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8 20:14:24

히로시마 도요 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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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문서
<colbgcolor=#b30000><colcolor=#ffffff> 모기업 관련 정보 모기업 파일:마쓰다 로고.svg 마츠다
일본시리즈 우승
★★★
1979 · 1980 · 1984
리그 우승
(9회)
1975 · 1979 · 1980 · 1984 · 1986 · 1991 · 2016 · 2017 · 2018
클라이맥스 시리즈 2013 · 2014 · 2016 · 2017 · 2018 · 2023
시즌별 요약 2013 · 2014 ·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2022월별문서 · 2023월별문서 · 2024월별문서
현역 선수 경력 야수 | 키쿠치 료스케/선수 경력 · 아키야마 쇼고/선수 경력 · 사카쿠라 쇼고/선수 경력
투수 | 모리시타 마사토/선수 경력 · 쿠리바야시 료지/선수 경력
경기장 1군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히로시마 · 2군 히로시마 도요 카프 유우 연습장 · 지방 홈구장 미요시 킨사이 스타디움
과거 히로시마 시민 구장
홈 중계 채널 파일:J SPORTS 1 로고.svg
주요 인물 구단주 마츠다 하지메 · 감독 아라이 타카히로 · 선수회장 오세라 다이치 · 주장 공석 · 어드바이저 쿠로다 히로키
스카우트 브래드 엘드레드
구단 상세 정보 역사 · 선수단 및 등번호 · 역대 선수 · 응원가 · 유니폼 · 카프죠시 · 2022년 센트럴 리그 3위
틀 문서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육성 선수역대 감독영구 결번 | 역대 1라운드 지명 선수
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 | 마츠다 산하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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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히로시마 도요 카프 엠블럼.svg
히로시마 도요 카프
<colbgcolor=#b30000><colcolor=#d9d9d9> Hiroshima Toyo Carp
[ruby(広島, ruby=ひろしま)][ruby(東洋, ruby=とうよう)]カープ
구단 법인명 ㈜히로시마 도요 카프
株式会社広島東洋カープ
창단 1949년 11월 28일 ([age(1949-11-28)]주년)
연고지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구단명 변천 히로시마 카프 (1950~1967)
히로시마 도요 카프 (1968~ )
홈 구장 히로시마 종합구장 (1950~1957)
히로시마 시민 구장 (1958~2008)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히로시마 (2009~ )
2군 구장 히로시마 도요 카프 유우 연습장 (1993~ )
모기업 (명목상) 마쓰다[1][2]
감독 25 아라이 타카히로 (新井貴浩)
선수회장 7 도바야시 쇼타 (堂林翔太)
주장 공석[3]
킷 스폰서 미즈노 (홈 유니폼), 데상트 (원정 유니폼)
마스코트 파일:히로시마 도요 카프 마스코트(카프 보야).svg 파일:히로시마 도요 카프 마스코트(슬라이리).svg
카프 보야[4] 슬라이리[5]
구단기 파일:히로시마 도요 카프 구단기.svg
역대
한국인 선수
김무종[6] (1973~1982)
박창언[7] (1982~1985)
신성현[8] (2009~2013)
홈 경기 중계 채널 파일:J SPORTS 1 로고.svg
링크 파일:히로시마 도요 카프 심볼.svg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일본시리즈 우승 (3회)
1979, 1980, 1984
센트럴리그 우승 (9회)
1975, 1979, 1980, 1984, 1986, 1991, 2016, 2017, 2018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2회)
2016, 2018
포스트시즌 진출 (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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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30000> 일본시리즈 1975년, 1979년, 1980년, 1984년, 1986년, 1991년, 2016년, 2018년
클라이맥스 시리즈 2013년, 2014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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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구단 역사3. 홈구장4. 2군 구장5. 응원가6. 유니폼7. 관중수 추이8. 인기와 팬덤
8.1. 티켓 구하기 너무 어려워!
9. 팀 특징
9.1. 팀 컬러9.2. 뛰어난 스카우트진9.3. 기업구단 형태의 개인소유 구단
10. 선수단11. 역대 선수12. 역대 감독13. 역대 성적1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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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external/www.asahicom.jp/AS20160908001843_comm.jpg
히로시마의 자긍심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프로야구단. 연고지는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 피폭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던 히로시마 시민들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창단된 아시아 최초의 시민구단이었다.[9] 히로시마 팬들의 열정적인 모습과 팀의 컬러가 붉은색이라 팀의 애칭으로 아카헬(赤ヘル, 붉은 헬멧) 군단이라 불린다.

팀 명칭인 카프는 잉어란 뜻으로 히로시마를 흐르는 오타 강(太田川)에 잉어가 많이 서식해서, 그리고 원폭 투하로 무너졌던 도시를 살리자는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고이노타키노보리([ruby(鯉, ruby=コイ)]の[ruby(滝登, ruby=タキノボ)]り),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잉어'[10]에서 유래한다.

일본프로야구 12개 구단 중 가장 가난한 구단이다. 자금력 자체가 약하다는 문제도 있으나 애초에 경영진이 돈을 쓸 의지 자체가 없는 게 문제. 후술하겠지만 명목상의 모기업은 MAZDA지만 실질적으론 창업주 일가가 구단을 보유 및 운영하고 있으며, MAZDA는 구단 필두주주를 유지 중이긴 하나 구단 경영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론 구단이 직접 자생 경영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11]

마지막 일본시리즈 우승을 한 지 가장 오래된 팀이다.(1984년 우승, 2023년 기준으로 39년) 비교 범위를 '아시아의 모든 프로 스포츠 리그'로 넓힐 경우에도 가장 오래된 팀이다. 2023년 이전까지 맨날 우승 못한다고 징징거리던 한신 타이거스도 히로시마한텐 1년 밀렸다.[12] 2007년까지는 주니치 드래곤즈가 우승 못하기로는 독보적으로 오래된 팀으로 버티고 있었는데[13] 이후로는 히로시마가 이 부문 최고 기록을 갖게 되었고, 그 사이에 후발 신생 구단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마저 우승을 했다.[14]

그래서 칸사이를 대표하는 한신 타이거스, 만년 약체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와 더불어 센트럴 리그 최후의 20세기 우승팀 삼연성(?)을 구성 중이다. 더구나 히로시마는 한신과 더불어 헤이세이 연간동안 일본시리즈를 우승하지 못했다. 삼연성 중 하나인 요코하마는 그래도 헤이세이 연간인 1998년에 일본시리즈 우승은 이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2팀이 우승에 얼마나 굶주렸는지 알 수 있을 정도. 심지어 퍼시픽리그의 마지막 우승이 20세기인 유일한 팀이었던 오릭스 버팔로즈2022년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하는 바람에 20세기 우승팀은 카프를 포함한 센트럴리그 3팀만 남았었다.[15] 그러다가 한신이 2023년에 드디어 우승을 차지하면서 단 둘 뿐인 21세기에 우승 못한 팀이 되었다[16].

여담으로 요코하마와 더불어 한국에서 교육과정을 거친 한국인 선수가 단 한 번도 1군 무대에서 뛰지 못한 유이한 일본프로야구 팀이기도 하다. 2008년 드래프트에서 한국인 선수인 신성현을 지명한 적은 있으나, 신성현은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선수였고 그나마도 1군 경력 없이 방출되었다.

2. 구단 역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히로시마 도요 카프/역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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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홈구장

파일:external/img-cdn.jg.jugem.jp/20160908_1378366.jpg
파일:external/www.advenpro.net/L.jpg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히로시마 문서
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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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군 구장

파일:広島東洋カープ由宇練習場.jpg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히로시마 도요 카프 유우 연습장 문서
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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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응원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히로시마 도요 카프/응원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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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유니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히로시마 도요 카프/유니폼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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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관중수 추이

연도별 총관중 일일 평균
2012년 1,589,658명 22,079명
2013년 1,565,598명 21,744명
2014년 1,904,781명 26,455명
2015년 2,110,266명 29,722명
2016년 2,157,331명 29,963명
2017년 2,177,554명 30,670명
2018년 2,232,100명[17] 31,001명
2019년 2,223,619명 31,319명
2020년 537,857명 8,964명
2021년 976,306명 13,560명
2022년 1,968,991명 27,732명
2023년 2,054,852명 28,540명

2014년을 기점으로 관중과 팬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현 시점 센트럴 리그에서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와 더불어 가장 빠르게 관중, 팬덤이 늘어나고 있는 구단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에는 홈 구장 뿐만 아니라 원정 경기까지 꽉 채우는 위엄을 보여준다. A클래스의 위력은 뭔가 다르다.

