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1-23 18:25:36

위르겐 클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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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클롭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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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클롭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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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FI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유프 하인케스
2위
위르겐 클롭
3위
알렉스 퍼거슨
2019 FI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위르겐 클롭
2위
펩 과르디올라
3위
M.포체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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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FC
Liverpool Football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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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위르겐 클로프
Jürgen Klopp[1]
본명 위르겐 노르베르트 클로프
Jürgen Norbert Klopp
출생 1967년 6월 16일 ([age(1967-06-16)]세) /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슈투트가르트
국적 독일 파일:독일 국기.png
신체 193cm
종교 개신교
직업 축구선수 (공격수[2]-수비수[3]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SV 글라텐 (1975~1983 / 유스)
TuS 에르겐징겐 (1983~1987 / 유스)
1. FC 포르츠하임 (1987)
E. 프랑크푸르트 (1987~1988)
빅토리아 진들링겐 (1988~1989)
로트바이스 프랑크푸르트 (1989~1990)
1.FSV 마인츠 05 (1990~2001)
감독 1.FSV 마인츠 05 (2001~2008)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08~2015)
리버풀 FC (2015~ )
국가대표 없음

1. 개요2. 선수 경력3. 감독 경력4. 지휘 스타일
4.1. 타고난 선수 구성 능력4.2. 뛰어난 전술적 역량4.3. 친화력과 통솔력4.4. 과격한 게르만 남자
5. 어록6. 여담7. 기록 및 수상
7.1. 선수 시절7.2. 감독 시절7.3. 개인 수상


1. 개요

"I'm the Normal One."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4]
독일 국적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5] 2015년 10월부터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리버풀 FC 감독직을 맡고 있다.

2. 선수 경력

1.FSV 마인츠05에서 11년 간 선수 생활을 했으며, 처음은 스트라이커였다가 28살 때 수비수로 전향했다고 한다. 비록 위르겐 클린스만같은 화려한 선수 생활은 아니었지만 나름 밥값 하는 선수였던 듯. 수비수로 전향한 후에도 공격수 출신답게 종종 원더골을 보여주었던 모양이다.

본인의 표현을 쓰자면 "기술적 역량은 5부 리그 수준, 전술적 이해도는 1부 리그 수준, 그래서 총합 2부 리그 수준의 축구선수"였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로 2부 리그 마인츠에서 11시즌을 뛰면서 은퇴했다.

2000-01 시즌 후반기, 성적 악화로 감독 자리가 공석이 되자 구단은 선수로 뛰며 훌륭한 리더쉽과 전술 이해도를 보인 클롭에게 감독 겸 선수가 되어줄 모험을 제안하였고, 클롭은 두 일을 병행하면 이도 저도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기에 아예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 코칭 경험이 전무했던 34살의 젊은 나이에 곧바로 감독 커리어를 쌓게 된다.

3. 감독 경력

3.1. 1. FSV 마인츠 05

파일:/image/260/2015/10/10/sptPostArticleImage-61322.jpg

00-01 시즌 후반기 중에 감독으로 부임한 클롭은 첫 7경기에서 무려 6승을 거두며 팀을 14위까지 끌어올렸고, 결국 3부 리그로 강등 당할 위기에 처했던 마인츠를 가까스로 구해내는데 성공하였다.[6] 선수 시절 자신을 지도했던 은사 볼프강 프랑크의 영향을 받은 클롭은 첫 풀시즌인 01-02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유기적인 움직임과 강력한 압박을 요하는 축구 철학을 마인츠에 녹여내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분데스리가 2부 리그에서도 중하위권을 맴돌던 약소팀 마인츠를 14위에서 무려 4위까지 단번에 끌어올렸고 1부 리그 승격까지 도전했으나 승점 단 1점 차로 아쉽게 고배를 마셔야 했다. 다음 02-03 시즌에는 그보다 더한 골득실 단 1골 차로...

하랄트 슈트루츠 마인츠 회장의 말에 따르면 당시 승격에 실패한 후, 클롭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으나 딱 하루 뒤, 선수단과 함께 팬들 앞에 서서 다시 일어날 것이며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신인 감독이 겪기엔 가혹할 정도의 멘탈이 나갈법한 암울한 상황에서도 클롭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고, 끝내 03-04 시즌 세 번의 도전 끝에 마인츠 창단 역사상 99년 만에 첫 1부 리그 승격에 성공하였다.

분데스리가 승격 이후 중위권의 성적까지 줄곧 기록했고 페어플레이 1위로 UEFA컵에 출전했을 때도 토너먼트까지 진출하며[7]순항했던 마인츠는 06-07 시즌에 16위의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결국 강등 당하고 만다. 클롭은 마인츠에 남았으나 07-08 시즌에 마인츠가 아쉽게 승격에 실패하자, 자진 사임의 뜻을 밝혔다.

그렇게 선수로 11년, 감독으로 7년 무려 18년을 몸담으며, 마인츠에서 하나의 상징과 같았던 클롭은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클럽을 떠났다. 이 때까지만 해도 클롭은 그저 '유망한 젊은 감독' 정도였다.

3.2.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파일:external/sportklubtv.si/456034710.jpg

독일의 전통적인 명문 클럽이었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2007-08 시즌 리그 13위까지 추락하면서 40세에 불과한 젊은 감독이던 클롭에게 러브콜을 날린다. 원래 분데스리가 전통의 강팀이던 도르트문트는 지난 몇 년간 극심한 부진 끝에 중위권을 겨우 맴도는 수준이었고, 예전의 영광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2003년부터 시작된 재정난 때문으로, 도르트문트는 같은 리그의 FC 바이에른 뮌헨에게까지 손을 빌려야 했을 정도로 극심한 상황에 시달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도르트문트가 그저 그런 중위권 팀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말했고, 실제로 근 몇 시즌간의 기록은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클롭은 도르트문트의 감독으로 부임한 즉시 대대적인 리빌딩에 돌입하였다. 일명 '클롭식 알짜 영입'이라고 불리는 정책으로, 팀의 어려운 재정에 맞춰 가며 그에 맞는 알짜배기 선수들을 데려오기 시작했다.

부임 첫 해에 펠리페 산타나, 이영표, 네벤 수보티치 등을 도합 800만 유로도 안되는 가격에 데려온 것을 시작으로, 그 다음 시즌에는 향후 도르트문트 부활의 주축이 되는 마츠 후멜스, 스벤 벤더, 케빈 그로스크로이츠, 루카스 바리오스를 합계 약 1000만 유로로 영입해 리그 5위를 기록했다. 눈에 띄게 향상된 경기력과 순위에 독일 언론사들은 이 젊은 감독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의 노력은 점점 결실을 맺어가고 있었다.

부임 세 번째 시즌이던 2010-11 시즌, 클롭은 팀의 믿음직스러운 풀백이 될 우카시 피슈첵을 이적료 한 푼 없이 데려오고, 카가와 신지를 단돈 50만 유로에 영입했다. 뿐만 아니라 유스에서 주목할 만한 활약을 선보이던 마리오 괴체를 콜업 하였으며, 클롭 최고의 영입이라고 일컬어지는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를 폴란드 리그에서 약 450만 유로의 매우 싼 가격에 데려왔다. 이 네 선수들은 이적해 온 첫 해부터 엄청난 활약을 선보였고, 일약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폭풍 활약을 바탕으로 도르트문트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분데스리가 마이스터 샬레를 다시 들어올린다.

파일:external/www.uefa.com/1631079_w2.jpg

2011-12 시즌에도 이런 폭풍 같은 경기력은 쭉 이어져, 분데스리가 2연속 우승의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특히 마리오 괴체카가와 신지,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등의 활약상은 워낙 센세이셔널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FC 바이에른 뮌헨, 레알 마드리드 CF 등 빅 클럽들의 주목을 잔뜩 끌게 되었다. 1.FC 뉘른베르크에서 싼 값에 영입한 일카이 귄도간도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2012-13 시즌,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의 에이스이자 유로 2012에서 좋은 활약을 선보인 마르코 로이스를 영입하며 한 층 더 강력해진 라인업을 구축했다. 카가와 신지의 이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이나믹한 경기력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리그와 컵 경기에서 모두 좋은 결과를 거뒀다. 특히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레반도프스키의 미친 활약으로 레알 마드리드 CF를 떡실신시키는 충격적인 결과를 이끌어내 설마설마 했던 결승전에 진출하게 된다.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비슷하게 FC 바르셀로나를 떡바르고 올라온 라이벌 FC 바이에른 뮌헨. 결승전은 로만 바이덴펠러마누엘 노이어가 미친듯한 선방 대결을 보여줬지만 체력적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아르연 로번에게 결승골을 실점하고 패배한다. 리그에서도 뮌헨에 밀려 준우승해 예전에 레버쿠젠이 선보인 준우승 트레블을 다시 한번 재현하나 했지만, 포칼에서 일치감찌 탈락하여 그럴 일은 없게 되었다.[8]
파일:external/static3.businessinsider.com/borussia-dortmund-starting-lineup-madrid.jpg
파일:JurgenKlopp1213.jpg
클롭 도르트문트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스쿼드[9]

2013-14 시즌에도 초반에 좋은 경기력을 선보였지만, 막강한 자금력과 펩 과르디올라의 지도력으로 무장한 FC 바이에른 뮌헨의 기세를 꺾기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리그 초중반부터 시작된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과 각종 악재들이 겹쳐 TSV 바이어 04 레버쿠젠에게 2위 자리마저 내주고 말았다. 그러나 휴식기를 지나고 주전들이 복귀하자마자 경기력을 다시 끌어 올리면서 리그 2위를 되찾았다. 그리고 벌어진 시즌 두 번째 데어 클라시커에서 뮌헨을 3:0으로 털어버렸다. 클롭의 전술적 역량을 다시 확인하게 된 장면. 결국 이번 시즌 리그는 2위로 마쳤다. 남은 건 결승에서 뮌헨을 상대하는 DFB-포칼 뿐이었지만 0:2로 패배하면서 2년 연속 준우승 더블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리오 괴체를 시즌 시작도 하기 전에 뺏기고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시즌 중 뮌헨 이적 오피셜을 내고 심지어는 시즌 내내 포백이 박살나는 부상 병동 속에서 이러한 성과를 낸 것은 매우 훌륭한 성과임은 부정할 수 없다.

