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근대 시대, 레드 코트
1.1. 기원
근대 영국군의 대명사로 통하는 레드 코트는 청교도 혁명기인 1645년에 New Model Army가 붉은 군복을 채택하면서 시작되었다. 붉은 군복을 입은 이유로는 사상자의 몸에서 나오는 피를 감추기 위해서라는 설도 있고, 단지 붉은 염료가 제일 쌌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이런 설의 문제는 다른 나라 역시 붉은 군복을 입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정확한 기원으로 보기는 어렵다.의외로 실용적인 의도 없이 그냥(...) 도입했을 가능성도 있다. 영국의 옛 왕조인 랭커스터 왕조와 튜더 왕조의 문장이 붉은 장미였고, 영국의 상징색이 붉은색이 되어서 영국 육군이 붉은 제복을 입은 거 아니겠냐는 얘기. 마찬가지로 프랑스는 옛 왕조인 카페 왕조의 문장이 푸른 바탕의 백합이었고, 프랑스의 상징색이 파란색이 되어 프랑스 육군이 푸른 제복을 입었으며, 스페인은 스페인 왕국의 상징색이 흰색이었기 때문에[1] 스페인 육군도 흰 제복을 입은 거 아니냐는 것.
왕정 복고 후에도 New Model Army 기반의 육군 체제는 그대로 존속했기 때문에 이후 영국 육군의 군복은 붉은 색으로 유지되었다.
1.2. 18세기
18세기 중반의 근위척탄병.
18세기까지 영국군의 붉은 제복은 안감을 노란색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며, 낡은 군복을 뒤집어 노란색 조끼로 고쳐 입는것이 전통이었다고 한다.
1.3. 19세기
18세기 후반부터는 안감이 흰색으로 바뀌는 등의 변화는 있었지만 코트 스타일은 그대로 유지되어오다가, 1797년부터 테일 코트 스타일로 변경된다.나폴레옹 전쟁기의 영국군 레드코트
그러나 이러한 붉은 군복은 어디까지나 육군의 보병, 특히 전열 보병만으로 제한된 것이었으며, 기병, 포병 등의 다른 병과나 라이플맨, 레인저, 퓨질리어 같은 당시의 특수부대는 다른 색 군복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영국 해군의 경우에는 영국 해병대는 육군과 같은 붉은 군복을 착용했지만, 수병들의 경우에는 정해진 복장 자체가 없었고, 부사관과 장교들의 경우 짙은 청색 군복을 입었는데 이것이 소위 말하는 네이비 색상의 기원이다.
크림 전쟁이 벌어진 19세기 중반,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는 기존의 회색 바지 대신에 검은색 바지를 착용하여
추울 때 입는 근위대 회색코트도 이 시기에 나타났다.
2. 카키의 시대
2.1. 카키색 군복의 기원과 도입 과정
비슷한 시기 인도 등지의 열대 지역 주둔부대는 유럽과 같은 울 군복 대신에 보다 가벼운 천으로 만든 군복이 지급되었고, 이에 맞춰서 색상도 보다 시원한 백색이나 밝은 회색이 허용되는 경우가 많았다.세포이 항쟁 무렵의 흰 상의와 회색 바지를 입은 영국 동인도회사군. 그러나 이미 이 시기에도 카키 군복을 입은 병사도 많았고, 여전히 전통적인 레드코트 배색의 군복을 입은 부대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인도 지역에서 여러가지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하얀색 군복은 눈에 잘 띈다는 문제가 부각되었고, 병사들에게 지급되는 백색이나 회색 군복도 표백이 잘 안됐거나 염료의 품질 문제로 쉽게 변색되어 누렇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런 누런 군복들이 오히려 실전에서 눈에 덜띈다는 것을 발견한 현지 병사들은 주변의 여러가지 재료(흙, 카레가루, 커피나 홍차 찌꺼기등...)를 이용하여 멀쩡한 백색, 회색 군복을 황갈색으로 염색해서 입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고, 결국 흰색 열대군복은 황갈색, 즉 카키색 열대군복으로 교체되기에 이른다.
카키색 군복으로 바꿔 입은 2차 아프간 전쟁 당시의 인도주둔 영국군
하지만, 이런 카키색 군복은 인도지역 부대에 국한된 것이었고, 여전히 유럽은 전통적인 레드코트를 착용했고, 아프리카 등지의 다른 열대지방에서도 카키색보다는 다른색 군복 착용비율이 높았다.
줄루전쟁의 영국군. 대부분의 병사가 전통적인 레드코트를 착용했고, 일부 라이플맨이나 레인저는 전통적인 어두운 녹색 군복을 착용했다. 이외에 포병 이나 해병대는 청색 군복을 입었다.
