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01 00:10:32

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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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만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5 2011 2012
2013 2014

보유 기록
한 시즌 최다 홀드 37홀드
통산 최다 홀드 177홀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KBO_League.svg.png
2015 KBO 리그 홀드왕
}}} ||
안지만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63번
조정권(2001) 안지만(2002) 박대호(2004~200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8번
브론스웰 패트릭(2002) 안지만(2003~2011) 조현근(2012.3~2012.5)
조현근(2012.3~2012.5) 안지만(2012.5~2016) 박근홍(2017~)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1번
심창민(2011) 안지만(2012.3~2012.5) 조현근(2012.5~20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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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시즌 공식 기자회견 당시 사진. 왼쪽 인물은 윤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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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볼 일 없을 삼성 라이온즈 시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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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안지만(安志晩 / Ji-man Ahn)
생년월일 1983년 10월 1일
신체 180cm, 83kg
출신지 대구광역시
학력 칠성초 - 경운중 - 대구상고[2]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2년 2차지명 5라운드 (전체 40번,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2002 ~ 2016)
등장곡 X-Cross - Crazy[3]

1. 소개2. 선수 생활
2.1. 2010 시즌2.2. 2011 시즌2.3. 2012 시즌2.4. 2013 시즌2.5. 2014 시즌2.6. 2015 시즌2.7. 2016 시즌
3. 방출 이후
3.1. 2017년3.2. 2018년3.3. 2019년
4. 이야깃거리
4.1. 트레이드 마크였던 힙합모자
5. 연도별 성적

1. 소개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투수이자, 범죄자. 대구상고 재학 당시에는 내야수였으나 선배들을 위해 언더핸드로 공을 던지다 감독에게 투수 전향을 제의받았다. 그러나 옆구리 통증으로 금세 포기하고 정통파로 바꿨다. #

직구 구사율이 높고 간간히 슬라이더를 던지는 사실상 투피치 투수이다. 직구의 평균 구속이 140km 중후반대이며 상당히 묵직하다. 오승환과 비슷한 스타일. 또 몸이 튼튼해 부상을 당해 날린 시즌이 없다.

그러나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으로 인해 본인의 선수 경력에 커다란 결함을 남겼다. 여기까지만 했었다면 윤성환이나 오승환처럼 커리어를 이어가는 것에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2016년 중반에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 개설 연루 혐의가 드러나 삼성과 계약 해지 되었다. 사실상 반 영구제명이나 다름없어서 선수생활이 완전히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거기다가 이젠 21억짜리 주택마저 압류당했다. 한 번의 잘못이 사람을 얼마나 망하게 하는지는 이 사람을 보면 알 수 있다.

2. 선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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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경량투수였던 신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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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적화 되기 전의 풋풋했던 시절의 모습.

애초에 삼성에 입단할 때는 65kg의 초경량 투수로 입단했으나[4] 몸무게를 불리라는 말에 열심히 2009년까지 80kg로 몸을 불렸다.[5] 삼적화의 대표적인 사례.

입단 4년차인 2005년부터 두각을 드러내 계투진의 한 자리를 맡아 8승 14홀드 평균자책 3.48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6년에는 겨우 7경기 등판해, 팀이 한국시리즈에 우승하고도 유일하게 연봉이 깎이는 수모를 겪었다.

2007년에는 팀의 열악한 선발 사정으로 차우찬과 함께 선발 훈련을 받았다.

2008년부터 중간계투로 자리잡으며 정현욱, 권혁과 함께 안정권 트리오를 구축했다. 2010년에 제대로 포텐을 터뜨리며 정상급 계투로 평가받기 시작했으며, 이후로는 줄곧 삼성 불펜의 마당쇠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2.1. 2010 시즌

권혁도 내려가고 오승환도 내려간 삼성 불펜에서 제일 잘 던졌었다. 7월 성적이 5⅔이닝 4K 무실점!! 9월 9승 3패 9세이브 8홀드 평균자책점 2.65 기록했었으니 5회까지 리드시 31전 전승을 기록중인 삼성 불펜의 보배라고 할 수 있겠다.