2014-15 시즌은 레반도프스키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었고, 리그 후반기까지도 이 문제는 전혀 극복하지 못하며 큰 부진에 빠진 모습이었다. 일단 지동원, 아드리안 라모스, 치로 임모빌레 등 괜찮은 자원들을 많이 데려왔지만 전혀 효과를 보지 못했으며, 애제자 카가와 신지를 다시 데려왔건만 카가와마저 폭망. 아스날 FC과의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특유의 게겐 프레싱으로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주었으나, 리그에서는 계속된 부진을 겪어 하위권을 맴돌았다. 주축 선수들의 이탈과 마르코 로이스, 마츠 후멜스, 일카이 귄도안 같은 핵심 선수들이 부상, 부상 후유증으로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은 탓과 헨리크 미키타리안, 아드리안 라모스치로 임모빌레의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부진이 큰 원인이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게겐 프레싱에 상대적으로 익숙치 않은 팀들을 압살하는 경기력을 보여주지만, 분데스리가의 팀들은 위르겐 클롭의 전술에 익숙한데다 파훼법을 발견했기에 재미를 보지 못했다. 2013-14 시즌까지는 경기력이 좋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사기적인 결정력으로 승점을 벌어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레반도프스키의 이탈로 공격력이 확연히 줄어들면서 승점 챙기기에 실패한다는 것이 문제.[10]

그러던 중 2015년 4월 15일, 2014-15 시즌을 끝으로 자진 사임하여 도르트문트 지휘봉을 내려 놓는다는 소식이 나왔다. 후임으로는 토마스 투헬 전 마인츠 감독이 내정되었고,[11] 이에 도르트문트 팬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그렇게 클롭은 도르트문트에서의 길었던 7년 감독직을 마무리하였다. 그는 2000년대 들어서 '분데스리가=뮌헨 우승'이라는 공식을 깨뜨리고, 무너져가던 꿀벌 군단을 다시 부활시켰을 뿐만 아니라 특출난 선수 구성 능력과 육성을 바탕으로 게겐프레싱이란 특유의 전술적 색채까지 이식하였다. 이 성과는 결코 분데스리가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고, 유럽대항전에서 유럽의 강호들과 겨뤄도 승리할 수 있단 믿음을 안겨주었다. 그 결과 클롭의 도르트문트는 분데스리가 2회 우승,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DFB 포칼 우승 등의 커리어를 쌓으며 유럽 전체에서도 인정받는 클럽으로 다시금 도약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 역시 더 이상 젊고 유망한 감독만이 아닌 명장의 반열에 올라선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2015년 5월 31일, VfL 볼프스부르크와의 DFB-포칼 결승전 직전에 클롭의 고별식이 이루어졌다.[12]


Danke Jürgen

3.3. 리버풀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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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위르겐 클롭/리버풀 FC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도르트문트를 부활시킨 클롭에게 이번엔 또 다른 과거의 명가가 손을 건네었다. 2010년대에 들어 리버풀 FC루이스 수아레스가 맹활약한 2013-14 시즌을 제외하면 매 시즌 유로파권을 맴돌며 과거 유럽을 호령하던 그 위상은 이미 제대로 곤두박질쳐버린 상태였다. 국내, 해외를 막론하고 라이벌 팬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했고, 팀 컬러나 전술적 특징도 전무했으며 나름 이름 좀 날린다는 선수들은 입단하기를 꺼렸던,[13] 그야말로 우울한 암흑기 그 자체였다. 연이은 감독 교체의 실패로 유구한 역사를 뒤로한 채 정말로 중위권 클럽의 위상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리버풀에게 어쩌면 클롭은 최후의 한 수이자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클롭은 리버풀을 서서히 부활시켜 나갔다. 15-16 시즌 도중에 부임하여 처음엔 리그 8위에 머물렀지만, 16-17 시즌과 17-18 시즌에는 연달아 리그 4위까지 끌어올리면서 팀을 다시 챔피언스 리그 무대에 복귀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18-19 시즌에는 한층 발전하여 구단 역대 최다 승점인 97점[14]으로 준우승을 거두는 등 팀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유럽 대항전에서는 더욱 놀랄만한 성과를 거두었는데, 15-16 시즌에는 UEFA 유로파 리그 결승까지 올라가는 등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이후 17-18 시즌에는 오랜만에 복귀한 챔피언스 리그에서 단번에 결승까지 오르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듬해 18-19 시즌에는 14년 만에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리버풀에 6번째 빅 이어를 안겨주었고, 마침내 팀을 다시금 유럽 정상의 반열에 올려놓는데 성공한다.

이 외에도 UEFA 슈퍼컵, FIFA 클럽 월드컵에서 연달아 우승을 차지하며, 잉글랜드 클럽 최초로 챔피언스 리그 - 슈퍼컵 - 클럽 월드컵을 석권하는 컨티넨탈 트레블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이제는 길었던 암흑기 탈출을 넘어, 유럽의 강호들 조차도 상대하기 꺼리는 클럽으로 성장한 것. 사실상 '붉은 제국'의 새 전성기를 열어가기 시작했다고 평가받아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정말로 암울한 상황이었던 리버풀을 부활시킨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성공 확률이 상당히 낮은 도전이었음이 분명했다.[15] 하지만 클롭은 이러한 리버풀에 확실하고 강력한 멘탈리티와 전술적 색채, 개성있는 팀 컬러를 부여해 불과 4년 만에 유럽 최고의 팀이자, 수많은 선수들이 열망하는 클럽으로 탈바꿈시키는 데에 성공하였다. 클롭이 리버풀의 역사에 있어서 얼마나 큰 역할을 맡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4. 지휘 스타일

4.1. 타고난 선수 구성 능력

앞서 서술했듯이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선수단을 꾸리는 데 굉장히 능한 편이다. 몇천 억대 이적이 판치는 현대 축구판에서 레반도프스키나 피슈첵, 카가와, 벤더, 귄도간, 훔멜스, 수보티치, 로버트슨, 마티프 같은 선수들을 이 정도 이적료로 데려온 것을 보면 정말 무언가 있는 느낌. 여섯 시즌 동안 지불한 이적료 총 액수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이적료와 맞먹는다는 점, 각 포지션을 모두 알맞게 영입 했다는 점에서 굉장한 수완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3-14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서 영입한 밀로스 요이치는 2014년 3월까지 3경기 교체로 나서 90분도 안 뛰었는데 2골을 넣는 위엄을 보여주며 다시 한번 클롭의 선수 보는 눈이 세계 정상급임을 입증했다. 한정된 자원으로 팀을 꾸려서 부활시키는 데에 그야말로 도가 튼 인물.

마인츠에서의 06-07 시즌에 차두리를 영입하여 잠시 한솥밥을 먹었다. 클롭은 피지컬이 좋은 차두리를 오른쪽 풀백으로 전향시켜 차두리의 기량을 이끌어 냈고,[16][17] 원래 포지션이 스트라이커였던 케빈 그로스크로이츠도 윙어로 정착하게 하더니 루카스 피스첵이 장기부상을 입자 아예 풀백으로 기용했는데 이 시도도 성공적이었다.[18] 게다가 분데스리가 유소년 레벨에서 유망한 스트라이커였던 에릭 두름도 풀백으로 포지션 전향을 시도하게 하여 1군팀에서 뛰게 하는 한 수를 두었는데 이 변화는 성공적이여서 결국 그로스크로이츠와 두름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독일 국가대표로 뽑히기까지 하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클롭이 선수의 포지션 변경도 성공적으로 잘하게 해주는 감독이라는 인식이 생기게 되었다.

도르트문트에서 했던 “골 못 넣는 공격수를 키우는 재미도 쏠쏠하다”라는 농담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부진했던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부여하고 능력치의 한계를 끌어올리는 데에 있어 가장 훌륭한 감독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다. 피에르 오바메양이 A급 공격수로 도약할 수 있던 것도 그의 덕이다. 본업은 공격형 미드필더였지만 윙어로 뛰며 리버풀 이적 초반에 매우 부진하던 호베르투 피르미누에게는 최전방 폴스 나인 역할을 부여하여 자신의 전술의 황태자로 만들어냈다.

클롭이 리버풀에 부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이루어낸 업적이 바로 피르미누를 비롯한 로저스 체제 하에서 내리막 코스를 타던 선수들을 귀신같이 살려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연장을 탓하며 A급 선수 영입을 요구하던 로저스를 무안하게 만들 정도로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은 가히 대단했다. 리버풀이 16-17 시즌을 앞두고 영입에 쓴 돈은 겨우 £67M에 불과했다.[19] 심지어 판매로 £71M을 벌어들여 리그에서 소튼과 함께 유일하게 이적시장에서 흑자를 봤다.

리버풀에서 처음으로 여름 이적시장을 맞이한 16-17 시즌에 자유계약으로 조엘 마티프을, 4M으로 라그나르 클라반을 영입하고 사디오 마네 영입으로 2선에서 밀려날 것 같았던 제임스 밀너를 왼쪽 풀백으로 돌리면서 고작 4M을 들여 수비진의 퀄리티를 높였다.
또한 본래 2선에서 뛰던 아담 랄라나를 16-17 시즌에 들어선 4-3-3의 오른쪽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 기용해 성공하였다. 랄라나는 2선치고는 주력과 돌파력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기에 사디오 마네의 영입으로 입지가 흔들릴 수 있었으나 주력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중원에서 탁월한 활동량을 활용한 수비 가담과 오프더볼, 2선 출신다운 볼키핑과 탈압박을 보여주며 공수 연결고리 역할을 확실하게 해주었다.

수비 진영에서부터 1차 빌드업을 수행해줄 미드필더가 부족하자 이전까지 박스 투 박스 유형으로 플레이하던 조던 헨더슨을 수비적인 6번 롤로 전환시킨 것도 나름 성공적이었다. 6번 롤을 수행할 미드필더가 없던 당시 팀 상황에서 많은 경기 팀 내 최다 터치, 최다 패스를 기록하는 등 공수 전환이나 공격 시작점 역할을 소화하였다. 다만 순수 수비 능력이 좋은 선수는 아니기 때문에 헨더슨에게 포백 보호에 대한 비판이 가해지기도 하였고 나중엔 박스 투 박스 역할로 돌아갔다.

