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04 19:42:59

SSC 나폴리

파일:나무위키+유도.png   19-20 시즌에 대한 내용은 SSC 나폴리/2019-20 시즌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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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C 나폴리
S.S.C. Napoli
정식 명칭 Societa Sportiva Calcio Napoli S.p.A.
별칭 Partenopei (파르테노페이), Gli Azzurri (하늘색), Ciucciarelli (작은 당나귀)
창단 1904년 (Naples Foot-Ball Club)
1926년[1] 8월 1일 (AC Napoli)
소속 리그 이탈리아 세리에 A (Serie A)
연고지 캄파니아 주 나폴리
홈 구장 스타디오 산 파올로(Stadio San Paolo, 60,240명 수용)[2]
라이벌 유벤투스 FC[3]
AS 로마 - 데르비 델 솔레(Derby del Sole)[4]
팔레르모 - 데르비 델레 두에 시칠레(Derby delle Due Sicilie)
구단주 아우렐리오 데 라우렌티스(Aurelio De Laurentiis)[5]
감독 카를로 안첼로티 (Carlo Ancelotti)
주장 로렌조 인시녜 (Lorenzo Insigne)
공식 홈페이지 및 소셜 미디어 파일:SSCNapoli.png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파일:유튜브 아이콘.png
한국 팬카페 파일:SSCNapoli.png
우승 기록
세리에 A
(2회)
1986-87, 1989-90
세리에 B
(2회)
1945-46, 1949-50
세리에 C1 (1회) 2005-06
코파 이탈리아
(5회)
1961-62, 1975-76, 1986-87, 2011-12, 2013-14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회)
1990, 2014
UEFA 유로파 리그
(1회)
1988-89
클럽 기록
영구결번 10
세리에 A 득점왕
(3회)
87/88 - 디에고 마라도나(Diego Maradona) - 15골
12/13 - 에딘손 카바니(Edinson Cavani) - 29골
15/16 - 곤잘로 이과인(Gonzalo Higuaín) - 36골[6]
최다 출장 마렉 함식 (Marek Hamšík) - 520경기
최다 득점 마렉 함식 (Marek Hamšík) - 121골
최고 이적료 영입 이르빙 로사노 (Hirving Rodrigo Lozano Bahena)
(2019년, from PSV 에인트호번, 4200만 유로)
최고 이적료 방출 곤살로 이과인 (Gonzalo Gerardo Higuaín)
(2016년, to 유벤투스 FC, 9000만 유로)

2019-20 시즌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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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AWAY THIRD GK HOME GK AWAY
메인 스폰서 유니폼 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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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클럽의 역사
2.1. 1980년대2.2. 1990년대~2000년대2.3. 2010년대
2.3.1. 근래 성적
3. 2019-20 시즌 선수명단4. 유니폼5. 영구결번6. 전술
6.1. 삼각편대 시절6.2. 베니테즈 시절6.3. 사리 시절6.4. 안첼로티 시절
7. 기타8. 같이보기

1. 개요

이탈리아 나폴리를 연고지로 두고 있는 프로 축구 클럽.

소시에타 스포르티바 칼치오 나폴리: (Società Sportiva Calcio Napoli Sp), 일반적으로 S.S.C. 나폴리라고 불린다. AS 로마와 함께 이탈리아 남부를 대표하는 클럽이다. 1904년에 이탈리아 남부리그의 한팀에서 출발했으며, 1926년 당시 구단주였던 조르조 아스카렐리에 의해 AC나폴리라는 이름으로 출발하게 된다. 하지만 아스카렐리는 1930년에 35세의 나이에 복막염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였으며 그의 이름을 홈구장에 붙여 기렸다. 하지만, 그 조르조 아스카렐리 구장은 2차 대전 때 폭격을 맞고 파괴되었고, 1959년부터 지금의 홈 구장인 산파울로 스타디움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1964년, 어쏘시아치오네 칼치오 나폴리에서 소시에타 스포르티바 칼치오 나폴리(S.S.C. 나폴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2. 클럽의 역사

전성기 시절은 세번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처음은 디노 조프, 조세 알타피니, 오마르 시보리 등이 포진한 1960년대, 두번째는 마라도나로 대표되는 1980년대[7], 그리고 데 라우렌티스가 클럽을 부활 시킨 이후 카바니, 함식, 라베찌의 삼각편대에서 메르텐스, 카예혼, 인시녜로 이어지는 삼각편대의 시절까지인 현재이다.

2.1. 1980년대

1980년 초반까지만 해도 나폴리는 강팀의 포스를 풍겼으나, 1984년 겨우 강등을 모면하는 등 성적이 상당히 떨어졌다.[8] 결국 1984년 6월 30일, 나폴리는 당시 이적료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바르셀로나로부터 디에고 마라도나를 영입했다. 또 치로 페라라, 살바토레 바그니, 페르난도등의 가세로 점차 강력한 스쿼드를 구축하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스쿼드 강화는 효과를 보기 시작했고, 1987년 5월 역사적인 첫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9] 이 트로피의 주인공은 단연 디에고 마라도나였고, 미셸 플라티니, 마르코 판바스턴, 로타어 마테우스, 지쿠 등을 제치고 리그 최고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나폴리 인들에게 단순히 축구 선수가 아닌 문화적, 사회적 그리고 종교적 아이콘으로 등극하게 된다.