포텐이 터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안지만이 등판하면 삼성 팬들은 '팀은 이기고 있다. 하지만 안지만..."이라는 말을 뱉어댔을 정도로 좋지 못했으나 2010년에 포텐이 완벽하게 터진 모습으로 막강 삼성 불펜진에서도 가장 중심에서 역할을 해주고 있다. 포텐을 터뜨린 계기로는 KIA와의 연장 경기서 등판, 안타 3개를 내리 쳐맞고 무사 만루 상황을 자초한 뒤 나지완, 안치홍, 이종범을 상대로 전부 삼진을 잡아내며 자신감을 얻었던 게 결정적이었다.[6] 그 당시 KIA 타자들은 넓어진 스트라이크 존 때문에 괜한 공에 스윙만 해대다 들어갔다고.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1차전 대만과의 경기에서 8회 초 1사 상황에 봉중근 이후 등판, 안지만 놀이를 다시금 시전하며 5아웃을 전부 삼진으로 잡고 무실점으로 팀의 승리를 지켰다. 단 점수차가 좀 있었기에 세이브는 얻지 못했다.

이 대회에서 유니폼 네임 J(지) M(만) AN(안)[7] 이게 마치 래퍼의 이름 같이 보여서 힙지만이란 별명과 너무 잘 어울린 나머지 J-MAN(제이맨)이란 별명도 추가. 불암콩콩코믹스에도 등장.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5경기 중 3경기에 등판하여 3 ⅔이닝 5피안타 3볼넷 1실점 1자책점 평균 자책점 2.45, 1승 1세이브 1블론세이브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 4경기 중 3경기에 등판하여 3 ⅔이닝 1피안타 1볼넷 1사구(死球) 3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0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2010년 포스트 시즌 9경기 중 6경기에 등판하여 7 ⅓이닝 6피안타 4볼넷 1사구(死球) 3K 1실점 1자책점 평균 자책점 1.23, 1승 1세이브 1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2.2. 2011 시즌

시즌 초반에 장원삼이 재활로 빠지는 등 선발진에 구멍이 나자 임시로 선발 등판을 했다. 4월 24일까지 4경기 선발 등판하여 22이닝 동안 2승 2패 2QS ERA 4.76을 기록했다. 이후 불펜으로 돌아갔다가 5월 17일 다시 선발로 등판해 승리를 챙겼다. 그러나 류중일 감독이 "더 이상 안지만이 선발로 등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발언을 했기 때문에 다시 선발 등판하지는 않을 전망이다.[8]

이후 삼성 중계진의 중심 투수로 맹활약하며 2011년 8월 7일 기준으로 31경기 64⅓이닝 10승 4패 10홀드, 방어율 3.08 탈삼진 52개를 기록했다. 구원 등판 시 기록은 26경기 36이닝 7승 2패 10홀드, 방어율 1.50 탈삼진 33개였다.

패넌트레이스 종료 후 순수 중간계투로 낸 기록은 42경기 57⅔이닝 10자책점 평균자책점 1.56으로,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기록이었다. 2011년 정대현의 평균자책점이 1.48, 정우람의 평균자책점이 1.81인 점을 생각하면 다른 팀의 우투수 중엔 비교 대상조차 없었다. 당시 KBO의 탑급 계투는 우투는 오승환, 좌투는 정우람, 언더는 정대현이였다.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특급 허리로 그야말로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 끝판왕에 필적하는 구위로 SK 타자들을 완전 벙찌게 만들었다. 1, 2, 4, 5차전에 나와 모두 홀드를 챙겼다. 특히 팀이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이기던 2011년 10월 29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2011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의 그의 활약은 그야말로 폭풍간지였다. 팀이 스코어 5:4로 쫓기던 7회말 무사 1, 3루라는 정말 어려운 상황에 4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공 4개로 아웃카운트 3개를 모두 잡는 MVP급 활약을 펼쳤다. 이날 2이닝 22투구수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으로 홀드를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8:4로 이겼다.

2011년 한국시리즈 5경기 중 4경기에 등판하여 4⅓이닝 3피안타 1볼넷 5탈삼진 무실점, 4홀드를 기록하여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4승 1패 우승에 기여했다.[9]

시즌 후 훈련소에 입소했을 때는 흔히 비만소대라 말하는 건강소대에 배속되었다.

