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2 18:47:09

남두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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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멤버3. 남두오성의 향수4. 1992년 V2 이후5.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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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남두오성.png

1992년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 주역으로 꼽히는 5명의 3할 타자 전준호, 이종운, 박정태, 김민호, 김응국을 합쳐 부른 별명이다.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북두칠성에서 약간 변형된 것이다.[1]

우투우타인 박정태 1명을 뺀 나머지 4명이 좌투좌타였고, 모두 장타력 중심의 거포보다는 중/단거리형 교타자라는 점에서 NPB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1990년대 중후반 기관총 타선에 비견할만한 라인업이다.[2]

2. 멤버

2.1. 전준호

120경기 출장 / 타율 .300 / 140안타(3위) / 5홈런 / 49타점 / 90득점(5위) / 33도루(3위)
리드오프였던 전준호는 3할 타율과 33도루를 기록하며 1번 타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나 데뷔 시즌인 1991년에 보여줬던 가능성을 프로 2년째에 들어 더욱 발전시켰다. 단순 방망이로만 따지면 롯데 시절 중 95년을 제외하고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한 해였으며, 시즌 5홈런은 그의 통산 19시즌 중 가장 많이 홈런을 때린 해이다.

스탯을 좀 더 깊게 파보면 생각 이상으로 굉장히 훌륭한 타자였는데, 볼넷/삼진이 51개/49개에 출루율도 0.376이라 지금 기준으로 봐도 발빠르고 출루율 높은 굉장히 이상적인 리드오프였고, 중견수임에도 wRC+가 113.8로 공수주가 다 되는 가치있는 중견수였다. [3] 특히 33도루 6실패로 무려 84.6%에 달하는 성공률을 자랑하는 엄청난 주자이기도 했다.

2.2. 이종운

108경기 출장 / 타율 .314 / 126안타 / 3홈런 / 57타점 / 66득점 / 21도루
이종운은 .314의 타율과 14개의 3루타[4]로 '쳤다 하면 3루타' 라는 별명까지 만들어낸다. 시즌 21도루를 기록할 정도로 발도 상당히 빨랐고[5] 작전 수행 능력도 최고 수준이었다.

2.3. 박정태

124경기 출장 / 타율 .335(2위) / 149안타(2위) / 14홈런 / 79타점(5위) / 91득점(4위) / 7도루
탱크 박정태는 데뷔 2년차인 92년에 .335에 14홈런, 그리고 43개의 2루타를 쳐내며[6] 주루는 부족했으나 남두오성 중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자랑했다. [7] 시즌 OPS가 0.963에 wRC+는 무려 160.2로, 센터라인임을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공격력이며, 2023년 현재까지도 단일시즌 2루수 중에 박정태보다 wRC+기준 더 강력한 공격력을 자랑했던 선수는 87~88년의 김성래와 92년의 홍현우밖에 없다. 92년의 박정태가 얼마나 KBO 역사에 남을 시즌을 보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2.4. 김민호

118경기 출장 / 타율 .322(4위) / 133안타 / 16홈런 / 88타점(4위) / 69득점 / 5도루
자갈치 김민호는 타율 .322 16홈런, 28개의 2루타(2위)에 88타점을 기록하며 4번 타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으며, 92년 OPS 0.944와 wRC+ 155.3을 기록하며 리그 한 손가락에 꼽히는 성적으로 박정태와 함께 강력한 중심타선을 구축했다. 특히나 결정적인 상황에서 한방을 터트리는 능력이 굉장했는데, 해태 타이거즈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1회초 상대선발 문희수로부터 기록한 3점짜리 결승 선제홈런, 빙그레 이글스와의 한국시리즈 1차전 1회에 기선을 제압했던 선제 2타점 적시타등 을 보면 그의 클러치 능력을 알 수 있었다.

2.5. 김응국

119경기 출장 / 타율 .319 / 128안타 / 10홈런 / 79타점(5위) / 76득점 / 29도루(4위)
호랑나비 김응국은 뛰어난 타격능력을 바탕으로 2년연속 3할 타율과 프로 첫 두자리 수 홈런[8], 12개의 3루타(2위)를 기록하고 29도루를 기록한 빠른 발[9]까지 갖추었으며, 수비능력도 굉장히 안정적인 만능 선수였다.

