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1-05 22:03:03

삼성 라이온즈/1994년

삼성 라이온즈 시즌별 성적
1993년 시즌 1994 시즌 1995년 시즌
페넌트레이스 성적
순위 승률
5 60 64 2 0.484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1. 스토브리그
1.1. 코칭스태프 이동1.2. 선수 이동1.3. 신인 지명
2. 전지훈련3. 정규 시즌4. 선수별 개인 성적
4.1. 투수4.2. 타자
5. 수상 및 기록

1. 스토브리그

1.1. 코칭스태프 이동

계약이 만료된 이선희 코치가 한화 이글스와 계약했다. 역시 계약이 만료된 김무종 코치와는 재계약을 포기하고 대신 미국 연수에서 돌아온 후 갈 곳 없던 김경문을 배터리코치로 영입했다. 박용진 2군 감독과도 계약이 만료돼 대신 김충 前 MBC 청룡 코치를 2군 감독으로 영입했다.

한편 은퇴한 박승호, 미국 연수에서 돌아온 장태수, 1992년 은퇴한 박정환을 2군 코치로 임명했다.

1.2. 선수 이동

1993년 시즌 후 박승호, 정윤수 등이 은퇴했다. 한희민도 방출됐다.

1991년 말 현역병으로 입대했던 강종필이 복귀했다.

1993년 12월 28일에는 김용국과 윤용하가 태평양 돌핀스로 현금 트레이드됐다.

1994년 1월초 대만의 쥔궈 베어스와 자매 결연을 맺었는데, 이때 방출된 한희민이 쥔궈 베어스에 입단했다. 원래 한희민은 쥔궈 구단이 요청을 했기 때문이었는데, 당시 대만 타자들이 언더핸드에 무척이나 약했기 때문에 쥔궈 구단이 한희민을 지목했다고. 때마침 한희민도 방출된 후 불러주는 팀이 없었다. 이후로도 삼성은 간간이 2군 투수들을 연수차 쥔궈 베어스로 보냈다.

한편 재일 한국인으로 닛폰햄 파이터즈에서 활동하다 은퇴 선언을 한 김실을 영입했다. 1군 경험이 있는 선수지만 교타자로 파워도 떨어지는데다, 전년도 영입한 아마야구 출신 재일교포 선수들도 그리 기대만큼 활약을 못했기에 다소 의문이 드는 영입이었다.

1.3. 신인 지명

  • 포지션은 지명 당시 기준.
이름 포지션 경력 계약금
1차 감병훈 투수 경북고 - 단국대 3000만원
2차 1라운드 김한수 내야수 광영고 - 중앙대 4500만원
2라운드 임채영 포수 현대공고 - 경남대 4000만원
3라운드 김태균 내야수 부산고 - 중앙대 2500만원
4라운드 최찬욱 외야수 경남상고 - 경성대 1200만원
5라운드 이태준 투수 부산공고(중퇴) 1500만원
고졸 연고 고재섭 투수 경북고 2800만원
김동섭 투수 대구상고 800만원
김민우 내야수 대구상고 6000만원
박종호 포수 경북고 6000만원
조문식 투수 경북고 2800만원
최우채 내야수 경주고 700만원
해외교포 최용희 투수 미국 롱비치주립대 20만 달러(약 1억 6000만원)
신고선수 최병국 내야수 대구상고 - 단국대 800만원
최익성 외야수 경주고 - 계명대 1500만원

1993년 9월 1일 재미교포 최용희(다니엘 최)를 계약금 20만 달러, 연봉 3천 5백만원으로 영입했다. 총액이 당시 환율로 1억 9천 5백만원으로, 당시 이상훈 다음으로 가장 많은 금액이었다. 다만 이는 기타 주택 제공등의 부대 조건을 뺀 것이라 실질적으로는 역대 최고 대우였다. 문제는 최용희의 투수 영상[1]과 대학 기록만 보고 영입한 것인데, 실제로 최용희는 1993년 미국 4대 대학리그 중 하나인 웨스턴 컨퍼러스 리그에서 20경기에 등판해 17승 2패 2.4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2]. 하지만 이러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1993년 드래프트에서 15라운드에 지명됐을 정도로, 현지에서 평가가 좋았던 선수는 아니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최용희는 만 4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기 때문에 한국어를 전혀 못했다. 미국인이나 다름 없던 최용희는 좀처럼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는데, 삼성에서는 주택만 제공해주고 이밖에 최용희가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 없었다.[3][4]

2. 전지훈련

1993년 말 하와이에서 열린 윈터리그에 최용희, 최한경, 신동주를 파견했다.

1994년 전지훈련은 호주와 일본으로 떠났다. 우용득 감독이 호주를 선택한 것은 미국과 달리 시차 적응이 필요치 않았기 때문. 대신에 LA 다저스 코치들을 인스트럭터로 초빙했다. 그러나 시즌 5위로 밀리며 호주 전지훈련은 삼성에겐 흑역사가 되고 말았다.

3. 정규 시즌

암흑기의 도래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선수들이 줄줄이 부상으로 이탈했다. 그런 악재로 인해 팀 순위가 좀처럼 오르지 않자, 구단에서는 백인천LG 트윈스 감독을 타격 인스트럭터로 초빙했다. 타격 부진을 타개해보겠다는 게 그 이유였지만, 백인천 인스트럭터를 초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달 간 있기로 했던 백인천의 선임 기간을 시즌 종료까지로 연장했다. 결국 백인천을 영입한 건 감독 교체를 위한 수순이었던 것. 우용득 감독이 이에 반발하면서 감독과 구단간의 갈등만 깊어졌다.