2.3. 2012 시즌

등번호를 11번으로 바꿨다. 그간 1번을 탐내왔으나 1번은 윤성환이 달고 있기에, 그나마 비슷한 번호로 바꾼 것. 그런데 1번에 대한 집착을 못 버렸는지 1과 1사이에 '×'를 그려 넣었다.# 하지만 결국 "넌 28번이 어울려!"라는 조언을 받고 5월 4일부로 다시 28번을 달게 되었다.#

2011 시즌 후 훈련소에서 4주 훈련을 받느라 전지훈련에 늦게 합류해 구위도 떨어지고 몸상태도 안 좋은 상태에서 시즌을 시작하는 등, 2011 시즌과 달리 시즌 출발이 좋지 않다.

5월 4일 오승환, 정현욱과 술푸러 다녔다는 글이 돌면서 팀이 부진하는 상황에 잘하는 짓이라고 까였다.

결국 5월 이후로 등번호 11번을 다시 원래 달았던 번호인 28번으로 바꿔 달았다. 신기하게도 28번으로 바꾼 이후부터는 원래의 위력을 되찾았다.

2012 페넌트레이스 성적은 1승 2패 28홀드(2위) 평균자책점 1.71을 기록했다. 필승계투로서 적지 않은 홀드를 챙겼지만 비룡 군단박씨 성을 가진 특급 노예가 홀드 신기록(34홀드)을 갈아치운 바람에 다소 묻혔다.

팀의 대선배인 이승엽이 친 통산 500호 홈런을 슬라이딩 캐치로 잡아내 구단에 기증했다고 한다[10].#

SK 와이번스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 6경기 중 4경기에 등판하여 5이닝 5피안타 1피홈런 1볼넷 8탈삼진 4실점 4자책점 평균자책점 7.20, 2홀드 1패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우승하여 2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2.4. 2013 시즌

해당 문서 참조.

2.5. 2014 시즌

시즌 초 불안했으나 곧 밸런스를 되찾아 홀드 선두에 오르는 등 활약중이다. 다만 6월 들어 승계주자 실점이 무지막지하게 늘어났다.

8월 14일 SK 와이번스경기에서 0.2이닝동안 주자 2명을 내보냈지만 삼진으로 처리하고, 전 구단 상대 홀드기록을 세웠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야구 결승전에서 7회 말 등판, 대만에 3:2로 뒤진데다 무사 주자 1,3루라는 위기 상황에서 삼진 1, 뜬공 2로 처리하며 무실점으로 위기를 넘겼고, 이게 8회의 기적을 이루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 투구로 여러 미필 선수들을 구하며 안순신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시즌 뒤 FA자격을 취득했다. 4년 65억(계약금 35억, 연봉 7억 5000만)에 삼성에 잔류하며 불펜투수 최고액을 크게 경신한 주인공이 되었다.[11][12] 그러나 공개되지 않은 옵션금액이 상당했다는 것이 후에 밝혀졌다. 아래 2019년 문단 참고.

2.6. 2015 시즌

4월 30일 LG전에서 5대8로 삼성이 3점 앞선 8회에 등판해 1이닝 무실점으로 막으면서 14경기 등판만에 10홀드를 달성했다. 5년 연속 10홀드에 역대 최소경기 10홀드를 경신했다[13]. 경기 후 아직 자신의 구위에 불만족스럽다는 망언을 했다.

5월 17일 허리 통증으로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류중일 감독 말로는 15일 경기에서 김종호에게 2점 홈런을 맞아 패전투수가 된 후 이를 만회하기 위해 허리 통증을 참고 던진 것 같다고. 실제로 16일 경기에서도 구속이 전에 비해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대신 권오준이 올라왔다.

5월 26일 상무와의 퓨처스 경기에서 등판해 2이닝 7피안타 5실점으로 성적은 저조했지만 최고 구속이 148km/h로 어느 정도 구위가 회복된 모습을 보여, 5월 28일 1군에 복귀했다.

6월 2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개인통산 150홀드를 달성했다.

7월 5일 대구 엘지전에서 34경기만에 20홀드를 달성하며 최소경기 20홀드를 경신했다. 참고로 직전 기록은 본인의 기록인 35경기 20홀드. 또한 4년 연속 20홀드도 동시에 달성.

7월 16일 포항 넥센전에서 8회 초 등판하여 1이닝 3실점이라는 최악의 피칭으로 7회말 경기를 원점으로 돌린것을 헛수고로 만드는 듯 했으나 삼성타자들이 약속의 8회7점을 뽑아내며 얼떨결에 승리투수가 되었다.

