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9 13:58:21

김성래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한화 이글스/2019년, 야구 관련 인물(K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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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 김성래 · 71 전형도 · 72 김해님
· 73 채종국 · 74 백승룡 · 75 타나베 · 76 정민태 · 77 정현석 · 78 전상렬
· 79 마일영 · 80 고동진 · 81 차일목 · 82 강인권 · 83 송구홍 · 84 손상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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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령 · 박재희 · 김재민 · 김회성 · 김세동 · 원창식 · 김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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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래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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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1987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1988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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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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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KBO 리그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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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1993 KBO 리그 홈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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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KBO 리그 타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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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KBO 리그 출루율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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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래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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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번
김성철(1982) 김성래(1985~1996) 김한수(1997~2008)
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18번
윤재호(1994~1996) 김성래(1997~1999) 팀 해체
SK 와이번스 등번호 9번
팀 창단 김성래(2000) 곽국희(2001~2003)
SK 와이번스 등번호 79번
결번 김성래(2001~2009) 한혁수(2012~2013)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0번
오오시오 신이치 김성래(2011~2016) 김상진(2017~ )
한화 이글스 등번호 70번
이정훈(2015~2016) 김성래(2017~ )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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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samsunglions.com/img_history21_4_8.jpg
본인의 전성기였던 삼성 라이온즈 시절.

파일:external/dimg.donga.com/6795154.1.jpg
본인의 현역 마지막인 SK 와이번스 시절.

파일:/image/109/2010/12/02/201012021216771377_1.jpg
삼성 라이온즈 코치 시절.

파일:김성래코치.png
한화 이글스 2군 타격 코치 시절.
한화 이글스 No.70
김성래(金聲來 / Sung-rae Kim)
생년월일 1961년 12월 3일
국적 대한민국
본관 강릉 김씨[1]
출신지 경상북도 의성군[2]
출신학교 대구옥산초-경운중-경북고-연세대
포지션 1루수, 좌익수, 2루수[3]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4년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84~1996)
쌍방울 레이더스 (1997~1999)
SK 와이번스 (2000)
지도자 SK 와이번스 1군 타격코치 (2001~2009)
오릭스 버팔로스 2군 타격코치 (2010, 연수)
삼성 라이온즈 1군 타격코치 (2011)
삼성 라이온즈 1군 수석·타격코치 (2012)
삼성 라이온즈 1군 수석코치 (2013~2016)
한화 이글스 2군 타격코치 (2017~ )

1. 소개2. 선수 경력
2.1. 평가
3. 지도자 경력4. 트리비아5.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1111041032761006120.jpg
KBO 리그 역사상 유일의 2루수 홈런왕
80~90년대 삼성의 전설적인 강타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원

삼성 라이온즈, 쌍방울 레이더스, SK 와이번스에서 뛰었던 전직 야구 선수이자 한화 이글스의 2군 타격코치.

주 포지션은 2루수와 1루수.

현역시절 등번호는 5번(삼성) - 9번(쌍방울, SK).

2. 선수 경력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72v3jpgxR1sqk8veo6_r1_400.png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70주년 기념 OB All-Star
in 2016. 동아일보
장효조
OF / 상원고
이정훈
OF / 상원고
박재홍
OF / 광주제일고
류중일
SS / 경북고
김성래
2B / 경북고
김동주
3B / 배명고
남우식경북고
송진우세광고
유지홍
1B / 선린상고
백인천
C / 경동고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1984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았지만 애초에는 실업 팀인 한일은행에 입단하려고 했었다. 연세대학교 시절에는 유격수를 봤었지만, 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유격수는 서정환을 밀어내고 주전 유격수를 차지하며 KBO 리그 첫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오대석이었기 때문. 그러나 어머니의 위암 판정을 받자, 그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결국 수술도 받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1985년 김영덕 감독이 그에게 유격수 대신 2루수 전향을 지시해 2루수로 활동하게 되었다.[4] 1987년 22홈런을 기록하면서 2루수 포지션 최초로 홈런왕을 차지한다.[5] 1988년에는 만담가 김상훈과 타격왕 경쟁을 벌일 정도로 페이스가 좋았으나, 1988년 9월 6일 해태전 때 김성한과의 충돌로 인해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으로 하락세를 걸었다. 게다가 1989년에는 역대 최고의 2루수로 평가를 받았던 강기웅이 입단함으로써 그 입지가 더 줄게 되었다.

