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03 03:58:28

북아일랜드

영국의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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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왕국 구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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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식기)
북아일랜드
해외 영토
몬트세랫 버뮤다 지브롤터 케이맨 제도
아크로티리 데켈리아 앵귈라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영국령 인도양 지역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포클랜드 제도 핏케언 제도 영국령 남극 지역 *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 세인트헬레나 어센션 트리스탄다쿠냐
(세인트헬레나, 어센션 섬, 트리스탄다쿠냐)
*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영토
왕실 직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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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올더니, 사크)
저지 행정관 관할구
(채널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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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일랜드
Northern Ireland | Tuaisceart Éireann | Norlin Airlann
위치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British_Isles_United_Kingdom_NI_highlighted.svg.png
수도
벨파스트
면적
14,130㎢
인문환경
국가 영국 파일:영국 국기.png
공용어 영어(사실상)
지역 언어 아일랜드어, 얼스터 스코트어
인구 1,885,400명(2019 추산)
인구밀도 133.0명/㎢
민족구성 영국인 48.4%, 아일랜드인 28.4%, 북아일랜드인 29.4% (2011)
하위 행정구역
26개 구(district)
정치
정치체제 입헌군주제, 단일국가 산하의 자치정부, 의원내각제, 단원제
국가원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국왕
행정수반(First Minister) 공석[A]
행정부수반(Deputy First Minister) 공석[A]
ISO 3166-1
NIR, GB-NIR
도메인
없음(.uk 등 사용)



1. 개요2. 상징
2.1. 명칭2.2. 깃발2.3. 노래2.4. 기타
3. 역사4. 아일랜드 분쟁5. 정치
5.1. 정부와 의회5.2. 정당
6. 구성7. 행정구역8. 기타


1. 개요

아일랜드 섬의 북부 영국령 지역으로 아일랜드 섬 동북부에 위치하고 그레이트브리튼에 위치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와 함께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영국)을 이루는 구성국 중 하나다. 원래는 아일랜드 섬이 통째로 영국의 구성국이던 시절이 있기 때문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와 달리 '국가'(구성국)보다는 '지방'(region 또는 province)으로 취급되는 경우도 많다.

이곳은 아일랜드계 이외에 스코틀랜드에서 넘어온 개신교도 스코트인도 많이 섞여 살았기 때문에 남쪽의 아일랜드가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날 때 남아버렸다. 남쪽의 아일랜드도 북아일랜드를 언젠가는 통일해야 할 대상으로 보아서 아일랜드 헌법에서는 북아일랜드도 명목상으로는 자국 영토로 규정하고 있었다. 1937년 아일랜드의 공화국 선포 당시부터 1999년까지 아일랜드 헌법 2조의 규정이었다.[3] 지금은 아일랜드 섬 전체가 아일랜드 영토라고 하지는 않는다. 1998년 아일랜드영국, 북아일랜드 내 각 정당들은 북아일랜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벨파스트 협정에서 아일랜드가 헌법의 영토 조항을 삭제하기로 했다. 1999년 아일랜드는 국민 투표를 통해 개헌을 해서 현행 헌법에서는 대신 간접적인 표현[4]으로 변경되었다. 물론 예외 규정을 통해 남북 아일랜드가 통일되기 전까지는 아일랜드의 헌법이 적용되는 지역은 현재 아일랜드의 실효 지배 지역으로 한정됨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지금도 아일랜드 헌법에서는 북아일랜드 역시 아일랜드 영토에 해당됨을 염두에 두고는 있으나 대놓고 영토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는다. 세계적으로 헌법에 영토의 범위를 규정하는 경우는 그렇게 흔하지 않다.

비교적 안정되어 있는 서유럽 지역에서 드물게 분쟁이 많은 곳이다. 축구할 때 독립 국가가 아니면서 출전 자격이 있는 지역이지만 웨일스와 더불어 인적 자원이 적은지라 유럽 예선에서 별로 선전하지 못한다.

영국 '본토'의 개념을 뭘로 잡느냐에 따라 이곳은 영국 본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만약 영국 본토가 그레이트 브리튼 섬을 가리킨다면 이곳은 영국 본토가 아니게 되고 연합왕국이라고 부르는 모든 지역[5]을 가리킨다면 이곳도 영국 본토에 속하게 된다. 국민 정서상으론 전자에 가깝지만 정치적으로는 후자의 정의를 따르는 게 대체로 유리하다. 영국 국회 하원 의원[6] 지역구도 만들어져 있다.


2. 상징

2.1. 명칭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 섬의 지역 구분(four provinces)[7]에 따라 '얼스터(Ulster, 아일랜드어로는 Ulaidh)'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아일랜드 섬에서 얼스터 지역은 9개 주(counties)로 이루어져 있고 이 중 영국령 북아일랜드는 6개 주[8]에 해당하므로 엄밀하게 말하면 틀린 것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얼스터 = 북아일랜드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은 이런 용법을 매우 싫어한다.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은 북아일랜드의 존재를 아예 인정하지 않아서 the North,[9] '6개 주(six counties)', 더 심한 경우 the occupied six 등으로 돌려 부르기도 한다. 묘하게 이북 5도스럽다 하지만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는 일반적으로 분단국가로 인식되지 않는다. 북아일랜드의 영국 연합주의자들은 구어에서 북아일랜드의 애칭으로 Northern Ireland가 줄어든 논 아이언(Norn Iron)도 사용하고 있다.

2.2. 깃발

현재 북아일랜드 내 유일한 깃발은 영국 국기뿐이나 당연히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은 싫어한다. 그래서 벨파스트 시의회가 시청에 영국 국기를 거는 날을 국경일로 제한하는 조례를 통과시키기도 했고 이 때 연합주의자들이 폭력 시위를 벌여 난리가 났다.

파일:external/www.worldstatesmen.org/gb-niedw.gif

이 깃발은 '얼스터 배너'라 부르는 1924년부터 1972년까지 사용된 구 북아일랜드 자치 정부의 문장[10]에서 따온 것이다. 다만 문장 속 방패의 문양에는 튜더 왕조의 왕관이 들어가 있었지만 공식 얼스터 배너의 왕관은 성 에드워드 왕관[11]으로 바뀌었다. 문장과 달리 얼스터 배너 자체가 공식적으로 북아일랜드의 국기로 지정된 건 1953년으로 그 전까지는 비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하필 1953년에 공식 지정된 것은 그 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대관식[12]을 치른 것을 북아일랜드 연합주의자들이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얼스터 배너는 1972년까지 공식적인 국기로 지정되었으나 구 자치 정부가 해산됨에 따라 국장과 함께 공식 지위를 상실했다. 현재 영국을 지지하는 연합주의(unionist) 진영에서만 사용하고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은 이 깃발을 싫어해 아일랜드의 국기를 사용한다.[13] 북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연합주의자들이 주도)이 국제 대회에 나갈 때는 이 기를 사용한다. 커먼웰스 게임에서도 북아일랜드 대표팀이 이 깃발을 쓴다.