17-18 시즌 여름 이적시장에선 수비에 대한 계속되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선수가 아니면 영입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뜻을 계속해서 내보이며 결국 중앙 수비수 영입을 하지 않은 채 시즌 시작을 맞이했다. 이로 인해 의외로 쓸데없는 고집을 부릴 때가 있다는 부정적인 평가들도 많이 나왔다.[20][21] 도르트문트 시절에도 라모스, 임모빌레, 긴터와 같은 실패에 제대로 데여서 그런 듯.

그래도 클롭이 여름에 영입한 모하메드 살라, 앤드루 로버트슨, 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은 들어올 때 따가운 눈총을 받았지만 이내 팀 내에서 핵심적인 멤버들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로마에서 데려온 살라는 메시, 호날두급의 득점력을 보여주며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급부상, 4200만 유로의 이적료를 껌값으로 만드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클라인의 장기 부상을 잘 메꾼 조 고메즈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도 인상적이다. 특히나 클롭의, 더 나아가 현대축구의 전술적 핵심인 측면 부분전술의 구현이 클롭의 안목으로 발굴한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 앤드루 로버트슨라는 선수들에 의해 정점에 있고, 이들이 또한 매우 젊다는 점도 상당히 긍정적인 부분이다.

반 년의 기다림 끝에 리버풀은 클럽 레코드와 역대 수비수 최고액 기록을 깨는 75m이라는 거금을 들여 버질 판데이크 영입에 성공하였다. 당시엔 너무 비싸다는 세간의 비아냥을 받리도 했지만, 판데이크는 고질적 약점을 갖고 있던 리버풀 수비진을 순식간에 리그에서 손꼽히는 철벽으로 만드는 활약을 보이며 클롭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또 한 번 증명했다.

17-18 시즌엔 높은 라인으로 인한 수비 불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 고메즈를 라이트백으로 활용하여 센터백 둘과 함께 변형 쓰리백을 형성시켜 효과를 보기도 했고, 주로 측면에서 활약하던 선수임에도 본인이 중앙 미드필더로 뛰고 싶어했던 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 역시 축구지능과 시야의 문제로 부정적인 견해가 대부분이었으나 탁월한 전진력과 발전한 파이널 패스 선택 능력으로 리버풀 중원의 핵심 자원으로 발돋움했다.

베테랑 제임스 밀너의 활약 또한 매우 인상적인데, 밀너의 경우 로저스에 의해 리버풀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뛰기로 약속받았지만 클롭의 부임 이후엔 두 시즌간 다른 포지션으로 뛰어야 했다. 첫 시즌에는 주로 왼쪽 오른쪽 가리지 않고 윙어로 기용되며[22] 20개가 넘는 공격포인트를 기록했고, 두번째 시즌 땐 레프트백으로 포지션을 옮겨 시즌 내내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주며 맹활약하였다. 그리고 세번째 시즌에 드디어 중앙 미드필더로 돌아왔는데, 전반기에는 로테이션으로 활약하다가 후반기에는 거의 붙박이 주전으로 출장하며 중원의 핵심으로 도약했다. 아예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역대 한 시즌 최다 어시스트 횟수인 9도움을 기록하며 노장의 클래스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 밖에도 공격적인 2선 자원이었던 조르지뇨 바이날둠을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제대로 탈바꿈시켰고, 쿠티뉴의 이탈로 상대적으로 부족해진 창의성을 마네의 역할 변화로 메우기도 하는 등 포지션 이동과 세세한 움직임 설정에 뛰어난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18-19 시즌에 들어서도 특유의 영입 수완은 여전해서 검증된 미드필더인 파비뉴나비 케이타[23]를 품는 데에 성공했으며, 그동안 약점으로 꼽히던 골키퍼 자리를 알리송 베케르의 영입을 통해 메꿨다. 게다가 스토크가 강등당한 틈을 타 수준급 윙어인 제르단 샤치리를 껌값에 데려오며 우승까지 노려볼 수 있을만큼 화려한 스쿼드를 구축했다. 사실 이 선수들의 총 영입료는 2000억이 넘어 전혀 싸게 샀다고는 얘기할 수 없지만, 이 모든 영입료를 쿠티뉴의 2000억의 이적료로 커버가 가능했기 때문에 넷스팬딩만 보면 효율적이고 클롭 특유의 영입 수완이 잘 드러났다 할 수 있다.

결국 클롭이 발굴하거나 영입했던 살라, 마네, 알리송, 판다이크, 알렉산더 아놀드, 로버트슨 모두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발돋움했고 클롭의 전술구현에 있어 핵심자원으로 자리매김했으며, 파비뉴, 케이타, 샤키리 역시도 모두 리버풀의 18-19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공헌하며 클롭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는다는 걸 증명했다. 이들의 이적료는 당시에는 비판을 받았을지 몰라도, 현재 시점에서 다시 본다면 너무나 싼 가격이라고 느껴질만큼 효과적인 선수 수급이었다. 이는 부유한 리그인 프리미어리그 빅클럽들에서 특히나 빈번히 일어나는, 천문학적 이적료를 통한 영입이 제대로 된 효과를 보지 못하는 부작용과는 완전히 대조된다.

4.2. 뛰어난 전술적 역량

영입 능력과 육성 뿐만 아니라 전술적인 능력도 굉장하다. 역대 명감독들의 압박 전술을 참고하여 그만의 게겐 프레싱 전술에 접목시켰다. 모든 필드 플레이어가 1선부터 상대를 압박해서 들어가는 이 전술은 상대의 빌드업과 패스길 자체를 막아버리는 전술로서 티키타카를 구사하거나 수비 진영부터 공격 전개를 하는 팀들 상대로 상당한 재미를 봤다. 또한 역으로 공격시에 공을 뺏길 경우 모든 필드 플레이어들이 공을 뺏아간 상대에게 압박을 전개해 3초 안에 볼을 뺏어 역습을 들어가며 점유율을 내주더라도 한방으로 이길 수 있는 필살 전술이 되었다.

이 압박 전술은 특히 강팀들의 진을 뺐으며, 12-13 시즌에 도르트문트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하는 바탕이 되었다. 또, 적재 적소에 알맞은 선수들을 배치하는 데도 천재적 능력을 보여, 피지컬적 역량이 부족한 카가와 신지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전방 압박과 퍼스트 터치 등에 능한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활약을 살려 팀의 주포로 삼기도 했다.[24] 마리오 괴체의 대체로 영입한 헨리크 미키타리안도 그의 전술에 잘 녹아들어 활약했다.

물론 클롭의 전술에도 약점은 있다. 그가 구사하는 '게겐 프레싱'은 기본적으로 부지런하게 1:1로 상대편 선수를 압박하면서 불안정한 빌드업을 유도하거나, 공 잡은 선수를 여러 선수들이 몰아서 함정으로 몰아 넣는 토끼몰이식 압박으로 공을 빼앗으면 그 자리에서 전력으로 속공을 통한 역습을 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클롭의 축구를 제대로 소화하려면 어마어마한 체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한 이유로 도르트문트는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져서 제대로 압박을 할 수 없는 후반에 실점이 잦은 편이다.

도르트문트를 상대하는 팀들은 이 점을 살려 전반에 수비 위주로 플레이하고, 후반에 도르트문트 선수들이 체력이 떨어졌을 때 제대로 공격을 하는 맞춤형 전술도 종종 보여준다.[25][26] 또한 몸을 쉼없이 혹사하는 만큼 대부분의 선수들이 잔부상을 달고 다니게 되었다. 도르트문트에선 로이스와 귄도안, 벤더 등이 대표적이었고 리버풀에서도 본격적으로 게겐 프레싱이 정착한 16년 이후 크고 작은 부상자들이 꾸준히 발생해 발목을 잡혔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전술적 역량이 뛰어난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2014-15 시즌 강등권을 헤메면서 명성이 실추됐었다. 마리오 괴체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와 같은 주축선수들의 이탈을 치로 임모빌레, 아드리안 라모스 등의 영입으로 메꾸려 했으나 역부족이었고 설상가상으로 클롭의 전술적 스타일에 익숙해진 분데스리가 클럽들을 상대로 승점을 따내고 있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전술적 변화를 시도하지 않고 게겐프레싱 일변도로 나가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14-15 시즌 전반기의 부진은 주축선수들의 이탈과 마르코 로이스등의 선수들의 부상으로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후반기에도 부진이 이어지면서 2015년 2월 5일 분데스리가 최하위로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다. 진작에 경질이 되어도 부족함이 없는 성적이다. 구단과 팬들은 클롭이 도르트문트에 세운 업적으로 인해 경질론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계속된 부진에도 불구하고 플랜 B가 없이 계속해서 기존의 축구전술을 거의 변화 없이 사용하였다. 이를 보고 클롭은 전술적 유연도가 떨어진다는 전문가들의 쓴소리가 이어졌다.[27]

다만, 후반기 부상 선수들이 복귀하고 게겐 프레싱이 정상화되자, 도르트문트는 무서운 상승세를 탄 끝에 결국은 꼴찌에서 유로파 권까지 순위를 끌어올리고 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게겐 프레싱이 여전히 매우 위력적인 전술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게겐 프레싱의 위력과 단점은 리버풀에서도 발휘되었는데, 빠른 압박과 높은 라인 잡기로 인해 주로 라인을 많이 올리는 강팀들을 상대로는 좋은 성과를 내고 있지만 주로 라인을 내리고 롱패스로부터 시작되는 빠른 역습이나 세트피스를 이용한 공격을 선호하는 약팀들에게는 허무하게 패배하는 김빠지는 모습들을 계속해서 연출하고 있다. 의적풀 이 상황은 16-17 시즌 때 절정을 찍어, 빅6 상대로는 무패를 기록했음에도[28] 불구하고 중-하위권 팀들에게는 쉽게 승점을 빼앗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16-17시즌 극후반기부터는 이런 체력저하 문제와 부상자 증가를 의식해서인지, 전방위적인 압박보단 확실한 때에만 선수 한 명이 공을 가진 선수에게 전방 압박을 하고 나머지 선수들은 자리를 잡는 존프레싱으로 전술에 살짝 변화를 주었다.[29] 또한 17-18 시즌 초반 슬럼프에 빠질 위기에 처하자 전격적으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디에고 시메오네4-4-2와 분데스리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RB 라이프치히4-2-2-2 시스템을 도입, 거기에 체임벌린과 고메즈를 적절히 쉬프트 시키며[30] 변형 3백도 능동적으로 활용하여 연승을 기록, 위기에서 한발짝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16-17 시즌에 게겐프레싱으로 완벽한 전반기를 보낸 뒤 부상으로 스쿼드가 거의 무너져버리며 후반기에 성적이 하락해 간신히 4위를 찍자, 클롭도 많은 것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17-18 시즌 후반기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에서도 클롭의 유연성은 빛이 났는데, 8강 맨시티와의 1차전 상징적인 카운터 프레싱을 비롯해 3골 우위를 점한 뒤에는 4-4-2 두 줄 수비를 활용해 리드를 지켰으며, 2차전 내내 선수비 후역습으로 일관하며 결국 원정골은 물론 1-2 승리까지 따냈다. 4강 로마 전에는 상대가 강한 중원을 바탕으로 전방 압박을 실행하자, 중원을 생략하고 마네, 피르미누, 살라를 겨냥하는 롱볼로 상대 뒷공간을 털어먹으며 5골을 득점했다.

