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4 23:23:40

삼성 라이온즈/1985년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074ca1><tablebgcolor=#074ca1> 파일:삼성 라이온즈 심볼(흰색).svg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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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넌트레이스
전기리그 성적
순위 승률
1 40 1 14 0.740
페넌트레이스
후기리그 성적
순위 승률
1 37 0 18 0.673
전·후기리그 통합우승

1. 스토브리그
1.1. 코칭스태프 이동1.2. 선수 이동1.3. 신인 선수
2. 전지훈련3. 정규 시즌
3.1. 선수 이동
4. 선수별 개인 성적
4.1. 투수4.2. 타자
5. 수상 및 기록6. 둘러보기 틀

1. 스토브리그

1.1. 코칭스태프 이동

기존의 코치 모두 유임된 가운데 천보성이 은퇴를 결정하면서, 2달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수비와 주루 부문 연수를 받고 귀국해 2군 코치로 임명됐다.

1.2. 선수 이동

1984년 시즌 후 박영진이 입대했는데, 고교·대학 시절 혹사의 여파로 선수로서 복귀하지 못하고 그대로 은퇴했다.

1985년 1월 13일에 이선희MBC 청룡이해창을 상대로 트레이드됐다. 이선희는 팔꿈치 통증으로 삼성에서는 전력외 선수로 분류하려 했었고, 이해창은 구단과 연봉 협상으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해창이 이 때 연봉을 더 원했던 것은 빚 갚기 위해서였다고.

1.3. 신인 선수


강정길(영남대 내야수), 송상진(영남대 내야수), 이강돈(건국대 외야수) 등 1차 지명자 3명 모두 빙그레 이글스에 지명권을 양도했다. 사실 이강돈의 경우에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구단이 군대에 갔다오면 입단시켜 주겠다고 하면서 이강돈이 이에 반발하면서 다른 팀에 보내달라고 했는데, 삼성은 조건 없이 빙그레로 보내줬다.

2. 전지훈련

1984년 11월에 정동진 코치의 인솔하에 11명의 선수들이 일본 미야자키에서 긴테쓰 버팔로즈와 합동훈련을 실시했다. 프로야구 구단 중 처음으로 해외에서 실시한 마무리 훈련.

1985년 2월에는 국내 프로야구단 최초로 미국 전지훈련을 떠나 플로리다 베로비치 다저타운에서 전지훈련을 실시했는데, 앞서 1982년 말 피터 오말리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구단주와 기술 제휴를 맺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더불어 다저스의 코치들을 인스트럭터로 초빙했다. 이들은 전문적인 기술보다는 기초부터 이론을 가르쳤기에, 많은 양의 전문적인 훈련을 원했던 김영덕 감독은 처음에 그러한 미국의 훈련 방식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 코치들의 방식에 대해 인정했다고 한다.

3. 정규 시즌

삼성은 창설 이래 늘 최강팀으로 평가되어왔으나, 1983-1984 시즌 모두 모종의 이유로 한국시리즈 우승에 실패하자 삼성 팬덤과 그룹은 문자 그대로 머리 끝까지 분노하였으며[1] 1985년은 반드시 우승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년도에 김영덕 감독은 전후기리그 제패를 목표로 필승전략을 따로 짰는데 이게 1년만에 빛을 봤다.

김시진, 김일융 원투펀치가 똑같이 25승씩 해서 총 50승을 올렸고, 이 둘을 잇는 황규봉도 14승을 기록했다. 마무리 투수로 전업한 권영호도 26세이브, 28세이브포인트를 기록했다.

입단 2년차인 김성래가 주전 2루수로 자리잡고, 이외에 기존의 포수 이만수, 우익수 장효조, 좌익수지명타자를 번갈아 출장한 이해창 외에는 그때마다 주전이 달랐지만 선수들 다들 워낙 기량이 좋았기 대다수가 타격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러한 전력으로 전기리그 40승 1무 14패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후기리그를 앞두고 다시 합숙에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홈구장에서는 에이스를 등판시키고, 정 안 되면 모든 투수를 투입해 어떻게든 이기려 애썼고, 타선에서는 강타자들을 전진배치하는 한편, 그러면서 타자들의 개인기록도 관리했다.