7월 17일 올스타 프라이데이에서 퍼펙트피칭에서 5점을 쌓아 우승했다. 이벤트전 해설이었던 양준혁이 안지만이 저런 잡기에 능한 선수라고 했는데 그 말대로 예선과 결승 모두 5점을 내며 우승했다. 이후 인터뷰에서 박지영 아나운서가 어제 또 좋은 영향이 있는 거 같은데 어제 또 포항에서 승리를 하나 쌓고 오셨잖아요? 라고 묻자 머쓱한 듯 웃으며 저는 아주 안 좋은 경기를 하고 왔거든요. 경기를 안 보셨던 거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7월 18일 올스타전 식전행사인 번트왕 선발대회에 SK 김강민 대신 출전하여 5점으로 예선에서 탈락했다. 본 경기에서는 8회 등판하여 다섯 타자를 상대, 1이닝 2피안타 무실점으로 홀드를 챙겼다.

28일 대구 NC전 8회 1사 2루 상황에 등판하여 처음엔 볼넷을 주며 스릴러를 집필하더니 만루변태라는 별명답게 남은 아웃카운트를 모두 삼진으로 막아내며 2대 1 리드를 지켜냈고 삼성은 승리했다.

8월 21일 대구 NC전 9회에 1점차상황에 등판하였다. 박민우의 2루타 이후 모창민의 어이없는 번트로 아웃카운트를 잡았고 박민우가 3루 도루에 실패하며 삼성이 혹시 9회 역전의 발판이 되나 했지만 이종욱, 조영훈, 나성범, 손시헌에게 연속 2루타를 맞으며 0.2이닝만에 3점을 헌납했다. 게다가 삼성은 9회말에 1점을 추가했기 때문에 더욱 아쉬울 수 밖에 없는 상황.

8월 26일 대전 한화전에서 7회말 심창민이 최진행에게 볼넷을 준 이후 2점차에 등판하여 김경언에게 투리런을, 정현석을 아웃카운트 잡고 폭스에게 다시 솔리런을 맞아 역전패의 주역이 되었다. NC전에 이어서 또다시 필승조로서 매우 부진한 피칭으로 가루가 되게 까이는 중.

8월 27일 대구 두산전에 8회초 등판하여 2삼진을 곁들여 삼자범퇴로 어제의 실망스런 모습을 이어가지않고 좋은 투구를 보여줬다. 홀드 추가는 덤.

8월 28일 대구 두산전 경기에서는 1점차 상황에 올라와 이틀만에 또 다시 블론을 해버렸고, 이후 의도하지 않게 롱맨 역할을 연장 10회까지 하였다. 2.2이닝동안 62구를 던지며 선발투수로 나왔던 11년 이후 4년 3개월만에 가장 많은 투구수를 던졌다. 이날 패전투수는 정인욱.

9월 6일 대구 KIA전에서 9대 3으로 이기고 있는 8회초에 등판하여 삼구삼진을 곁들여 세타자 연속 삼진으로 이닝은 끝냈다.

9월 9일 대구 kt전에서 데뷔 첫 30홀드를 돌파하였다.

9월 22일 대구 NC전에서 홀드를 기록하고 총 33홀드가 되면서 한 시즌 홀드 팀 기록을 갈아치웠다.(기존 기록은 2006년 권오준)

9월 24일 수원 kt전에서 다시 홀드를 기록, 한 시즌 최다 홀드 타이(34홀드)를 세웠다.(기존 기록은 2012년 박희수)

10월 2일 대구 kt전에서 홀드를 기록해 한 시즌 최다 홀드 기록을 경신하였다.

10월 3일 목동 넥센전에서 1:0으로 앞선 상황에서 9회에 등판하여 아웃카운트 두 개를 잡고 36 홀드를 달성하였다. 기아전 37홀드로 늘릴지의 여부가 중요.

10월 5일 광주 KIA전에서 6:4로 앞서 8회 2사에서 등판하여 1이닝을 틀어막고 아웃카운트 하나 남기고 마무리 임창용에 넘겨서 37홀드를 달성했다.

그러나...

2.6.1. 도박 연루

원정 도박사건에 연루되어 충격을 주었다. 항목 참조.[14]

2.7. 2016 시즌

시즌 중 인터넷 불법도박, 도박 사이트 개설 자금 지원 문제가 터지면서 보류명단에서 제외되며 방출되었다.

