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6 10:52:15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

1. 개요2. 원인3. 목록4. 예외
4.1. 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레전드4.2. 선수 시절의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휘어잡는다4.3. 전술 짜기의 달인4.4. 명장에게 배워서 명지도자가 된다4.5. 프런트
5. 기타6. 관련 문서

1. 개요

널리 알려진 스포츠계의 명제. 선수 시절에는 상당히 준수한 모습을 보이면서 해당 종목을 평정하던 인물들이 이상하게 감독과 같은 지도자 자리에만 올랐다 하면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면서 감독으로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 유래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비슷한 경우를 얘기할 때도 자주 쓰인다. 연기를 잘 한다고, 그림을 잘 그린다고, 노래를 잘 한다고, 과학이나 인문학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고 해서 그걸 가르치는 것도 잘 한다는 보장이 없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그런 식이다.

2.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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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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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외

물론 예외는 언제나 존재한다. 전설적인 선수 시절 경력에 못지 않게 감독으로서도 훌륭한 업적을 쌓은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아래에는 바닥, 카리스마, 전술, 명감독 사사 등 여러 케이스로 분류해놨지만 실제로 하나 하나 따지면 여러 요인들이 겹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명감독에게 사사하지 않은 경우라고 해봐야 실제로는 선수 시절에 유수의 명감독들과 만나며 그들의 지식과 재능 전술 등을 흡수해서 사사하지 않았다고 하는 정도로, 특별히 모시고 다니거나 하는 등의 경우가 사사했다고 할 정도에 들어간다.

4.1. 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레전드

말 그대로 선수 시절엔 전설이었지만 지도자 때는 바닥부터 다진다는 마음으로 어시스턴트 코치, 하부 리그, 마이너리그, 유스 팀과 2군 팀 감독을 하고 차근차근 올라가서 1군 감독이 된 경우다. 한 마디로 능력과 경력을 기초부터 하나하나 다진 케이스.

4.2. 선수 시절의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휘어잡는다

많은 기회를 잡는다는 위의 설명대로, 레전드 출신의 선수가 감독이 될 때 선수 시절 카리스마를 그대로 간직한 채 선수단을 휘어잡아 단합을 일으키는 유형의 지도자들이다. 물론 휘어잡는 스타일 말고 부드러운 덕장 스타일로 잘 통제하는 것 역시 포함.[2]

4.3. 전술 짜기의 달인

선수 시절에도 날리고, 감독으로도 뛰어난 전술을 구사한 이른바 사기 캐릭터들이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 높은 경기 이해도가 요구되는[4] 포지션 출신 선수들이 많다.

4.4. 명장에게 배워서 명지도자가 된다

선수 시절을 성공적으로 보낸 뒤에 명장 밑에서 보좌를 하면서 전술을 배우기 시작해서 본격적으로 지도자로도 성공하는 사례들.

4.5. 프런트

선수 시절에 날렸지만 감독으로서 실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뜻밖에 프런트로 취임해서 팀을 강팀으로 이끄는 케이스도 있다. 바이에른 뮌헨의 회장으로 취임하여 또 다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프란츠 베켄바워처럼 선수 → 감독 → 프런트를 거치면서 모든 단계에서 성공을 거두는 좋은 사례도 있지만, 루디 푈러처럼 감독으로서는 실패하거나 감독 경력 없이 그냥 프런트로서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유벤투스 FC잠피에로 보니페르티나 미식축구 NFL 볼티모어 레이븐스의 GM 아지 뉴섬, 덴버 브롱코스존 엘웨이처럼 감독테크를 타지 않고 프런트로 성공하는 경우도 있고 세이부 라이온즈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네모토 리쿠오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제리 웨스트, 보스턴 셀틱스의 대니 에인지처럼 감독으로서의 성적은 아주 특출나지 않았지만 프런트에 취임해서 왕조를 구축하는 경우도 있다.