1988-89 시즌에는 지난 시즌 준우승 자격으로 출전한 UEFA 컵에서 유벤투스, 바이에른 뮌헨을 차례로 꺾은 뒤 결승에서 독일의 VfB 슈투트가르트를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며 첫 유럽 무대 타이틀을 획득한다. 이듬해 나폴리는 전설적인 감독 아리고 사키가 이끌고 오렌지 삼총사를 보유한 AC 밀란을 승점 2점차로 따돌리며 또다시 세리에 A 타이틀을 획득한다. 이 시기에는 리그 16골을 터트리며 득점왕에 오른 마라도나도 대단했지만 브라질 대표팀의 카레카와 중원에는 페르난도 데 나폴리, 수비에는 치로 페라라 등 걸출한 팀 동료들의 지원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2.2. 1990년대~2000년대

그러나 1991년 AS 바리와의 경기 이후 실시된 도핑 테스트에서 마라도나가 코카인 양성반응을 보였고 15개월 정지 처분을 받았다. 1991-92 시즌을 마라도나 없이 치루게 된 나폴리는 지안프랑코 졸라의 활약으로 4위에 올랐으나 결국 마라도나는 나폴리를 떠나게 된다. 마라도나가 떠난 나폴리는 더 이상 우승을 바라볼만한 전력을 갖추지 못하게 되었고 중위권 정도의 성적에 머무르게 된다. 여기에 나폴리의 펠라이노 회장이 정치권과 관련된 스캔들에 연루되면서 나폴리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빚을 갚기 위해 나폴리는 지안프랑코 졸라, 파비오 칸나바로, 치로 페라라 등 주요 선수들을 내다 팔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나폴리는 1997-98 시즌 단 2승만을 거두며 승점 14점 최하위의 순위로 강등을 당하고 만다.

2년 뒤 나폴리는 다시 세리에 A에 승격하는데 성공하지만 공동 구단주 조르지오 코르벨리가 승격을 이끈 왈테르 노벨리노 감독을 자르고 즈데넥 제만 감독을 선임하면서 다시 꼬이기 시작했다. 제만은 단 6경기만에 경질되었고 그 중 단 한경기도 승리하지 못했다. 이후 에밀리아노 몬도니코 감독을 선임했으나 다시 강등되고 만다. 2002년 구단주 코르벨리가 미디어 스캔들에 연루되어 체포되었으며 결국 2004년 8월 7900만 유로의 부채를 안고 파산을 선고받는다.[10] 팀은 세리에 C로 떨어졌으며 숨통이 끊긴 듯 했다.

그러나 아무리 암울한 상황에도 한줄기 빛은 있다고, 유명 영화제작자[11]이자 나폴리의 오랜팬이었던[12] 아우렐리오 데 라우렌티스가 3400만 유로에 나폴리를 인수하면서 대대적인 개혁과 투자가 시작된다. 그는 팬들에게 5년 이내에 나폴리를 1부 리그에 올려놓고, 그후 5년내에는 나폴리를 우승경쟁 다투는 팀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팬들은 이에 5만 명 이상의 관중을 운집하며 화답했고, 세리에 C 최대 관중 동원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는 첫 약속을 3년 만에 달성시켰는데, 2007년 팀을 다시 1부 리그로 복귀시켰다.[13] 승격 직후 나폴리는 어렵사리 두 명의 선수를 데려온다. 팬들은 이에 반발하며 구단 사무실 앞에서 시위까지 벌였으나, 이 날 데려온 마렉 함식에세키엘 라베찌는 나폴리의 핵심 선수로 성장하면서 팀을 이끌어갔다. 2009-10 시즌에는 나폴리에서 태어난 파비오 콸리아렐라를 영입했으나 2010-11 시즌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유벤투스로 이적시키면서 팬들의 원성을 샀다. 엘프스보르그와의 유로파 경기에서 이적이 확정된 콸리아렐라가 벤치에 앉아 있었고, 대체자로 데려온 에딘손 카바니가 경기에서 뛰었는데, 이 날 카바니는 멀티골을 넣으며 팬들의 야유를 환호로 바꿔버렸다. 카바니는 2010-11 시즌 총 33골을 넣으며 함식과 더불어 세리에 올해의 팀에 선정되며 팀의 간판 스트라이커로 거듭났다.

2.3. 2010년대

성공적이었던 2010-11 시즌을 마치고 나폴리는 끊임없이 이적설이 나돌던 함식, 라베찌, 카바니를 지키는데 성공하고, 우디네세에서 검증된 미드필더 괴칸 인러를 영입해 미들진 보강을 이뤄냈다. 또 블레림 제마일리, 마리오 산타나 등 즉시전력감 선수들을 영입, 얇았던 스쿼드를 보강했으며 인테르에서 고란 판데프를 임대영입했다.

