.2. 리빌딩

하지만 이 시기 삼성은 다시금 변화를 준다. 선동열 감독은 지난 2년간 통합우승을 했지만 그 과정 속에서 주축선수들의 노쇠화와 부상, 부진 등으로 인해 리빌딩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리빌딩에 돌입한다. 선동열 감독이 가장 먼저 리빌딩할 대상으로 봤던 것은 클린업 트리오의 육성이었는데, 2003 시즌 후 이승엽이 일본으로 가고 마해영기아로 가게 되면서 균열이 생긴 클린업 트리오는 이후 양준혁-진갑용-김한수-외국인 타자 등으로 메울려고 했었지만 현실적으로 힘들었다.[21] 김한수는 2007년이 끝난 뒤 은퇴를 했고[22], 외국인 타자들은 하나같이 다들 부진에 빠졌고, FA로 사온 심정수는 2006시즌을 통째로 드러누우며 공백이 생기자 토종 클린업 트리오 육성에 돌입한다.

이 과정 속에서 등장한 선수들이 바로 최채박이라고 불린 채태인, 최형우, 박석민 이었다. 이 세명은 선감독이 의욕적으로 밀어주면서 1군 경험을 많이 쌓아나갔고 그러면서 두자릿수 홈런을 때려내는등 장타력을 보여주었다. 채태인과 박석민은 본격적으로 기회를 많이 받기 시작했던 2008년에 두자릿수 홈런을 때렸고, 특히 최형우는 2008년에 두자릿수 홈런을 때려내면서 신인왕까지 수상한다.[23] 이 밖에도 이영욱, 김상수, 배영섭[24] 등등이 선 감독 시절부터 중용되었다.

다음은 투수진을 육성하는데 주력했다. 토종 1선발이었던 배영수의 부상으로 인한 수술공백을 메꾸기 위해 총력을 다하면서 선택했던 선수가 바로 윤성환이었다. 당시 윤성환은 데뷔 첫해 불펜으로 뛰다가 공익 근무후 2007년까지 불펜에서 뛰던 선수였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은 윤성환의 선발로써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선발로 전향을 시킨다. 그 결과 윤성환은 2008년 선발로 8승[25]을 거둔데 이어 2009년에는 14승을 거두면서 공동 다승왕[26]까지 수상한다. 또한 차우찬 정인욱 등의 선수도 선 감독 시기에 중용되기 시작했다.[27]

또한 이 때 소위 안정권KO라고 불리우는 최강 불펜진도 탄생한다. 다만 이쪽에 있어서는 원래 선발 유망주들을 불펜으로 갈아넣어 조합했다는 의견도 있다.

아무튼 이 리빌딩으로 삼성은 류중일 감독 재임 시절 영광의 삼성 왕조를 이뤄내는데 큰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다.[28]

5. 3차 암흑기(2016년~현재)

2차 암흑기 이후 류중일 감독이 부임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연속 페넌트레이스 1위를 기록하고 4년 연속 한국시리즈를 우승하는 등 성적은 꾸준히 상위권에 위치했다. 이렇게 대구 삼성은 꾸준한 우승후보로 굳어가...는 듯 했다.

그러나 도박 사건으로 마무리[29]였던 임창용이 방출된 뒤 팀[30]제일기획[31] 산하로 지위가 강등되고, 홈을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로 경기장을 옮긴 이후 팀은 급격히 몰락했다. 홈 승률이 크게 떨어졌고, 그렇다고 원정 승률 역시 좋지 않았다. 그리고 2017년 현재까지 홈에서 스윕승을 한 번도 하지 못했는데 스윕패는 대전 한화와의 첫 라팍 맞대결에서 바로 당했다. 이에 2017 시즌에 앞서 삼성 라이온즈는 류중일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고 신임 김한숨김한수 감독으로 교체하였으나 4월부터 꼴아박는구단 역사 최초의 4할 승률 붕괴, 2년 연속 9위라는 더 안 좋은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라팍은 SK 와이번스와 같이 타격이 강한 원정팀의 천국이라 해도 과장되지 않을 정도로 원정 홈런이 더 많이 나왔다. 오히려 그 10년 암흑기를 보낸 한화 이글스를 떠오르게 한다고.