3. 방출 이후

3.1. 2017년

결국 친구의 도박 사이트 개설 자금 지원과 관련한 1심 재판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12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수익금을 분배 약정을 했다는 점에서 안지만을 공범으로 판단했는데, 그나마 재판부에서 직접적으로 사이트 운영에는 직접 가담하지 않은데다 그동안 이로 인해 언론의 도마에 오르내리며 불이익을 받은 점을 참작해 집행유예 처분이 내린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안지만은 항소했다. 안지만의 항소로 인해 재판이 장기화되는데다, 앞서 언급했듯이 재판부도 안지만을 도박 사이트의 공범으로 판단했기 때문에[15] 향후 야구계 복귀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7월21일 항소가 기각되면서 원심이 유지되었다.안지만, 항소심도 집행유예

엠팍에 근황이 올라왔는데, 대구의 사설 야구교실에서 사회인야구 동호인들을 상대로 야구레슨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오후 두 타임 정규레슨과 비정규 투수레슨은 안지만 담당이다.

4월17일, 안지만 소유의 수성구 파동에 있는 5층짜리 다세대주택과 청도군에 있는 토지가 법원 경매에 올라왔다는 기사가 나왔다. 스포츠 뉴스가 아닌 경제 뉴스로 올라왔으며, 이 과정에서 해당 부동산들에 대해 삼성 구단이 21억원의 가압류를 걸어 둔 사실도 밝혀졌다. 가압류를 했다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구단에서는 계약금의 일부인 21억원의 반환을 요구했으나, (안 돌려주고 버틴 것이든, 정말로 돈이 없어서 못 돌려 준 것이든) 이에 응하지 않아 가압류를 한 것으로 보인다.[16]

3.2. 2018년

4월 20일, 대구법원은 도박 개장의 혐의를 인정하여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시간 120시간을 선고했던 원심을 깨고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시간 80시간을 선고했다.기사 집행유예 이상의 형이 선고되었으니 안지만은 아시안 게임 연금을 받지 못하고 이미 받은 연금은 환수된다.

5월 24일, KBO는 안지만에게 유기실격 1년의 징계를 내렸다. 따라서 1년간은 어떻게 팀을 구해서 복귀하더라도 활동이 불가능하다.

8월 24일, 지난해 1월 제기된 FA계약금 반환 소송에서 삼성라이온즈 측이 승소했다. 대구지방법원은 안지만에게 삼성라이온즈가 선지급한 FA계약금 21억 2000만원을 반환하고 소송비용을 부담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3.3. 2019년

2019년 2월, 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자신의 근황을 알리고, 불법 도박사건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였다. 링크

불법 도박사건 관련 해명 동영상의 내용을 요약해보자면,
1. 현재는 사회봉사, 운동 등을 하면서 자숙생활을 하고 있다.

2. 과거 사건 이후로 야구 레슨장을 운영 및 레슨을 하며 지낸다고 소문이 났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며 과거 같이 운동했던 친구의 레슨장에서 개인운동 목적으로 다닌 것이다.

3. 언론에서는 마카오 도박장에서 숙박과 비행기 표를 제공 받았다고 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며 자신의 자비로 지인들과 같이 마카오 여행을 간 것이다.

4. 과거 모 언론사에서 전화 인터뷰는 고속도로 운전중에 제대로 의사전달이 잘 안되던 상태이고 이전에 기자가 보낸 문자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로 대답했고 정중하게 통화를 그만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계속해서 같은 질문만 반복하며 신경을 날카롭게 만든후 답변한 부분만 잘라서(악의적 편집) 보도된 것이다.

5. 위 내용이 보도된 이 후 악성 댓글로 정신적인 큰 피해를 받았고, 그 후유증으로 우울증을 겪으며 힘들게 지내왔었다.

이후 2015년의 계약이 이면계약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공개되지 않은 옵션이 따로 있었다는 것[옵션내용]. 2015년의 옵션금액은 약 5억 4천만원이고, 만약 2015년과 똑같은 기록을 남은 3년동안 기록했으면 약 92억을 받게 되는 것이었다. 그 당시엔 계투로 65억도 거품이라는 평이 많았는데, 공개되지 않은 옵션까지 포함하면...