깃발 한가운데에 있는 문장은 '얼스터의 붉은 손'이라 부르는데 아일랜드의 왕이 되려고 자신의 오른팔을 잘라 바위에 던진 '헤레몬 오닐'의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손바닥은 얼스터 지방의 전통 깃발에서도 보이는 문양인데 얼스터 배너의 손과 다른 점은 엄지 손가락을 손바닥에 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얼스터 배너에는 얼스터 지방 깃발과 달리 6각 별이 들어가 있는데 이것은 얼스터 지방을 이루는 9개 주 중에 북아일랜드에 속한 6개 주를 상징하는 것이다. 왕관은 영국 국왕/여왕을 상징한다.

북아일랜드의 온건한 영국 연합주의자들이나 중립을 자처하는 극소수의 주민들 사이에서 북아일랜드의 모든 주민들을 대표할 수 있는 새로운 중립적인 국기를 만들자는 제안이 종종 나오고 있다. 얼스터 배너는 대놓고 잉글랜드의 성 조지 기가 들어가 있고 왕관이 그려져 있어서 영국 연합주의자들의 국가관이 투영되어 전혀 중립적인 깃발이 아니다. 온건파들은 이 부분에 문제를 제기하고 좀 더 중립적인 깃발을 고안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강경한 영국 연합주의자들은 유니언잭과 얼스터 배너 사용을 고집하는 데다가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은 아일랜드 삼색기를 고집하면서 북아일랜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들기 때문에 새로운 북아일랜드 국기 제정에 합의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결국 공식 국기가 없이 각 진영이 자기가 원하는 깃발을 사용하는 현재 상태가 장기간 유지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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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수립 후 아일랜드(현 독립국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모두 포함)의 전통적인 국기는 세인트 패트릭(성 파트리치오) 깃발로 현 영국 국기의 빨간색 'X'자 심 부분이기도 하다. 아일랜드 남부가 아일랜드 자유국과 현재의 아일랜드로 독립한 이후에도 아일랜드 섬 전체나 성 파트리치오를 상징하는 깃발로 쓰이고 있긴 하지만 공식 지위는 없다. 그러나 북아일랜드가 현재 공식 깃발이 없기 때문에 북아일랜드에서 이 깃발을 북아일랜드 깃발 대용으로 쓰는 경우들이 있고 또한 북아일랜드 자치 경찰의 문장에도 이 깃발이 들어가 있다.

사실 이 깃발은 원래 성 파트리치오의 깃발이 아니다. 성 파트리치오는 순교자가 아니었으므로 그의 고난을 상징하는 십자가가 따로 없었다. 이 문양은 전통적으로 잉글랜드 국왕을 대신해서 아일랜드를 통치한 피츠제럴드 가문의 문장인데 이걸 억지로 잉글랜드성 제오르지오(세인트 조지) 기, 스코틀랜드사도 안드레아스(세인트 앤드루) 기와 짝을 맞춘 성 파트리치오 기로 둔갑시킨 뒤 유니언잭에 합쳐 버린 것이다. 현재 성 파트리치오 기는 아일랜드 섬 내에서 아일랜드 섬 전체와 성 파트리치오를 상징하는 깃발로 취급을 받고는 있으나 강경한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은 이런 역사적 경위를 문제 삼아 영국의 침략자들이 만든 아일랜드의 상징이라면서 사용을 거부하고 있다.

한편 북아일랜드에서는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을 상대로 테러도 서슴지 않았던 소위 충성파(loyalists)라는 이들이 존재하는데 이들 중 일부 분파는 영국 정부의 온건한 태도에 실망하여 북아일랜드를 영국도 아니고 아일랜드도 아닌 독립 국가로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14]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을 얼스터 민족주의자(Ulster nationalists)라고 부른다. 이들은 자기들 나름의 얼스터(북아일랜드) 국기를 만들어서 쓰고 있다. 아일랜드의 성 패트릭 기, 스코틀랜드의 성 앤드루 기, 북아일랜드 6개 주를 상징하는 6각 별(단 얼스터 배너와 달리 금색으로 색칠), 얼스터를 상징하는 붉은 손을 결합한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상징을 집어 넣은 이유는 북아일랜드의 영국 연합주의자, 충성파의 조상이 제임스 1세 때 얼스터로 집단 이주한 스코틀랜드 로울랜드 주민들이었기 때문[15]이다. 그리고 얼스터 배너와 달리 왕관을 삭제해 영국 국왕/여왕에 대한 충성을 거두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 얼스터 민족주의자들의 깃발은 북아일랜드 주민 다수한테 정치적 극단주의의 상징으로 취급되어 인식이 좋지 못하다.

2.3. 노래

북아일랜드를 상징하는 공식적인 노래는 없다. 친영 연합주의자들은 God Save the Queen을 부르고 북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이 국제 대회에 나갈 때도 국가로 같은 것을 사용한다.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과 국가가 같기 때문에 두 팀이 경기를 할 경우 국가를 공동으로 한 번만 연주한다.[16] 하지만 이 노래는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은 런던데리 노래(Londonderry Air)에 Danny Boy라는 가사를 얹은 것을 국가처럼 간주하고 부르고는 한다. 커먼웰스 게임에서도 북아일랜드 대표팀이 이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이게 영국 치하에서 아일랜드인이 겪은 고초를 노래한 것이라 친영 연합주의자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2.4. 기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와는 달리 북아일랜드는 도메인이 따로 없다. 친영 연합주의자들은 .uk를 선호하고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은 아일랜드의 .ie를 선호한다. 아일랜드 민족주의 성향이 아닌 민간인들은 북아일랜드(NI)를 강조하고 싶을 때 엉뚱하게도 니카라과의 도메인인 .co.ni를 쓰기도 한다. 북아일랜드 자치 정부 자체적으로 최상위 도메인을 만들어 내어 등록하는 것도 이론상 가능하기는 하나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은 북아일랜드라는 존재 자체를 인정하려고 들지 않고 있고 이들이 자치 정부에 마지 못해 끼기는 하나 적극적으로 북아일랜드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 차라리 북아일랜드 현지의 민간 기업에서 도메인 등록에 나서는 게 더 현실성 있지만 수익이 담보되지 않으니 이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3. 역사

영국과 아일랜드의 역사
History of the United Kingdom / Foras Feasa ar Éiri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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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베드 왕국 데헤이바스
잉글랜드 앵글족 노섬브리아 데인로 잉글랜드 왕국
머시아
동앵글리아
색슨족 웨식스 웨식스
에식스
서식스
주트족 켄트
잉글랜드 왕조 칠왕국 웨식스 왕조 노르만 왕조 앙주 왕조 플랜태저넷 왕조 랭커스터 왕조 요크 왕조 튜더 왕조 튜더 왕조 스튜어트 왕조 스튜어트 왕조 하노버 왕조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 윈저 왕조
잉글랜드 시대 장미 전쟁 엘리자베산 조지안 빅토리안 에드워디안
대영제국 }}}}}}}}}


이 지역은 그레이트브리튼-스코틀랜드에 무척 가까워서 예로부터 인적 교류가 있었다. 고대에 아일랜드가 팽창했을 때는 아일랜드인들이 여기를 통해 스코틀랜드로 건너가 정착하기도 했는데 후대에 잉글랜드가 팽창해 아일랜드가 복속되자 개신교인들이 대거 이주해 이 지역에 정착했다.(그중에는 잉글랜드화, 개신교도화된 아일랜드 출신도 있었다) 아일랜드인들은 여전히 가톨릭을 믿고 있었고 개신교도들이 가톨릭교도들을 박해하면서 분쟁이 일어났다.

