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02 17:49:30

벌떼야구


1. 개요2. 멤버3. 기록
3.1. 2007년3.2. 2008년3.3. 2009년3.4. 2010년3.5. 2011년3.6. 2012년3.7. 2013년 이후

1. 개요

2007년~2012년동안의 SK 와이번스 왕조시절의 역대급 계투진. 필승조 5명이 모인 안정권KO와는 달리 이쪽은 승리조, 추격조, 셋업맨, 마무리, 스윙맨 등등을 모두 합쳐 부른다. 선발까지 빼서 불펜에 꽂아넣던 김성근식 운용때문에 승리조와 추격조의 경계가 애매모호했기 때문.

사실, 김성근은 감독 커리어 내내 단 한번도 선발 로테이션,승리조-추격조 구분같은 보직 고정 운영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가 거친 모든 팀이 벌떼야구를 했지만, 그나마 그중에서도 제일 성과가 있었던 팀이 SK 와이번스였기 때문에 SK 와이번스의 멤버들을 우선적으로 넣는다.

2. 멤버

2007년 나와서 잘 던져준 가득염, 선발과 계투를 가리지 않는 스윙맨 고효준, 두 명의 승호, 3년간 5000구 가까이 던진 전병두, 고무팔 정우람, 우투수 스윙맨 채병용, 왕조시절 계투로 전향한 김원형, 정대현과 함께 옆구리 투수인 조웅천, 송은범, 강력한 속구와 슬라이더의 윤길현, 그리고 국내 최고의 싱커볼러 투수 정대현과 왕조시절의 끝자락인 2011년, 2012년에 나타난 박희수, 박정배 등이 있다. 보통은 정대현이 마무리 투수로 나오기 때문에 정대현은 벌들의 대장인 여왕벌로 불린다. 박희수와 박정배는 벌떼야구라는 명칭을 만들어낸 김성근의 손을 탄 선수들이 아니어서 이 명단에서 빠지기도 한다.

3. 기록

3.1. 2007년

채병용마이크 로마노, 송은범은 선발과 계투를 오가며 던지고 각각의 자리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윤길현은 데뷔 이후 최고의 시즌을 맞았다. 조웅천도 2003년 이후 부활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정대현의 포텐이 가장 컸다. 2007년에 정대현이 기록한 0점대 방어율-25세이브는 현재까지도 선동열, 오승환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대기록이다. 그 외에도 작은 이승호, 가득염, 정우람, 김원형등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SK의 첫 우승을 만들어냈다.

3.2. 2008년

계투진의 한 축인 가득염이 2007년의 회광반조를 끝으로 완전히 노쇠화했고, 선발과 불펜을 오가던 마이크 로마노와의 재계약 결렬되었다. 정대현은 한창 좋았던 2007년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리그 최상급 계투임을 보여주었다. 정우람은 2007년에 조금 던지고 2008년에 빡세게 던졌다. 그 외에 송은범과 부상에서 돌아온 이승호가 최상급은 아니지만 팀 계투의 일부분을 담당해 주었고, 김원형, 조웅천 등이 은퇴할 나이가 가까워지는데도 잘 던져주어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채병용은 이때부터 계투진으로 넘어가는 빈도가 늘어났다.

3.3. 2009년

한 명에게 너무 집중된 불펜

시즌 전, 김성근 감독은 정대현의 세이브왕을 예상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귀신같이 정대현은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 중반까지 나오지 못했다. 조웅천은 은퇴했고 송은범채병용은 선발진에 고정배치되고, 정우람은 이닝관리를 받아 2008년만큼 자주 나오진 않았다. 결국 선수들이 계투진을 거의 맡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커리어 하이가 유력해 보였던 1선발 김광현이 타구에 손을 맞는 부상으로 빠지고, 토종 2선발 역할을 기대했던 채병용이 혹사후유증으로 부진하며 고효준과 전병두가 땜빵 선발까지 맡아야 했다. 다행히도 이승호가 정대현을 대신해 마무리 역할을 잘 해줬고 시즌 중반 복귀한 정대현이 계투와 마무리를 오가며 1점대 방어율을 찍고, 중간에 영입된 외인투수 게리 글로버가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스윙맨 역할을 해줘서 그들의 부담감은 조금이나마 덜해졌다. 그래도 스윙맨이 모두 규정이닝을 채우고 한 투수는 계투로 대부분을 나왔음에도 133.1이닝[1]에 탈삼진 2위를 거두는 괴악한 성적을 내었다. 그리고 이것이 그 투수너무 아픈 결말을 짓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채병용은 다시 계투로 돌아가 한국시리즈까지 한몸 불태우다, 결국 무너졌고 시즌 종료후 공익으로 복무를 시작했다. 이 해에 혹사당한 3명. 전병두, 채병용, 고효준은 SK구단에서 김성근 혹사의 가장 큰 피해자들로 거론된다.

