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11 04:20:07

펩 과르디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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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펩 과르디올라
Pep Guardiola
본명 조세프 과르디올라 이 살라
Josep Guardiola i Sala
출생 1971년 1월 18일 ([age(1971-01-18)]세) /
스페인 카탈루냐지방 바르셀로나주 바게스구역 삼페도르
국적 스페인 파일:스페인 국기.png
신체 180cm|체중 76kg|B형
직업 축구선수(미드필더[1]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FC 바르셀로나 B (1990~1992)
FC 바르셀로나 (1990~2001)
브레시아 칼초 (2001~2002)
AS 로마 (2002~2003)
브레시아 칼초 (2003)
알 아흘리 도하 (2003~2005)
도라도스 데 시날로아 (2005~2006)
감독 FC 바르셀로나 B (2007~2008)
FC 바르셀로나 (2008~2012)
FC 바이에른 뮌헨 (2013~2016)
맨체스터 시티 FC (2016~ )
국가대표 47경기 5골(스페인 / 1992~2001)
별명 페프(Pep)[2]

1. 개요2. 선수 생활
2.1. 리그 경력2.2. 국가대표 경력2.3. 플레이 스타일
3. 감독으로서
3.1. 감독 경력3.2. 전술 성향
3.2.1. 전술에 대한 비판
3.3. 선수단 운영
3.3.1. 비판점3.3.2. 분석
3.4. VS 무리뉴3.5. 정장이 잘 어울리는 감독
4. 개인사5. 어록6. 기록
6.1. 선수 시절
6.1.1. 우승 경력6.1.2. 리그 기록
6.2. 감독 시절
6.2.1. 감독 기록6.2.2. 리그 기록
6.3. 수상 기록

1. 개요

스페인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6년부터 맨체스터 시티 FC 감독을 맡고 있다.

선수 시절 FC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한 바에 힘입어, 바르셀로나의 레전드 선수로 손꼽히고 있다. 감독으로서도 훌륭했는데, 자신의 친정 팀인 FC 바르셀로나의 감독을 맡아서 첫 시즌부터 엄청난 우승 행진을 벌였고 FC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리그 3시즌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뿐만 아니라 70%가 넘는 승률을 자랑하는 실력자이기도 하다. 별명은 펩(Pep)[3].

2. 선수 생활

파일:external/www.mancity.com/a%20pep%20dream%20team%20barca.jpg
1992년 유러피언 컵 결승전
파일:pep.jpg
FC 바르셀로나 선수 시절

2.1. 리그 경력

비록 원 클럽 맨은 아니지만, 말 그대로 FC 바르셀로나의 레전드이자 바르사 성골 중의 성골이다.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FC 바르셀로나에서 보냈다. 카탈루냐 출생으로, 외국인과 바스크 선수가 대부분이었던 당시 팀의 몇 안 되는 카탈루냐 출신 선수였다. 당연하겠지만 FC 바르셀로나의 유스 팀에서 성장했고, 1990년 12월 16일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요한 크루이프의 지휘 아래에서 플레이메이커 성향이 강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며 팀에게 여섯 번의 리그 우승 타이틀, 두 번의 코파 델 레이 우승컵을 안겼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건 바르셀로나에서 뛰면서 마침내 1991-92시즌 챔스를 우승하였고, 구단이 염원하던 빅 이어를 들어올리게 된다.

당연히 뼛속까지 카탈루냐인이었기 때문에 FC 바르셀로나에서 인기는 엄청났다. 스페인 국대와 카탈루냐 대표를 동시에 뛰기도 했다.

그러나 펩의 선수 시절 말년은 상당히 좋지 못했다. 약물 복용 의혹과, 외지의 클럽 저니맨을 '좋은 말년'이라 하기는 힘들 것이다. 펩은 FC 바르셀로나에서 정신적 지주였음에도 불구하고 11시즌[4]만을 뛰고 이적한다. 이때 펩의 나이는 고작 30세였고, 유리몸이라는 단점 때문에 일찍 노쇠했다는 평은 있었지만 '퇴물'이나 '흘러간 레전드' 같은 수식어에 그의 이름을 올리기에는 한참 젊은 나이였다.

그 이후의 행보가 특히 의혹 투성이인데, 그가 카탈루냐를 떠나 선택한 클럽부터가 다소 의외였다. 그가 FC 바르셀로나에서 이적하려 하자 뉴캐슬, 맨유, 웨스트햄, 토트넘, 리버풀, AC 밀란, 인테르에서 링크가 떴다. 30세로 나이는 적지 않았지만, 여전히 빅 클럽에서 뛰기에는 무리가 없는 선수였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전술을 배워 보고 싶다는 마음에 세리에행을 선택한다. 이때 그가 이적한 클럽이 브레시아 칼초이다. 브레시아 칼초는 그 전 시즌 승격해 로베르토 바조의 활약으로 클럽 역사상 최고의 성적인 세리에 A 7위를 거뒀다. 펩이 브레시아에서 뛴 것은 01-02 한 시즌 뿐인데, 브레시아는 이때 14위를 하게 된다. 펩은 다시 세리에 내에서 AS 로마로 이적한다. 00-01 우승, 01-02 준우승을 했던 명문 로마는, 펩이 온 02-03 시즌에 8위로 추락하게 된다.

사실 펩은 브레시아에서 실질적으로 경기에 뛰지 못했다. 그는 01-02 전반기를 마친 뒤인 2002년 1월 약물 복용으로 기소되어 4개월간 출전 금지를 당한다. 이에 대해 펩은 바르셀로나 B팀 감독이 된 후 항소했지만, 항소에서도 그의 약물 복용 혐의가 인정되었다. 결국 그가 바르셀로나 A팀 감독이 된 후에야 의혹이 무죄 처리되었다. 선수 시절의 약물 복용 문제가, 상식적으로 너무나 긴 시간인 무려 7년 6개월이 지나 바르셀로나 감독이 되어서야 무혐의 처리되었기 때문에 많은 의혹이 있다.

브레시아에서의 후반기에는 출장을 못한 채 로마로 이적을 한다. 그는 로마에서 02-03 시즌을 뛰었는데, 오히려 리그는 전반기만 뛴 브레시아에서보다도 더 적은 단 4회 출장만 하게 된다. 로마 올드팬들은 최악의 영입에 펩을 꼽기도 하는 것에서도 볼 수 있듯 그의 로마 생활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로마는 아예 펩을 포기했고, 결국 몇 달을 다시 브레시아에서 뛰게 된다. 브레시아는 10위로 리그를 마감한다.[5]

세리에에서 나온 펩이 향한 곳은 축구 선수들의 은퇴지인 중동 리그이다. 카타르의 알 아흘리로 이적한다. 이번에도 세리에를 떠났을 때 맨유의 오퍼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카타르 리그에 있을 때 맨유, 맨시티, 첼시의 오퍼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카타르 리그에 머무른다.[6][7] 03-04, 04-05 두 시즌 카타르에서 뛰면서 그는 세리에에서와는 달리 주전으로 자리매김한다. 이때 팀의 성적은 03-04 때 10팀 중 4위, 04-05 때 10팀 중 8위였다.

알 아흘리에 있을 때, 펩은 약물 복용 혐의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7개월 징역을 선고받는다. 2005년 약물 복용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지만 보류되었고, 2007년 B팀 감독으로서 항소한 후에는 혐의만 남은 채 징역형은 말소된다. 그리고 2009년에서야 그의 약물 복용이 무혐의로 처리된다. 기욤 발라그가 쓴 펩 과르디올라 전기에 따르면 인간은 9나노그램 이하의 약물을 체내에서 자체적으로 생성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펩에게서 검출된 난드롤론은 2나노그램 이하였기 때문에 이 연구 결과에 따라 무죄가 확정되었다.

알 아흘리에서 나온 펩은 멕시코로 향한다. 멕시코에서 지금은 2부 리그 팀인 도라도스 데 시날로아에 가게 되고, 이때 팀은 6팀 중 4위라는 꾸준한 성적을 거둔다. 그리고 이때, Axocopan에서 감독 일을 배우게 된다.

2.2. 국가대표 경력

94년때까지는 전성기여서 국대에서도 잘했지만 그후로는 활약이없었다.

과르디올라는 자국에서 개최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국가 대표 멤버로 활약하게 된다. 전승으로 결승에 올라 결승전에서 폴란드를 이기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후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스페인 대표팀의 일원으로 출전하게 된다. 과르디올라가 뛰던 스페인은 당시 기준으로 디펜딩 챔피언 독일, 남미의 복병 볼리비아, 아시아의 대한민국과 같은 조가 되었다. 과르디올라는 대한민국전에는 출장하지 않았으며, 볼리비아전에서 골을 넣어 천금 같은 승리를 따냈다. 16강에서도 스위스를 상대로 직접 골을 넣진 못했지만 승리를 거두는 데에 일조했다. 그러나 8강전에서 이 대회 준우승을 차지하게 되는 이탈리아에게 덜미를 잡혔다. 올림픽 금메달의 저주

유로 1996에서는 국가대표로 발탁되지 않았다.

1998년 월드컵에서도 국가대표로 발탁되지 않았다.

유로 2000에서는 조별리그 2경기, 16강전 풀경기를 뛰었으며, 16강전 프랑스한테 2-1로 패했다.

2.3. 플레이 스타일

선수 시절엔 수비형 미드필더, 더 정확히는 지금은 거의 명맥이 끊어진 볼란치 중에서도 세계적인 선수이다. 한국 선수로는 조광래가 대표적이고 당대 선수들로는 독일의 로타어 마테우스, 네덜란드와 AC 밀란의 프랑크 레이카르트, 브라질의 둥가, 아르헨티나와 옆동네 레알 마드리드의 페르난도 레돈도, 그리고 스페인과 바르셀로나의 펩 과르디올라가 손꼽힌다. 수비력은 뛰어난 편이 아니었지만 공을 잡으면 정확한 패스를 통해 경기를 정교하게 전개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바르셀로나식 볼란치의 계보를 시작한 인물로, 샤비 에르난데스가 그 후계자이자 업그레이드판이라고 할 수 있다. 사비 알론소 혹은 이탈리아의 피를로와 같은 후방형 플레이메이커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그의 기량은 요한 크루이프 감독의 지도하의 바르셀로나 드림팀 1기에서 빛을 발했는데, 이때는 호마리우,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치키 베히리스타인 등의 공격진에게 정확한 패스를 연결해주고 로날드 쿠만이 지휘하는 포백 라인의 앞을 보호하는 등 그야말로 현재의 샤비에 버금가는 활약을 했다.

다만 안습한 건 몇 번이고 언급하듯 부상 때문에 내구력은 약했고, 그 때문에 선수 말년에 이곳저곳으로부터 시련에 빠지고, 본인도 슬럼프에 빠졌으며 그의 스타일 자체가 자기 혼자 잘한다고 팀의 기량이 한순간에 올라가는 게 아닌, 그와 함께 패스를 잘 받아먹을 공격수가 있어야 사는 스타일이라 바르셀로나가 아닌 다른 곳에서의 커리어가 모자람은 아쉬움이 있다. 펩 자신은 시대가 자신과 같은 유형의 선수를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펩의 선수 생활이 저물어가던 시기는 클로드 마켈렐레 유형의 선수가 빛을 발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3. 감독으로서

3.1. 감독 경력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펩 과르디올라/감독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2. 전술 성향

전술은 흔히 알려진 '티키타카'라는 이상하고 말도 안되고 본인도 치를 떨 만큼 싫어한 단어로 대표되는 전술이다. 하지만 정확한 전술계에서의 해석으로는 '포지셔닝 플레이의 극대화'라고 할 수 있다. 펩의 전술은 기본적으로 안전한 짧은 패스를 이용해서 후방에서부터 빌드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 것을 위해서 수비형 미드필더 한 명이 중앙수비수라인으로 내려와서 라볼피아나를 형성해서 후방에서의 숫적 우위를 베이스로 빌드업을 수월하게 만든다.