4. 이야깃거리

  • 사실 보기보다 많은 이닝을 뛰었는데 내구성이 좋아 티가 잘 나지 않는 선수이다. 삼성의 정현욱 - 권혁 - 권오준 - 안지만 - 오승환 라인 중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한 선수로, 선뚱 재임기간 동안 잔부상 없이 무려 408이닝이나 소화하는 괴물같은 모습을 보였다. 알고 보면 거의 기아 시절의 신용운 마냥 구르며 혹사를 당한 셈. 허나 크보 최고 수준의 내구성 덕에 혹사당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안습. 안지만의 소화이닝을 찾아보고서야 굉장히 놀란다. "아니 이닝을 이렇게 많이 소화하고도 평균자책점이 이거밖에 안돼요?" 그치만 그도 사람인지라 2009년에는 어깨 부상으로 시즌 중반에 아웃되기도 했다. 2012년에도 시즌 끝나고 오른쪽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는데 2013시즌 중반에 합류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거의 시즌 초반에 복귀하는 괴물같은 회복력을 보이기도.
  • 2012 시즌 후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고나서 연봉 1차 협상 당시 팔꿈치에서 뽑아낸 뼛조각을 가져와 5억 원을 달라고 큰소리를 쳐 실무자를 당황시켰다. 역시 도라이 #
  • 이대형에게 통산 2호 홈런을 맞은 장본인이기도 하다.[18] 409 대첩의 승리투수이다.
  • 투구폼이 다소 특이한데, 와인드 업이 느리다. 왼발을 바닥에서 뗀 뒤 왼발이 바닥에 닿을 때까지 굉장히 느리게 가다가 발이 땅에 닿을 즈음 속도가 빨라지면서 투구를 하는 폼. 또한 몸을 뒤로 기울이면서 몸의 회전을 이용해 공을 던지는 독특한 폼으로 투구한다.
  • 드물게도 와인드업 포지션과 세트 포지션의 폼이 거의 같고, 속도만 차이난다. 보통은 세트 포지션에서 동작이 생략되기 마련이다.[19] 이 특성을 이용하여 와인드업 포지션과 세트 포지션을 자유롭게 섞어서 투구하는데 이 때문에 이중동작 의혹을 간간히 받기도 한다. 2013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도 두산 벤치의 항의를 받았다.[20]
  • 직구가 아주 좋다. 오승환의 직구에 묻혀 잘 언급이 안 되는 점인데 잘 할때의 직구를 보면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빨라지고 공끝이 변하는 것처럼 보일정도. 주로 직구와 슬라이더의 투피치로 경기를 이끌어간다. 또한 견제할 때의 모션이 상당히 빨라 2011 시즌에는 20개 가까이의 견제사를 잡아냈으며, 위기상황에서 올라와 견제사 하나만으로 불을 끄는 모습도 간혹 보여준다.
  • 팀의 고정 마무리였던 오승환과 닮은 구석이 많다. 직구 슬라이더 투피치는 물론 구속 이상의 구위, 게다가 룸메이트인데다 이중 동작 의혹을 받은 것까지 비슷하다. 결국 오승환이 한신 타이거즈로 떠난 2014 시즌부턴 팀의 마무리를 맡기로 하였다.
  • 많은 야구선수들이 그렇듯 싸이덕후. 꾸준하고 빵빵 터지는 방명록 댓글로 유명하다. 웬만하면 싸이를 끊을 것을 권장하는 야구팬들이 "굳이 싸이를 하려면 안지만처럼"이라고 말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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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룸메이트인 오승환의 증언에 따르면 코골이가 심하다고 한다. 안지만의 코골이에 새벽에 자주 깬다고 하는데 2012 KS 3차전에서 대량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고도 코 잘골며 잤다고 한다.관련 기사
  • 롯데 특유의 응원에도 즐겁게 웃으면서 즐기는 강한 멘탈을 소유하고 있다. 한화 이글스의 응원곡인 나~는 행복합니다 를 불펜에서 흥겹게 부르는 모습이 찍히는가 하면, 강민호 응원가까지 부르며 상당히 상대방 응원가를 마음에 들어하는 듯.
  • 2008년 말부터 부산 출신인 윤성환과 서울 출신인 오승환이 대구구장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했는데, 거기에 대구 출신인 안지만이 합세하여 세 사람이 잠깐 동거를 한 적 있다. 오승환에 의하면 잘 때 불끄고 자라는 잔소리에도 늘 불과 TV를 켜놓고 잔다던지, 화장실 변기가 막혔는데 수리할 때 그 안에서 먹고 난 햄 깡통이 나왔다던지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깔끔한 형들에 비해 청소에 소홀한 게으른 막내였다고 한다. #
  • 파일:PeTEIMz.jpg
8회 무사 만루 상황에서 등판한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에 대한 대답. 불펜투수로서 가장 적절한 멘탈의 소유자인 듯하다.관련 게시물.
  • 불펜 투수라서 묻히기는 하나 통산 홀드가 177개로 역대 1위이다. 2위는 143개의 권혁과 34개, 3위는 129개인 정우람 순으로 마무리로 전업한 정우람과 꾸준한 혹사 여파로 커리어가 위태로운 권혁이기때문에 당분간은 깨지기 힘든 기록이다. 사실 불펜투수가 가장 잘하면 일반적으로 마무리로 바뀌기 때문에 사실상 못깰 기록이라고 추측하는 편.