또한 17-18 시즌부터는 로테이션을 굉장히 많이 돌린다. 물론 16-17 시즌 후반기에도 수치적으로는 로테이션이 많았으나 어디까지나 부상과 부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돌리는 느낌이었으며 감독이 생각하는 포메이션과 베스트 11[31][32]은 몇 경기 라인업만 뽑아 보면 축구 문외한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반면 17-18 시즌 박싱데이 때는 이전 경기와 비교해 선발 라인업에서 최대 7명까지 변화를 주기도 했으며 살라, 마네, 쿠티뉴, 피르미누 등 공격진 에이스들을 풀가동하지 않을 때도 잦았다. 그 결과 리버풀은 해당 시즌 프리미어리그 팀 들 중 가장 로테이션을 많이 돌린 팀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는 도르트문트 시절을 포함한 과거 시즌들보다 전반적으로 부상이 줄어든 요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긴 하나 이런 로테이션 정책 때문에 잡아야 했던 경기들을 놓쳐 순위 상승에 발목을 잡힌 적도 한 두 번 정도 있다. 상위권 도약에 다가설 수 있는 기회였던 맨시티와의 리그 23R 경기에선 이번 시즌 두번째로[33] 하드코어 게겐 프레싱을 선보이며 맨시티에 시즌 리그 첫 패를 안겼다.

16-17 시즌과 17-18 시즌에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18-19 시즌부터는 유연성을 갖추고 온갖 전술들을 다채롭게 구사하고 있다. 앞 뒤 안따지고 강력한 압박을 선호하던 젤리코 부바치 수석코치가 팀에서 이탈한 뒤 18-19시즌부터의 리버풀은 기본적으로 존 프레싱을 중심으로 한 전술을 도입해 압박의 강도를 줄이면서도 간혹 가다 적절한 타이밍에 게겐 프레싱을 선보여 일순간에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화력도 보여줬으며, 공격시에도 전방압박 이후 역습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지공 상황에서 공격수 3인방의 적극적인 스위칭과 미드필더들의 침투를 통한 하프 스페이스 공략은 물론 라볼피아나 전술을 활용해 후방 공간을 커버하고 흘러나온 루즈볼을 안정적으로 리사이클 시키는 한 편 풀백들을 전진시키며 측면 공격을 극대화하는 보습을 보여주며 현대 축구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전술,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후방에 배치된 선수들의 뛰어난 롱패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주문해 한 번에 전방으로 연결하는 롱 카운터 전술이나 한 번의 사이드 체인지로 상대의 강한 압박에도 결국 흐름을 가져오는 등 점점 전술적으로 완전체에 가까웠던 FC 바이에른 뮌헨유프 하인케스와 유사해지는 중.

4.3. 친화력과 통솔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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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과 잘 어울리는 친화력을 갖고 있다. 감독과 선수 사이가 아니라 그냥 믿음직한 리더나 반장을 보는 듯한 정도. 특히 많은 대화를 통해 선수들과의 유대감을 형성하며, 단순히 '감독-선수'의 수직적인 관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선수를 대하는 듯 하다. 이에 선수들도 클롭을 잘 따르며, 좋은 팀 멘탈을 보인다.

그 예로 마르코 로이스는 "클롭이 말하는 방식은 프로페셔널한 일에서는 보기 힘들다. 자신의 마법에 걸리게 하고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그와 대화가 끝나면 심장이 쿵쾅거렸다. 클롭은 내가 도르트문트에 간 이유 중 하나"라며 극찬을 하였다.#

사디오 마네는 “클롭은 축구 외적으로도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 그의 인간적인 면은 내게 감동을 줬다. 축구계에서 그런 사람은 정말 보기 드물다”라며 찬사를 남겼고, 조르지뇨 베이날둠은 “클롭은 선수들과 이야기를 자주 한다. 축구 이야기가 아닌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그와 대화를 나누는 건 즐겁다”라고 밝힌 바 있다.#

게다가 마인츠 시절엔 선수들과 화장실에서 맞담배를 피우며 경기 분석을 했다고 한다. 본인부터가 마인츠 선수 출신인데다가, 은퇴하자마자 감독직을 맡았으니 정말로 그냥 믿음직한 선배라고 보는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밑에 여담 항목에 나오듯이 클롭은 유명한 애연가다.

이 친화력은 타 팀 선수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만날 때마다 매 경기 도르트문트를 곤란하게 만들었던 손흥민에게도 그 친화력을 선보이곤 했으며, 토트넘과 리버풀로 다시 만난 뒤에도 여전하다. 이런 친근하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클롭의 성향 탓인지 도르트문트 팬들의 지지는 절대적이었으며, 입지가 매우 탄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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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감독들과도 경기 때 딱히 불화 없이 웃음으로 맞이한다. 이는 선수단은 물론 보드진과의 관계에 있어 마인츠와 도르트문트 양 구단에서 문제가 있던 투헬과 상당히 다른점이다.

더불어 탁월한 동기부여와 뛰어난 통솔력을 바탕으로 많은 선수들이 그에게 깊은 존경심을 표현하고 있는데, 전 소속팀인 마인츠와 도르트문트의 선수들은 물론, 현재 리버풀에서도 그에게 존경심을 표현하는 선수들이 굉장히 많다.

그 예로 조던 헨더슨은 ''그가 우리를 믿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덕분에 우리도 스스로 믿음을 갖게 됐다. 클롭이 우리에게 그런 믿음을 심어줬다. 우리는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까지 싸워야 한다"며 굳은 신뢰를 표했다.#

또한 사디오 마네는 “우리 선수들은 경기장이나 훈련장 상관하지 않고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돼 있다. 그는 전쟁에 나가고 싶도록 만들어주는 감독”이라며 말했고,# 심지어 아담 랄라나는 "난 이 사람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라는 코멘트를 남길 정도.#[34]

이 밖에도 많은 선수들의 리스펙을 받고 있는 엄청난 덕장으로 알려져 있다. 또 클롭 밑을 거쳐간 많은 선수들은 가끔씩 클롭을 아버지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선수들이 아무리 몇 번이나 경기에서 실수를 범해도 절대 질책하지 않으며 계속해서 믿음을 주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본인 스스로도 인터뷰에서 승리는 선수들 덕이지만 패배는 내 책임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다만 워낙 기량미달의 선수들도 끝없이 감싸주고 무수한 기회를 주다보니 팬들이 답답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늘 허허실실하는 스타일만은 아니고 선수들에게 호통도 잘 친다. 애초에 세계적인 빅리그에서 감독 생활을 하려면 때로는 선수단을 무섭고 강하게 휘어잡을 수도 있어야 하니까. 버질 반 다이크도 하프타임 때 클롭에게 헤어드라이기를 당한 적이 있다고 밝힌 적 있다. 평소에는 따뜻하게, 때로는 엄하게 팀을 이끄는 정말 말 그대로 아버지 같은 스타일.

팀 분위기를 해치거나 약속을 어기는 선수에게는 매우 냉담한 모습을 보이는 듯하다. 그 예가 2016-17 시즌의 마마두 사코. 프리시즌 동안 계속해서 지각을 한 마마두 사코에게 분노해 2군행을 지시했고, 팀이 수비적으로 계속 불안함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1군으로 부르지 않았다.[35] 결국 후반기에 크리스탈 팰리스로 임대까지 보내버렸으며, 사코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임대 생활을 보냈지만, 다음 시즌에 곧바로 완전 이적시켜 버린다. 필리페 쿠티뉴 역시 에이스이나 팀 분위기를 해친다며 2018년 1월 이적을 승낙했다.[36]

4.4. 과격한 게르만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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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데뷔전을 치른 마리안 자르한테 뺨을 치는 장면. 클롭이 선수들에게 하는 애정표현으로 사진에서도 자르의 뺨을 친 후 곧바로 활짝 웃으며 포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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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과 잘 어울리는 친화력과, 뛰어난 전술 능력과는 별개로 굉장히 다혈질적인 성격과 제스처가 격한 행동을 자주 보인다.

밑에 심판에게 항의하는것도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인데, 키 190이 넘는 거한이 얼굴을 시뻘겋게 붉힌 채로 오만가지 인상을 쓰며 항의를 해댄다. 심판에게 압박이 안 갈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이로 인해 퇴장을 당한적도 있다.[37]

클롭의 격한 반응 탓에 아르센 벵거 감독이 경기 중에 "EPL은 조금이라도 심판에게 격한 반응을 보이면 퇴장시키는 리그"라고 조언해줬다.[38]

2016년 1월 23일 노리치 원정 경기에서는 개판인 경기력으로 후반전 종료 직전 화를 내는 모습이 정면에 잡혔는데 불과 10초 뒤 랄라나의 결승골이 터지자 격한 골세레머니를 했다.