줄루전쟁을 비롯한 식민지 분쟁 시기까지는 여러모로 화력에서 밀리는 현지 저항을 손쉽게 제압할수 있었고, 큰 피해를 입은 경우가 있더라도 결국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곤 했기 때문에 군복의 문제점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미 보오전쟁을 통해서 이미 구시대의 선형 전술은 시대에 뒤진 전술이라는 것이 드러났고, 산개 대형과 참호가 현대전의 필수 요소가 되어 가고 있었다. 따라서 과거의 밀집대형이나 선형대형에 사기 문제와 지휘관의 통제, 판단에 적합한 원색군복역시 퇴출 되는 것이 마땅했지만, 심각한 패배를 맛보지 못한 영국 육군으로서는 그것이 와닿는 문제는 아니었다.
이런 생각이 깨어진 것은 바로 보어 전쟁이었다.
마주바 언덕 전투에서 참패하는 레드코트 차림의 영국군.
1차 보어전쟁의 영국군은 여전히 레드코트 차림이었기 때문에 코만도라 불린 소규모 습격대 단위로 공격하거나 방어 진지에 참호를 파고 들어간 보어군과 현지 주민 부대의 좋은 표적만이 되었다. 특히 당시 민간인들의 의복은 주로 갈색, 회색, 황갈색, 연한 녹색 같은 것이 주류라서 오히려 집에서 대충 걸치고 나온 보어인 게릴라보다도 영국군의 위장 효과는 떨어졌다. 따라서 2차 보어전쟁부터는 인도에서 효과를 본 카키색을 대대적으로 도입하게 된다.
2차 보어전쟁 후반의 영국군
그러나 군복은 바뀌었어도 전술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참호에 버티고 있는 보어군을 향해 밀집대형으로 닥돌하거나 승마보병으로 기동성 있게 움직이는 현지인 게릴라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일쑤였고, 결국 초토화 작전, 수용소, 민간인 학살 같은 많은 무리수와 잔학 행위를 거친 뒤에야 보어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2.2. 서비스 드레스(Service Dress: SD)
보어전쟁을 거치면서 영국군에 완전히 정착한 카키 군복은 1907년 Service Dress(약칭SD)라는 이름으로 제식 채용 되었으며, 과거의 레드 코트는 근위대 같은 일부 부대에서만 입는 것으로 변경 되었다. 비록 카키 군복이 보어 전쟁 승리의 결정타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구시대적인 원색군복이 더 이상 현대 전쟁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참호와 산개대형으로 변경된 전장환경에서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사병 및 부사관용 서비스 드레스. 목 바로 아래 까지 잠그는 스타일이며 계급장은 소매 위쪽에 단다. 맨 왼쪽 루이스 경기관총을 장비한 경기관총 사수는 SD위에 가죽제 저킨(Jerkin: 소매 없는 자켓)을 착용하고 있으며 오른쪽과 가운데의 소총수들은 SD위에 1차 대전 시기 영국군의 리-엔필드 소총용 탄입대 서스펜더인 패턴 1908 컴플리트 웨빙(P-08 웨빙이라고도 한다) 군장을 착용하고 있다.
장교용 서비스 드레스. 목부분 칼라가 양복 상의처럼 열리는 스타일이며 셔츠와 타이를 드러내게 된다. 소매에 장식으로 보이는 것은 계급장이다.[3] 소매 장식형 계급장은 전쟁 말기에 어깨 계급장으로 바뀐다. 이 이미지에는 없지만 칼라에는 병과장을 달고 군모 앞부분에 소속 연대를 상징하는 뱃지를 단다.
1차대전 오스트레일리아 군의 SD. 자외선이 매우 강한 호주답게 카우보이 모자를 쓴 것이 특징이며 영국군의 것과 색감과 디자인이 미묘하게 다르다.
하이랜더 연대의 SD. 전통적인 킬트를 바지 대신 착용하고[4], 머리에 쓰는 것도 일반적인 영국군 군모와 다른 보닛 계열의 군모다. SD의 튜닉(상의) 앞자락도 일반적인 영국군의 것과 다르게 크게 벌어져 있으며, 실전시에는 킬트 위에 큰 주머니가 달린 카키색 앞치마를 덧붙여서 입고 다녔다. 또한 스코틀랜드 연대 출신 장교들은 위 장교용 SD 이미지에 있는 소매가 아니라 색다른 모양의 소매를 사용했다. 영국 본토 군대가 아닌 캐나다 자치령 헌병이지만 대략 이렇다.
