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18 16:04:38

삼성 라이온즈/1984년

삼성 라이온즈 시즌별 성적
1983년 시즌 1984 시즌 1985년 시즌
페넌트레이스
전기리그 성적
순위 승률
1 32 18 0 0.640
페넌트레이스
후기리그 성적
순위 승률
5 23 27 0 0.460


1. 스토브리그
1.1. 코칭스태프 이동1.2. 선수 이동1.3. 신인 선수
2. 전지훈련3. 정규 시즌
3.1. 사건 및 사고
4. 포스트시즌5. 선수별 개인 성적
5.1. 투수5.2. 타자
6. 수상 및 기록

1. 스토브리그

1.1. 코칭스태프 이동

이충남 감독이 기대와 달리 감독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재계약을 포기하고, 그를 대신해 OB 베어스의 원년우승을 이끈 김영덕 감독을 영입했다. 원래 김영덕이 일본 유학을 가겠다고 하며 OB 구단과 마찰이 빚은 후에 OB를 나왔기에 삼성으로 올 수 있었다. 이에 삼성이 김영덕을 데려오기 위해 수를 썼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원래 삼성에서는 이충남을 대신해 배성서 한양대학교 감독, 강태정 한국화장품 감독, 김성근 OB 코치 중 한 명을 감독으로 영입하려 했는데 모두 여의치 않아 김진영 삼미 슈퍼스타즈 前 감독을 영입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던 중 김영덕이 OB 감독직을 사퇴하자 고심 끝에 김영덕에게 감독직을 제안했는데, 김영덕이 떡밥을 덥썩 문 것.

뿐만 아니라 롯데 자이언츠의 원년 감독인 박영길을 타격코치로 영입했고, 코치들의 수가 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코치들간 알력 다툼을 막고 선수들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정동진을 수석코치로 영입했다.

한편 삼미 슈퍼스타즈OB 베어스에 이어 3번째로 2군을 창설했는데, 삼성은 장기적인 선수 육성을 위해 박창용 前 대구상고 감독을 2군 감독으로 영입했다.

1.2. 선수 이동

1983년에 삼미 슈퍼스타즈가 영입한 재일교포 투수 장명부가 대박을 치면서 다른 구단과 마찬가지로 삼성 역시 재일교포 영입에 나섰다. 그리하여 데려온 것이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활동하고 있던 김일융. 선수 본인은 한국에 올 마음이 별로 없어서 트레이드 형식으로 모셔왔다. 여기에 한국어를 못했던 김일융을 위해 의사소통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재일교포 포수 송일수를 김일융의 전담포수 겸 트레이닝코치로 영입했다.

1.3. 신인 선수

  • 1차 지명 : 권기홍(상업은행 투수), 김성래(연세대 내야수), 김준희(영남대 투수), 전용권(한양대 투수), 정성룡(포철공고 외야수), 진동한(고려대 투수), 황규민[1](한국화장품 투수)
  • 2차 지명 : 김이수(한양대 외야수)

1984 신인지명에서 삼성은 1·2차 지명을 합쳐 모두 22명을 지명했는데, 그 중 입단한 건 위에 나오는 8명 뿐이었다. 당시 실업야구팀에서도 나름대로 대우받으면서 선수 생활을 할 수가 있었고, 결정적으로 삼성 선수층이 두텁다 보니 기회를 못 받을 수도 있어 이에 지명된 선수들이 삼성 입단을 기피한 탓도 있었다. 몇 년간 이와 비슷한 일이 계속됐다.

2. 전지훈련

김영덕 감독의 인솔로 다시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김영덕이 재일 한국인이고 현역 시절 8년간 난카이 호크스에서 활동하면서 일본프로야구에 박식해 큰 성과가 있을 것이라 기대됐으나, 폭설 때문에 별다른 소득 없이 2주만에 귀국했다.

3. 정규 시즌

삼성 라이온즈 역사상 대표적인 흑역사 시즌

거의 주전만 기용했던 김영덕 감독의 스타일 때문에 선수단에 비해 기용되는 선수 수는 적었다. 그나마 2루수 배대웅 부상으로 전반기에 결장하게 되자 천보성정진호가 번갈아 기용된 것 정도. 그래도 매번 다른 선수가 출장하던 지명타자 자리에 박승호가 자리를 잡았고, 홍승규는 여타 선배들을 제치고 좌익수로 자리잡는 등, 소소한 변화는 있었다.

송일수 덕분에 매경기 포수로 출장하지 않아도 된 이만수는 시즌 초반부터 불방망이를 가동해, 타격 부문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특히 정규시즌 후반에는 김영덕의 기록 지켜주기 때문에 10경기 가량 결장했지만 타율 부문 외에는 이렇다할 경쟁자가 없었을 만큼 여유로웠다.

전기리그 40승 14패 1무를 차지하며 전기리그 1위를 차지했다. 애초에 김영덕은 후기리그에서도 우승해 한국시리즈 개최 자체를 무산시키려고 했으나, 후기리그에서 중위권으로 밀리자 여유 있게 경기를 운영하게 됐다.

이때 코칭스태프에서 후기리그 1위로 어떤 팀을 밀어줄 것인가로 회의를 했었다. 코치들의 의견은 확실한 에이스가 없는 해태 타이거즈OB 베어스였으나, 김영덕은 롯데를 선택했다.[2] 삼성은 전기리그 때 롯데에게 9승 1패로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고, 시즌 중 롯데 자이언츠의 에이스 최동원을 이긴 적이 있다는 것이 김영덕이 롯데를 고른 이유였다. 그러나 박영길 코치는 완투가 가능한 최동원이 페이스까지 조절하면 상대할 수 없다고 반대했다. 하지만 코치가 감독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으니 롯데가 한국시리즈 상대로 정해졌다.