2016년 2월 14일 아스톤 빌라 원정에서 6:0으로 완승을 거뒀는데 하필이면 맹장 수술을 한지라 크게 기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꽁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잡혀서 웃음을 주었다. 이후 인터뷰에서 밝힌 바론, 당시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첫 강등이 유력했던 빌라를 상대로 다득점 경기를 하면서 기뻐하는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2018년 12월 2일 머지사이드 더비 경기에서 경기 종료 직전 터진 디보크 오리기의 결승골에 격하게 흥분해 그라운드에 난입, 알리송 베케르와 진한 포옹을 나눠 웃음을 줬다. 경기 종료 직후 인터뷰에서는 이에 대해 "잘못된 행동이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미 알리송 앞에 있었다"라고 밝혔고, 경기가 끝나고 마르코 실바 감독에게 개인적으로 사과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실바 감독은 이후 인터뷰에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비록 골 장면이 아니어도 자기 눈 앞에서 선수가 명장면을 연출하면 과격한 어퍼컷 등 온갖 화려한 리액션으로 관중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리버풀 팬들은 옛날부터 대머리 마피아 두목 라파엘 베니테스 같이 조용한 감독들[39]을 주로 봐왔기 때문에 클롭의 경기 중 리액션에 대해서도 매우 즐거워한다.

5. 어록

나는 노멀 이다.
우리는 의심하는 자를 믿는 자로 변화시켜야 한다. 필요한 것은 오직 시간이다.
동화같은 시작을 기대하지 마라.
오늘을 잘하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우리는 내일 더 잘할 수 있다.
나는 선수들에게 최고가 되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최고를 꺾을 수 있는 팀이 되라고 말한다.
호날두나 메시를 원하지도 않는다. 현재 리버풀에 만족하고 지금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벵거는 볼을 소유하는 패싱축구를 좋아한다. 마치 오케스트라와 같다. 그러나 조용한 음악이다. 난 헤비메탈이 좋다.[40]
11명이 함께 잘못된 전술을 하는 것이 각 선수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보다 낫다.
전술적인 요소만으로 승리를 할 수 없다. 감정이 차이를 만든다.
난 절대 어떤 선수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만약 그 선수가 내 팀의 일원이라면 그는 충분히 좋은 선수이고, 그렇다면 그 선수의 부진은 내 책임이다. 모든 패배는 나의 책임이고, 승리는 선수들 덕분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감독은 아닐지 몰라도 아마 가장 열정이 넘치는 감독일 것이다.
패배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크게 져봐야 한다. 이미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면 당신은 승리자가 될 수 있다.
우린 이반 드라고가 아닌 록키 발보아다.
우리는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 해 보자.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자.[41]
오늘 밤을 즐기면 된다. 그리고 훗날 우리들의 손자에게 오늘 밤이 특별했다고 말해주자.[42]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너희들이기 때문에 기회는 있다.
얘들아, 믿어라. 1-2골, 만약 15-20분에 우리가 한 골도 넣지 못하더라도, 65분 66분 67분에 우리가 골을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라. 그리고 안필드가 우리의 뒤에 있다. 날 믿어라. 우린 할 수 있다.
나는 사소한 것들에는 관심이 없다. 사이드 라인에선 잘 보이고 싶지 않지만, 내 팀은 멋지게 보여야 한다. 그게 내 목표.[43]
우리가 우승 후보여선 안 된다. 선수들의 간절함과 열정이 희석된다. 늘 언더독의 자세로 팬들을 위한 축구를 한다면 자연스레 우승은 따라온다.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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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롭에 대한 이야기들