하지만 무릎 수술을 받고 좌익수로 자리를 옮긴 1992년 0.292의 타율을 기록했고 1루수로 변경한 이듬해인 1993년 타율 0.300, 28홈런, 91타점으로 홈런왕, 타점왕 그리고 MVP를 수상하며 보란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28홈런이 이승엽이나 심정수 그리고 우즈에 비하면 부족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 해 롯데 자이언츠는 팀 홈런이 29개였다.[6] 즉 이 해 김성래의 홈런 수는 롯데 자이언츠 전체 홈런보다 1개가 적었던 것이다.[7] 이 해는 성적도 성적이지만 클러치 히터로서의 능력 또한 대단했다.[8]

내야수로서의 수비 능력도 출중한 편이라 당시엔 매우 큰 키였던 185cm의 장신을 이용한 높은 공의 점프 캐치는 물론 낮은 공 처리에도 매우 능숙했다. 그래서 마구마구에서는 레어 87김성래의 잠재력이 무려 1슬롯에 하이점프캐치가 달렸다 당시 1루수에서 다리를 찢는 학다리 수비로 유명했던 OB 베어스신경식 선수와 함께 꺽다리 내야수로 자주 비교되었다.

이후 30대 후반에 접어들자 팀에서는 은퇴와 코치 연수를 권했지만 김성래는 선수로 남길 원해, 1996 시즌 후 코치 연수를 거부하고 삼성에서 방출되어 김성근 감독의 부름을 받고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했고, 쌍방울에서는 지명타자, 1루수, 그리고 3루수로도 뛰었고 김광림과 함께 팀의 최고참으로 뛰었다.

1999년 말 쌍방울이 해체되고 쌍방울 선수들을 모아 창단한 신생구단 SK 와이번스 소속이 되며 2000년 리그 최고령 선수로 뛰었지만[9] 해태에서 이호준이 이적해오면서 자리를 완전히 잃었고, 2000년 8월 11일 은퇴를 선언했다. 이 때 SK 와이번스의 첫 은퇴식을 치룬 선수가 바로 이 분이다. 은퇴식은 동년 8월 13일 열렸다.

한편, 1997년 쌍방울로 떠난 그의 등번호 5번의 빈 자리는 3루수 김한수가 말끔히 메워 줬다.[10] 현역 마지막 시즌이었던 2000년 SK 유니폼을 입고 개인 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다.

2.1. 평가

선수 시절 홈런왕을 2번이나 했을 정도로 타격지표도 좋았고, 내야 유틸리티로도 쓸 수 있었을 정도로 수비력도 뛰어난 선수였지만 의외로 저평가를 받는다. 2루수로 뛰면서 홈런왕을 했는데[11] 이는 2루수 레전드로 꼽히는 홍현우, 박정태 등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이다.

하지만 저평가를 받는 게, 이는 역설적이게도 내야 유틸리티로 활동한 게 컸다. 유격수로 시작해서 주 포지션이었던 2루수를 포함해 내야 전 포지션에서 활동하였고, 외야수로도 뛰었던 시즌이 있었으니 어느 포지션의 레전드로 낙점할지 참 애매하다는 것이다. 비슷하게는 2루수-3루수로 활동했던 홍현우가 있다. 그래도 홍현우는 2루수 레전드로 가는 추세이다 이외에도 1988년 한창 때 부상으로 몇 시즌을 날려먹은 것도 타격이 컸다.

게다가 당대 홈런왕 치고는 인기도 많지 못한 편이었다. 역시 임팩트가 부족했던게 가장 크다, 좀 잘할만 해서, 팬이 생기기만 하면 발생하던 부상으로 인해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결과적으로 홈런왕을 차지했던 다른 타자들(예: 이만수, 김성한, 장종훈)을 넘어설 정도의 인상을 남기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성적이기 때문.. 헐크, 오리궁둥이, 연습벌레 등 무언가 스토리를 가지고, 꾸준히 활약했던 선수들에 비해, 김성래는 꾸준히 선수로 뛰지를 못했다.

3. 지도자 경력

2001년부터 2009년까지 SK의 코치를 역임했으며, 2010년 일본으로 건너가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2011 시즌부터 LG 트윈스의 코치로 활동할 예정이라는 기사가 있었으나 오보로 밝혀졌다. 타네다 히토시가 2010 시즌 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옮기자 삼성 라이온즈에서 그를 타격코치로 영입하였다. 관련기사 무려 15년 만에 친정 팀으로 가게 된 것. 일부 마구마구 삼올유저들은 '김상수 하점 달아주세요'라고 징징대고있다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수비코치가 아니라 타격코치인데 그리고 2011 시즌 전에는 류중일이 불러들여 김용국이 돌아왔고, 2011 시즌 중에는 강기웅도 2군 타격코치로 합류하여 레전드들이 코치진에 모두 모였다.