2018년은 그나마 5위 싸움 까지 잘 갔고 아시안 게임 브레이크까지만 해도 삼성이 당시 11연승을 달리던 넥센과 함께 가을야구 경쟁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으나[32] 시즌 막판에 불펜들의 방화와 수비들의 삽질로 6위로 그쳤다.

5.1. 원인

  • 주축 선수들의 잇단 이탈
    왕조시절을 책임졌던 주전들이 노쇠화와 FA, 사건사고로 하나둘 이탈하자 팀이 대책없이 기울었다. 2015년 도박 사건으로 팀의 마무리였던 임창용이 방출되었고, 팀의 셋업맨이었던 안지만도 2016년 중반 지인의 도박 사이트 창설에 돈을 준 혐의로 계약해지 되면서 순식간에 팀의 필승조가 증발해 버렸다. 거기에다 2015년에는 좌완 파이어볼러이자 못해도 원 포인트 릴리프로 요긴하게 활약했던 권혁이 그동안 삼성에서 기회를 얻지 못한것에 대해 서운한 입장을 표명하며 FA를 통해 한화로 이적했고, 각각 10승 이상을 거두어 주었던 피가로클로이드와도 결별했다. 16시즌이 끝난 뒤 차우찬 마저도 이적해 버리며 선발 투수진에 큰 구멍이 생기게 되었다. 또한 타선에서도 2015년이 끝난 뒤 야마이코 나바로는 일본으로 진출했고, 박석민NC 다이노스로 이적해 버렸다. 그 이후 채태인마저 김대우를 상대로 넥센 히어로즈로 트레이드 되었다. 2016년 시즌이 끝난 이후에는 금지어가 입을 털면서 떠나간 이후 다린 러프를 데려오면서 4번 타자감을 찾았다. 또한 2017 시즌이 끝난 뒤 강민호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승엽마저 은퇴를 해 버리고 2019 시즌 도중 박한이가 음주운전으로 인해 은퇴하면서 이제 더 이상 삼성의 타격력은 오르는것이 힘들다. 결국 2017년에는 투수 쪽에서, 2018년에는 타선에서 문제점이 터져 버렸다. 투수진은 2017년 팀 평균자책점 꼴지를 찍으며 폭망했으나 2018년 복귀한 투수코치 오치아이 에이지가 수습해 내며 그나마 필승조 만큼은 타 팀에 밀리지 않게 되었다[33] . 하지만, 타자들을 보면 라팍보다는 잠실이나 나고야 돔에 맞는 소위 똑딱이 멸치타선(육상부 라인업)이란 평을 받고 있고, 시즌 초반강민호마저 부진하며 다린 러프 혼자서만 팀 타선을 이끌고 있는 모양새이다. 문제는 그렇다고 잠실에서 강한 것도 아니다. 이로 인해 현재 국내 최고의 타자 친화 구장인 라팍의 메리트를 전혀 이용하지 못한다. 또다른 타자 친화 구장인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을 사용하는 SK 와이번스가 2015년부터 거포자원을 긁어모아 현재 미친듯이 홈런을 터뜨리고 있는 것과 몹시 비교될 수 밖에 없다.
  • 무능한 프런트
안현호 단장 재임이후 모기업에서 합리적 경영을 내세우고 있는데 정작 지원금은 여전히 10개 구단가운데 1등이다. 이런데도 왜 이렇게 무너졌냐? 바로 돈을 제대로 못썻기 때문이다. 안현호 단장이 2014년에 부임한 이후 놓친 선수들만 해도 밴덴헐크, 배영수, 권혁, 박석민, 최형우, 차우찬인데, 이 선수들은 모두 왕조시절의 핵심선수들이었고 배영수를 제외하면 모두 서비스 타임이 충분히 남아있었다. 갑자기 합리를 외치며 선수들을 잡지 않는 바람에 팀 전력은 순식간에 약해졌고, 그렇게 팀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안현호에 대한 자세한 비판은 안현호 문사와 삼성 라이온즈/2016년/문제점 문서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일부에서는 단장도 비즈니스맨이니 그룹 수뇌부 지원금으로 움직인다고 하는데, 맞는말이다. 하지만 삼성은 여전히 지원금 1위를 달리는 부자구단이다. 이런 구단에서 저런 결과가 발생한것은 결국 프런트의 무능함이라밖에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다.
  • 세대교체에 실패한 코칭스태프
일각에서는 코칭스텝들의 선수 육성이 미진했던게 큰 원인이라고도 지적하는데, 일단은 기본적으로 꾸준히 신진급 선수들이 나오긴 나왔다. 2011년에는 배영섭, 2012년에는 이지영, 심창민, 정형식, 2014년에는 박해민, 그리고 2015년에는 구자욱이 나왔다. 기본적으로 이 정도의 선수들이 나온 것은 왕조시절을 감안하면 충분히 평균적으로 나온 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내야 유망주들을 신생팀 지명 보호명단에서 묶지 않고 풀어버린 것은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코칭 스텝들의 큰 실수로 뽑히는 것은 단연 정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정현은 2013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8순위로 삼성에 지명받고 입단한 선수였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좋은 내야수 자원으로 평가받았었기에 류중일 감독과 다른 코칭스텝들도 일단 기본적으로 기회는 줄 것이라고 말했었고 실제로 2013년에 기회를 줘서 정현은 1군에 콜업되자마자 첫 안타를 쳐냈었고 그 뒤 3일만에 본인의 생애 프로 커리어 첫 홈런까지 때려낼 정도로 촉망받던 유망주였다. 이후 역시 신인의 한계를 보였지만 팀에서는 그래도 박석민의 뒤를 이을 3루수로 키울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면서 데뷔 첫 해에 한국시리즈 엔트리까지 등록되서 우승반지까지 끼는 좋은 첫 시즌을 보냈고, 다음 시즌에는 본격적인 1군 3루 붙박이 백업으로 뛰지 않을까 하는 예측들이 많았었다.

