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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펩 과르디올라의 감독 스타일을 정리한 문서.2. 전술 스타일
펩 전술의 근간이 되는 포지션 플레이에 대한 내용은 포지션 플레이 문서 참고하십시오.
과르디올라의 전술을 한마디로 설명하긴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간단하게 설명하라면 그의 전술은 포지션 플레이의 극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르디올라의 전술은 기본적으로 안전한 짧은 패스를 이용해서 후방에서부터 빌드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수비형 미드필더 한 명이 중앙 수비수 라인으로 내려와서 라볼피아나를 형성해서 후방에서의 수적우위를 베이스로 빌드업을 수월하게 만드는 것이 기본이다.[1]
다른 특징은 오버로드 투 아이솔레이션을 통한 반대 전환. 농구를 자주 보는 사람들은 이름을 보면 단번에 알겠지만 농구의 전술에서 따온 게 맞다.[2] 과르디올라의 축구는 점유율 유지를 위해서 중앙을 자주 사용하지만 기본적으로 윙어 2명(또는 윙백이나 오버래핑한 풀백 2명)은 넓게 포진한다. 이는 중앙에서 점유율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시 측면으로 공을 돌려서 점유를 계속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과르디올라의 전술의 핵심 중 하나인 사이드 체인지를 이용해 상대 진영을 허물기 위함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윙어들이 넓게 포진하기 때문에 과르디올라의 팀이 측면을 이용하게 되면 그 사이드로 상대 팀을 포함해서 선수들이 쏠릴 수밖에 없다. 이때 반대쪽으로 넓게 포진한 윙어는 방대한 공간을 얻게 되고 크로스 혹은 사비 같은 시야가 넓고 패스가 뛰어난 미드필더가 반대편 윙어가 침투하는 공간으로 쓰루 패스를 이용한 순간적인 사이드 체인지로 상대 진영을 허문다.[3]
또한 과르디올라는 수비 시 강렬한 전방 압박을 애용한다. 과르디올라의 압박 전술은 약 3가지 단계로 나뉘는데, 전방에서의 압박을 통해 상대의 공격 진행 방향을 제어하고 한 쪽 측면으로 몰아 넣고, 경기장 중앙에서의 격렬한 압박을 하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주어서 상대 선수가 공은 소유할 수 있게 만들되 전방을 향한 위협적인 공격으로의 진행을 막고 백패스 또는 횡패스를 하게 만들고, 백패스나 횡패스를 받은 수비수들은 과르디올라의 팀의 공격수들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서 더욱 라인을 내리게 되는데 이러면서 자연스럽게 과르디올라의 팀의 라인이 높아지면서 상대 팀 선수들을 상대 진영에 가두게 된다. 과르디올라의 압박 수비는 이 3가지를 무한히 반복하면서 상대 선수들의 실수를 기다리고 상대가 실수를 했을 때 높은 위치에서 공을 빼앗으면서 빠르게 역습을 가져간다. 이는 과르디올라의 경기장의 높은 곳에서 빼앗은 공이 낮은 곳에서 빼앗은 공보다 골로 연결될 확률이 크다는 지론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과르디올라 하면 티키타카가 떠오르기 마련인데, 실상 티키타카가 팀의 아이덴티티로 정착된 팀은 과르디올라가 거쳐간 바르셀로나와 바이에른에 불과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도리어 과르디올라가 2010년대 축구 트렌드에 미친 영향은 다른 데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첫 번째 영향은 후방 빌드업의 정착이다. 물론 후방 빌드업의 개념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과르디올라가 정착시킨 후방 빌드업은 변형 백3를 활용한 것이다. 이를 창안한 아르헨티나 감독 리카르도 라 볼페의 이름을 딴 라볼피아나라는 아이디어를 도입한 것인데, 빌드업 리더를 센터백 사이로 내려[4] 일시적으로 백3 라인을 형성하고 골키퍼까지 포함한 4인의 후방 선수가 공을 돌리며 전방 압박 라인을 끌어당겨 상대 압박 라인의 간격을 벌리거나, 혹은 대형을 무너트린다. 이렇게 상대의 대형을 흔들고 나면 아군 미드필더들이 공격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한층 수월해진다. 현재 웬만한 팀들은 이런 아이디어를 수용해서 빌드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이에 대한 대책들도 발전해서 위르겐 클롭처럼 1~2선의 기동력을 활용해 매우 집요하게 상대 후방 빌드업을 방해하는 대책이 나오는가 하면, 디에고 시메오네처럼 아예 전방 압박은 적당히 시간을 늦추는 수준으로만 하고 아군의 타이트한 대형 유지를 중시하는 대책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과르디올라는 한 가지 전술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았다. 대표적인 예시가 프리미어 리그 2016-17 시즌 30라운드 아스날 FC와의 경기인데, 이 경기에서는 드디어 롱패스도 꺼내들었다.[5] 특히 이날 맨체스터 시티의 골키퍼 윌리 카바예로는 아스날 진영을 향한 긴 골킥으로 후방 빌드업을 생략하기도 했다. 과르디올라가 전술적으로 한층 더 유연해진 것이다. 기사 거기다가 토트넘 전에서는 패스를 줄이고 후방 빌드업을 줄이며 활동량을 늘리는 축구를 구사하면서 패스 플레이를 방해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토트넘을 농락했다. 그리고 에데르송이라는 미친 킥력을 보유한 골키퍼를 영입하면서 후방 빌드업을 미끼로 상대 팀을 끌어들인 뒤 상대 수비를 넘기는 골킥을 날리는 것이 펩의 맨시티에서 하나의 전술로 자리 잡았다.
두 번째 영향은 볼 점유의 중요성을 재확인시켰다는 것이다. 과르디올라 이전에도 볼 점유는 중요했지만 이는 점유에 이어 간결하고 신속하게 공격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사키이즘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즉 신속한 공수의 전환이 더 중요했으며, 점유는 단지 더 많은 공격 기회를 잡기 위한 방법에 가까웠다. 아예 전환의 신속성이라는 아이디어만 뽑아 먹는 선수비 마인드의 축구가 유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르디올라가 느린 템포와 점유를 접목하면서 점유란 상대에게 있어 기회의 박탈과도 같은 말이 되었다. 게다가 자신의 자리를 고수할 수 있게 되면서 설령 공을 빼앗기더라도 신속하게 질서 있는 압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과르디올라의 훈련에서 수비 훈련이 전체 훈련의 80%를 차지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가 거쳐온 팀들이 강한 압박을 통한 수비가 가능했던 이유이다.[6][7] 물론 이후 모든 팀들이 과르디올라의 팀처럼 높은 점유율을 찍으려 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쉽게 상대에게 점유를 내주려 하지 않는 태도는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있으며 점유를 내주더라도 곧장 질서정연한 압박으로 전환하여 치열하게 점유 대 압박 간 경쟁을 펼치는 경기 양상이 펼쳐지게 되었다. 때문에 위험 지역에서 걷어내는 것 외에는 롱킥을 볼 기회가 없고 골킥마저도 패스로 처리한다. 다만 바이에른에서부터는 롱볼도 적극적으로 이용하게 되었다.
과르디올라가 축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는 삼각 대형 유지이다. 즉, 선수들은 상대팀의 압박과 공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격을 수월히 하고 빌드업을 원활히 하기 위해 공을 주고 받으며 세 명의 선수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삼각 대형을 만들어야 한다. 이 삼각 대형은 11명의 선수들이 모두 끊임없이 허물었다가 다시 만들기도 하면서 곳곳에서 공격 전개와 탈압박을 위한 기본 포지션이 된다. 간격을 유지하며 상대팀의 압박을 벗어나기 위해선 부지런히 움직여 왕성한 오프 더 볼 활동을 보여야만 하며, 상대 선수들을 혼란시키기 위한 가짜 움직임도 무척이나 중요해진다. 상대팀의 골대 근처나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는 공격수들에게 자유도를 주지만, 빌드업 과정이나 공격 전개 과정에서 이 삼각 대형을 통해 탈압박 하는 것을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기본적으로 발기술이 좋은 골키퍼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골키퍼의 킥으로 바로 자기 진영에서부터 빌드업이 시작될 수도 있고, 상대방이 빌드업 지점을 압박하기 위해 지나치게 많이 내려오면 정확한 킥을 통해 바로 멀리 있는 동료에게 패스를 해서 역습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르디올라가 스위퍼 키퍼만을 선호하는 이유는 이렇듯 키퍼 역시 빌드업의 한 축이 되는 역할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과르디올라는 거쳐가는 팀마다 팀이 속한 리그의 특성과 주어진 스쿼드 상황에 따라서 포지션 플레이의 중심을 유지하면서도 세부 전술을 계속 변화시켜왔다. 감독 커리어를 시작한 바르셀로나에서의 전술은 중앙에서 짧은 패스를 돌리다가 틈을 발견하면 침투에 이은 쓰루패스로 상대를 허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바이에른 뮌헨에 부임했을 때는 선수들의 특성상 이같은 플레이가 잘 먹히지 않았고, 이때 아르연 로번과 프랑크 리베리라는 월드 클래스 윙어들에게 초점을 맞춘 오버로드 투 아이솔레이션을 이용한 활발한 측면 공격과 기존의 종방향 움직임을 가져가는 윙백 대신 중앙으로 들어와 빌드업을 돕는 인버티드 윙백을 전술에 접목시킨다. 또한 분데스리가의 강한 압박과 빠른 트랜지션이 요구되는 환경에 맞추어 기존의 포지션 플레이에 보다 다이렉트한 공격방식을 접목하기 시작했는데, 마누엘 노이어의 스위핑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면서 제롬 보아텡의 롱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프리미어리그로 이동해 맨체스터 시티에 부임한 뒤에는 윙 포워드들에게 대각선 침투 뿐만이 아닌 윙어로서의 움직임도 부여하면서 활발한 낮은 크로스를 전술에 추가하였고, 이는 맨체스터 시티가 2017-18 시즌 리그에서 32승 4무 2패 승점 100점이라는 압도적인 성적표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특히나 힘과 피지컬이 요구되는 거친 프리미어리그의 환경에 맞추어 최고의 전진능력을 가진 케빈 더 브라위너가 공격의 중추로 활약했고, 펩이 지도한 수비형 미드필더 중 가장 피지컬이 좋은 편에 속하는 로드리가 중용된다. 22-23 시즌에는 기존에 펩이 선호한 스트라이커의 유형과는 거리가 있는 빌드업 관여도가 떨어지는 클래식한 포처인 엘링 홀란드를 영입하고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술의 다이렉트함을 늘렸고, 전문 풀백 없이 수비적으로 단단한 4명의 센터백을 사용하는 3-2-4-1 전술을 완성하면서 펩의 감독 커리어에서 가장 피지컬적인 팀을 만들어 커리어상 2번째 트레블이라는 대업을 달성하게 된다.
또한 과거의 전술들을 재해석해서 자신의 전술에 더하기도 한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WM 전술의 재해석으로, 맨체스터 시티 첫 시즌 때에는 하프백을 센터백 라인으로 내리고 풀백 두 명을 중앙 미드필더 자리로 들어오게 하는 형식으로 3-2-4-1 포메이션을 형성해서 WM 형태가 나오게 만들었다. 두 번째 시즌에도 경기중 가끔씩 나오는 형태로 수비형 미드필더가 어디에 서있냐에 따라 3-2-4-1과 2-3-4-1이 혼용된다. WM 전술은 공격진과 수비진을 철저히 분리해서 운용함으로써 공격과 수비의 밸런스를 맞추는 형식인데, 과르디올라는 이걸 자신의 팀에 적용하면서 2017-18 시즌에는 폭발적인 공격과 안정감 있는 수비를 동시에 선보이며 우승을 차지했다. 2020-21 시즌에는 공격 시에는 3-2-4-1 전술을 쓰지만,[8] 수비 시에는 4-4-2 대형을 사용한다. 2022-23 시즌 후반기에는 존 스톤스의 멀티포지션 소화능력과 볼 컨트롤 능력을 극한으로 활용해 과거의 포어 리베로 전술을 구현하는데, 수비시에는 일반적인 센터백으로 위치하지만 공격시에는 후방을 3명의 센터백에게 맡기고 스톤스가 미드필더 위치까지 전진하면서 로드리를 보좌하고 심지어 하프스페이스 침투도 시도했다.
이렇듯 최근 그의 전술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풀백 활용. 발기술 좋은 센터백이나 미드필더적 성향이 강한 풀백을 3선에 올려 3-2-4-1 형태를 취해 중앙에 공격 숫자를 최대한 밀집시켜서 측면 아이솔레이션을 용이하게 한다. 시즌 내내 중원의 약세로 고전하던 리버풀도 이 전술을 벤치마킹해 시즌 막판 반등에 성공했고, 맨시티에서 수석 코치로 지내면서 과르디올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아르테타가 아스널에 감독으로 부임해 유사한 전술을 사용하며 아스널을 리그 우승 경쟁이 가능한 강팀으로 부활시켰다.
2.1. 전술에 대한 비평
과르디올라는 리그에서의 압도적인 성적과 현대 축구에 미친 전술적인 영향력은 높게 평가받지만, 선수빨이라는 비판 또한 같이 받는 감독이다.[9]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과르디올라가 여태까지 감독으로서 거친 팀들이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시티라는, 각 리그에서 우승 후보로 항상 꼽히는 강팀이기 때문이다.[10] 그리고 과르디올라의 전술은 선수의 능력을 많이 요구하는데, 맨시티 1년 차 때 노쇠화로 인해 기량이 떨어졌던 양 풀백 때문에 무관에 그친 걸 보면 알 수 있다. 웬만큼 재능있는 선수들을 가지고는 본인의 전술을 구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선수들의 뛰어난 축구 실력을 반드시 요구하는 전술을 구사하는 것인데, 애초에 과르디올라의 전술을 소화할 선수단이라면 다른 전술이었어도 뛰어난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유프 하인케스의 트레블 당시 바이에른의 성적과 과르디올라 시절의 바이에른의 성적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11] 그리고 다른 감독들의 전술은 능력치가 상대적으로 평범한 선수들도 소화할 수 있고, 선수들의 클래스가 올라갈수록 효율이 올라간다.그러나 과르디올라의 전술은 애초에 월드 클래스 수준의 기량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 기준에 미달하는 선수들이 전술을 수행하면 경기가 답답해진다. 이는 바이에른 부임 초기를 보면 알 수 있는데, 그 내로라하는 선수단을 가진 바이에른조차 과르디올라가 전술을 수정하기 전까지는 U자 형태로 공을 돌리기만 했다. 현재 맨시티에서도 선수의 전술 이해에 따른 퍼포먼스 차이가 극명하게 갈린다. 맨시티 부임 동안 과르디올라가 영입한 선수들 대부분은 두 번째 시즌에 첫 시즌보다 훨씬 더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과르디올라의 전술 특성상 상대 피치(경기장의 1/3 지점)에 올라온 때부터는 선수의 자율적인 움직임에 공격을 맡기는데, 이는 전술 지침만 따르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여 가장 효율적인 공격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12] 결론적으로 과르디올라의 전술은 그 자체가 선수빨을 탄다. 월드 클래스의 선수들이라면 굳이 펩의 전술이 아니더라도 뛰어난 성적을 낼 수 있다. 그리고 선수단에 더 맞는 전술을 지닌 감독을 만난다면 훨씬 뛰어난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것.
