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01 22:42:32

최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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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시즌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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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성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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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43번
조성환(1999) 최대성(2004~2005) 김일엽(2008)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48번
이정동(2004~2005) 최대성(2006) 허준혁(2007)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1번
이정민(2005~2006) 최대성(2007~2008) 이정민(2009~2011)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59번
박세진 최대성(2009) 박시영(2009~2011)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0번
이정동(2010~2011) 최대성(2012~2015) 조현우(2015~2016)
KT 위즈 등번호 21번
박세웅(2015~2015) 최대성(2015) 이상화(2016~)
KT 위즈 등번호 11번
안승한(2014~2015) 최대성(2016~2017) 홍성용(2018)
두산 베어스 등번호 30번
고봉재(2016~2017) 최대성(2018~)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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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최대성능_두산.jpg
두산 베어스 No.30
최대성(崔大成 / Dae-sung Choi)
생년월일 1985년 5월 17일 ([age(1985-05-17)]세)[1]
출신지 부산광역시 영도구
학력 동삼초 - 부산중 - 부산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4년 2차 지명 2라운드 전체 9번(롯데)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2004~2015)
kt wiz (2015~2017)
두산 베어스 (2018~)
종교 개신교[2]
등장곡 BOBBY - 연결고리[3]

1. 소개2. 선수 경력
2.1. 롯데 자이언츠 시절
2.1.1. 데뷔 후 ~ 2011 시즌2.1.2. 2012 시즌
2.1.2.1. 문제점
2.1.3. 2013 시즌2.1.4. 2014 시즌
2.2. kt wiz 시절
2.2.1. 2016 시즌2.2.2. 2017 시즌
2.3. 두산 베어스 시절
2.3.1. 2018 시즌: 선수생활 최저 WAR을 기록한 시즌2.3.2. 2019 시즌
3. 플레이 스타일4. 기타5. 역대 성적6. 둘러보기

1. 소개

두산 베어스 소속의 야구선수. 2000년대의 롯데 자이언츠 투수진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우완 파이어볼러로, 많은 롯데 팬들에게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두산팬들에게는 그런 거 없고 분노의 대상. 2017년 11월 22일에 열린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였다.

2. 선수 경력

2.1. 롯데 자이언츠 시절

2.1.1. 데뷔 후 ~ 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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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시절.

부산고 야구부 시절 포수 출신이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내막은 좀 복잡하다. 원래 부산중 시절 에이스 투수였다고 한다. 그런데 부산고에 입학하자 동기 중 대동중 출신의 장원준이 두각을 나타내 에이스가 되었다. 게다가 나도는 이야기에 따르면 부산고 감독 조성옥에게 찍혔다고 한다. 정확한 내막은 알길이 없으나 부산고에 입학한 후 포수로 포변하여 고2 때까지 포수로 뛰었다. 그러다가 고3 때 다시 투수로 포변했다. 3학년 때 54 1/3이닝을 던져 1년 후배 이왕기(59 1/3이닝)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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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인 최고 구속 159Km/h를 찍었을 정도로 빠른 구속[5]을 지녔으나 컨트롤이 미칠듯이 안 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또한 구속에 비해서 공이 좀 가볍다는 평가도 받고 있어서, 이를 일컫어 '최대성의 홈송구'라고 놀리기도 한다. 김인식은 그 점을 이용해 '최대성은 안 휘두르고 가만히 있으면 볼넷이다' 라며 까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 경기에서 증명해버렸다.[6]

파일:attachment/choidsgr123.jpg
최대성의 공략법.jpg[7]

2005년까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신인이었다. 그런데 이 시즌이 종료될 무렵 당시 현대 유니콘스김재박 감독은 35홈런 102타점을 찍은 A급 타자 용병 래리 서튼의 주가가 정점을 찍었을 때 트레이드 카드로 쓸 생각이었는데,[8] 이때 트레이드 카드로 부상한 선수가 최대성이었다. 당시 롯데는 투수 쪽은 그리 안 급해 보이지만 타격이 아쉽다는 여론이 팽배했던 상황이기에 누가 들으면 이 때 롯데 투수력이 좋은 줄 알겠다. 그래도 손민한이 있었기에 이 트레이드는 거의 성사 직전이었다고. 그러나 최대성이 야구월드컵에 출전하여 강속구를 뿌려대며 큰 가능성을 보이는 통에 롯데는 마음을 바꿔서 없던 일이 되었다.[9]

허나 2006년에도 별 성장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신통찮은 성적으로 까이면서 롯데 방화 3인조의 이름을 이어 이왕기름넣을거 최대성능으로 가득염의 일원이 되어 폭풍까임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다 드디어 2007년에 들어 반짝 활약을 펼치며 '최대성능을 이끌어냈다'라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정말 '반짝'이었다는 게 좀 문제.