다른 특징은 오버로드 투 아이솔레이션을 통한 사이드 체인지. 농구를 자주 보는 사람들은 이름을 보면 단박에 알겠지만 농구의 전술에서 따온게 맞다.[8] 펩의 축구는 점유율 유지를 위해서 중앙을 자주 사용하지만 기본적으로 윙어 2명(윙어가 없을 시엔 윙백 2명)은 넓게 포진한다. 이는 중앙에서 점유율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시에 측면으로 공을 돌려서 점유를 계속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펩의 전술의 핵심 중 하나인 사이드 체인지를 이용해 상대 진영을 허물기 위함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윙어들이 넓게 포진하기 때문에 펩의 팀이 측면을 이용하게 되면 그 사이드로 상대 팀을 포함해서 선수들이 쏠릴 수 밖에 없다. 이 때 반대쪽으로 넓게 포진한 윙어는 방대한 공간을 얻게 되고 크로스 혹은 사비 같은 시야가 넓고 패스가 뛰어난 미드필더가 반대편 윙어가 침투하는 공간으로 쓰루패스를 이용한 순간적인 사이드 체인지로 상대 진영을 허문다. [9]

또한 펩은 수비시 강렬한 전방 압박을 애용한다. 펩의 압박은 약 3가지 단계로 나뉘는데

1.전방에서의 압박을 통해 상대의 공격 진행 방향을 제어하고 한 쪽 측면으로 몰아 넣는다.
2. 경기장 중앙에서의 격렬한 압박을 하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주어서 상대 선수가 공은 소유할 수 있게 만들되 전방을 향한 위협적인 공격으로의 진행을 막고 백패스 또는 횡패스를 하게 만든다.
3. 백패스나 횡패스를 받은 수비수들은 펩의 공격수들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서 더욱 라인을 내리게 되는데 이러면서 자연스럽게 펩의 팀의 라인이 높아지면서 상대팀을 상대 진영에 가두게 된다.

펩의 압박 수비는 위의 3가지를 무한히 반복하면서 상대 선수들의 실수를 기다리고 상대가 실수를 했을 때 높은 위치에서 공을 빼앗으면서 빠르게 역습을 가져간다. 이는 펩 과르디올라의 경기장의 높은 곳에서 빼앗은 공이 낮은 곳에서 빼앗은 공보다 골로 연결될 확률이 크다는 지론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펩 하면 티키타카가 떠오르기 마련인데, 실상 티키타카가 팀의 아이덴티티로 정착된 팀은 펩이 커쳐간 바르셀로나와 바이에른 뮌헨에 불과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도리어 펩이 2010년대 축구 트렌드에 미친 영향은 다른 데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첫째, 후방 빌드업의 정착이다. 물론 후방 빌드업의 개념은 이전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과르디올라가 정착시킨 후방 빌드업은 변형 백3를 활용한 것이다. 이를 창안한 아르헨티나 감독 리카르도 라 볼페의 이름을 딴 라볼피아나라는 아이디어를 도입한 것인데, 빌드업 리더를 센터백 사이로 내려[10] 일시적으로 백3 라인을 형성하고 골키퍼까지 포함한 4인의 후방 선수가 공을 돌리며 전방 압박 라인을 끌어당겨 상대 압박 라인의 간격을 벌리거나, 혹은 대형을 무너트린다. 이렇게 상대의 대형을 흔들고 나면 아군 미드필더들이 공격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한층 수월해진다. 현재 웬만한 팀들은 이런 아이디어를 수용해서 빌드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이에 대한 대책들도 발전해서 위르겐 클롭처럼 1~2선의 기동력을 활용해 매우 집요하게 상대 후방 빌드업을 방해하는 대책이 나오는가 하면, 디에고 시메오네처럼 아예 전방 압박은 적당히 시간을 늦추는 수준으로만 하고 아군의 타이트한 대형 유지를 중시하는 대책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펩은 한 가지 전술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를 시도해 보았다. 대표적인 예시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16-17시즌 30라운드 아스날 FC와의 경기, 드디어 롱패스도 꺼내들었다. 특히 이 날 카바예로 골키퍼는 아스널 진영을 향한 긴 골킥으로 후방 빌드업을 생략하기도 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전술적으로 한층 더 유연해진 것이다. 기사 거기에다 이번 토튼햄전에서는 패스를 줄이고 후방 빌드업을 줄이며, 활동량을 늘리는 축구를 구사하면서 패스플레이를 방해하는데 초점을 맞춘 상대를 농락했다.

둘째, 점유의 중요성을 재확인시켰다. 펩 이전에도 점유는 중요했다. 다만 이는 점유에 이어 간결하고 신속하게 공격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사키이즘의 영향을 듬뿍 받은 것이었다. 즉, 신속한 공수의 전환이 더 중요했으며, 점유는 단지 더 많은 공격 기회를 잡기 위한 방법에 가까웠다. 아예 전환의 신속성이라는 아이디어만 뽑아 먹는 선수비 마인드의 축구가 유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펩이 느린 템포와 점유를 접목하면서 점유란 상대에게 있어 기회의 박탈과도 같은 말이 되었다. 게다가 자신의 자리를 고수할 수 있게 되면서 설령 공을 빼앗기더라도 신속하게 질서 있는 압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펩의 훈련에서 수비훈련이 전체훈련의 80%를 차지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가 거쳐온 팀들이 강한 압박을 통한 수비가 가능했던 이유이다.[11][12] 물론 이후 모든 팀들이 펩의 팀처럼 높은 점유율을 찍으려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쉽게 상대에게 점유를 내주려 하지 않는 태도는 기본 장착하고 있으며, 점유를 내주더라도 곧장 질서정연한 압박으로 전환하여 치열하게 점유 대 압박 간 경쟁을 펼치는 경기 양상이 펼쳐지게 되었다. 때문에 위험 지역에서 걷어내는 것 외에는 롱킥을 볼 기회가 없다. 골킥마저도 패스로 처리한다. 하지만 뮌헨에서부터는 롱볼도 적극적으로 이용하게된다.

펩이 축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삼각 대형 유지이다. 즉, 선수들은 상대팀의 압박과 공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격을 수월히 하고 빌드업을 원활히 하기 위해 공을 주고 받으며 세 명의 선수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삼각 대형을 만들어야 한다. 이 삼각 대형은 11명의 선수들이 모두 끊임없이 허물었다가 다시 만들기도 하면서 곳곳에서 공격 전개와 탈압박을 위한 기본 포지션이 된다. 간격을 유지하며 상대팀의 압박을 벗어나기 위해선 부지런히 움직여 왕성한 오프더볼 활동을 보여야만 하며 상대 선수들을 혼란시키기 위한 가짜 움직임도 무척이나 중요해진다. 상대팀의 골대 근처나 패널티 박스 근처에서는 공격수들에게 자유도를 주지만, 빌드업 과정이나 공격 전개 과정에서 이 삼각 대형을 통해 탈압박을 하는 것을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다보니 기본적으로 발기술이 좋은 골키퍼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골키퍼의 킥으로 바로 자기 진영에서부터 빌드업이 시작될 수도 있고, 상대방이 빌드업 지점을 압박하기 위해 지나치게 많이 내려오면 정확한 킥을 통해 바로 멀리 있는 동료에게 패스를 해서 역습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펩이 스위퍼 키퍼만을 선호하는 이유는 이렇듯 키퍼 역시 빌드업의 한 축이 되는 역할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펩의 특징은 전술 변화를 가져간다는 것이다. 처음 바르셀로나에서의 전술은 중앙에서 짧은 패스를 돌리다가 틈을 발견하면 침투에 이은 쓰루패스로 상대를 허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바이에른에 취임했을 땐 선수들 특성상 이같은 플레이가 잘 먹히지 않았고 이 때 로번과 리베리라는 월드클래스 윙어들에게 초점을 맞춘 오버로드 투 아이솔레이션을 이용한 활발한 측면 공격과 기존의 종방향 움직임을 가져가는 윙백 대신 중앙으로 들어와 빌드업을 돕는 인버티드 윙백을 전술에 접목시킨다. 그리고 맨시티에 취임한 뒤엔 윙포워드들에게 대각선 침투 뿐만이 아닌 윙어로서의 움직임도 부여하면서 활발한 낮은 크로스를 전술에 추가하였고 이는 17-18시즌 리그에서 32승 4무 2패 승점 100점 이라는 압도적인 성적표를 가져오게 되었다.

또한 과거의 전술들을 현대식을 재해석해서 자신의 전술에 더하기도 한다. 그 중 눈에 띄는건 WM전술의 재해석으로 맨시티 첫시즌때는 하프백을 센터백 라인으로 내리고 풀백 두명을 중미자리로 들어오게하는 형식으로 3-2-4-1포메이션을 형성해서 WM형태가 나오게 만들었다. 두번째 시즌에도 경기중 가끔씩 나오는 형태로 수비형 미드필더가 어디 서있냐에 따라 3-2-4-1과 2-3-4-1이 혼용된다. WM 전술은 공격진과 수비진을 철저히 분리해서 운용함으로써 공격과 수비의 밸런스를 맞추는 형식인데 이걸 자신의 팀에 적용하면서 17-18시즌에는 폭발적인 공격과 안정감있는 수비를 동시에 선보이며 우승을 거두었다.

3.2.1. 전술에 대한 비판

리그에서의 압도적인 성적과 전술적인 시야는 높게 평가받지만, 선수빨이라는 비판 또한 같이 받는 감독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여태까지 감독으로서 거친 팀들이 "바르셀로나·바이에른 뮌헨·맨체스터 시티"라는, 각 리그에서 우승 후보로 항상 꼽히는 강팀이기 때문이다.[13] 그리고 펩의 전술은 선수의 능력을 많이 요한다. 맨체스터 시티 1년 차 때, 노쇠화로 인해 기량이 떨어졌던 양 풀백 때문에 '무관'에 그친 걸 보면 알 수 있다. 웬만큼 재능있는 선수들로는 본인의 전술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선수들의 뛰어난 축구 실력을 반드시 요구하는 전술을 구사하는 것. 애초에 펩의 전술을 소화할 선수단이라면 다른 전술이었어도 뛰어난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하인케스의 트레블 뮌헨 성적과 펩의 뮌헨 성적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14] 그리고 다른 감독들의 전술은 능력치가 상대적으로 평범한 선수들도 소화할 수 있고, 선수들의 클래스가 올라갈수록 효율이 올라간다. 그러나 펩의 전술은 애초에 월드 클래스 수준의 기량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 기준에 미달하는 선수들이 전술을 수행하면 답답해지는 경기력을 가져오게 된다. 이는 바이에른 부임 초기를 보면 알 수 있는데, 그 내로라하는 선수단을 가진 바이에른 뮌헨조차 과르디올라가 전술을 수정하기 전까진 U자 형태로 공을 돌리기만 하는 애무축구를 보여줬다. 게다가 펩의 전술 특성상 상대 피치(경기장의 1/3 지점)에 올라온 때부턴 선수의 자율적인 움직임에 공격을 맡기는데, 이는 전술 지침만 따르는 것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가장 효율적인 공격 방법을 알아서 찾아내는 지능적인 선수들로 스쿼드가 이뤄져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15] 결론적으로 과르디올라의 전술은 그 자체가 선수빨을 타야 한다. 월드 클래스의 선수들이라면 굳이 펩의 전술이 아니더라도 뛰어난 성적을 낼 수 있다. 그리고 선수단에 더 맞는 전술(하인케스)을 만난다면 훨씬 뛰어난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것.