이것만해도 부작용이 적지 않은데 후임 류중일 감독은 자신의 지론인 '유격수 절대주의'로 야수픽을 고등학교에서 쭉 수비를 우선시하는 픽을누구보다 선호했다. 이런 기조아래 뽑힌 유격수 출신들이 김영환, 김성표, 윤대경, 김하성 거르고박계범, 김재현, 최정용, 김성훈, 이성규다.[34]

전임 선동렬은 채최박이라도 꾸준히 키워서 류중일에게 남겨줬는데 류중일 감독은 제대로 세대교체에 실패하면서 남겨주지 못했다. 물론 앞서 서술한대로 류중일이 아예 신인선수 발굴을 안한 감독은 아니고 분명 신인선수가 연간 나오긴 했었다. 특히 왕조시절임을 감안하면 그정도면 충분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왕조의 몰락인 2016년도에는 분명 세대교체를 통해 젊은팀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전혀 그러질 않았다. 그저 전력 파악에 실패한채 우승이 목표라는 포부만 밝히고 대책없이 윤성환과 안지만만 기다리고 그나마 키운 심창민도 승리에 집착해서 엄청난 혹사를 통해 150km파이어 볼러를 140km대 투수로 만들어버렸다. 같은해 넥센이 삼성보다 더 심한 전력손실을 겪고도 염경엽 감독과 손혁코치등 코칭스태프가 똘똘 뭉쳐서 선수들을 발굴해내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었던걸 생각하면 비판받아 마땅했다. 2016년도에 9위로 쳐져있을때 그나마 2군에서 몇몇 선수들 올려서 써보긴 했었는데 죄다 가능성은 커녕 처참한 성적만 남긴채 쓸쓸히 떠났다.