정작 감독 본인은 쿨하게 선수빨 맞다고 22-23 시즌 도중 인터뷰에서 인정한 바 있다. 인터뷰에서 대놓고 본인의 바르셀로나 시절 성과는 리오넬 메시 덕분이며 맨시티 22-23 시즌의 성과는 엘링 홀란드 덕분이라고 이야기했다.
원래 이 문서에는 과르디올라의 전술적 유연함 부족, 폴스 나인 전술 선호, 토너먼트 결정적인 경기에서의 급격한 전술 변화[13], 클롭과 투헬 상대로 약세 등등 많은 비판점이 있었으나, 22-23 시즌 사상 최초로 두번째 유러피안 트레블을 달성하면서 비판을 상당수 잠재울 수 있게 되었다.
* 전술적 유연함: 칸셀루가 시즌 도중 항명사태를 일으키고 갑자기 이탈하자 스톤스 시프트 3241 전술을 고안하고 그 전술로 트레블을 달성. 시즌 도중에 플랜A를 변경하고 그 후로 쭉 상승세를 타며 우승컵을 획득한 케이스이다.
* 폴스 나인 유형의 선수 선호: 펩은 인터뷰에서 폴스 나인을 선호하는 게 아니라 팀 사정 (21년 여름 해리 케인 영입 실패) 때문에 맨시티에서 폴스 나인을 쓰는 거라고 반복해서 이야기한 바 있으며 결국 정통파 스트라이커에 가까운 홀란드를 영입하고 트레블을 달성했다. 심지어 홀란드를 본인이 혐오하는 포처롤에 가깝게 활용했다. 이는 짧은 패스만을 고집하던 과르디올라가 골키퍼의 롱패스를 활용하던 모습과 비슷하게 전술의 유연성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변화다.
* 명장병: 스스로 극복하며 결국 맨시티에서 챔피언스리그 우승. 20-21 시즌에는 챔스 결승 대 첼시전에서 급격한 전술 변화를 가져가는 실수를 범했으나, 22-23 시즌에는드디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14]
* 라이벌들과의 비교: 22-23 시즌 클롭(프리미어리그) 그리고 투헬(챔피언스리그) 감독 모두와 경기를 치렀으나 트레블을 달성함. 여전히 클롭과 투헬이 펩에게 가장 위협적인 상대 감독이지만, 결국 감독은 트로피 갯수와 현대 축구에 끼친 전술 영향력으로 평가받는다.
* 폴스 나인 유형의 선수 선호: 펩은 인터뷰에서 폴스 나인을 선호하는 게 아니라 팀 사정 (21년 여름 해리 케인 영입 실패) 때문에 맨시티에서 폴스 나인을 쓰는 거라고 반복해서 이야기한 바 있으며 결국 정통파 스트라이커에 가까운 홀란드를 영입하고 트레블을 달성했다. 심지어 홀란드를 본인이 혐오하는 포처롤에 가깝게 활용했다. 이는 짧은 패스만을 고집하던 과르디올라가 골키퍼의 롱패스를 활용하던 모습과 비슷하게 전술의 유연성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변화다.
* 명장병: 스스로 극복하며 결국 맨시티에서 챔피언스리그 우승. 20-21 시즌에는 챔스 결승 대 첼시전에서 급격한 전술 변화를 가져가는 실수를 범했으나, 22-23 시즌에는
* 라이벌들과의 비교: 22-23 시즌 클롭(프리미어리그) 그리고 투헬(챔피언스리그) 감독 모두와 경기를 치렀으나 트레블을 달성함. 여전히 클롭과 투헬이 펩에게 가장 위협적인 상대 감독이지만, 결국 감독은 트로피 갯수와 현대 축구에 끼친 전술 영향력으로 평가받는다.
2.2. 전술에 대한 오해: 펩은 게겐프레싱을 사용하지 않는다?
게겐프레싱으로 등장한 대표적인 스트라이커, 마리오 만주키치와의 안 좋은 사이 때문에 펩은 게겐프레싱 전술을 싫어한다고 오해하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펩은 본인의 이상적 축구를 위해 오히려 게겐프레싱을 매우 중시하는 감독이다. 사실 만주키치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게겐프레싱 스타일에 집중된 그의 플레이보다 여러 만능의 기술을 좀 더 해낼 수 있는 스트라이커를 원했기 때문이다. 상술한 전술에 따르면 펩은 크루이프이즘의 정신을 잘 이해하고, 이를 실제 축구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감독이다. 크루이프이즘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은 "우리팀이 공을 가지고 있는 시간은 최대한 길게, 상대팀이 공을 가지는 시간은 최대한 짧게", 그리고 "공이 골문에서 멀어질수록 골이 나올 확률은 적다"라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서 펩은 수비 상황에서의 저지선을 최대한 높게 형성하는 편이며, 공을 빼앗겼을 때에도 공을 빠르게 탈취하여 다시금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다. 단순히 점유율을 중시한다고 점유율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며, 수비 상황 자체까지도 점유율을 필연적으로 높일 수 있게 설정하는 것이다.초창기 티키타카의 전성기 시절에는 펩의 축구를 평가할 때 '6초 룰'이라는 키워드가 자주 등장하며 펩의 바르샤는 강한 압박을 구사하는 팀으로 평가받았는데, 더 강도 높은 위르겐 클롭의 게겐프레싱으로 인해 이부분에서 저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겐프레싱이 볼 소유권을 잃은 상황에서 공격적인 압박으로 볼을 탈취해 그 자리에서 곧바로 속공 기회를 창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과르디올라의 압박전술은 공격 기회를 창출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높은 라인에서의 조직적인 압박으로 상대의 공격 속도를 늦추고, 측면으로 공을 몰아서 전개를 방해하며 골키퍼의 킥 미스를 유도하고, 그 사이에 전진했던 수비 라인이 빠르게 복귀할 수 있는 시간을 버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목적의 압박은 맨시티가 아니더라도 현재 높은 레벨에서 '현대축구'를 지향하는 팀들 대부분이 수행하는 압박전술이 되었다.
3. 선수단 운영
개인의 코칭 스타일을 보면 대개 극도로 편집증적이라거나, 진성 축덕이라는 평이 중론이다. 말 그대로 하루하루 축구 생각만 하는 기계 수준. 하루에 열몇 시간씩 일을 하는 워커홀릭인데, 훈련이 끝나면 어두컴컴한 감독실에 틀어박혀서 경기에 쓸 전술에 대한 답이 나올 때까지 아이디어를 짜내고 메모해서 경기를 준비한다. 팀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스타일인데, 바르셀로나 시절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려 든 것은 유명하며[15] 훈련을 할 때도 공격 훈련을 하는 경우 선수들의 동선을 일일이 정해 두고 선수들의 동선이 엉키지 않도록 미친 듯이 패턴 플레이를 반복한다고 한다. 과르디올라 뮌헨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1하술하겠지만 자주 비교되곤 하는 퍼거슨과 대척점을 보이는데, 우선 둘 다 안목 자체는 훌륭한 편이나 스타일상으로 차이가 있다. 퍼거슨은 멘탈 관리 및 육성 능력에 기반한 선수단의 높은 완성도를 매 시즌마다 구축한다면, 펩은 기량적으로는 완성에 가까운 선수를 기용해서 해당 선수의 최대치의 활용성을 연구해오고 거기에 선수의 포텐셜을 체계적으로 끌어올린다. 즉 요약하자면 퍼거슨은 유망주의 성장 가능성을 빨리 캐치해내고 이를 이끌어내는 데 강점이 있다면 펩은 선수의 객관적인 역량을 체크하고 이를 육성하며 본인의 전술에 녹아내어 활용하는 데 강점이 있는 셈이다. 또한 어린 유망주의 특징이 두드러지지 않을 경우 펩의 의도하는 육성 방향성에 따라 플레이 스타일이 바뀌기도 한다.
3.1. 평가
감독 생활 초기에는 자기 스타일과 플랜에 안 맞는 선수와 불화를 일으키며 좋지 못하게 이별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이는 과르디올라가 첫 감독으로 부임했던 바르셀로나 시절에서도 잘 드러난다. 부임 당시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자기 스타일과 플랜에 맞는 선수들에 대하여는 무리한 주급과 이적료를 주어서까지 영입하였다는 점, 그와 함께 부임 당시 자신의 스타일에 맞지 않는 선수들을 대놓고 내쳤다. 예를 들어 펩은 2012-13 시즌까지 주전 스트라이커였던 마리오 만주키치를 2013-14 시즌 이후 역시 자신의 전술에 맞지 않는다고 판명한 후 조금씩 배제하기 시작했고, 만주키치가 2013-14 시즌 윈터브레이크 기간에 바이에른이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와 계약하고 자신의 9번을 줬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과르디올라에게 항명하자 시즌 후 그를 방출했다.# 잦은 출장 배제에도 분데스리가 득점 순위 2위인 선수를 포칼 결승 명단에서 제외하며 "다음 구단에서 행운을 빈다" 라고 멘트를 날린 것은 레전드. 만주키치에 따르면 과르디올라는 자신을 왜 쓰지 않는지 조차 설명하지 않았다며 "설령 그가 커피를 권한다 해도 나는 그와 마주하지 않을 것" 이라고 말했다. 또한 팀의 레전드 중 한 명이었던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와 꾸준히 성장해오던 토니 크로스 등 실력있는 선수들을 내보낸 바 있다.[18]
맨체스터 시티에서는 비교적 이러한 문제점을 덜 보였지만 주전에서 밀린 선수들과의 불화가 그렇다고 없진 않았다. 맨체스터 시티와 잉글랜드 국가대표 골키퍼의 상징과도 같던 조 하트를 전술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임 직후부터 배제하고 쳐냈으며, 클럽 레전드인 세르히오 아구에로조차도 2016-17 시즌 당시 가브리에우 제주스에게 선발에서 밀렸을 때 과르디올라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19] 펩이 시티로 부임한 이후에 선수단 관리 문제에 있어 여타 다른 구단들에서 보여준 문제점을 덜 보인 이유에 대해서는 펩 본인도 그동안 자신의 모습에 반성을 한 것인지 그동안 자신이 냉정하고 너무 독단적이였던 거 같았다며 이제는 바뀌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수비수에게 요구하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 수비수를 사더라도 패스가 좋고 수비력도 준수해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을 내건다. 덕분에 과르디올라가 바르셀로나 이후 맡은 바이에른과 맨체스터 시티에서는 센터백들이 부상으로 이탈해 수비형 미드필더나 풀백을 센터백으로 기용하다 이들의 폼도 떨어지고 팀 수비는 개판이 되는 상황이 종종 나온다. 점유율 축구의 극한을 추구하는 과르디올라의 성향을 고려하면 당연한 영입이기는 한데, 이 때문에 정작 한 골 차이를 지켜야 하는 등 단단하게 걸어 잠가야 할 상황에서는 수비 문제로 깨지는 경우가 많다. 이 문제가 폭발한 시즌이 바로 2019-20 시즌으로 에므리크 라포르트 하나만 믿고 가던 수비진이 라포르트가 부상당하자 완전히 무너지며 수많은 무승부와 패배를 불러왔고, 이 때문에 28라운드 기준 2위를 달리고는 있지만 1위인 리버풀과의 승점 차이가 22점, 리버풀이 29라운드를 끝마친 뒤엔 25점 차이가 나버리면서 우승 도전에 사실상 실패한 모습을 보여줬다. [20]
스카이스포츠는 과르디올라가 내친 선수들로 베스트 11을 구성을 하기도 했다.
펩이 내친 선수들 베스트 XI | |||||||||||
FW 호나우지뉴[21] | FW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 FW 사무엘 에투 | |||||||||
MF 데쿠 | MF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 MF 토니 크로스 | |||||||||
DF 잔루카 잠브로타 | DF 단치[22] | DF 야야 투레 | DF 엠레 찬[23] | ||||||||
GK 조 하트 | |||||||||||
펩이 지도하는 클럽 팬들이 아쉬움을 가지는 점은 바로 젊은 유망주 기용에 인색하다는 점이다. 펩이 감독 커리어를 시작하면서 당시 어린 메시, 부스케츠 등을 세계 최고의 선수로 지도한 것은 유명하지만, 펩의 감독 커리어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결코 유망주 기용에 적극적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젊은 선수를 기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의 기준을 두고 보았을 때 기준에 충족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선수는 그가 다른 방면에서 잠재력을 보여주었다고 하더라도 기용하지 않는다. 반면 자기 기준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판단되는 선수는, 그가 아무리 플레이에 부족함을 나타낸다고 하더라도 기용한다. 그런데 이러한 선수 기용도 일관되지는 않은 것이, 그 젊은 선수를 계속해서 기용하다가도 어느 순간부터는 거의 기용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 그 유먕주를 배려해서 주된 포지션에 기용하기보다는 주전들을 고정하고 남는 자리가 있을 때 그 자리에 출전시키기에, 유망주들이 흔치 않은 기회를 받더라도 최고의 활약을 하기는 어려운 편이다. 바이에른 뮌헨 부임 시기인 15-16 시즌에 제롬 보아텡의 부상으로 센터백 자원이 부족해지자 당시 미드필더 유망주였던 요주아 키미히를 센터백으로 기용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이 때문에 그의 밑에서 주전을 보장받으려면 멀티포지션 소화능력이 특히 요구된다.