# 2008년부터 18년 4월 5일까지, 챔스 토너먼트(16강~)에서 '골 득실 -5[16] & 원정 승률 20%[17]'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다. 전에 맡았거나 맡고 있는 팀이 "바르셀로나·바이에른 뮌헨·맨체스터 시티"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는 꽤 심각한 기록이다. 즉 과르디올라는 토너먼트의 달인이 절대 아니며, 챔스보다 리그에 적합한 감독이라는 것이다. 왜 바르셀로나[18]를 떠난 뒤부터 챔스 결승에 못 가봤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 선수를 보는 안목과 이를 가지고 선수를 발굴하고 키우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과연 '전술적으로 승리를 가져오는 감독'이 맞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19][20] 과르디올라는 뛰어난 선수단을 만드는 데 능하지만, 그 덕분에 펩의 전술이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로 과르디올라는 2014년 2월부터 18년 2월 전까지, 4년간 챔스 토너먼트(16강~)에서 "샤흐타르·포르투·벤피카" 같은 팀을 상대로도 원정에서 승리하지 못했다.[21][22]

또한 맨시티의 연승 행진에 사람들이 펩의 전술이 수비적으로도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엄밀히 말해서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소리다. 펩의 전술은 17-18시즌 맨시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실점이 적긴 하다. 하지만 이건 맨시티의 수비 전술이 뛰어나서 그런게 아닌 맨시티의 공격전술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맨시티의 공격 전술은 확실한 기회가 나오지 않는 이상 무리한 패스를 하지 않고 안전하게 공을 돌리는 전술이고 그러다보니 상대가 공을 만질 기회가 많지 않다. 하지만 상대가 공을 소유하고 일단 맨시티 진영으로 넘어오면 거기서부터 상대의 공격을 저지하는데에는 굉장히 약한 모습을 보인다. 이건 점유율 축구의 극을 보여주는 전술로 펩의 팀이 실점이 적은건 상대에게 공이 안 넘어가게 유지하는걸 잘하기 때문이지 수비를 잘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이 펩이 클롭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 항상 압도적인 스쿼드로 클롭과 상대함에도 불구하고 2019년 기준 6승2무9패로 열세다. 클롭이 활발한 전방압박으로 공을 자주 되찾아오니 자연스럽게 공격기회를 많이 가져오고 그걸 잘 저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점이 많아진다.

2018/19 시즌이 끝난 현재, 7시즌째 본인이 이끄는 팀이 챔스 4강에서 원정 골을 넣지 못했다. 10/11시즌 챔스 4강 1차전 엘 클라시코 경기에서 터진 리오넬 메시의 원더골[23]이 펩의 마지막 챔스 4강 원정 골이다. 그 뒤로 4강에 총 4번 진출해서 첼시 FC, 레알 마드리드 CF, FC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했으나 4번 모두 원정에서 골을 넣지 못했다. 그 뒤로 맨체스터 시티에서의 세 시즌은 16강(vs AS 모나코) - 8강(vs 리버풀 FC) - 8강(vs 토트넘 핫스퍼)으로 아예 4강에 진출하지도 못했는데, 저렇게 탈락하는 와중에도 원정에서 넣은 골은 모나코를 상대로 넣은 단 1골 뿐이다.[24] 펩의 전술이 과연 토너먼트에 적합한지에 대해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펩이 토너먼트에 약한 이유 중의 하나는 토너먼트의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뜬금포로 변칙 전술을 실험하는 경우가 꽤 많기 때문이다.[25] 다만 전술 철학 자체를 바꾸는 것은 아니고, 선수 역할과 위치를 변경하는 전술 변경. 하지만 아쉽게도 이 전술 실험은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더 많다. 17-18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 리버풀 원정이 대표적인 사례. 이날 과르디올라는 쓰리백-포백을 경기중에 수시로 전환하는 전술을 운용했다. 라포르트를 레프트백이자 쓰리백 전환시 왼쪽 센터백으로, 일카이 귄도안을 오른쪽 윙어 자리에 선발 출전시키는 실험을 강행했으나 클롭에게 탈탈 털리고 말았다. 그리고 1년뒤 18-19 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 토트넘 원정에선 귄도안과 페르난지뉴의 더블 볼란테 전술로 나왔으나 전술변화가 성공적이지 못했고, 경기 감각이 부족했던 델프를 풀백으로 선발시킨 탓에 델프 쪽에서 실점이 발생하며 또 자멸하고 말았다.[26]
이렇듯 같은 리그 팀, 그리고 객관적인 열세라고 여겨졌던 리버풀, 토트넘에 덜미를 잡혔다. 그리고 또한 원정1차전에서 1골도 기록하지 못하고 패했고, 이것이 2차전에서 결과를 뒤집지 못하고 탈락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전력상 현저히 앞서고도, 두 시즌 연속 비슷한 문제를 노출하며 탈락했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다음시즌에도 비슷한 패턴으로 실패한다면 리그에서 양학만 하고 정작 강팀과의 외나무 다리에서는 힘을 못쓰는 반쪽짜리 감독이라는 비판을 계속 들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챔스라는 어려운 무대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맡아 4강에 곧잘 갔었고, 맨시티에서도 2년 연속 8강에 진출하는 등 최소한의 성과는 거둔 거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따지고 보면 2019년 4월 기준 펩은 챔스에서 전임자들보다 좋은 성적을, 단 한시즌도 거두지 못했다. 바이에른을 2년 연속으로 챔스 결승에 올려놓은 유프 하인케스는 말할 것도 없고, 펩 직전에 맨시티의 감독을 맡았던 마누엘 페예그리니도 맨시티를 4강에 올려놓고 당해 우승팀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2경기 합산 1점차 승부를 펼쳤었다. 하인케스도, 페예그리니도 펩이 팀을 이어받기 바로 직전 시즌에 이런 성과를 냈다. 리그에서야 저 두 감독보다 나은 성적을 거뒀으나 결국 리그에서나 좋은 성적을 거두는 감독이라는 평가밖에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좋은 선수를 사와 더 좋은 선수로 업그레이드시키는 능력과 이를 바탕으로 약팀을 흥미진진하면서도 확실하게 잡아내는 능력이야 좋게 평가할 수밖에 없지만, 언제나 챔스 진검승부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 수준의 팀만 골라 다니면서 챔스 결과는 아쉬움이 남는다. 단기전에서 운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야구와 비교하면 경우가 좀 다르다고 봐야 할듯.

또한 본인의 전략 전술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확신, 그리고 이를 선수단에 확실히 이식하는 것에 대한 반동으로 자신의 전술에 필요없는 선수들과의 소통문제, 그리고 이를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하는 내성적인 성격등이 그에게서 내쳐진 선수들의 문제가 기사를 통해 제기되고 있다. 다만 이는 정반대로 자신의 전술을 소화 가능한 선수들과의 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 점, 그리고 지휘한 구단이 항상 최고 수준의 성적을 낸다는 좋은 결과물들에 의해 크게 이슈화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자세한 것은 후술.

3.3. 선수단 운영

펩이 2010년대 축구에 미친 영향력 외에 개인의 코칭 스타일을 보면 대개 극도로 편집증적이라거나, 진성 축덕이라는 평이 중론이다. 말 그대로 하루하루 축구 생각만 하는 기계 수준. 하루에 열몇 시간씩 일을 하는 워커홀릭인데, 훈련이 끝나면 어두컴컴한 감독실에 틀어박혀서 경기에 쓸 전술에 대힌 답이 나올 때까지 아이디어를 짜내고 메모해서 경기를 준비한다. 팀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스타일인데, 바르셀로나 시절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려 든 것은 유명하며[27] 훈련을 할 때도 공격 훈련을 하는 경우 선수들의 동선을 일일이 정해 두고 선수들의 동선이 엉키지 않도록 미친 듯이 패턴 플레이를 반복한다고 한다. 과르디올라 뮌헨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1 2

3.3.1. 비판점

과르디올라가 팀 운영에 있어서 비판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유독 자기 스타일과 플랜에 안맞는 선수를 대놓고 투명인간 취급한다는 것과 그와 동시에 해당 선수와 불화를 일으키며 좋지 못하게 이별한다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는 펩이 첫 감독으로 부임했던 바르셀로나 시절에서도 잘 드러났는데 부임당시 데쿠호나우지뉴 등을 팀에서 내쳐버렸고 이후 야야 투레역시 자신의 전술과 맞지 않는 점을 이유로 자신의 전력에서 제외시켜 버렸고 사무엘 에투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맞교환을 했지만 이후 즐라탄과는 원수사이가 되고 말았다. 특히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경우는 본인의 자서전에서도 관련 내용이 많이 나와있다.# 야야 투레도 바르셀로나에서 과르디올라가 자신을 무시했다며 섭섭한 감정을 인터뷰로 내비쳤다. 야야 투레의 말에 의하면 거의 반년동안 말도 걸지 않고, 말을 걸어도 쌩~하고 지나갔다는 듯.# 사무엘 에투 역시 과르디올라와의 불화로 인해 바르셀로나에서 떠나게 된 과정을 방송에서 털어놓았는데, 마찬가지로 무시와 존중에 대한 문제였다.# 에투의 등번호 9번을 상의없이 앙리한테 줘버린다던지, 우즈베키스탄의 제안이 아주 좋던데, 받아들이는 게 어떠냐고 권유한다던지. FM 게임의 달인이어도 현실에서 감독을 할 수 없는건 감독이 단순히 경기장에서 선수들 지휘하는 역할만 하는게 아니기 때문인데, 과르디올라는 축구 행정가를 꿈꿨다는 사람 치고 심하게 대인관계가 사무적이고 차가운 사람이란게 문제점인 것.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부임 당시 자신의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전 스트라이커였던 마리오 만주키치를 13-14시즌 이후 역시 자신의 전술에 맞지 않는다고 판명 된 이후 조금씩 배제하기 시작했고, 2013/14시즌 윈터브레이크 기간에 뮌헨이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와 계약하고 자신의 9번을 줬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과르디올라에게 항명하자 시즌 후 방출했다.# 잦은 출장 배제에도 분데스리가 득점순위 2위인 선수를 포칼 결승 명단에서 제외하며 다음 구단에서 행운을 빈다고 멘트를 날린 것은 레전드. 만주키치에 따르면 과르디올라는 왜 쓰지않는지조차 설명하지 않았다며 설령 그가 커피를 권한다 해도 나는 그와 마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팀의 레전드중의 한 명이었던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와 꾸준히 성장해오던 토니 크로스 등 실력있는 선수들을 내보낸 바 있다.[28]

맨시티에 부임하면서도 이런 모습이 나타났는데 맨시티에서 지금까지 활약을 잘 해온 주전 골키퍼인 조 하트에게 전혀 기회를 주지 않았으며 결국 하트는 토리노 FC로 임대를 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 후 하트를 대신하기 위해 스위퍼 키퍼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고 클라우디오 브라보를 영입하였으나 브라보는 최악의 폼만 보여주면서 맨시티 팬들은 더욱 하트를 그리워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는 하트가 실력도 실력이지만 맨시티의 레전드로서, 맨시티에서 은퇴할 수 있었던 선수를 이적 시킴으로써 생긴 감정이기도 했다. 또한 세르히오 아게로 역시도 맨시티 소식 관련 신뢰도 최상급인 골닷컴 샘 리 기자에게 불화설이 터져나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조하트가 팀에서 소외된 이후에 폼이 완전히 개박살나며 바닥없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걸 보면 결과적으로는 옳은 선택이 되었다. 실패한 영입인 브라보도 에데르송을 영입하며 잘 대처했다.