2017년 구단 최초로 한 시합 평균 3만 관중 돌파 달성에 성공했다.[18]

8. 인기와 팬덤

파일:external/stat.ameba.jp/o0800045013125568108.jpg 파일:external/8b3a92a55a901aaa964f88d545169c2a779d2c3eb9253d97b11aa4b57daa2c23.jpg

2014년에 발표한 구단인기 순위에서 무려 292만명이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팬이라고 밝혔고, 이는 요미우리 자이언츠[19], 한신 타이거즈[20]에 이어 3위의 기록이다.출처/일본어 원문 하지만 이 두 팀의 연고지가 대도시인 점을 감안한다면 팬들의 충성도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21] 더군다나 히로시마 시의 인구는 119만명, 히로시마 현의 인구는 282만명인데 도요 카프를 응원한다고 밝힌 사람의 수가 히로시마 현 인구보다 많고 히로시마 시 인구의 3배 가까이 되는 셈이다. 2군의 경우에도 히로시마 도요 카프 유우 연습장의 총 입장 관객수가 2만명을 넘어가는데 이는 일본프로야구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유우 연습장의 접근성이 일본의 2군구장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최악인 것을 감안하면 더 놀라운 일.

2015년, 구단 최초 200만 관중을 돌파했다.

2016년,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센트럴 리그에서의 맹활약에 힘입어 히로시마 지역 시청률이 무려 45%에 육박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25년만의 우승에 히로시마 지역의 TV 중계 시청률은 거의 폭발 수준에 이르렀다. 스포츠닛폰을 비롯한 일본 언론들의 12일 보도에 따르면, 히로시마의 우승이 확정된 10일 요미우리전[22]의 시청률은 히로시마 지역 평균 60.3%를 기록했다. 오후 9시44분부터 9시48분까지의 순간 시청률은 무려 71%에 이르렀다. 중요 경기뿐만 아니라 히로시마 지역 5개 방송국(NHK+4개 민영방송)이 중계한 2017년 정규시즌 95경기의 평균시청률로도 일본경제신문 조사 결과 30% 이상을 기록했다. 민영방송과 공영방송을 막론하고 일본 방송에서 20% 이상의 시청률은 매우 높은 수치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례적인 일.

이렇듯 지방도시 연고 구단이라는 점과 지역밀착형 마케팅, 시민구단으로서의 역사라는 특수성이 더해져서 팬들의 단결력만은 12개 구단 중 최고다. 하지만 이게 꼭 좋은 쪽으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 대표적인 예를 꼽자면 올스타 투표때만 되면 집단으로 실력행사에 들어가는 팬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이미지만 보면 한신이 가장 많을 것 같지만, 실제로 한신팬은 아무리 한신의 선수라도 성적이 안좋으면 가차없기 때문에 이런 쪽으로는 욕을 안 먹는다. 가장 최근의 사례를 꼽자면 2009년 올스타 투표 마무리 투수 부문에서 방어율 3점대의 나가카와 카츠히로가 투표수에서 임창용의 턱밑까지 쫓아왔던 것. 실제로 마감 3일 전에 나가카와가 블론세이브를 기록하지 않았으면 1위를 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23] 이런 무개념한 모습 때문에 2ch에서는 '그렇게 멍청한 놈들이니까 원자폭탄이나 쳐맞지' 하고 욕하는 사람도 많다. 일본도 지역감정 쩔어준다는 대표적인 증거.

불어난 인기만큼 안티들도 매우 많아졌다. 최근 발표된 싫어하는 구단 분포도에선 전국 47개의 도도부현 가운데 39개 현에서 히로시마를 싫어한다는 결과가 나왔고 종합 투표에서도 싫어하는 팀 2위에 올랐다.[24] 1위는 당연히... 주된 원인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센트럴리그의 강호로 군림했었고 경기장 내외에서 갖은 민폐를 끼치는 카프죠시들의 상식 밖 행동으로 보여진다. 최근 상위권 다툼과 좌석문제 등으로 한신 팬덤의 중심인 오사카에서조차 히로시마 안티가 1위로 나타난 게 특징.

그리고 히로시마에서도 카프는 티켓 구하기 어려운 구단으로 이에 대한 팬들의 불만이 상당한 상황. 실제로 1997년부터 매년 3월 1일 연간티켓 발권이 끝나면 일괄적으로 일반석 표를 판매하는 방식을 취해 시즌권, 기업 접대 및 홍보분이 미리 나가고 나머지를 전매업자 및 여행대리점(원정팬을 위한 티켓분)들이 싹쓸이하다 보니 팬들이 티켓을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로 인해 카프가 2000년대 이후 호성적을 거두며 일본의 대표적 티켓 전매사이트 '티켓캠프'에 올라온 히로시마 홈경기 티켓 수가 한신, 요미우리 홈 개최분을 거뜬히 뛰어넘고 인터넷에서 플미충들이 판을 치는 사태가 매년 벌어지고 있어 이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는 중. 한신도 똑같은 일괄판매 방식을 적용 중이나 최근 한신이 부진하면서 티켓을 구하기 쉬워졌다고 한다.

히로시마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나 만화에서는 희망의 상징으로 곧잘 등장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맨발의 겐라이트노벨메이드 카페 히로시마.

파일:external/cache2.nipc.jp/bb-tm140511-karpjyoshi-ns-big.jpg

성적이 반등한 2013년 경부터 간토지역을 중심으로 여성팬들이 대거 생성되면서 카프죠시(カープ女子)[25]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는 사회 현상으로 자리잡았다.[26]
파일:external/blog-imgs-63.fc2.com/2162_10.jpg 파일:external/66.media.tumblr.com/tumblr_odbo6feCt91sqk8veo3_r1_540.png
- 앞으로도 카프죠시가 계속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27] 2015년 시즌 히로시마 홈구장 관중 성별 조사.
어째선지 남성팬보다 여성팬이 더 많다.

2012, 13 시즌을 거치며 팀이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개편되었고, 짠돌이 구단 탓에 매년 스타선수들을 유출시키며 약체화가 지속되어 팀에 남은 선수들만 고생하는 모습이 동정심을 자극한데다 왜 갑자기 이 팀이 생각나냐??, 응원 방식이 재밌어서 본인이나 가족, 친척, 친지들 모두 히로시마와는 큰 상관이 없는 수도권 지역의 여성들이 대거 히로시마의 팬이 되었다.[28] 여기에 일본의 유명한 토크쇼 아메토--크에서도 히로시마 카프편이 호평받으며 팬층 확산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리고 2013 시즌 후반부터 마치 그 동안의 고생이 보답을 받는 듯 성적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22년만에 가을야구를 하게 되자 하나의 유행이 된 것. 이들이 수도권 지역의 원정경기에 몰려다니기 시작하면서 2013년, 2014년에 도쿄돔에서 가장 많은 관중을 동원한 팀이 최고의 라이벌 팀도 아니고, 지역 라이벌 팀도 아닌 히로시마가 되는 현상까지 발생했고 예전 같으면 그들만의 리그 수준이었던 요코하마 스타디움메이지진구 야구장의 히로시마전 관중동원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이들 구장에서 히로시마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좌측 외야 스탠드 쪽에 붉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한데 그게 다 히로시마 팬들이다. 그러나 구단 입장에서는 이들 수도권 지역의 여성 팬들이 경기를 주최하는 수도권 지역 상대팀 영업담당만 신나게 하지 구단의 입장수입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지라 이들의 열기를 마쓰다 스타디움의 관중동원으로 연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2014년 5월에는 이들 수도권 지역의 여성 카프팬들을 대상으로 신칸센을 전세내서 히로시마 홈 경기 단관응원을 기획하여 호평을 받기도 했다.
상단/하단 스쿼트 응원
또한 히로시마의 특이한 응원으로 '스쿼트 응원'이 있다. 원래는 관중이 많아보이게 하기위한 응원법이었다고. 선수 응원가는 한 번 부르고 그 다음은 선수 이름을 팬들이 앉았다 일어났다를 번갈아가면서 외치는 것인데 재미있으면서도 멀리서 보면 위엄도 있고 인기가 많은 응원 방식다. 살 빼기에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올스타전이나 국대경기때 타팀 팬들도 다들 따라하고 싶어서 안달이 날 정도. 보통은 자신이 하고 싶은 순서에 일어나지만, 옆의 상단/하단 응원처럼 나뉠 때도 가끔 있다. 대부분 팀의 외야 응원단이 서서 응원하는 반면 히로시마 서포터즈는 스쿼트 응원을 위해서 공격 때도 앉아있다.