클롭과 도르트문트, 그리고 스위스
  • 선수 시절인 1995년에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서 스포츠 과학을 공부한 인텔리이기도 하다.
  • 이혼 경력이 있으며 전 부인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이 하나 있다. 그리고 재혼한 현 부인이 데려온 양아들이 있다.
  • 2006년 월드컵 때 축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김동완 해설위원의 말에 따르면, 독일 특유 딱딱한 방송과는 다르게, 위트가 넘치는 멘트와 함께 쉽고 편하면서도 상세한 해설을 함으로서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44][45]
  • 13-14 겨울 이적시장에서 지동원을 영입하였다. 정확히는 선덜랜드, 아우크스부르크와의 삼자 협상 끝에 데려오는 것으로,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반 시즌을 뛰다가 도르트문트에 자유계약으로 와 14-15 시즌부터 뛰는 특이한 형태이다. 이로서 선덜랜드는 안 쓰는 선수를 처분한데다가 돈까지 받아 좋고, 아우크스부르크는 단기간에 골가뭄 해결할 수 있어서 좋고, 도르트문트는 스쿼드를 보강할 수 있어서 좋은 윈윈윈 계약을 맺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지동원이 분데스리가 복귀전인 도르트문트전에서 교체투입된지 2분만에 골을 넣어 경기를 무승부로 만드는 바람에 도르트문트의 2위 탈환에 제동을 걸었다... 한편, 지동원을 영입하고 기자들에게 한 말이 또 그답게 걸작인데 "골 못 넣는 공격수를 키우는 것도 재밌겠지." 또한 지동원의 이름이 매우 마음에 드는 듯하다. 퍼거슨맨유 전성기 시절 공격수는 대부분 영입으로 충당한 걸 생각해보면 클롭의 깡이 대단하긴 대단했다
  • 독일에서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부활시킨 명장인데다가 큰 키와 미중년 다운 간지나는 외모, 그리고 재치있는 입담 등으로 인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독일 축구계 최고의 인기 스타라고 한다. 푸마나 자동차 회사인 오펠, 그리고 여러 의류 용품 회사에서 모델을 하고 있다고 한다.
  • 2015년 10월 리버풀 FC 취임 기자회견 당시, 4년 안에 우승 트로피를 들지 못 한다면 스위스로 가겠다는 말을 했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리버풀이 우승컵을 놓칠 때마다 클롭이 스위스로 갈 것이라며 안티들이 조롱했었다.[46] 그러나 2019년 6월,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그 약속을 정말로 지켰고 리버풀을 기나긴 무관에서 탈출시켜 이후 그것에 대한 조롱도 사라졌다. 그런데 클롭이 왜 하필 스위스를 언급했는가에 대해 한 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아 리버풀 팬들도 제대로 반박하지 못 했었다. 후에 클롭이 밝히기로는 마인츠 시절, 그의 멘토 매니저가 사망하기 전에 클롭에게 나는 스위스 산 속에 묻혀있을 테니 후에 자신을 찾아와 그가 겪은 이야기들을 얘기해달라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냥, 스위스에 가겠다고 한 말이 아니었던 것.
  • 안필드에서 무려 49년 째 장내 아나운서를 맡고 있는 조지 세프턴의 말에 의하면, 클롭을 처음 보고 인사와 함께 "저는 조지에요!" 말을 건네자 곧바로 "아! 당신이 바로 그 안필드의 유명한 목소리이시군요!"라고 알아보며 악수를 하고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고 한다. 또한 자신에게만 그런게 아니라 클롭은 당시 부임한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시니어 선수들과 유스 선수들, 훈련장의 스태프들, 요리하는 직원들, 구단의 미화원 아주머니와 사무실 사람들 이름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고 세프턴은 전했다.#
  • 감독으로서 워낙 능력이 좋기 때문에 매번 여러 빅클럽들의 오퍼를 받지만, 의외로 데려오기 쉽지 않은 감독이기도 하다. 커리어를 봐도 알겠지만 본인이 이적을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이 전혀 아니기 때문. 도르트문트 오기 전에 마인츠에서는 선수 시절부터 감독 생활까지 합해 무려 18년이나 있었다.[47] 참고로 알렉스 퍼거슨이 맨유를 감독한 기간이 27년이라는 걸 생각하면 클롭 역시 한 팀에 매우 진득하게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만큼 자신이 속한 팀에 상당한 의리를 가지고 있으며 계약 기간도 매우 충실히 지키는 편. 리버풀 부임 이후에도 이런 성향은 바뀌지 않았는지 꾸준히 소속팀에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인터뷰에 따르면 오래 전부터 리버풀의 팬이었고, 60세 이전에 은퇴할 계획이며 자신이 맡았던 팀이 마인츠05,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리버풀 FC 세 팀으로 마무리 되기를 희망한다고 한다. 경질이라는 불상사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후 7~8년 가량 더 리버풀을 지휘하고 은퇴 할 계획인듯.
  • 팀을 맡을 때 속된 말로 본인이 '꽂힌' 팀을 선호하는 듯 하다. 마인츠의 감독으로 부임할때도 권유를 들은지 거의 5초만에 '까짓 거 한 번 해보지!'라며 바로 결정했으며, 마인츠에서 나올 때 바이에른 뮌헨도 클롭을 노렸다는데 칼 하인츠 루메니게가 자기가 술 먹고 클린스만을 선택했었다고 반 농담 반 한탄조로 얘기한 적이 있다. 또한 도르트문트 지휘봉을 내려 놓고 쉬는 동안 유수의 클럽들이 감독직을 제안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그 이유가 걸작인데 '땡기지 않아서,' '내 팀이란 생각이 들지 않아서'라고...
    2019년 로비 파울러의 인터뷰에 따르면 맨유, 레알 마드리드 같은 슈퍼리치 클럽들이 감독직 제안을 해왔지만 축구보다 상업적인 면에 중점을 두는 것이 싫어 거절했고 재정, 역사, 팬 등 모든 요소들을 고려해서 리버풀을 선택했단다. 클롭 역시 도르트문트 감독직을 내려놓고 한동안 쉬고 싶었지만 리버풀의 제의는 듣자마자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48][49] 또한 필 톰슨에 의하면 클롭에게 맨유 감독 제의가 왔을 때 클롭의 아내가 만류하였고, 이후 리버풀의 감독으로 부임하자 그의 아내는 옳은 결정이라며 지지하였다고 한다.# 아내의 내조가 이렇게 중요하다...
  • 라이벌 맨유의 레전드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은 클롭이 리버풀에 부임할 당시 인터뷰에서, "리버풀이 클롭 감독을 선임한 것은 아주 좋은 계약이다. 나는 그를 존경하며 리버풀에서 잘 해낼 거라고 생각한다"라 했다. 또 이후로도 퍼거슨은 클롭의 열정이 리버풀의 정체성을 회복시켰다고 찬사를 보냈고,# 캐러거 역시 퍼거슨과의 개인적 일화를 통해 클롭이 리버풀을 성공으로 이끌 것을 전부터 확신했다고 밝혔다. 물론 클롭 역시 퍼거슨에게 여러차례 존경을 표한 바 있다.
  • 잉글랜드의 악명높은 타블로이드지인 The Sun을 좋아하지 않는다. 기자회견 중, The Sun의 기자가 질문을 하려고 하자, 질문하고 있는 기자의 말을 끊고, "난 The Sun과 인터뷰 하지 않습니다."고 쏘아 붙이며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 적이 있는데, 후에 밝혀지기로는 The Sun지가 로브렌의 사생활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가십성 기사를 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리버풀 부임 이전부터 The Sun을 좋아하지 않은듯 하다. 도르트문트 감독 시절 더 선 기자가 질문을 하자 "The Sun? 넌 내가 바보로 보이냐?"라며 질문을 거부했다.[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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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흡연을 즐기는 애연가다. 자신의 와이프랑 맞담배 피우는 모습이 SNS에 올라왔고 위 사진처럼 아내랑 함께 바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찍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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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이루어 온 클롭의 업적은 그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낸 것이 아니다. 마인츠 시절부터 함께 한 젤리코 부바치, 페터 크라비에츠 공도 크다고 볼 수 있다. 예상대로 클롭은 리버풀에 부임하면서 부바치와 크라비에츠를 어시스턴트 코치로 선임할 것을 클럽에 요청하였다.[51] 선임 후 부바치는 전술 계획을, 크라비에츠는 전력 분석을 담당하고 있다. 도르트문트의 미드필더인 누리 사힌은 클롭 감독과 부바치 코치를 "마치 쌍둥이와 같다"고 표현할 정도로 서로 간의 호흡은 대단한 것으로 보인다.[52] 다만 클롭과 부바치는 2017-18 시즌 후반기에 결별하게 되었는데 자세한 이유는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53] 이로서 크라비에츠는 물론, 리버풀의 페페인 레인더스 코치[54]가 많은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이 둘이 현재 리버풀의 공동 수석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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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이에른 뮌헨 출신의 피지컬 코치인 안드레아스 콘마이어[55]와 상당히 닮았다.
  • 영국 언론에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2017년 12월 인터뷰에서 퍼거슨이나 뱅거 같은 장기집권에 대해 묻자 "지금의 언론과 함께라면 그건 불가능할 것 같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보다 좀 전인 12월 10일 에버튼 전 경기 후 인터뷰에서 로브렌의 파울로 인한 페널티킥을 가지고 스카이스포츠 기자와 설전을 벌인 적도 있다.[56] 물어뜯는데 특출난 영국 특유의 언론 분위기를 굉장히 싫어하는듯 하다. 특히나 영국 언론들은 폼이 좋지 않은 선수들을 물어뜯으려 안달난 반면 클롭은 자신의 선수들은 공식석상에서 만큼은 무한히 쉴드쳐주는 경향이 있어 여기에서 마찰이 많다.[57] 클롭은 선수들이 외부의 비난을 받고 휘둘리거나 상처받는 일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선수들이 비판을 받더라도 오직 자신에게만 받아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 한국과 이런 저런 인연이 깊은 감독이다. 마인츠 시절 차두리를 측면 공격수에서 오른쪽 풀백으로 포지션 전환을 시킨 감독이며 도르트문트를 맡은 후 차두리에게 문의 끝에 이영표를 영입하기도 했다. 지동원 또한 본인의 희망으로 영입했으며[58] 손흥민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도르트문트 감독 시절 모두 손흥민의 영입을 희망했다. 또한 슛포러브에 참여해서 마르코 로이스, 네벤 수보티치, 마츠 훔멜츠를 다음 상대로 지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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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9 시즌 에버튼 전에서 오리기가 후반 극장골을 넣은 후 경기장 안에 들어가 알리송을 껴안는 세레머니를 했는데 경기가 끝난뒤 바로 에버튼 감독과 팬에게 사과를 했으며 FA에게서 벌금 징계를 받았다. 이에 대해 에버튼 감독인 마르코 실바는 "추가 시간에 극적인 골이 터졌는데 그럴 수도 있지."라며 쿨한 반응을 보였다.
  • 정치적으로는 좌파 성향인 것으로 추정된다. 절대로 세금을 깎는 우파정당에는 투표하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 리버풀의 영원한 캡틴 스티븐 제라드와 사제 지간으로 보낸 시기는 없지만, 제라드가 클롭에 대해 굉장한 신뢰와 지지를 여러 차례 표했다. 몇 가지 일화로, 제라드가 코치 라이센스 과정 일환으로 클롭에게 인터뷰 15분을 요청했는데, 클롭은 무려 90분이나 인터뷰에 응했다고 한다. 이에 "내가 클롭을 만날 때마다 느낀 건 그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무엇을 요청할 때마다 그 이상을 줬다"며 극찬하였다.# 또 한번은 "내가 클롭을 위해 플레이 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 나는 클롭 감독 밑에서 뛸 만큼 운이 좋지 않았다. 난 너무 늙었고, 시기를 놓쳤다. 그래서 나는 리버풀 선수들을 질투한다"라고 뼈있는 농담을 던졌고, "클롭과 이야기를 한 후 그의 사무실에서 나와 훈련장을 거닐었을 때, 다시 걸어 들어가 그와 함께 앉고 싶었다. 유니폼을 다시 입고, 리버풀을 위해 달려가서 열심히 뛰고 싶었다. 그는 전염성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라며 클롭을 높게 치켜 세웠다.#[59]
  • 이 밖에도 클롭과 함께 경력을 보낸 적이 없으나 과거 리버풀에서 좋은 활약을 했던 다니엘 아게르, 사비 알론소 등이 코멘트를 남겼는데, 아게르는 "정말 클롭의 멘탈리티와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을 좋아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선수들을 응원하는 사람이며, 많은 걸 요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감독이라면 이런 게 필요하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알론소 역시 "클롭의 열정적 지도 방식을 한 번 쯤 경험해보고 싶다. 그는 최고의 감독이고, 열정을 보면 감탄이 나온다. 선수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승리를 위해 모든 걸 집중하는 훌륭한 감독이다"라며 극찬을 건넸다.#
  • 세계 최장 스로인 기록(51.33 미터)을 보유 중인 그뢴마크 코치를 스태프로 합류시켜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는 "클롭은 혁신가다. 클럽을 발전시킬 수 있는 지식이 있다면 기꺼이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말하는 리더"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단체 라이딩과 프리시즌 중 프로 서퍼를 고용해 리버풀 선수들이 축구 스트레스를 극복하도록 정신력 강의를 듣게 한 바도 있는데,# 이러한 점들을 미루어 보아 그뢴마크의 말처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지식을 수용할 줄 아는 열린 사고방식을 가진 듯 하다. 본격 종합 체육 구단
  • 리버풀에서 제공하는 터널캠 영상인 ‘Inside Anfield’에서 매 경기 하프 타임 휘슬이 울리자마자 선수들보다도 먼저 라커룸을 향해 뛰어들어가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 인터뷰에 따르면 하프타임 15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함이라고.
  • 경기장에서 대체로 운동용 캡에 트레이닝 상하의 차림을 고수한다. 한 인터뷰에 따르면 슈트를 입지 않는 이유로 편안함을 느낄 수 없고, 처음엔 의무인줄 알았으나 일부 다른 감독이 입지 않은 걸 본 이후 끊었다고 한다.#
  • 2018년 가을에 머지사이드에 있는 저택에 입주했는데 이 집의 소유주가 전임 감독인 브렌던 로저스라고 한다. 이로서 집주인 - 세입자 관계가 되었다. 이 집은 2019년 리버풀 구단이 로저스에게서 매입하고 클롭에게 무상(!)으로 임대해줬다.
  • 수입에 비해 상당히 검소하다고 한다. 프리미어리그 빅클럽 감독으로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데도 불구하고, 3000만원 상당의 오펠 차량을 이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 2019 FI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소감에서 구단과 선수들에 대한 감사 인사 후, 커먼 골[60]이란 자선단체에 가입한 사실과 홍보 등을 하여 화제가 되었다. EPL 감독 중에선 최초로 이 단체에 가입했으며, 수상 소감에서 언급한 이후 커먼 골 홈페이지가 일시적으로 마비될 만큼 파급력이 상당하였다.#
  • 2019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한스 요하임 바츠케 회장이 자서전을 통해 클롭을 놓아준 걸 여전히 후회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차라리 클롭만 빼고 나머지 팀 전체를 내보내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회상했으며, 또 "우리는 서로에게 맹목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관계였다. 클롭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항상 정직했고, 그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클롭의 정직한 성격을 치켜세웠다.#

7. 기록 및 수상

7.1. 선수 시절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90-91 1.FSV 마인츠 05 독일 2.분데스리가 33 10 0 0 - -
1991-92 1.FSV 마인츠 05 독일 2.분데스리가 32 8 0 0 - -
1992-93 1.FSV 마인츠 05 독일 2.분데스리가 41 3 0 0 - -
1993-94 1.FSV 마인츠 05 독일 2.분데스리가 34 7 0 0 - -
1994-95 1.FSV 마인츠 05 독일 2.분데스리가 33 7 0 0 - -
1995-96 1.FSV 마인츠 05 독일 2.분데스리가 29 2 0 0 - -
1996-97 1.FSV 마인츠 05 독일 2.분데스리가 24 3 0 0 - -
1997-98 1.FSV 마인츠 05 독일 2.분데스리가 31 4 0 0 - -
1998-99 1.FSV 마인츠 05 독일 2.분데스리가 29 4 0 0 - -
1999-00 1.FSV 마인츠 05 독일 2.분데스리가 30 4 0 0 - -
2000-01 1.FSV 마인츠 05 독일 2.분데스리가 9 0 0 0 - -