2011 시즌 초반만 해도 코치로서 존재감이 거의 없다시피해 팬들의 의구심을 샀지만, 사실 그동안 경산에서 선수들과 같이 합숙하며 선수들의 타격 훈련을 도왔다. 그리고 6월 들어 김상수, 이영욱, 최형우의 타격감이 잇따라 폭발하며 1위까지 탈환.

2012 시즌 부로 수석코치로 승격되었으나, 김한수 타격코치가 코치로서 경력이 짧아 타격코치를 겸임했다.

2015년 9월 16일 나바로가 에릭 테임즈보다 더 낫다는 평가를 내렸다.

2016년 삼성 라이온즈가 순식간에 하위권으로 떨어지고 그에 따른 대체 선수가 나오지 않는 등 그동안 왕조에 가려져서 드러나지 않았던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나며 육성면에서 그동안 뭐했냐고 류중일 감독, 장태수 2군 감독, 양일환 2군 투수코치와 함께 철밥통이라고 팬들에게 까이는 빈도가 늘어났다.

결국 2016 시즌 후 강성우, 김용국과 함께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아 수석코치에서 물러났다.

이우선 코치의 인스타에 류중일 전 감독과 같이 찍힌 근황 사진이 올라왔다. 코멘트에 의하면 건강히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2017 시즌 한화 이글스2군 타격코치를 맡게 되었다.

한화에서의 평가는 굉장히 좋은 편.

먼저 웨이트 트레이닝을 대단히 강조한다는 점. 본인이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효과를 대단히 많이 보았기 때문인듯 하다. 전임 감독이었던 김성근 감독 체제에서는 웨이트 트레이닝 훈련도 물론 했지마는 사실 기술훈련쪽에서 비중을 많이 두고 훈련을 했다. 그러면서 기술 훈련 시간이 길어지고, 웨이트 훈련 시간이 부족했으며, 기술 훈련으로 몸이 지친 상태에서 웨이트를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웨이트 트레이닝이 체격과 파워를 증가시키고 부상을 방지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했으나 기술 훈련에 집중한 나머지 웨이트 부족이 줄부상을 불렀고, 결국 2017 시즌에만 DL 30회를 가는 결과와 엮어 많은 팬들이 이런 훈련법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하는 2군에서 이러한 훈련기조를 보이니 팬들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는 반응. 물론 훈련법 뿐만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2군에서 올라오는 타자 유망주들의 스윙이 매우 적극적으로 변했다는 것. 스윙에 자신감이 붙었다는 것이다. 일명 '자기스윙'을 하는 모습을 보고 팬들의 반응은 무조건 연장계약을 하자는 반응.

2017 시즌이 끝나고 LG 트윈스에 새로 부임한 류중일 감독을 따라 1군 타격코치로 이적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들이 많았으나 결국 한화 이글스에 잔류하면서 대다수의 한화팬들이 쾌재를 부르고 있다.

2018년 시즌 2군에서 콜업되어 올라오는 선수들이 대부분 맹활약 하면서 도대체 서산에서 어떤 마술을 부리는지 모두가 놀라워하고 있다. 특히 영원히 무쓸모로 남을 것이라고 비관했던 강경학이 무주공산이 된 2루수 자리에서 빛과 법전이 된 것을 보고 당장 1군 콜업 시켜야한다는 팬들의 원성섞인 청원이 빗발치고 있다. (투수들 역시 서산에 다녀오면 구속이 늘어난 상태로 올라와 정민태 2군 투수코치에도 찬사가 이어지는 중) 2군 코칭 스태프들이 한화 이글스의 상승세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한용덕 감독도 인터뷰에서 감사를 표했다.