그리고 OB와 롯데가 후기리그 1위를 두고 시즌 막바지까지 승부가 치열해지자, 삼성은 롯데가 한국시리즈에 올라오도록 롯데와의 경기에서 일부러 지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롯데가 후기리그 1위를 차지했다. 한편 삼성은 후기리그에서 23승 27패로 5위를 차지했다. 총 55승 45패로 현재 같은 승률제 방식이라면 2위에 해당하는 성적을 거뒀다.

김영덕 감독은 롯데를 후기리그 1위로 밀어준 것 외에, 이만수의 타율 1위를 지켜주기 위해서 후기리그 후반에는 이만수를 결장시키는 한편 타율 2위였던 롯데의 홍문종을 상대로 9차례나 고의사구를 지시하는 등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이만수는 한국프로야구 최초 타격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고도 시즌 MVP에 뽑히지 못했다.

3.1. 사건 및 사고

초대 OB 베어스 감독이었던 김영덕 감독이 OB 베어스를 떠나 삼성 감독으로 옮기며 OB 선수들도 김영덕 감독에게 서운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유독 OB와 충돌이 몇 차례 있었다. 이에 대한 것은 이곳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4. 포스트시즌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성적
3 4 0
한국시리즈 패배

일부러 져주기까지 하며 롯데를 선택했던 결과는 1984년 한국시리즈 참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5. 선수별 개인 성적

  • 진한 표시는 리그 5위내 성적.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5.1. 투수

  • 우완
  이름 경기수 선발등판 이닝 세이브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 황규봉 34 8 108 10 2 4
(6위)
3.25 109 32 48
9 양일환 20 10 64 2 5 1 4.64 57 37 20
13 진동한 2 2 5 0 0 0 1.80 1 5 0
17 송진호 12 2 33 0 1 0 5.45 29 29 14
29 김시진 39
(6위)
26 215
(5위)
19
(2위)
11 2 3.18 178 125 154
(3위)
33 박영진 1 0 1 0 0 0 18.00 3 1 0
36 성낙수 6 1 15⅓ 0 2 0 4.11 21 6 4
41 전용권 13 1 26⅓ 0 2 1 4.44 26 13 6
  • 좌완
  이름 경기수 선발등판 이닝 세이브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6 이선희 17 8 51⅔ 2 4 0 4.53 58 26 23
27 권영호 29 18 127⅔ 6 8 2 3.28 124 61 52
28 김일융 38
(7위)
23 222
(4위)
16
(3위)
10 3
(8위)
2.27
(3위)
191 84 155
(2위)
48 권기홍 3 0 8 0 0 0 7.88 9 5 0

5.2. 타자

  • 포수
  이름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2 이만수 89 300 .340
(1위)
102
(6위)
17
(8위)
1 23
(1위)
80
(1위)
45
(9위)
3
23 송일수 64 137 .277 38 3 2 2 16 15 1
37 손상대 4 3 .333 1 0 0 0 1 0 0
55 박정환 12 15 .200 3 0 0 0 1 0 0
  • 내야수
  이름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3 배대웅 43 104 .240 25 2 0 0 5 5 4
5 김성래 39 59 .186 11 2 0 1 3 6 0
6 정진호 43 103 .291 30 4 0 0 10 19 1
7 천보성 64 180 .217 39 8 0 2 20 20 5
12 함학수 100 318 .277 88 12 0 9 45
(10위)
38 12
15 김근석 86 281 .299
(9위)
84 13 0 5 30 29 3
16 오대석 77 231 .286 66 10 2 7 34 31 4
21 박승호 92 220 .277 61 11 1 3 23 28 5
25 김동재 24 30 .067 2 0 0 0 3 3 1
35 김한근 58 125 .208 26 8 0 0 10 11 1
  • 외야수
  이름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 장태수 74 192 .268 55 13 2 2 8 40 10
10 장효조 89 309 .324
(4위)
100
(8위)
19
(4위)
7
(2위)
7 44 56
(4위)
8
11 정성룡 21 33 .273 9 0 0 0 2 3 0
18 황병일 37 51 .137 7 1 0 2 5 4 0
20 정현발 54 132 .280 37 6 0 10 28 23 2
24 김이수 48 117 .197 23 5 1 2 10 19 6
31 허규옥 52 139 .237 33 4 1 0 13 13 1
38 홍승규 72 183 .235 43 9 1 3 19 24 7
44 박찬 20 36 .167 6 0 0 0 3 3 1

6. 수상 및 기록

  • 이만수 :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타율 1위(.340), 홈런 1위(23개), 타점 1위(80타점), 장타율 1위(.633)
  • 장효조 : 골든글러브 우익수 부문, 출루율 1위(.424)

[1] 황규봉의 동생.[2] 박영길 당시 타격코치의 회상에 따르면 롯데는 결사반대했다고 한다.그래서 OB나 해태로 가자는 식이었으나 OB는 김영덕 감독이 제대로 뒤통수(...)를 치는바람에 마음에 걸려서 넘어갔고,해태는 김종모,김봉연,김준환등 김씨 타선이 무섭다는 점이 걸렸다고 한다.다른 코치들도 롯데가 낫겠다는 생각으로 유야무야 넘어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