20세기 들어 아일랜드는 투쟁 끝에 독립을 쟁취했으나 개신교도 수가 가톨릭교도보다 많은 이 지역은 개신교도를 중심으로 영국에 잔류하기를 원해 반독립 운동을 벌였던 곳이었다. 아일랜드의 독립 운동을 주도한 세력들도 북아일랜드 문제로 분열되어 1922년 아일랜드 내전이 일어났고 결국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을 국토로 아일랜드 자유국이 수립된다. 신생 독립국의 안정을 원한 아일랜드 정부에 의해 북아일랜드는 버려졌고 이후 북아일랜드는 끝없는 분쟁이 일어났다.

보다 못한 영국에서 군대를 보내 치안을 유지했으나 1972년 피의 일요일 사건을 터트리는 등 30년 동안 IRA와 소모적이고 성과 없는 분쟁 이후 철수했다. 공식적으로는 보그사이드 전투라 불리는 데리/런던데리[17]에서 일어난 1969년의 대대적인 시위 이후 1998년 굿 프라이데이 협정으로 분쟁에 관련된 대부분의 무장 단체가 종전 선언을 했을 때까지의 기간을 북아일랜드 분쟁 혹은 영어로는 The Troubles라고 부른다.

2019년 브렉시트로 인해 EU 회원국으로 남는 아일랜드 국경에서 이른바 '하드 보더(Hard Border)'로 발생할 수 있는 소요 등의 문제에 대한 긴장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2019년 4월 데리에서 IRA계가 주도한 시위를 취재하던 벨파스트 출신 기자가 총격을 받아 사망하는 등의 일이 일어나 영국 정부에서도 긴장하고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

4. 아일랜드 분쟁

기본적인 대립 구도는 이주 영국인 VS 토착 아일랜드인의 구도로 개신교도들을 중심으로 한 이주민은 영국 잔류를 희망하고 영국 국기를 걸어놓는 반면 반대로 아일랜드인은 독립국 아일랜드와의 통합을 바라고 아일랜드 국기를 걸어놓고 있다. 영국은 개신교도 VS 가톨릭교도의 종교 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아일랜드인들은 식민 VS 반식민의 이념 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 본토[18]-아일랜드의 민족 구분은 혈통이 아니라 출신 지역별로 구분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잉글랜드 출신 부모를 가진 아이가 아일랜드에서 태어나면 이 아이는 Irish로 분류했고 지금도 어느정도는 마찬가지다. 아일랜드 독립 운동의 거두였던 찰스 스튜어트 파넬(Charles Stewart Parnell) 같은 경우 Irish로 분류되고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족보나 가문을 따라가 보면 잉글랜드계(Anglo-Irish)였다.[19] 때문에 오늘날 북아일랜드의 갈등은 Irish vs English, Irish vs Scottish의 민족 갈등보다는 신교 vs 구교, 왕당파 vs 공화파, 연합주의 vs 아일랜드 민족주의 사이의 다양한 종교, 이념, 사상 갈등으로 봐야 할 것이다. 수도인 벨파스트는 개신교 지역과 가톨릭 지역이 벽으로 확연히 나뉘어 있는 분단된 듯한 도시로 거리 곳곳에 지지 정파를 드러내는 벽화가 그려져 있어 영국의 다른 지역과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중세부터 아일랜드의 농민들은 영국의 지주로부터 큰 수탈을 당해왔고 산업 사회가 되어서는 영국의 산업 자본 밑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노동자가 되었다. 영국은 북아일랜드를 버리지 못하는 근원적인 이유로 영국군이 물러날 경우 이주 영국인과 개신교도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이주를 강권하자니 죽어도 이주는 안 하겠다고 하고(사실 영국 본토 이주 지원 대책도 엄청난 자금이 소요된다) 막대한 지원비만 타내고 쓸 만한 산업 기반도 노동력도 없는 북아일랜드는 엄청난 짐이라는게 영국의 설명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의 독립으로 스코틀랜드까지 떨어져나가면 '연합 왕국'이라는 체제 자체가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때문도 있다.

이 지역 무장 단체로는 IRA가 유명하고 영국 충성파가 만든 UDA 등 반 IRA폭력 단체도 극성을 부렸다. 일단은 IRA는 2005년 무장 해제를 선언해 극소수 원칙주의자를 제외한 IRA의 무장은 공식적으로 해체된 상태다. 그래도 산발적으로 무력 테러가 일어나기도 하고 있다. 일단은 북아일랜드는 다른 영국의 지역에 비해 광범위한 자치를 보장받고 있는 편이기는 하다.

좌우 이념도 있어서 대개 영국 충성파는 우익이고 반대로 독립파는 좌익이다. 1920~60년대 사이 IRA는 노골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 노선을 주장했고 IRA가 이것에 집착해 실제로 가톨릭 주민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에 반발해서 60년대 후반에 분리해 나간 다수파 PIRA 또한 반민족주의적 극좌 성향을 배격하긴 했지만 최종적인 슬로건은 여전히 통일된 (united), 민주적인 (democratic), 사회주의 (socialist) 아일랜드 공화국(Irish Republic) 성립을 유지하고 조직 내에도 단순한 반영 민족주의를 넘어 이런 성향이 있다. 현재 정당인 신페인 또한 사민주의적 정책을 많이 미는 등 아일랜드 민족주의 운동은 예나 지금이나 좌익 세력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5. 정치

5.1. 정부와 의회

북아일랜드를 포함한 아일랜드 섬에는 19세기부터 자치의회를 세워달라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아일랜드인들은 영국 통치 하에서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차별받았지만, 그래도 영국 본토처럼 지역에서 선거를 통해 의회에 진출한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아일랜드인들의 여론이 중앙 정치계에 제기될 수 있었다. 이렇게 아일랜드인들의 의사가 중앙 정치계에 전달되자 영국 자유당을 중심으로 19세기 중반부터 아일랜드에 자치를 허용하는 방안이 제안되었는데, 양원제 의회를 구성하고 아일랜드에 관련된 입법 권한의 많은 부분을 영국 중앙 정부 의회에서 새로 생길 아일랜드 자치 의회에 넘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국 본토에서는 영국 보수당을 중심으로 이 방안에 대해 연합 왕국을 해체할 것이라며 격렬한 반발이 일었고 아일랜드 내에서도 가톨릭이 대다수인 아일랜드 대부분의 지역과는 다르게 신교도가 주류였던 얼스터 지역은 자치 방안에 대해 결사 반대했다. 결국 자치 논의는 더 진전되지 못했다.