1차대전 동시기 미육군/미해병대의 프랑스 군복 기반 변형 버전 M1912 SD 차림. 영국군을 모방했음을 알수 있다.
제1차 세계 대전의 SD는 보어전쟁때의 카키 군복을 기반으로 좀더 짙은 갈색으로 바뀐것이 특징이며 보어전쟁 때처럼 탄띠를 하얗게 하는 것이 위장효과를 해친다고 밝혀져 탄띠 역시 좀 밝은 카키색이 되었다. 다만, 퍼레이드 등의 목적을 위해 딴띠색을 탈색시키는 경우가 있었다. 장교의 경우는 "샘 브라운 벨트"라는 어깨띠가 가슴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가죽제 탄띠를 사용했다. 장교용과 사병용 공히 가슴과 옷자락 아래부분에 주머니를 달아 여분의 탄환이나 식량, 간단한 소지품등을 넣고 다닐수 있게 만들어졌으며, 카키색 자체와 함게 이런 스타일이 전쟁 전후로 여러나라의 위장효과를 고려한 군복 제작에 참고가 되었다.
아래 나올 BD의 채용과 함께 SD는 사라지.....지 않고 정복의 개념으로 현재까지 살아남았다.
2.3. 배틀 드레스(Battle Dress:BD)
1차대전과 전간기 기간동안 영국군의 군복은 SD로 거의 통일되어 있었으며 예외라면 근위대의 평시 근무복 정도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면서 영국군은 다시 군의 규모, 특히 육군의 규모를 확대할수 밖에 없었고, 단기간에 많은 병사들을 양성하고 그들에게 군복을 입히기 위해서 보다 간소화된 군복을 개발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Battle Dress(BD)[5]였다. 튜닉 형태인 서비스 드레스와 달리 허리까지만 오는 재킷이 되었으며, 이에 따라서 상의 하단의 주머니가 사라진것에 대응하여 바지에 대형 주머니가 달렸다.[6] 1937년에 등장했지만 제식 채용은 1939년부터였다. SD보다 멋이 없다는 문제로 군 내외로 빈축을 샀다고....
P37(1937년형) 배틀 드레스. 상의 단추가 가려지는 스타일.
P40(1940년형) 배틀 드레스. 37년형에서 좀더 간략해진 전시 간략형. 상의 단추 커버가 제외되었고, 포켓 형태등 여러부분이 단순하게 바뀌었다.
위 두 배틀 드레스는 육군 뿐 아니라 해군 코만도와 비치 마스터, 해병대 등도 착용했다.
RN(영국 해군)의 배틀 드레스. 육군이나 공군의 것과 달리 처음부터 단추가 노출형이며 정복에 쓰는 닻이 새겨진 금색 단추를 그대로 썼다. 색상은 해군답게 어두운 청색, 즉 네이비 컬러이나, 장교들은 맞춰 입는 특성상 아예 검은색 원단으로 된 것도 입었다. 기본적으로 함정이나 육상 근무자는 더블 버튼 형태의 정복 및 세일러복을 근무복으로 착용했고, 해군용 배틀 드레스는 공간이 협소한 잠수함이나 해군 항공대의 항공기 승무원 등이 주로 착용했다.
RAF(영국 공군)의 BD. 공군 답게 짙은 청색이며 육군의 것과 달리 바지의 대형 포켓은 없다. 전쟁 초기 많은 RAF의 전투기 파일럿들은 조종복이 아닌 SD나 BD위에 조종 장구만 갖추고 전투기에 오르기도 했다. 매일 같이 적기가 날아오는 판국이니 일상 생활에 불편한 조종복을 입고 대기하기도 싫고 BD나 SD를 입고 있다가 갈아입기도 귀찮고 급하다는 이유였다고....
P49(1949년형) 배틀 드레스. 연식이 말해주듯 대전 후에 입은 모델이다. 전반적으로 P37과 유사하지만 컬러 부분이 좌우로 열리는 타입으로 바뀌었다.
Denim Overall.
기본적으로 울 제질로 만든 배틀 드레스와는 달리 데님천으로 만들었으며, 여름 군복으로 입거나, 추가적인 보온이나 울 배틀 드레스가 때타거나 손상입는 것을 막기 위해 울 배틀 드레스 위에 덧입었다. 홈가드는 배틀 드레스 대신 데님 군복을 정식 군복으로 착용 했으며, 북아프리카의 영국군, 1,2차 중동 전쟁때 참전국 군인이나 민병대에서도 많이 착용했다.