더 나아가 미셸 플라티니, 펠레 등처럼 감독 경력이 전무하거나 미흡함에도 축구나 체육 행정계로 진출하여 이름을 날리기도 한다. 대구 FC 사장인 조광래도 대한민국 국대에서는 실패했지만 대구 FC 사장으로 부임한 후 2016년 K리그 챌린지에서 대구를 3년만에 승격시키는데에 일조했고, 러시아 월드컵 이후에 대구 FC를 창단 첫 FA컵 우승과 AFC 챔피언스리그 본선에 이끌면서 K리그의 신흥 강호이자 신흥 인기 구단으로 성장시키면서 시도청클럽의 롤모델을 보였다.

프런트로서 팀의 전력을 구축하여 강팀으로 이끄는 것은 현장에서 감독으로서 팀을 지휘하는 것과는 또 다른 일이라 종종 명감독 출신이 구단의 단장이나 사장자리에 앉았는데 팀을 말아먹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프로야구히로오카 타츠로. 히로오카는 선수 시절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주전 유격수로서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감독이 되어서도 야쿠르트세이부의 두 구단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끄는 수완을 발휘했지만 90년대 중반 치바 롯데 마린즈의 단장 자리에 취임해서는 팀을 완전히 말아먹었다.

특히 1995년 시즌 바비 발렌타인MLB식 팀 운영을 도입하면서 선풍을 일으키고 85년 이후 10년 만에 팀을 리그 2위로 10년만의 A클래스로 이끄는 성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발렌타인의 MLB식 팀 운영이 맘에 들지 않았던 히로오카는 시즌 내내 발렌타인과 충돌과 갈등을 거듭하다가 결국 1년만에 해임하고 대학 후배였던 에지리 아키라를 감독으로 앉혔는데 결국 롯데는 이듬해 5위로 추락해버렸고, 선수들과도 심한 갈등을 일으켜 히로오카는 결국 해임당했다. 그리고 롯데가 다시 리그 A클래스로 복귀한 건 발렌타인이 팀에 복귀한 10년 후였다.

주니치 드래곤즈오치아이 히로미츠는 선수로써 88년 리그 우승을 이끌면서 팀의 4번타자로 맹활약했고, 감독 시절에는 재임 기간 동안 팀을 상위권으로 이끌며 4번의 리그 우승, 그리고 결정적으로 팀을 2007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명장이지만, 프런트로써는 팀을 대차게 말아먹으면서 그동안 쌓아둔 자신의 명성을 말아처먹고 있다...

명감독이 프런트가 되고 나서 무능하다고 비판받는 경우는 MLB에도 있는데, 토니 라루사가 그 주인공이다. 시카고 화이트삭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을 거치면서 현대 야구의 투수운용의 기본을 정립했다는 평을 들을만큼 이름을 날렸지만,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사장으로 취임해서는 처참한 실패를 맛보는 중이다. 현지의 평가도 감독으로서의 업적은 인정하지만 프런트로서는 영 아니올시다에 가깝다.

특히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명선수가 명감독은 되기는 힘들어도 명감독이 명프런트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을까 하는 것인데 이는 감독의 소위 '용병술 및 경기 운영'과 GM으로서의 '(선수 선발 등을 포함한) 팀 구성과 구단 운영'을 비슷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기업이 구단을 이끌기 때문에 구단주나 사장이 낙하산인 경우가 많고, 자연스레 감독이 전권을 틀어쥔 경우가 많았기에 생겨난 인식이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에서도 단장이나 사장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앉히는 것이 점점 상식이 되어가는 중. 현장에서 선수를 투입하고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것과 구단 경영진의 입장에서 팀에 도움이 될 선수를 뽑고 주어진 예산 내에서 경영을 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다. 이는 최근 MLB에서 비경기인 출신 단장들의 성공 사례가 늘어나는 것으로도 잘 나타난다. 명감독이 프런트에 취임해서 실패하는 이유 또한 명선수가 명감독이 되기 어려운 이유와 매우 비슷한데 가장 큰 이유는 '경기 운영과 구단 운영'을 동일선상에서 놓고 보는 시각과 "나 젊었을 적에는 말이야..."라면서 감독의 경기 운영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거기에 개입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는 경우에 있다. 이것이 경기인 출신 프런트가 빠지기 쉬운 가장 큰 함정이다.