결국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은 자치를 포기하고 아예 무장 독립투쟁에 나섰으며, 이에 버티지 못한 영국은 1920년대 연합주의자들이 많은 얼스터 지역과 나머지 아일랜드 지역을 각각 북아일랜드와 남아일랜드로 분리해 별도의 양원제 자치의회를 세웠다. 그러나 아일랜드인들이 대다수였던 남아일랜드 자치의회는 하원의석 128석 중 124석을 아일랜드 민족주의 정당인 신페인이 차지하고는 의정활동을 거부하고 독립투쟁에 나섰으며, 결국 영국 정부는 아일랜드 독립운동가들과 타협해 남아일랜드에 영국의 자치령 아일랜드 자유국을 세우고, 남아일랜드 자치의회는 폐지된다. 그리고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남아 자치를 시작했다.

그러나 자치는 처음 시작부터 삐그덕댔다. 북아일랜드는 1인 1표의 보통 선거제가 아니라 보유한 재산에 따라 투표권을 주는 제한 선거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경제력에서 게임이 안되는 가톨릭계가 정치적으로도 제대로 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1970년대까지 연합주의자들의 정당이었던 얼스터 통일당은 북아일랜드의 만년 여당으로 군림했고, 신페인과 기타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은 북아일랜드 자치의회의 인정 자체를 거부하여, 선거에만 참여할 뿐 의정활동을 거부했다. 1950년대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수반이 된 얼스터 통일당의 테렌스 오닐(Terence O'Neill) 등 몇몇 연합주의자들이 아일랜드계에 대한 차별 철폐를 약속하고 이를 추진하자 몇몇 민족주의자들이 다시 의정활동에 나서기도 했지만 이에 대해 연합주의자들로부터 반발이 터져 얼스터 통일당은 분열을 겪었다. 이로 인해 차별 철폐가 수포로 돌아가자 아일랜드계는 자치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저버리고 무장투쟁에 나섰으며, 연합주의자들도 무장 단체를 결성해 맞섰다. 결국 1972년에 영국 중앙정부는 제대로 기능하지 않던 자치의회를 폐지하고 직할 통치했다. 그 뒤로도 자치의회를 부활시키려는 노력은 있었지만 연합주의자와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의 갈등이 워낙 커서 수포로 돌아갔다.

벨파스트 협정으로 북아일랜드 분쟁을 봉합하고 1999년에 부활한 자치의회는 90석의 의원을 선출하는 단원제 의회이다. 선거는 의회해산이 없다는 가정 하에 5년마다 치러지며, 북아일랜드 전역에서 소선거구제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통해 선출된다. 원내 모든 의원들은 본인이 영국 연합주의자(Unionist, U)인지 아일랜드 민족주의자(Nationalist, N)인지 기타(Other, O)인지 등록해야 하며, 이 때 가장 많은 의석을 가진 진영에서 총리(First Minister)를, 두 번째로 많은 의석을 가진 진영에서 부총리(deputy First Minister)를 지명하고 영국 국왕이 형식적으로 이를 임명한다.

이런 시스템은 쌍두정(diarchy)과 대연정(grand coalition)을 사실상 강제하는 역할을 한다. 영국 정부와 스코틀랜드·웨일스 자치 정부의 수반은 영국 정부의 총리(Prime Minister)와 스코틀랜드·웨일스의 총리(First Minister)로 1명이다. 영국 정부와 스코틀랜드·웨일스 자치 정부에서는 부총리(deputy Prime Minister나 deputy First Minister)[20]가 있을 경우 이들은 명목상 총리 '다음'의 지위를 갖는 사람들이 된다. 하지만 북아일랜드에서는 총리가 의전에 한해 부총리보다 앞설 뿐 법적인 권한은 동등한 공동 정부 수반이다. 그리고 제도 설계에 따라 자연스럽게 다수파인 연합주의 진영에서 총리를, 소수파인 아일랜드 민족주의 진영에서 부총리를 배출하므로, 양 진영이 모두 자치 정부에 참여해 두 진영의 반강제적인 타협을 유도함으로써 양측의 갈등을 최소화할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양 진영 간의 합의가 잘 이뤄지지 않으면 무력한 정부가 될 위험 역시 크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북아일랜드 자치가 재개된 지 얼마 안 된 2002년 10월 15일부터 2007년 5월 8일까지 자치 의회의 갈등으로 자치 정부 내각을 구성하지 못해 자치 정부의 기능이 정지되고 그 기간 동안은 영국 중앙 정부가 대신 직접 북아일랜드를 관리한 적이 있었다. 2017년 민주연합당신페인의 연립 정부가 깨지고 조기 총선이 치러졌으나 2년째 정부를 구성하고 못하고 있다.

1970년대까지 있었던 북아일랜드의 자치 정부는 Government of Northern Ireland였고 양원제 자치 의회는 Parliament of Northern Ireland[21]였으나 현 자치 정부는 Northern Ireland Executive, 현 단원제 자치 의회는 Northern Ireland Assembly라고 불린다. 자치 정부의 총리·부총리도 과거엔 Prime Minister와 Deputy Prime Minister였으나 현재는 First Minister와 deputy First Minister[22]다. 총리·부총리 직함의 경우 스코틀랜드·웨일스 자치 정부와의 통일성을 위해 변경하지 않더라도 자치 정부와 자치 의회는 더 정부답고 더 의회다운 Government와 Parliament로 변경할 수도 있지만[23] Government와 Parliament라고 하면 1970년대 이전 자치 정부·자치 의회가 있던 시절의 상황이 연상되기 때문에 그런 움직임은 없다.

북아일랜드 자치의회에는 cross-community vote라는 특유의 표결 절차가 있다. 논란의 여지가 큰 의안(議案)의 표결(법률 제정의 마지막 단계인 본회의 표결 등)은 단순히 의원 다수의 찬성 뿐만 아니라 연합주의자로 등록한 의원 다수의 찬·반과 민족주의자로 등록한 의원 다수의 찬성을 모두 얻어야 가결된다. 한 진영(특히 다수파인 연합주의자들)이 다수로 압살해 버리는 상황을 방지하고 소수파(대개 민족주의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24] 이 cross-community vote는 모든 의안의 표결에 전부 적용되는 건 아니고 의원 1/3이 요구하면 의장에 의해 해당 의안이 cross-community vote에 회부된다. 본래는 총리와 부총리도 비슷한 방식으로 뽑았는데 이렇게 해놓고 보니 2002년부터 내각 구성이 안 되는 사태가 벌어져(...) 2006년에 지금처럼 바뀌었다.