2007년 잠깐 잘 나가던 시절 한화와의 대결에서 구대성[10]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신, 구대성이라 불리며 은근히 대결 구도를 이끌어가는 듯 했으나 실력차가 너무 나기에 흐지부지됐다. 이후 특유의 뻣뻣한 신체탓으로 결국 토미 존 수술을 받았으며 결국 2009년에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다.

유연성이 부족하니 러닝과 스트레칭을 달고 살아야 했는데 구속에 눈이 멀어 자기 관리를 게을리했고, 그 체질에 전혀 맞지 않는 딱딱 끊어 던지는 투구폼도 치명타였다.

백인천노승욱을 부숴버리고[11] 양상문[12]임경완의 허리를 부러뜨리고[13] 미국에서 돌아온 송승준은 동계 훈련도 제대로 치르지 못해 몸이 만들어지지 않아 전체적으로 정상이 아닌 투수진에서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던 것도 문제.

그래도 이 시기에는 사직아재들에게 몹시 인기가 많아서 아재들의 아이돌로 불렸다. 최대성이 사직에서 미니쿠페 타고 등장하면 아재들의 웅장한 함성소리가 사직의 하늘을 메운다 카더라. 한동안 부진할 때에도 욕을 하며 격하게 응원하는 아재들이 많아서욕데레 최대성 얼빠의 8할은 아재 팬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아마도 부산고등학교 출신 성골이라는 점과 롯데에 몇 없는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이기 때문에 아재들의 편애가 심한 듯하다. 군에 가기 전 등번호는 11번을 달고 있었는데[14] 이 때문에 11번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던 故 최동원 감독이 당시 11번의 주인인 최대성이 잘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현 등번호인 30번은 삼진을 많이 잡겠다는 의미라고 하는데, 자세히 아시는 분 추가바람.

2009년 11월 2일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였고, 2011년 시즌이 끝날 무렵 제대하였다.

2.1.2. 2012 시즌

파일:external/lh6.googleusercontent.com/%25EC%25B5%259C%25EB%258C%2580%25EC%2584%25B178%25EC%258A%25B9.jpg 78승 투수의 위엄[15]

2011년 말 전역하여 2012년 스프링캠프에 참가, 중도귀국하면서 우려를 자아냈으나 2군 연습경기를 거쳐 시범경기 막판부터 다시 1군 마운드에 올랐다. 최고구속 157km/h를 기록하며 재활이 성공적임을 입증했다. 하지만 과거를 알고 있는 팬들은 여전히 의문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는데...

4월 7일 개막전에서 경기 내내 불안하던 송승준이 팀이 1:3으로 앞선 6회 초에 1사 2, 3루를 만들고 내려갔고, 이양기를 잡고 내려간 강영식의 뒤를 이어 2사 2, 3루 상황에서 등판한 투수가 바로 최대성. 당연히 팬들은 "이 상황에서 최대성이라니?! 양감독 이게 무슨 소리요?"라며 절망했지...만,

연경흠을 상대로 초구부터 끝까지 제구가 잡힌 150km/h대 강속구[16]를 펑펑 뿌려대며 힘싸움에서 승리, 연경흠을 2루수 땅볼로 잡아내고 팀을 구원해냈다. 이 상황을 지켜본 롯빠들은 '내가 보고 있는 게 정말 최대성이 맞는거냐?' '제구가 되는 최대성이라니!'라며 우리도 오승환을 갖게 되었다며 꼴레발을 떨며 불타올랐다.[17]

다음 이닝인 7회초에는 2사 후 안타를 2개나 맞으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명우가 구원 등판한 후 강동우를 막아내고 이닝을 끝내면서 최대성은 이날 1이닝 25투구수 2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고 1,000일이 넘는 1군 등판에서 당당히 시즌 첫 홀드를 얻게되었다. 변화구 제구는 여전히 안 좋았지만 그래도 남은 경기에서의 활약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4월 8일 팀이 스코어 5:9로 앞서던 6회초 1사 상황에서 이명우 다음 투수로 올라왔다. 1이닝 동안 1피안타만을 맞으며 전날에 이어 무실점행진을 계속하였다. 이 안타도 먹힌 공이었는데 하필 중견수앞에 떨어지며 안타가 되었다. 설렁설렁 던져도 150이 넘게 찍혀서 롯데팬들은 환호를 질렀다. 마지막 타자를 변화구로 잡아내었다. 점수차 때문에 홀드를 기록하지는 못했다.

424 대첩 때는 롯데가 승기를 잡은 9회말에 등판. 3타자 모두 범타로 처리하며 경기를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 155km/s는 던져야 안타를 안맞지!