4. 트리비아

  • 1993년 시절의 그 분과 2008 시즌의 모 투수와 닮았다.(사실 전준호도 모 탤런트와 닮았다고)
  • 뛰어난 성적을 올렸지만, 부상 때문에 한 포지션에서 오래도록 활약하지 못해 역대 포지션 레전드를 뽑으면 이래저래 밀린다. 2루수로서는 롯데의 박정태와 현역인 정근우에 밀리고, 1루수에는 은퇴한 전설의 레전드급 타자가 있다. 게다가 삼성만으로 한정해도 다르지 않은 것이, 1루수는 이승엽이 독보적이고 2루수 쪽은 김성래보다 강기웅의 인기가 더 높기 때문. 특히나 류중일-김성래의 키스톤보다 류중일-강기웅키스톤이 더 유명한 탓도 있다.[12]
  • 야구계의 소문난 주당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마리텔에서 허구연이 밝히기를, "술을 정말 좋아한다. 술만 줄였어도 성적이 훨씬 좋아졌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
  • 어울리진 않지만 옛 별명은 꺼벙이로 故 길창덕 화백의 만화의 꺼벙이에서 따왔다.
  • 다리가 길다고 한다.
  •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탓에 많은 당시 이웃 주민들이 의성 김씨 본관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다.[13]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4 삼성 라이온즈 39 59 .186 11 2 0 1 3 6 0 9 .271 .294
1985 103 300 .283 85 16 0 13 51 40 5 54 .467 .393
1986 102 344 .288 99 22
(3위)
1 8 48 47 3 41 .427 .362
1987 99 344 .332
(4위)
111 11 1 22
(1위)
70
(3위)
59
(2위)
2 48 .569
(2위)
.413
(3위)
1988 96 314 .350
(2위)
110 18 2 10 54 54 7 65 .516
(5위)
.459
(1위)
1989 39 77 .247 19 3 0 2 13 7 0 8 .364 .314
1990 54 141 .199 28 3 0 6 20 20 0 21 .348 .302
1991 30 51 .157 8 1 0 3 5 7 0 14 .353 .328
1992 86 226 .292 66 13 0 11 50 31 1 37 .496 .392
1993 124 436 .300
(5위)
131
(3위)
18 2 28
(1위)
91
(1위)
64
(4위)
2 74 .544
(2위)
.395
(3위)
1994 105 276 .246 68 10 1 14 43 39 3 70 .442 .395
1995 44 124 .258 32 4 0 3 17 13 0 17 .363 .345
1996 22 37 .162 6 2 0 1 3 5 0 5 .297 .262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7 쌍방울 레이더스 99 266 .256 68 14 0 9 45 27 0 42 .410 .348
1998 93 238 .231 55 14 3 5 26 21 0 30 .378 .314
1999 113 346 .272 94 19 0 9 48 43 1 51 .405 .363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0 SK 와이번스 29 64 .266 17 0 0 2 8 7 0 11 .359 .373
KBO 통산
(17시즌)
1277 3633 .277 1008 170 10 147 595 490 24 597 .451 .376


[1] 40세손 'O來' 항렬, 7상 연하의 김경기 전 야구선수의 손자뻘이다...[2] 고향은 의성군이고, 학창 시절은 대구에서 보냈다. 일명 의성래[3] 쌍방울 시절에는 3루수를 본 적도 있다.[4] 그래도 간혹 가다가 필요시 유격수 수비를 보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1986년 한국시리즈에서 유격수로 출장한 적이 있었다.[5] 2루수 홈런왕은 장종훈의 유격수 홈런왕 기록과 함께 엄청난 기록이라 볼 수 있다. 2루수/유격수 홈런왕은 2018년 현재까지도 김성래와 장종훈이 유일하다.[6] 다만 이 시기 롯데는 비록 팀 홈런수은 적었으나 남두오성의 활약과 함께 0.289의 팀 타율을 가진 소총타선으로 명망이 높았다. 직전시즌인 1992시즌엔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을 정도였고... 이 기록은 극도의 타고투저 현상이 일어난 2014년 이전까지 역대 3번째로 높은 팀 타율이었다. 1위는 87년 삼성의 0.300, 2위는 99년 롯데의 0.291[7]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홈런왕의 홈런 개수와 팀홈런 꼴지의 개수 차이가 1자리 수인 경우가 딱 두 번 있었는데 두 번 다 홈런왕은 김성래였다.[8] 1993년 7월 30일에 1-0으로 뒤지고 있던 경기에서 터진 정영규와의 연속타자 홈런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9] 물론 진짜 최고령 선수는 삼성 외야수(?)였던 훌리오 프랑코였지만, 이 사람은 KBO 등록상 1961년생이었다. 실제로는 1956년생이라는 말도 있고 호적상으로는 1958년생이다.[10] 심지어 응원가마저 김성래의 것을 물려받았다.[11] 2루수 역시 유격수처럼 수비부담이 큰 편이라 거포가 들어가는 일은 드물다.[12] 개개의 성적이 아닌 두 선수를 하나의 콤비으로 봤을 때는 KBO 리그 전체로 따져도 류중일-강기웅을 능가하는 키스톤 콤비가 없다. 이것은 타 팀 팬들도 인정하는 부분. 그나마 박진만-박종호 키스톤이 이 콤비에 맞설 만하다는 의견도 많지만, 그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 역시 강기웅-류중일보다 한 수 아래라는 건 인정하는 분위기다.[13] 무려 의성 김씨 항렬 37세손에 'O來' 항렬' 존재되기 때문에 흔히 오해받거나 혼돈되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