그리하여 후기리그에서도 37승 18패로 역시 1위를 차지하며 가을야구 티켓을 전부 먹어치웠다. 1985년 정규시즌 누적 기록은 77승 1무 32패로 승률이 무려 0.706이었다. 참고로 1985년의 승률 0.706은 현재까지 깨지지 않는 KBO 리그 역대 단일 시즌 최고 승률 기록이다.[2] 이 해 종합승률 2위였던 롯데 자이언츠의 승률은 0.536에 불과했다. 롯데는 후기리그 막판 삼성에게 연패하며 후기리그 2위가 됐는데 공교롭게도 삼성이 후기리그 1위를 결정지으며 통합우승을 달성하게 된 경기가 9월 17일 부산 구덕구장에서 열렸다. 이날 롯데는 경기 후 구덕구장 라이트를 모조리 꺼버리며 삼성의 후기리그 우승 시상식을 방해해서 빈축을 샀다. 그리고 삼성은 25년 후에 SK에게 똑같은 짓을 했다

삼성이 전기와 후기를 모두 우승하면서 플레이오프도[3], 한국시리즈도 열리지 않았다. 원래 전년도 삼성의 상대팀 고르기로 한국시리즈 진출 제도가 바뀌었지만[4] 1985년 삼성의 통합우승으로 한국시리즈 진출 제도는 1년만에 또다시 바뀌게 됐다.

삼성은 압도적 전력을 자랑하며 그야말로 리그를 씹어먹었음에도 MVP를 배출하지 못했다. 다승 공동 1위와 승률 1위를 차지한 김시진, 홈런 공동 1위와 타점 1위를 차지한 이만수, 타율 1위와 출루율 1위를 차지한 장효조까지 3명의 후보가 한 팀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결국 표가 분산돼 해태 타이거즈김성한이 MVP로 뽑혔다. 이래서 후보 단일화가 필요한 거다.

3.1. 선수 이동

8월 1일에 장타력은 있으나 삼성에선 기회를 못 잡았던 박찬이 선수 지원차 신생팀 빙그레 이글스로 현금 트레이드됐다. 같은 달 27일에는 팀내 고참이지만 주전 자리를 뺏긴 김한근과 신인 송상진이 빙그레로 현금 트레이드됐다. 둘 역시 마찬가지로 선수 지원차 트레이드.

이후로도 삼성은 현금 트레이드와 신인 지명권 양도를 통해 선수들을 지원하면서 빙그레가 팀을 꾸리는 데에 많이 도와줬다. 당시 삼성 선수단이 여유가 있었기도 했지만, 빙그레 이글스의 초대 단장인 노진호 단장이 빙그레 단장을 맡기 전에 삼성 단장을 맡았던 터라 일종의 전관예우 차원이기도 했다.

4. 선수별 개인 성적

  • 진한 표시는 리그 5위내 성적.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 투수는 이닝이 많은 순서대로, 타자들은 타수가 많은 순서대로.

4.1. 투수

  • 우완
  이름 경기수 선발등판 이닝 세이브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9 김시진 47
(2위)
29 269⅔
(1위)
25
(공동 1위)
5 10
(2위)
2.00
(3위)
172 136 201
(1위)
1 황규봉 34 24 165⅔ 14
(4위)
7 4
(9위)
3.04 158 42 55
13 진동한 24 9 81⅔ 4 2 0 2.98 74 31 24
9 양일환 19 6 61⅔ 3 5 1 5.11 62 31 17
17 송진호 7 1 12⅔ 0 1 0 5.68 20 6 5
36 성낙수 3 0 4⅓ 0 0 0 4.15 6 1 2
47 김준희 1 0 2 0 0 0 18.00 5 1 1
  • 좌완
  이름 경기수 선발등판 이닝 세이브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8 김일융 34 28 226
(3위)
25
(공동 1위)
6 0 2.79
(9위)
200 82 107
(4위)
27 권영호 54
(1위)
13 174⅔
(8위)
6 6 26
(1위)
3.50 170 71 81
(10위)
48 권기홍 3 0 3 0 0 0 3.00 4 1 3