특히 펩은 시즌을 언제나 시즌 막바지의 리그 우승경쟁 혹은 챔피언스리그 우승경쟁을 염두에 두고 계획하는 편인데, 시즌 말미에 갈수록 로테이션을 가동하며 반쯤 버리는 경기가 아닌 이상 유망주 기용이 리스크를 키운다고 생각해서 유망주에게 부여되는 출전시간이 줄어든다. 이렇게 유망주 베테랑 가리지 않고 높은 기준을 요구하고 또 변수 차단 목적으로 유망주 기용에 소극적인 펩이 지휘봉을 잡은 팀에서 젊은 선수가 성장하기가 어려운 편이다. 유망주에겐 세계 최고의 감독의 가르침을 받는 것도 좋지만 성장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출전시간을 확보하는 것이기에, 펩 밑에서 기회를 받으려고 기다리다가 기다림에 지쳐 출전시간을 찾아 이적을 도모하는 유망주들이 많이 생기는 편이다.
물론 연차가 쌓이고 스스로도 꽤 철이 든 현재는 이런 독단적인 경향이 예전에 비하면 확연히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유망주를 기용하는 데 있어서는 그리 아량이 넓은 편은 아니다. 펩 밑에서 뛰다가 출전 시간 보장을 위해 타 팀으로 떠난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콜 파머를 들 수 있다. 파머는 본인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이라고는 하지만 일단 맨체스터의 로컬보이이자 성골 유스 출신으로 높은 잠재력을 보여주며 시티 팬들의 기대를 많이 얻었고, 실제로도 간간히 로테이션 자원으로 나와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물론 부상으로 인해 본인이 기회가 있을 때 기회를 잡지 못한 측면도 있지만, 너무 레벨이 높은 맨시티 1군 미드필더진과 유망주 기용에 인색한 펩의 성향 때문에 파머가 로테이션 자원으로도 잘 활용되지 않기 시작하며 출전 시간이 줄었다. 간혹 나오더라도 주 포지션인 라이트윙이나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가 아닌 레프트윙 자리로 뛰어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 것이 어려웠다. 결국 파머는 23-24 시즌 여름 이적시장에 구단에 이적 요청을 하고, 요청이 수용되어 높은 이적료로 첼시 FC로 이적했다.[24] 해당 시즌 첼시의 활약 자체는 좋지 못했지만 파머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출전시간을 확보하며 팀의 핵심 에이스로 자리잡게 된다. 이 때문에 맨체스터 현지 팬덤은 아무리 못해도 로테이션 자원까지는 성장할 로컬 유스를 옆동네에 팔아버린 것에 많은 아쉬움을 표했다.
물론 파머 건에 대해 펩을 변호하자면, 하필 비슷한 포지션에 비슷한 나이대의 필 포든이라는 엄청난 유망주가 존재했다는 점이 있었다. 당시 포든은 유망주 기용을 잘 하지 않는 펩이 굳이 아니었더라도 어떤 감독이던지간에 꼭 써볼 만한 잠재력의 소유자라는 어마어마한 평가를 받았었기에 파머로써는 포든을 밀어낼 도리가 없었던 것이었다. 또한 굳이 포든이 아니더라도 당시 파머의 자리에는 베르나르두 실바, 케빈 더 브라위너 등 02년생 유망주가 밀어내기엔 어려운 월드클래스급 선수들이 있었기에 이건 펩의 문제가 아니라 맨시티 팀 사정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펩 본인은 첼시에서의 파머의 성공을 보고 맨시티 시절 많이 써보지 못한 것에 대해 씁쓸함과 아쉬움을 표하긴 했다.
3.2. 분석
과르디올라는 대인관계가 심히 사무적이고 차가운 사람이며[25] 자신의 전술에 맞지 않는 선수를 냉정히 내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팀이 추구하는 전술과 맞지 않다고 훈련을 게을리하거나 팀 케미스트리에 악영향을 끼치는 선수를 내쫓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평가도 존재한다.일례로 FC 바르셀로나 시절 에이스였던 호나우지뉴는 과르디올라가 부임했을 당시 이미 자기관리 실패로 막장이 되어있었다. 얌전하고 온화한 성격으로 유명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가 인터뷰에서 그가 팀에게 해를 끼칠 정도라고 인터뷰했을 정도. 이에 호나우지뉴 또한 본인이 팀을 위해 나갔으며 과르디올라와의 불화는 없고 오히려 과르디올라가 팀에 남아달라 말했다고 인터뷰했다. 데쿠는 호나우지뉴와 비슷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는데, 과르디올라가 부임하기 직전인 2007년 팀 동료였던 에드미우손이 인터뷰에서 밝히면서 많은 논란을 낳았던 바르셀로나의 검은 양 사건의 중심에 호나우지뉴와 같이 있던 선수가 바로 데쿠다. 결국 과르디올라가 부임한 직후 해이해진 팀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내부 분란의 주동자로 호나우지뉴와 함께 지목되어 방출된 것이다.[26]
야야 투레의 경우 일단 전술과 맞지 않다는 이야기는 오해인데, 투레는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상당히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었고 본인의 부상과 컨디션 저하, 세르히오 부스케츠라는 미드필더의 등장으로 인해 주전에서 밀려서 이적했을 뿐이다.[27] 물론 전술했듯이 불화가 없던 건 아니지만 이는 바르셀로나 시절부터 투레의 에이전트였던 디미트리 셀룩[28]의 언론플레이의 중심이 되어 발생한 일로 알려져 있다. 2014-15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FC 바이에른 뮌헨과 맨체스터 시티 FC가 만났을 때 둘이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나, 투레가 언론플레이에 대해 과르디올라에게 사과하고 2016-17 시즌 중반부터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고 결국 어느 정도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1년 재계약에 성공하는 등 둘의 불화는 잠잠해지는 줄 알았으나, 2017-18 시즌에 투레가 본인의 노쇠화로 인해서 경기를 전혀 뛰지 못하자 다시 불화가 생기고 말았다. 투레는 2018년 6월 맨시티와 계약이 종료되자마자 과르디올라가 인종 차별주의자이며, 본인의 커리어를 망치기 위해 작정했기 때문에 본인이 경기에 뛰지 못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29]
사무엘 에투[30]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경우는 논란이 심한 편이다.[31] 2009-10 시즌 바르셀로나에서의 즐라탄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 전반기[32]와 달리 후반기에 급격히 경기력이 저하되며 들쑥날쑥한 활동량과 골 결정력을 보이며 본인의 커리어에서 역대급 부진을 보였고, 즐라탄 대신 보얀 크르키치가 나왔을 때 바르셀로나의 경기력이 오히려 더 좋아져서 차라리 즐라탄이 빠지는 게 낫다는 평을 언론에서 들었을 정도였다.
이 당시 즐라탄을 중앙에 세우면 20~30골을 넣는 반면, 메시는 50골 이상의 득점과 동시에 측면에 있는 페드로 로드리게스의 득점력까지 살려주는데 팀을 이끄는 감독의 입장에서는 메시를 가운데에 세우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과르디올라 지지층의 중론이다. 반대로 즐라탄 본인 및 즐라탄 지지층의 경우 티키타카를 기반으로 한 과르디올라 특유의 전술과 점점 동떨어지게 된 것을 부진한 플레이의 원인으로 본다.[33] # 온갖 불화설을 남긴 채 AC 밀란으로 이적한 이후 귀신같이 부활한 것이 그 근거. 또한 즐라탄은 밀란, 파리 생제르맹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등 이후 이적한 구단 라커룸에서 썩 좋은 인간 관계를 맺은 편이고, 그 팀들 사이에서도 이적한 과정에서의 애티튜드를 고려해 보면 과르디올라와의 인간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이를 양쪽 모두 해결하지 못해 감정이 쌓인 상태로 결별했다는 것은 사실에 가깝다.[34][35] #
바이에른 시절 마리오 만주키치와의 불화 역시 논란이다. 팬들은 첫 시즌에 과르디올라가 만주키치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양측 윙어를 살리고 만주키치의 머리를 노리는 크로스를 많이 시도하였고 이는 만주키치가 주전으로나 교체로나 나와서 골을 넣어주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고 주장했으나, 해당 시즌인 2013-14 시즌에 과르디올라가 시도한 토마스 뮐러-마리오 괴체 제로톱은 제로톱 그 자체의 경기력만으로는 별 효과를 보지 못했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리그 초반 전술상 잦은 결장으로 밀려졌던 것과 달리 점차 중용받게 되었던 만주키치는 결과적으로 해당 시즌에 분데스리가 득점 2순위 공격수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또한 훈련장에서 일어나는 불화에는 항상 중심에 있었을 정도로 불같은 만주키치의 성격이 과르디올라가 그를 주전에서 제외한 이유라는 의견도 있으나, 이 역시 과르디올라 콘피덴시알의 저자 마르티 페라르나우의 발언을 근거로 할 뿐이며[36] 만주키치가 선수들과 불화를 일으키거나 라커룸에서 문제를 일으킨다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만주키치 팬들 입장에서는 만약 훈련장에서 일어난 불화의 중심에 만주키치가 있었다면 그 옆에는 과르디올라가 있었을 것이라는 반박이 가능한 셈. 다만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영입 작업은 과르디올라 이전에 2012-13 시즌부터 바이에른 보드진에 의해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경우 부상으로 빠진 경기가 너무 많았다. 샤비 알론소가 있는 상황에서 팀에 남기가 애매했을 것이고 과르디올라와의 불화설도 없으며, 오히려 출장을 시킬 수 있을 때는 주전으로 계속 기용했을 정도이다. 실제로 슈바인슈타이거는 맨유 이적 이후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며 레전드 대우는 아쉬움이 남을지언정 적어도 전술적으로는 팀에서 내보내는 것이 옳았음이 입증되기도 했다. 토니 크로스의 경우 과르디올라는 크로스가 남기를 원했지만[37], 크로스와 구단의 사이가 주급 문제와 같은 이유로 악화된 것이며 결국 어쩔 수 없이 크로스를 레알 마드리드 CF로 이적시킨 것이다.
조 하트의 경우는 과르디올라가 부임한 후 하트와의 면담에서 하트가 스위퍼 키퍼로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라는 과르디올라의 권고를 거절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맨시티 보드진이 하트를 좋아하고 존중함에도 불구하고 하트는 본인의 부진과 겹쳐 팀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비슷한 예였던 세르히오 아구에로는 초기에는 인터뷰로 항상 비판받아도 끝없는 노력 끝에 기존과는 정반대의 플레이 스타일에 적응하면서 과르디올라에게도 자신이 지도했던 선수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선수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으며 주전으로 도약했다.[38]
정리하면 과르디올라는 기존의 자원을 대상으로 전술을 짜는 감독이라기보단 주로 자신의 전술에 선수를 맞추는 유형의 감독이며, 이런 특성은 구사하는 전술의 난이도와 함께 실리적인 면에서 지적되기도 하는 부분이다.[39] 물론 자기 전술에 선수를 껴맞추는 것은 어설프게 반대로 하는 것보다 시간은 걸려도 나을 수 있기에[40] 많은 감독이 비슷하게 하므로 무조건 단점이라고만 볼 순 없지만, 과르디올라는 자신의 전술에 맞지 않으면 가차없이 배제하는 지도 방식 때문에 선수와 불화를 겪은 사례가 많아 이게 단점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물론 어떤 방식으로든 과르디올라가 이뤄낸 결과들은 1류 감독으로 평가받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또한 과르디올라의 콘피덴시알이나 다른 선수의 인터뷰를 보아도 선수들과 개인 면담을 하는 데에 꽤나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조 하트의 이적 상황에서도 과르디올라와의 면담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다만 이러한 불화설이 언론에 의해 유독 과르디올라에게 부각되는 것은 실리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과르디올라 특유의 축구 전술이 선수단과의 인간 관계 및 관리 부분에 그대로 적용됨으로서 기존 스쿼드에서 중용받던 명망이 높던 선수들조차 제2 혹은 3옵션으로 쉽게 밀려날 수 있다는 점, 이렇게 기존에 스타성이 있던 선수들이 불만을 표시하기에 언론에 의한 이슈화가 빠르게 진행된다는 점, 그리고 팀과 구단에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선수가 불만을 표시할 경우 굳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거나 개선하는데 노력하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점, 마지막으로 이러한 논란에 대해서조차 별로 해명을 하려 하지 않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라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41] 과르디올라 본인도 자기를 싫어하는 전 지도 선수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면서 그 선수들은 대부분 경기 출전을 자주 하지 못한 선수들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42] 따라서 과르디올라는 자신의 전술에 따라 전략을 세우기 때문에 이 기초 전술이 흔들거리면 본인의 전술의 유연성 능력의 심각한 부족 때문에 팀이 흔들리지만, 전술을 잘 세웠을 시에는 상대팀을 완벽히 이길 수 있는 감독이다.
선수와의 관계에서 권위를 중시하고 냉정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런 측면도 감독 경력이 지속되고 나이가 들면서 점차 유해졌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예전과 같았으면 자신의 기준에 조금이라도 미치지 못한다면 플랜에서 배제하거나 거리낌없이 매각했다면, 최근에는 기준에 미치지 못해도 스쿼드 사정상 기용하는 등 선수 기용과 선수와의 인간관계에서 보다 유연해진 인상을 주고 있다. 이는 특히 부임 기간이 가장 길고 현재진행형인 맨시티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3.2.1.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의 불화
과르디올라의 커리어에서 가장 오래 회자되는 선수와의 불화라면 단연 FC 바르셀로나 시절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의 갈등일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 즐라탄의 자서전 발매와 과르디올라의 커리어가 계속 진행되면서 그들의 일화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이 이루어졌다. 훗날 계속해서 나타나는 여러 불화 당사자들의 증언에서 엿볼 수 있는 본인의 성향과 더불어 당시 프로 감독 1년차에 6관왕을 거두었던 천재적인 전술가의 면모 뒤에 당시만 해도 아직은 직업인으로서 젊은 나이와 감독 2년차인 시절에 다소 미숙했던 대인 대처법을 가졌던 과르디올라와, 당시만 해도 전성기이자 축구 역사상 가장 독특하고 불같은 아웃사이더 중 한 명이며, 흡사 락커와 같은 거친 에고와 집시와 같은 자유분방한 성향을 가진 즐라탄이 만났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서로 상종해선 안 될 캐릭터들간의 만남이었다고 여겨지고 있다. 실제로 그간 과르디올라에게 있어서 여러 불화 당사자들 중 그토록 드라마틱하고 험악한 꼴을 서로 겪은 경우는 즐라탄과의 나날들이 유일했다. 즐라탄은 과르디올라가 보는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발로 차고 성질을 있는 대로 부렸으며, 과르디올라는 본인 나름대로 즐라탄을 갈수록 철저히 무시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생각을 표출하는 방식이 정반대였다는 것이 재밌는 지점이었다.당시만 해도 과르디올라의 문제점은 이미 여러 분석에서도 기정사실화된 표현처럼 '기계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던 사람이었다. 본성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머릿속이 너무나도 축구로 가득 찬 나머지 인간적인 배려가 자리잡을 틈이 없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과르디올라는 천재적인 감각과 축구에 대한 열정, 그리고 지식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정작 필드에서 당신이 원하는 축구를 구현하는 선수들이 '사람'이라는 것을 왜 모르느냐'는 것이 즐라탄의 요지였던 것이다.