2011-12 시즌은 챔피언스 리그에서 나폴리라는 이름을 각인 시킨 시즌이었다. 죽음의 조[14]에 속했지만 맨시티를 탈락시키면서 3승 2무 1패로 16강에 당당히 진출했다. 이어진 16강 1차전 첼시와의 경기에서 파올로 칸나바로의 실수로 마타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라베찌의 동점골과 카바니의 역전골에 이어 라베찌가 쐐기골을 넣으며 3:1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2차전에선 연장전까지 가서 1:4로 패하면서 첼시에게 8강행을 넘겨줬다. 그러나 이 당시 나폴리의 돌풍같은 활약은 많은 해외축구팬들에게 나폴리라는 클럽의 가능성을 유럽에 알린 계기가 되었다.[15] 반면 리그에서는 작년같은 포스가 나오지 않아서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바깥에서 헤매다가 5위로 마무리하면서 다음 시즌은 유로파 리그 진출권을 얻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나마 25년만에 코파 이탈리아에서 우승하면서 1989년 UEFA 컵 우승 이후 무려 23년만의 무관에서 벗어났다. 무엇보다 리그 무패 우승을 거두고 코파 이탈리아도 무패 우승을 거두며 더블을 노리려던 유벤투스를 상대로 2:0으로 이긴 승리라서 그 의미가 더 컸다.

이후 나폴리는 2012-13 시즌 준우승, 2013-14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 등 꾸준히 성적을 거두며 세리에 A의 강호로 다시금 자리잡았다. 자세한 내용은 하단의 시즌별 링크 참조.

최근 나폴리의 특징 중 하나라면 뛰어난 공격수들이 이곳을 많이 거쳐간다는 점이다. 콸리아렐라[16] -> 카바니[17] -> 이과인 [18] -> 메르텐스[19]의 계보로 이어져내려오고 있으며 본래 공격수 생산공장으로 유명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대한 세리에의 답이라는 얘기도 나오는 상황.

2.3.1. 근래 성적

각 시즌별 상세 내용은 표의 시즌별 링크 참조.
시즌 세리에 A 유럽 대항전 코파 이탈리아 기타 감독
2007-08 8위 - 16강 - 에두아르도 레야
2008-09 12위 UEFA컵 1라운드 8강 - 에두아르도 레야 - 로베르토 도나도니
2009-10 6위 - 16강 - 로베르토 도나도니 - 왈테르 마짜리
2010-11 3위 UEL 32강 8강 - 왈테르 마짜리
2011-12 5위 UCL 16강 우승 - 왈테르 마짜리
2012-13 2위 UEL 32강 16강 - 왈테르 마짜리
2013-14 3위 UCL 조별 리그/UEL 16강 우승 - 라파엘 베니테스
2014-15 5위 UCL 플레이오프/UEL 4강 4강 수페르코파 우승 라파엘 베니테스
2015-16 2위 UEL 32강 8강 - 마우리치오 사리
2016-17 3위 UCL 16강 4강 - 마우리치오 사리
2017-18 2위 UCL 조별 리그/UEL 32강 8강 - 마우리치오 사리
2018-19 2위 UCL 조별 리그/UEL 8강 8강 - 카를로 안첼로티

3. 2019-20 시즌 선수명단

{{{#!folding [ 펼치기 · 접기 ] 2019-20 시즌 SSC 나폴리 선수 명단
번호 이름 영문 이름 포지션 국적 생년월일 비고
1 알렉스 메렛 Alex Meret GK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1997년 3월 22일
2 케빈 말퀴 Kévin Malcuit DF 파일:프랑스 국기.png 1991년 7월 31일
5 알랑 마르케스 Allan Marques MF 파일:브라질 국기.png 1991년 1월 8일
6 마리우 후이 Mario Rui DF 파일:포르투갈 국기.png 1991년 5월 27일
7 호세 카예혼 José Callejón FW 파일:스페인 국기.png 1987년 2월 11일 부주장
8 파비안 루이스 Fabian Ruiz MF 파일:스페인 국기.png 1996년 4월 3일
9 페르난도 요렌테 Fernando Llorente FW 파일:스페인 국기.png 1985년 2월 26일
11 이르빙 로사노 Hirving Lozano FW 파일:멕시코 국기.png 1995년 7월 30일
12 엘리프 엘마스 Eljif Elmas MF 파일:마케도니아 국기.png 1999년 9월 24일
13 세바스티아노 루페르토 Sebastiano Luperto DF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1996년 9월 6일
14 드리스 메르텐스 Dries Mertens FW 파일:벨기에 국기.png 1987년 5월 6일
18 아마토 치치레티 Amato Ciciretti FW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1993년 12월 31일
19 니콜라 막시모비치 Nikola Maksimović DF 파일:세르비아 국기.png 1991년 11월 25일
20 피오트르 지엘린스키 Piotr Zieliński MF 파일:폴란드 국기.png 1994년 5월 20일
22 조반니 디로렌초 Giovanni Di Lorenzo DF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1993년 8월 4일
23 엘세이드 히사이 Elseid Hysaj DF 파일:알바니아 국기.png 1994년 2월 2일
24 로렌조 인시녜 Lorenzo Insigne FW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1991년 6월 4일 주장
25 다비드 오스피나 David Ospina GK 파일:콜롬비아 국기.png 1988년 8월 31일
26 칼리두 쿨리발리 Kalidou Koulibaly DF 파일:세네갈 국기.png 1991년 6월 20일 3주장
27 오레스티스 카르네지스 Orestis-Spyridon Karnezis GK 파일:그리스 국기.png 1985년 7월 11일
31 파우지 굴람 Faouzi Ghoulam DF 파일:알제리 국기.png 1991년 2월 1일
34 아민 유네스 Amin Younes FW 파일:독일 국기.png 1993년 8월 6일
44 코스타스 마놀라스 Kostas Manolas DF 파일:그리스 국기.png 1991년 6월 14일
62 로렌조 토넬리 Lorenzo Tonelli DF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1990년 1월 7일
70 지안루카 가에타노 Gianluca Gaetano MF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2000년 5월 5일
99 아르카디우스 밀리크 Arkadiusz Milik FW 파일:폴란드 국기.png 1994년 2월 28일
구단 정보
구단주: 아우렐리오 데 라우렌티스 / 감독: 카를로 안첼로티 / 홈 구장: 스타디오 산 파올로
출처: 영문 위키피디아 / 마지막 수정 일자: 2019년 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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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유니폼

SSC 나폴리/유니폼 문서 참조.