히로시마에서 '마에다, 오오시마, 시노다 하면 무엇?'하고 물으면 AKB48이 아닌 카프 선수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29]

일본국 내각총리대신 기시다 후미오 역시 카프의 팬이다. 출생은 도쿄도이지만, 키시다家가 히로시마의 유지인데다 본인의 지역구에 카프의 홈구장이 있다.

게닌 아리요시 히로이키가 이 팀의 팬이다. 히로시마 출신의 야구팬이라면 십중팔구 카프팬.

포켓몬에서도 잉어킹의 노래로 마켓팅을 하면서 당연히 잉어킹의 날로 잉어킹 유니폼을 한 적이 있다 실제로 히로시마 카프를 모티브로 한 잉어킹스는 포켓몬에서 두번이나 언급 될정도로 포켓몬 세계관에서도 인기가 있는 팀이고 성적도 좋은 팀으로 소개가 되고 있다.

세오 코지의 만화 러브메이트의 주인공 아키츠키 야마토는 히로시마 출신으로, 카프의 골수팬이라는 설정이다(실제로 세오 코지 작가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열렬한 팬이다).

최근에 케모노 프렌즈가 인기를 얻으면서 아라이상이 파크의 위기인 것이다를 카프의 위기 인 것이다! 라고 패러디하고 있다.[30] 더군다나 팀 성적도 좋고 해서 케모노 프렌즈 라디오에서도 이것에 대해 언급을 하였다.

프로레슬러나이토 테츠야가 팬임을 직접 인증하기도 한 팀이다. 최근에는 시구를 직접 했을 정도로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2018년부터는 나이토의 등장곡을 카프 응원단이 응원 구호로 사용한다.

용자왕으로 잘 알려진 성우인 히야마 노부유키도 히로시마 출신이라서 카프의 열렬한 팬으로 유명하다. 이분들에게 야구 이야기를 하면 십중팔구 카프 이야기가 나올 정도.

성우 미즈타 와사비가 이 팀의 팬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 영향으로 2019 시즌 응원가도 불렀다.

성우가수 Machico가 출신지의 영향으로 열혈팬이다. 2022 시즌 야구 응원가로 참가한 적이 있다.

8.1. 티켓 구하기 너무 어려워!

홈구장 신축과 더불어 성적도 좋아지면서, 관중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는 "팀이 잘나가니까 인기도 생기네" 정도였는데, 구로다가 복귀한 2015년 시즌부터는 본격적으로 매년 티켓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구로다가 복귀하자마자 8,300장 정도의 연간 지정석이 바로 매진되며, 본격적인 티켓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선예매 혜택이 있는 유료 팬클럽은 모집 개시 6분만에 정원을 채우는가 하면[31], 2016년부터는 아예 연간지정석 신규가입을 받지 못하고있다.[32] 이도저도 실패한 일반팬은 매년 3월 초의 일반 판매를 노려야하는데, 1월 말부터 매표소 앞에서 텐트 치고 대기하는 수준이다. (2월 말일에 줄 순서대로 정리권을 배부하고 해산시킨 후, 3월 1일부터 정리권 번호 순서대로 티켓을 판매한다.) 게다가 한국처럼 경기 2주 전부터 예매를 시작한다던가 하지 않고 전경기 티켓을 동시에 발매하다보니, 3월 1일에 티켓을 못 구한 팬은 아예 올해 직관을 포기해야한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직관 가고싶으면 연간지정석을 끊은 친구를 미리 사겨두어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올 정도.

결국 2018년부터 DeNA, 야쿠르트, 주니치 경기에서는 원정 응원석[33]의 일부 구역을 홈 응원석으로 판매하는 임시 방편을 도입했다. 당연히 타팀팬들은 안 그래도 부족한 원정팀 응원석이 줄게되어 불만을 토로하고 있으나, 그러거나말거나 홈 팬들은 일반 판매 개시와 동시에 전일정의 모든 지정석 티켓을 매진시켰다. 2020년 지금도 이 정책을 유지중이고 이제는 교류전에도 적용시켜 파리그 원정팬들도 축소된 원정석으로 관전해야한다.

구단 측도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었는지 2019년에는 정리권 추첨권을 배부했는데, 이게 도리어 팬들의 불만을 더 키우고 말았다. 정리권 추첨권이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여태까지 선착순으로 배부하던 정리권을 추첨해서 배부하겠다라는 뜻이다. 일본시리즈 티켓도 이렇게 판매하지는 않는다![34] 구단 측은 2.5만장 정도 추첨권을 배부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당연히 팬들이 몰렸고, 만에하나를 위해 준비한 5만장을 모두 배부했다. 그 중 당첨 수량은 2100장이니, 당첨 확률은 고작 4.2%. 다시 강조하자면, 저 4.2%는 티켓을 구매할 수 있는 확률이 아니라 티켓을 구매하는 줄에 설 수 있는 확률이다.

2020년에는 더더욱 심각해졌다. 팬클럽 회원의 혜택이었던 선예매가 없어지고 ‘우선 추첨’으로 바뀌었는데, 물론 응모하여 당첨된 사람은 극소수이다. 아무 쓸모도 없는 회원카드와 구린 디자인의 팬클럽 한정 유니폼과 팬북 한 권만이 팬클럽 혜택이 된 셈이다.[35] 그리고 구단측은 20만장의 정리권 추첨권을 준비하여 그 중 당첨 수량이 1200장이라고 밝혔는데, 즉 확률은 0.6%이다. 2019년의 4.2%도 불만이 폭발하기 직전이었는데, 그것보다 7배나 더 힘들어진 것이다. 현실 가챠… 아니 그냥 로또나 다름 없다.[36] 그것도 모자라 구단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마스크를 착용하고 주변 사람과 2m 이상 떨어져서 줄을 설 것을 당부했는데… 혼잡이 뻔히 예상된다면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외출을 자제시키기는커녕 티켓 경쟁을 부추기는 구단의 처사에 야구팬들은 그야말로 맹비난을 쏟아내는 중. 이렇게 힘들게 표를 구했는데도 무관중 경기 때문에 6월달까지의 티켓은 종이쪼가리가 되어버렸다

2021 시즌에는 유료 팬클럽의 예매 혜택이 (기존 내야자유석이었던) 2층 내야지정석 우선 추첨으로 대폭 축소되어[37] 팬클럽 운영 취지가 사실상 실종된 거 아니냐는 거센 항의를 받는 중이다. 이 팬클럽조차 기존회원[38]을 제외하면 신규회원[39]조차 응모하여 당첨된 1만명 안에 들어야한다. 기업 고객이 아니면 특별석에 앉을 수 없고, 연간 고객이 아니면 1층에 앉을 수 없고, 팬클럽에 들지 않으면 자유석조차 앉을 수 없다. 기존 회원만으로도 매년 정원을 채우기 때문에 신규회원은 가입조차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일반팬들에게 허탈감을 주고 있다.

이렇게나 티켓 구하는게 힘들어져서 팬들(특히 히로시마 현지인들) 사이에서의 불만은 상당하다. 사실 구장을 처음 지을때만 해도 소규모 지방도시 구단의 특성상 무리하게 거대한 돔 같은 거 짓지 말고 3만석 정도 규모의 적당한 구장을 짓는 것이 목표였고 처음 몇 년간은 그 정도의 기능을 충실히 다했는데, 어쩌다보니 리그를 지배하는 강호에 전국구 인기구단이 되는 바람에 홈 경기 티켓은 늘 매진이다. 애초에 티켓을 연초에 죄다 풀어버리고 그거 놓치면 1년을 공치는 판매방식 자체가 가장 큰 문제. 하지만 이 판매방식은 구단에게 목돈을 마련하는 중요한 수입원이기에 쉽게 바뀌지는 않을 듯 하다.