4월 28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홈 경기에서 3:3 동점이던 8회초 1사에서 등판, 정성훈, 이병규를 공 하나씩 던져서 각각 우익수 플라이, 유격수 플라이로 잡아내며 이닝을 깔끔하게 막아냈다. 그리고 팀이 8회말에 2점을 뽑으며 3:5로 승리하여 최대성은 2007년 5월 15일 마산 두산전 이후 1,810일만에 승리투수가 되었다.

5월 4일 문학에서의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스코어 3:3인 8회말 무사 주자 1루 상황에서 선발 투수 셰인 유먼의 다음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왔다. 최정이호준을 제구 되는 강속구로 타이밍을 전혀 못 맞추게 하며 모두 삼진으로 잡았는데, 그 다음 타자인 박재홍에게 노림수가 드러나 결승 투런포를 맞고 스코어를 3:5로 만들고 이재곤으로 교체되었다. 최대성은 이날 ⅔이닝 9투구수 1피안타 1피홈런 2탈삼진 1실점 1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은 3:5로 패했다.

6월이 오며 조금씩 안정을 되찾기 시작, 롯데 불펜의 한 축을 완전히 꿰차게 되었다.

8월 8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2300여일만에 세이브를 따냈다. 오지환을 중견수 뜬공으로 잡고, 박용택에게 안타를 맞긴 했으나 큰 이병규에게서 병살타를 유도해내며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이 날은 1이닝 3타자 8투구수 3타수 1피안타 무탈삼진 무실점 무자책점을 기록. 팀은 6:5로 승리했다.

9월 4일 기아전에 8회초 무사 1루 상황에 등판하여 나지완에게 몸에 맞는 볼을 하나 내주긴 했지만[18] 후속타자를 병살타와 유격수 라인드라이브로 잡아내며 홀드 추가.

9월 7일 한화전 7회초 1사 위기상황에 올라와 타자가 댄 기습번트를 향해 몸을 날리는 투혼을 보여주었다.(황재균의 호수비로 아웃) 그리고 장성호를 6구째 스탠딩삼진으로 잡아내고 포효하였다.
파일:159.gif
여기서 바깥쪽 꽉 차는 마지막 공은 전광판에 159km가 찍히며 최대성의 공식 최고구속 기록을 경신했다. 이 날 기준 5승 16홀드.

8월이 지난 시점에서 최대성의 5월은 성장통이었다는 평이 지배적. 8월 한 달 간 정말 미친듯이 굴렀고(무릎 부상을 달고서)위기상황에서 주자를 잡아내는 것도 평균자책점 0을 기록하던 4월만 해도 주자가 나가면 불안했던 모습과 비교했을 때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인 모습이 되었으며,결정적으로 변화구 제구가 제법 된다. 상기한 일시적인 마무리 보직도 훌륭히 소화해낸 것까지 한 시즌 동안 실력이나 멘탈이나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긴 공백을 거쳐 복귀한 첫 해에 훌륭한 모습을 보여준 최대성이기에 다음 시즌이 기대되는 선수 중 하나.

9월 24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팀이 스코어 1:0으로 이기던 9회말에 양승호 감독의 지시로 등판하였으나 긴장했던 탓인지 이승엽에게 볼넷만 주고 바로 김사율로 강판되었다. 팀은 1:2로 역전패. 이 날 최대성의 기록은 0이닝 5투구수 1볼넷 1실점 1자책점.

최대성은 두산 베어스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에서 승패, 홀드, 세이브 없이 3경기 2⅓이닝 3피안타 3볼넷 1피홈런 3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11.57을 기록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1패로 지던 10월 17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2차전, 스코어 5:4로 팀이 앞선 10회말에 뜬금없이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였는데 선두 타자 박정권에게 안타, 김강민에게 희생번트, 조인성에게 안타를 맞고 1사 1, 3루의 위기를 자초하여 불대성 모드로 돌입하는 듯했으나, 최윤석을 희생삼진[19], 임훈을 초구에 좌익수 플라이로 잡고 이닝을 끝내며 포스트 시즌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이 날 최대성의 기록은 1이닝 18투구수 2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 세이브.

최대성은 2012년 플레이오프에서 3경기 2⅓이닝 4피안타 1볼넷 2탈삼진 무실점, 1세이브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최대성은 2012년 포스트시즌 9경기 중 6경기에 등판하여 4⅔이닝 7피안타 4볼넷 3탈삼진 3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5.79, 1세이브를 기록했다.
2.1.2.1. 문제점
타고난 강견에서 뿜어져 나오는 높은 구속의 직구가 최대 강점이다. 더군다나 가장 좋은 활약을 보여줬던 2007년에 비해 영점제구력도 어느정도 잡힌터라 4월에는 과거보다 더욱 좋은 활약을 하였다. 다만, 강력한 패스트볼을 뒷받침해줄 변화구가 조금 밋밋하고 변화구의 제구는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으며 흔히들 '볼끝'이라 하는 구위가 떨어진다는 평이 있었지만, 4월의 투구 내용은 불펜 투수로써 1이닝 정도는 충분히 먹힐 수 있는 투구내용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그게 다 도루 가능성이 있는 주자가 없을 때에 한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2012 시즌 초 최대성의 투구폼은 전문 선수나 분석원이 아니더라도 주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크다. 주자가 없을 때나 만루 상황이나 3루에만 주자가 있을 때처럼 주자가 도루할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경우에는 와인드업 자세에서 왼발을 들고 힘을 모으는 동작이 긴 편이다. 그러나 도루할 가능성이 높은 주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이 동작을 대폭 생략하며 빨리 던지려고 하며, 제구력이 시망 수준까지는 아니라도 상당히 떨어져 버린다. 주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피안타율과 볼의 비율이 높아지는 것. 타자가 출루하면 2007시즌 말기 버전으로 퇴화

