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2-17 21:43:06

욘 안데르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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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나이티드 2019 시즌 스쿼드
구단주 박남춘 · 대표이사 전달수 · 감독 욘 안데르센 · 전력강화부장 이천수
수석코치 임중용 · 코치 박용호 · 코치 겸 전력분석관 정영환 · GK 코치 김이섭 · 피지컬 코치 자스민
트레이너 이승재 · 트레이너 양승민 · 트레이너 김현진 · 팀 매니저 노상래 · 전력분석관 고병현 · 통역 기지용
1 정산 · 2 황정욱 · 4 김근환 · 6 김태호 · 7 남준재 (C) · 8 이정빈 · 9 무고사 · 10 하마드 · 11 문창진 · 13 김진야
14 양준아 · 15 이재성 · 16 이윤표 · 17 박세직 · 18 김승용 · 19 허용준 · 20 부노자 (VC) · 21 이태희 · 22 김강국 · 23 콩푸엉
24 이우혁 · 25 이제호 · 26 곽해성 · 27 지언학 · 28 정훈성 · 29 김보섭 · 31 김동헌 · 32 정동윤 · 33 이준석 · 34 김한빈
35 주종대 · 36 김대경 · 37 김종진 · 38 김채운 · 39 임은수 · 40 최범경 · 41 손무빈 · 44 김정호 · 47 김동민
* 이 표는 간략화된 버전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 스쿼드에 변동이 있으면 두 틀 모두 수정해주세요.

욘 안데르센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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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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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8대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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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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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8대

1.FSV 마인츠05 감독
위르겐 클롭
(2001~2008)
욘 안데르센
(2008~2009)
토마스 투헬
(2009~2014)

}}} ||
Incheon United Football Club
파일:욘 안데르센 2018.png
이름 욘 안데르센
Jørn Andersen
출생 1963년 2월 3일 ([age(1963-02-03)]세) /
노르웨이 외스틀란데트지방 외스트폴주 프레드릭스타드시
국적 노르웨이 파일:노르웨이 국기.png독일 파일:독일 국기.png[1]
신체 185cm
직업 축구선수(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외스트시든 IL(1975~1982)
프레데릭스타드 FK(1982~1984)
볼레렝아 IF(1985)
1.FC 뉘른베르크(1985~1988)
E. 프랑크푸르트(1988~1990)
포르투나 뒤셀도르프(1990~1991)
E. 프랑크푸르트(1991~1994)
함부르크 SV(1994~1995)
디나모 드레스덴(1995)
FC 취리히(1995~1997)
FC 루가노(1997~1999)
FC 로카르노(1999~2001)
감독 FC 루체른 U-21(2001~2003)
로트바이스 오버하우젠(2003~2004)
B. 묀헨글라트바흐(2005~2006 / 코치)
B. 묀헨글라트바흐(2006 / 감독대행)
스코다 크산티 FC(2007)
키커스 오펜바흐(2007~2008)
1.FSV 마인츠05(2008~2009)
AE 라리사 FC(2010~2011)
카를스루에 SC(2011~2012)
SV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2015)
북한 대표팀(2016~2018)
인천 유나이티드(2018~ )
국가대표 27경기 5골(노르웨이 / 1985~1990)
1. 개요2. 선수 경력
2.1. 초기 경력2.2. 독일 무대2.3. 말년
3. 감독 경력
3.1. 유럽 무대3.2.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3.3. 인천 유나이티드
3.3.1. 2018 시즌3.3.2. 2019 시즌

1. 개요

노르웨이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8년부터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을 맡고 있다.

1.FSV 마인츠05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적이 있다.

2. 선수 경력

분데스리가 최초의 외국인 득점왕이다.

2.1. 초기 경력

노르웨이 프레드릭스타에서 태어난 안데르센은 1982년에 성인 무대에 데뷔했고, 이후 주 득점원으로 자리잡았다. 1985년에 볼레랑아에서 뛸 당시에는 노르웨이 리그 득점 1위를 차지하기도 할 정도로 자국에서는 촉망받는 공격수였다.