스카이스포츠는 과르디올라가 내친 선수들로 베스트 11을 구성을 하기도 했다.
펩이 내친 선수들
FW
호나우지뉴[29]
FW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FW
사무엘 에투
MF
데쿠
MF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MF
토니 크로스
DF
잔루카 잠브로타
DF
단치
DF
야야 투레
DF
엠레 찬[30]
GK
조 하트

3.3.2. 분석

이렇듯 펩이 대인관계가 심히 사무적이고 차가운 사람이며, 자신의 전술에 맞지 않는 선수를 냉정히 내친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팀이 추구하는 전술과 맞지 않다고 훈련을 게을리하거나 팀 케미스트리에 악영향을 끼치는 선수를 내쫓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예로 바르셀로나 시절 호나우지뉴는 펩이 부임했을 당시 막장화가 진행중이었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가 인터뷰에서 그가 팀에게 해를 끼칠 정도라고 인터뷰했을 정도. 호나우지뉴 또한 본인이 팀을 위해 나갔으며 펩과의 불화는 없고 오히려 팀에 남아달라 말했다고 인터뷰했다. 데쿠는 호나우지뉴와 비슷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는데, 과르디올라가 부임하기 직전인 2007년 팀 동료였던 에드미우손이 인터뷰에서 밝히면서 많은 논란을 낳았던 바르셀로나의 검은 양 사건의 중심에 호나우지뉴와 같이 있던 선수가 바로 데쿠다. 결국 펩이 부임한 직후 해이해진 팀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내부분란의 주동자로 호나우지뉴와 함께 지목되어 방출된 것이다. 만약 데쿠가 계속 팀에 남아있었다면 기강 및 분위기는 더욱 험악하게 바뀌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야야 투레의 경우 일단 전술과 맞지 않다는 이야기부터 오해인데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상당히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었고, 본인의 부상과 컨디션 저하와 겹쳐 세르지오 부스케츠라는 미드필더의 등장으로 인해 주전에서 밀려서 이적했을 뿐이다.[31] 물론 불화가 없던건 아니지만 이는 바르샤 시절부터 투레의 에이전트였던 디미트리 셀룩[32]의 언플이 중심이 되어 발생한 일로 알려져 있다. 14-15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뮌헨과 맨시티가 만났을 때 둘이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나, 투레가 언플에 대해 펩에게 사과하고 16-17시즌 중반부터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고 결국 어느정도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1년 재계약에 성공하는 등 둘의 불화는 잠잠해지는 줄 알았으나, 17-18 시즌 투레가 본인의 노쇠화로 인해서 경기를 전혀 뛰지 못하자 다시 불화가 생기고 말았다. 투레는 2018년 6월 맨시티와 계약이 종료되자마자 펩이 인종차별주의자이며, 본인의 커리어를 망치기 위해 작정했기 때문에 본인이 경기에 뛰지 못한 것이라는 억지 주장을 펼쳤다.[33]

위의 둘과 달리 사무엘 에투[34]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경우는 논란이 심한 편이다.[35] 2009/2010시즌 바르셀로나에서의 즐라탄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 전반기[36]와 달리 후반기에 급격히 경기력이 저하되었고 들쑥날쑥한 활동량과 골 결정력을 보였다. 본인 커리어상 역대급 부진을 선보이며 즐라탄 대신 보얀이 나왔을때 바르셀로나 경기력이 오히려 더 좋아져 차라리 즐라탄이 빠지는 게 낫다는 평을 언론에서 들을 정도... 이 당시 즐라탄을 중앙에 세우면 20~30골을 넣는 반면, 메시는 50골 이상의 득점과 동시에 측면 페드로의 득점력까지 살려주는데 팀을 이끄는 감독의 입장에서 메시를 가운데에 세우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펩 지지층의 중론. 반대로 즐라탄 본인 및 즐라탄 지지층의 경우 티키타카를 기반으로 한 펩 특유의 전술과 점점 동떨어지게 된 것을 부진한 플레이의 원인으로 본다. [37]온갖 불화설을 남긴 채 AC 밀란으로 이적한 이후 귀신같이 부활한 것이 그 근거. 또한 즐라탄이 AC밀란, PSG, 맨유 등 이후 이적한 구단 라커룸에서 썩 좋은 인간관계를 맺은 편이고, 그 팀들 사이에서도 이적한 과정에서의 애티튜드를 고려해 보면 펩과의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이를 양쪽 모두 해결하지 못해 감정이 쌓인 상태로 결별했다는 것은 사실에 가깝다.[38]물론 이는 즐라탄 본인의 자서전에서 "과르디올라가 메시 중심으로만 팀을 운영하느라 나를 의도적으로 제쳐두었다."는 발언을 하는 등, 한 쪽 입장에서만 쓰여진 것이므로 걸러 생각할 필요가 있다.[39]

뮌헨 시절 마리오 만주키치와의 불화 역시 논란의 포인트. 팬들은 첫 시즌에 펩이 만주키치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양측 윙어를 살리고 만주키치의 머리를 노리는 크로스를 많이 시도하였고 이는 만주키치가 주전으로나 교체로나 나와서 골을 넣어주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라고 설명되어 있었으나, 해당 시즌인 13/14 시즌엔 펩이 시도한 뮐러 괴체 제로톱은 제로톱 그 자체의 경기력만으로는 별 효과를 보지 못했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리그 초반 전술 상 잦은 결장으로 밀려졌던 것과 달리 점차 중용받게 되었던 만주키치는 결과적으로 해당 시즌에 분데스리가 득점 2순위 공격수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또한 '훈련장에서 일어나는 불화에는 항상 중심에 있었을 정도로 불같은 만주키치의 성격'이 펩이 그를 주전에서 제외한 이유라는 의견도 있으나, 이 역시 과르디올라 컨피덴셜의 저자 마르티 페라르나우의 발언을 근거로 할 뿐이며[40] 만주키치가 선수들과 불화를 일으키거나 라커룸에서 문제를 일으킨다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만주키치 팬들 입장에서는 만약 훈련장에서 일어난 불화의 중심에 만주키치가 있었다면 그 옆에는 펩이 있었을 것이라는 반박이 가능한 셈. 다만 레반도프스키 영입작업은 과르디올라 이전에 2012/13 시즌부터 구단 보드진에 의해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경우 부상으로 빠진 경기가 너무나도 많았다. 사비 알론소가 있는 상황에서 팀에 남기가 애매했을 것이고 펩과의 불화설도 없으며, 오히려 출장 시킬 수 있을 땐 주전으로 계속 기용했을 정도이다. 실제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 이후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며 레전드 대우는 아쉬움이 남을지언정 적어도 전술적으로는 팀에서 내보내는 것이 옳았음이 입증되기도 했다. 토니 크로스의 경우 과르디올라는 크로스가 남기를 원했지만[41][42] 크로스와 구단의 사이가 주급 문제와 같은 이유로 악화된 것이며 결국 어쩔 수 없이 크로스를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시킨 것. 가장 최근에 불거진 조 하트 이적의 경우 펩이 부임한 후 면담에서 스위퍼 키퍼로 플레이스타일을 바꾸라는 감독의 권고를 거절했다. 때문에 맨시티 보드진이 조 하트를 좋아하고 존중함에도 불구하고 조 하트는 팀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것.

정리하면 펩은 기존의 자원을 대상으로 전술을 짜는 감독이 아닌, 자신의 전술에 선수를 맞추는 감독이며 이것만으로도 감독으로서 최정상급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라고 이전에 쓰여있었으나 이는 부적절한 설명이다. 자신의 전술에 선수를 맞추는 펩의 특성은 구사하는 전술의 난이도와 함께 전문가들에게 단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이다.[43][44] 기존 자원을 대상으로 맞춤 전술을 짜서 성공적인 결과를 내는 것은 어지간한 1류 명장들에게도 어려운 일이며, 펩 뿐만 아니라 수많은 감독들 역시 본인의 전술에 선수를 맞추거나 전술에 맞는 선수를 영입하는 것을 선호한다. 물론 어떤 방식으로든 펩이 이뤄낸 결과들은 1류 감독으로 평가받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또한 과르디올라 컨피덴셜이나 다른 선수의 인터뷰를 보아도 선수들과 개인면담을 하는데 꽤나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조 하트 이적 상황에서도 펩과의 면담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고.

다만 이러한 불화설이 언론에 의해 유독 펩에게 부각되는 것은 실리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펩 특유의 축구 전술이 선수단과의 인간관계 및 관리 부분에 그대로 적용이 됨으로서 기존 스쿼드에서 중용받던 명망있던 선수들조차 제2 혹은 3옵션으로 너무나도 쉽게 밀려날 수 있다는 점, 이렇게 기존에 스타성 있던 선수들이 불만을 표시하기에 언론에 의한 이슈화가 빠르게 진행된다는 점, 그리고 팀과 구단에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선수가 불만을 표시할 경우 굳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거나 개선하는데 노력하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점, 마지막으로 이러한 논란에 대해서조차 별로 해명을 하려 하지 않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라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45] 본인도 자기를 싫어하는 전 지도 선수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면서 '그 선수들은 대부분 경기 출전을 자주 하지 못한 선수들'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46]

3.4. VS 무리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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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현대 축구계를 이끌어가는 명장들 간의 애증관계

8살 차이의 주제 무리뉴와는 기이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1996년, 무리뉴가 바르셀로나에서 코치 겸 통역사로 일하던 시절 둘은 처음 알게 되었는데, 같은 팀에서 일하는 사이인 그때는 그렇게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다고 한다. 96/97 시즌 바르셀로나가 라리가 빌바오 원정에서 1:2로 패한 이후 경기 내내 계속된 빌바오의 거친 플레이에 흥분해있던 무리뉴가 빌바오 감독 루이스 페르난데스에게 자식 관련 패드립을 해가며 욕설을 했고 분개한 페르난데스가 무리뉴에게 다가갔는데, 팀의 주장인 펩이 막아서서 무리뉴 대신 싸워줄 정도로 돈독했던 사이였다.

세월이 흘러 2008년, 레이카르트가 경질되자 첼시 감독에서 경질된 이후 휴식 중이던 무리뉴는 바르셀로나의 감독직을 지원하게 된다. 이 계획에는 펩을 자신의 수석코치로 데려가려고 했으나 애초에 바르셀로나는 무리뉴를 선임할 생각이 없었고 차기 감독은 과르디올라가 되었다. 이 결정에 무리뉴는 자신이 아닌 펩을 감독으로 선택한 것에 실망하였고 이것이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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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야

2010년 둘의 악연이 시작되는데, 무리뉴는 인터 밀란 감독직으로 재직하면서 바르셀로나를 꺾고 끝끝내 챔피언스 리그의 우승을 이룬다. 이때 준결승전에서 인터 밀란이 바르셀로나를 꺾게 되는데, 경기 중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교체 준비하던 펩에게 무리뉴가 다가가 "이봐, 아직 경기는 안 끝났다고?"라고 귓속말로 얘기한 것이 논란이 되기도 했으며, 경기 종료 후 그라운드에서 세레머니를 하던 무리뉴를 바르셀로나 골키퍼인 발데스가 억지로 잡아끄는 등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 여러 논란이 일었다.