롯데 스텝들도 이를 잘 아는지, 주자가 있을 경우에는 올리지 않으며 안타를 맞는 등 타자가 출루할 경우에는 어지간하면 교체를 해주었다. 여유 불펜이 널널할 때라면 모르겠지만, 기나긴 정규리그동안 늘 그러리라는 보장도 없는데다 항상 불안했던 것이 롯데의 불펜[20]인 탓에 한시라도 빨리 교정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결국 5월 들어선 결정적인 순간때마다 직구를 통타당하며 홈런을 양산했다. 결국 롯데의 5월 침체에도 한몫했지만 과부하에 시달리는 롯데 불펜 사정상 딱히 대안도 없기에 계속해서 신뢰를 받으며 등판하게 되었다. 사실상 셋업맨의 위치를 수행중이기에 성적의 안정화가 필수적이었는데, 등판하면서 주자 관리 능력은 차차 개선되어 5월 이후에는 상기한 것처럼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2.1.3. 2013 시즌

2012년의 좋은 활약으로 2013 시즌에도 필승조로 낙점받았다. 하지만 팔꿈치에 뼛조각이 돌아다녀서인지 시즌 초에는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다. 팬들은 하루빨리 수술받기를 바랐지만, 본인은 어차피 투수라면 달고 다니는 고질병이라 괜찮다고 하였다.

6월 15일 경기 도중 3볼을 던지고 통증으로 인해서인지 자진강판되었다.

그리고 6월 18일 결국 우측 팔꿈치 수술 결정을 했다고한다. 수술 날짜는 6월 25일.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수술 이후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2.1.4. 2014 시즌

김시진 감독이 김성배와 함께 더블 스토퍼 체제를 이룰 것이라고 밝혔다. 좌타에 부담감이 있다는 김성배를 대신해 좌타를 막는 클로저가 될 듯 하다.

2월 16일 자체 청백전에서 등판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최고 구속 151km/h를 기록하며 수술 성공을 알렸다.

7월 5일 SK와의 경기에서 7:5로 뒤진 9회초에 등판하여 혼자서 무사 만루를 만들어냈지만, 나머지 세타자를 삼진으로 잡아 이닝을 끝내고 팀이 9회말에 역전승을 하여 승리투수가 되었다. 희망고문도 이런 희망고문이 없다

2.2. kt wiz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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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sportsworldi.com/20150507000452_0.jpg
kt wiz 시절

5월 2일 kt wiz로 트레이드되었다. 그러나 별 활약을 못했고 이후 6월 17일 조범현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팔꿈치 통증으로 다시 수술을 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내년 복귀가 목표라고. 하지만 13년도에 같은 부위에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서 주위에서 우려를 하고 있다.

2.2.1. 2016 시즌

시범경기 개막전에 등판해 홍성흔에게 홈런을 맞고 0.1이닝 2실점 ERA 54.00으로 화끈하게 시즌을 시작했다.(...) 결국 1군에 오르지 못했다.

시즌이 끝나고 12월 2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롯데 시절 유니폼을 입은 뒷모습을 올리며 kt 팬들의 공분을 샀다. 롯데에서 다시 부른다면 돌아가겠느냐는 질문에 "한번 버린 팀은 안갑니다"고 말했던 것과 대조되는 상황.

2.2.2. 2017 시즌

한 번도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프로골퍼 박시현과의 결혼 소식이 떴다. kt위즈 투수 최대성-프로골퍼 박시현, 오는 12월2일 결혼 최대성은 "2년 전 지인 소개로 만나 결혼을 하게 됐다"며 "열심히 사는 모습 보여드리겠다"는 소감을 남겼다. [공식] kt 위즈 투수 최대성 결혼 소감 "열심히 사는 모습 보여줄 것" [21]

2.3. 두산 베어스 시절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게 됐다. 결국 kt에선 자신의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한 채 이별하게 됐다. 그리고 kt 팬들은 풍악을 울렸다 카더라 두산 팬들은 대체 2군 20점대 투수를 공짜로 데려올 수 있었는데 왜 굳이 2차 드래프트로 3억을 주고 데려왔느냐고 성토 중. 그리고 팬들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2군 20점대에 위엄을 소프트뱅크전 연습경기에서 화끈화게 보여주었는데, 소프트뱅크전 5회말 최대성이 피안타 2개에 폭투로 동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제2의 홍상삼? 그런데 의외로 아직 사사구는 고작 연습기간 내내 하나뿐이라고 한다. 속지마 10년만에 만개한 김강률과 많은 대화를 나눈다는데 효과가 있을지는...