결국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60승 64패 2무로 5위를 차지했다. 창단 이래 최하위 기록. 또한 11년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도 실패했다.

삼성은 창단 초기부터 풍부한 지역팜 덕분에 별다른 노력 없이도 좋은 자원을 모을 수 있었지만, 1980년대 후반 이후로 점점 자원이 말라가고 있었다. 구단에서는 나름대로 2군 선수들을 미국이나 일본 교육리그에 파견하는 등 노력을 하긴 했지만, 코칭스태프 차원에서의 제대로 된 선수단 리빌딩은 지지부진하면서 결국 한계에 봉착하고 말았다.

4. 선수별 개인 성적

  • 진한 표시는 리그 5위내 성적.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4.1. 투수

  • 우완
  이름 경기수 선발등판 이닝 세이브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2 이태일 21 20 128 6 10 0 3.38 120 42 60
17 박충식 32 26 203⅓
(3위)
14
(공동 6위)
8 3 2.35
(2위)
174 38 130
(7위)
20 이용철 4 0 3⅓ 0 0 0 10.80 7 2 2
25 김종국 1 0 1⅔ 0 0 0 16.20 3 1 1
39 최용희 6 2 23 1 2 1 5.48 26 15 15
30 김상엽 7 4 24⅔ 2 2 0 4.74 23 17 21
31 김승남 25 2 60⅔ 1 3 1 3.86 54 41 35
33 류명선 13 1 38 2 5 4 4.26 42 12 19
39 박종철 2 0 2 0 0 0 0.00 0 1 0
48 손영철 3 0 4 0 0 0 9.00 4 3 5
52 오봉옥 19 3 33 0 4 3 6.82 46 17 13
60 곽채진 14 8 45⅓ 2 2 0 3.57 32 38 28
67 김인철 13 5 28⅔ 0 2 2 5.02 35 16 16
75 최한경 41
(6위)
5 101⅔ 6 7 9
(8위)
3.28 84 45 102
76 조문식 1 0 0⅓ 0 0 0 54.00 2 1 0
77 이상훈 27 2 70⅓ 2 2 0 4.48 75 28 35
  • 좌완
  이름 경기수 선발등판 이닝 세이브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4 성준 26 24 152⅓ 14
(공동 6위)
8 0 3.37 130 68 46
19 감병훈 3 0 1⅔ 0 0 0 0.00 1 0 1
28 김태한 30 23 176⅓ 10 9 1 2.76
(8위)
146 74 121
(10위)
47 박용준 11 1 18⅔ 0 0 0 1.93 15 6 7

4.2. 타자

  • 포수
  이름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 박선일 96 177 .232 41 8 0 2 16 16 2
22 이만수 109 233 .253 59 14 0 12 37 24 0
23 김성현 101 250 .276 69 10 1 5 30 26 2
38 임채영 5 2 .000 0 0 0 0 0 0 0
44 박종호 8 11 .182 2 0 0 0 2 2 1
49 최형현 18 15 .000 0 0 0 0 0 0 0
  • 내야수
  이름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 류중일 36 131 .328 43 8 3 4 22 22 5
5 김성래 105 276 .246 68 10 1 14 43 39 3
6 강기웅 107 332 .244 81 12 3 4 36 35 12
10 양준혁 123 427 .300
(8위)
128
(6위)
21
(9위)
1 19
(4위)
87
(1위)
62
(10위)
15
15 김태균 65 139 .245 34 8 0 2 17 10 1
42 김태룡 74 114 0.237 27 2 0 2 17 15 1
50 김한수 103 279 .272 76 13 2 10 31 41 6
54 강두곤 7 9 .222 2 0 0 0 0 0 1
56 정경훈 89 300 .250 75 6 1 1 29 43 29
(5위)
57 이동수 6 14 .214 3 0 0 1 1 2 0
- 최병국 5 7 .143 1 0 0 0 0 0 0
  • 외야수
  이름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3 최찬욱 12 16 .000 0 0 0 0 0 2 0
4 최홍주 3 9 .000 0 0 0 0 0 1 0
8 김실 115 337 .273 92 11 5
(3위)
3 33 51 4
11 정영규 59 127 .236 30 6 2 2 6 14 0
24 강태윤 35 68 .309 21 4 0 1 8 3 0
26 최익성 1 1 .000 0 0 0 0 0 0 0
35 한기철 83 61 .262 16 3 0 1 7 14 7
37 신동주 25 32 .188 6 1 0 0 0 3 0
40 이종두 126 417 .271 113 15 1 17
(6위)
52 59 12
45 강종필 61 56 .232 13 1 0 1 3 13 4
46 동봉철 100 319 .254 81 12 2 5 33 44 15
61 박규대 2 2 .000 0 0 0 0 0 0 0

5. 수상 및 기록


[1] 그것도 최용희의 부친이 직접 준 비디오테이프 1개가 전부였다.[2] 롱비치주립대 역대 단일시즌 다승 1위. 2위는 2004년 15승 1패를 기록했던 제러드 위버. 다만 승리를 제외한 다른 기록은 위버 쪽이 더 낫고, 위버는 2003년에도 13승을 기록했다.[3] 최용희는 입단 후 어깨 부상을 당해 한동안 재활했는데, 재활하는 동안 운동을 마치고는 혼자서 금호강가에 가서 그나마 입에 맞는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외로움을 달랬다. 이를 본 삼성 팬들은 외국에서 거액을 주고 데려온 선수가 유유자적 강가에서 삼겹살 파티를 즐긴다고 오해했지만, 다행히 어떤 스포츠신문 기자가 이런 최용희의 사연을 취재하면서 오해가 풀렸다.[4] 출처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