이후, 무리뉴가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취직하면서 역시나 바르셀로나와 과르디올라를 향한 특유의 언플을 시전하고[48] 둘의 사이는 급격하게 틀어지고 말았다.[49] 오죽했으면 그 과르디올라가 무리뉴의 언론 플레이에 빡쳐서 인터뷰 도중 욕지거리를 했을 정도였다.[50][51][52]

인터뷰할때는 정확한 사실만을 전하고 그다지 립서비스를 하지 않는것에 대해[53] 스페인 언론들은 그를 위선자라 부르기도 한다. 너무 냉소적이고 침착하게 말하니까. 하지만 2011/12 시즌 챔스 8강 후 자서전에서 과르디올라를 잘근잘근 씹었던 즐라탄이 무리뉴가 했던 말을 언급하며 판정에 불만을 제기하자 드디어 빡쳤는지 이런 인터뷰를 했다. 그 외에도, 리그 우승이 멀어지면서 비꼬는 어조의 인터뷰를 많이 보여주어 신사적인 이미지에 상당히 타격을 입었다. 감독 등 축구계에서 경쟁하는 사람들은 본질적으로는 서로 비슷한 존재들이라고 인터뷰한 무리뉴에게 대고 "당신이랑 내가 비슷하면 내가 인생을 잘못 산 것"이라고 쏘아붙이기도 했고 무리뉴가 우승이 확정되기 직전 인터뷰에서 과르디올라의 사임 결정에 그가 스스로 만족하기를 바란다며 예의를 지킨 인사를 했는데도 "레알의 우승을 축하한다. 우리(바르셀로나)의 침묵으로 가려진 많은 것들로 뒷받침된 승리지만."라며 뒤끝을 보여주는 인터뷰를 해서 빈축을 샀다. 그러나 무리뉴는 평소 라이벌인 바르셀로나와 자신을 잘근잘근 씹어왔으니 서로 감정이 좋을리가 없고 사실상 뒤끝 인터뷰와 음모론 드립은 무리뉴가 바르셀로나의 승리시 자주 시전하는 스킬이었으므로 이 건수 역시 무리뉴와 원투펀치 주고 받았다고 보는게 맞다. 한마디로 자기 기술에 자기가 당한 것 물론 무리뉴의 저 인사만큼은 바르셀로나를 떠나는 과르디올라에게 감독 대 감독으로서 동업자에 대한 격려가 담긴 것이라고 보는게 맞고. 어쨌든 피치 밖의 신사로도 불렸던 과르디올라가 무리뉴 부임 2시즌만에 불만을 주고 받는 수준으로 추락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위에서 알다시피 사실 이 둘은 매우 사이가 좋았던 적이 있었다. 무리뉴의 바르셀로나 코치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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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만 해도 사이가 좋았다. 시기를 봐선 2010년 UEFA 코치 컨퍼런스 때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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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이 바르샤에서 보내는 마지막 시즌의 엘 클라시코. 경기 전 악수는 나누었지만 둘의 표정으로 봐선 사이가 확실히 안 좋아졌다.

무리뉴와의 앙숙관계는 계속되어 2014년 유럽 빅클럽 감독모임에서 펩이 무리뉴에게 "무리뉴는 우아한 축구보다 결과에 집착하는 축구만 좋아한다"라고 비판하였고 무리뉴는 이에 "펩이 대머리가 된거는 축구를 즐기지 않아서 그렇다."라고 펩의 신체적 약점을 들어 비꼬아 파문이 되었다.[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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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클라시코에서 맨체스터 더비로
그리고 16-17시즌, 펩은 맨시티의 감독으로, 무리뉴는 맨유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이들은 EPL 안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맨체스터 더비는 더욱 흥미로워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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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많은 사람들과의 예상과는 다르게 16-17시즌 들어서는 서로간의 관계가 어느정도 누그러진 모습을 보였다. 과르디올라가 무리뉴에 관해 인터뷰를 할때도 도발성 멘트를 사용하지 않고 그를 존경하고 존중한다는 말을 자주 했으며 실제로 맨더비에서 만났을때도 이전처럼 눈도 안마주치고 억지악수를 할때와 달리 나름 포옹(!)도 하고 눈을 마주치면서 얘기하는 모습을 보이자 사람들은 2016-17 시즌 초 프리미어 리그 감독들이 만나는 자리가 있었을때 어느 정도의 화해가 있었지 않았을까하고 추측중. 그 이후로도 두 감독은 16-17 시즌 내내 서로를 언급하는데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17-18시즌 초중반 맨시티와 맨유가 우승경쟁을 하게 되자 두 감독간의 신경전은 다시 시작되었다. 무리뉴는 맨더비를 앞두고 펩 과르디올라가 정치색에도 불구하고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이 특혜라 주장했다.[55] 또한 무리뉴는 같은 기자회견에서 (맨체스터 더비 전 공식 기자회견) 펩의 팀이 다이빙을 많이 하고 테크니컬 파울을 많이 저지른다고 근거 없는 맹비난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신경전 속에서도 두 감독 둘 다 서로의 실력은 인정하고 있다. 예전 라리가 시절에 비하면 갈등의 정도가 매우 약해진 것은 분명하다. 두 감독 분명히 서로에 대한 직접적인 맹비난은 자제하는 모습을 18-19 시즌 들어와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무리뉴는 이제 맨시티 선수들과 직접 싸운다. 그리고 이제 무리뉴의 주적은 콩테로 바뀌었다. 그러나 콩테가 첼시에서 경질되면서[56] 다음 무리뉴 주적은 누가 될지 결국 포그바와 싸우다가 경질되었다(...)
2018년 12월 18일 무리뉴가 경질된 이후 과르디올라는 카라바오컵 8강 경기 이후 인터뷰에서 자기는 그의 편이고 감독들은 외롭다며 그는 최고의 감독이며 곧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2019년 5월 7일 해설자로 나선 무리뉴는 펩을 '단순히 현 시점 최고의 감독이 아니라 역대 최고의 감독 중 하나' 라며 극찬했다. 그 자존심 강한 무리뉴가 자신의 라이벌을 향해 이렇게 말할 정도면 두 감독 사이의 나쁜 감정은 이제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한 듯.

3.5. 정장이 잘 어울리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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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수트가 잘 어울리는 대표적인 감독. 보통 '수트 입었을때 간지나는 감독 이미지'를 생각했을때 떠오르는 감독이다. 180이라는 우월한 기럭지에 얼굴도 잘생겨서 사실 어느 옷을 입어도 대부분 잘 어울린다. 그런데 요즘은 배나온 모습을 보여주는지라 팬들의 안타까움을 사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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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의 아내는 패션계에서 일을 한다고 하여 자신의 패션코디는 오로지 패션쪽 전문가인 자신의 아내한테 맡긴다고 알려져있다.
자신은 오로지 축구에만 집중하고 싶어서 그렇다는 이유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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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뉴와는 여러모로 얽힐 수 밖에 없는데, 수트 잘 입기로 유명한 두 감독의 스타일을 남성 패션지 GQ에서 다루기도 했다. 두 감독의 패션은 클래식 vs 모던이다. 왠지 수비축구 vs 티키타카라는 팀의 스타일하고도 비슷한듯? 무리뉴는 주로 무채색의 포멀한 스타일의 수트에 컬러타이, 혹은 노타이로 포인트를 준다. 그리고 겨울에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는 아르마니 회색 오버코트에 머플러를 코디한 모습은 중년 남성 패션의 교본과도 같다. 펩은 보다 활동적이고 모던한 스타일을 중시한다. 타이트한 핏의 수트를 즐겨 입고 언제나 셔츠에 다양한 색상의 풀오버를 매칭시켜 포인트를 준다. 때로는 자켓 없이 셔츠 소매를 롤업하기도 하고, 슬랙스나 슬림핏 데님을 입어 캐주얼한 느낌을 살리는 편이다. 펩의 스타일은 보다 캐주얼하고 모던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남성에게 좋은 모범이다. 남성들에게 좋은 패션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두 미중년 감독이다. 미노년의 패션의 본보기는 아르센 벵거마누엘 페예그리니

하지만 2017~18시즌 기점으로 펩은 더 이상 경기장 위에서 수트를 입지 않는다. 후드와 트레이닝 바지로 복장이 아예 바뀌었다. 복장을 바꾼 이유에 대해선 당연하게도 이쪽이 더 편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캐주얼한 복장으로 코디 스타일을 바꾸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패션 센스로 관중과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곤 한다. 펩이 즐겨 입는 브랜드는 스톤 아일랜드.

4. 개인사

흔히들 부르는 '펩(Pep)'라는 이름은 애칭이다. 본래의 이름은 카탈루냐식으로 주제프(Josep)이다.

언어습득능력이 상당히 뛰어나다. 감독생활을 하면서 쓰게된 다양한 외국어들을 각각 1년도 안되는 기간에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됐다. 모국어인 카탈루냐어, 스페인어는 물론이고[57], 상대적으로 배우기 어려운 독일어를 단기간에 빠르게 습득해내어 뮌헨시절에도 선수들이나 언론과 의사소통으로 인한 지장이 거의 없었다. 또한 맨시티에 가기전에는 미국에서 단기간에 영어를 공부했는데도 수준급으로 구사한다.[58] 그리고 이탈리아어까지 구사를 한다. 스페인어, 카탈루냐어 둘다 발음이 강한편이라 외국어를 할때 그 특유의 억양은 어쩔 수 없지만 어차피 중요한건 자기 생각을 정확한 표현으로 전달할 수 있느냐 없느냐이기 때문에 큰 상관은 없으며, 독일이나 영어권 나라들은 외국인들의 발음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https://youtu.be/XtWDBEXVUts

축구 감독 중에서 특히 국내외로 개인 팬덤이 많은 감독이다. 주로 바르셀로나 시절 팬이 된 케이스가 많은듯 하며, 이 팬들이 과르디올라 감독을 따라 응원 팀을 옮겨가서 그 팀의 원래 팬들과 다투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다만 팬덤과는 별개로 개인사에 대해 밝히는 내용이 적어서 넷상에서 추측성 글이나 찌라시들이 그대로 믿어져서 이미지에 타격을 많이 입는 감독이기도 하다. 특히나 유명한 찌라시는 EPL의 수준이 낮다는 발언을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EPL의 수준이 낮다고 한 것이 아니라 다른 리그들 또한 EPL만큼 치열한 리그라고 주장했을 뿐이었다. 위의 선수들간의 불화도 객관적인 시선이 아닌 선수쪽으로 편향된 시선으로 많이 서술된 부분이 많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2013-14시즌 슈퍼컵 경기 중 자기가 FC 바르셀로나에서 직접 데려온 티아고 알칸타라에게 수정펀치를 가해서 유럽축구 팬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59] 아비달에게도 수정펀치를 날렸다가 다음 훈련세션 때 수정당할 뻔 한적도 있고...

그리고, 이런 저런 이유로 K-리그팬들에겐 K리그 올스타전 사건으로 인해 아주 나쁜 놈 취급받고 있다. 항목 참조.[60]

감독 부임 후 6관왕 등 워낙 독보적인 커리어를 쌓는 중이라 토탈사커의 창시자 리누스 미헬스와 압박축구의 창시자 아리고 사키와 동급으로 놓는 경향의 팬들이 있지만 이 두 감독은 현대축구의 전술의 토대를 마련했고 전 세계 대다수의 감독들의 전술이 20년 넘게 이들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르디올라의 소위 티키타카는 FC 바르셀로나만의 전술로 자리잡혀 다른 팀은 모방은 커녕 따라하지도 못했고 뮌헨 시절때도 초반에는 애매한 공돌리기가 이어지는 애무축구가 적지 않았다.[61] 아무리 결과가 중요하다는 축구판이지만 과르디올라의 영향력은 아직 이들에 비교하면 따위라 불릴정도로 미미한 편. 물론 사키나 미헬스보다 더 세밀한 전술을 짜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감독은 과르디올라를 포함하여, 주제 무리뉴, 알렉스 퍼거슨 등을 비롯하여 많지만 사키와 미헬스는 전술의 패러다임을 이끌며 현대축구의 기반을 만든 자들로 온갖 매체에서 역대 최고의 감독을 뽑는 투표에서 항상 1, 2위를 차지한다. 다만 토탈사커나 압박축구도 처음부터 모든 팀이 따라한 것은 아니다. 티키타카의 경우 스페인 대표팀이나 독일 대표팀에 이식되어 큰 성과를 내기도 했기에 향후 10년 후에는 평가가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독 메시를 상당히 치켜세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르셀로나를 떠나 다른 팀 감독을 하고 있는 시기에도 아무리 자신의 팀 선수들이 잘하더라도[62] 항상 자신에게 있어서 최고의 선수는 메시임을 강조하는 말을 자주한다. 바르셀로나 시절 펩에게 메시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면 납득이 간다.