4.1. 트레이드 마크였던 힙합모자

롯데의 강영식이 삼성에 있었을 때 둘이서 누가 모자를 더 멋있게 쓰나 라는 내기를 했는데 동료들의 도움으로 '일자챙+삐딱'이라는 결과가 나와서 쓰기 시작하였다.

힙합모자는 처음엔 간지나려고 일반모자챙을 엉덩이로 펴서 만들었는데, 공교롭게 이를 본 프런트에서 힙합모자를 출시, 그리하여 지금의 모자가 되었다. 당시의 모자를 보면 현재와 다르게 어색하다.

그 후 다시 본래의 모자를 쓰려고 하자 양준혁이 손수 모자챙을 펴주며 "구부리면 죽는다."는 말과 함께 절대로 모자챙을 굽히지 말라는 엄령을 내려 지금까지 힙지만이라는 별명처럼 힙합스타일로 모자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원년 MVP인 박철순은, "다소 불량스럽게 보이겠지만 투수라면 그런 맛도 있어야 한다." 라고 긍정적으로 평했다.#

다만 예의를 갖출 필요가 있는 상황에서는 모자챙이 굽어 있는 일반 모자를 쓰고 나선다. 2011년 9월 7일에는 이날 세상을 떠난 레전드 장효조 2군감독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모자를 반듯하게 쓰고 경기에 나갔으며, 2014년 4월 22일에는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실종자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일반 모자에 희망이라는 문구를 새기고 썼다. #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태극마크를 달고 중요한 경기에 나서는 만큼 마음가짐을 위해서라도 반듯하게 써야하지 않겠나' 라면서 전 경기 모자를 반듯하게 쓰고 던졌다.

도박 사건으로 구설수에 오른 이후 2016시즌부터는 힙합 모자가 아닌 일반 모자를 쓰고 경기에 나서고 있다. 도박 사건에 대해 어영부영 넘어가려 하는 모양새 등을 취하고 있어 안지만에 대한 팬들의 시선은 은퇴할 때까지 곱지 못할 것이며 따라서 여론을 의식해서라도 안지만의 힙합 모자를 다시는 보기 어려울 듯 보인다. 그리고 2016년 11월 30일 보류명단에서 제외, 방출되면서 영원히 보지 못할듯.

참고로 안지만의 일자챙 힙합모자는 모바일 야구게임인 이사만루 시리즈에서도 구현되어 있다.

5. 연도별 성적

  • 붉은 글씨는 리그 1위 기록.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푸른 글씨는 KBO 리그 역대 최고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2 삼성 1군 기록 없음
2003 14 21⅔ 1 0 0 0 1.000 7.89 31 6 9 11 19 19 1.71
2004 12 22 0 0 0 0 0.000 7.77 30 7 12 13 19 19 1.77
2005 63 82⅔ 8 3 0 14
(3위)
0.727 3.48 65 8 43 72 35 32 1.22
2006 7 6 0 1 0 2 0.000 9.00 10 1 6 4 10 6 2.50
2007 53 108 5 3 0 7 0.625 3.42 100 7 44 83 43 41 1.32
2008 51 69⅔ 5 1 0 9 0.833 2.97 67 5 30 64 25 23 1.36
2009 17 51 2 4 0 1 0.333 5.12 54 5 19 32 31 29 1.41
2010 67 92 9 3 9 8 0.750 2.74 74 6 32 95 32 28 1.08
2011 47 86 11 5 0 17 0.688 2.83 74 3 24 77 30 27 1.09
2012 56 63⅓ 1 2 0 28
(2위)
0.333 1.71 42 1 20 58 12 12 0.98
2013 54 63⅔ 6 2 0 22
(3위)
0.750 3.11 46 3 26 60 23 22 1.08
2014 55 62⅓ 6 3 1 27
(2위)
0.667 3.75 51 5 34 67 27 26 1.30
2015 65 77⅓ 4 3 0 37
(1위)
0.571 3.38 76 8 28 94 29 29 1.30
2016 31 37⅓ 2 5 5 5 0.286 5.79 44 9 19 41 26 24 1.58
KBO 통산
(14시즌)
593 844 60 35 15 177
(1위)
0.632 3.59 764 74 346 773 361 337 1.27