2.2. 독일 무대

1985년에 1.FC 뉘른베르크로 이적하면서 독일 무대에 도전장을 내민 안데르센은 뉘른베르크의 주포로 자리잡았고,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시절에는 18골로 분데스리가 최초의 외국인(독일 외 국적) 득점왕을 차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시즌 이후로는 폼이 떨어지면서 여러 팀을 오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2.3. 말년

취리히, 루가노, 로카르노에서 남은 커리어를 보내다가 2001년 은퇴했다.

3. 감독 경력

3.1. 유럽 무대

2001년 FC 루체른의 U-21팀 감독이 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로트바이스 오버하우젠에서 처음으로 성인 팀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

1.FSV 마인츠 05 시절에는 위르겐 클롭의 후임 감독이었다. 2008-09시즌 분데스리가로 승격시켰으나, 2009-10시즌 개막 직전 선수들과 마찰을 일으키며 유스팀 감독이었던 토마스 투헬로 대체되었다.

카를스루에 SC를 마지막으로 휴식기를 가지다가, 2015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감독이 되면서 감독 경력을 이어갔다.

3.2.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2016년 5월에 월드컵 2차 예선에서[2] 탈락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북한이 외국인 감독을 선임한 건 1993년 헝가리 출신의 체르너이 팔[3] 감독 이후 25년 만이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북한이다보니 자국 언론에서도 비난 여론이 나오는 모양이다. 관련 기사

계약 기간은 1년이라고 한다. 하지만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예선에서 이미 탈락한 북한은 현재 나갈 만한 국제경기가 거의 없는 상태인데 1년이라는 계약 기간은 좀 짧은 듯하다. 그리고 2018년 3월 31일까지 재계약하였다.# 북한 대표팀 감독 시절 연봉은 10억 원 이상에 최고급 호텔을 숙소로 제공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기사

영어 통역이 없어서 처음에는 선수들과의 소통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북한 선수들의 해외진출을 적극 돕겠다고 포부를 피력.[4] 그의 도움인지는 모르겠으나, 2017년에는 세리에A칼리아리 칼치오한광성이 진출하였다. 2000년대 이후 북한 축구 대표팀의 성적이 급격히 하락한 것은 해외 고립이기 때문에 성과가 좋으면 재계약할 수도.

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AKR20160826061400007_01_i.jpg
2016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이라크와의 평가전에서 승리한 뒤 북한 선수들과 함께.

2018년 3월을 마지막으로 북한 대표팀의 지도를 끝냈다. 2017년 E-1 챔피언십 부진이 이유라고 하지만, 외신과 인터뷰에서 "대표팀의 성장과 목표를 바라보며 지도하는 매력은 있지만, 악화된 경제난 탓에 더 이상 북한에 머무를 수 없을 것 같다"고 밝혀 사실상 금액적인 문제 때문에 재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전직 북한 국가대표 감독이었다는 이색적 경력덕택에 남북 체육관련 기사에는 늘 빠지지않고 등장하고 가끔 인터뷰도 한다. 그리고 안데르센 감독 인터뷰에서 북한에도 나이키, 아디다스 매장이 있고 북한 국가대표 선수들이 가장 많이 선호한다는 얘기를 했다.

3.3. 인천 유나이티드

파일:욘 안데르센.jpg

3.3.1. 2018 시즌

북한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 거취에 대해서 말이 많았다. 그러다가 5월 말, 이기형 감독의 사퇴 이후 감독직이 비어있던 인천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인천의 초대 감독인 베르너 로란트와도 인연이 있다고 밝힌 안데르센은 인천이 울산 현대를 상대로 임은수의 극적인 동점골을 통해 무승부를 거둔 경기를 인상깊게 보았다고 전해지며, 이후 스테판 무고샤 등 핵심 선수들의 분석과 수비 문제 개선 방안을 담은 자료를 건네기도 했다. 관건은 연봉 문제로 인천 재정 상 북한 대표팀에서 주던 연봉을 보장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안데르센 본인이 클럽 팀을 선호했고, 카메룬 대표팀 등을 거절하고 결국 인천을 선택했다. 2018년 6월 9일에 인천 감독직 부임이 발표되면서 구단 역사 상 세 번째 외국인 감독이 되었으며, 계약 기간은 1년 6개월로 전해진다. 그의 첫 경기는 7월 7일 전북 현대 모터스전 원정경기가 된다. 이 경기는 월드컵에서 내공을 쌓고 돌아온 문선민이 2골을 터트리며 인천이 3 : 2로 앞서갔지만, 퇴장으로 인한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종료 직전에 김신욱에게 통한의 동점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안데르센 감독 부임이후 인천 훈련이 죽을 맛이 되었다는 선수들 증언이 들려온다(....) 또한 이기형 전 감독 시절 선수들이 지각이나 팀 규율 위반에도 벌금조차 걷기 힘들었을 정도로 개판인 기강도 잡혔다고 한다.[5]

