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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코 제베츠

브란코 제베츠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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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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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의 前 축구감독
<colbgcolor=#f0f0f0> 이름 브란코 제베츠
Branko Zebec
본명 브라니슬라브 제베츠
Branislav Zebec
출생 1929년 5월 17일
유고슬라비아 왕국 자그레브
사망 1988년 9월 26일(향년 59세)
SFR 유고슬라비아 SR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국적
[[크로아티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76cm
직업 축구선수 (레프트백, 윙어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f0f0f0> 선수 HSK 그라단스키 자그레브 (1943~1945)
NK 포슈타르 자그레브 (1946~1947)
NK 로코모티바 자그레브 (1947)
NK 밀리시오네르 자그레브 (1948)
NK 자그레브 (1948~1951)
FK 파르티잔 (1951~1959)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1959~1961)
알레마니아 아헨 (1961~1965)
감독 GNK 디나모 자그레브(1966~1967)
FC 바이에른 뮌헨 (1968~1970)
VfB 슈투트가르트 (1970~1972)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 (1972~1973)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1974~1978)
함부르크 SV (1978~1980)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81~1982)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82~1983)
GNK 디나모 자그레브 (1984)
국가대표 65경기 17골 (유고슬라비아 / 1951~1961)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감독 경력

[clearfix]

1. 개요

유고슬라비아크로아티아의 축구선수이자 감독.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브란코 제베츠는 유스 시절 뛰어난 속도와 축구 지능을 지녔으나 163cm라는 작은 키를 이유로 중용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자그레브 내의 여러 팀들로 거처를 계속 옮기다 NK 자그레브에서 데뷔한다.

1951년 유고슬라비아 리그의 강팀인 FK 파르티잔을 이적한 이후 레프트윙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국가대표로 선발되기에 이른다. FK 파르티잔에서는 1953/54 시즌과 57/58시즌 아쉽게 준우승하며 리그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러나 유고슬라비아 컵에서는 강세를 보이며 1952, 1954, 1957 3회 우승하였다.

FK 파르티잔에서 리그 우승에 계속 실패하자, 1959년, 라이벌 팀이었던 FK 츠르베나 즈베즈다로 이적한다. 결국 1960/61시즌 염원하던 유고슬라비아 리그 우승을 이룬다.

1963년 독일 2부 리그알레마니아 아헨으로 이적하여 4년간 뛴 후 선수로서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1952 헬싱키 올림픽 은메달을[1] 받았으며 7골로 대회 득점왕도 차지하였다.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1958 FIFA 월드컵 스웨덴에 참가했고, 1958년 대회에서는 유고슬라비아의 주장이었다. 두 대회 모두 8강에 올랐으나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탈락했다.

3. 감독 경력

1965년 고향의 GNK 디나모 자그레브에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1967 인터-시티 페어스컵에 참가하여 결승최초에서 리즈 유나이티드 FC를 꺾고 동유럽 팀 최초로 우승하였다.

선수 시절 국가대표 동료였던 즐라트코 차이코브스키 감독의 후임으로 1968년 FC 바이에른 뮌헨 감독이 되었다. 그는 첫 시즌이었던 68/69 시즌 분데스리가DFB 포칼에서 우승하며 독일 역사 상 첫 더블을 이뤘다. 뮌헨의 분데스 우승은 37년 만의 리그 우승이기도 했다.
첫 시즌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다음 시즌인 69/70 시즌 유러피언 컵 1라운드에서 AS 생테티엔에게 탈락하였다. 제베츠는 이 패배 직후, 뮌헨과의 재계약은 없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시즌 후반기에 들어서는 3경기에서 승점 1점에 그치는 등, 리그에서 어려움을 보이면서 조기 경질되었다. 프란츠 베켄바우어는 이 시기에 대해 감독과 팀 사이에 불협화음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뒤이어 VfB 슈투트가르트 감독이 되었으나 역시 성과를 보이지 못함녀서 2번째 시즌이 끝나기 전 조기 경질되었다.

유고슬라비아로 복귀하여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제베츠의 지휘 아래 UEFA 컵위너스컵 준결승에 오른 것은[2] 여전히 하이두크 스플리트의 유럽대항전 최고 기록이다. 리그에서는 9위에 그쳤지만, 유고슬라비아 컵에서는 친정팀 FK 츠르베나 즈베즈다를 꺾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하이두크의 팬들은 감독이 잔류하기를 원했지만, 한 시즌 만에 제베츠는 독일 무대로 복귀하기로 결심한다.

제베츠는 분데스리가에서 강등된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감독이 되었다. 그는 유고슬라비아 출신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며 팀을 리빌딩했고, 첫 해에 2. 분데스리가를 우승하며 팀을 다시 승격시켰다. 1부 리그에서는 3년 동안 팀을 9위에서 3위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4번째 시즌 13위에 그치면서 실망스러운 성적을 보였고, 경질되었다.

76/77 시즌 UEFA 컵위너스컵 우승 팀이었던 함부르크 SV는 오랫동안 첫 리그 우승을 고대해왔지만, 76/77 시즌 리그 11위에 그쳤다. 그들은 리그 우승을 위해 1978년 제베츠를 선임했다. 그는 저번 시즌 부진했던 케빈 키건을 부활시키며 부임 첫 해에 함부르크의 첫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듬해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올랐으나 노팅엄 포레스트 FC에게 패했으며 리그에서도 후반기에 미끄러지며 준우승에 그쳤다. 언론은 체력을 고하게 요구하는 제베츠의 훈련 방식을 문제 삼았고, 선수들도 훈련에 대해 불만을 표했다.
함부르크의 세 번째 시즌, 제베츠는 음주 문제를 보였다. 경기 중에 술을 마시거나 잠을 자는 모습을 보였고 시즌 초반 태도 문제로 경질되었다.

81/82 시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감독을 맡아 도르트문트의 12년 만의 최고 성적인 6위에 오르며 UEFA 컵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알코올 문제가 반복되며 시즌 종료 후 경질되었다.

이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GNK 디나모 자그레브를 감독하였다.
1988년 알코올 질환으로 59세의 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1] 우승은 헝가리가 차지했다.[2] 리즈 유나이티드 FC에게 탈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