5. 영구결번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5927c4c8b4c18acb4f36549eff341e83.jpg
SSC 나폴리 영구결번
No. 10 디에고 마라도나

전설적인 축구선수 디에고 마라도나의 등번호 10번이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6. 전술

나폴리가 신흥 강팀으로 대접받기 시작한 것은 왈테르 마짜리 감독 부임시절 이후이다.

나폴리의 전술적 특징은 일반적인 세리에 팀과는 달리 윙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템포가 매우 빠르고, 수비보다 공격에 치중하여 매우 화끈한 경기가 많다는 것이다.

마짜리 시절에는 다소 빈약한 수비진 클래스 탓에 미들과 공격진까지 몽땅 수비에 투입한 후, 일단 상대의 공을 빼앗으면 삼지창이 우루루 적진으로 몰려가고 수비진에서 공을 뻥뻥 차다가 한두번씩 얻어걸리는 잉글랜드식 뻥축구를 구사하였다. 다만 이 과정에서 예술적인 역습장면들이 여럿 연출되다 보니 전체 경기는 지루한데 하이라이트만 보면 굉장히 재미있는 팀이었다.

베니테즈 시절에는 카예혼과 메르텐스, 이과인을 영입하여 본격적으로 윙어전술을 탑재하기 시작한다. 수비진과 미들진의 클래스는 그대로였으나 이 시기에 리그 탑급 윙어가 세명이나 들어오는 바람에 활발한 측면공격을 선보였다. 덕분에 화끈한 공격력은 세리에 정상급으로 평가받았으나 윙 전술을 활용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허약한 미들진과 수비진이 마짜리 시절에 비해 도드라졌다. 이 때문에 헌신적이고 활동량이 많은 카예혼이 중용받았다. 다만 베니테즈는 떠나기 전 조르지뉴와 쿨리발리라는, 각각 미들진과 수비진의 대들보가 될 선수 두명을 영입하고 나폴리를 떠났다.(근데 정작 본인은 그 두 선수를 잘 활용하지는 못하였다. 조르지뉴나 함식이 있는 상황에서 베니테즈는 433이 아닌, 4231만 주구장창 썼다.)

사리 감독은 베니테즈가 레알감독으로 떠난 후 그의 유산과 본인의 장점을 잘 조합하여 나폴리를 완성도 높은 팀으로 변모시켰다. 베니테즈 시절에는 많은 이적료 지출로 선수단 이름값은 매우 훌륭하였으나 뛰어난 개개인의 능력에 비해 조직력이나 유기적인 움직임은 다소 부족했다는 평이 많았다. 사리 감독은 베니테즈 시절에 영입되었던 선수들의 장점을 살리는데 매우 뛰어난 역량을 보였고, 부족한 부분은 히사이, 알랑 등 저렴한 알짜 선수들을 영입하여 확실히 보완하였다. 특히 고질적인 약점으로 지적되던 수비를 대폭 개선시켰는데, 단순히 수비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닌 유기적인 압박전술로 공격력은 그대로 살리고 실점률을 줄이는 데 성공하였으며, 이는 사리 감독의 여러 업적 중에서도 최고로 평가받는다. 부임 첫 해에 나폴리 역대 최다승점과 챔피언스 리그 진출티켓 두마리 토끼를 잡은 사리 감독은 비록 이과인이 떠났지만 그 돈으로 밀리크, 지엘린스키, 로그, 디아와라, 막시모비치 등 젊고 장래가 촉망되는 즉시전력감 유망주들을 영입하였다. 나폴리는 비선수 출신 사리 감독의 훌륭한 전술적 역량에 두껍고 젊은 스쿼드가 합쳐져 전망이 매우 밝은 팀이 되었다.

6.1. 삼각편대 시절

왈테르 마짜리 감독이 재임하던 시절의 전술이다.

나폴리 삼지창으로 유명했던 카바니, 라베찌, 함식이 활약하던 시절이다. 삼지창 이외 선수들의 이름값이나 재능은 약간 부족한 감이 있었으며, 이에 대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나머지 미드필더와 수비수들은 활동량이 많은 선수들을 활용하였고, 3백을 활용, 수비수 숫자를 보강하는 우주방어를 선보인다. 본진에서 단단히 웅크리고 적의 공격을 방어해 내다가 볼을 탈취하면 그 즉시 삼지창이 달리기 시작한다. 정교한 롱패스와 원터치로 역습템포를 살려주는 함식, 화려하고 폭발적인 드리블로 상대 진영에 돌진하는 라베찌, 치명적인 위치선정과 골결정력을 자랑하는 카바니의 조화가 어우러져 대략 10~15초라는 짧은 시간에 적의 골망을 흔드는 것이 주된 공격패턴이었다. 이러한 전술적인 요인들 덕분에 대외적으로 나폴리의 축구하면 역습축구라는 인식이 빠르게 퍼지게 되었다.