2017년 5월 23일 발생한 맨체스터 아레나 테러 현장에 그의 아내와 딸, 그리고 일부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이 있었으나 다행히 모두 무사했다고 한다.#

카탈루냐 독립 선언서를 대표로서 낭독하였다. 이로 인해 펩 본인이 영국에게도 상당히 민감한 정치적 문제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탓에, 축구 외적인 문제로 과연 영국 내 감독직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계속 하고 있는 걸로 보아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또한 18/19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 대진에 대한 인터뷰에서 '런던이 스페인이나 카탈루냐 같은 외국보다는 가까우니까요'라는 발언으로 카탈루냐에 대한 여전히 지조있는 펩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결국 FA로부터 벌금을 먹었고 차후에 경기 중에만 리본을 안 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맞추었다고 과르디올라가 인터뷰에서 밝혔다.

사람들이 라이벌이라고 하는 무리뉴에 비해 말을 아끼고 젠틀하다는 평이 있지만 출생부터 카탈루냐 출신에, 현역시절 감독시절까지 인생 대부분을 바르셀로나에 몸을 바친 바르셀로나 성골 중의 성골이라 물러난 이후에도 은근히 레알 마드리드를 까는 발언을 한다. 예를 들어 챔스 8강에서 리버풀한테 졌을 때 레알 마드리드와 뮌헨 경기에 일어난 오심에 대해 얘기를 꺼낸다든지[63] 2018-2019 시즌에는 시티는 유럽 강호들과 겨룰 수 있는 레벨을 구축해야 된다면서 유럽 강호 팀을 언급할 때 레알 마드리드를 쏙 빼고 바르셀로나, 뮌헨, 유벤투스 세 팀이 맨시티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팀들이라고 말 했다.[64]#

7월 24일에 벌어진 맨시티와 킷치 SC와의 친선전에서 상대 선수이자 해당 경기가 은퇴 경기였던 김동진 선수의 은퇴식 날 김동진과 포옹함과 동시에 김동진의 이름이 담긴 맨시티 유니폼을 선물해주며 훈훈한 장면을 만들었는데, 이틀 뒤에 벌어진 팀 K리그 VS 유벤투스 FC에서 유벤투스가 그야말로 최악 중의 최악의 팬서비스를 보이면서 평이 많이 올라갔다.

자신의 감독 커리어 동안 상대했던 팀들 중에서 가장 최고의 팀으로 MSN을 보유했던 FC 바르셀로나와 2018-19 시즌부터 역대급 우승 경쟁을 한 위르겐 클롭리버풀 FC를 꼽았다.[65]#

감독이 아닌 레전드 선수로서 FIFA 20에 아이콘으로 출시된다.

5. 어록

"무언가를 변화 시키기 위해서는 나 자신 부터 바꿔야 한다."
"어떠한 위험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위험한 것이다."[66]
"재능은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영감을 받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러나 결국 노력은 각자의 의지에 달려있다."
"축구에는 항상 문제점이 존재한다. 끝이란 없다. 왜냐하면 늘 가능성이란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승리하는 것은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고, 그것을 또 한 번 성취하는 것은 훨씬 힘들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우리에게도 힘든 시기가 찾아 올 것이다. 그 때도 지금과 같이 팬들이 우리에게 성원을 보내줘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보다는 팬들을 위해 축구를 하는 팀이기 때문이다."
"부상당한 선수에게 존중을 보여라. 누군가 부상을 당했고 수술을 앞두고 있다. 그 이후에나 우린 그것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날 대단하게 만들어주는 이들은 바로 선수들임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늘 캄프누의 그늘 밑에서 살았고 그것보다 더 열망을 일으킨 건 없었다."
"트로피를 약속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자랑스러워하도록 만들 것이다."
"나는 바르셀로나의 감독이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특권을 누리는 사람이다."

6. 기록

6.1. 선수 시절

6.1.1. 우승 경력

6.1.2. 리그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90/91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라 리가 4 0 1 0 0 0
1991/92 FC 바르셀로나 B 스페인 라 리가 9 2 - - - -
1991/92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라 리가 26 0 3 0 11 0
1992/93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라 리가 28 0 5 1 6 0
1993/94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라 리가 34 0 5 0 9 0
1994/95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라 리가 24 2 4 0 6 0
1995/96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라 리가 32 1 7 0 7 1
1996/97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라 리가 38 0 8 0 7 1
1997/98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라 리가 6 0 3 0 5 0
1998/99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라 리가 22 1 3 0 1 0
1999/00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라 리가 25 0 0 0 0 0
2000/01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라 리가 24 4 4 3 8 0
2001/02 브레시아 칼초 이탈리아 세리에 A 11 2 1 0 - -
2002/03 AS 로마 이탈리아 세리에 A 4 0 3 1 1 0
2002/03 브레시아 칼초 이탈리아 세리에 A 13 1 3 1 - -
2003/04 알 아흘리 카타르 스타즈 리그 18 2 0 0 0 0
2004/05 알 아흘리 카타르 스타즈 리그 18 5 0 0 0 0
2005/06 도라도스 데 시날로아 멕시코 리가 MX 10 1 0 0 0 0

6.2. 감독 시절

2010 FI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주제 무리뉴
2위
비센테 델 보스케
3위
펩 과르디올라
2011 FI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펩 과르디올라
2위
알렉스 퍼거슨
3위
주제 무리뉴
2012 FI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비센테 델 보스케
2위
주제 무리뉴
3위
펩 과르디올라
2015 FI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루이스 엔리케
2위
펩 과르디올라
3위
호르헤 삼파올리
2019 FI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위르겐 클롭
2위
펩 과르디올라
3위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2009 UEFA 올해의 팀
FW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FW
리오넬 메시
MF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MF
카카
MF
차비 에르난데스
MF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DF
파트리스 에브라
DF
카를레스 푸욜
DF
존 테리
DF
다니 아우베스
GK
이케르 카시야스
HC
펩 과르디올라
2011 UEFA 올해의 팀
FW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FW
리오넬 메시
MF
가레스 베일
MF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MF
차비 에르난데스
MF
아르옌 로번
DF
마르셀루
DF
치아구 시우바
DF
제라르 피케
DF
다니 아우베스
GK
이케르 카시야스
HC
펩 과르디올라

6.2.1. 감독 기록

6.2.2. 리그 기록

연도 리그 구단 순위 경기 승점
2007/08 스페인 테르세라[67] FC 바르셀로나 B 1 38 25 8 5 70 41 83
2008/09 스페인 라 리가 FC 바르셀로나 1 38 27 6 5 105 35 87
2009/10 스페인 라 리가 FC 바르셀로나 1 38 31 6 1 98 24 99
2010/11 스페인 라 리가 FC 바르셀로나 1 38 30 6 2 95 21 96
2011/12 스페인 라 리가 FC 바르셀로나 2 38 28 7 3 114 29 91
2013/14 독일 분데스리가 FC 바이에른 뮌헨 1 34 29 3 2 94 23 90
2014/15 독일 분데스리가 FC 바이에른 뮌헨 1 34 25 4 5 80 18 79
2015/16 독일 분데스리가 FC 바이에른 뮌헨 1 34 28 4 2 80 17 88
2016/17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시티 FC 3 38 23 9 6 80 39 78
2017/18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시티 FC 1 38 32 4 2 106 27 100
2018/19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시티 FC 1 38 32 2 4 95 23 98

6.3. 수상 기록

  • 2008/09 미구엘 무뇨스[68]
  • 2008/09 UEFA 올해의 감독
  • 2009 스페인 라 리가 올해의 감독
  • 2009 IFFHS 세계 올해의 감독
  • 2009 돈 발론 어워드 올해의 감독
  • 2009 옹즈도르 올해의 감독
  • 2009 카탈루냐 어워드
  • 2009/10 미구엘 무뇨스
  • 2010 스페인 라 리가 올해의 감독
  • 2010/11 UEFA 올해의 감독
  • 2011 스페인 라 리가 올해의 감독
  • 2011 옹즈도르 올해의 감독
  • 2011 FIFA 올해의 감독
  • 2011 월드 사커 매거진 선정 올해의 감독
  • 2012 스페인 라 리가 올해의 감독
  • 2012 옹즈도르 올해의 감독
  • 2013 글로브 어워드 올해의 감독
  • 2018 PL 올해의 감독
  • 2019 PL 올해의 감독
  •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 5위[69]
  • FC 바르셀로나 역사상 최고의 감독[70]