7.2. 감독 시절

연도 구단 리그 순위 경기 승점
2001-02 1.FSV 마인츠 05 독일 2.분데스리가 4 34 18 10 6 66 38 64
2002-03 1.FSV 마인츠 05 독일 2.분데스리가 4 34 19 5 10 64 39 62
2003-04 1.FSV 마인츠 05 독일 2.분데스리가 3 34 13 15 6 49 34 54
2004-05 1.FSV 마인츠 05 독일 분데스리가 11 34 12 7 15 50 55 43
2005-06 1.FSV 마인츠 05 독일 분데스리가 11 34 9 11 14 46 37 38
2006-07 1.FSV 마인츠 05 독일 분데스리가 16 34 8 10 16 34 57 34
2007-08 1.FSV 마인츠 05 독일 2.분데스리가 4 34 16 10 8 62 36 58
2008-09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독일 분데스리가 6 34 15 14 5 60 37 59
2009-10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독일 분데스리가 5 34 16 9 9 54 42 57
2010-11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독일 분데스리가 1 34 23 6 5 67 22 75
2011-12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독일 분데스리가 1 34 25 6 3 80 25 81
2012-13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독일 분데스리가 2 34 19 9 6 81 42 66
2013-14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독일 분데스리가 2 34 22 5 7 80 38 71
2014-15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독일 분데스리가 7 34 13 7 14 47 42 46
2015-16 리버풀 FC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8 38 16 12 10 63 50 60
2016-17 리버풀 FC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4 38 22 10 6 78 42 76
2017-18 리버풀 FC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4 38 21 12 5 84 38 75
2018-19 리버풀 FC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 38 30 7 1 89 22 97

7.3. 개인 수상

  • 독일 올해의 감독 (3) : 2011, 2012, 2019
  • FIFA 올해의 감독 : 2019
  • Onze d'Or 올해의 감독 : 2019
  • Globe Soccer Awards 올해의 감독 : 2019
  • World Soccer Awards 올해의 감독 : 2019
  • IFFHS 올해의 클럽 감독 : 2019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감독 (7) : 2016년 9월, 2018년 12월, 2019년 3월 • 8월 • 9월 • 11월 • 12월
  • 잉글랜드 리그감독협회 명예의 전당 : 2019
  • UK Coaching Awards Great Coaching Moment of the Year : 2019[61]
  • FWA Northern Managers Awards : 2019
  • The Top 50 Kindness Leaders : 2019
  • Deutscher Fernsehpreis (2) : 2006, 2010
  • Mainzer Medienpreis : 2018