3.4. 2010년

부활한 벌떼야구!!!

시즌 시작 전, 계투진의 두 기둥이었던 윤길현채병용이 동반 군입대 했고, 정대현은 무릎 수술로 5월에 복귀했고, 김원형은 왼쪽 팔꿈치 수술로 8월이 되어서야 복귀했으며 그나마 노쇠화가 완연해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 게다가 김광현의 복귀도 불투명한 상황이라 작년처럼 계투들이 선발을 왔다갔다하는 불상사가 우려되기도 했다. 그러나 시즌이 시작된 다음의 SK는 달랐다. 정우람이 100이닝을 던지는 개같은 혹사를 당했고, 송은범도 계투로 자주 불려와 준수한 폼을 보여주었다[2]. 특히, 2010년 송은범이 계투로 나온 32이닝동안 자책점은 0점이다! 작은 이승호도 방어율은 3.65로 탑급은 아니지만, 20세이브를 기록하며 팀의 마무리 역할을 잘 해주었다. 그 외에도 전병두와 고효준은 작년만큼은 아니지만 여잔히 자기의 역할을 충실히 해 주었고, 5월 이후 정대현이 복귀해 팀의 계투진의 마지막 퍼즐을 맞춰 주었고, 팀은 우승을 거둔다. 시즌 종료 후, 송은범이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혜택을 받아냈는데 여기까지가 송은범의 리즈 시절 이었다.

3.5. 2011년

새로운 인재의 발견! 정우람의 커리어 하이!

오랫만에 계투진만을 따지면 작년에 비해 큰 전력 이탈이 생기지 않았다. 기껏해야 플레잉 코치로 전업했다 9월에 은퇴한 김원형정도. 정대현도 이 해에는 부상 없이 시즌을 시작했다. 전해 100이닝을 던진 정우람은 역대급 내구성답게 94.1이닝을 던지며 좌완 계투중엔 리그 최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2년연속 혹사를 당한 전병두고효준은 이해까진 어찌어찌 버텨줘서 선발과 계투를 넘나들며 각각 90이닝, 100이닝을 넘게 던졌다. 노리타들과 구분이 되지 않았던 당시 SK팬들이야 부진하다고 툴툴거렸지만 이 둘이 3년간 당한 혹사는 리그 정상급 피네스 피처도 제구막장으로 만들어 버릴 만큼 살인적이었다. FA 예비 시즌을 맞은 정대현과 김성근이 나가면서 비로소 기회를 얻은 박희수까지 더해지며 삼성의 안정권KO와 함께 리그 최강의 불펜진을 보유하게 되었다. 작은 이승호도 자기의 역할만큼은 해 주었다. 거기에 7년만에 부활한 엄정욱은 덤. 참고로 이승호와 전병두는 그 이후로 4년동안 SK에서 더이상 던지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3] 참고로 2011년 SK의 계투엔 방어율 0점대 투수가 3이나 있었다.

3.6. 2012년

SK 와이번스 왕조의 마지막 년도
를 떼고도 꾸준히 발견되는 계투들 덕분에 계투의 힘으로 준우승까지 만든 년도

시즌 전, FA 신청을 한 계투가 둘 다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며 계투진에 큰 구멍이 생겼다. 한 선수는 자기 특유의 정통 언더핸드 폼으로 MLB 진출을 노렸고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입단 절차를 밟았지만, 메디컬 테스트에서 간 수치가 너무 높게 나와서 국내로 유턴 후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그러나 두 명이 빠졌지만 두 명이 다시 돌아왔다. 2010년 동반 군입대를 한 윤길현채병용이 돌아왔다. 하지만 왕조시절 매년 자기의 몫은 확실히 다했던 작은 이승호와 계투진 중에서도 마무리였던 정대현이 빠진 것의 공백이 너무 큰 것은 걱정되는 부분. 윤길현채병용이 아무리 든든하다 해도 2년간의 공백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경기력이 의심되기도 한다. 거기다 전병두고효준도 계속된 혹사로 인한 수술로 빠지게 되며 벌떼야구도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시즌 시작 후 작년 1년만 반짝할 것 같았던 한 파이어볼러방출된 후 영입한 한 포크볼러가 각각 56이닝 방어율 3.2, 74이닝 3.14가 갑자기 포텐셜이 폭발하며 벌떼야구가 이어질 수 있게 되었다. 거기에 작년에 발견된 악마의 투심을 던지는 선수가 34홀드[4]에 1점대 초반 방어율, 82이닝을 던지며 리그 최강의 불펜임을 스스로 입증했고 군입대를 앞둔 한 투수도 30세이브-2.2의 방어율로 정대현이 빠진 마무리 자리를 잘 매꿔주며 벌떼야구를 이어갈 수 있었다. 반면 군에서 복귀한 투수는 아직 경기력을 찾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며 아쉬움울 남겼다.