결국 제대로된 전력도 물려주지 못하고 팀을 떠난 류중일 감독 때문에 김한수 감독 체제에서 삼성은 타고투저 시대에 국내 1군구장 가운데 최고 수준인 타자친화구장을 홈구장으로 쓰고도 소총부대로 전락하고 만다. 역사에 남을 타고투저 시즌에 삼성 내야는 OPS 6할대 초반 찍는 보상선수가 주전을 차지하고 야구할 의지가 없어 보이는 백상원이 1군에서 기회를 받고 평생 타격잘한 기억이 없는 노장 손주인[35]을 다시 데려오는 촌극을 연출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삼성은 강민호라는 중장거리형 포수를 비싼돈 주고 영입했고 강민호 영입으로 인해 아까운 백업자원이 된 이지영을 거포 김동엽과 트레이드 하게 된다.
  • 무능한 외국인 스카우터
외국인 3명만 잘 뽑아도 5강가는 리그에서 외국인을 못뽑는다. 왕조시절과는 다르게[36] 외국인 투수들을웹스터, 벨레스터, 레온, 플란데, 페트릭, 레나도 등 기대 이하의 선수들로만 데려오면서 팀의 투수력이 많이 약해졌다. 이로 인해 선발진의 경우 30대 후반인 윤성환이 팀의 1선발을 맡고 백정현이 토종 2선발을 맡는 등 믿을 수 있는 선발 자원이 거의 부재하다. 이마저도 2018년에서는 윤성환마저 방어율 6.98, 24경기 5승 9패라는 성적으로 무너져 당장 고졸 신인인 양창섭이 데뷔 첫 해부터 로테이션에 합류[37]하는 등 팀의 자원이 바닥이라는걸 만천하에 드러냈다. 그래도 최충연 최채흥 등 향후 선발로 뛸 유망주들이 있다는 점이 위안거리인데, 정작 감독이라는 사람은 선발 유망주들을 불펜알바나 시키고 있으니...
  • 영입한 FA 선수들의 폭망
2016년이 끝난 뒤 우규민이원석을 영입하였고, 2017년이 끝난 뒤 강민호를 영입하였다. 그 중 이원석만 제 값을 해냈고, 나머지는 먹튀로 전락해버렸다. 팀의 전력의 핵심이 되어야 할 FA 선수들이 망해버리니 성적이 날 리는 만무하다.

5.2. 리빌딩

투-타 양쪽이 무너져 내리며 2017 시즌을 4할이 안되는 승률로 마치자 먼저 투수조 재건을 위해 오치아이 에이지를 다시 데리고 왔다. 오치이이 코치는 2011~2012년에 삼성에 몸담으며 안정권KO의 동시 가동과 정인욱 등의 유망주를 키워내기도 했기에 삼성팬들의 기대가 컸다. 또한 부임 당시 투수조에 최충연, 장지훈, 양창섭, 최채흥 등 상위 라운드에서 뽑은 투수 유망주들이 많았다. 스토브리그 기간 동안 기초 체력부터 다시 잡는 혹독한 훈련을 시켰고 시즌이 끝난 뒤 최충연은 리그 최고의 중간계투로 성장했고, 양창섭도 고졸 1년차 선수 치고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최채흥은 전반기는 실망스러웠으나 투구폼 조정 이후 에이스의 모습을 보여주며 윤성환의 부진을 어느 정도 메워주었다. 거기에 심창민, 장필준이 힘을 보탰고 만년 유망주 정인욱도 가능성을 보여주며 불펜 평균자책점 전체 2위에 팀 평균자책점을 중위권으로 끌어올렸다.

2019 시즌에는 심창민은 입대했고, 양창섭은 수술로 안식년에 들었으며, 최충연과 최채흥은 해메고 있다. 신예 원태인은 1년차임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심각한 수준의 장타력 부재를 겪고 있는 야수진도 그냥 그대로. 연습경기에서 장타와 홈런을 날린 이학주는 시즌들어가니 예상대로 똑딱이였고, 이지영을 내주고 3각 트레이드로 데려온 김동엽은 공갈질도 잘 못한다. 구자욱은 컨택과 출루율을 상당부분 양보하고 얻었던 17, 18시즌의 장타력마저도 탱탱볼 거품이 아니었냐는 의심만 받고 있다. 강민호는 확실한 먹튀고, 러프도 페이스가 떨어졌으며, 김성훈, 최영진, 백승민, 송준석은 지금 모습으론 잘되봐야 백업으로 보인다. 박계범이 1군에서 가능성을 보여준게 유일한 위안이다.

5.3. 과연 탈출이 가능한가?