5.2. 정당

파일:Northern Ireland Assembly.png 북아일랜드 자치의회의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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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border:0px solid; margin:-11px; margin-top:-8px; margin-bottom:-6px"
(괄호 안은 북아일랜드 자치의회 의석 수)
영국 연합주의 (40석) 아일랜드 민족주의 (39석) 기타 (11석)

연립 여당
민주통일당
(27석)
신페인
(27석)
-

야당
얼스터 통일당
(10석)
사회민주노동당
(11석)
북아일랜드 동맹당
(8석)
전통적 연합주의자의
목소리 (1석)
녹색당
(2석)
무소속
(2석)
무소속
(1석)
이익보다 먼저
사람들을 (1석)
1. 현재 자치정부 내각이 구성되지 못해 영국 중앙정부의 북아일랜드부에서 대행 중.
2. 현직 자치의회 의장은 민주통일당 소속이며 위 표의 민주통일당 의석 수에 포함됨.
3. 자치의회 의원들은 반드시 연합주의자(영국 잔류파), 민족주의자(아일랜드 통일파), 기타 중 하나를 등록해야 함.
}}}}}}


북아일랜드에서는 현지 기반의 정당들이 주요 정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그레이트브리튼의 주요 정당들은 별로 힘을 쓰지 못하거나 아예 활동 자체를 하지 않는다. 보수당은 선거 때마다 형식적으로나마 북아일랜드에 후보를 내고 있다. 본래 연합주의(Unionist) 정당인 얼스터 통일당(Ulster Unionist Party, UUP)과 자매 관계에 있었으나 1970년대 이후 관계가 틀어져 1980년대 말부터 북아일랜드 현지에 당 조직이 들어서서 선거에 자기 당 후보를 공천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당은 형식적으로만 공천을 했을 뿐 실제론 별 인기가 없었고 UUP는 2000년대 이후 더 보수적이고 강경한 연합주의 노선을 취하는 민주통일당(Democratic Unionist Party, DUP)[25]에게 밀리는 상태다. 2009년 유럽 의회 선거와 2010년 총선에서 다시 부활한 이들의 연대는 2012년까지 유지되다가 해체되었고 이후 북아일랜드에서 치러진 선거에서는 보수당과 UUP가 별도로 공천을 했다. 참고로 2015년 총선에서는 UUP가 당세를 조금 회복해 2석을 당선시켜 하원 원내 정당으로 복귀했다.

영국 노동당자유민주당은 북아일랜드인들의 입당을 받아들이긴 해도 북아일랜드에 공천하진 않는다. 영국 노동당의 경우 창당 당시에는 아일랜드 섬 전체가 영국의 일부였는데 여기를 아일랜드 노동당[26]의 관할 지역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섬이 둘로 분할되어 북아일랜드만 영국에 남은 이후에도 이때의 방침이 오랫동안 남아서 2000년대까지 영국 노동당은 북아일랜드 사람들의 입당 자체를 막았다가 법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당원을 받기는 하고 있다. 그리고 북아일랜드 현안은 현지 주요 정당 중 하나로 아일랜드 민족주의 성향인 사회민주노동당(SDLP)과 연계해 처리했던 것도 있다. 자민당의 경우에는 자매 정당으로 북아일랜드 동맹당이 있다. 이 당은 자민당과 비슷한 정책 지향을 가지고 있고 상징색도 비슷하게 노란색 계열이다. 일부 북아일랜드 동맹 당원들은 아예 자유민주당 당적을 함께 가지고 있다.[27] 참고로 북아일랜드 동맹당은 북아일랜드의 양대 진영인 영국 연합주의(unionism, 북아일랜드의 영국 잔류 지지)와 아일랜드 민족주의(Irish nationalism, 아일랜드과의 통일 지지) 진영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는 몇 안 되는 정당이다. 북아일랜드 자치 의회에서도 동맹당 의원들은 기타인 O로 등록한다. 한편 좌파 아일랜드 민족주의 쪽의 주요 정당으로는 신페인당과 사회민주노동당(SDLP)[28]이 있다.

이들 북아일랜드 정당들은 영국 본토 정당들과 별개기 때문에 웨스트민스터(영국 국회의사당)의 전체 의회에도 의석을 가지고 있다. 신페인당은 영국 국회에 의석은 보유하지만 보이콧한다(abstentionism). 사실 신페인당의 이 전략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것으로 영국의 선거 인프라를 이용은 하지만 주민들의 지지만 증명해낸 뒤 의회 등 해당 조직의 정통성을 부정하기 위해 보이콧하는 방식이다. 아일랜드 독립 전쟁도 영국 총선 신페인 당선자들이 보이콧하고 더블린에 자신들만의 의회를 만들어 독립을 선언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후 영국과 온건 민족주의자의 타협으로 아일랜드 자유국이 성립되고 북아일랜드가 영국에 남게 되자 강경파인 신페인은 아일랜드 자유국(그리고 그 후계자인 현재의 아일랜드)과 북아일랜드의 거의 모든 선거에서 이 전술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류 정치권에서 배제되는 상황을 초래했고 세월이 흐르면서 현재의 아일랜드 정부까지 부정하는 게 실익이 없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신페인은 보이콧을 차례로 철회해 현재는 북아일랜드의 영국 하원 의원 의석에 대해서만 보이콧을 상징적으로 시행 중이다.

북아일랜드의 영국 노동당 당원들(대다수가 SDLP나 신페인과 달리 영국 연합주의자다)은 북아일랜드에 당 조직을 만들고 후보를 낼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괜히 SDLP하고 관계만 나빠지고 북아일랜드의 수렁에 빠지기 싫은 중앙당에서 수용하지 않고 있다. 북아일랜드의 자민당 당원들 중에도 자민당 명의로 후보를 내길 희망하는 경우가 있는 듯하나 역시 중앙당에서 자매 정당 동맹당과의 관계를 고려해 받아 들이긴 어렵다. 보수당이 북아일랜드에서 명목상으로나마 활동하는 건 과거 자매 정당이었던 UUP와 관계가 틀어졌다는 특수 상황 때문이다. 반대로 민족주의자들은 아일랜드의 보수 성향의 주요 정당인 피너 게일피어너 팔에 입당해 두 당에서 북아일랜드에 후보를 내기를 요구하고 있으나[29] 피너 게일과 피어너 팔 중앙당 입장에서도 굳이 이미 외국이 된지 한참 된 북아일랜드 정치에 갑자기 개입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쉽게 성사되지 않는다. 한편 영국독립당(UKIP)은 보수당처럼 북아일랜드에서도 버젓이 활동 중인데 역시 큰 지지를 얻진 못하고 있다.