과르디올라와 즐라탄의 일화에서 나오듯이, 즐라탄은 자신의 기준에선 최대한 정중하게 "내 피지컬 사이즈도 그렇고 계속 페널티 박스 근처만 앞 뒤로 왔다 갔다 하는 역할은 논리적으로 안 맞으니 역할을 바꿔주는 게 어떠하냐. 난 평생 이런 스타일로 뛰어본 적이 없다. 난 자유롭게 공간이 주어질 때 잘 했던 선수다. 내가 어떻게 뛰던 선수였는지 본 적도 없이 날 영입했나? 이럴 거면 인자기를 영입하지 그랬어?"라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 말에 과르디올라는 "그래? 이상하네. 난 네가 그렇게 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았다. 생각해 볼게"라고 대답했고, 그때 이후로 과르디올라가 즐라탄에게 말도 붙이지 않았다는 것은 유명하다. 즐라탄은 그것을 두고 주제 무리뉴를 들먹이며 "그저 남자답게, 그것에 대한 대답을 해주길 원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43] 허나 생각해 보겠다던 과르디올라는 즐라탄에게 아무런 말이 없었으며, 오히려 '말해 뭐해' 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 부분이 바로 기존의 불화 당사자들이 공통적으로 내뱉는 사안이었다. 그들의 요지는 'yes건 no건 명확하게 날 기용하는 것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밝혀라. 나는 프로니 받아들일 수 있다.' 였던 것이다. 그러나 불화의 당사자들은 과르디올라가 이 부분에서 언제나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다고 밝힌다.
즉 과르디올라는 진심으로 즐라탄이 바르셀로나의 전술적 약점을 커버해 줄 수 있는 인재라고 생각해서 그를 사무엘 에투를 보내면서까지 데려왔던 것이고, 즐라탄이 잘해내는 듯 보였던 것이 그 당시 시즌 전반기까지였다. 바르셀로나에게 필요했던 밀집 수비를 대항할 '건장하고 강한 피지컬', '자신의 전술에서 뛸 높은 수준의 테크닉', '축구 지능과 센스', '좋은 득점력' 등을 갖춘 선수로 즐라탄보다 나은 선수는 없었다. 문제는 이것은 이론적인 이야기일 뿐이었고, 결국 과르디올라의 목적은 애초에 자신들의 요구 조건 체크 리스트에 부합하던 선수가 마침 즐라탄이었기 때문에 데려온 것이지 과르디올라 혹은 바르셀로나 수뇌부들이 즐라탄이라는 선수 자체에 목을 매달 정도로 평상시부터 그를 어떻게든 캄 노우에서 뛰게 만들겠다는 야심으로 그를 데려온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과르디올라와 즐라탄의 온도가 서로 달랐던 것이 원흉이었다.
즐라탄은 정말로 바르셀로나가, 자신이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서 보여주던 환상적인 그 플레이를 원해서 자신을 목매며 기다렸기에 기꺼이 축구 역사에 남을 거액을 써서 자신을 데려온 것이며, 그게 아니라면 논리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박수 받으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자유롭게 펼쳐 보여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또한 즐라탄의 이 태도는 비단 바르셀로나뿐만 아니라 언제 어떤 클럽을 가든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과르디올라가 즐라탄을 처음 대면했을 때 했던 말들, 즉 '여기서 네가 특별한 선수라고 생각하지 마라'라는 뉘앙스의 언질을 주고자 했던 걸 보면 애시당초 처음부터 이 둘은 서로간의 기대점이 명확히 달랐던 것이다. 과르디올라는 그저 즐라탄이라는 선수를 우리 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또 다른 퍼즐이자 부품이라는 기능적인 요소로 인식하고 영입했으며, 실제로 즐라탄이 경기에서 하는 역할도 국지적으로 축소된 그저 부품의 일원이었다.
과르디올라는 '그것에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생각을 가진 지도자였다. 과르디올라 자신이 보기에, 분명히 본인 스스로가 즐라탄을 원해서 영입했고, 그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써먹었을 뿐이며 그저 축구 감독으로 자신의 일을 한 것인데 즐라탄이 그렇게 반항을 하는 걸 보면 '난 축구 감독으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이니 결백함에 여지가 없지만, 그럼에도 저렇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 보면 저 친구랑은 길게 대화해봐야 소용이 없겠군.'이란 스탠스를 취하는 것은 과르디올라 본인의 입장에선 당당하고도 당연한 일이라고 여겨도 이상하지 않다 여겼을 터였다. 문제는 즐라탄 입장에서는 축구를 이해하는 방식이 애초에 과르디올라와 달랐고, 애초에 바르셀로나에 입단했을 때의 온도 역시 너무나 차이가 있었던 것이 원흉이 되었다. 박수받고 환대받고, 자신의 인생에서 늘 그랬듯이 주인공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주인공 대접을 받는 것을 자신의 아이덴티티로 여기던 즐라탄이 바르셀로나에 오니 자신이 기대하고 상상하던 분위기와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 바르셀로나에선 모두가 팀이란 이름 아래의 조연이고 부품이며 그것은 즐라탄 자신도 예외가 아니었고, 특별하고 유일하면서 예외일 수 있는 선수는 즐라탄 본인도 인정하는 리오넬 메시뿐이었다. 따라서 즐라탄의 논조는 '이럴 거면 나를 왜 역사에 남을 이적료를 써 가면서까지 영입했느냐?'라는 것이었다. 즐라탄은 자신도 인정하는 프리마돈나이자 페라리 같은 선수인데 왜 페라리를 평범한 차를 몰듯이 타느냐는 것이었다. 차와 다르게 축구 선수는 사람이지 장기말이 아니며, 아무리 자신이 계약을 한 프로라지만 선수 위에 서는 감독이 여지껏 주인공으로 살아왔던 자신에게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와 취급조차 하지 않는 데에 대해서 인간적인 분노를 느낀 것이었다.[44] 프로 축구 선수 이전에 사람으로서 인간적인 교우를 원했던 자존심 강한 즐라탄이었기에, 게다가 자신의 이적료는 어마어마했기에 자신이 매우 비싼 선수임과 동시에 팀 내에서 실력이 아닌 다른 이유로 제일 천대받고 있다는 혼란스러움에 빠져 과르디올라를 증오했다. 여기까지가 즐라탄 측의 주장. 반면 펩은 즐라탄과의 불화에 대해 일절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결국 이 둘은 서로 축구인이기 이전에 인간성 자체만으로 서로 완전히 상반되는 성격과 사상,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들이었으며, 이 둘의 일화 속에서 이 둘은 각자 자기 자신에게 결백하고 정당했으며 합리적이었다. 동시에 그렇기에 각자가 상대방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해석했으며 동시에 증오했다. 즉 굳이 이 두 사람은 서로가 축구인이 아니었더라도, 다시 말해 언제 어디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만나더라도 똑같은 결말을 거뒀을 확률이 매우 높다. 과르디올라와 즐라탄의 일화는 축구 역사에 있어서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들 중 하나들의 스토리이기에 계속해서 회자될 것이다.
2024년 여름 프리시즌 맨체스터 시티 FC와 AC 밀란의 친선경기 전 과르디올라가 즐라탄에게 다가가 잠시 대화하며 포옹하는 장면을 연출하면서 화제가 되었고, 즐라탄은 이후 이걸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일단 겉으로는 서로 미소를 띄면서 호의적인 듯 보이지만 아무래도, 특히 즐라탄 측에서 상당히 어색해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반응도 많다.
4. 코치 사단
- 수석 코치
- 피트니스 & 테크니컬 코치
- 로렌소 부에나벤투라[49]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2008~ )[50] - 카를레스 플란차르트[51]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2008~ )[52] - 마넬 에스티아르테[53]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2008~ )[54]
5. 라이벌
5.1. vs 주제 무리뉴
[55]
통산 상대 전적은 12승 6무 7패로 펩이 압도하고 있다.
8살 차이의 주제 무리뉴와는 기이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1996년, 무리뉴가 바르셀로나에서 코치 겸 통역사로 일하던 시절 둘은 처음 알게 되었는데, 같은 팀에서 일하는 사이인 그때는 그렇게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다고 한다. 96-97 시즌 바르셀로나가 라리가 빌바오 원정에서 1:2로 패한 이후 경기 내내 계속된 빌바오의 거친 플레이에 흥분해있던 무리뉴가 빌바오 감독 루이스 페르난데스에게 자식 관련 패드립을 해가며 욕설을 했고 분개한 페르난데스가 무리뉴를 잡으러 갔는데, 팀의 주장인 펩이 막아서서 무리뉴 대신 싸워줄 정도로 돈독했던 사이였다.[56]
세월이 흘러 2008년, 프랑크 레이카르트가 경질되자 첼시 감독에서 경질된 이후 휴식 중이던 무리뉴는 바르셀로나의 감독직을 지원하게 된다. 여기서 무리뉴는 바르셀로나 임원진들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램파드, 마이콘 등을 영입하는 리빌딩 플랜과 과르디올라를 수석코치로 두면서 스쿼드, 스텝진을 두텁게 하겠다고 했는데 당시 바르셀로나 이사진도 무리뉴의 의견을 제법 타당하다 여겼으나, 무리뉴의 언론을 대하는 방식과 선수단 전체 운영의 전권을 달라는 요구에 난처함을 표하고 결국 무리뉴를 감독 후보에서 제외시키며 바르셀로나 B팀을 성공적으로 이끌던 펩 과르디올라를 선임하게 된다. 물론 결과적으로 보면 바르셀로나에겐 신의 한수였지만, 결국 선택받지 못한 (당시만 해도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던) 무리뉴는 이때부터 펩에게 감정이 쌓인 것으로 보인다.
2010년 둘의 악연이 시작되는데, 무리뉴는 인테르 감독직으로 재직하면서 조별예선 이후 4강에서 다시 만나 치열한 우주방어의 끝을 선보이며 바르셀로나를 꺾고 끝내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룬다. 이때 4강 2차전에서 티아고 모타가 거친 파울로 퇴장당하자 분위기가 바르사 쪽으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무리뉴가 경기 중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교체 준비하던 펩에게 다가가 "이봐, 아직 경기는 안 끝났다고?"라고 귓속말로 얘기한 것이 논란이 되기도 했으며, 경기 종료 후 캄프 누 그라운드에서 세레머니를 하던 무리뉴를 바르셀로나 골키퍼인 발데스가 억지로 잡아끄는 등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 여러 논란이 일었다.
이후, 무리뉴가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취직하면서 역시나 바르셀로나와 과르디올라를 향한 특유의 언플을 시전하고[57] 둘의 사이는 급격하게 틀어지고 말았다.[58] 오죽했으면 신사적인 인터뷰 자세를 보여왔던 과르디올라가 무리뉴의 졸렬한 언론 플레이에 빡쳐서 당시 인터뷰 도중 욕지거리를 했을 정도였다.[59][60][61]
펩이 기자회견에서 인터뷰할 때는 정확한 사실만을 전하고 그다지 립서비스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62] 스페인 언론들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듯하다. 너무 냉소적이고 침착하게 말하니까. 하지만 2011/12 시즌 챔스 8강 후 자서전에서 과르디올라를 잘근잘근 씹었던 즐라탄이 무리뉴가 했던 말을 언급하며 판정에 불만을 제기하자 드디어 빡쳤는지 이런 인터뷰를 했다.
펩 曰 즐라탄이 투덜거린거? 나는 그의 경기력에 대해선 얘기할 것이 없다. 그건 그의 감독의 몫이니까. 허나 2010년에 인테르를 상대할때의 그의 형편없는 경기력에 대해선 말할 수 있겠다.
그동안 무리뉴와 라이벌리를 형성해오며 줄곧 신사적인 모습을 보여왔지만 11/12 시즌 들어서는 여러 차례 심판 판정이나 무리뉴나 레알에 대해 비꼬는 어조의 인터뷰를 많이 보여주어 팬들을 놀라게 했다. 감독 등 축구계에서 경쟁하는 사람들은 본질적으로는 서로 비슷한 존재들이라고 인터뷰한 무리뉴에게 대고 "당신이랑 내가 비슷하면 내가 인생을 잘못 산 거야"라고 쏘아붙이기도 했고 무리뉴가 우승이 확정되기 직전 인터뷰에서 과르디올라의 사임 결정에 그가 스스로 만족하기를 바란다며 나름 예의를 지킨 인사를 했는데도 "레알의 우승을 축하한다. 우리(바르셀로나)의 침묵으로 가려진 많은 것들로[63] 뒷받침된 승리지만."라고 하며 냉소적으로 받아쳤다. 무리뉴는 평소 라이벌인 바르셀로나와 자신을 잘근잘근 씹어왔으니 서로 감정이 좋을리가 없었고 사실상 졸렬한 뒤끝 인터뷰와 음모론 드립은 그동안 무리뉴가 바르셀로나의 승리시 자주 시전하는 스킬이었으므로 이 건수 역시 무리뉴와 원투펀치 주고 받았다고 보는 게 맞다. 물론 무리뉴의 저 인사만큼은 바르셀로나를 떠나는 과르디올라에게 감독 대 감독으로서 동업자에 대한 격려가 담긴 것이라고 보는 게 맞고. 피치 밖의 신사로도 불렸던 과르디올라가 무리뉴의 도발에 넘어가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시즌에 서로 비난을 주고 받는 수준으로 전락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허나 위에서 알다시피 사실 이 둘은 매우 사이가 좋았던 적도 있었다. 펩이 선수로 뛰고 무리뉴가 바르셀로나 코치를 하던 시절의 모습이다.