결국 연초에 티켓을 샀거나 재판매 사이트에서 웃돈을 주거나 해서 홈경기 티켓을 구하지 못한 카프팬은 원정 경기로 발을 돌릴 수 밖에 없는데, 사람이 많은건 원정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인지라 똑같은 상황을 연출하는 중이다. 카프의 원정 경기때마다 홈팀 응원석보다 원정팀 응원석을 더 빨리 매진시키고 있으며, 원정팀 응원석을 못 구한 카프팬은 원정 경기의 홈팀 응원석 티켓을 사서들어가 홈팬들 한가운데에서 카프를 응원하는 진상짓을 거의 매경기 연출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자연스레 카프를 싫어하는 타팀팬의 숫자도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9. 팀 특징

9.1. 팀 컬러

태생적인 빈곤 팀으로 도쿄에 있는 모 구단처럼 비싼 외국인 선수를 마구 돈지랄을 하면서 데려올 사정도 못 돼서 일찌감치 아예 도미니카 공화국에 야구 아카데미를 차려놓고 현지에서 소년들을 훈련시켜서 등용하려 했다. 이 과정을 거친 선수 중에 가장 성공한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40-40 클럽에 가입한 알폰소 소리아노이다. 물론 소리아노는 일본에서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했고 뉴욕 양키스 입단 후 확 터졌다. 사실 일본에서 제대로 써먹은 선수들은 별로 없다 2013년 시즌 한국프로야구 최악의 먹튀 용병인 에스마일린 카리대 역시 카프 아카데미 출신이며, 저렴한 일본형 용병을 대량 육성하려는 본래 목표에는 못 미치지만 계속해서 운영되어왔다. 그래도 2017년 이후로는 아카데미 출신의 자비에르 바티스타, 알레한드로 메히아, 헤로니모 프랑수아 등이 주축 선수로 자리잡으면서 높은 가성비로 쏠쏠히 재미를 보고 있다. 바티스타가 약물에 걸리면서 가성비의 비결에 대해 의혹이 생기기도 하지만

구단 상황이 저러니 연봉총액도 12개 구단 중 언제나 최하위권. 때문에 FA 영입을 못 하는건 물론, 대어급 신인 선수들이 히로시마 행을 기피하는 상황이 벌어져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크게 재미를 못 본다.[40] 덕분에 훈련이 빡세기로도 유명하다[41]. 그 와중에도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이 매년 하나둘씩 나타난다는 건 스카우팅과 육성의 승리로 볼 수 있는 것이고, 히로시마 팬들의 자랑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구단이 어느정도 투자를 하고는 있다. 일본 용병 투수 중 최고 톱 클래스로 꼽히는 크리스 존슨의 연장 계약을 따내기도 했다. 하지만 FA 영입은 없다

시민구장 시절에는 작은 구장의 이점을 살려 장타력을 강조한 타선이 돋보였다. 그렇다고 발이 느린 것도 아니던게, 팀 레전드인 키누가사 사치오, 야마모토 코지, 타카하시 요시히코, 노무라 켄지로, 오가타 코이치, 카네모토 토모아키 등은 리그를 대표하는 호타준족의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그 구장에서도 잘 버텨주던 투수진이 9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무너지면서 긴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히로시마로 옮긴 이후에는 상황이 반전되어, 직후 몇 년간은 마에다 켄타로 대표되는 투수진이 강한 대신에 타선이 약한 팀으로 팀컬러가 바뀌었다.

하지만 드디어 2016 시즌에 호타준족 타선이 부활했다. 1~3번 타나카 코스케, 키쿠치 료스케, 마루 요시히로에 중심타선의 아라이 타카히로, 브래드 엘드레드, 스즈키 세이야가 가세하고, 심지어 하위타순이나 대타, 플래툰 요원으로 나서는 아베 토모히로, 마츠야마 류헤이, 헥터 루나 등마저 쏠쏠히 활약하며 8번 포수, 9번 투수 자리 빼면 타선에 쉬어갈 곳이 없는 리그 최다 득점 팀이 되었다. 2017년 이후로는 공격형 포수 아이자와 츠바사가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자리잡으며 더욱더 쉬어갈 곳이 없게 되었다. 이러한 지뢰밭 타선 덕분에, 모 일본 세이버메트리션의 분석에 의하면 2017년 카프의 타선은 해당 시즌의 리그 평균과 비교할 경우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고에 해당하는 득점력을 뽐낸 강타선이라고 한다.#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와 함께 교류전 최대의 호구. 퍼시픽리그 팀들만 만나면 맥을 못춰왔다. 2016년 시즌 교류전 시점에서 교류전 통산 성적이 12구단 전체 통틀어 요코하마만이 아래에 있는 11위이며, 통산 승률은 .433에 머물러 있다. 라쿠텐보다 밑이다. 2005년부터 2015년까지 교류전에서 5할 승률을 넘긴적이 단 3번뿐이며 그동안 교류전 꼴찌도 3번을 했다. 이처럼 교류전에 보이는 약점은 초반에 좋은 기세를 보이다가도 DTD 테크를 타는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강팀이 된 이후에는 교류전은 선방을 해도 일본시리즈를...

9.2. 뛰어난 스카우트진

히로시마의 등록 선수 연봉 총액은 18억9791만엔으로 추정된다. 일본프로야구(NPB) 12개 구단 중 9위다. 1위 소프트뱅크(41억7577만엔)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신인 발굴과 육성이 구단 운영의 핵심이 된다. 소노다 도시히코 스카우트 총괄부장은 40년 스카우트 경력에, 업계의 전설로 통하는 인물이다.[42] 히로시마는 전통적으로 장래성이 뛰어난 고교 야수와 고시엔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낸 투수 확보를 드래프트 우선 과제로 삼았다. 하지만 2년 연속 리그 5위에 그친 2010년 드래프트부터 방침이 달라졌다.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고교생이 아닌 와세다대 투수 후쿠이 유야를 지명한 것이다.

이때부터 히로시마의 드래프트는 '유망주'보다 '즉시전력감'에 초점이 맞춰졌다. 2011년 드래프트에선 메이지대 에이스 노무라 유스케와 주쿄가쿠엔대의 '판타지스타'였던 키쿠치 료스케를 지명했다. 2012년엔 2016년 최고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투타 만능 고교생 스즈키 세이야를 지명해 올스타급 야수로 키워냈다. 그리고 2013년엔 대학 넘버원 투수인 오세라 다이치, 사회인야구 최고 유격수 타나카 코스케를 뽑았다. 이들은 2016년 히로시마 우승의 든든한 축이 됐다.

우승 멤버 중 2010년 드래프트 이후 지명 선수가 무려 11명이다. 히로시마는 FA나 값비싼 외국인 선수를 고용하기 어려운 팀이다. 적극적으로 젊은 피를 수혈하려 했다. 그렇다고 어린 유망주의 성장을 오랫동안 기다려줄 여유는 모자랐다.

히로시마의 세대 교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포지션은 유격수와 중견수, 그리고 우익수다. 다나카 입단 전까지 히로시마의 주전 유격수는 야수진의 캡틴이자 팬들의 성원을 한 몸에 받았던 베테랑 소요기 에이신이었다. 히로시마는 소요기의 출장 시간을 줄이면서 다나카에게 성장 기회를 줬다. 2015년부터 주전 유격수로 발돋움한 다나카는 2016년 센트럴리그 최고의 리드 오프 히터로 거듭났다. 아카마츠 마사토와 아마야 소이치로가 경합하던 중견수 자리에는 2013년부터 마루 요시히토가 풀타임으로 자리잡았다. 마루는 센트럴리그 대표 중견수 대열에 합류했다. 무주공산이던 우익수 자리에는 2015부터 가능성을 보여준 스즈키 세이야가 주전 자리를 꿰찼다.