북아일랜드 현지 주요 정당들 중에 영국 연합주의 정당들은 기본적으로 현 체제의 유지를 지향하기에 보수 성향이고 아일랜드 민족주의 정당들은 진보 성향이다. 반면 진보통일당(Progressive Unionist Party·PUP)처럼 진보임을 자임하는 영국 연합주의 정당들은 극단주의 세력[30] 취급을 받기도 쉽고 어차피 힘도 없고 보수임을 자임하는 아일랜드 민족주의 정당은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북아일랜드의 진보+영국 연합주의자가 영국 노동당에 지지하고 보수+아일랜드 민족주의자가 피너 게일과 피어너 팔을 지지하면서 제발 북아일랜드에서 활동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 밖에 북아일랜드 군소 정당으로 북아일랜드 녹색당(아일랜드 녹색당의 지부. 동맹당처럼 O로 등록한다), 전통 연합주의자의 목소리(Traditional Unionist Voice·TUV), 이익보다 인민 우선(People Before Profit·PBP, O로 등록)[31] 등이 자치 의회에 소수 의석을 보유하고 있다. 이전에 자치 의회에 의석을 보유한 적이 있지만 현재는 사라진 정당으로 NI21,[32] 북아일랜드 여성 연대(Northern Ireland Women's Coalition·NIWC),[33] 영국통일당(UK Unionist Party)[34]이 있었다. 북아일랜드가 영국과 아일랜드 모두에 속하지 않는 독립국이 되자고 주장하는 소위 얼스터 민족주의(Ulster nationalism) 세력도 있지만 이들은 철저히 소수 극단주의자[35]들로 취급당해서 정계 진출은커녕 군소 정당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북아일랜드 자치 정부에 도입된 쌍두제는 북아일랜드의 영국 연합주의와 아일랜드 민족주의 두 진영 간 극단적 갈등을 줄이기 위해 설계된 제도지만 양 진영 모두 온건한 입장의 정당(UUP와 SDLP)에서 더 극단적인 노선을 취하는 정당(DUP와 신페인)으로 주류를 교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공동 집권 상황에서는 목소리가 커야 협상 과정에서 자기 진영에 최대한 이익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쌍두정을 강제했더니 두 진영이 싸우다가 아예 자치 정부(정확히는 자치 정부의 내각)가 구성되지 못하는 사태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 그때마다 영국 중앙 정부의 북아일랜드 담당 장관만 바빠진다.

북아일랜드 지역구는 현지 정당이 잡고 있고 이들은 영국 중앙 정부의 내각에 잘 끼지 않기 때문에 자연히 그레이트브리튼 지역구 의원 중에 한 명이 북아일랜드 담당 장관을 맡는데,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담당 장관직에 현지 지역구 의원을 앉히는 것과 대조적이다.

6. 구성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Districts_of_Northern_Ireland_by_predominant_religion.png

적색은 개신교, 청색은 가톨릭 우세 지역이다. 2011년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는 40.8%를 차지한다. 한편 아일랜드 장로회 신자가 19.1%, 아일랜드 성공회 신자가 13.1%, 아일랜드 감리회 신자가 3.0% 등으로 개신교 신자는 41.6%를 차지한다.[36] 기독교가 아닌 타 종교 신자는 0.8%, 무종교/무응답은 16.9%였다.

같은 결과에 따르면 본인을 영국인(British)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48.4%, 아일랜드인(Irish)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28.4%, 북아일랜드인(Northern Irish)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29.4%, 잉글랜드인/스코틀랜드인/기타는 5.0%였다. 가톨릭 신자들은 본인을 영국인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12.9%, 아일랜드인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57.2%, 북아일랜드인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30.7%, 기타는 5.2%였다. 반면 개신교 신자들은 영국인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81.6%, 아일랜드인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3.9%, 북아일랜드인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26.9%였다.(복수 응답 가능)

아일랜드의 개신교 신자들은 거의 모두가 공화주의(Republican)인 반면[37] 북아일랜드의 개신교 신자들은 연합주의(Unionist)가 대다수를 차지한다.[38] 아일랜드에서는 개신교 신자라 하더라도 북아일랜드 독립을 지지하는 반면 북아일랜드에서는 개신교 신자들 상당수가 영국 잔류를 희망한다. 그래서 대부분 자신을 영국인이라 생각하는 것으로 나온 것이다. 반대로 가톨릭 신자들 중에서도 어차피 종교의 자유를 허용해 주는데 영국에 잔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입장이 존재한다.[39] 가톨릭은 공화주의, 개신교는 연합주의일 가능성이 높지만 예외는 존재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Northern_Ireland_Life_and_Times_Survey_constitutional_preference.png

벨파스트 퀸즈대학교와 얼스터대학교가 주관하는 연례 여론 조사로 푸른 계열은 영국 잔류, 붉은색은 (아일랜드와는 별개의) 북아일랜드 독립, 녹색은 아일랜드와의 통합, 노란색은 기타 의견, 회색은 관심이 없다는 응답이다.

7. 행정구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82px-Northern_Ireland_-_Counties.png

1921년부터 1972년까지는 위 지도처럼 전통적인 6개 주로 나누었다.
  • 앤트림(Antrim) - 2011년 기준으로 인구는 618,000명이고 주도는 앤트림이다. 북아일랜드의 주도 중심지 벨파스트는 대부분 앤트림 주에 있으나 다운 주에도 일부가 걸쳐 있다.
  • (런던)데리((London)derry) - 2011년 기준으로 인구는 247,000명이고 주도는 Coleraine이다. 북아일랜드 제2의 도시 런던데리/데리[40]가 있다.
  • 타이론(Tyrone) - 2011년 기준으로 인구는 178,000명이고 주도는 오마(Omagh)다.
  • 퍼매너(Fermanagh) - 2011년 기준으로 인구는 61,000명이고 주도는 에니스킬린(Enniskillen)이다.
  • 아마(Armagh) - 2011년 기준으로 인구는 175,000명이고 주도는 아마다.
  • 다운(Down) - 2011년 기준으로 인구는 532,000명이고 주도는 다운패트릭(Downpatrick)이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rthern_Ireland_-_Local_Government_Districts.png

이전의 행정 구분은 현재는 차량 번호판 표시와 같은 한정된 용도로 쓰이고 있고 1972년 이후부터는 26개 지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파일:350px-NI11w.jpg