이후에도 이때까지만 해도 사이가 좋았다. 시기를 봐선 2010년 UEFA 코치 컨퍼런스 때로 추정된다.
펩이 바르사에서 보낸 마지막 시즌의 엘 클라시코. 경기 전 악수는 나누었지만 둘의 표정으로 봐선 사이가 확실히 안 좋아졌다.
이후 무리뉴와의 앙숙관계는 계속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한 언론에 따르면, 2014년 유럽 빅클럽 감독 모임에서 펩은 무리뉴에게 "무리뉴는 우아한 축구보다 결과에 집착하는 축구를 좋아한다"라고 비판하였고 무리뉴는 이에 "펩이 대머리가 된거는 축구를 즐기지 않아서 그렇다."라고 펩의 신체적 약점을 들어 비꼬았다고 보도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64][65][66]
그리고 16-17 시즌, 펩은 맨시티의 감독으로, 무리뉴는 맨유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이들은 EPL 안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첫 맞대결이 이루어진 올드 트래포드 원정에서 시종일관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이며 펩의 맨시티가 2:1로 승리.
다만 많은 사람들과의 예상과는 다르게 16-17 시즌 들어서는 서로간의 관계가 어느정도 누그러진 모습을 보였다. 과르디올라가 무리뉴에 관해 인터뷰를 할 때도 도발성 멘트를 사용하지 않고 그를 존경하고 존중한다는 말을 자주 했으며 실제로 맨더비에서 만났을 때도 이전처럼 눈도 안마주치고 억지악수를 할 때와 달리 나름 포옹도 하고 눈을 마주치면서 얘기하는 모습을 보이자 사람들은 2016-17 시즌 초 프리미어 리그 감독들이 만나는 자리가 있었을 때 어느 정도의 화해가 있었지 않았을까하고 추측중. 그 이후로도 두 감독은 16-17 시즌 내내 서로를 언급하는데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17-18 시즌 초중반 맨시티와 맨유가 우승경쟁을 하게 되자 무리뉴의 도발은 다시 시작되었다. 무리뉴는 맨더비를 앞두고 펩 과르디올라가 정치색에도 불구하고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이 특혜라 주장했다.[67] 또한 같은 기자회견에서 (맨체스터 더비 전 공식 기자회견) 펩의 팀이 다이빙을 많이 하고 테크니컬 파울을 많이 저지른다고 맹비난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펩은 다시 초기 바르셀로나 시절의 모습처럼 이에 대해 대꾸하지 않고 차분하게 넘어갔다. 예전 라리가 시절에 비하면 갈등의 정도가 매우 약해진 것은 분명하다. 두 감독 분명히 서로에 대한 직접적인 맹비난은 자제하는 모습을 18-19 시즌 들어와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8년 12월 18일 무리뉴가 경질된 이후 과르디올라는 카라바오컵 8강 경기 이후 인터뷰에서 자기는 그의 편이고 감독들은 외롭다며 그는 최고의 감독이며 곧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2019년 5월 7일 해설자로 나선 무리뉴는 펩을 '단순히 현 시점 최고의 감독이 아니라 역대 최고의 감독 중 하나' 라며 극찬했다.[68]
이후 2019년 11월, 무리뉴가 토트넘 홋스퍼 감독으로 부임함에 따라 다시금 PL에서의 맞대결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무리뉴의 토트넘 부임 이후 첫 맞대결에서는 일카이 귄도안이 거하게 삽질, 올렉산드르 진첸코의 퇴장 등으로 팀이 자멸하며 패배.
2020-21 시즌 토트넘 전에서 다시 한 번 무리뉴의 토트넘에게 2:0으로 패해 리그 순위가 11위로 추락하였다. 이후 맨시티가 리그 1위를 달리던 중 토트넘을 만나 3:0으로 격파하였다.
2021년 현재는 무리뉴가 감독이 실형을 선고받아 부재한 팀에게 충격패를 당하고 리그에서도 6-7위권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둘의 라이벌리 최종 승자는 펩이 되었다. 무리뉴가 시대에 완벽히 뒤쳐지면서 자연스레 승자가 되었다.
사족으로 무리뉴와는 패션 대결(?)도 했는데, 수트 잘 입기로 유명한[69] 두 감독의 스타일을[70] 남성 패션지 GQ에서 다루기도 했다. 두 감독의 패션 스타일은 클래식 vs 모던으로 분류할 수 있다.[71] 무리뉴는 주로 무채색의 포멀한 스타일의 수트에 컬러타이, 혹은 노타이로 포인트를 준다. 그리고 겨울에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는 아르마니 회색 오버코트에 머플러를 코디한 모습은 중년 남성 패션의 교본과도 같다. 펩은 보다 활동적이고 모던한 스타일을 중시한다. 타이트한 핏의 수트를 즐겨 입고 언제나 셔츠에 다양한 색상의 풀오버를 매칭시켜 포인트를 준다. 때로는 자켓 없이 셔츠 소매를 롤업하기도 하고, 슬랙스나 슬림핏 데님을 입어 캐주얼한 느낌을 살리는 편이다. 펩의 스타일은 보다 캐주얼하고 모던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남성에게 좋은 예시이다.
5.2. vs 위르겐 클롭
자세한 내용은 펩 과르디올라 vs 위르겐 클롭 문서 참고하십시오.
펩 vs 무리뉴 떡밥이 2010년대 초중반 이후 무리뉴의 급격한 하락세로 시들해지면서, 2010년대 중후반부턴 펩 vs 클롭으로 옮겨갔다. 장지현 해설위원의 경우 2023년 6월 2일 이스타 영상에서 무리뉴식 전술 주기화 이론, 수비축구는 시대의 흐름에 뒤쳐지게 되어 펩과 동등한 승률로 싸우긴 어렵다고 본 반면, 클롭의 게겐 프레싱은 선수들의 노쇠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서로 전성기 시절에 붙을 시 그래도 전술적으로 제대로 된 한판 승부를 할 수 있다고 본다며 무리뉴보다 클롭을 더 펩의 라이벌로 고평가했다.
5.3. vs 토마스 투헬
두 감독의 첫 만남은 2013-14 시즌이였다. 그 때는 펩이 바이에른 뮌헨, 투헬은 마인츠 감독을 하던 시기라 전력차가 너무나도 컸다. 하지만 투헬이 2015-16 시즌 도르트문트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조금은 전력차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분데스리가 기록으로는 투헬은 펩 상대로 1승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2020-21 시즌 투헬이 첼시에 중도 부임하면서 리그, FA컵 4강, 챔피언스리그 결승, 3번의 맞대결에서 전부 승리하였고, 특히 쿼드러플을 노리던 펩의 맨시티에게 중요한 길목마다 패배를 안겨주면서 두 감독의 라이벌리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2021-22 시즌 초반 무패를 달리며 좋은 시작을 보여주던 투헬의 첼시에게 6R 완벽한 경기력으로 패배를 안겨주었다. 두번째 리그 맞대결에서는 어수선한 분위기의 첼시를 이기며 직전 시즌 3연패를 리그 더블로 약하게나마 복수한다.
2022-23 시즌에는 투헬이 시즌 초반 첼시에서 경질되며 두 감독의 맞대결을 보기 힘들어졌으나 챔스 8강 추첨으로 대진이 성사된 바이에른 뮌헨에 투헬이 중도로 부임하면서 다시금 두 감독의 지략 대결이 예고되었으나 두 팀의 맞대결에서 시티가 완승을 거두면서 펩의 승리로 끝이났다.
둘은 서로 사적으로 자주 전술에 대해 논의를 가지면서 같이 식사를 할 때도 전술 토론을 한다. 이렇듯 둘의 라이벌리는 건전한 라이벌의 관계로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6. 영향력
펩 과르디올라는 2010년대 이후 축구 전술계에 있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보니, 과르디올라가 추구하는 축구를 다른 많은 감독들도 벤치마킹하여 이제는 웬만한 팀들도 과르디올라의 후방 빌드업, 포지션 플레이를 모방하고 있다. 특히 프리미어 리그에서 2010년대 중후반~2020년대 초중반 수년 간 라이벌로 평가받던 위르겐 클롭 감독과 경쟁을 한 기간 프리미어 리그는 축구 전술적으로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웬만한 중하위권 팀들도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과르디올라와 클롭의 전술을 벤치마킹하며 타이트한 전방 압박전술과 빌드업 플레이를 기본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 과거 킥 앤 러시라는 말로 대변되는, 다이렉트하고 단순한 전술만 고수한다고 일각에서 조롱을 받기도 했던 EPL에서 최신 축구가 실시간으로 개발되는 모습에 일각에선 격세지감이라는 평도 나올 정도이다.과르디올라의 감독 경력이 길어지면서, 과르디올라 밑에서 선수로 뛰거나 코치로 일했던 인물들이 다른 클럽에서 감독직을 맡아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2020년대 들어선 과장 좀 보태 과르디올라와 함께 일했다는 경력 자체가 감독 능력에 대한 일종의 보증 역할을 하는 감도 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미켈 아르테타로, 현역 은퇴 후 과르디올라 사단에 합류해 코치로 경험을 쌓은 뒤 친정인 아스날 FC에 감독으로 부임해 벵거 이후 암흑기에 있던 아스날을 뼈를 깎는 리빌딩을 거쳐 되살려내며 맨시티와 과르디올라에겐 호랑이 새끼를 키운 셈이 되긴 했지만 2022년부턴 리그 우승 경쟁을 할 수 있는 팀으로 성장시켰다.[72] 아울러 맨시티 유스팀 감독으로 일하던 엔초 마레스카는 파르마 칼초 1913에서 한 차례 감독으로 실패를 겪었지만, 그 직후 1군 코치로 맨시티에 복귀해 한 시즌을 펩과 함께 한 뒤 22-23 시즌 챔피언십으로 강등당한 레스터 시티 FC에 부임해 곧바로 우승을 거머쥐고 1시즌만에 프리미어리그로 승격시켰다. 이후 첼시 FC의 스카우트를 받아 2024-25시즌부터 지휘봉을 잡으며 무너진 첼시를 재건하는 중책도 맡게 됐다.
과르디올라가 직접 지도해 본 선수들 역시 감독으로 인상적인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펩이 바이에른 시절 영입한 샤비 알론소는 바이어 04 레버쿠젠의 감독으로 부임해 전술적으로 뛰어난 모습을 보이며 23-24시즌 구단 역사상 첫 1부리그 우승이자 분데스리가 최초의 무패 우승이라는 대업을 달성했다.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함께 한 사비 에르난데스 역시 감독으로 카타르 리그에서 활약하다 바르사에 돌아와 2022-23시즌 리그 우승이라는 성과를 만들어냈다.[73] 맨시티에서 과르디올라와 3시즌을 함께 한 뱅상 콤파니는 친정팀 안데를레흐트에서 지도력을 입증한 뒤 2022-23 시즌 챔피언십으로 강등당한 번리 FC에 부임했고, 점유율 축구를 기반으로 한 공격적인 전술을 이식하며 롱볼로 유명했던 팀 컬러를 완전히 뒤바꾸고 챔피언십 역사상 최다 승점으로 1시즌만에 팀을 PL로 승격시켰다. 비록 선수단의 수준 차이 때문인지 PL에서는 한 시즌 만에 다시 강등의 아픔을 겪었지만[74] 콤파니의 전술 자체는 고평가되어 2024-25 시즌 FC 바이에른 뮌헨에 부임할 수 있었다.[75]##
이 밖에도 과르디올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공개적으로 표명한 로베르토 데 제르비, 아르네 슬롯은 전술가로서 명성을 쌓아가고 있고, 엔지 포스테코글루 감독 역시 점유율 축구를 구현하여 과르디올라 영향을 받았다는 평을 받았고, 실제 토트넘 부임 이후 과르디올라 전술을 많이 참고했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76]
7. 총평
21세기를 대표하는 축구 감독이자, 축구 전술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전술가 중 한명으로 꼽히고 있다. 현대 축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큰 무리가 없는 후방 빌드업은 펩의 등장 이후로 중요성이 더욱 대두되었으며[77] 하프 스페이스 지역을 타격하는 메짤라와 풀백을 중앙에 포진시켜 중원 싸움에 도움을 주는 인버티드 윙백[78], 빌드업에 관여하는 스위퍼 키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이러한 2010년대 이후 등장한 전술들 대부분은 그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고 있다.펩이 감독으로 데뷔했을 무렵만 해도 그의 전술은 티키타카라고 많이 불리웠으나, 정작 본인은 자신의 전술이 오해될 수 있다고 좋아하지 않는 단어였고 그래서인지 요즘엔 포지션 플레이, 포지셔널 축구라는 용어가 더 많이 회자된다. 또 요한 크루이프 감독 밑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보니 펩의 전술은 크루이프즘 즉 넓게 보면 리누스 미헬스 전 감독의 토탈 풋볼이 기초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토탈 풋볼의 장점은 살리되 밸런스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게 포지션 플레이다. 그리고 농구의 아이솔레이션도 자신의 경기에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보면 다른 스포츠의 전술도 축구에 많이 접목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그조차 전술적 비판을 받을 때가 종종 있는데, 가장 큰 문제로 꼽혔던 것은 이른바 명장병이었다. 본인의 전술적 능력 혹은 상대방의 능력을 과신하다 보니 이에 대한 여러 자체 시뮬레이션을 돌리다가 일명 명장병이라고 불리는 이해하기 힘든 전술들을 꺼내들 때가 있는데, 문제는 이게 중요한 경기에서 유독 돋보인다는 것. 대표적으로 20-21시즌 첼시와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귄도안을 홀딩 미드필더로 사용한 귄도안 원볼란테 전술을 꼽을 수가 있다. 이때 맨시티는 한수 아래로 평가받던 첼시에 패했는데, 덕분에 팬들조차 펩에게 그냥 원래 하던거 했으면 챔스 우승컵 들어올렸을텐데..라며 한탄했다. 다만 펩도 이때 뭔가를 좀 깨달았는지 이 시즌 이후부턴 명장병 기질을 줄였고 결국 맨시티에서 감독 커리어 두 번째 트레블을 차지하는 데 성공하고야 만다.