3. 남두오성의 향수

아직도 많은 부산 갈매기들은 남두오성을 그리워하고 있다. 2010 시즌에는 1992년의 막강타선을 훨씬 뛰어넘는 제2의 불꽃타선(팀타율 0.288 팀 홈런 185개)을 불(火)펜 때문에 망했다.[10] 반대로 2012 시즌에서는 불펜이 진짜 제대로 완성이 되었는데 타선이 리그 최약체 수준으로 망가지면서 투타의 밸런스가 역으로 망해버렸다.

4. 1992년 V2 이후

롯데 타선의 중심으로서 팀의 2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지만 의외로 선수들의 말년은 좋지 않았다.

5명 중 가장 선배인 김민호는 그럭저럭 순탄하게 선수 생활을 마쳤지만 지도자 생활 중 평가가 나쁜 케이스다. 김민호는 1995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선수단 정리 과정에서 전력외로 분류됐고 1996년 시즌이 끝난 뒤 남두오성 멤버 중 가장 먼저 은퇴했다. 물론 1996년 말 당시로서는 김민호의 나이(세는나이 36세)가 은퇴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노장의 수준이기는 했다.[11] 같은 해 은퇴를 결정한 한영준과 함께 롯데 유니폼을 입고 사상 첫 은퇴 경기를 치렀고[12] 동의대 감독을 맡았다. 2004년 롯데 감독이 된 고교 1년 선배 양상문의 부름을 받아[13] 2군 타격코치를 맡았으나 2006년 강병철 감독이 부임하면서 롯데를 떠나게 됐다. 이후 모교인 부산고 감독을 맡았고[14] 다시 친정팀 롯데로 돌아와 2군 타격코치와 1군 수석코치를 역임했으나 남두오성 동료였던 이종운 감독과 함께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하며 2016년 시즌 후 롯데를 또다시 떠났다. 이후에는 옆동네 연고팀 NC 다이노스에서 타격코치를 역임하였다.

김응국은 2003년 은퇴할 때만 해도 롯데 프랜차이즈 야수진의 통산 기록 항목에서 상위권을 여럿 점유할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15] 은퇴 직후에는 롯데 1군 타격코치를 맡았다가 현대 유니콘스우리 히어로즈의 타격코치를 역임했고 잠시 프로를 떠나 부산고김해고에서 지도자 활동을 했다. 2013년 다시 롯데로 돌아왔고 특히 2015년에는 3루 코처스 박스에 서는 주루코치 역할을 했다가 뇌주루 때문에 욕을 왕창 얻어먹었고 그 시즌이 끝나자 이종운과 함께 롯데를 떠나게 됐다. 그 후 한화 이글스에서 2년간 타격코치로 일했다가 물러났고 최근엔 부경고 코치로 2년간 활동을 하였다.

남두오성 중에서 가장 존재감이 부족했던 이종운은 1997 시즌을 마치고 한화 이글스트레이드되어 쓸쓸히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16] 이후 경남고에서 무려 10년간 감독을 맡으며 아마야구계에서는 꽤 인정 받는 지도자가 됐다. 2014년 롯데의 부름을 받아 코치로 활동했고 이듬해인 2015년 롯데 감독이 됐다. 다른 남두오성 멤버들에 비해 활약상이 미미했고 그의 활약을 기억하고 있는 팬들도 시대의 흐름으로 인해 적어진 탓에 부임 당시부터 여러 의문에 시달렸다. 결국 '제2의 백골프'라는 악평만 들었고 한 시즌 만에 경질되고 말았다. 롯데에서 쫓겨난 후에는 SK 와이번스 2군 감독이 됐는데 육성에 대해서는 성과가 있는 편이라 롯데 감독 시절의 악평이 다소 희석된 편이다. 그래서인지 다시금 2023 시즌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시즌 중반 래리 서튼감독이 사퇴하자 감독대행을 하였다. 2024년에는 LG 트윈스 총괄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동기인 박정태전준호는 현역 말년이 다소 쓸쓸했다. 박정태는 롯데 타자 중에서 가장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던 슈퍼스타였지만 2004년 젊은 선수 위주의 리빌딩을 선언한 양상문 감독의 선수단 운영 방침 탓에 쓸쓸히 은퇴를 선택해야 했다.[17] 그래도 롯데 구단의 지원으로 해외 지도자 연수도 받았고 부산 팬들 앞에서 나름 화려한 은퇴식까지 치렀다. 2006년부터 롯데 타격코치를 맡았고 2010년부터 2년간 롯데 2군 감독을 맡았으며 2012년에는 롯데 1군 타격코치로 팀 타격 지도를 총괄했다. 그러나 팀의 타격 성적이 폭망하면서 박정태에 대한 평가도 엄청 나빠졌다. 아울러 최근에는 술에 취한 채로 버스에 올라타 난동을 부린 탓에 선수 시절 쌓아올린 명성에 상당한 상처가 가해졌다.