2015년부터는 11개의 지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8. 기타

  • 아일랜드/역사
  • 영국에 속한 지역답게 축구의 인기도 높다. 맨유의 레전드 조지 베스트가 여기 출신이고 1982년과 1986년 2회 연속으로 월드컵에 출전했다. 1982년에는 당시 개최국이었던 스페인을 잡는 성과를 내기도 했었다. 참고로 북아일랜드는 1986년을 마지막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유로 2008 때는 예선에서 무려 13골[41]을 넣은 데이비드 힐리를 앞세워 홈에서 스페인, 스웨덴, 덴마크를 전부 물리쳐서 본선 진출 전망이 밝았다. 그렇지만 도중에 감독 교체 후[42] 원정 경기에서의 패배와 연속 경기에서 자책골을 넣는 등 부진하면서 결국 탈락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 때 역시 초반에 1위를 달렸으나 결국 떨어졌다. 현역 축구 선수 중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인물은 맨유 유스 출신으로 뛰었던 조니 에반스다. 셀틱 FC아스톤 빌라 감독을 했던 마틴 오닐 감독이 이 지역 출신인데 이례적으로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정작 마틴 오닐은 아일랜드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마틴 오닐 말고도 브렌던 로저스도 북아일랜드 출신이다.
  • 럭비는 아직도 독립국 아일랜드와 단일팀을 이루어 출전한다. 럭비 협회가 아일랜드 섬 전체를 관할하고 있다. 그래서 국기 게양과 국가에 있어서 논란이 계속되었는데 참신한 신곡의 출현과 국기에 아일랜드 섬 네개 주의 문양을 때려박는 것으로 어느정도 해결이 되어가는 분위기다.
  • 골프를 상당히 잘 치는 나라로 손꼽히는데 인구에 비해 골프장이 무려 100개 가량 있다고 한다. 유명 선수로는 로리 매킬로이, 그레임 맥도웰,[43] 대런 클라크[44] 등이 있다. 북아일랜드 특유의 예측 불허의 기후도 골프 실력을 향상시키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 레슬링 선수중에선 핀레이가 있다. 혼스워글미국 출신이다.
  • 영국/인구