안타깝지만 투타 상태를 봐서는 자력 탈출이 불가능해 보인다. 단, 다른 팀들이 삼성 이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작전을 하거나[38] DTD를 시전하거나 갑작스레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거나 하면 5강까지는 그나마 가능해보이며 타력으로나마 탈출은 불가능하지 않다.

2019년 들어 희망을 희망이 보이긴 했다. 고무적인 부분은 2018년에 양창섭, 최채흥, 최충연 등이 가능성을 보였고, 원태인 등의 기대주들과 즉시전력감 이학주가 입단했고, 여기에 기대주 거포 이성규가 제대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 선수들이 향후 주축 선수로 자리잡아 주고 심각한 수준의 장타력만 보강해 준다는 보장만 있다면 암흑기 탈출은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로 구자욱이 몸을 불리고 김동엽이 입단하면서 장타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양창섭은 시즌 전 팔꿈치 문제로 결국 2019년 시즌을 통째로 날려버렸고, "선발투수" 최충연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채 다시 불펜으로 돌아갔다. 불펜의 방화는 여전하고, 장타보강을 위해 영입했던 김동엽은 장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벤치만 지키고 있다. 고액 FA 선수의 상황도 좋지 못한데 강민호롯데전을 제외하면 타격에서 부진하고 있고 2018년 철벽 불펜의 일원이었던 우규민은 시즌 초 마무리로 낙점 받았으나 부진을 넘어 아예 불을 계속 지르고 있고. KBO 최고령 선수이며 19년 원팀맨 한국시리즈 반지를 7개를 거며쥐던 19년이라는 선수 생활에서의 경험으로 유일한 기둥의 역할을 해준 박한이마저 음주운전으로 영결,은퇴식,코치,해설자 생활도 전부 날려먹어버리면서[39] 중장기 암흑기에 빠졌던 대부분의 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결국 2019년 암흑기 탈출을 목표로 했던 삼성의 꿈도 희망고문에 사실상 그쳤고, 삼성의 암흑기 탈출의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6. 같이 보기