이후 2무 2패를 기록하다 7월 22일 FC 서울전 2 : 1 역전으로 K리그 무대 첫승, 이후 전남 원정에서도 3 : 1 승리로 2연승을 기록했다. 나름 상승세를 타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가 싶었지만, 8월 19일 강원에게 무려 7 : 0으로 발리는 충격패를 당했다. 안데르센이 복붙 라인업을 들고 오는데다가 자꾸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자 일부는 용병술이 이기형과 다를 바가 없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지만, 대패 이후 선발 라인업을 대폭 변경하여 팀 분위기를 다잡았고 복귀한 고참 남준재를 중심으로 팀이 단결하면서 위기를 헤쳐나갔다. 확실히 전반기 내내 단 1승에 그쳤던 이기형 시절[6]에 비해서 확실히 승점을 차곡차곡 쌓고 있지만, 워낙 전반기 후유증이 심한데다 후반기 하필 비트코인급 경기력 떡상을 기록하고 있는 남쪽팀 덕택에 아직 최하위다. 하지만 전남의 김인완 대행으로의 교체 버프가 서서히 꺼져가고 인천의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차이가 좁혀졌고, 결국 35라운드에서 상주 상무를 꺾고 탈꼴찌에 성공했다. 이어서 36라운드에 강원 FC를 꺾으면서 일단은 강등권을 탈출했다! 확실히 고정된 선수만을 기용하고, 고슬기김대중 등 일부 선수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신임을 꺾지 않는 고집스러운 면모가 있기는 하지만 고작 1승에 그쳤던 이기형에 비해서는 훨씬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반등의 가장 큰 요소로는 팀 분위기를 잡은 것, 팀이 심각한 부진을 보일 때마다 한 차례씩 라인업을 대거 교체해 다른 길을 모색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 남준재와 정동윤 등 훌륭한 선수의 영입이 이루어진 것 등을 들 수 있다. 팀의 해이한 기강을 잡고 조직력을 끌어올린 점과 체력 훈련을 기반으로 심각한 수준이었던 선수들의 몸상태를 그래도 꽤 개선시킨 점도 안데르센이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이후 36라운드 강원전 역전승, 37라운드 서울전 원정승[7]으로 마침내 다이렉트 강등 탈출에 성공했으며, 전남 드래곤즈와의 리그 폐막전에서 3:1 승리를 거두며 인천의 1부리그 잔류를 확정지었다.

잔류를 확정지은 이후 인터뷰에서 작심발언으로 구단 행정에 대한 한심한 행태를 강하게 지적했다. 특히 스카우팅 팀에 대해 쓴소리를 날렸는데, 스카우트 팀장과의 이면계약으로 피해를 본 백승원 사건을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드러나지 않은 문제들이 산적해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8]