[A] 줄리언 스미스(Julian Smith, 영국 중앙정부 북아일랜드부 장관)가 대리[A] [3] 영국과 명칭 분쟁이 있었다. 영국에서는 Ireland를 아일랜드 섬 전체로 써서 아일랜드 자유국의 후신인 현 아일랜드를 가리킬 때는 그냥 아일랜드어 표기(단 보조 부호는 일반적으로 생략) Eire로 지칭하다가 아일랜드가 완전한 공화국이 된 이후엔 꼬박꼬박 Republic of Ireland라고 불렀다.(현재도 아일랜드 섬 전체나 북아일랜드와 명확히 구분하고자 할 때 이 명칭이 사용된다. FIFA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과거 영국은 아일랜드 정부, 대통령 등을 아일랜드 측이 쓰는 Government of Ireland, President of Ireland로 적지 않았고 Irish Government, Irish President로 돌려서 적었다. of Ireland라고 하면 북아일랜드까지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는 아일랜드 측의 용어 혼란 전술에 말려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아일랜드에서는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라는 영국의 공식 국호를 인정하지 않아서 약칭인 United Kingdom(UK)만 쓰거나 북아일랜드를 뺀 지리적 명칭으로 Great Britan이나 형용사 British로 돌려 쓰는 식으로 대응했다. 현재는 벨파스트 협정에 따라 아일랜드가 북아일랜드 영유권 주장을 중단했기 때문에 양국이 더이상 명칭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서로의 표기를 존중해 주고 있다.[4] 아일랜드 섬에서 태어난 이의 아일랜드 민족/국적 취득권(2조), 평화적 방식과 다수결에 의한 아일랜드 통일(3조)[5] 영국의 속령(왕실 직할령과 해외 영토)들은 '연합 왕국 바깥에 가진 땅'이라는 관점을 취하기 때문에 연합 왕국이라고 안 부른다. 영국의 속령들은 연합 왕국에 바깥에 딸려 있는 연합 왕국이 지배하는 지역일 뿐 연합 왕국 그 자체의 구성 요소는 아닌 것이다.[6] 영국 국회의 상원(귀족원)은 하원(평민원)과 달리 지역구 개념이 없다. 그리고 영국의 하원 지역구는 여태까지 전부 '연합 왕국'에 속하는 지역에만 설치되었다. 단 영국(연합 왕국) 국회의 전신 중에 하나인 잉글랜드 국회(잉글랜드가 독립국이던 시절의 의회)에 예외적으로 잉글랜드 바깥의 영토였던 칼레(현 프랑스 영토)에 지역구가 설치된 적이 있다. 칼레는 영국에서 가장 가까운 프랑스 땅으로 백년전쟁 종전 이후에도 100년 정도 잉글랜드 지배하에 남아 있었는데 지역구가 설치되어서 거의 잉글랜드 본토의 한 지역처럼 취급되었다. 다만 메리 1세 여왕 말년에 프랑스 왕국에 칼레를 영구히 빼앗겨 해당 지역구는 폐지되었다.[7] 아일랜드 섬은 크게 렌스터(동부, 더블린이 여기에 있다.), 코노트(서부), 먼스터(남부), 얼스터(북부, 북아일랜드가 여기에 속한다)로 나뉜다. 모두 아일랜드에 있었던 옛 왕국들의 이름에서 유래한다.[8] 아일랜드 독립 전쟁 결과 체결된 영국-아일랜드 조약으로 사실상 남부 아일랜드의 분리가 확정된 상황에서 북아일랜드의 개신교 신자들이 북부의 확실한 다수파를 차지하기 위해 얼스터 9개 주 중에서 유난히 가톨릭 신자들이 많았던 3개 주(도니골, 모나한, 캐번)를 북아일랜드의 영역에서 의도적으로 분리시키려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얼스터의 나머지 3개 주가 북아일랜드의 영역에 포함되었을 경우 개신교 신자들과 가톨릭 신자들의 인구 비율은 가까스로 개신교 신자들이 우세하기는 하나 사실상 다수파로서의 의미와 다소 거리가 먼 1:1에 근접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3개 주를 제외한 나머지 6개 주에서의 인구 비율은 약 3:2로 이 경우는 개신교 신자들이 다수파로서의 기득권을 차지할 수 있는 위치가 된다.[9] 마찬가지로 독립국 아일랜드는 the South라고 부른다.[10] 북아일랜드의 국장(國章)으로 간주되었다.[11] 영국에서 자국 왕실의 왕관 중 대표격으로 취급하는 그 왕관이다.[12] 즉위 자체는 부왕 조지 6세 사망 직후 자동으로 이루어졌지만 대관식은 그 다음 해에 실시됐다. 영국 국왕은 대관식을 1년 정도 시간을 두고 치른다.[13]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이 주로 활동하는 범 아일랜드 단체에서는 아일랜드 섬 전체의 깃발을 아일랜드의 삼색기로 쓰기도 한다. 어차피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은 북아일랜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14] 북아일랜드의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은 '북아일랜드 독립 운동가'가 아니다. 이들의 목표는 영국에서 이탈하여 독립국 아일랜드과 통일을 하는 것이지 북아일랜드라는 존재의 독립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북아일랜드라는 존재의 존속을 주장하는 것은 그들의 반대 진영이고 그 중에서 북아일랜드를 아예 독립시키자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민족주의 진영의 반대파 중 극단파(충성파) 내 일부 그룹에 속한다.[15] 스코틀랜드의 국왕이었던 제임스 6세가 제임스 1세라는 이름으로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국왕을 겸하게 된 다음에 자기 지지 세력을 만들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얼스터 지방의 아일랜드인들의 토지를 빼앗아 스코틀랜드인들한테 하사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인들이 집단 이주하게 되었고 이들이 아일랜드의 지배 민족으로 군림하게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분쟁의 시작이 된다. 이들의 후손들을 오늘날 얼스터 스코틀랜드인(Ulster Scots)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미국 영어로는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Scotch-Irish)이라고 불리는데 이들 중 일부가 미국에 다시 이주해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계 미국인(Scotch-Irish Americans)이라는 집단을 이루고 있다.[16] 이 곡은 리히텐슈타인의 국가와도 동일하지만 가사가 다르기 때문에 잉글랜드 대 리히텐슈타인 또는 북아일랜드 대 리히텐슈타인의 경기가 치러질 경우 같은 곡이 두 번 연주된다.[17] 아일랜드의 가톨릭 주민들은 데리(Derry), 북아일랜드의 개신교 주민들과 친영 세력들은 런던데리(Londonderry)라고 부른다.[18]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19] 이런 구분이 못마땅했던 조지 버나드 쇼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고 Irish라니! 그럼 공기 중에서 태어나면 Airish겠군!"이라고 비꼬았던 적도 있다. 참고로 조지 버나드 쇼는 영국계 아일랜드인으로 두 국가 국적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20] 웨일스는 부총리직이 상설직이 아니라서 정부 성향에 따라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데 지금은 없다.[21] 상원은 Senate of Northern Ireland(영국 의회의 상원인 귀족원·House of Lords와 이름이 다르니 주의), 하원은 House of Commons of Northern Ireland. 구 자치 의회 의사당을 현 자치 의회가 재활용 중이기 때문에 현재 자치 의회는 이름이 Northern Ireland Assembly임에도 여전히 건물의 이름은 Parliament Buildings, 그 건물이 들어선 지역은 Parliament Hill이라고 불린다.[22] 첫 글자를 소문자로 써서 deputy라고 써야 하는지 대문자로 써서 Deputy라고 써야 하는지에 대해 합의가 불명확해 양자가 혼용되고 있다.[23] 스코틀랜드 자치 정부는 Scottish Executive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가 이후 Scottish Government로 바꿨다. 자치 의회는 처음부터 Scottish Parliament였다. 이것은 스코틀랜드의 자치 정부와 자치 의회가 영국 중앙 정부와 의회(국회)에 버금가는 기관임을 명시하고자 한 것이다. 웨일스 자치 의회는 National Assembly for Wales이나 Parliament를 넣은 이름으로 바꾸거나 웨일스어 이름으로 교체하는 것을 논의 중이다. 웨일스 자치 정부는 원래 웨일스 자치권이 미약한 관계로 자치 의회의 위원회로 출발했는데 이후 자치 의회에 딸린 정부라는 뉘앙스의 Welsh Assembly Government를 출범시켰다가 현재는 독립성을 더 강화해 Welsh Government로 변경한 상태다. 반면 북아일랜드의 현 자치 정부와 자치 의회는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와 달리 다소 우회적으로 돌려 쓴 느낌이 강하다.[24] 북아일랜드 자치 의회의 cross-community vote 절차는 영국 국회에서 통과시킨 1998년 북아일랜드법에 규정되어 있는 내용이다. 따라서 이 절차를 폐지하거나 수정하려면 북아일랜드 자치 의회가 아니라 영국 국회에서 이 법을 개정해야 한다.[25] 이언 페이즐리가 前 당수였다.[26] 현재 아일랜드의 주요 정당 중 하나다.[27] 영국에서는 복수 당적을 보유하는 것이 합법이다. 단 각 정당이 내부 규정을 두어 당원들에게 복수 당적을 금지시키거나 허용하는 정당을 제한할 수는 있다.[28] 영국 노동당이 이들과 연대했던 이유는 영국 노동당은 1990년대 초까지 북아일랜드가 영국에서 벗어나 독립국 아일랜드와 통일 아일랜드를 이루는 걸 지지했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에 영국 주요 정당들은 북아일랜드 문제에 대해 확정적인 당론을 없애고 현지 주민들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단 제57회 영국 총선보수당이 단독 집권을 할 수 없게 되어 친영 민주통일당(DUP)의 지원을 받아 정부를 지탱하게 되면서(신임과 보완, confidence and supply) 북아일랜드는 영국에 남아야 한다는 입장을 다시 채택했다. 강경한 영국 지지 정당인 DUP가 보수당에 신임과 보완을 약속하는 대가로 그 입장의 복원을 요구했기 때문이다.[29] 영국과 아일랜드의 정당법상 국경을 넘어서 활동하는 건 합법이다. 계속 언급한 신페인이 그러고 있고(아예 북아일랜드 자치 의회 의원과 아일랜드 국회의원을 겸직하는 경우도 있다) 아일랜드 녹색당도 그러고 있다.[30] 아일랜드 민족주의 진영을 상대로 테러도 서슴지 않았던 소위 충성파(loyalist) 성향인 벨파스트 거주 노동자들이 이 당을 지지하고 있어서 이런 부정적 평가가 따라 다니는 것이다.[31] 아일랜드 섬 전체에서 활동하는 극좌 트로츠키주의, 유럽 회의주의 정당.[32] 진보+영국 연합주의 정당이었다. 2016년에 중립(O)으로 바꿨지만 당의 세력이 미약해 그 해에 없어졌다.[33] 역시 중립 성향인데 페미니즘 정당이었다.[34] 연합주의를 주장하는 북아일랜드의 중도우파 정당이었다. 다만 북아일랜드 진영 간 갈등을 지양하고 서로 화합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35] 정확하게는 충성파(loyalist)라고 불리는 연합주의보다 극단화되어 반대 진영에 테러도 서슴지 않는 진영 중 일부다.[36] 유럽의 전반적인 트렌드는 이곳도 예외가 아니라서 청년층(10-30대) 중심으로만 따지면 이미 역전당했다. 가톨릭 신자들은 약 45%로 증가하고 있는데 개신교 신자들은 약 35%로 감소하고 있다.[37] '개신교 공화주의'라 하는데 수적으로는 적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아일랜드 독립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고 남북 아일랜드 분단 이후에도 몇몇 개신교 공화주의자들이 북아일랜드 해방과 남북 아일랜드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38] 근본주의 노선과 결합된 극단적인 연합주의자들은 아예 아일랜드 장로 교회에서 떨어져 나가서 교단을 하나 새로 차리기까지 했다. 이 교단의 실질적인 실세는 친영파 목사인 이언 페이즐리다.[39] 이들을 가톨릭 연합주의라 한다.[40] 개신교도는 런던데리, 가톨릭교도는 데리라고 부른다. 1613년 제임스 1세의 칙허장으로 런던이라는 이름을 앞에 달게 되었다. 일단 정식 명칭은 런던데리다.[41] 유로 예선 개인 최다골 기록이다.[42] 상승세를 이끌었던 로리 산체스 감독이 예선 도중에 풀럼 FC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산체스는 풀럼에서 성적 부진으로 도중에 경질되고 말았다.[43] 2010 US 오픈 우승.[44] 2011년 브리티시 오픈 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