이외에 인러의 뜬금포, 마지오의 빠른 다리를 이용한 뜬금침투 정도가 간간히 나왔지만 삼지창이 나폴리 공격에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었다. 이 시절 미드필더[20]와 수비진 퀄리티는 썩 좋은 편은 아니어서, 수비에 성공하자마자 삼지창에게 뻥 차주는 경우가 많아서, 이탈리아 내 뻥축팀, EPL팀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6.2. 베니테즈 시절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이 재임하던 시절의 전술이다.

라베찌와 카바니가 거액의 이적료를 안겨주고 이적하였고, 대체자로 영입된 이과인과 카예혼, 유스에서 발탁된 신성 인시녜가 새로운 삼지창이 되었다. 이전 삼지창과 다른 점은 선수 뿐만이 아니라 함식이 부진하여 원조 삼지창의 일원으로서 제몫을 해주지 못한 부분이다. 베니테즈는 함식을 4-2-3-1의 2선 꼭지점 부분으로 활용하였으나 그런 고정된 위치에서는 함식의 넓은 활동량을 살릴 수 없었으며, 유일한 약점이 탈압박이었던 함식에겐 힘든 시기가 되었다. 이러한 단점이 더욱 부각된건 수니가의 부상 이후인데 부상전에는 함식의 부족한 탈압박 능력을 수니가의 적극적인 오버래핑과 수니가 인시녜 함식으로 이어지는 좌측에서의 연계로 극복했다. 그러나 부상 후 3백용인 아르메로와 메스토가 나오면서 이러한 모습은 사라졌고 함식의 단점은 더욱 부각되었다.

이 시기의 나폴리는 외국인 감독을 선임한 팀 답게 다른 세리에팀들과는 다른 축구를 구사했는데, 바로 윙어들의 무덤으로 유명한 세리에에서 윙어들을 활용한 공격을 주 득점루트로 가져갔다는 것이다. 클래스 있는 윙어인 메르텐스와 카예혼을 영입하였고, 여기에 로컬보이인 인시녜가 가세하면서 양쪽 날개의 화력이 막강해졌다. 메르텐스와 인시녜는 둘 다 테크니컬하면서도 스피드가 빨랐기 때문에 인사이드형, 클래식형 어느쪽으로든 자유자재로 상대방의 측면을 공략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 메르텐스와 인시녜의 드리블 돌파와 카예혼의 침투 및 득점전략, 이과인에게 어떻게든 공을 주면 이과인이 알아서 해결하는 식의 무대포 전략이 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전에 쏠쏠하게 득점루트로 사용되던 인러의 중거리슛과 함식의 침투득점, 마지오의 개돌은 자제되었고, 나폴리의 득점루트는 매우 단조로워졌다. 그러나 당시 2선 윙어들을 필두로 하여 카예혼-이과인-인시녜(메르텐스)가 펼치는 화력쇼는 당시 세리에 최고의 화력으로 손꼽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잘 정비된 윙어 전술에 비해 중앙에서의 빌드업은 생각보다 형편 없었는데, 베니테즈 초기 부임부터 거의 중원은 내주고 시작했다 싶을 정도로 빌드업에 제대로 된 규칙이 없었다. 마짜리 시절부터 함께해왔던 인러, 제마일리, 베라미는 전부 넓은 활동량이 장점이 되던 선수로써 패스줄기를 이어주는데 최적화된 선수가 아니었고, 이후 영입된 데 구즈만이나 다비드 로페즈는 아마추어적인 수준의 전진패스도 선보이지 못할만큼 기량이 미달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중에 조르지뉴라는 훌륭한 패서를 영입했음에도 제대로 쓰지 못했고, 이처럼 콱막힌 3선은 결국 앞선 기술처럼 압박에 고전하던 2선 꼭지점 함식의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덕분에 중앙을 이용한 공격전개는 베니테즈시절 큰 재미를 보지 못했으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된다. 거기다가 14-15시즌에는 중앙 미드필더 중에 포백보호 역할을 가장 훌륭하게 완수하던 베라미까지 대체자원없이 보내버리면서 중앙에서 수비와 공격 모두 엄청난 문제를 겪게된다.

수비는 강한 압박을 활용하였으나 기본적인 포백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으며, 또한 풀백과 센터백 퀄리티가 매우 낮아 카밀로 수니가의 부상태업 이후로는 센터백 구성과 풀백 구성에 상당한 골머리를 앓았다. 수비진영에서의 잦은 실수가 있었으며, 레이나의 미친듯한 선방으로 실점률은 의외로 낮았으나, 이 시절 나폴리의 수비는 화려한 공격진과 비교하여 헌 누더기 그 자체였다. 굴람과 쿨리발리의 영입 전까지 나폴리의 수비고민은 고질적으로 이어졌다.

물론 베니테즈 시절 나폴리의 가장 큰 문제점은 너무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로테이션 전술이었다. 이미 발렌시아-리버풀 시절부터 로테이션 성애자로 평가받던 그였지만, 시즌이 진행될 수록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로테이션 집착을 보였고, 나중에는 덕분에 중요선수들과의 마찰도 일어나곤했다. 이 부분은 베니테즈 시절이 팬들에게 비난받는 가장 큰 원인이 되었으며, 이해하기 힘든 선수기용으로 많은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6.3. 사리 시절

마우리치오 사리 감독이 재임하던 시절의 전술이다.