3.7. 2013년 이후

  • 정우람 : 2012년 이후 군대를 갔다가 2015년 복귀 후 FA로 한화로 떠났다. 과거같은 특급 계투는 아니나 큰 후유증 없이 완만한 노쇠화를 보여주며 양질의 마무리로 활약중.
  • 박희수 : 2013년, 2012년만큼은 아니지만 리그 정상급 계투임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2014년, 2015년엔 2012년 82이닝이 무리였는지 통증을 호소하며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다 2016년 부활했으나 17년엔 다시 폭망.
  • 박정배 : 2013년 이 부진이나 이적으로 빠진 계투진에서 박희수와 함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이쪽도 2012년의 74이닝이 문제가 되었는지 2014, 2015년엔 수술 등으로 빠진다. 복귀한 2015년 후반부터 2016년까지는 영 감을 못 잡다가 2017년 전성기급은 아니지만 SK 불펜 중에선 가장 양호한 폼을 보여줬다. 18시즌 잠시 마무리를 맡았으나 결정적 순간 피홈런을 맞는 등 부진하여 다시 추격조로 강등.
  • 윤길현 : 2013년에는 여전히 경기력을 찾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4년 마무리 투수로 보직을 바꾸어 제법 쏠쏠한 활약을 했다. 2015년 마무리-셋업맨으로 뛰다가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그러나... 팬과의 문제를 일으킨 것도 모자라 16, 17시즌 모조리 부진하면서 먹튀가 되었다. 18시즌 역시 썩 좋지 못한 듯.
  • 채병용 : 윤길현처럼 2013년엔 아직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2014년에도 서건창의 200안타, 강정호의 유격수 최초 40홈런 등의 기록을 세워주고 투수 피홈런왕이 되었다. 2015년에도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2년연속 투수 홈런왕을 세우고 최근에 못한게 있어서인지 비교적 싼 값에 FA로 잔류하였다. 2016년엔 조금씩 비중을 늘린 너클볼과 함께 완벽히 부활하며 FA 계약이 혜자계약이 되었다. 17년엔 폭망하면서 솩갤에서 돈값 끝!이라고 되었다.
  • 엄정욱 : 2011년, 2012년 2년간 2004년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2013년 부상으로 인한 이탈, 2014년엔 원래대로 돌아갔다가 결국 은퇴하였다.
  • 송은범 : 2012년까지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잘 던졌지만 2013년에 갑작스런 트레이드로 인해 KIA로 갔다. 그러나 KIA에서 2년간 7점대 방어율로 불을 지르며 4년 34억 FA로 한화로 갔고, 한화에서도 선발, 계투 보직에 상관없이 못하고 있다...가 18시즌 정민태와 송진우 코치의 권유로 투심을 장착하고 투구 폼을 고친 뒤 어느 정도는 돈값을 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만큼 굴려지고 있다
  • 고효준 : 2009~2010년의 혹사의 여파인지 2011년 한국시리즈 종료 후 팔꿈치 수술을 하였고 2012년 초에 입대하였다. 팔꿈치 때문에 사회복무요원으로 2년 후인 4월 말에 제대, 2014년 5월 23일 오랫만에 1군에서 던졌다. 그러나결국 2016년 시즌 중반에 KIA로 트레이드되었다. 16시즌에는 접전상황에선 아예 기용할 생각을 못하는, 믿을 수 없는 계투였으나 17시즌에는 롱리리프로 궂은 일을 도맡아 해며 제법 쏠쏠하게 공헌했다. 18시즌을 앞두고 데뷔구단 롯데로 이적.
  • 전병두 : 혹사가 너무 컸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부상과 재활 등으로 빠져 있다가[5] 2016년 초반 5년만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복귀의 조짐을 보여주었지만 결국 은퇴를 선언,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1번타자만을 상대해 5구만에 아웃을 잡고 교체된 후 은퇴하였다. 은퇴 직전에 투구할 땐 혹사 때문에 팔도 엄청 내려갔고 구속도 훨씬 줄었으며, 그 공을 던지는 것마저 정말 힘들게 던지는 듯했다.

[1] 당시 규정이닝[2] 32이닝 2승 4홀드 8세이브 자책점 0점[3] 5년 후인 2016년에도 전병두는 시즌 마지막 경기에 0.1이닝밖에, 이승호는 1년간 1군에 콜업조차 되지 않다가 전병두와 마찬가지로 시즌 마지막 경기에 1군에 콜업되었지만 등판하지 못하고 둘 다 은퇴하였다.[4] 2014년까지 단일시즌 최다홀드 기록이었다.[5] 전병두는 1984년 생으로 2012~2016년이 투수 인생의 전성기인 만 28~32세 때다. 즉, 투수 인생의 황금기를 한 감독때문에 날려버렸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