외국인선수인 브레드 엘드레드와 헥터 루나가 주로 기용되는 좌익수와 3루수를 제외한 나머지 6개 포지션의 평균 연령은 28.17세로 젊다. 노장 1루수 아라이 다카히로를 제외하면 26세다.

긴 안목으로 인내심을 가지면서 선수를 지명한 히로시마 스카우트들이다. 히로시마의 스카우트진은 소프트뱅크와 더불어 최근 5년간 가장 고교 유망주 선택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선수 발굴과 육성이 중요한 팀에서 유능한 이들이 책임을 맡았다.

9.3. 기업구단 형태의 개인소유 구단

본래는 시민구단으로 운영되어 왔으나[43], 성금까지 모으는 정성에도 불구하고 재정난으로 여러 차례 해체될 위기에 처한 적도 있고[44], 고비를 넘긴 이후에도 구단 운영은 계속해서 난항을 겪었다. 결국 창단 초기부터 구단 경영에 관여해왔던 도요공업(東洋工業, 현 MAZDA)[45][46]의 사장 마츠다 츠네지가 1962년 구단 사장으로 취임한 데 이어 1968년에 구단 필두주주가 되면서 경영체제를 도요공업+마츠다 일가 공동운영으로 자본을 일원화시키며 도요공업과 마츠다 일가가 메인 스폰서를 맡게 되었고, 이에 기업명을 따와 1968년 새롭게 구단법인 (주)히로시마 도요 카프(広島東洋カープ)를 설립하여 구단 초대 오너로 취임함과 동시에 구단명도 법인과 동일하게 개칭하였으며 1984년 기업명이 MAZDA로 바뀐 이후에도 이 명칭은 계속해서 유지된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47][48]

그러다 1970년대 후반에 도요공업오일쇼크 등으로 인한 경영악화로 도산 위기에 놓이면서 주요 자금원이었던 스미토모은행의 주도 하에 경영체제 재편에 들어갔고, 이 과정에서 도요공업은 마츠다 가문에 의한 족벌경영 체제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된다. 이때 카프의 운영 문제도 논의 대상에 오르게 되었는데 결론적으로 도요공업은 필두주주 등의 자본관계는 그대로 유지하되 구단 경영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되면서 1977년부터 구단 소유권 및 경영권이 사실상 마츠다 가문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이에 따라 카프는 도요공업의 자회사로써의 위치만 유지한 채 사실상 독립되어 마츠다 가문에 의해 운영되는 독자경영 체제로 전환된다.

따라서 현재의 카프는 명목상 MAZDA가 필두주주 및 모기업을 겸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MAZDA의 창업주인 마츠다 가문에 의해 경영되는 개인소유 구단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구단주 역시 마츠다 가문이 대대로 세습해오고 있다. 필두주주인 MAZDA 역시 1977년 결정한 운영 방침에 따라 지분 소유와 경영진 파견만 할 뿐, 구단에 대한 자본투자 등의 적극적인 관여는 하지 않고 있다.

이렇다 보니 구단주인 마츠다 가문이나 필두주주인 MAZDA 모두 야구팀을 해체시키지는 않을 테니, 알아서 먹고 살고 크게 적자만 내지 말아라라는 기조로 구단 운영을 계속해오고 있고, 이러한 방침 때문에 구단이 자체적으로 알아서 자급자족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는 건 물론, 일본프로야구 12구단을 통틀어 연봉총액이 매년 꼴찌를 다투며 10위를 넘긴 적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될 만큼 선수들의 연봉이 굉장히 적은 구단으로도 유명하다. GM 역할을 맡은 스즈키 키요아키 구단 본부장은 연봉 깎는 데에 있어서는 일본프로야구 최고라는 자학적 네타가 널리 알려져있을 정도.

대신 어떻게든 돈을 아낀 결과, 일본프로야구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 한신 타이거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함께 꾸준히 운영 흑자를 내는 4구단 중 하나로 손꼽히며 나머지 3구단이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라는 일본 굴지의 대도시권을 연고로 한 일본 최고의 인기구단임을 생각하면 스몰마켓 구단으로서는 눈에 띄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1975년부터 2019년까지 45년간 꾸준히 흑자를 내왔으며[49] 25년 만의 센트럴리그 우승을 달성한 2016년엔 매출 182억 엔, 순이익 14억 4,600만 엔이라는 역대 최대 흑자를 기록해내기도 했다. 다만 2020~2021년엔 코로나19로 인한 시합수 감소, 관중수 격감으로 수익이 줄어듦에 따라 총액 34억엔 가량의 적자를 보며 연속 흑자 기록이 깨지고 말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흑자를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자금이 적은 팀 사정 때문에 한때는 팀 연봉을 20억 엔 이하로 맞춰야 한다는 구단 내부의 오랜 불문율이 존재했을 정도였고[50], FA 제도가 시행되고 나서도 10년 가까이 팀내 최고 연봉 선수를 2억엔 선에 묶어두는 건 물론이요, FA 계약에 따른 연봉 증가로 자금 지출이 배로 늘어나는 전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 소속 선수가 FA를 선언하면 절대로 잡지 않고 무조건 떠나보내는 게 팀내 방침으로 자리잡았었다. 이 때문에 팀의 간판 선수였던 에토 아키라, 카네모토 토모아키가 FA를 선언했을 때 구단은 잡으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고 이들이 팀을 떠나는 것을 수수방관했다.

그러나 팀내 리더급 고참이었던 카네모토의 FA 이적 후에 선수들의 팀에 대한 충성도가 눈에 띄게 낮아지고, 팀의 상징이자 기둥인 마에다 토모노리에 대한 미적지근한 처우 등으로 구단 내외로부터 쏟아지는 비판의 후폭풍을 견디다 못해 팀의 일부 프랜차이즈 스타급 선수에 한해 내부 FA를 인정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적당한 수준의 연봉을 제시하는 선에서 머무르는 등 FA 대상인 프랜차이즈 스타급 선수들에 대해서도 상당한 수준의 홈 디스카운트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들의 요구가 과하다고 생각될 경우 가차없이 결별하는 것도 변함없다. 또한 FA를 신청한 선수는 절대로 잡지 않는다는 방침을 현재까지도 고수하고 있다.[51]

예외적으로 2016년 쿠로다 히로키는 6억엔을 받으며 일본프로야구 연봉 1순위에 올랐는데, 이마저도 팀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상징성과 함께 쿠로다가 가져오는 흥행효과를 감안하면 그 정도의 지출은 충분히 메꿀 수 있다는 계산 하에 주었던 것이다. 물론 카프에 대한 충성심 하나로 MLB에서 적어도 이 금액의 최소 4배 이상은 되는 연봉을 받을 기회를 버리고 일본으로 돌아온 쿠로다에 대한 보답의 의미도 있었지만.

그리고 MLB에서 노릴만한 수준의 선수라면 '더 높은 곳에 도전하려는 선수의 꿈을 이루어준다'는 미명하에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서 메이저리그 구단에 선수를 내주고 포스팅비를 챙겨먹으려는 전략도 여전히 유효하다. 팀의 기둥인 마에다 켄타의 연봉을 감당할 의지조차 없어서 포스팅을 통한 해외 진출을 부추겨 결국 내보낸 것도 대표적 사례.[52][53] 2018년 오프시즌에 팀 최고연봉자이던 마루 요시히로가 떠난 것도 이러한 구단의 비용절감 경향의 연장선상이고, 앞으로 키쿠치, 타나카, 노무라, 이마무라, 아이자와 등 다른 팀들이 군침을 흘릴 주축 선수들의 FA가 줄줄이 예정되어있기에 히로시마 팬들은 기껏 이뤄놓은 황금기가 이렇게 지는거냐는 걱정을 해야 될 상황.