비교적 하부리그와 승격팀을 주로 맡아왔기 때문에 부임 전에는 걱정이 앞섰지만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세 시즌간 보여준 사리감독의 축구는 나폴리의 제 2의 전성기를 이끌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안정적이고 놀라운 축구를 보여줬다. 사리 감독이 부임한 세 시즌간 나폴리는 세리에에서 쉽게 보기 힘든 점유율축구와 화끈한 공격축구를 보여줬으며, 비록 우승컵을 드는데는 실패했지만, 구단 역대 최다 승점을 해마다 갈아치웠고, 화끈한 공격과 재미있는 점유율 축구를 보여주면서 성적과 재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데 성공했다.

나폴리 선수단의 퀄리티가 해를 거듭하며 업그레이드된 면모도 있지만, 사리의 전술은 그 동안 나폴리의 전술과는 궤를 달리하는 한단계의 발전을 이뤄냈다. 특히, 고질적인 빌드업 문제를 대폭적으로 체질개선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그동안 나폴리의 빌드업적인 전술은 마짜리 시절을 기반으로 롱패스를 활용하여 빠져나가는 공격수를 이용하여 즉각적인 역습을 수행하거나 중앙의 빌드업은 거의 포기하고 측면 풀백을 이용하여 적극적인 오버래핑으로 윙어와 연계하여 빌드업하는 과정이 많았는데, 사리감독은 전체적으로 롱패스의 비중을 줄이고, 짧고 간결한 선수간 원투패스를 기본으로 점유율을 늘리는 빌드업으로 나폴리의 공수 전개방식을 새롭게 개편하였다. 개편한 3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중앙에서 볼을 점유하는 비율을 대폭 늘렸으며, 키퍼에서부터 공격수까지 전개되는 과정이 거의 짧은 패스를 중심으로 키퍼->센터백->레지스타->메짤라로 차례차례 확실하게 이어지게 하면서 안정적인 볼배급을 가능하게 하였다.

공격적인 측면에서도 첫시즌은 이과인에게 편중되어 있긴 했지만 이과인 이적 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다양한 공격루트를 개발해 냈고, 선수단의 롤도 확실하며 수비도 매우 안정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 오프더볼 움직임이 베니테즈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선수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상대 수비를 정신없게 만든다.

우선 가장 주된 공격루트는 왼쪽측면을 통한 돌파 이후 크로스를 하면 오른쪽에서 받아먹는 것이다. 단순한 공격루트이지만 왼쪽 측면이 인시녜, 메르텐스 같은 크랙급 드리블러들이고 오른쪽에서 이 공을 받아먹는 선수가 카예혼, 밀리크 같이 위치선정과 침투가 좋고 골결정력이 치명적인 선수들이다 보니 막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거의 치트키급. 지공상태에서도 역습상태에서도 훌륭한 성공률을 보여주며 특히 수비가 적은 역습상황에서는 상대팀 입장에서 슈팅이 빗나가기만을 기도하는 수밖에 없을 정도이다. 사리감독시절 초창기에는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굴람이 왼쪽측면에서 완벽한 공격적인 재능을 뽐내는 윙백으로 자리를 잡게되고, 함식-인시녜로 이어지는 왼쪽측면의 원투가 제대로 살아나면서 왼쪽측면의 파괴력이 극강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이 왼쪽 측면 돌파 후 오른쪽으로 크로스 후 골을 노리는 전술은 사리감독의 두번째 시즌이 되면서 파훼법이 어느정도 개발되었고, 덕분에 16-17시즌 초창기에는 잘 통하지 않게되어 고전했다. 그러나 제로톱 메르텐스의 활용도가 다방면으로 연구되고, 오른쪽 미드필더인 지엘린스키의 파괴적인 드리블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그 비중이 조금 줄어들고 현재의 나폴리는 더욱 더 다양한 방향에서 공격루트를 살려가고 있는 중이다.

나폴리의 3미들은 각각 주어진 역할이 다르다. 공격형 플레이메이커는 거의 함식 포지션이며 원터치, 롱패스 등으로 역습템포를 그대로 살려준다. 베니테즈 흑역사 시절 이후 본인도 노력을 했는지 볼키핑 면에서도 장족의 발전을 이루어 그야말로 전방 기지의 역할을 충실히 해준다. 수비형은 주로 조르지뉴의 포지션으로, 4백을 보호하고 수비진에서 전달되는 패스를 받아 함식 또는 공격진에 직접 연결하는 핵심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중앙에는 주로 알랑, 그리고 이후에 영입된 지엘린스키가 포진하는데, 롱패스를 통한 공격지원을 하는 조르지뉴와는 달리 중앙에서 강렬한 드리블 돌파(소위 개돌)로 수비진을 흐트러트리는 역할을 주로 담당한다. 중앙에서 마치 전차처럼 공을 몰고 상대진영으로 돌진하기 때문에 보는맛이 있다. 단, 알랑이 출전했을때 약간 수비적인 밸런스를 많이 잡아주는데 비해서 지엘린스키가 출전할 경우엔 공격적인 무게가 더욱 실리는 차이가 있다.