다만 주로 우승권 빅클럽들만 지휘해서 성적을 냈다 보니 일명 선수빨 감독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 말은 반대로 말하면, 그런 빅클럽들에게만 오퍼를 받고 지휘를 하는 펩 과르디올라의 능력을 입증하는 말이기도 하다. 감독 데뷔 첫 해에 6관왕을 이루는 괴물같은 성과를 내고, 이후에도 계속 성과를 내고 있는 감독이 중하위권 팀을 맡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펩의 안티들은 하위권 팀을 맡아 증명해야 한다고 말하고 팬들조차 펩이 중하위권팀 맡으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제법 있지만, 현실적으론 펩의 커리어가 추락하기 전엔 오퍼가 오고갈 일도 없고 금액 감당도 안될 것이기에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한편으론, 바르셀로나에서 2차례의 챔스 우승을 거머쥔 이후 한동안 다른 구단에선 챔스 우승을 못했다고 공격을 당하기도 했으나, 그 와중에도 펩을 향한 각 구단의 신뢰는 굳건해 한번도 경질당한 적이 없었고[79], 22-23 시즌에는 맨시티의 마지막 퍼즐이던 스트라이커 조각까지 맞춰지면서 기어코 챔스 우승을 달성했다. 심지어 해당 시즌 트레블까지 달성해 유럽 축구 역사상 최초로 두 번의 트레블을 달성한 감독이 되었다.
한편, 펩은 단순히 전술 패러다임을 확립한 것을 넘어서서, 이를 장기간 유지하면서 여전히 트렌드를 선도하는 지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해당 기간 동안 이러한 패러다임을 위협하는 여러 대안적인 접근법들이 있었지만[80], 펩은 여전히 유럽 최정상권의 리그에서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으며, 이는 그가 단순히 자신의 사고에 갇혀 흐름에 뒤처지지 않고 유연하게 변화하고 적응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우승 경력으로 보았을 때 장기적인 리그 운영 및 팀 관리, 동기 부여 등 전술 이외의 부분에서도 당연하겠지만 현재 가장 훌륭한 감독 중 하나이다. 실제로 펩이 맨시티에 부임한 2016년 이후 8시즌 동안 맨시티는 무려 6번의 프리미어리그 트로피를 수집했다. EPL 역사상 최초의 4연속 우승은 덤.
이렇듯 현대 축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뛰어난 전술적 역량과 꾸준한 트로피 수집으로 인해 펩은 언론이나 평론가들이 현역 감독들 중 최고의 명장을 꼽을 때 가장 먼저 꼽히고 있다. 전직까지 포함한 역대 감독들 모두와 놓고 비교해봐도 평론계에선 펩을 20세기부터 활약한 거장들인 리누스 미헬스, 알렉스 퍼거슨, 아리고 사키, 요한 크루이프, 엘레니오 에레라와 나란히 놓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들 중에서도 리누스 미헬스나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과 GOAT 논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미헬스는 활동 시기가 많이 차이가 나는 인물이라 비교가 어렵기도 하고 결국 펩의 계보로 이어지기 때문인지, 미헬스보다는 감독 말년에 신인 감독 시절의 펩과 실제 맞대결한 적도 있는 퍼거슨과 비교하는 경우가 더 많은 편이다. 주로 비교하는 내용을 보면 퍼거슨 우위론은 트로피가 더 많다, 언더독 팀을 이끌어서 좋은 성적을 낸 경험이 있다[81], 보스형 감독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여러차례 리빌딩을 성공시켰다[82] 등이 제시되고, 펩 우위론은 퍼거슨과 달리[83] 펩의 포지션 플레이는 축구 전술사에 한 획을 그었다, 트로피도 커리어 쌓는 속도 보면 현역인 펩이 넘어설 확률이 높다, 여러 리그를 돌아다니며 2회 트레블을 이룬 전무후무한 감독이다, 챔스 결승에서 퍼거슨과 2번이나 맞대결해서 낙승했다[84] 등이 제시된다.[85] 2024년 펩 본인은 립서비스인지 진심인지 퍼거슨이 최고라고 추켜세웠다.# 물론 둘 다 역대급 명장이고 둘이 감독하던 시대도 다르기 때문에, 서로 비교질하며 싸우기보단 둘 다 리스펙하며 서로의 장점, 전술과 매니지먼트 등을 배우면 될 일이긴 하다.
[1] 포지션 플레이의 관점에서 보자면 메디오 센뜨로 공간에 있던 선수가 리베로 공간으로 움직인 것이다.[2] 과르디올라는 다른 스포츠(특히 농구)를 보면서 전술적인 아이디어를 얻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농구 경기를 보면서 오버로드 아이솔레이션을 접하고 이를 다른 선수들을 경기장의 한쪽 측면에 밀집시킨 뒤 다른 기술적으로 뛰어난 윙어를 반대쪽으로 넓게 포진시키는 방식으로 축구 전술에 접목시켰다. 이 오버로드 투 아이솔레이션을 즐겨 사용하는 다른 감독으로는 마우리시오 포체티노가 있다.[3] 하지만 이런 상황이 나오지 않는다면 과르디올라의 팀은 절대 무리한 패스를 시도하지 않는다. 모험을 하지 않고 확실하게 선수 발로 이어지는 패스를 계속하다가 틈이 나오는 순간 공간으로 패스를 넣어주고 이게 실패하면 다시 공을 뺏은 뒤 공을 다시 돌리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과르디올라의 팀이 점유율을 극도로 높게 가져가는 이유다. 당하는 입장을 이해하려면 피파 같은 축구 게임에서 이기고 있는 상대팀이 시간 끌기를 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편하다. 다만 이걸 상대 진영에서 하는 게 차이.[4] 물론 과르디올라가 바르셀로나 감독이던 시절에는 아우베스를 올려서 만든 비대칭 백3 라인을 형성하기도 했다. 이는 맨시티에서도 마찬가지로 스리백의 스토퍼로도 뛸 수 있는 워커가 오른쪽 스토퍼 자리로 들어와서 스리백을 형성하고 왼쪽 풀백은 중앙으로 들어가서 수미와 투볼란치를 형성하는 것이 맨시티의 후방 빌드업의 기본 형태가 되었다. 그리고 가끔씩 상대의 전방압박이 너무 거셀 경우에는 키퍼인 에데르송을 올려서 4백을 형성하는 기행까지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는 에데르송이 풀백 출신이라 웬만한 필드 플레이어 급으로 공을 잘 다룬다는 점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5] 사실 드디어라고 하긴 좀 뭐하고, 바이에른 뮌헨시절에는 롱패스나 크로스를 굉장히 즐겨 사용했다. 그 당시 코망이나 코스타, 그리고 로베리 듀오같은 파괴력이 강력한 윙어들과 환상적인 빌드업과 롱패스를 갖췄던 미드필드의 슈바인슈타이거, 티아고, 알론소는 물론이고 수비진의 보아텡, 람, 알라바, 베나티아와 하비, 조슈아 키미히, 노이어같은 선수들이 존재했고, 레반도프스키와 뮐러라는 공간을 찾는 능력이 좋고 헤더가 정확한 선수들이 다수 존재했기에 점유율을 포기하진 않았지만 그당시 리그 내에서도 가장 많은 롱패스를 뿌리곤 하는 팀이었다. 대표적으로 15-16시즌 유벤투스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홈에서 합계스코어 4:2로 밀리는 상황에서 펩조차도 유벤투스의 수비를 일반적으로는 뚫어내기 힘들다 판단해 레비와 뮐러의 제공권과 헤더를 믿고 측면 공략을 계속해서 시도했는데, 그 전술은 맞아들어가서 코스타의 크로스에 이은 레비의 추격골, 코망의 크로스에 이은 뮐러의 동점골로 연장전까지 이어가 결국 4:2로 경기를 끝내버린 바가 있다.[6] 하지만 이렇게 수비 훈련을 많이 하는 것 치고는 상대의 찬스메이킹을 저지하는 면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과르디올라의 팀들은 실점이 적기는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과르디올라가 기회가 나오지 않는 한 짧고 안전한 패스로 높은 점유율을 확보하기 때문에 상대 팀들이 찬스를 만들 기회가 적은 것이지 상대를 저지하는 게 뛰어난 것이 아니다. 즉 상대에게 공을 못 만지게 함으로써 상대의 공격을 미연에 방지할 뿐이지 상대가 지체없이 뒷공간을 노리고 들어오거나 아예 점유 자체를 방해당하면서 상대에게 공격 찬스가 자주 돌아오면 저항을 못하고 대량 실점을 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클롭의 팀을 상대할 때에는 이 현상이 자주 보인다.[7] 물론 20% 밖에 차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공격 훈련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과르디올라의 공인 저서에서 나온 바에 의하면 과르디올라의 공격 훈련은 공격지역 피치를 골문을 바라보는 기준으로 세로로 오등분해서 이뤄진다고 한다. 이때 과르디올라는 선수들의 동선을 한 명 한 명 1m 간격으로 조정하고, 이 오등분한 선을 타고 역습, 지공 그리고 크로스 패턴 플레이를 행하는데 왼쪽부터 1번 선이라고 했을 때 윙백, 윙, 공미, 스트라이커, 윙, 윙백이 단 한 순간에도 같은 공간에 있으면 안 되고 계속해서 크로스로 교차하면서 달려야 하고 상대 골문 10m, 20m, 30m 지점에서 각자 달리는 동선이 모두 달라야 한다. 이걸 취재하면서 저자는 미친 사람이나 생각할 법한 훈련이라고 표현했다.[8] 주앙 칸셀루가 3선 미드필더 자리에서 빌드업을 보호한다. 이전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내려오는 3백보다는 레프트백으로 출전하는 칸셀루가 미드필더 자리로 라이트백으로 출전하는 워커가 3백의 스토퍼로 이동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는 수비시 4-4-2 대형을 사용하기 위함이기도 한데 수비형 미드필더를 3선에 고정시켜두고 워커도 풀백의 위치에 보다 가깝게 위치시켜서 수비 전환 시의 동선 길이를 줄여서 빠르게 수비 대형을 갖출 수 있게 한 것이다. 기존의 라볼피아나는 수미가 센터백 라인까지 내려가고 풀백들이 3선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4-4-2로 전환시 수미가 센터백 라인에서 중미 라인까지 빠르게 올라가야 했기에 동선 낭비가 심했다.[9] 2010년대 초부터 축구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감독을 꼽으라면 과르디올라가 선정되는 것에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없다. 2010년대 이후부터 모든 팀의 전술이 기초가 되는 수비진에서부터의 짧은 패스를 통한 빌드업, 포지셔닝 플레이, 강력한 전방 압박을 통한 볼 탈취 후 빠른 역습 등의 세부 전술들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게 펩의 바르셀로나였고 이후 등장한 모든 전술들은 이 세부 전술들을 탑재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10] 그뿐만 아니라 기존 스쿼드에 더해 과르디올라가 원하는 선수를 쉽게 데려올 수 있는 막강한 재력이나 명성도 동시에 갖춘 팀들이기도 하다.[11] 참고로 하인케스는 2연속 챔스 결승 진출이었다. 그런데 과르디올라의 바이에른은 하인케스 때와는 달리 챔스 결승에 가본 적이 없다. 즉 과르디올라는 기존의 챔스 2연속 결승 진출 스쿼드로 4강 진출에만 그친 것이다.[12] 물론 과르디올라는 공격 훈련을 할 때 각각의 선수들이 겹치지 않도록 세밀한 동선을 일일이 지정해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즉 정해진 수많은 패턴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며, 그중 가장 효율적인 패턴을 빨리 깨닫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지능이 선수에게 필요하다.[13] 소위 말하는 '명장병', '오버띵킹'[14] 다만 22-23 챔스 결승 때도 큰 틀은 그대로였으나 세부적인 빌드업 전술은 바뀌었다. 이 때문에 인테르를 상대로 다소 고전하긴 했어도 치명적인 패착으로 돌아오진 않았고, 어찌됐건 이겼기에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15]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이를 두고 바르셀로나는 학교라고 깠다.[16] 이 쪽은 오해로, 아무리 과르디올라가 팀 성골이었어도 이제 막 감독 경력을 시작하는 초짜였기 때문에 구단 측의 반대를 무시하고 팀의 간판 에이스를 쫒아낼 수 있는 입지가 아니다. 실제로 과르디올라도 해당 선수들을 염두에 두고 시즌을 계획했으나 구단 측에서 검은 양 사건 때문에 어차피 메시에게 악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내보낼 생각이었으며 호나우지뉴는 직접 이적을 요청했다.[17] 이 트레이드는 인테르에게만 좋은 일이 되었는데 에투는 전반기에 욕을 들어먹었지만 후반기에 부활하며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고 인테르의 트레블에 기여해 2개의 클럽에서 2연속 트레블이라는 축구계의 유일한 기록을 남겼다.[18] 크로스는 궁극적으로는 팀 보드진과의 마찰 때문에 이적한 것지만,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펩이 티아고 알칸타라, 마리오 괴체 등의 선수들을 팀 내부적인 주급 체계를 허물면서까지 높은 주급을 주고 무리하게 영입하였으나, 토니 크로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주급을 지급하기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19] 후술되었듯이 이는 아구에로 본인이 과르디올라의 스타일에 맞추어 진화하면서 불화는 해결되었다.[20] 다만 20년대로 들어오면서 최대의 타이틀 경쟁자가 된 리버풀도 동일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20-21시즌에 들어오면서 판데이크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이 되어버린 뒤 리버풀은 28라운드 시점에서 36실점을 하면서 8위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이는 센터백 줄초상이 문제긴 하지만 판데이크 1명이 있고 없고에 따라 리버풀의 수비가 휘청거린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21] 호나우지뉴의 경우는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부분이 호나우지뉴를 내친 것은 메시의 성장에 미칠 악영향을 염려한 바르셀로나 구단 측이지, 과르디올라가 아니었다. 