다만 위에 서술된 이야기들은 마츠다 줌줌 스타디움으로 이전한 2010년대 이후 팀 성적과 구단 경영이 호조를 보이며 이전보다는 전력 강화를 위한 투자를 할 여유가 어느 정도 생기게 되면서 일부 사항에서는 옛날 이야기가 되었고, 앞에서 언급한 FA 문제가 있는 선수들도 성적 부진으로 방출된 이마무라를 제외하면 전원 잔류시키는 데 성공하며 전력 누출을 막아냈다. 심지어 2022년엔 시즌 도중 MLB에서 방출된 아키야마 쇼고를 영입하는 충격적인 행보를 보여주며 그동안 정착된 대형 FA는 꿈도 못 꾸는 가난한 구단이란 이미지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나는 중.[54] 몇몇은 기껏 잡았더니 먹튀가 되었다는 문제도 새로 생겼지만

시민주주 형태의 구단이기는 하지만, 말이 시민주주 형태일 뿐 실제로 주식을 갖고 있는 '시민'은 마쓰다 창업주인 마쓰다 일가의 몇 명일 뿐이며, 주식을 일반 공개하고 있지 않아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시민구단과는 전혀 다르다. 오히려 스타인브레너 가문의 개인소유 구단인 뉴욕 양키스와 비슷한 형태.

덕분에 경영진인 마츠다 일가의 입김이 매우 세기 때문에 시민들의 의지는 반영되지 않은 채 투자를 통한 팀의 성적보다는 적자를 내지 않는 것에만 급급한 마츠다 일가의 의중이 중시되기 때문에 최근 젊은 선수들의 분발로 인한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미래가 걱정된다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마쓰다 경영진에 대한 비판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으나 히로시마 미디어 관계자에 따르면 오너의 경영에 대해서 비판적인 기사를 쓰는 미디어는 출입 금지를 당하고, 애초에 지방 구단이라 출입 기자수도 많지 않아 후빨하는 경영에 좋은 평가를 내리는 기사만이 나온다고 한다.[55]

그래도 흑자경영에 대한 집착이 보여주는 보다 긍정적인 사례로는 구단 관련 상품이 매우 풍부하다는 것이 있다. 유니폼, 의류, 응원도구는 물론 식품이나 유아용품에 이르기까지 굿즈의 종류가 다양한 것은 기본이고, 사실상 경기 중 모든 사건사고가 경기가 끝날 때 즈음에는 티셔츠로 만들어질 정도로 상품 개발 및 판매도 매우 신속하다고 한다. 팀 컬러에 걸맞게 대부분의 상품이 빨간색인데, 개중에는 빨간색만 나오는 삼색 볼펜 등 개그성 아이템도 있다.

10. 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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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역대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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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역대 감독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ff0000><tablebgcolor=#ff0000> 파일:히로시마 도요 카프 엠블럼.svg히로시마 도요 카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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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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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555,#aaaaaa
1949년~
초대
이시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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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953)
2대
시라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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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1960)
3대
몬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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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1962)
4대
시라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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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1965)
5대
하세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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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1967)
6대
네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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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1972)
7대
벳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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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
8대
모리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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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
9대
루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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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
10대
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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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1985)
11대
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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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1988)
12대
야마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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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1993)
13대
미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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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1998)
14대
타츠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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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2000)
15대
야마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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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005)
16대
브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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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009)
17대
노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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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014)
18대
오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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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019)
19대
사사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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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022)
20대
아라이
파일:일본 국기.svg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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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역대 성적

­ 리그 우승[56]
­ 2위
­ 3위
B클래스
<rowcolor=#ffffff> 연도 순위 팀이름 경기수 승률 포스트시즌 성적
1950 <colbgcolor=#0066b3><colcolor=#ffffff> 8위 히로시마 카프 138 41 96 1 .299
1951 7위 99 32 64 3 .333
1952 6위 120 37 80 3 .316
1953 4위 130 53 75 2 .414
1954 4위 130 56 69 5 .448
1955 4위 130 58 70 2 .453
1956 5위 130 45 82 3 .358
1957 5위 130 54 75 1 .419
1958 5위 130 54 68 8 .446
1959 5위 130 59 64 7 .481
1960 4위 130 62 61 7 .508
1961 5위 130 58 67 5 .465
1962 5위 134 56 74 4 .431
1963 6위 140 58 80 2 .420
1964 4위 140 64 73 3 .467
1965 5위 140 59 77 4 .434
1966 4위 130 62 60 8 .508
1967 6위 138 47 83 8 .362
1968 3위 히로시마 도요 카프 134 68 62 4 .523
1969 6위 130 56 70 4 .444
1970 4위 130 62 60 8 .508
1971 4위 130 63 61 6 .508
1972 6위 130 49 75 6 .395
1973 6위 130 60 67 3 .472
1974 6위 130 54 72 4 .429
1975 우승 130 72 47 11 .605 일본시리즈 (0-2-4 vs 한큐)
1976 3위 130 61 58 11 .513
1977 5위 130 51 67 12 .432
1978 3위 130 62 50 18 .554
1979 우승 130 67 50 13 .573 일본시리즈 (4-3 vs 킨테츠)
1980 우승 130 73 44 13 .624 일본시리즈 (4-3 vs 킨테츠)
1981 2위 130 67 54 9 .554
1982 4위 130 59 58 13 .504
1983 2위 130 65 55 10 .542
1984 우승 130 75 45 10 .625 일본시리즈 (4-3 vs 한큐)
1985 2위 130 68 57 5 .544
1986 우승 130 73 46 11 .613 일본시리즈 (3-1-4 vs 세이부)
1987 3위 130 65 55 10 .542
1988 3위 130 65 62 3 .512
1989 2위 130 73 51 6 .589
1990 2위 132 66 64 2 .508
1991 우승 132 74 56 2 .569 일본시리즈 (3-4 vs 세이부)
1992 4위 130 66 64 0 .508
1993 6위 131 53 77 1 .408
1994 3위 130 66 64 0 .508
1995 2위 131 74 56 1 .569
1996 3위 130 71 59 0 .546
1997 3위 135 66 69 0 .489
1998 5위 135 60 75 0 .444
1999 5위 135 57 78 0 .422
2000 5위 136 65 70 1 .482
2001 4위 140 68 65 7 .511[57]
2002 5위 140 64 72 4 .472
2003 5위 140 67 71 2 .486
2004 5위 138 60 77 1 .438
2005 6위 144 58 84 2 .409
2006 5위 144 62 79 5 .440
2007 5위 144 60 82 2 .423
2008 4위 144 69 70 5 .496
2009 5위 144 65 75 4 .464
2010 5위 144 58 84 2 .408
2011 5위 144 60 77 8 .442
2012 4위 144 61 71 12 .462
2013 3위 144 69 72 3 .489 퍼스트 스테이지 (2-0 vs 한신)
파이널 스테이지 (0-4 vs 요미우리)
2014 3위 144 74 68 2 .521 퍼스트 스테이지 (0-1-1 vs 한신)
2015 4위 143 69 71 3 .493
2016 우승 143 89 52 2 .631 파이널 스테이지 (4-1 vs DeNA)
일본시리즈 (2-4 vs 닛폰햄)
2017 우승 143 88 51 4 .633 파이널 스테이지 (2-4 vs DeNA)
2018 우승 143 82 59 2 .582 파이널 스테이지 (4-0 vs 요미우리)
일본시리즈 (1-1-4 vs 소프트뱅크)
2019 4위 143 70 70 3 .500
2020 5위 120 52 56 12 .481
2021 4위 143 63 68 12 .481
2022 5위 143 66 74 3 .471
2023 2위 143 74 65 4 .532 퍼스트 스테이지 (2-0 vs 요코하마)
<rowcolor=#373a3c> NPB 통산 74시즌 리그 우승 9회 9942 4624 4941 377 .483 일본시리즈 우승 3회