수비진은 알비올, 쿨리발리라는 코어 센터진이 있다. 쿨리발리는 괴물같은 피지컬을 바탕으로 1대1 방어에 능하며, 쿨리발리가 상대 공격진과 싸우러 나가면 알비올이 주변을 커버하면서 쿨리발리를 보조한다. 풀백은 히사이, 굴람인데, 활동량과 신속한 공수전환 능력이 발군인 선수들로, 좌측 플레이메이킹이 기본인 사리감독의 전술하에서 굴람은 거의 최전방까지 전진하며, 히사이의 경우엔 공격적인 오버래핑보다는 전반적인 벨런싱을 맞추는 역할에 더 초점이 맞춰져있다. 물론 16-17시즌 중반을 넘어서부터는 히사이를 필두로 오른쪽의 오버래핑도 어느정도 활발해지고 있는편이다.

전체적으로 베니테즈 시절부터 자랑하던 나폴리산 윙어들의 공격진 화력은 그대로 살리면서도 공격루트를 다변화시켰고, 그동안의 역습축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롱패스의 소위 뻥축구 개념에서 벗어나서 점유율을 기반으로 정교한 압박과 짧은 원투패스를 통해 전개효율성과 수비력을 모두 끌어올려 한두명의 스타플레이어에 더이상 의존하지 않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완성도 높은 팀을 만들었다는 평이다.

6.4. 안첼로티 시절

7. 기타

  • 와싯의 파스타툰에서는 이 팀 자체가 심슨 가족의 그림체로 묘사되었다.#
  • 챔피언스 리그에서 홈/원정 경기력 편차가 매우 큰 팀 중 하나이다.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스타디오 산 파올로는 열광적인 홈팬들의 응원으로 매우 유명하며, 대표적인 원정팀의 무덤으로 불리운다. 특히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그 정도가 매우 심해서, 본인들보다 한수 위로 평가받는 강팀들도 곧잘 잡아낸다. 챔피언스리그 홈성적은 22전 13승 6무 3패이며, 1994년 현 체제의 챔스 개편 이후로는 19전 12승 4무 3패이다. 잉글랜드의 명문인 아스날, 첼시, 맨시티는 물론, 도르트문트와 비야레알도 이 곳에서 패하였다. 유일하게 나폴리 홈에서 비긴 팀은 바이에른 뮌헨이다. 그러나 16-17시즌 베식타스에게 2-3으로 패함으로써 나폴리의 챔스 홈무패 기록은 깨졌다.
  • 반면 나폴리의 챔피언스 리그 원정성적은 22전 6승 5무 11패로[21] 홈 성적에 비하면 확실히 신통치 않은 편이다. 경기력 편차는 눈으로 보면 더욱 더 실감이 나는데, 홈에서 가패하던 팀한테도 원정 가서는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경우가 다반사고, 약팀들한테도 원정에서는 매우 고전하다 어렵게 승점을 따내는 패턴이 많다. 이렇듯 나폴리가 홈극강, 원정막장이다 보니 홈 앤 어웨이로 치러지는 챔스 특성상 상대팀과 홈 원정 1승1패씩 나눠갖는 것은 나폴리에게는 매우 흔한 일이다.
* 장내 아나운서인 데시벨 벨리니(Decibel Bellini)가 정말 유명하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일품이다. 나폴리 팬들 사이에선 웬만한 선수만큼의 인기를 누리는듯 하다.
* 챔피언스리그 노래가 나올때 팬들이 마지막 부분인 "the champions"를 떼창하는 것이 특징이다