또한 용병술 및 선수 선발과 관련해서도 팀에 주어진 선수들을 잘 활용하는 것과 아직 포텐셜밖에 없는 신인들을 드래프트에서 선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임에도 감독 시절의 소위 '선수보는 눈'을 그대로 투영시켜 선수를 선발하다가 결과적으로 로스터에 불균형이 오고, 팀은 수렁으로 빠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사람마다 각자 적성에 맞는 포지션이 있고 적재적소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면 팀도 잘되고 개인도 잘된다는 얘기.

물론 감독으로서도 프런트로서도 모두 실패한 사례도 얼마든지 있고, 감독을 하지는 않았지만 맨시티의 레전드 선수 출신으로 1994년에 친정팀의 회장을 맡아 팀 운영에서 무능함을 보여 1996년과 1998년에 각각 2부 - 3부 리그로 추락시킨 끝에 결국 쫓겨난 프랜시스 리 같은 사례도 있다.

5. 기타

비단 스포츠 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든 통용되는 말이다.

대표적으로 정치계에서도 유능했지만 실패한 지도자들이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 중엔 최규하[11], 미국 대통령 중에서도 율리시스 그랜트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도널드 트럼프 등과 같이 타 분야에선 유능했지만 대통령으로서는 무능한 경우도 있다. 군사 쪽에서는 초급 장교일 땐 괜찮은 평가를 받았지만 승진한 이후 온갖 삽질을 거듭한 츠지 마사노부 같은 경우도 있다. 대학에선 연구 실적과 교육 실적이 따로 노는 교수들도 볼 수 있다. 역사에 등장하는 뛰어난 학자들이 정작 훌륭한 스승(인성 뿐만이 아닌 교육 실력 면에서)은 되지 못한 사례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아이작 뉴턴은 그 업적에도 교수로서는 영 좋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리처드 파인만 같은 연구와 교육 둘 다 잘하는 괴수도 있다.

스포츠 외의 예술계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많다. 유명한 연주자, 화가가 명강사는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요계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가수 시절에는 명가수였으나 명프로듀서는 되지 못했던 인물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가 있는데, 가수로서는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했으나 프로듀서가 된 후의 커리어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2008년 런칭한 보이그룹 엠블랙은 데뷔 초 2년간은 그럭저럭 잘 나갔으나 그 후 앨범 퀄리티 저하로 인기가 하락세를 겪었으며 2021년 런칭한 보이그룹 싸이퍼는 1세대 아이돌에나 먹힐 법한 구시대적인 홍보 방식과 독선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비의 행보로 인해 데뷔 이후로 아이돌 시장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다가 7명 중 4명의 탈퇴로 사실상 그룹이 와해 상태에 놓이며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혹평을 받고 있다. 그 밖에도 걸그룹 미미로즈를 런칭해 놓고 상술한 비와 비슷한 행보로 인해 제대로 그룹을 띄워주지 못하고 있는 임창정의 사례도 있다.

위에 예를 든 국내 예 중 야구, 농구, 축구 등은 국내에서는 인기도가 높은 종목인데, 선수나 감독이나 차범근, 박지성 같은 한두명 정도를 빼면 선수나 지도자나 기량은 국제 수준에 비해 전반적으로 낮다. 단체 운동이라도 수준 높은 지역 출신이면 좋은 결과를 낸다. 예를 들어 평창올림픽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단 남성팀은 최정상인 NHL 선수 출신의 백지선 감독, 여성팀은 캐나다 출신 지도자 세라 머리 등이 이끌며 기용 이전과 다른 발전을 보여주었다.