전준호는 남두오성의 선봉장이자 리드오프로서 1993년과 1995년 도루왕을 차지하며 맹활약했지만 롯데에서의 선수 생활이 길지 못했다. 1997년 초 갑작스럽게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됐고, 이후 현대가 달성한 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1998년, 2000년, 2003년, 2004년)에 혁혁한 공적을 세우면서 현대 왕조의 굳건한 일원으로 활약했다. 때문에 롯데 시절 활약상을 잘 모르는 젊은 팬들은 전준호가 현대-히어로즈에서만 활동한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18] 통산 549개의 도루로 개인 통산 도루 1위를 세운 대선수였지만, 2009년 시즌 후 선수단 정리 과정에서 방출됐다. 히어로즈 구단에 돈이 없었다는 이유로 고액 연봉 선수들을 잇달아 쳐냈는데 이 과정에서 전준호가 내쳐졌다. 결국 구단 차원의 은퇴식도 없었고 팬들이 직접 은퇴식을 열어준 최초의 선수로 기록됐다. 이후에는 친정팀 롯데가 아닌 고향팀 NC 다이노스 코치가 됐는데 지도자로서 악평을 받았던 남두오성의 다른 멤버들과는 다르게 지도자로서의 평가가 매우 좋은 편이다. 그리고 전 코치는 2021 시즌을 마친 후 NC 코치직을 내려놓고 친정팀인 롯데 코치로 24년만에 복귀를 하게된다.

5. 이모저모

  • 온라인 야구게임 마구마구에서 92년 롯데덱은 우승덱과 더불어 기본 컨택을 10개나 주는 타선으로 대부분의 타자들이 컨택 최상을 찍어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재평가와 새로운 패치로 이제는 인기가 별로 없다. 그래도 좋은 팀 보너스 때문에 간혹 보이기는 한다. 2010년 롯데 자이언츠의 팀 타율은 정확히 1992년과 똑같고 홈런수는 3배나 차이가 났지만 파워가 2개밖에 차이가 안 나는 반면 기본 컨택이 3개만 주어지는 상황이 벌어져 유저들의 불만을 샀다. 재평가된 이후 이러한 불만은 사그러들었다.[19]
  • 5명 모두 1992년 우승을 이끈 스타 플레이어긴 했지만 코치로서의 평가는 모두 좋지 못했다. 박정태는 팀 타격을 박살을 내놨고, 김응국과 김민호는 없으니만 못한 수준이었으며, 전준호는 그나마 다른 넷보다는 나았지만 느림보가 많은 롯데에서 자기 기준으로 주루를 판단하는 실책을 자주 저질러 2년만에 계약해지를 당했고, 이종운은 2002년 백인천과 동급이라는 악평 속에서 2번이나 쫓겨났다.