8. 같이보기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000> 파일:uefaeuropaleague.png UEFA 유로파 리그
우승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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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우승팀 국가 첫 우승연도 우승 횟수
1 파일:Tottenham.png 토트넘 핫스퍼 FC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1972년 ★★
2회
2 파일:Liverpool.png 리버풀 FC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1973년 '''★★★'''
3회
3 파일:Feyenoord.png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파일:네덜란드 국기.png 1974년 ★★
2회
4 파일:B.Mönchengladbach.png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파일:독일 국기.png 1975년 ★★
2회
5 파일:Juventus.png 유벤투스 FC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1977년 '''★★★'''
3회
6 파일:PSV.png PSV 에인트호번 파일:네덜란드 국기.png 1978년
1회
7 파일:E.Frankfurt.png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파일:독일 국기.png 1980년
1회
8 파일:Ipswich.png 입스위치 타운 FC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1981년
1회
9 파일:Göteborg.png IFK 예테보리 파일:스웨덴 국기.png 1982년 ★★
2회
10 파일:Anderlecht.png RSC 안데를레흐트 파일:벨기에 국기.png 1983년
1회
11 파일:Madrid.png 레알 마드리드 CF 파일:스페인 국기.png 1985년 '''★★'''
2회
12 파일:B.Leverkusen.png 바이어 04 레버쿠젠 파일:독일 국기.png 1988년
1회
13 파일:SSCNapoli.png SSC 나폴리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1989년
1회
14 파일:InterMilan.png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1991년 ★★★
3회
15 파일:Ajax.png AFC 아약스 파일:네덜란드 국기.png 1992년 ''''''
1회
16 파일:Parma.png 파르마 FC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1995년 ★★
2회
17 파일:Bayern.png FC 바이에른 뮌헨 파일:독일 국기.png 1996년
1회
18 파일:Schalke.png FC 샬케 04 파일:독일 국기.png 1997년
1회
19 파일:Galatasaray.png 갈라타사라이 SK 파일:터키 국기.png 2000년
1회
20 파일:Porto.png FC 포르투 파일:포르투갈 국기.png 2003년 ★★
2회
21 파일:Valenciacf.png 발렌시아 CF 파일:스페인 국기.png 2004년
1회
22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SKA_Moscow_logo.png PFC CSKA 모스크바 파일:러시아 국기.png 2005년
1회
23 파일:Sevilla.png 세비야 FC 파일:스페인 국기.png 2006년 ★★★★★
5회
24 파일:Zenit.png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파일:러시아 국기.png 2008년
1회
25 파일:ShakhtarDonetsk.png FC 샤흐타르 도네츠크 파일:우크라이나 국기.png 2009년
1회
26 파일:Atletico.png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파일:스페인 국기.png 2010년 ★★★
3회
27 파일:Chelsea.png 첼시 FC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2013년 ★★
2회
28 파일:ManUtd.png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2017년
1회
우승 횟수에 굵은 글씨로 되어 있는 구단은 UEFA 영예의 배지를 부착할 수 있는 구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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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식적으로는 이 해를 창단연도로 인정한다.[2] 원래는 10만 석이 넘는 초 거대 종합 경기장이었지만 경기장 개보수 이후 현재의 60,240석으로 줄었다. 1층의 시야가 엄청나게 별로라 폐쇄하는 경우가 많아서 사실상 5만 5천명 정도 수용 가능하다.[3] 사실 유베가 나폴리를 싫어한다기 보다는 나폴리가 일방적으로 유베를 싫어하는 것이 더 크다. 유베와의 라이벌 관계를 따로 지칭하는 말은 없지만, 나폴리 팬들이 가장 싫어하는 구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80년대 미셸 플라티니디에고 마라도나가 활동한 시기부터 라이벌 의식이 불붙었으며 2010년대에 들어 나폴리의 전력이 강해진 것과 곤살로 이과인의 유벤투스 이적으로 또다시 타올랐다.[4] 태양의 더비라는 뜻이다.[5] 이탈리아의 유명한 영화제작자 디노 데 라우렌티스의 조카이다. 이탈리아계 미국인 요리사 지아다 데 로렌티스의 당숙이기도 하다. SSC 바리의 구단주도 겸임하고 있다.[6] 세리에 A 단일시즌 최다골 기록[7] 이때를 최전성기라고 보면 된다. 리그 우승 2번과 코파 이탈리아, UEFA컵 등 굵직한 대회에서 잇따라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8] 당시 강등된 팀과의 승점차는 겨우 1점. 하지만 이정도는 약과다. 라치오는 강등권과 승점이 같았으나 득실차에서 2골이 앞서 강등을 모면했다.[9] 1970년 칼리아리 칼초의 스쿠데토를 제외하면 로마 이남 지역에서 스쿠데토를 따낸 팀은 나폴리가 처음이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북부 동맹이 정권을 쥐고 있었으며 그들의 남부 지방에 대한 차별 속에서 따낸 나폴리의 스쿠데토는 단순히 축구에서의 성공이 아닌 정치·사회적으로 상징적인 반항 행위라고 할 수 있었다.[10] 이때 클럽명인 S.S.C.나폴리라는 이름도 사용금지 처분을 받는다.[11]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영화제작사인 필마우로의 소유주[12] 출생지는 로마이지만, 집안이 나폴리 출신[13] 복귀하는 과정이 상당히 드라마틱한데, 나폴리는 당시 2위를 달리고 있었고 마지막 경기인 제노아 CFC와 비기기만 해도 자력승격이 가능했다. 제노아 또한 승격을 노리는 팀이었기에 팽팽한 경기가 이어지다가 경기 종료 몇 분을 남기고 당시 4위였던 피아첸사가 비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당시 나폴리와 제노아의 스코어는 0-0으로 이대로 끝나면 두 팀 모두 승격할 수 있었다. 팬들은 경기장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한바탕 축제가 벌어졌다. 심판이 간신히 사태를 진정시키고 경기를 속행했지만, 선수들의 유니폼은 경기장에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다. 결국 선수들은 근처에 있던 유니폼을 아무것이나 주워입었고 이들은 각각 팀 동료의 유니폼을 입은 채로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이 경기 이후 나폴리와 제노아 서포터들은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14]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시티, 비야레알과 한 조가 되었다.[15] 삼각편대가 유럽에 이름을 알린 것도 이때다.[16] 유벤투스 이적 전만해도 상당한 결정력의 소유자로 기대를 모았으나 잦은 부상으로 인해 기복이 심해져 망했으나 18/19시즌 세리에 득점왕을 달성한다.[17] 모두 알다시피 나폴리 시절의 카바니는 리그와 챔스를 가리지않고 상대팀의 멘탈을 탈탈 털어먹던 존재였다. 그러나 카바니 특유의 결정력 자체에 대한 문제는 이때도 어느정도 대두되었던 상황이었고 파리에 와서는 출전시간 부족 + 자신감 결여까지 겹친 탓인지 거의 헬에 가까운 경기력으로 추락했다가 지금은 다시 월드클래스 공격수로 부활했다.[18] 66년만의 세리에 최다득점 기록으로 설명 끝. 15-16시즌 기준으로 그보다 뛰어난 결정력을 보여준 9번은 수아레즈 뿐이었다.[19] 본래 윙포워드였으나 밀리크의 십자인대 부상으로 16-17시즌 제로톱으로 나와서 리그에서만 28골을 득점했다.[20] 마렉 함식 제외.[21] 개편 이후로는 19전 5승 4무 10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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