3.3.2. 2019 시즌

전에 인터뷰에서 예고했듯이 스쿼드에 필요없는 선수들을 대거 정리하기 시작했다. FA 대상자 중 이효균, 박종진 등 스쿼드에서 입지가 좁아진 선수들을 내보냈고 김동석 역시 인천을 떠나게 되었으며, 내셔널리그 출신의 선수들과 유스 출신 선수들을 수혈하는 등 전반적으로 젊은 팀을 만들었다. 팀 내 에이스였던 아길라르문선민을 각각 제주와 전북으로 보냈지만, 공격과 수비의 핵심인 무고사부노자를 지켜냈다. 일단 공격 한 자리는 스웨덴 국가대표팀 출신의 질로안 하마드를 영입하였고, 스웨덴과 이라크 이중국적 소유자라 향후 이적 시장 상황에 따라 아시아쿼터로서의 활용도 가능하다. 또한 문선민을 보내면서 K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센터백 이재성을 데려오며 부노자의 파트너 자리를 채웠다. 여기에 문선민을 보내며 받은 현금으로 양준아, 문창진, 허용준 등 K리그1에서 검증된 선수들을 영입하며 매번 되풀이 되던 주전 선수의 이탈과 질보다는 양으로 스쿼드의 보충을 했던 과거와 달리 안데르센 감독의 의중이 반영된[9] 검증된 자원을 데려오며 2019 시즌의 기대감을 높여주고 있다. 근데 양도 생각보다 별로 줄은게 없다는게 함정

2월 3일 안데르센 감독의 생일에 사비를 털어 바베큐 파티를 여는 비범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에 선수들도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케이크와 선물을 준비해 전달하여 화목한 분위기를 만들었는데, 다른 건 몰라도 팀 분위기는 굉장히 좋음을 보여주는 사례. 다만 생일 축하 자리에서 주장 남준재가 선수단을 대표해 휴식을 제안하는 등, 훈련 강도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0]
[1] 원래 노르웨이 출신이지만 1993년 독일 국적도 취득.[2] 8개조 중에서 1위는 바로 3차예선으로 가고, 2위는 각조 2위팀끼리 승점 및 골득실로 상위 4팀이 3차예선으로 가는데 북한팀은 중국에 1점차로 밀려서 5위를 마크, 3차예선에 가지 못했다.[3] Csernai Pál (1932-2013) 헝가리 반소봉기 이후 망명한 헝가리인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분데스리가바이에른 뮌헨의 전성시대를 이끈 명감독이다. 하지만 이후 커리어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고, 1993년 북한팀을 맡으며 절치부심을 노렸으나 1994년 미국 월드컵에 진출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역할만 감독이지 북한 대표팀 내부 감독이 따로 있어 바지감독이라는 설도 있다.[4]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연변FC의 암흑기에 북한인 용병들이 와서 뛰곤 했다. 유럽 팀에도 몇몇 북한 선수들이 뛰고 있다.[5] 이기형 시기에는 문학 경기장에서 레이싱을 펼친 선수가 있는가 하면, 부노자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젊은 선수들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아예 규율이라는 게 없는 수준이어서 자유를 넘어선 방종을 누린 선수들은 그야말로 정신 상태가 심각하게 해이한 수준이었다. 괜히 남준재가 영입되면서 한 인터뷰에 인천 특유의 끈끈함이 사라졌다는 말을 한 게 아니다.[6] 12경기 1승 4무 7패, 박성철 대행은 2경기 1무 1패. 안데르센은 부임 이후 리그 22경기 7승 7무 8패로 웬만한 중위권 팀 수준의 승점은 얻어냈다.[7] 서울원정승리는 무려 5년 8개월만이다.[8] 일설로는 과거 르엉쑤언쯔엉 영입으로 살짝 말이 나왔던 문제때문에 쯔엉 에이전트가 구단에 뭔짓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의혹제기가 나왔지만 욘 안데르센 에이전트가 쯔엉 에이전트인 DJ 매니지먼트 이동준이라서 이 의혹은 설득력이 없다. 참고로 이동준 에이전트는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에이전트 이기도 하다.[9] 이걸 제데로 증명한게 응우옌꽁프엉 영입이다. 꽁프엉 얘기가 돌때 인천프런트가 또 마케팅용으로 데려와서 쯔엉 시즌2를 만들꺼라는 우려가 돌다가 안데르센 감독이 오랜기간 걸쳐서 봐뒀고 이천수 전력강화부장에게 영입을 요청했다고 해명해서 과거같이 프런트 독단이 없다는걸 증명했다.[10] 이미 2018년에 선수들 훈련이 죽을맛이 되었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