베어스포티비민병헌이 떠나고 새로 입단한 선수들이 들어오는 영상이 있는데 두산팬들은 극히 우려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현실이 되었다

2.3.1. 2018 시즌: 선수생활 최저 WAR을 기록한 시즌

"최대성이 10년을 못했다구요? 2007년 57.1이닝 방어율 2.67 2012년 67.2이닝 3.49로 꽤 잘 했어요. 나머지 시즌은 개 똥이지만."
롯데 자이언츠 상대 9월 11일 경기 편파중계 하이라이트에 달린 댓글.[22]

3월 17일 LG와의 시범경기에서 10구를 던질 동안 볼넷 하나를 주고 곧장 이영하(야구선수)와 교체되었다. 이영하가 남은 2이닝을 무실점으로 책임져 자책점은 0.

3월 31일 kt wiz와의 경기에서 한 이닝 만루홈런 2개를 허용하였다. 순간적으로 평균자책점이 121.5까지![23] 치솟았다. 로하스 홈런이해창 홈런
파일:121_50.jpg
이해창에게 만리런을 맞은 후 평균자책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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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곤을 땅볼 아웃 시킨 후 평균자책점

더 놀라운 점은 7번타자 박경수에게 던진 3구부터 1번타자 오태곤에게 던진 4구까지 전부 직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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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두산은 20-8로 대패했으며 다음날 4월 1일 경기에서도 이 충격이 가시지 않아 패배를 기록했다. 그리고 곧바로 다음날인 4월 1일에 말소되었으며 빈 자리에는 포수 박유연이 등록되었다.[24] 이 경기에 대해 김태형 감독도 "어제 최대성 본인도 느꼈을 것이다. 본인이 잡아야 한다"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그리고 두산팬들은 김태형 최대성 황경태 등등을 가루가 되도록 깠다[25]

그리고 5월 15일 kt wiz에서 한만두 기념 티셔츠가 나오며 두산팬들에게 다시 한 번 욕을 먹었으며, 5월 26일 시점에선 2군에서도 단단히 찍혔는지 한만두 경기 이후로 퓨처스리그에서 단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하고 있다. 두산팬들은 그 분과 같이 팀에서 나가줬으면 하는 선수 1순위로 최대성을 꼽는 중.

이 경기에서의 기록은 이 쪽에도 서술되어 있다. '정확히는 이닝에 투수가 루홈런 개 허용

9월 11일에 거의 반년만에 1군으로 복귀했는데,[26]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8회에 올라와서 무실점을 기록했다. 웬일이니? 9월 14일 NC에게 13대 6으로 지고 있는 와중에 등판하여 8회를 삼자범퇴로 막아내고, 9회도 김형준에게 안타 하나 맞은 것 빼곤 무난하게 막아냈다. 9월 22일 NC에게 7대 1로 지고 있을 때도 등판하여 4~5회를 1실점만 허용하고 막아내며 이후 대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다행히 4월에 비해선 그래도 좀 나아진 듯한 모습이긴 한데, 받은 돈을 생각해보면 제대로 밥값을 하려면 아직은 많이 먼 상황.

확대엔트리 시행 이후 최대성의 투구를 보는 두산팬들은 평균자책점이 던질 때마다 실시간으로 대폭 삭감되는 상황을 보고 있다. 9월 22일 기준 15.00까지 줄어들었다.

그러나 9월 26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제리 샌즈에게 3점 홈런을 허용하며 이영하의 10승을 무산시킨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27]

9월 28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8회에 등판하여 2이닝 22구 1피안타 2볼넷 2삼진을 기록하며 기대치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 올라온 유재유가 볼질을 하며 경기 자체는 지긴 했지만, 병살을 잡아낼 때 환호하던 모습에서 방출되지 않기 위한 간절함이 느껴졌고, 이번 경기를 계기로 자신감을 얻어 잘 했으면 좋겠다는 두산 팬들이 꽤 있었다. 이미 우승은 확정지었으니, 마음이 여유로워져서 그럴지도

그러나 시즌 중 보여준 궤멸적인 투구내용 및 한국시리즈 대비 교육리그에서의 성과로 인하여 결국 장민익[28]과 함께 2018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배영수가 최대성과 김도현 보상금의 차이인 1억을 받고 두산으로 이적한 후 양의지가 최대성과 김도현 보상금의 합인 5억 차이로 NC 다이노스로 이적하자 다시 까이고 있다. 덧셈을 해도 뺄셈을 해도 까이니 야구 그만두고 부산 내려가서 골프를 하는 게 어떨까

2018년 최종 성적은 ERA 11.70, FIP 7.83, WAR -0.44로, 본인 야구인생에서 WAR를 기준으로 한 팀 공헌도로 볼 때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탈삼진수(10개)보다 ERA가 더 높게 나온 건 덤.