1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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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창단 당시부터 1967년까진 히로시마 지역 지자체, 기업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시민구단 체제였으나 1968년 토요공업에 의한 자본일원화를 통해 기업구단으로 전환.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1970년대 후반 토요공업(마쓰다)의 경영체제 전환 과정에서 모기업이 경영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 창업주의 개인 자산으로 전환되면서 현재는 지분만 차지하는 명목상의 모기업만 가진 개인소유 구단 형태로 운영 중에 있다.[2] 구단의 주주는 9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단 지분의 경우 MAZDA가 구단 지분의 34.2%를 보유하여 필두주주에 위치해 있고, 나머지는 MAZDA의 창업주인 마츠다 일가가 42.7%, 구단 관련 제품을 제조 및 판매하는 자회사 (주)카르피오가 18.5%, 창업주 일가의 친족 4명이 4.6%를 보유하고 있다. 상술했듯이 명목상 MAZDA가 모기업 겸 필두주주를 겸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마츠다 창업주 일가가 구단을 보유 및 운영하는 상태이며, 이러한 주주 구성 때문에 MAZDA가 경영에 관여하지 않게 된 현재에도 창단 당시의 시민구단의 형태와는 많이 멀어진 상태이다.[3] 2023년에는 주장제를 시행하지 않기로 했다.[4] カープ坊や. 1975년부터 탄생한 캐릭터로 실제 구장에선 등장하지 않는 로고, 엠블럼 전용 캐릭터이다. 과거에는 주니치 드래곤즈,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킨테츠 버팔로즈 등 많은 팀들에 '야구 소년'을 모티브로 한 팀 로고나 마스코트 등이 있었으나, 1990년대를 지나면서 대부분 사라지고 현재는 히로시마 카프만 이러한 형태의 팀 로고를 유지하고 있다. 관련 상품 등에도 적극적으로 디자인이 활용되고 있다. 여담이지만 구글에다가 카프 보야 라고 검색하면 네티즌들이 이 카프 보야를 각종 콜라보레이션으로 마개조한 사진들이 나돌아다닌다(…). 한국에서도 롯데 자이언츠 팬들이 한동희를 닮았다고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에 보야를 합성한 이미지를 만들기도.[5] 1995년부터 등장한 마스코트. 필리 패너틱을 만든 세서미 스트리트 제작사가 디자인한 캐릭터라 두 캐릭터가 많이 닮았다. 경기장에 나오는 마스코트.[6] 일본식 이름은 기모토 시게미(木本茂美). 재일교포.[7] 일본식 이름은 기하라 아키히코(木原彰彦). 재일교포.[8] 다만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후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일본인 선수와 동등한 자격으로 간주되며, 1군 출장 경력 없이 방출되었다.[9] 그렇기 때문에 당시 전후 히로시마와 관련된 이야기 등에서 주인공이 카프의 팬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원자폭탄 투하 전후의 히로시마를 그린 맨발의 겐의 등장인물 곤도 류타는 카프의 광적인 팬으로 나온다.[10] 등용문과 비슷한 맥락이다.[11] 사실 한국프로야구의 모기업은 히어로즈와 NC를 제외하고는 모두 대기업인데 반해(삼성과 KIA(현대자동차)는 재계 1,3위, LG, 롯데, 신세계, kt, 한화도 재계순위 10위 안, 두산 역시 재계순위 20위 안) 일본프로야구의 모기업인 신문사철도회사 자체로는 재계에 명함 내밀기 어려운 수준이고, 한화와 규모가 유사한 마쓰다가 소프트뱅크와 함께 최대 규모에 해당한다. 요미우리나 한신처럼 애초에 야구단이 돈을 벌거나, 오릭스처럼 모기업이 금융과 관련된 사업을 하거나(오릭스는 페이롤은 거의 꼴찌수준이라 오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그냥 몸값 비싼 스타플레이어 FA들을 못 잡고, 야구를 못해서 올려줄 수가 없어서(...) 적은거지 돈 자체는 소프트뱅크랑도 돈싸움을 해볼 만할 정도로 많다.), 세이부처럼 구단주가 돈을 쓰거나 하는 곳이 자금력을 발휘하게 되는 셈. 하지만 세이부는 전 사주 사망 후 여러 곡절을 거쳐 모기업이 분열되어서 2020년대 기준으로 가난한 구단 축에 든다.[12] 우승 년도를 봐도 79년 구단 첫 우승이 세계 프로야구 사상 최후의 70년대 우승팀이 마지막으로 우승한 해이고, 80년 2번째 우승은 세계 프로스포츠 최초 1만패팀이 처음으로 우승한 해, 84년 세 번째이자 마지막 우승이 팬들의 열성과 성적이 반비례하는 한국 남부 항구도시 연고지 팀이 구단 사상 첫 우승을 한 해이자 한신과는 다른 미국호랑이가 마지막으로 우승한 해이다. 게다가 2024년은 구단의 마지막 우승을 이룬지 불혹이 되는 해이다![13] 주니치는 1954년 우승부터 무려 53년을 기다려서 일본시리즈 우승을 했다.[14] 메이저리그는 클리블랜드 가디언스 1948년, 피츠버그 파이리츠 1979년, 볼티모어 오리올스 1983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1984년, 뉴욕 메츠 1986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89년 순이다. 이상은 모두 마지막 우승이고, 창단 후 아예 우승 못해본 팀으로는 밀워키(69년), 샌디에이고(69년), 시애틀(77년), 콜로라도(93년), 탬파베이(98년) 등이 있다.[15] 삼성 라이온즈가 1985년 전, 후기 통합우승 이후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룬게 2002년이다. 그리고 이건 KBO 리그 원년 멤버 팀들 중 가장 늦은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그리고 이 때까지 걸린 기간은 17년. 히로시마는 이보다 더 하다.[16] 게다가 이젠 일본프로야구 유일의 80년대 최후의 우승팀 및 마지막 우승이 쇼와 시대인 유일한 팀이라는 타이틀까지 지게 되었다![17] 구단 신기록[18] 지방경기를 제외한 마쓰다스타디움에서 개최한 홈경기만 계산하면, 이미 2015년(30,477명)과 2016년(30,438명)에도 달성했다.[19] 약 889만명.[20] 약 608만명.[21] 심지어 서장은 주 히로시마 총영사도 재임 시 마츠다 스타디움에 카프 야구를 보러 간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행사 방문해서 축사 읽을 일이 있었는데 카프 경기 끝난 것까지 겹치다 보니 한 시간 동안 늦었다고.[22] NHK 종합 텔레비전 전국 중계.[23] 나가카와가 1위가 되는데 거부감을 느낀 다른 팀 팬들이 임창용을 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24] 현재는 페이지가 삭제되었는데, 히로시마현에서 가장 싫어하는 팀이 카프(...)라는 괴상한 결과가 있는 만큼, 늘어난 인기만큼이나 안티도 늘었다는 정도로만 이해하면 된다.[25] 한국말로 번역하면 카프녀.[26] 참고로 왼쪽 여성 팬이 들고 있는 응원용 수건에는 마에다 켄타의 이름이 적혀있다. 아마 마에다의 팬인 듯. 다만 현재 마에다는 MLB 미네소타 트윈스 소속이다.[27] 한편으로 사진 속의 경기장 외야가 붉은색으로 도배되어 있는데 저기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홈구장인 메이지진구 야구장이다. 히로시마에서 1,000km가 넘고 신칸센 타도 4시간 넘게 걸리는 동네 야구장 좌석의 반을 정복해버린 히로시마 팬덤이란 소리. 참고로 인터뷰 사진에 나오는 선수는 주전 내야수 키쿠치 료스케이다.[28] 이들 중에는 본진인 마쓰다 스타디움은 물론 태어나서 히로시마도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사람도 꽤 있다.[29] 마에다 토모노리, 마에다 겐타 / 오시마 타카유키 / 시노다 준페이. 그리고 사실 일본의 야구 인기와 AKB48의 위상을 생각해 보면 이게 특별하거나 이상한 현상이 전혀 아니다.[30] 카프랑 파크가 발음도 비슷하고 한글에서도 글자만 바꾸면 똑같다. 