[1] 이후 2008년에 예상보다 빨리 복귀한 배영수는 전성기의 구위를 잃어버린다.[2] 강봉규는 2009시즌 20-20을 달성하긴 했으나 2010시즌 타격이 다시 폭망하였다.[3] 윤성환은 2004년에 데뷔하기는 했으나 본격적으로 선발로 기용된 것은 2008년부터였다.[4] 2016 시즌의 승률이 0.455로 더 높긴 한데 kt발 승률 인플레가 존재했으며 순위도 6위보다 한참 낮은 9위인 터라 2016 시즌을 두 번째로 저조한 성적으로 친다. 참고로 가장 저조했던 연도는 2017 시즌.[5] 결국 이만수는 1997년 시즌을 마치고 은퇴식도 치르지 못하고 팀에서 쫓겨나다시피 은퇴한다.[6] 천재 2루수로 불렸던 강기웅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시켰던 것도 1996년의 일이다. 강기웅은 결국 현대로의 트레이드를 거부하고 그냥 은퇴해버리고 만다. 정확히는 트레이드 직후 현대가 강기웅을 임의탈퇴 조치했다.[7] 1990년대 KBO 리그의 최고 전성기로 꼽히는 1995년의 관중 동원 기록은 540만6374명으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우승과 이듬해 WBC 준우승의 영향으로 592만5285명이라는 관중 동원 신기록을 경신하기 전까지 단일 시즌 최다 관중 동원 기록으로 남아있었다. 1995년 삼성 라이온즈의 대구 홈경기 관중 동원 기록은 62만3970명으로 경기당 평균 관중이 무려 9904명에 달했다. 이 당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의 관중석 숫자가 1만2000석인 것을 감안하면 1995년의 좌석 점유율은 무려 83%에 이른다. 관중 기록은 새 야구장으로 이사를 간 2016년에서야 깨졌지만 83%의 좌석 점유율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최근 이 팀 하는 꼬라지 봐서는 기록 경신이 불가능해 보인다.[8] 그러니까 지금 와서 당시 성적 보고 그때가 암흑기였구나 하는 팬들 말고 진짜 그 당시에 야구를 본 삼성팬어르신들.[9] 1993~1998년 시즌의 경우 3위와 4위 승차가 3.5경기 이상이면 4위는 탈락하고 3위가 2위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이 중 1995년은 3위인 롯데와 4위인 해태가 4.5게임의 승차였기 때문에 해태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1995년의 포스트시즌은 OB, LG, 롯데 이렇게 3개 팀만이 참가하게 되었다.[10] 2017년 기준으로는 국내 FA 선수 중 최형우가 무려 100억 이상의 넘는 조건으로 이적 2019년 기준으로도 국내 선수 중 1위[11] 당시 박한이는 20대 중반이였는데도 불구하고 팀의 야수 중 막내였다.[12] 한때는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 였으나 현재는 두산 베어스 소속.[13] 은퇴의 원인은 심각한 무릎 부상이였다. 선동열이 기다리겠다고 했었으나, 심정수에게는 또 다시 같은 부상으로 팀에 폐를 끼치는거 보다는 은퇴를 하는 것이 좋다는 판단하에 결정이 되었다. 결국, 먹튀가 된 꼴[14] 당시, 삼성은 내야수도 제대로 키운 선수라고는 조동찬 한 명에 그쳤다. 박종호, 박진만은 라이벌 팀인 현대에서 사온 선수라 예외였다. 그나마 재일교포 선수로 영입한 고지행이 있었으나 구단 내에서 사고만 쳐서 일찌감치 방출, 백업의 손주인, 박석민이 있었는데 박석민은 상무 가기 전에 까지 포텐셜만 있었지 아직 까지 활약이 미미했고 손주인도 역시 미미했다가 LG로 가서 포텐이 만개했다가 2018년에 다시 친정 팀에 와서 예년보다는 못했다. 2019년 현재 팀 내 최고참 내야수. 대졸로 뽑던 조영훈도 미미했었다. 그리고, 최형우라는 대형 타자가 있었지만 현재는 KIA 타이거즈 소속. 방출되던 당시에는 레알 수비를 못해서 선배들이나 팬들에게 까임의 존재였고 방출 이 후 경찰청에서 군복무 후 2군을 초토화 시킨 뒤 버렸던 삼성이 다시 데려왔더니 아예 리그를 폭격 시켰던 시절을 가졌었다.[15] 당시 권혁은 불펜에서 몸값을 했었다.[16] 이 때 둘의 별명은 조평신 1호기, 2호기 라고 불렸다. 본래 원조는 한화 이글스에서 한솥밥을 먹던 심광호, 신경현 두 포수의 별명인 SKH 1호기, 2호기에서 따온듯[17] 아쉽게도 김한수의 은퇴 인터뷰 중 본인에게 아쉬운게 1500경기 출장을 이루어내지 못한게 한이라고 했다. 최종적으로 통산 1497경기 출장[18] 2009년에는 아예 실책 갯수가 대폭 늘어나서 한동안은 신예 김상수가 주전 유격수로 뛰었었다. 결국 2010년 말에 방출 후 고향팀 SK 와이번스와 계약 후 2015년도 까지 선수생활을 하며 은퇴를 하였다.