2.3.2. 2019 시즌

2019년 오키나와, 미야자키 스프링캠프에 합류하였고, 두산팬들은 최대성을 데려갈 바에는 차라리 다른 선수를 데려가라며 까고 있다. 그의 공을 받아야 할 포수들을 위해 묵념. 그와중에 스캠 영상에서는 점심에 요구르트를 3개나 집어갔다

그리고 최대성의 2018 시즌 실패 이후 두산은 보상선수로 이형범, 보류선수 제외 픽으로 박정준, 배영수, 권혁[29], 진재혁, 육성선수로 윤산흠을 영입하는 등 투수 보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윤명준강동연의 전역 이후에도 아직 불펜은 불안하며, 정병곤과 최지원을 제외하고 영입한 선수가 모두 투수이고 게다가 이들 중 둘은 좌완일 만큼 두산의 투수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반증.

시범경기에서는 무실점으로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SK전에서는 주자 연속으로 내보내도 연속 2주루사 김태형 감독의 최대성 띄워주기 발언은 선수 기 살려주기용도 있는 만큼 공과는 정규시즌부터 본격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3월 24일 선발 이용찬 - 이형범을 이어서 등판했으나 결과는 연속 볼 + 수비실책과 겹쳐 무사만루 핵폭발. 이에 두산 팬들은 더 이상 최대성이 연봉을 받는 꼴을 볼 수가 없으니 최대성을 즉각 방출하라고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으며, 후속 등판한 이현호의 제구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이후 한 게임만에 2019년 3월 25일 2군으로 강등되었다.

3. 플레이 스타일

공끝이 좋지 않다는 평이 있지만 아무리 무브먼트가 부족해도 150km 중반대 이상의 패스트볼을 지속적으로 뿌릴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하지만 제구가 잘 되지 않는다. 제구가 되는 경우에도 코너웍 같은 건 안드로메다로 보내고 스트라이크존에 집어넣기 급급한 수준. 커맨드가 좋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것이 볼카운트 싸움이 불리해지거나 주자가 있을 경우 패스트볼을 스트라이크존에 넣는 것 조차 힘들어 한다.

슬라이더를 던지는데 잘 긁히는 날은 의외로 위력적인 움직임과 스피드를 보여준다. 문제는 그렇게 긁히는 날이 드물다는 것. 역시 제구는 잘 안된다.

이 선수의 가장 큰 문제라면 제구 안되는 파이어볼러로서 보낸 세월이 10년을 넘어간다는 것. 하지만 패스트볼의 위력 때문에 꾸준히 기회를 얻고 있고 몸만 건강하다면 1군 불펜진의 한 자리 정도는 어렵지 않게 얻는 편이기도 하다. 나이를 감안할 때 2015년의 수술 후 재활여부+제구잡기가 향후 선수 생활의 향방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술 이후 오랜만에 등판한 경기에서 150km 중반대는 무슨 150km도 못 찍으며 사실상 선수생활에 위태로울 위기에 처해있다. 작대기 직구라도 구속이 워낙 빨랐기에 위력적이었는데, 구속이 적절하게 하락해서 정직한 작대기 직구가 제구까지 안되면... 현 시점에선 구위도 안좋고, 구속도 그저 그렇고, 던지는 변화구도 없는데 제구까지 안되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인 상황이다

송은Bomb 투심으로 성공하던데 당신도 변형 패스트볼 좀 배워봐... 그거 배워도 제구가 안되서 안돼...

그래도 최근에는 다시 구속을 끌어 올리는데 성공했는지 시즌 시작전인 스프링캠프인데도 151km를 던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파이어볼러의 상징이라 볼 수 있는 탈삼진 능력은 그저 그런 수준이다. 평균 구속이 140이 안되는 정우람의 삼진률이 훨씬 높은데, 대신 정우람은 더 좋은 커맨드와 컨트롤을 보여준다. 그리고 내구성까지