4.2. 타자

  • 포수
  이름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2 이만수 103 357 .322
(5위)
115
(5위)
19
(9위)
2 22
(1위)
87
(1위)
63
(5위)
7
23 송일수 55 130 .208 27 7 0 2 20 16 2
37 손상대 5 1 .000 0 0 0 0 0 0 0
  • 내야수
  이름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7 김용국 99 306 .239 73 14 1 7 37 46 3
5 김성래 103 300 .283 85 16 0 13
(7위)
51
(8위)
40 5
12 함학수 92 220 .241 53 11 1 4 24 32 11
43 이종두 92 186 .231 43 8 3 6 31 28 6
3 배대웅 91 161 .273 44 8 1 3 18 18 5
6 정진호 70 157 .261 41 7 2 3 18 18 3
21 박승호 88 131 .290 38 7 0 8 29 16 1
15 김근석 46 87 .184 16 5 0 2 11 5 0
16 오대석 30 65 .200 13 2 0 1 6 6 1
25 김동재 22 30 .167 5 2 0 0 1 1 0
35 김한근 13 13 .308 4 2 0 0 1 0 0
31 홍순호 14 6 .167 1 0 1 0 0 1 0
8 김성갑 11 6 .000 0 0 0 0 0 0 0
  • 외야수
  이름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1 이해창 109 352 .270 95 12 3 7 43 63
(5위)
14
10 장효조 107 346 .373
(1위)
129
(2위)
24
(2위)
1 11 65
(3위)
66
(2위)
17
(7위)
2 허규옥 103 307 .329
(4위)
101 14 7
(1위)
3 22 64
(4위)
26
(5위)
4 장태수 104 252 .290 73 13 0 1 25 33 10
20 정현발 51 119 .269 32 7 0 3 19 13 1
38 홍승규 67 89 .169 15 2 0 1 4 19 4
18 황병일 9 10 .100 1 0 0 0 2 0 0
24 김이수 25 9 .111 1 1 0 0 0 4 0
  • 투수
  이름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 황규봉 1 1 .000 0 0 0 0 0 0 0

5. 수상 및 기록

  • 권영호 : 구원 1위(2구원승, 26세이브), 세이브 1위(26세이브)
  • 김시진 :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올스타전 MVP, 승리 공동 1위(25승), 승률 공동 1위(0.833(25승 5패[5])), 탈삼진 1위(201개), 전구단 상대 승리
  • 김일융 : 승리 공동 1위(25승), 전구단 상대 승리
  • 황규봉 : 전구단 상대 승리
  • 이만수 :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홈런 공동 1위(22개), 타점 1위(87타점), 승리타점 1위(13타점)
  • 장효조 : 골든글러브 우익수 부문, 타율 1위(.373), 출루율 1위(.467)

6. 둘러보기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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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75~1992).png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1982~1988).svg 파일:OB 베어스 엠블럼.svg
롯데 자이언츠
1985년
삼성 라이온즈
1985년
OB 베어스
1985년
파일:MBC 청룡 엠블럼(1982~1985).png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 파일:삼미 슈퍼스타즈 엠블럼.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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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청룡
1985년
해태 타이거즈
1985년
삼미 슈퍼스타즈 1985년
청보 핀토스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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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3년에는 장효조를 필두로 피타고리안 승률 6할대를 찍고도 실제 승률 4할대 후반(...)으로 윈나우 탱킹을 하며 망했고, 1984년에는 져주기 게임으로 롯데를 한국시리즈에 불렀다가 한국시리즈에서 최동원에게만 4승을 헌납하며 제대로 망했다. 이 때문에 올드 삼성 야구 팬덤은 556, 선동열 체제 말기, 99688, 2022-2023시즌 못지않게 1983-1984 시즌을 역대 최악으로 간주한다.[2] 144경기로 확장된 21세기의 KBO 리그 체제에서 7할 승률은 사실상 불가능한 경지로 평가 받고 있다. 144경기 체제에서 7할 이상의 승률을 거두려면 최소 101승을 해야 하며 1985년 삼성의 승률을 깨려면 102승 이상을 해야 한다. KBO 리그의 단일 시즌 최다 승수는 2016년과 2018년 두산 베어스가 세운 93승이다.[3] 당시 플레이오프는 연간 승률 1~2위가 전기리그 우승과 후기리그 우승을 나눠갖지 못하고 다른 한 팀이 전-후기 중 하나를 우승하면 열리도록 했다.[4] 전기와 후기 각각 승률 1위 팀이 한국시리즈로 진출하는 건 같지만 전기리그 우승팀, 후기리그 우승팀, 종합 승률 1위팀이 모두 다를 경우 종합승률 1위팀이 한국시리즈로 직행하고 전기, 후기 승률 1위팀끼리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방식.[5] 공동 수상한 OB 베어스윤석환은 5승 1패를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