[19] 박종호는 2군에 있다가 2008년 중순에 방출 되어 결국, 김재박이 있던 옛 친정팀인 LG 트윈스로 가서 좀 더 생활을 했다.[20] 진갑용 은퇴 이 후 삼성에서 주전 포수는 이지영이 있었으나 2019년 키움 히어로즈로 트레이드 이적을 하였고 그 아래 후배인 권정웅이 있지만 이지영 보다도 실력이 아래이다. 이흥련도 있었지만 이원석의 FA 보상 선수로 두산으로 가버렸고 김민수나 김응민이 있지만 얘네들은 짬밥만 먹었지 역시 실력이 아래다. 이후, 강민호를 영입했다.[21] 양준혁-진갑용은 제 몫을 다했으나 김한수는 노쇠화, 오리어리는 초반 실력은 좋았으나 좋지 못한 인성에 부진까지 이어지며 퇴출당하였다.[22] 사실상 2005년 이후 타격이 침체[23] 이는 당시 최고령 신인왕 기록이었다. 이후 2016년 넥센 히어로즈신재영이 경신했다.[24] 근데 이 양반은 오히려 2군에 있다가 정점에서 발휘하였고 포텐이 터진건 2011년 류중일 감독시절이다.[25] 구원승 2승을 포함한 10승을 거두는데, 이는 최악의 해를 맞이 할 뻔한 2008년 삼성 투수진 중 정현욱과 10승을 거뒀다. 정현욱은 불펜에서만 순수 10승 및 100이닝을 달성[26] 당시 기아의 로페즈, 롯데의 조정훈과 3인 공동 수상 다만, 골든글러브는 다승왕 및 팀 우승의 주역인 로페즈가 받았다.[27] 물론, 저 둘의 포텐이 터질지 언정 당시에는 2009년도 까지 조원수박차 일원이였고 2010년 부터는 실력이 만개하였는데. 정인욱은 군대 다녀오고 갑자기 성적이 확 떨어지고 말았다.[28] 솔직히 연속 우승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삼성이라는 이름에 뭔가 선수들의 성적이 부족한 수치에 야빠들은 저 우승에 왕조는 없다 식이 라고 지칭했다. 하긴 445를 경험했을때에도 성적이 이만저만 아닌게 확실하다. 어쩌면 저 두번의 우승이 왕조에 포함이 되지 않는 이유가 2015년 한국시리즈2016년 한국시리즈를 두번 우승의 경험을 한 두산 베어스의 원조일지도 모른다.[29] 하필 팀의 임창용 전임 클로저였던 오승환도 있었기에 야구팬들을 깜놀하게 만들던 사건이였다.[30] 징계는 후일 2016년 기아 타이거즈와 계약 후 받는다.[31] 이재용 부회장도 이때 아무말도 하지 않았었다.[32] 당시 가을야구 경쟁팀의 상황을 보면 KIA김기태의 실험정신과 똥행야구로 몰락하던 상태였고 롯데 역시 조석두조원우의 무능이 드러난데다 너무 롤러코스터를 심하게 탔으며 LG2011년에 맞먹는 DTD+두산전 연패로 인해 가을야구행이 점점 멀어지던 상황이었다. 반면 삼성은 투수진이 안정된데가 타선까지 짜임새를 갖추면서 정말로 삼성에 유리하게 돌아간 건 사실이었다.[33]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필승조였던 최충연, 장필준을 기준으로 매년 삼성의 불펜에서 큰 역할을 맡았던 심창민, 선발투수로 데려왔지만 허리 부상으로 불펜에서 뛰게 된 우규민, 나이로는 현 최고참이지만 여전히 140이 넘는 직구를 구사하며 건재함을 증명한 권오준정도가 있다.[34] 다만 이성규는 경찰청 입대 이후 퓨쳐스리그를 그야말로 씹어먹는 어마어마한 거포 능력을 보여주면서 암흑속의 삼성팬들에게 그나마 한줄기 희망이 되어주고 있다. 물론 역대 2군 본즈로 불렸던 선수들중 수많은 선수들이 1군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라졌었던걸 감안하면 큰 기대는 금물이다.[35] 2018년 시즌 타율 0.238, OPS 0.603에 병살 11개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sWAR -0.70, wRC+ 43.4, wOBA 0.263로 사실상 10개 구단 최약체[36] 비록 왕조시절에도가코,카리대와 같은 폐급 용병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토종 선수들이 잘 해주었고, 용병 2, 3명이 세트로 망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37] 고졸 신인임에도 성적이 나쁘지는 않다. 16경기 6승 6패 방어율 5.31[38] 하지만 결과적으로 기아는 삼성을 밀어내고 승차 없는 5위를 기록했다.[39] 삼성이 한국시리즈에 간다해도 어려운게 박한이는 삼성킬러 니퍼트에게 강했고 쓰리런까지 쳤으며 우승반지도 7개에 2013 한시 V7 MVP였고 종종 가을의 사나이라고 불리어졌다 이런 가을야구에도 경험있는 선수가 가버리니 전력이 다른쪽으로 붕괴되는 중 나이는 1살 연하지만 데뷔는 2년 빠른 권오준도 나름 한시 경험이 많았지만 그 역시 버팀목이 되주기는 힘들다 애초에 현재의 투수력에도 의존할수 없는 상황이지만 결국 점점 상황이 다시 악화되어가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