[1] /ˈjʏʁɡn̩ ˈklɔp/.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적으면 위르겐 클로프.[2] 스트라이커[3] 센터백[4] 리버풀 감독 취임 당시 한 기자가 "무리뉴첼시 감독으로 부임할 때 스스로를 특별한 사람(Special One)이라 소개했는데, 클롭 당신은 어떻게 소개할겁니까?"라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이 위트있는 대답은 현장에 있던 기자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들었고, 한 기자는 이것을 두고 "클롭이 말 한 마디로 언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라고 했다. 실제로 축구인들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영국 언론답지 않게 클롭 감독에겐 호의적이다.[5] 위르겐 클롭 소개 영상[6] 당시 분데스리가 2부 리그는 15위부터 18위까지 3부 리그로 강등당하는 구조였다.[7] 마인츠를 탈락시킨 팀은 05-06 시즌 UEFA컵에서 우승한 세비야 FC였다. 클롭의 세비야 징크스는 도르트문트, 리버풀에서까지 쭉 이어졌다.[8] 포칼도 뮌헨에 패배하면서 탈락했다.[9] 2012-13 UEFA 챔피언스 리그 FINAL 선발 스쿼드.[10] 2014년 11월 1일까지 슈팅 대비 득점 비율이 8%에 불과하였다.[11] 클롭 역시 도르트문트 이전에 마인츠 감독이었다.[12] 경기 결과는 1:3으로 볼프스부르크에 역전패했다.[13] 당시 챔피언스리그에서 뛰기 위해 리버풀을 거절하고 다른 곳으로 이적한 선수들이 상당히 많았다.[14] 게다가 EPL 역사상 최다 승점 3위에 해당한다. 참고로 1위는 17-18시즌 100점의 맨시티, 2위는 18-19시즌 98점의 맨시티이다.[15] 클롭이 잉글랜드로 건너온 2010년대 중반의 프리미어리그는 상당한 격동기로, 전통의 강호들이었던 리버풀, 아스널, 맨유 등의 부진에, 그 틈을 타 젊고 유망한 토트넘의 급부상으로 기존의 강약체제에 큰 변화가 생겨났으며, 심지어 그런 와중에 뜬금없이 레스터 시티가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등 매우 혼돈스러운 전개가 연출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와중에도 특히 리버풀은 다른 상위권 경쟁팀들보다도 더 지지부진한 성적으로 길고 긴 암흑기를 걷고 있었다.[16] 차두리는 해외 리그에서나 국가대표에서나 공격수로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풀백으로 성공적으로 전향하며 더 가치가 높아졌고, 국가대표에서도 폼이 떨어진 송종국의 오른쪽 풀백 자리를 완벽하게 메꾸게 된다.[17] 차두리가 오랫동안 팀에 몸 담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인연은 이어졌는지 클롭이 도르트문트로 간 후 영입 대상 지동원에 대해 차두리에게 문의하기도 하였다.[18] 여담이지만 그로스크로이츠는 윙어로의 포지션 변경 시절 때 중앙 미드필더 포지션도 소화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그로스크로이츠는 골키퍼를 빼고는 모든 포지션을 소화 가능한 멀티플레이어가 되었다.[19] 리그 라이벌인 맨시티는 3배에 가까운 약 £180M을 지출했으며, 맨유도 2.5배에 가까운 £150M 이상을 지출했다. 지출액만 따지면 중위권 팀들보다 지출이 적었다.[20] 반 다이크 사가에 관해 보드진이 잘못했다는 서술이 있었는데 오히려 이는 반대에 가깝다. 2014년 여름부터 지속된 리버풀의 핵심 선수 빼오기에 지친 소튼은 바이날둠의 인터뷰 자료를 가지고 억지로 PL 사무국에 제소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리버풀에 저항했다. 사실 태핑업의 결정적인 증거랄 게 별로 없었기 때문에 제소가 끝까지 가도 소튼이 이길 가능성은 낮았지만, 반 다이크에 관심을 보이는 구단이 유벤투스와 맨체스터 시티를 비롯해서 매우 많았기 때문에, 소튼 입장에서는 제소에서 져도 리버풀에만 안 팔면 그만인 상황이었다. 이를 간파한 리버풀의 보드진은 소튼에게 즉시 사과로 선수에게서 관심을 접는다는 성명을 내며 구단과 구단의 관계를 원점으로 돌리려고 애썼고, 계속된 리버풀 보드진의 사과에 소튼 프런트의 마음도 움직인다. 결국 화해에 성공한 리버풀은 겨울 시장이 열리자마자 반 다이크를 데려올 수 있었다.[21] 특히나 겨울 이적시장 이전부터 하이재킹에 대비해 구단의 의료진을 미리 영국 남해안으로 보내놓고, 소튼의 이적료 요구를 전적으로 들어주는 등 리버풀 프런트는 오히려 일을 제대로 했다. 잘못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매우 잘한 편이 맞다.[22] 헨더슨의 부상 이탈이 많아 찬과 함께 미드필더로 뛴 시간도 많기는 하다.[23] 케이타의 경우, 리버풀 이적 자체는 2017년 여름에 이미 확정됐었다.[24] 물론 이런 부가적인 능력 이외의 공격수로서 가장 중요한 결정력에서 레반도프스키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공격수기 때문에 활약이 가능했다.[25] 이런 클롭의 전술을 가장 먼저, 자주 체험한 게 다름 아닌 독일 클럽들이다. 많이 당해 본 팀이 대처도 빠른 법.[26] 수비라인을 극단적으로 내려 상대편 공격수, 미드필더가 압박을 가하면 수비수와의 사이 공간이 비게 된다. 이를 이용한 대응 전술도 모두 독일팀들이 당해본 후 만들어낸 전술.[27] 후반기 도르트문트의 순위가 꾸준히 상향곡선을 탄건 클롭이 전술을 바꾼 것이 아니라 부상당한 주축 선수들이 복귀한 것이 크다는 의견이 많았다. 클롭이 비판을 받았던 이유는 게겐 프레싱이라는 전술 자체의 문제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인해 게겐 프레싱이 정상적으로 가동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전술적 보완 없이 계속 게겐 프레싱만을 밀고 나갔기 때문이다. 게겐 프레싱 뿐만 아니라 어떠한 전술이라도 적합한 선수들을 이용해 이상적으로 가동하면 강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축구에서 완벽한 전술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전술적 공백을 적절한 방법을 통해 효과적으로 보완하는 것이 감독의 역량이다. 단, 전술적 공백을 해결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기본 전술이 어느 정도 돌아갈 때의 이야기이고, 시즌 중에 완전히 다른 전술로 팀을 새롭게 훈련시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역시 기억할 필요가 있으며, 도르트문트는 초반 누수를 극복하기엔 다른 빅클럽처럼 재정이 여유롭거나 뎁스가 출중한 팀도 아니었으므로 클롭에 대해 전술적 유연성을 이유로 비난하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28] 이 시즌 리그 우승팀인 첼시가 리그에서 유일하게 이기지 못했던 팀이 리버풀이었다.(1무 1패)[29] 이는 활동량 스탯에서도 드러나는데 16-17시즌 전반기 리버풀은 리그 전체 활동량 1위팀이었으나 17-18시즌은 11월 기준으로 10위에 랭크되었다. 선수들 개인 활동량 부문도 마찬가지.[30] 해당 시즌 11R 웨스트 햄 전이 대표적인데 형식적인 포메이션은 4-3-3이었지만 3미들 중 한 명으로 표기된 체임벌린은 우측 윙어와 윙백을 오가는 측면 자원으로 기용되었고 라이트백으로 표기된 고메즈는 경기 시간 대부분 중앙으로 쳐져서 풀백과 센터백 사이 공간을 틀어막았다. 이 전술은 3백으로 수비적으로 내려앉은 뒤 체임벌린과 마-누-라 라인의 뛰어난 기동력을 앞세워 상대를 한번의 역습으로 무찌르는 형태의 선수비 후역습 전술로, 해당 경기에서 1-4로 원정 대승을 거뒀다.[31] 미뇰레; 클라인, 마팁, 로브렌, 밀너; 헨더슨; 랄라나, 바이날둠; 마네, 피르미누, 쿠티뉴[32] 엠레 찬은 피보테와 박투박을 오가며, 클라반은 마팁과 로브렌의 부상을 메꾸며 거의 주전급으로 뛰긴 했다.[33] 18R 본머스 전에 상당히 하드코어한 게겐 프레싱으로 0-4로 상대를 압도했다.[34] 살면서 흔히 쓰는 표현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프로 세계에서 은근히 듣기 힘든 말이기도 할 것이다.[35] 2015-16 시즌에 준수하게 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클롭은 사코를 단 한 경기도 출전시키지 않았다.[36] 물론 바르셀로나의 강력한 구애가 있던 상황이기도 했으나 FSG는 이전부터 줄곧 쿠티뉴 이적의 전권은 클롭에게 넘긴다고 밝혔던 바가 있다.[37] 2013-2014 챔피언스리그 나폴리:도르트문트전이었는데, 사실 판정 자체는 나무랄 게 없었다. 문제는 클롭 혼자서 저 인상파 항의와 함께 심판을 조롱하는 제스처를 취해서 퇴장+다음경기 출전정지 크리를 먹은 것.[38] 이런 조언을 해준 벵거 본인 역시 2008년 맨유 원정 경기에서 천금같이 넣은 골이 오프사이드 판정이 나면서 분에 못이겨 물병을 걷어 찼다가 추가 시간 말미에 퇴장 당한 적이 있었다. '올드 트래포드에서 아스날을 외치다.'라는 짤이 유래한 일이 바로 이 사건[39] 일례로 2004년 12월 올림피아코스전에서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하는 제라드의 역대급 중거리포를 보고도 라파 베니테즈의 리액션은 구장 스탭이 달려들어 와락 껴안자 토닥토닥(...) 하는 수준에 그쳤다. 07년 5월 챔피언스리그 4강 첼시전 승부차기에서의 가부좌(...)처럼 좀 깨는 면모도 없진 않았지만 이양반은 클롭 같은 유머러스한 면모가 일절 없었던 노잼형 감독이라...[40] 클롭의 도르트문트 재임 시절, 아스날의 벵거 스타일과 유사한 것 같는 이야기를 듣고 이 같이 답하였다. 이어서 벵거에 대한 존경을 표했고 다만 추구하는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 듯 하다.[41] 2018-19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2차전 리버풀과 바르셀로나 간의 경기를 앞두고 한 말이다. 1차전에서 0:3으로 완패하며 모두가 결승 진출이 힘들다고 보았는데...[42] 경기 전 선수들에게 한 말이며, 도르트문트와의 16-17 시즌 유로파리그 8강 2차전 때도 하프타임 당시 '우리의 손자들에게 자랑할 만한 위대한 밤을 만들자'는 스피치를 했었는데 그 날의 스피치를 오마주한 것으로 보인다.[43] 클롭은 경기장에서 여타 감독들처럼 멋있는 정장이 아닌 늘상 편안한 트레이닝 복을 고수하는데, 그것에 관해 한 말이다.[44] 네이버 풋볼엔토크에서 언급한 사항.[45] 원래부터 클롭은 재치있는 말솜씨로 유명했다. 노말 원 드립이 그 예.[46] 조롱이 얼마나 심했는지 네이버에서도 클롭 스위스가 연결되어 검색된다![47] 그런데 클롭보다 더한 감독이 있다. 베르더 브레멘 레전드인 토마스 샤프인데 이 사람은 브레멘에서 유소년, 1군 선수, 유소년 코치, 2군 코치, 감독까지 하면서 40년 동안 베르더 브레멘에만 있었다.[48] 참고로 클롭은 도르트문트 감독 시절 안필드에서 리버풀과의 친선 경기 때 입구에 This is Anfield라고 적힌 리버풀의 상징적인 액자에 손을 올리기도 했다.[49] 돌이켜 보았을 때 사실 클롭의 이런 언더독 성향이 아니었다면 클롭은 리버풀로 부임할만한 하등의 이유가 없는 인물이었다. 이미 도르트문트를 유럽 정상권으로 올려놓은 지도력, 위에서 얘기한 호감형의 인상과 언변에서 기인한 스타성, 감독치고는 젊은 나이, 확고한 전술적 철학 등, 당장 감독 교체를 염두에 두거나 성적이 불만족 스러운 빅클럽이라면 노리지 않을 이유가 없는 감독계의 최대어였다. 그에 반해 당시 리버풀은 답이 없는 침체기와 연고지의 불리함, 현실에 비해 높은 팬들의 기대치로 인해 감독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메리트가 없는 클럽이었고 실제로 클롭과의 링크가 나왔을 때 대다수의 리버풀 팬들은 현실적이지 않으니 기대하지 말자는 의견이 많았다.[50] 참고로 리버풀 시민들은 The Sun을 굉장히 싫어한다. 힐즈브러 참사 때 사실관계와 다른 내용으로 피해자를 모욕하였기 때문인데 이 때 이후로 지금까지도 리버풀 FC와 에버튼 FC는 The Sun과 공식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과거부터 리버풀 팬이었고 현재 리버풀 감독인 클롭이 The Sun을 싫어하는 건 당연한 일. 리버풀 부임 당시 클롭이 과거 The Sun 기사의 질문을 거부한 것이 리버풀 팬들 사이에 알려지며 리버풀 팬들은 더더욱 환영하였다.[51] 이 두 코치는 클롭 감독과 함께 도르트문트에서 물러나 쉬고 있는 상황이었고, 로저스와 함께 일했던 오드리스콜과 맥칼리스터 코치는 부임한지 한 시즌도 안되어 일자리를 잃었다.[52] 추후 인터뷰에서 얘기한 바로는, 마인츠에서 함께 선수생활을 했던 부바치와 클롭은 둘 중 한 명이 먼저 감독이 될 경우 나머지 한 명은 그 사람의 코치로 들어가기로 약속했었다고 한다. 결국 클롭이 먼저 감독이 됐고 부바치는 약속을 지켰다. 클롭은 부바치에게 일반적인 어시스턴트 코치 이상의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상 리버풀에는 2명의 감독이 있는 셈이라 할 수도 있겠다.[53] 언론들의 추정은 아스날이 벵거의 후임과 관련하여 부바치에 접근했고, 부바치가 이를 클롭에게 비밀로 한 것이 아닌가라는 것이다. 당시 아스날의 풋볼 디렉터가 도르트문트 시절 클롭, 부바치와 한솥밥을 먹었던 미슐란티드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으나, 당사자들이 함구하고 있기 때문에 확실하지는 않은 셈이다. 풋볼매니저에서 부바치 코치가 정식적으로 떠난 19시리즈 에디터를 구매하면 개인세부 편집에 좋아하는 인물과 싫어하는 인물을 볼 수 있는데 클롭이 싫어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싫어하는 수치는 각각 클롭 75, 부바치 70이다.(최대수치는 100) 그러나 사이가 소원해졌다는 공식적인 발표나 소식은 없었고 아직도 여러 설이 난무하기 때문에 불화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54] 네덜란드 출신으로 2014년부터 리버풀에서 몸 담고 있다가 2018년이 되자마자 네덜란드 NEC 네이메헌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그러다가 네이메헌이 2017-18 시즌 끝내 1부리그 승격에 실패하며 경질되었고 2018년 여름에 다시 리버풀의 코치로 복귀했다. 리버풀의 훈련 영상들을 보면 이 사람이 1군 팀의 트레이닝을 전면적으로 이끈다는 것을 알 수 있다.[55] 바이에른 뮌헨 1군 코치였는데 도르트문트 시절 클롭이 콘마이어를 눈여겨 봤고 리버풀로 부임한 뒤 그를 영입했다.[56] 기자가 PK에 대한 의견를 집요하게 묻자 클롭은 처음에는 대답을 거부했으나 나중에 PK감이 아니라고 하였다. 기자는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설전을 벌였고 클롭은 이 때 "축구를 좀 아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다"라며 다소 감정적인 말을 하였다.(기자는 여기에 우리도 선수 출신과 같은 전문가를 데리고 있는데 이들도 PK 맞다고 한다며 속을 더 긁었다.)[57] 사실 영국 언론들은 특히 독일 감독에 대해 적대적이며, 축구 버전의 김성근이라고 할 수 있는 펠릭스 마가트풀럼 FC를 맡았다가, 이런걸 놓칠리 없는 영국언론에 의해서 재임중 맹폭을 당했으며, 물러난 후 몇년 후인 2018년까지도 종종 끄집어 내어져 조롱과 굴욕을 당하고 있다.[58] 그리고 이 과정에서 차두리에게 지동원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다고 한다.[59] 하지만 갤럭시에서 나오고 난뒤 클롭 하의 리버풀에서 다시 서브로나마 선수로 뛰냐 안뛰냐는 논쟁이 있을정도로 뛸기회가 어느정도는 있었다. 물론 리버풀로 돌아오긴 했지만 선수가 아닌 유소년 감독이었기에 클롭하의 리버풀에선 제라드는 볼수 없었다. 하지만 클롭밑의 선수 제라드는 팬들도 무척이나 원했고 지금도 어땟을까 라며 아쉬워 한다. 갤럭시에서 은퇴를 하였지만 제라드도 이렇게 아쉬워 하는거 보면 분명 제라드와 팬들의 바람과는 달리 리버풀 선수로써의 복귀가 힘들만한 요소가 있었을 것이다.[60] 커먼 골은 설립자 후안 마타를 비롯해 축구선수와 감독 등이 연봉의 1%씩을 기부하여 사회에 기여하자는 취지로 운영되는 자선단체이다.[61] 2018-19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2경기 2차전 리버풀 FC vs FC 바르셀로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