[1] 롯데가 남쪽 부산 연고인 것을 빗대어 북쪽이 남쪽으로, 5명이어서 칠성은 오성으로 각각 바뀌었다. 남두육성을 유래로 둘 수도 있지만, 북두칠성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2] 이 때의 요코하마 타선은 특별히 거포라고 할 만한 선수는 없어서 단타, 2루타 위주로 득점을 내기는 했지만 타선이 마치 기관총을 난사하듯, 1번부터 8번까지 쉴틈없는 연타로 상대팀 마운드를 KO시키는 게 주특기였다.[3] 다만 1992년은 이상하게 중견수들이 미쳐 날뛰던 시즌이라, 수비부담이 큰 센터라인임에도 리그 wRC+ 10위안에 중견수가 무려 3명이나 있었으며, 이정훈(1963)이순철, 동봉철이 그 주인공이다. 앞의 세명이 너무 완벽해서 그렇지 92년의 전준호 정도 스탯이면 2023년 기준으로도 한 팀의 주전 중견수로 절대 손색이 없다.[4]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한시즌 최다 3루타 기록이었으나, 2014년 서건창이 17개의 3루타를 쳐내며 기록을 경신했다.[5] 21도루 8실패로 성공률은 72% 언저리로, 지금 기준에서도 준수하다.[6] 이 기록도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한시즌 최다 2루타였으나, 2016 시즌 최형우가 46개로 경신했고, 2018 시즌 호잉이 47개로 재경신하였지만 2020 시즌 이정후가 49개로 다시 경신하였다.[7] 하지만 당시 롯데의 팀홈런은 68개로 최하위였다.[8] 이후 은퇴할때까지 두자리수 홈런을 친 해가 없다.[9] 29도루 8실패로, 성공률이 78%에 달해 아주 훌륭한 주자였다[10] 1992년의 남두오성에서 가장 부족했던 건 장타력이었는데 2010년의 이대호, 홍성흔, 가르시아, 강민호가 1992년의 부족함을 몇 배 이상으로 채워넣었다. 다만 장타력이 채워진 것과 반대로 기동력은 크게 줄어들었는데 이는 2010년대 들어오면서 야구 내에서 도루의 필요성이 크게 줄어든 것도 있었다. 물론 65도루의 김주찬이 있었지만 이 분은 출루율이 리그 꼴찌였다.[11] 1990년대 후반까지는 고작 33세가 넘어가도 '노장' 수식어를 붙이던 시절이었다. 선수들의 영양 관리나 운동 시스템이 달라지면서 요즘은 30대 중반이면 '고참'이라고 부르며, 30대 후반이나 40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노장' 소리를 듣는다.[12] 2020년까지 롯데의 40년 역사를 통틀어도 롯데 구단 주최의 은퇴 경기를 치른 선수는 김민호와 한영준 뿐이다.[13] 양상문과 김민호 모두 1961년생이지만 음력 3월생인 양상문이 1년 먼저 학교를 들어가서 선배가 됐다.[14] 다만 부산고 감독 시절에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2010년 청룡기 4강에 진출한 것이 전국대회 상위권 성적의 전부였다. 더구나 특출난 선수들도 키워내지 못했는데 이민호정현, 송주은 정도만이 김민호의 부산고 감독 재임 당시 각광을 받았던 부산고 선수의 전부다.[15] 과거에는 통산 출장경기, 최다안타, 타석, 득점, 볼넷 등 여러 항목에서 롯데 타자 1위 기록을 갖고 있었으나 조선의 4번타자근성의 오빠가 훗날 등장하면서 1위 기록을 내주게 된다. 그래도 통산 61개의 3루타 기록은 지금도 김응국이 팀내 최고 기록을 유지하는 중이다.[16] 훗날 롯데의 타격코치로 한화의 레전드인 장종훈이 뜬금없이 부임하게 되는데 이종운이 한화로 이적한 후 친해진 후배라서 데려왔다고 했다.[17] 2004년 은퇴를 선언한 LG 내야수 류지현이 은퇴식에서 예고 없이 박정태에게 다가와 꽃다발을 건네며 포옹을 했는데 그 후 박정태가 눈물을 펑펑 흘렸다. 류지현처럼 본인도 선수단에서 외곽으로 밀려난 처지였기에 머지않은 앞날을 전망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18] 선수로서 뛴 2,091경기 중 70%에 육박하는 1,423경기를 현대와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19] 2010년 롯데 자이언츠는 홍대갈타선이라 불리는 홍성흔, 이대호, 가르시아의 중심타선과 조성환, 강민호, 손아섭, 전준우 등의 강타선을 지녔지만 열악한 마운드 사정으로 정규시즌을 4위로 마친데 이어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베어스에게 2승3패로 탈락하여 마구마구의 포스트시즌 덱 보너스를 1밖에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