4. 기타

  • 성격도 서글서글하고 팬들과 후배 선수들에게 평판도 좋다. 그러나 두산팬들은 소름끼치도록 그를 싫어한다
  • 강속구 투수인 것과는 어울리지 않게 소녀감성이라는 별명이 있는데 예전 싸이 캡처나 몇몇 짤방, 결정적으로 트위터에서의 오그라드는 대사와 여고생같은 말투 덕분이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샤르륵~"...13시즌에는 이재곤과 함께 찍은 오그라드는 사진+하트가 붙은 트윗으로 다시 한 번 팬들을 뒤집어지게 했다.빨리보자 내동생♥(...) 여담으로 그는 외동아들이다.
  • 군 복무를 법원공익으로 했는데 법원에서 모든 종류의 싸움을 직접 옆에서 볼 수 있어서 멘탈 강화는 물론,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게 됐다고 우스개 소리로 말했다. 멘탈이 좋아지면 뭐하나 기본 제구가 안 되는데 위기 상황 이전에 알아서 무너지는 걸
  • 프로야구매니저에서도 까이는데 3코스트 레어 주제에 구속 스텟이 80이 넘었지만 좋지 못한 성적으로 권혁 레어와 함께 구속 쓰레기설의 증명에 일조했다. 그러나 07 최대성은 5코스트치고 스탯은 상당히 좋게 나오고 유학도 가능해서 진리카드 중 하나로 여겨진다. 단일 년도덱이 생긴 이후 코스트 대비 좋은 성능을 내주는 소위 4대 국걸국민덱 중 하나인 07 롯데덱 불펜의 중심을 맡으면서 존재감도 더 커진 편. 이후 2012년의 좋은 활약으로, 능력치 좋은 중고코 최대성 카드들이 등장하면서 입지가 더 나아졌다.
  • KIA 타이거즈김주형도플갱어 수준으로 닮았다. 게다가 1985년생으로 나이까지 동갑이다. 김주형이 광주동성고 재학시절 부산고와의 경기를 위해 부산을 찾았을 때 최대성의 어머니를 만났는데 최대성의 어머니는 김주형을 보고 ‘아들과 똑같다’며 웃었다고 한다. 둘 다 뛰어난 신체조건으로 부임하는 감독마다 사로잡으며 시즌 개막 전에 항상 유망주로 기대를 모으다가 결국 포텐을 터뜨리지 못하고 노망주에 머무르고 말아서 팬들에게 애증의 대상으로 꼽힌다는 공통점까지 있다.
  • 대성불패와 반대되는 의미인 '대성필패'로도 불린다.

5. 역대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2004 롯데 자이언츠 6 6⅓ 0 0 0 0 2.84 8 3 2 1.74
2005 11 14⅔ 0 1 0 0 9.20 25 9 8 2.05
2006 23 30 1 3 1 0 6.60 43 20 27 2.00
2007 41 57⅓ 3 2 0 7 2.67 39 31 53 1.13
2008 2 1 0 0 0 0 9.00 1 3 0 3.00
2009 1군 기록 없음
2010 군복무(공익근무요원)
2011
2012 71 67⅔ 8 8 1 17 3.59 65 29 50 1.32
2013 13 9⅓ 0 0 0 1 5.79 13 6 9 2.04
2014 41 45⅓ 2 2 0 1 2.58 41 28 43 1.46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세이브 홀드 평균자책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2015 롯데 / kt 8 2⅔ 0 0 0 0 13.50 4 7 0 4.13
2016 kt wiz 1군 기록 없음
2017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세이브 홀드 평균자책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WHIP
2018 두산 베어스 8 10 0 0 0 0 11.70 15 8 10 2.30
KBO 통산(10시즌) 224 244⅓ 14 16 2 26 4.42 254 144 202 1.54

6. 둘러보기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43번(2004~2005)
조성환(1999) 최대성(2004~2005) 김일엽(2008)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48번(2006)
이정동(2004~2005) 최대성(2006) 허준혁(2007)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1번(2007~2008)
이정민(2005~2006) 최대성(2007~2008) 이정민(2009~2011)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59번(2009)
박종윤(2005) 최대성(2009) 박시영(2010~2011)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0번(2012~2015)
이정동(2010~2011) 최대성(2012~2015) 조현우(2015~2017)
kt wiz 등번호 21번(2015)
박세웅(2014~2015) 최대성(2015) 이상화(2016~)
kt wiz 등번호 11번(2016~2017)
안승한(2014~2015) 최대성(2016~2017) 홍성용(2018~ )
두산 베어스 등번호 30번(2018~)
고봉재(2016~2017) 최대성(2018~) 현역