[1] 2013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찍힌 사진이다.[2] 대구상원고등학교[3] 2011년부턴 드렁큰타이거의 몬스터를 썼으나, 언제 바뀌었는지 엑스크로스의 크레이지를 쓰고 있다. 언제 바뀌었는지 아시는 분은 추가바람[4] 이마저도 너무 깡마른 게 부끄러워 늘려서 등록한 것이었다. 실제로는 입단 당시에 61kg이었다. 2015년 7월 10일 기사[5] 보약을 먹여도 살이 불지 않았다고 한다. 본인의 말로는 경산의 밥이 너무나 맛있어 계속 먹다보니 이렇게 됐다고.[6] 이것에 빗대어 다른 투수들이 이 비슷한 상황을 연출할 때 안지만 놀이라고 부르게 된다. 만루 상황을 즐긴다고 해서 만루변태라는 별명도 추가[7] JMAN을 지 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지,만.안이라는 뜻이다.[8] 사실 구원 등판으로 얻은 승리가 더 많다. 선발 등판으로 3승, 구원 등판으로 7승 기록.[9] 특히 한국시리즈에서 기록한 4홀드는 2008년 당시 SK 와이번스 소속이었던 이승호가 기록한 4홀드와 타이기록이다.[10] 목동에서 친 홈런이었는데 목동구장은 외야석이 없고 외야에 불펜이 있다.[11] 불펜보강에 눈이 뒤집힌 옆나라 구단에서 템퍼링을 넣을 정도로 쟁탈전이 심했다.[12] 이후 2015년 말 SK에서 한화로 이적한 정우람의 4년 84억으로 안지만의 불펜투수 FA 최고액 계약은 1년 만에 경신되었다.[13] 종전 기록은 2012년 박희수와 2014년 한현희의 15경기 10홀드.[14] 돈을 잃었다가 국내로 돌아와서 갚았다는 의혹이 있다.[15] 그동안 법원 판례에서 불법 도박 사이트에 돈을 댄 사람도 공범으로 인정해 왔다.[16] 계약금이 35억원이나 되었기때문에 돈이 없어서 못 돌려주었다고 보기는 어렵다.아니면 그 35억을 도박에 탕진했거나[옵션내용] 매년 KBO 선수 등록시 1억5000만원/1군 145일 이상 등록시 1억원/1군 1경기 출전때마다 200만원/1군 1이닝 투구때마다 200만원/팀 사정에 따라 선발 등판시 1경기 1000만원/선발 등판시 1이닝 100만원이다. - 기사내용[18] 그것도 잠실야구장에서. 타구도 좌측 펜스를 넘어갔다.[19] 윤성환이나 오승환같이 이중 키킹의 폼을 가진 투수의 경우 특히 두드러지는데, 발을 드는 과정이 아예 생략되는 수준.[20] 이렇게 섞어 쓰게 된 이유가 재미있다. 류중일 감독이 같은 이유로 항의한 적이 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제서야 그렇게 해도 되는 줄 알고 섞어 던지게 되었다고.[21] 매년 삼성 스프링캠프의 행사인 마라톤 대회에서 하위권이나 꼴등을 차지, 대개 투수는 빠른데 왜 꼴찌를 했냐고 묻자 본인이 자신은 포수 같은 투수라서 그런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22] 사실 포수 보호구 하나하나는 생각보다 많이 가벼운 편이긴 하나, 보호구에 익숙한 포수가 아닌 다른 포지션의 선수가 이걸 쓰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 꽤나 답답하고 힘들다. 거기다 안지만은 내야수(유격수) 출신이다보니 포수 마스크와 장비는 거의 쓸 일이 없었다.괜히 포수가 3D 포지션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