위에 든 국내에서 유명한 예는 대부분 단체 운동이다. 즉 단체 운동의 경우에는 팀 전체 운영, 작전 능력이 중요하지 선수 때 기량이 지도자가 되는 데 큰 비중이 아니므로 "유능한 선수=유능한 지도자" 등식이 성립하기 어렵다. 반면에 양궁, 당구, 사격 같은 개인 종목들은 상대적으로 이런 일이 덜한데, 개인 스포츠들 상당수는 프로 스포츠가 없는 비인기 종목이자 엘리트 스포츠이기에 선수풀도 모자라고 코치풀은 더욱 모자라기 때문이다.

테니스, 골프 같이 개인리그로 먹고 살 수 있는 종목은 극히 한정되어있고 1명의 선수가 수십명을 먹여살리는 구조라 스타급 선수 1명을 배출하기도 힘들뿐더러 사실상 코치들이 선수보조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스타 선수들이 직접 도제식으로 전수하지 않는 한 차기 선수 육성이 매우 어려운 구조다.[12] 그런 이유로 선수 출신 한국 감독들이 전 세계 양궁 팀 감독을 많이 맡고 있으며, 팀 성적도 맡기 전과 후가 확 차이날 정도라서 올림픽 등 국제 대회 때는 한국 출신 감독 동창회가 된다. 실업 선수, 심지어 고교 선수가 타 국가대표를 능가하고, 한국에서 국가대표 되기가 올림픽 메달 따기보다 어려운 게 양궁이니 감독이 되어서도 성과를 잘 내는 것이다.

6. 관련 문서


[1] 토트넘 홋스퍼 FC에서는 부진을 겪기도 했지만 이는 콘테 본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상황이 많이 복잡하다. 그래도 첫 시즌인 2021-22 시즌엔 도중에 부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토트넘을 챔스에 진출시켰다.[2] 프로 선수들은 어렸을 때부터 숱한 경쟁을 이겨내고 그 업계의 1%에 오른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존심이 굉장히 쎈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그 자존심 덩어리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명선수 출신이 훨씬 유리하다. 여기의 예로 신태용성남 감독 시절 선수들한테 "나하고 여기 김도훈 코치하고 프로 기록을 합치면 200골은 되는데 너네 중에 이거 넘을 사람 있어? 있으면 나한테 대들어도 된다."는 말로 선수단을 휘어잡았다. 안첼로티 역시 덕장으로 꼽히는 감독인데, 선수 시절에는 의외로 한 성깔 했다고 한다.[3] 특히 레알 마드리드 같은 슈퍼팀은 선수들 하나하나의 에고가 강해 조직력이 모래알이 될 가능성이 높다.[4] 축구를 예로 들면 미드필더.[5] 사실 이 부분은 조재윤의 업적도 크다고 봐야 한다.[6] 2009년 7월 스페인에서 개최한 2009 피스컵 안달루시아에 출전해서 유벤투스에게 0:3패하여 아쉽게 탈락했으나, 스페인의 세비야 FC와 0:0 무승부 승점 1점을 기록하는 이변을 일으켰다.[7]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코스타리카 신화 감독.[8] 마르첼로 리피의 중국과 2:2 무승부를 기록.[9] 올림픽 예선 탈락과 동시에 16개국 본선(조별리그) 진출 실패하였다.[10] 이것도 사실은 어쩔 수가 없는 게, 부임한지 얼마 안 돼 치른 대회였기 때문이다.[11] 이쪽은 뭘 해보지도 못하고 권력이 전두환에게 넘어가 버렸다.[12] 게다가 단체 스포츠는 개인의 기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팀워크나 팀원들의 기량이 개차반이면 한계가 있지만, 개인 단위의 스포츠는 개인의 기량이 곧 점수로 직결된다. 즉 양궁 같은 스포츠는 개인의 요령과 기량을 전수할 수만 있다면 실력의 대물림도 상대적으로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