[1] 윤희상과 생년월일이 같다.[2] 연고지가 부산광역시인지, 롯데 시절 선수단 내 불교 신자가 많아 "불교 자이언츠"라 불리는 롯데에 몇 없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한 갸갤러의 친구가 부산에 사는 꼴빠였는데, 교회에서 최대성을 만나 선물을 전해주자 고맙다는 인사와 오늘 교회에 점심으로 소고기 무국이 나온다며 먹고 가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하다. 한때 같은 교회에 다니는 교회아가씨를 만나고 있는 거 아니냐는 루머가 돌기도 했을 정도.[3] 최대성의 원 등장곡인 친구의 자작곡은, 상당히 긴장감 있는 곡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2012시즌을 시작하기 전에 받은 곡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네이버에서 최대성 등장음악으로 검색하면 자동완성이 있을 정도.[4] 반면 장원준은 3학년 때 단 10이닝을 던져 1학년(43 1/3이닝), 2학년(25 2/3이닝) 때보다도 훨씬 적었다.[5] 공식적으로는 158km/h를 기록했으며, 리즈가 2011년 160km/h를 찍기 전까지 엄정욱과 함께 공식경기 최고 구속 기록을 갖고 있었다. 연습 경기에서는 160km/h를 찍은 적도 있다고 한다.[6] 이에 대해 김인식 감독은 그 발언에 오해가 있다고 하여 김 감독은 롯데전에서 경기 전에 최대성을 불러 좋게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고 한다.[7] 저 당시에는 카운트를 셀 때 볼-스트라이크 순이 아닌 스트라이크-볼 순서로 표시했다.[8] 당시 현대는 외국인 선수를 보는 안목이 대단히 탁월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 진출 후 실패한 클리프 브룸바라는 든든한 보험이 있었다.[9] 참고로 서튼은 그 후 2년동안 폭망... 만약 트레이드 했으면 롯데가 빅 엿을 먹을 뻔 했다. 물론 최대성이 잘 한 건 아니다[10] 그래서 못 할 때는 대성필패라고 불린다.[11] 어떻게 보면 백인천이 저지른 가장 큰 실책 중 하나다. 투수진 연쇄 붕괴의 시발점이 되었으니...[12] 불펜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이상목을 영입하고 손민한을 마무리로 돌렸지만 실패했다.[13] 양상문 감독 시절에 중간계투로 등판해 84구를 던진 적도 있다.[14] 이후 이정민이 잠시 채갔다가 제 주인을 찾아갔다.[15] 이 짤은 2013시즌 시범경기에 나온건데, 71경기 8승8패1S17H라고 작성한 성적의 텍스트가 너무 많아 경기수의 텍스트를 덮어버린 것이다.[16] 최고 155km/h가 찍혔다.[17] 이 경기의 중계를 맡은 KBS의 유지철 아나운서는 출신을 숨기지 못하고 상당히 흥분한 톤으로 최대성이 공을 뿌릴 때마다 칭찬했다[18] 나지완은 발끈하며 식빵을 구웠지만 최대성이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벤치클리어링은 벌어지지 않았다. 나지완은 9월 2일 한화전에서도 2연속으로 공을 맞은 바 있다.[19] 최윤석이 삼진을 당함과 동시에 1루 대주자 김성현이 도루를 성공했다.[20] 2012년 4월 한정으로 그 문제의 불펜이 믿을 수 없는 성적을 올리고 있지만 이 페이스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21] 여담으로 이날 실시간 검색어 순위권에 올랐는데, kt팬들은 최대성이 드디어 은퇴하는 줄 알고 상당히 좋아했었다고(...). 그리고 두산팬들은 롯데와 kt에 최대성 반품신청을 하고 있다[22] 2007, 2012 시즌 성적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롯데 팬으로 추정된다.[23] 3번째 아웃을 잡기 전까지 0.2이닝 9실점. 9×27÷2 = 121.5이다.[24] 그리고 박유연을 대신해 4월 3일 경기를 앞두고 또 한 명의 투수가 올라오는데 이 선수가 바로 김정후.[25] 선발투수 장원준의 경우 왼손 손가락 부상으로 인해 난조를 보인 것도 있고, 15~17년 투구수가 누적되어 피로가 가중된 상황에서 장원준을 계속 쓴 김태형에게 비판이 집중되는 중이다. 오죽하면 중계진들도 비판했을 정도. 황경태의 경우에도 1군 경험이 부족해 콜업된 상태에서의 압박으로 이해해 줄 여지가 있다. 그러나 최대성의 경우 롯데에서 제구력 난조로 순위싸움이 달린 1군 경기를 말아먹은 전적이 많고 무엇보다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쓸데없이 3억을 써서 데려왔기 때문에 쉴드를 받기가 힘든 상태.[26] 이 이전에도 2군 등판기록이 없고 부산 목격담이 자주 들려왔는데, 한강에서 피크닉을 하기도 하여 두산팬들이 뒷목을 잡기도 했다.[27] 돡갤에서는 이 순간 쌍욕이 도배되었고 이영하의 기자회견 사진을 갖고 "우리 팀에 승부조작범이 있는 것 같아요"라는 드립을 쳤다.[28] 이후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였고 정경배 코치가 두산으로 왔다. 그 주역은 삼성으로 갔다[29] 게다가 두산 프런트는 배영수와 권혁을 둘이 합쳐 최대성 2차드래프트 보상금인 3억에 영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