선수/감독 생활 합쳐서 라 리가 9회, 프리미어리그 2회, 코파 델 레이 4회, 수페르코파 델 에스파냐 7회, 챔피언스 리그 3회, UEFA 수퍼컵 4회, 올림픽 금메달 1회, 기타 3회 등 수집한 트로피가 서른 개가 넘는다.
[1] 수비형 미드필더[2] 2009년 7월 29일대한민국에서 열린 제85차 정부·언론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 심의링크에서 그의 이름을 이와 같이 표기한다고 결정되었다. 펩이 아니라 페프가 옳다.[3] 흔히 '펩'으로 불리지만, 바른 표기는 펩이 아니라 '페프'이다.[4] B팀에서 1시즌(1990-1991), A팀에서 10시즌(1991-2001).[5] 펩과 AS 로마에 관한 재미 있는 인터뷰가 있다. 2014/15 챔피언스리그에서 과르디올라가 이끄는 바이에른 뮌헨이 AS 로마와 조별 리그에서 같은 조에 편성되었다. AS 로마와의 조별 예선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과르디올라는 로마의 황제 프란체스코 토티를 언급하며, "나와 현역 시절을 함께 했던 토티가 여전히 경기를 뛴다는 것은 엄청난 사실이다. 내일 경기에서 그는 그라운드에, 나는 벤치에 있을 것이다. 내가 AS 로마의 선수였던 시절에도 마찬가지였지."라는 나름의 자학성 멘트를 남겼다.[6] 맨시티는 이 당시 펩에게 입단 테스트까지 제의했었고 그 때문에 맨시티 홈경기에서도 관전하는 모습도 보이는 등 영입이 가까워보였지만 펩 본인이 도무지 선수로서 뛸 몸 상태가 아니였기에 당시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은 결국 오퍼를 취소하고 만다.[7] 나중에 맨시티에 선수가 아닌 감독으로 돌아온 펩에게 이 때의 앙심이 있냐는 질문에 본인도 몸상태가 최악이었다는 것을 알았고 피어스 감독의 결정을 전적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직접 감독 해보니 알겠다 카더라[8] 펩은 다른 스포츠(특히 농구)를 보면서 전술적인 아이디어를 얻는 것으로 잘 알려져있는데 농구 경기를 보면서 오버로드 아이솔레이션을 접하고 이를 다른 선수들을 경기장의 한쪽 측면에 밀집시킨 뒤 다른 기술적으로 뛰어난 윙어를 반대쪽으로 넓게 포진시키는 방식으로 축구 전술에 접목시켰다. 이 오버로드 투 아이솔레이션을 즐겨 사용하는 다른 감독으론 토트넘의 감독인 마우리시오 포체티노가 있다.[9] 하지만 이런 상황이 나오지 않는다면 펩의 팀은 절대 무리한 패스를 시도하지 않는다. 모험을 하지 않고 확실하게 선수 발로 이어지는 패스를 계속하다가 틈이 나오는 순간 공간으로 패스를 넣어주고 이게 실패하면 다시 공을 뺏은 뒤 공을 다시 돌리기 시작한다. 이 것이 펩의 팀이 점유율을 극도로 높게 가져가는 이유다. 당하는 입장을 이해하려면 피파 같은 축구 게임에서 이기기고 있는 상대팀이 시간 끌기를 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편하다. 다만 이걸 상대 진영에서 하는게 차이.[10] 물론 펩이 바르셀로나 감독이던 시절에는 아우베스를 올려서 만든 비대칭 백3 라인을 형성하기도 했다.[11] 하지만 이렇게 수비훈련을 많이 하는 것치곤 상대의 찬스메이킹을 저지하는 면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펩의 팀들은 실점이 적긴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펩이 기회가 나오지 않는 한 짧고 안전한 패스로 높은 점유율을 확보하기 때문에 상대팀이 찬스를 만들 기회가 적은 것이지 상대를 저지하는게 뛰어난게 아니다. 즉, 상대에게 공을 못 만지게 함으로써 상대의 공격을 미연에 방지할 뿐이지 상대가 지체없이 뒷공간을 노리고 들어오거나 아예 점유 자체를 방해당하면서 상대에게 공격 찬스가 자주 돌아오면 저항을 못하고 대량 실점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게 특히 자주 보이는게 클롭을 상대할 때의 펩.[12] 물론 20% 밖에 차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공격 훈련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펩의 공인 저서에서 나온 바에 의하면 펩의 공격 훈련은 공격지역 피치를 골문을 바라보는 기준으로 세로로 오등분해서 이뤄진다고 한다. 이때 펩은 선수들의 동선을 한명 한명 1 미터 간격으로 조정한다. 그리고 이 오등분한 선을 타고 역습, 지공 그리고 크로스 패턴 플레이를 행하는데 왼쪽부터 1번 선이라고 했을때 윙백, 윙, 공미, 스트라이커, 윙, 윙백이 단 한 순간에도 같은 공간에 있으면 안되고 계속해서 크로스로 교차하면서 달려야 하고 상대 골문 10미터, 20미터, 30미터 지점에서 각자 달리는 동선이 모두 달라야 한다. 이걸 취재하면서 저자는 미친 사람이나 생각할 법한 훈련이라고 표현했다.[13] 기존 스쿼드가 좋을뿐더러 펩이 원하는 선수를 데려올 수 있는 재력이나 명성 또한 갖춘 팀들이기도 하다.[14] 참고로 하인케스는 2연속 챔스 결승 진출이었다. 그런데 과르디올라의 뮌헨은 하인케스 때와는 달리 챔스 결승에 가본 적이 없다. 즉 과르디올라는 기존의 챔스 2연속 결승 진출 스쿼드로 4강만 가본 것.[15] 물론 완벽한 자유는 아니다. 과르디올라는 공격 훈련을 할 때, 각각의 선수들이 겹치지 않도록 세밀한 동선을 일일이 지정해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즉 정해진 수많은 패턴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며, 그중 가장 효율적인 패턴을 빨리 깨닫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지능이 선수에게 필요한 것이다.[16] 27득점 32실점[17] 5승 10무 9패[18] 과르디올라 감독 시절의 바르셀로나는 역대 최고의 팀 중 하나로 꼽힌다. 포포투가 선정한 역대 최고의 팀 리스트에서 5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아주 뛰어난 팀이었다.#[19] 축구 감독들은 주로 확고한 전술적인 신념을 가진다. 어떤 때라도 그 신념을 관철하는 이상주의자들과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상을 접을 수 있는 현실주의자들로 나뉜다. 축구계에서 대표적인 이상주의자는 아르센 벵거와 펩 과르디올라, 현실주의자는 주제 무리뉴나 디에고 시메오네정도로 볼 수 있다.[20] 물론 감독이 전술적인 이상과 철학을 가진다는 건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하는 융통성 또한 중요한 요소다. 이런 융통성은 펩에게 부족한 것 중 하나다. 펩이 뛰어난 전술적 이상을 지닌 건 부정할 수 없지만, 과르디올라 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최고의 전술가"라고 펩을 부르기에는 다소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21] 펩의 축구는 본인 전술의 기초인 후방 빌드업이 방해받게 되면 뿌리부터 팀이 흔들리는 단점이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공격적으로 나오면서 전방 압박을 시도하는 팀에게는 약세를 보인다. 그런데 보통 원정에 가면 상대 팀들은 홈이기 때문에 더 공격적으로 나오기 마련이고, 챔스 16강에 오른 팀들은 각 리그에서 우승권 팀인 경우가 많다. 어느 정도 클래스가 있는 팀들이 좀 더 공격적으로 나오고 상대 홈 팬들이 펩의 선수들을 압박하면, 그 선수들은 실수를 평소보다 더 잦게 할 수도 있다. 게다가 펩의 전술에서는 수비수들이 공을 만지는 시간이 길다. 또한 수비수들이 공을 잘 찬다고 해봐야 미드필더 급으로 공을 키핑하고 패스를 뿌려주는 선수는 정말 드물다. 그러므로 상대 선수의 압박이 들어오면 미드필더나 공격수보다 실수가 나오기 쉬운 구조다. 그리고 그 실수는 고스란히 실점이나 실점에 준하는 위기 상황으로 이어지고, 실수한 선수는 책임감과 상대 홈 팬들의 신랄한 조롱으로 인해 정신적 부담을 더 받고 또다시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높아진다. 물론 이건 다른 팀들도 마찬가지지만, 펩의 전술 특성상 수비수들의 실수는 팀의 근간을 흔들어 버리기 때문에 더욱 치명적이다. 즉 과르디올라의 전술에는 심각한 허점이 존재하고, 원정만 가면 이 허점이 더 공략당하기 쉬워진다. 그리고 펩의 전술은 수비수들에게 요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중앙 수비수들에게 보통의 패스 능력을 넘어 미드필더 급의 패스를 요구하는 건, 수비수들이 조율 능력와 개인기를 장착해가고 있는 현대 축구에서도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즉, 펩의 전술은 선수빨을 반드시 필요로 하며, 현재로선 그 전술을 완벽하게 구현하기 어렵다. 또한 앞으로도 어려울 확률이 높다.[22] 이 점은 상대 전술에 맞춘 플랜B를 짜면 해결할 수도 있지만, 펩은 뻥축을 할 바엔 지는 걸 선택할 정도로 다른 스타일로 전술에 변화를 주는 것을 혐오한다. 플랜B를 어떻게 짜든 간에 짧은 패스를 이용한 후방 빌드업은 반드시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플랜A처럼 플랜B도 전방 압박을 하는 상대에게 취약해진다. 17/18시즌에 들어서 펩의 플랜B라고 그나마 볼 수 있는 전술은 '3-5-2'인데, 이 전술은 수비진에 숫자를 늘려서 후방 빌드업을 더 안전하게 할 수 있게 만든 전술이다. 따라서 전방 압박에 취약한 건 마찬가지. 그나마 팀에서 8명이 빌드업에 참여하기 때문에 웬만한 압박은 쪽수로 밀어붙이면서 뚫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펩은 전술의 유연함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본인의 천적들을 만나면 심각하게 고생을 하고 있다. 과르디올라의 대표적인 천적은 하드 카운터로 유명한 리버풀의 위르겐 클롭이다. 클롭의 전술은 보통의 전방 압박을 뛰어넘는 강도의 압박을 자랑하는데, 이런 게겐 프레싱이 펩의 후방 빌드업을 파훼하면서 펩은 클롭에게 상당히 고전하고 있다. 상대 전적은 2019년 11월 11일 기준으로 펩이 6승 2무 9패로 밀리고 있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펩은 독일에서건 영국에서건, 클롭이 맡은 팀보다 한 수 위의 리그 최강팀을 맡았다. 17/18시즌만 보면 클롭은 맨시티에게 유일한 리그 패배를 안겨줬고, 챔스 8강에서도 1차전 3-0, 2차전 2-1로 승리하며 본인이 하드 카운터라는 걸 입증했다. 시즌 초반 때 홈에서 '5-0'으로 이기긴 했지만, 이때는 맨시티가 '4-3-3' 대신 '3-5-2'를 썼고 마네가 전반전 때 퇴장을 당하면서 리버풀의 압박이 약해졌기 때문에, 이에 힘입어 맨시티가 이겼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펩은 여러번 데인 결과 클롭을 상대할 때마다 자신의 철학을 일정부분 포기하는 방식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다. 에데르손의 골킥과 라포르테의 롱패스를 이용해서 후방 빌드업을 생략하고 윙어를 높게 전진시켜서 클롭의 높은 수비라인으로 생긴 뒷공간을 노리는 소위 뻥축구를 어느정도 도입한 것이다. 18-19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펩은 클롭의 전방 압박을 수비 숫자를 늘려서 후방 빌드업 참가 인원을 늘리는 방식으로 맞받아치려 했으나 결국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23] 부스케츠와 2대1 패스를 주고받은 후 레알 선수 4명을 제치고 골을 넣었다. 반어법으로 부스케츠 0.9골으로 불리는 골.[24] 세 번의 원정은 각각 3-1, 3-0, 1-0로 패했다.[25] 이를 펩이 지도하는 팀들의 팬들은 '명장병' 이라고 비꼬아서 부르고 있다.[26] 펩의 다큐멘터리에서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스스로도 중요한 경기때마다 변화를 줄까 말까 고민한다고 하는데 이때마다 변화를 주지 않았던 쪽이 대체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27]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이를 두고 바르셀로나는 학교라고 깠다.[28] 다만 토니 크로스는 감독인 과르디올라 때문에 나갔다기 보다는 팀의 보드진과의 마찰로 때문에 이적했다.[29] 하지만 호나우지뉴의 경우 많은사람들이 착각하는 부분이, 호나우지뉴를 내친 것은 메시의 성장에 미칠 악영향을 염려한 바르셀로나 구단 측이지, 과르디올라가 아니었다. 실제론 펩은 호나우지뉴가 08/09시즌에 남길 원했지만 지뉴 본인이 자신의 태만함으로 인해 펩과 구단측과 불화가 생길 것을 염려하여 이적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에 펩은 아쉬워하며 지뉴의 AC 밀란 이적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이후로 펩의 바르샤는 역대 최강의 퍼포먼스를 보이며 전성기를 열었고, 지뉴도 밀란에서 나름의 갱생을 거쳐 어느정도 부활에 성공했으니 윈윈인 샘이지만, 정확하고 창의적인 패스와 동료간 연계플레이에 능한 호나우지뉴가 바르샤에 남아 티키타카식 축구를 이식받아 드림팀 3기의 일원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다. 