실제로 펩은 호나우지뉴가 2008-09 시즌에 남기를 원했지만 호나우지뉴 본인이 자신의 태만함으로 인해 펩이 구단 측과 불화가 생길 것을 염려하여 이적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에 펩은 아쉬워하며 호나우지뉴의 AC 밀란 이적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이후로 펩의 바르셀로나는 역대 최강의 퍼포먼스를 보이며 전성기를 열었고, 호나우지뉴도 밀란에서 나름의 갱생을 거쳐 어느 정도 부활에 성공했으니 윈윈인 샘이지만, 정확하고 창의적인 패스와 동료간 연계플레이에 능한 호나우지뉴가 바르사에 남아 티키타카식 축구를 이식받아 드림팀 3기의 일원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다.[22] 이쪽은 12-13 시즌 트레블 달성 이후로 폼이 떨어져서 이적하게 된 측면도 있다. 83년생으로서 수비진 세대교체를 꾀하여야 하였던 필요성도 있었다.[23] 엠레 찬은 지금이야 잘하지만 바이에른 시절에는 갓 유스에서 올라온 선수에 가까웠으며, 그 때문에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고 다른 팀으로 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24] 펩은 당시 임대를 요청한 파머에게 남을 것이냐, 그냥 떠날 것이냐고 했다고 하는데, 당시 파머는 출전 시간 보장을 요구하며 떠나기를 택했다고 한다.[25] 다만 그래서인지 오히려 막장식 개인적 불화나 다툼은 덜 드러나는 편이다. 퍼거슨이나 무리뉴처럼 다혈질이거나 자기 선수를 향한 막말도 거침없이 하는 몇몇 감독들과 달리 기본적으로 젠틀한 모습을 유지하는 편이다.[26] 다만 만약 데쿠가 계속 팀에 남아있었다면 기강 및 분위기는 더욱 험악하게 바뀌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을 것이다.[27] 당시 투레는 과르디올라 체제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과르디올라 체제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는 하프백으로 불리는 후방에서 팀의 빌드업을 시작하고 후방에 머물며 센터백 사이로 들어가서 3백을 형성하기도 하는 수비적인 역할이다. 그런데 투레는 바르셀로나 시절 보여준 모습을 보면 알겠지만 이런 역할로 출전하고는 공을 몰고 치달을 하며 상대의 페널티 박스까지 가서 골을 넣는, 대단하지만 과르디올라의 전술에는 맞지 않는 플레이를 자주 보여줬다. 그렇다고 이 공격적인 재능을 살려 중앙 미드필더로 뛰게 하자니 경쟁 상대는 전성기 시절의 사비 에르난데스와 이니에스타였다. 거기다가 사비는 사실상 팀의 템포를 혼자서 쥐락펴락하는 조율자다 보니 경쟁할 수도 없고 공격적인 메짤라 역할을 맡아야 하는데, 아무리 투레가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어도 상대는 역대급이라 논하는 미드필더, 거기다가 신체적으로도 전성기였던 이니에스타였다. 맨체스터 시티 FC에서 보여준 탱크 시절을 보면 확실히 월드 클래스 선수인 건 맞으나 당시 팀의 미드필더진이 축구 역사에 남을 사기 라인이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28] 이런저런 일들에 입을 털어 맨체스터 시티 FC 팬들에게는 거의 공공의 적으로 불리는 수준이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조.[29] 그동안 과르디올라가 투레에 대해 보여온 태도가 논란을 불러 일으킬 소지가 다소 있기는 했지만, 적어도 이적 당시에 투레는 불화설이고 뭐고를 떠나서 폼 자체가 상당히 나빴다. 무엇보다도 과르디올라 밑에서 중용받으면서 잘 뛴 흑인 선수는 아주 많다. 투레를 차별했다는 말은 신빙성이 있으나 그 기준이 인종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30] 사실 즐라탄보다도 더 논란이 될 만한 선수는 에투다. 즐라탄의 경우는 후반기 폼 저하 등을 들어 과르디올라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겠지만, 에투의 경우는 과르디올라의 부임 이전부터 이미 바르셀로나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 등을 이끈 스트라이커인데다가 리오넬 메시와도 잘 공존하던 선수였다. 첫시즌 트레블 이후에 즐라탄과의 트레이드로 쫓겨나다시피 했지만 정작 이적 이후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서도 연이어 트레블을 달성했으니... 거기다가 호나우지뉴와 다르게 에투는 당시 막장 수준도 아니었다. 그런데 팀 분위기를 망친다고 구단에서 직접 지목한 호나우지뉴는 오히려 붙잡으려 했다는 점에서 과연 과르디올라가 단지 팀 분위기 저해를 근거로 쫓아내는 감독인지 생각해봐야할 문제이다. 이건 에투가 즐라탄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다소 떨어지는 선수이기 때문에 조명을 덜 받는 것이다.[31] 즐라탄 역시 과르디올라와 마찬가지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축구계 인사이기 때문에 논란이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32] 엘 클라시코에서도 1골을 넣으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33] 메시 위주의 전술을 운용하는 것 자체는 비판거리가 아니지만 그럴 거면 즐라탄을 왜 비싼 돈을 주고 데려왔냐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당장 무전술로 욕을 먹던 루이스 엔리케마저 루이스 수아레스와 메시의 공존을 성공시켰다. 수아레스는 만능형 공격수인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주로 해결사의 역할을 도맡는 선수인데, 크랙에 가까운 네이마르 주니오르야 그렇다 치더라도 수아레스는 메시와 전혀 문제 없이 바르셀로나의 공격을 이끌었다. 물론 과르디올라 시절 메시가 맡았던 역할과 이후 메시가 맡는 역할에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다.[34] 실제로 즐라탄 본인이 생각하는 역대 축구 선수 베스트 11에는 리오넬 메시나 이니에스타, 사비 에르난데스 등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버젓이 선정되어 있다. 바르셀로나 자체를 싫어한다면 이런 구성은 나올 수 없으며, 심지어 메시에 관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상술했듯이 메시 위주의 팀 운영으로 인해 본인이 다소 흑역사를 쌓았는데도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갈등의 원인이 전적으로 과르디올라에게 있다고 여기는 듯 하다.[35] 물론 이는 즐라탄 본인의 자서전에서 과르디올라가 메시 중심으로만 팀을 운영하느라 자신을 의도적으로 제쳐두었다는 발언을 하는 등 한쪽 입장에서만 쓰여진 것이므로 걸러 생각할 필요가 있다. 허나 즐라탄의 감정 섞인 비판을 감안하더라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당시 메시는 엄청난 폼을 보이는 최전성기였고, 과르디올라는 그에 맞춰 바르셀로나로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메시 위주로 팀을 굴러가게 한 것은 즐라탄 기준에서는 악몽이였겠지만 바르셀로나에게는 최고의 황금기였다.[36] 마르티 본인은 제3자가 보아도 만주키치는 훈련장에서 큰 골칫덩어리였다고 했지만, 과연 바르셀로나 출생에 커리어 대부분이 친 카탈루냐였으며 과르디올라 서적의 저자인 인물이 제3자 입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37] 실제로 과르디올라의 전술에서 크로스와 비슷한 유형의 미드필더는 활약할 여지가 크지만, 크로스는 레알 마드리드 특유의 영입 정책인 갈락티코의 타겟이였기 때문에 과르디올라와의 문제와는 별개이다.[38] 이를 보면 적어도 맨시티 시점부터는 선수들이 본인의 전술에 맞게 변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면 이를 높이 평가하며 스쿼드에서 제외시키지 않는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그런 의지가 없다면 아예 스쿼드에서 제외시키지만 이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사실상 대부분의 감독이 비슷한 선택을 한다.[39] 이런 부분에서 스쿼드가 좀 딸리는 시즌도 우승컵을 들어올리던 알렉스 퍼거슨과 비교하기도 하는데, 사실 과르디올라가 활동하는 시기의 프리미어 리그와 당시의 프리미어 리그는 빅6와 빅3란 말처럼 라이벌 팀의 규모도 좀 달랐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 외 비교 분석은 후술된 총평 내용도 참고.[40] 기존 자원을 대상으로 맞춤 전술을 짜서 성공적인 결과를 내는 것은 어지간한 1류 명장들에게도 어려운 일이며, 과르디올라뿐만 아니라 많은 감독들 역시 본인의 전술에 선수를 맞추거나 전술에 맞는 선수를 영입하는 것을 선호한다.[41] 위에도 쓰여있지만 과르디올라는 언론에게 개인사를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42] 다만 과르디올라는 다른 감독들에 비하면 이런 부류의 선수가 특히 많은 감독이고, 불화를 일으킨 선수들의 네임밸류가 워낙 굵직해서 자주 화자가 되는 편이다.[43] 실제로 즐라탄은 어지간한 사고뭉치들도 무서워 할 정도의 파비오 카펠로를 "말도 걸기 어려울 정도로 무서운 감독님이시지만 그래도 사내대장부 다운 멋쟁이셨다." 라고 평가한 적이 있다.[44] 하지만 이건 전지적 즐라탄 시점에서 써진 글일 뿐 팩트라고 볼 순 없다. 둘 간의 불화 문제도 즐라탄의 뒤끝으로 허구헌날 언론에 대고 펩을 까댔기 때문에 대두된 문제이다.[45] Domènec Torrent #[46] Tito Vilanova #[47] Mikel Arteta #[48] Juanma Lillo #[49] Lorenzo Buenaventura #[50] 피트니스 코치[51] Carles Planchart #[52] 비디오 분석관[53] Manel Estiarte #[54] 선수 지원 총괄 코치[55]
참고로 저 가운데에서 아래에 있는 짤은 원래 무리뉴 왼쪽엔 루이스 엔리케까지 있던 짤이다. 그리고 유럽축구 매니아라면 알다시피 저 셋은 모두 이후 트레블을 달성한 감독이 되었다.[56] 그 사이 무리뉴는 도망을 갔고 결국 스페인 축구 협회는 무리뉴에게 벌금 징계를 내렸다.[57] 특히 무리뉴가 레알에 온 이후 엘 클라시코에서 바르셀로나가 압도적인 승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더더욱 언플을 시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58] 단, 즐라탄의 자서전에 따르면 무리뉴가 인테르 감독이던 시절에도 과르디올라와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 선수들은 무리뉴에게 반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무리뉴가 첼시 감독이던 시절 챔스에서 맞붙으면서 했던 언플과 디스 때문으로 추정된다.[59] 무리뉴에게 "El puto amo"라는 말을 했는데, 이는 한국말로 옮기자면 씨발새끼 정도의 뜻이다. 과르디올라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는 대목. 다만 el puto가 무리뉴를 지칭하는 욕설이 아니라 한국어로는 "존나"쯤 되는 강조의 의미로 썼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체적으로는 "그 양반 존나 말 험하게 하네" 였다고 한다. 정확한 워딩은 "Mourinho es el puto jefe, el puto amo (Mourinho is a fucking boss, fucking darling in the press room)", 번역하면 "무리뉴 그 씨발새끼는 언론 플레이의 천재다. 언론에서 예뻐하는 씨발새끼다" 정도의 뜻. 이날 과르디올라는 무리뉴에게 친히 '프레스 룸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주겠다고 인터뷰했을 정도이니, 이렇게 번역하는 것이 내용상으로도 맞는다.[60] 당시 무리뉴는 과르디올라가 정당한 심판 판정을 비난한 것에 어이없다는 의사표시를 했을 뿐 말을 험하게 한 사실은 없다. 이날 말을 험하게 한 것은 과르디올라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무리뉴도 잘한 것은 없다. 과르디올라는 상당히 신사적인 성격이라 인터뷰 등도 꽤나 신중한 편이지만 무리뉴는 평소 바르사는 챔스 협회의 가호를 받는다며 얼토당토 않은 음모론을 시전하다 다른 감독들에게 융단폭격을 당하기도 하고 레알이 진 경기 내용에 대해 시비를 걸거나 돌출발언을 일삼으며 그의 심기를 건드려 왔으므로 둘이 원투 펀치 주고받았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무리뉴는 평소 신사적인 성격도 아니고 경기 외적으로도 '당한 것은 갚아준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감독인 반면, 과르디올라는 첫 시즌 때만 해도 매너있는 신사라고 추앙받았으니 둘이 같은 급이 됐다는 것은 결국 과르디올라가 그 동안 쌓아온 이미지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듯.[61] 후에 밝힌 바로는 그동안 무리뉴의 졸렬한 도발에 대해 바르셀로나 수뇌부에서 신사적인 인터뷰를 하도록 종용했고 그래서 그에 따를 수밖에 없었으나, 수 년간 구단 내 파워 게임 등에까지 얽혀 스트레스가 극도로 쌓인 상황에 몰리자 그냥 확 질러 버린 것이라고 한다. 이 시기 무리뉴에 대해 내 보인 날선 발언들은 사실상 바르셀로나 생활을 청산할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62] 물론 소속팀 선수 제외.[63] 유독 이 시즌에 라리가에서 레알이 얻은 판정 이득이 많았다.