더군다나 그걸 내뱉는 아라이상은 팀의 베테랑 아라이 타카히로와 이름이 같기도 하고... 아라이상 관련 밈에도 츠라이상 등 아라이 타카히로와 관련된 네타가 있다.[31] 나머지 11개 구단은 정원 없이 모집한다.[32] 10년 연속 매진. 기존 연간회원 우선 판매만으로 9년 연속 매진[33] 홈팬의 일방적인 응원 때문에 제일 나중에 매진된다. 그래서 원정 응원석 티켓을 끊어서 입석으로 홈팀을 응원하는 비매너 팬들도 속출했다.[34] 일본시리즈의 티켓 판매는, 각 좌석별로 응모해서 당첨되면 그 좌석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카프의 정리권은 줄을 세우는 번호일 뿐이어서, 티켓 상황에 따라 구매할 수 없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35] 타구단은 선예매와 티켓 할인 혜택도 있다.[36] 한국 기준 로또 4등에 당첨될 확률이 0.14% 정도 되는데, 보통 5게임씩 사는 경우가 많으니, 0.6%의 당첨확률은 로또 4등의 그것과도 같은 셈이다. 로또는 1주일마다 여러번 응모할 수 있다지만 카프는 1년에 딱 한 번이니 체감상 그 확률은…[37] 거리두기 시행 전제로 1층 전좌석을 연간회원권이 이용할 수 있게하려는 의도로 보인다.[38] 2018년 이전에 가입한 이후 당해년도까지 매년 팬클럽 자격을 유지중인 회원 약 4.3만명[39] 2019년 이후의 신규회원은 단년회원으로 바뀌어 기존회원 자격으로 갱신할 수 없다. 다음 시즌에 재가입을 희망하면 다시 응모하여야 한다.[40] 때문에 2013년 오프시즌에 대학 투수 최대어로 평가받던 오세라 다이치를 히로시마가 지명했던 일은 카프 팬들에게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졌다.[41] 지금이야 그나마 선수의 권리 의식도 향상되고 과학적인 트레이닝 방식들도 많이 도입되어 '다른 팀들보다 좀 더 훈련량이 많다' 정도지, 7~80년대에는 '훈련 중 수석코치에게 맞았다'던가, '투수들이 연습투구를 너무 많이 던지다 혈행장애를 얻었다'같은 무슨 파도 파도 괴담 류의 에피소드들이 많다.[42] 다만 선수시절은 평범한 백업으로 보냈는데 히로오카의 첫 코치커리어때 언급된다.[43] 창단 당시의 구단 법인인 (주)히로시마 야구 구락부(広島野球倶楽部)의 주주는 히로시마현 및 히로시마의 주요 도시, 히로시마현 소재의 기업들로 구성되었다.[44] 이 과정에서 1956년 창단 초기의 구단 법인인 (주)히로시마 야구 구락부(広島野球倶楽部)를 도산시키고, 그 대신에 토요공업, 히로시마 전철, 주고쿠 신문 등 히로시마현 소재의 13개 회사가 출자하여 새로운 구단 법인인 (주)히로시마 카프(広島カープ)를 설립했다.[45] 1938년에 창단한 도요 공업 축구단의 후신인 산프레체 히로시마의 대주주이기도 하다.[46] 여담이긴 하지만 한국인들에게는 꽤 중요한 역사적 사실은 도요공업이 태평양전쟁 시절 일본군의 총기를 제조했던 전력이 있는 전범기업이었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상당수의 조선인들을 공장 노무자로 강제동원하기도 했다.[47] 본래는 기업명을 넣지 않은 채 기존 구단명을 이어가려 했으나, 세무서로부터 구단에 자금을 지원할 때 세제혜택을 받으려면 구단명에 기업명을 넣어 구단이 기업의 선전매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조언을 받으면서 구단명에 기업 약칭인 "도요"를 넣게 되었다. 다만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초대 오너였던 마츠다 츠네지는 취임 당시 "잠시 구단을 맡겠지만 절대 사유화하진 않겠다. 언젠가는 '도요'라는 명칭을 떼고 진정한 야구회사로써 성공시켜 보이겠다."라고 선언했으나, 결과적으로 카프가 도요라는 명칭이 유지된 채 마츠다 일가에 의한 개인소유 구단 체제로 전환되면서 이 약속은 야구회사로써 성공했다는 점 이외엔 지켜지지 않게 되었다.[48] 한때 마츠다가 돈 없는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야구 커뮤니티에 퍼지기도 했으나, 마츠다 그룹 규모는 한국의 한화 그룹과 비슷하며 현재 일본프로야구팀을 운영하는 기업중에서는 소프트뱅크, 라쿠텐와 더불어 최상위권의 규모를 가진 글로벌 기업이다. 당연히 빅클럽이라 평가받는 한신 전기철도요미우리 신문보다도 규모가 크다.[49] 2009년 기준으로 요미우리는 15억 엔, 한신은 3억 엔, 히로시마는 4억 엔의 흑자를 기록했다.[50] 현재는 2010년대의 연이은 호성적으로 인한 주전 선수들의 연봉 인상과 물가 상승으로 인해 이 불문율이 깨졌다. 그래도 25억엔 선에서 최저를 다투는 것은 변함없다.[51] 카프의 이러한 FA 방침의 극단적인 예시로 2015년 FA를 선언한 유틸리티 플레이어 키무라 쇼고가 있는데, 당시 만 35세라는 고령에 워낙 백업으로만 오래 뛴 탓에 기대만큼의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다 경우에 따라서는 B랭크 이적이 되어 고령의 만년백업 선수를 받는 대가로 카프에 보상선수를 내줄 수도 있다는 문제점(FA 제도 - NPB 항목 참고, 다만 키무라의 경우엔 이후 C랭크로 밝혀졌다.)으로 인해 어느 구단에서도 키무라에게 영입 제안을 해오질 않았고 카프도 과거 전례에 따라 키무라를 잔류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며 그대로 FA 미아가 되버릴 뻔했다. 일본 야구 커뮤니티에선 아예 사상 첫 셀프 방출(...)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을 정도. 결국 키무라는 사상 초유의 FA 선언 후 입단 테스트라는 과정을 거쳐 간신히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 입단하며 FA 미아를 탈출했지만 세이부에서도 출장 기회를 많이 잡지 못한 채 육성선수 전환 후 재계약 등의 우여곡절을 거쳐 2017년 방출되었고, 결국 프로 은퇴와 함께 크리켓 전향을 선언했다.[52] 물론 타 구단도 일부 흑자 구단을 빼고는 다 이런 방식을 취하는데 히로시마는 많이 벌고 많이 쓰는 요미우리와 한신과 달리 적게 벌지만 적게 써서 흑자인 특이사례인 데다, 히로시마의 작은 재정 규모로는 이런 특급 선수는 잡을 수가 없고 결국 요미우리, 한신과 같은 돈 많은 거물 구단으로 가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에 포스팅비를 두둑히 받고 해외에 파는 게 나은 것.[53] 이건 예상치 못한 이익을 가져오기도 했다. 2010년대 후반부터 일본 야구선수들의 목표가 MLB 진출이 되면서 연차만 차면 MLB로 미련없이 보내버리는 히로시마를 오히려 선호하는 유망주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 선호까지는 아니더라도 히로시마를 거부하는 유망주가 크게 줄어들었으며, 이는 특유의 유망주 수집능력과 맞물리며 구단은 좋은 유망주로 성적을 내고, 유망주는 히로시마 지명을 받아들이고 NPB에서 경험을 쌓아 MLB로 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54] 다만 아키야마 영입 건은 3년 총액 5억엔이란 비교적 저렴한 계약에 데려온 것이고, 전년도 스즈키 세이야MLB 이적으로 14억 6천만엔이란 거액의 포스팅비를 챙겼다 보니 아키야마와 같은 거물들도 영입할 수 있을 정도의 자금 여유가 생겨서 가능했던 사례이다. 거기다 출장기회 보장을 원했던 아키야마 입장에선 현재 카프 외야진이 니시카와 료마를 제외하곤 마땅히 고정된 주전이 없다보니 주전이 보장될 확률이 높다는 메리트가 있는 카프 이적을 선택한 것. 같은 시기에 소뱅도 카프보다 더 큰 3년 총액 9억엔 이상의 계약을 제시하며 영입을 시도했었으나, 워낙 소뱅의 외야진이 튼튼하다 보니 주전 보장 가능성이 적다 생각한 아키야마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55] 참고로 한국프로야구는 비판적인 기사를 썼다고 해서 구단 출입이 금지되는 경우는 없다고 박동희가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인터뷰[56] 볼드체는 일본시리즈 우승[57]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게 승률에서 4리 차로 앞섰으나, 이해 센트럴리그가 승리수로 순위를 결정지은 관계로 승수가 1승 더 높았던 요코하마에게 밀려 4위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