어차피 지뉴 빼도 저 자리에 만주키치 넣으면 된다[30] 엠레 찬은 지금이야 잘하지만 뮌헨 시절엔 갓 유스에서 올라온 선수에 가까웠으며, 그 때문에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고 다른 팀으로 가야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31] 당시 투레는 펩 체제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펩 체제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는 하프백으로 불리는 후방에서 팀의 빌드업을 시작하고 후방에 머물며 센터백 사이로 들어가서 스리백을 형성하기도하는 수비적인 역할이다. 그런데 투레는 바르셀로나 시절 보여준 모습을 보면 알겠지만 이런 역할로 출전하고는 공을 몰고 치달을 하며 상대 패널티박스까지 가져가서 골을 넣는 대단하지만 펩의 전술에는 맞지 않는 플레이를 자주 보여줬다. 그렇다고 공격적인 재능을 살려 중미로 뛰게하자니 경쟁 상대는 전성기 시절의 사비와 이니에스타다. 거기다 사비는 사실상 팀의 템포를 혼자서 쥐락펴락하는 조율자다보니 경쟁할 수 없고 공격적인 메짤라 역할을 맡아야하는데 아무리 투레가 뛰어난 재능을 갖고있어도 상대는 역대급을 논하는 미드필더, 거기다가 신체적으로도 전성기였던 이니에스타다. 맨시티 탱크시절을 확실히 월드클래스 선수인건 맞으나 당시 팀의 미드필더진이 축구 역사에 남을 사기 라인이었기 때문에 문제였던 것.[32] 이런저런 일들에 입을 털어 맨시티 팬들에게는 거의 공공의 적으로 불리는 수준이다. 자세한 것은 해당문서 참조.[33] 그동안 펩이 투레에 대해 보여온 태도가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소 있긴 했지만, 적어도 이적 당시에 투레는 불화설이고 뭐고를 떠나서 폼 자체가 상당히 나빴다.[34] 사실 즐라탄보다도 더 논란이 될만한 선수는 에투다. 즐라탄의 경우는 후반기 폼 저하 등을 들어 펩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겠지만, 에투의 경우는 펩 이전부터 이미 바르셀로나의 트레블 등을 이끈 데다가 메시와도 잘 공존하던 선수였다. 쫓겨나다시피 했지만 정작 이적이후에 인테르에서 트레블 달성.... 호나우지뉴와 다르게 에투는 당시 막장 수준도 아니었다. 그런데 팀 분위기를 망친다고 구단에서 직접 지목한 호나우지뉴는 오히려 붙잡으려 했다는 점에서 과연 팀 분위기 저해를 근거로 쫓아내는 감독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단지 에투가 즐라탄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다소 떨어지는 선수기 때문에 조명을 덜 받는 것. 본인이 데려온 선수는 부진하고 정작 내친 선수는 구단의 역사를 쓰며 승승장구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35] 즐라탄 역시 펩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축구계 인사이기 때문에 논란이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36] 무려 라리가 전반기 MVP였다. 엘 클라시코에서도 1골을 넣으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37] 메시 위주의 전술을 운용하는 것 자체야 비판거리가 아니지만, 그럴거면 즐라탄을 왜 비싼 돈을 주고 데려왔냐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무전술로 욕먹던 엔리케 감독마저 수아레즈와 메시의 공존을 성공시켰다. 수아레즈가 만능형 공격수인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주로 해결사의 역할들 도맡는 선수인데, 크랙에 가까운 네이마르야 그렇다 하더라도 수아레즈는 메시와 전혀 문제없이 바르셀로나의 공격을 이끌고 있다. 물론 펩 시절 메시가 맡았던 역할과 이후 메시가 맡는 역할에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다.[38] 실제로, 즐라탄 본인이 생각하는 역대 축구선수 베스트 11에는 본인은 물론리오넬 메시나 이니에스타 사비 등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버젓이 선정되어 있다. 바르셀로나 자체를 싫어한다면 이런 구성은 나올 수 없으며, 심지어 메시에 관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상술했듯 메시 위주의 팀 운영으로 인해 본인이 다소 흑역사를 쌓았는데도 이런 반응을 보이는것을 보면 갈등의 원인이 전적으로 펩 과르디올라에게 있다고 여기는 듯 하다.[39] 그런데 즐라탄의 감정 섞인 비판을 감안하더라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당시 메시는 엄청난 폼을 보이는 최전성기였고 펩은 그에 맞춰 바르셀로나로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메시 위주로 팀을 굴러가게 한 것은 즐라탄 기준에서는 악몽이였겠지만 바르셀로나에겐 최고 황금기였다.[40] 마르티 본인은 "제 3자가 보아도 그는 훈련장에서 큰 골칫덩어리였다"라고 하지만...과연 바르셀로나 출생에 커리어 대부분이 친 카탈루냐였으며 과르디올라 서적의 저자인 인물이 제3자 입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41] 실제로 과르디올라의 전술에서 토니 크로스와 비슷한 유형의 미드필더는 활약할 여지가 크다.[42] 다만 크로스는 갈락티코의 타겟이였기 때문에 펩 문제와는 별개다.[43] 역대 최고의 감독으로 거론되는 알렉스 퍼거슨의 경우에는 챔스 진출권 따내기도 힘든 스쿼드로 리그우승에 챔스 결승까지 간 전적이 있고 오랜 세월 감독직을 하면서 같은 감독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수많은 전술적 변화를 했다. 스쿼드의 빈약함을 전술적인 부분으로 채워냈기에 역대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 받는 것.[44] 일반적으로는 대다수의 감독이 그러하므로 문제가 될 게 없지만, 자신의 전술에 맞지 않으면 가차없이 배제하는 지도 방식 때문에 선수와 불화를 겪은 거의 모든 사례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45] 위에도 쓰여있지만 언론에게 개인사를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46] 다만, 펩은 다른 감독에 비하면 이런 부류의 선수가 특히 많은 감독이다. 살라의 경우도 첼시에서 기회를 잡지 못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무리뉴를 비판한 적은 없었다.[47] 파일:BoNalfNIgAA7aE3.jpg 참고로 저 가운데에서 아래에 있는 짤은 원래 무리뉴 왼쪽엔 루이스 엔리케까지 있던 짤이다. 저 셋은 모두 트레블을 달성했던 감독이다.[48] 특히 무리뉴가 레알에 온 이후 엘 클라시코에서 바르셀로나가 압도적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더더욱 언플을 시전할 수 밖에 없는 상황.[49] 단 즐라탄의 자서전에 따르면 무리뉴가 인테르 감독이던 시절에도 과르디올라는 물론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 선수들이 반감을 갖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무리뉴가 첼시 감독이던 시절 챔스에서 맞붙으면서 했던 언플과 디스 때문으로 추정된다.[50] 무리뉴에게 "El puto amo"라는 말을 했는데, 이는 한국말로 옮기자면 씨발새끼 정도의 뜻이다. 과르디올라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수있는 대목. 다만 el puto가 무리뉴를 지칭하는 욕설이 아니라 한국어로는 "존나"쯤 되는 강조의 의미로 썼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체적으로는 "그 양반 존나 말 험하게 하네" 였다고 한다. 정확한 워딩은 "Mourinho es el puto jefe, el puto amo (Mourinho is a fucking boss, fucking darling in the press room)", 번역하면 "무리뉴 씨발새끼는 언론 플레이의 천재다. 언론에서 예뻐하는 씨발새끼다" 정도의 뜻. 이날 과르디올라는 무리뉴에게 친히 '프레스 룸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주겠다고 인터뷰했을 정도이니, 이렇게 번역하는 것이 내용상으로도 맞는다.[51] 당시 무리뉴는 과르디올라가 정당한 심판 판정을 비난한 것에 어이없다는 의사표시를 했을 뿐 말을 험하게 한 사실은 없다. 이날 말을 험하게 한 것은 과르디올라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무리뉴도 잘한 것은 없다. 과르디올라는 상당히 신사적인 성격이라 인터뷰 등도 꽤나 신중한 편이지만 무리뉴는 평소 바르사는 챔스 협회의 가호를 받는다며 얼토당토 않은 음모론을 시전하다 다른 감독들에게 융단폭격을 당하기도 하고 레알이 진 경기 내용에 대해 시비를 걸거나 돌출발언을 일삼으며 그의 심기를 건드려 왔으므로 둘이 원투 펀치 주고받았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무리뉴는 평소 신사적인 성격도 아니고 경기 외적으로도 '당한 것은 갚아준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감독인 반면, 과르디올라는 첫 시즌 때만 해도 매너있는 신사라고 추앙받았으니... 둘이 같은 급이 됐다는 것베트맨과 조커?은 결국 과르디올라가 그 동안 쌓아온 이미지에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듯.[52] 후에 밝힌 바로는 무리뉴의 도발에 대해 바르셀로나 수뇌부에서 신사적인 인터뷰를 하도록 종용했고 그래서 그에 따를 수밖에 없었으나, 수 년간 구단 내 파워 게임 등에까지 얽혀 스트레스가 극도로 쌓인 상황에 몰리자 그냥 확 질러 버린 것이라고 한다. 이후 무리뉴에 대해 내 보인 날선 발언들은 사실상 바르셀로나 생활을 청산할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 봐도 무방할 듯.[53] 물론 소속팀 선수 제외.[54] 기사에서는 무리뉴가 엘 컨피덴셜과의 인터뷰에서 발언했다고 언급하고 있으나 엘 컨피덴셜은 무리뉴를 인터뷰한 것이 아니고 엘리트 코치 포럼에서 이러한 언행이 있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한 것에 불과하다. 스페인에서 매일 쏟아져나오는 근거없는 보도를 독일 신문인 빌트에서 그대로 게재하고 이것을 한국에서 기사화한 것.[55] 현재 프리미어리그 공식 규정상으로 감독이 정치색을 드러났다고 처벌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56] 그러나 콘테와 무리뉴는 깨끗하게 화해했다는 쪽보단 임시적으로 싸움을 멈추고, 서로 더러워서 피한다는 쪽에 더 가깝다... 시작은 무리뉴가 했지만 먼저 싸움을 끝내자며 콘테가 부진할 때 두둔한 것도 무리뉴다.[57] 카탈루냐 출신들은 아주 시골이 아닌 다음에는 모두 저 두가지 언어를 완벽히 구사할줄 안다. 즉 유스에서 올라온 대다수의 바르셀로나 선수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도 무방.[58] 프리미어 리그에서 몇년간 감독을 하면서도 여전히 어눌한 영어를 구사하는 포체티노무리뉴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과르디올라가 얼마나 영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지 쉽게 알 수 있다.[59] 링크[60] 이 사건의 영향인지 한국 내에서 선수빨이라든가하는 저평가는 많이 받는 편이다. 그나마 EPL로 가서 다시 평가하는 사람들이 늘었을 정도이니...[61] 물론 이것은 전술적 이해와 서로간의 조직력을 많이 요구하는 펩 전술상 나올 수 밖에 없는 현상이고 이렇게 될 것이라는 걸 예측한 사람도 많았다.[62] 대표적인 선수가 케빈 더 브라위너. 하지만 펩은 메시 그 다음 자리가 있다면 더 브라위너가 그 자리라고 말한다.[63] 이것에 대해선 그 당시 레알 마드리드 감독이었던 지단이 짜증나서 왜 자기 경기도 아닌데 신경쓰냐고 한 마디 했다.#[64] 다들 알겠지만 참고로 레알 마드리드는 챔피언스 리그의 디펜딩 챔피언이고, 2017-2018 시즌에 저 3팀을 상대로 상대전적에서 밀리지 않고 우세하다.(수페르코파 포함)[65] 펩은 2018-19 시즌 EPL을 두고 "이번 리그는 내가 감독으로 뛴 것 중 가장 힘든 리그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란 말을 남겼다.[66] No hay nada más peligroso que no arriesgarse[67] 스페인 4부리그[68] 라 리가 올해의 감독[69] 골닷컴 선정[70] 마르카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