[64] 기사에서는 무리뉴가 엘 콘피덴시알과의 인터뷰에서 발언했다고 언급하고 있으나 엘 콘피덴시알은 모리뉴를 인터뷰한 것이 아니고 엘리트 코치 포럼에서 이러한 언행이 있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한 것에 불과하다. 스페인에서 매일 쏟아져나오는 근거없는 보도를 독일 신문인 빌트에서 그대로 게재하고 이것을 한국에서 기사화한 것이다.[65] 무리뉴 역시 대머리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많은데 사실 무리뉴는 삭발을 자주 하는 것이고 제대로 기르면 풍성한 반곱슬머리가 된다. 그도 2010년대 후반 들어서는 머리숱이 좀 줄긴 했으나 나이를 생각해보면 그냥 늙어서 그런 거다.[66] 사실 펩도 선수 시절에는 머리가 풍성했으며 2010년대 초반까지도 스킨헤드를 고수해서 그렇지 탈모라고 할 상태는 아니었는데 맨시티에 부임할 쯤부터 진짜 탈모가 와서 대머리가 된 것이다.[67] 현재 프리미어리그 공식 규정상으로 감독이 정치색을 드러났다고 처벌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68] 그 자존심 강한 무리뉴가 자신의 라이벌을 향해 이렇게 말할 정도면 두 감독 사이의 나쁜 감정은 이제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다.[69] 펩의 경우 아내가 패션계에서 일하기 때문에 자신의 패션코디는 패션쪽 전문가인 아내한테 주로 맡긴다고 알려져있다.[70] 다만 2010년대 후반 이후부턴 둘 다 경기장에서 정장보단 편한 스타일을 선호하고 있다. 펩도 2017-18 시즌 후드와 트레이닝 바지로 복장이 아예 바뀌었다. 복장을 바꾼 이유는 당연하게도 이쪽이 더 편해서라고 한다. 2020-21 시즌 중반부터는 오픈 암즈라는 북아프리카 지역 난민들의 유럽 이주를 도와주는 자선단체의 후드티를 입고 팀을 지휘하기도 했다.[71] 수비축구 vs 티키타카라는 감독의 팀의 스타일과 비슷하다는 의견도 있다.[72] 물론 이는 부임 초반 부진을 겪던 아르테타를 해임하지 않고 끝까지 믿은 아스날 보드진의 공도 있었다. 이에 관해서는 여러 해석이 가능한데, 아르테타가 아스널의 캡틴 출신이라 인망이 두터운 점과 과르디올라의 수석코치라는 후광도 영향이 있었으리라 사료된다. 또 취임 첫해인 19-20시즌 운도 따라 FA컵에서 우승한 것 역시 아르테타의 리빌딩 과정을 믿은 보드진의 인내심을 길러줬을 것이다.[73] 다만 사비는 지도력의 한계를 금방 드러내었고, 보드진과의 불화 끝에 2023-24 시즌 종료 이후 팀을 떠났다. 이후 한지 플릭이 부임한다.[74] 아무래도 번리 선수단이 PL 수준에서 콤파니의 전술을 수행하기에는 기량이 다소 아쉬운 편이긴 했다. 특히 골 결정력이 아무래도 톱 클래스와는 차이가 많이 났다.[75] 한편, 뮌헨은 콤파니 선임에 있어서 과르디올라에 자문을 구했고 과르디올라는 콤파니를 적극 추천했다고 하는데, 이것만 봐도 뮌헨이 콤파니를 선임한 배경엔 과르디올라에 대한 인식도 다분히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펩 입장에선 단순 립 서비스였을지도 모르지만.[76] 다만 펩은 풀백 활용법 등에서 포스테코글루 감독 본인만의 스타일이 있다며, 자신과 전술 스타일이 완전히 같진 않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77] 실제로 이탈리아 국적의 유명 수비수 조르지오 키엘리니는 펩 때문에 요즘 이탈리아 센터백들이 수비에 집중하지 않고 발밑에 열중한다고 말하며, 펩이 이탈리아 수비수들을 망쳤다고(?) 주장하기도 했다.[78] 이것을 넘어 2022-23 시즌에는 포어 리베로도 잘 활용하고 있다. 실제 체력 관리나 동선 문제만 보면 센터백을 이용하는 게 더 나은 점도 있다.[79] 일각에서 실패라고 주장하는 바이에른 뮌헨 시절마저 리그 3연패에 챔스 3연속 4강이란 결과가 말해주듯 뮌헨 보드진은 펩과의 연장 계약을 원했다. 다만 반론측은 결과보단 과정에서 스페인팀 전적이나 원정 경기의 취약성같은 경기력적 부분을 지적하는 편이었다. 사실 펩의 커리어에서 뮌헨 시절은 한가지 확실한 차이점이 있긴 한데, 펩이 스페인어와 영어에 능통한 것과 달리 독일어엔 취약하다는 것이다. 뮌헨과 계약 맺고 개인교사 통해 열심히 독어 공부 했다고는 하지만, 전술가형 감독에게 커뮤니케이션이 힘든 부분이 있다는 점은 큰 단점이다.[80] 무리뉴의 선 수비 후 역습 전술이나 클롭의 게겐프레싱 등. 물론 상기되어있듯 펩은 게겐프레싱도 중시하는 감독이다. 애초에 이런 라이벌들이 있었기에 그들의 전술도 참고하면서 펩이 수렴진화할 수 있었다는 시각도 있다.[81] 이때 퍼거슨 우위론자들이 많이 드는 예시가, '퍼거슨이 펩 팀을 맡으면 펩만큼은 못해도 우승은 시킬거 같은데, 펩이 퍼거슨 팀 맡으면 우승할 수 있을지 장담 못하겠다'이다.[82] 클롭의 이른바 7년차 징크스를 보면 상대적으로 적은 돈으로 리빌딩 한다는 게 결코 쉬운게 아님을 알 수 있다.[83] 퍼거슨은 매니지먼트형 감독으로 유명했지 새로운 전술을 들고 나오는 혁신적인 스타일의 감독은 아니었다. 본인도 카를로스 케이로스처럼 전술 코치를 따로 두기도 했으며, 대신 최신 전술들이 개발되면 빠르게 흡수해 적용해보는 스타일이긴 했다.[84] 다만 이건 감독 역량을 떠나 선수 퀄리티적으로도 차이가 나긴 했다.[85] 펩 과르디올라 vs 알렉스 퍼거슨(이스타), 퍼거슨과 과르디올라, 누가 더 위대한 감독인가?(원투펀치), 펩 과르디올라는 퍼거슨을 넘었을까?(김진짜).
참고로 저 가운데에서 아래에 있는 짤은 원래 무리뉴 왼쪽엔 루이스 엔리케까지 있던 짤이다. 그리고 유럽축구 매니아라면 알다시피 저 셋은 모두 이후 트레블을 달성한 감독이 되었다.[56] 그 사이 무리뉴는 도망을 갔고 결국 스페인 축구 협회는 무리뉴에게 벌금 징계를 내렸다.[57] 특히 무리뉴가 레알에 온 이후 엘 클라시코에서 바르셀로나가 압도적인 승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더더욱 언플을 시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58] 단, 즐라탄의 자서전에 따르면 무리뉴가 인테르 감독이던 시절에도 과르디올라와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 선수들은 무리뉴에게 반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무리뉴가 첼시 감독이던 시절 챔스에서 맞붙으면서 했던 언플과 디스 때문으로 추정된다.[59] 무리뉴에게 "El puto amo"라는 말을 했는데, 이는 한국말로 옮기자면 씨발새끼 정도의 뜻이다. 과르디올라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는 대목. 다만 el puto가 무리뉴를 지칭하는 욕설이 아니라 한국어로는 "존나"쯤 되는 강조의 의미로 썼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체적으로는 "그 양반 존나 말 험하게 하네" 였다고 한다. 정확한 워딩은 "Mourinho es el puto jefe, el puto amo (Mourinho is a fucking boss, fucking darling in the press room)", 번역하면 "무리뉴 그 씨발새끼는 언론 플레이의 천재다. 언론에서 예뻐하는 씨발새끼다" 정도의 뜻. 이날 과르디올라는 무리뉴에게 친히 '프레스 룸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주겠다고 인터뷰했을 정도이니, 이렇게 번역하는 것이 내용상으로도 맞는다.[60] 당시 무리뉴는 과르디올라가 정당한 심판 판정을 비난한 것에 어이없다는 의사표시를 했을 뿐 말을 험하게 한 사실은 없다. 이날 말을 험하게 한 것은 과르디올라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무리뉴도 잘한 것은 없다. 과르디올라는 상당히 신사적인 성격이라 인터뷰 등도 꽤나 신중한 편이지만 무리뉴는 평소 바르사는 챔스 협회의 가호를 받는다며 얼토당토 않은 음모론을 시전하다 다른 감독들에게 융단폭격을 당하기도 하고 레알이 진 경기 내용에 대해 시비를 걸거나 돌출발언을 일삼으며 그의 심기를 건드려 왔으므로 둘이 원투 펀치 주고받았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무리뉴는 평소 신사적인 성격도 아니고 경기 외적으로도 '당한 것은 갚아준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감독인 반면, 과르디올라는 첫 시즌 때만 해도 매너있는 신사라고 추앙받았으니 둘이 같은 급이 됐다는 것은 결국 과르디올라가 그 동안 쌓아온 이미지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듯.[61] 후에 밝힌 바로는 그동안 무리뉴의 졸렬한 도발에 대해 바르셀로나 수뇌부에서 신사적인 인터뷰를 하도록 종용했고 그래서 그에 따를 수밖에 없었으나, 수 년간 구단 내 파워 게임 등에까지 얽혀 스트레스가 극도로 쌓인 상황에 몰리자 그냥 확 질러 버린 것이라고 한다. 이 시기 무리뉴에 대해 내 보인 날선 발언들은 사실상 바르셀로나 생활을 청산할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62] 물론 소속팀 선수 제외.[63] 유독 이 시즌에 라리가에서 레알이 얻은 판정 이득이 많았다.[64] 기사에서는 무리뉴가 엘 콘피덴시알과의 인터뷰에서 발언했다고 언급하고 있으나 엘 콘피덴시알은 모리뉴를 인터뷰한 것이 아니고 엘리트 코치 포럼에서 이러한 언행이 있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한 것에 불과하다. 스페인에서 매일 쏟아져나오는 근거없는 보도를 독일 신문인 빌트에서 그대로 게재하고 이것을 한국에서 기사화한 것이다.[65] 무리뉴 역시 대머리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많은데 사실 무리뉴는 삭발을 자주 하는 것이고 제대로 기르면 풍성한 반곱슬머리가 된다. 그도 2010년대 후반 들어서는 머리숱이 좀 줄긴 했으나 나이를 생각해보면 그냥 늙어서 그런 거다.[66] 사실 펩도 선수 시절에는 머리가 풍성했으며 2010년대 초반까지도 스킨헤드를 고수해서 그렇지 탈모라고 할 상태는 아니었는데 맨시티에 부임할 쯤부터 진짜 탈모가 와서 대머리가 된 것이다.[67] 현재 프리미어리그 공식 규정상으로 감독이 정치색을 드러났다고 처벌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68] 그 자존심 강한 무리뉴가 자신의 라이벌을 향해 이렇게 말할 정도면 두 감독 사이의 나쁜 감정은 이제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다.[69] 펩의 경우 아내가 패션계에서 일하기 때문에 자신의 패션코디는 패션쪽 전문가인 아내한테 주로 맡긴다고 알려져있다.[70] 다만 2010년대 후반 이후부턴 둘 다 경기장에서 정장보단 편한 스타일을 선호하고 있다. 펩도 2017-18 시즌 후드와 트레이닝 바지로 복장이 아예 바뀌었다. 복장을 바꾼 이유는 당연하게도 이쪽이 더 편해서라고 한다. 2020-21 시즌 중반부터는 오픈 암즈라는 북아프리카 지역 난민들의 유럽 이주를 도와주는 자선단체의 후드티를 입고 팀을 지휘하기도 했다.[71] 수비축구 vs 티키타카라는 감독의 팀의 스타일과 비슷하다는 의견도 있다.[72] 물론 이는 부임 초반 부진을 겪던 아르테타를 해임하지 않고 끝까지 믿은 아스날 보드진의 공도 있었다. 이에 관해서는 여러 해석이 가능한데, 아르테타가 아스널의 캡틴 출신이라 인망이 두터운 점과 과르디올라의 수석코치라는 후광도 영향이 있었으리라 사료된다. 또 취임 첫해인 19-20시즌 운도 따라 FA컵에서 우승한 것 역시 아르테타의 리빌딩 과정을 믿은 보드진의 인내심을 길러줬을 것이다.[73] 다만 사비는 지도력의 한계를 금방 드러내었고, 보드진과의 불화 끝에 2023-24 시즌 종료 이후 팀을 떠났다. 이후 한지 플릭이 부임한다.[74] 아무래도 번리 선수단이 PL 수준에서 콤파니의 전술을 수행하기에는 기량이 다소 아쉬운 편이긴 했다. 특히 골 결정력이 아무래도 톱 클래스와는 차이가 많이 났다.[75] 한편, 뮌헨은 콤파니 선임에 있어서 과르디올라에 자문을 구했고 과르디올라는 콤파니를 적극 추천했다고 하는데, 이것만 봐도 뮌헨이 콤파니를 선임한 배경엔 과르디올라에 대한 인식도 다분히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펩 입장에선 단순 립 서비스였을지도 모르지만.[76] 다만 펩은 풀백 활용법 등에서 포스테코글루 감독 본인만의 스타일이 있다며, 자신과 전술 스타일이 완전히 같진 않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77] 실제로 이탈리아 국적의 유명 수비수 조르지오 키엘리니는 펩 때문에 요즘 이탈리아 센터백들이 수비에 집중하지 않고 발밑에 열중한다고 말하며, 펩이 이탈리아 수비수들을 망쳤다고(?) 주장하기도 했다.[78] 이것을 넘어 2022-23 시즌에는 포어 리베로도 잘 활용하고 있다. 실제 체력 관리나 동선 문제만 보면 센터백을 이용하는 게 더 나은 점도 있다.[79] 일각에서 실패라고 주장하는 바이에른 뮌헨 시절마저 리그 3연패에 챔스 3연속 4강이란 결과가 말해주듯 뮌헨 보드진은 펩과의 연장 계약을 원했다. 다만 반론측은 결과보단 과정에서 스페인팀 전적이나 원정 경기의 취약성같은 경기력적 부분을 지적하는 편이었다. 사실 펩의 커리어에서 뮌헨 시절은 한가지 확실한 차이점이 있긴 한데, 펩이 스페인어와 영어에 능통한 것과 달리 독일어엔 취약하다는 것이다. 뮌헨과 계약 맺고 개인교사 통해 열심히 독어 공부 했다고는 하지만, 전술가형 감독에게 커뮤니케이션이 힘든 부분이 있다는 점은 큰 단점이다.[80] 무리뉴의 선 수비 후 역습 전술이나 클롭의 게겐프레싱 등. 물론 상기되어있듯 펩은 게겐프레싱도 중시하는 감독이다. 애초에 이런 라이벌들이 있었기에 그들의 전술도 참고하면서 펩이 수렴진화할 수 있었다는 시각도 있다.[81] 이때 퍼거슨 우위론자들이 많이 드는 예시가, '퍼거슨이 펩 팀을 맡으면 펩만큼은 못해도 우승은 시킬거 같은데, 펩이 퍼거슨 팀 맡으면 우승할 수 있을지 장담 못하겠다'이다.[82] 클롭의 이른바 7년차 징크스를 보면 상대적으로 적은 돈으로 리빌딩 한다는 게 결코 쉬운게 아님을 알 수 있다.[83] 퍼거슨은 매니지먼트형 감독으로 유명했지 새로운 전술을 들고 나오는 혁신적인 스타일의 감독은 아니었다. 본인도 카를로스 케이로스처럼 전술 코치를 따로 두기도 했으며, 대신 최신 전술들이 개발되면 빠르게 흡수해 적용해보는 스타일이긴 했다.[84] 다만 이건 감독 역량을 떠나 선수 퀄리티적으로도 차이가 나긴 했다.[85] 펩 과르디올라 vs 알렉스 퍼거슨(이스타), 퍼거슨과 과르디올라, 누가 더 위대한 감독인가?(원투펀치), 펩 과르디올라는 퍼거슨을 넘었을까?(김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