여담으로 위의 데님제질 베틀드레스의 경우 많은 양이 됭케르크 철수작전때 독일 육군에게 노획되는데, 이후 엉뚱하게도 독일 크릭스마리네에서 쏠쏘하게 써먹게 된다. 독일 육군 기준에선 쓰기는 양이 적고 피아 식별 문제도 큰데다 버리기는 양이 많아서 애매하던 전투복들 중 하계용을 해군이 가져다가 약간 개조하여 U보트 승조원들의 함상 작업복으로 지급하게 되는데, 밑단이 짧아 걸리적거리지도 않고, 갈색 계열의 색상은 기름때 등을 잘 가려 줬으며, 면의 일종인 데님은 덥고 습한 잠수함에서 기존의 모직보다 덜 덥고 잘 마르는데다 작업복에 적합하게 질겼기 때문이다. 서로 얼굴 보고 싸울 일도 없는 대잠전 특성상 피아식별 문제도 없었다. 거기에 더해 전용 피복을 받았다는 점이 이들로 하여금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자부심도 심어 주었다. 이런 호평에 놀란 해군 지휘부는 노획품이 소진되자 비슷한 디자인의 보다 개량된 잠수함 작업복을 자체생산하여 종전시까지 지급해주었다.
2.4. 카키 드릴(Khaki drill: KD)
카키 드릴은 인디아 주둔군에서 유래한 열대 군복 전반을 말한다. 즉, 19세기 후반 인디아, 파키스탄, 아프카니스탄의 일련의 전쟁과 2차 보어 전쟁 때 부터 1차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때 착용한 인도, 남아프리카,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착용한 밝은 황색 계열의 열대 군복을 총칭하는 용어이다.참고로 Drill은 능직소재의 튼튼한 무명천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인디아 군만의 특징적인 군복으로나 통하던 카키드릴 군복은 2차 보어 전쟁을 치으면서 1900년 영국군의 열대지방 제식 군복으로 지정 되면서 붉은 군복을 몰아내게 된다.
보어전쟁의 카키드릴 군복. 인디아의 카키 군복과 대동소이하다.
또한 보어 전쟁을 통해 카키색 군복이 가지는 위장 효과에 세계 각국이 주목하게 되면서 러일전쟁에서는 러시아와 일본군 양쪽 모두 카키색이나 다른 자연색에 가까운 군복으로 갈아입고 전쟁에 나서게 된다.
1차 대전의 장교용 카키 드릴. 사병용 군복은 보어전쟁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장교용 군복은 상의가 서비스 드레스에 가깝게 변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에도 1차대전때의 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자켓 스타일 상의와 긴바지 카키드릴 군복이 사용되었지만, 1941년도부터 반바지, 반팔 스타일의 카키드릴 군복이 지급되기 시작했다.
반바지/반팔 카키드릴 전투복을 착용한 북아프리카의 영국군
이러한 카키드릴 복장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열대국가들에서 군이나 경찰의 정복 또는 근무복으로 여전히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2.4.1. 정글 그린(Jungle Green: JG)
동남아시아 식민지 주둔 영국군은 원래 다른 열대 지역 주둔 부대와 마찬가지로 카키 드릴 군복을 입고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건조지대 흙먼지 색에 맞춰진 카키드릴은 버마나 말레이지아의 정글지대에는 오히려 눈에 띄였고, 카키색 군복이 등장했을때와 유사하게 일부 병사들이 카키드릴군복을 녹색으로 염색해 입고 다녔다.동남아시아 정글지대 전투가 계속되면서 이런 녹색군복의 수요가 늘어났고, 개인적인 염색군복은 강렬한 태양, 땀, 그리고 조악한 품질 문제로 쉽게 변색되었기에 푸르딩딩하게 변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위장효과가 떨어져갔기 때문에 카키드릴 군복을 기반으로 한 녹색전투복이 개발되어 새로 지급되었는데 이것을 Jungle Green(JG)이라고 불렀다.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도 이 피복을 영국 식민지군에게 지급받아 착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7]
오스트레일리아군의 JG 전투복 착용 삽화. 카키드릴이 더위를 견디기 위해 반바지, 반팔로 바뀌었지만, JG는 정글지대의 억센 이파리와 벌레 때문에 긴바지와 긴팔 스타일을 유지했다.
3. 위장무늬 도입의 시작-데니슨 스목(Denison smock)
영국의 카키 서비스 드레스 군복은 1차 대전 직전, 당시만 해도 가장 앞선 전투복이었지만, 1차 대전을 거치면서 거의 모든 국가의 군복이 과거의 원색 군복에서 탈피하여 자연 색상에 가까운 녹색이나 카키색 군복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에 위장 효과 면에서 특별히 나은 부분이 없어졌다. 더욱이 전간기 기간 동안에 이탈리아와 독일 등지에서 좀 더 효과적인 위장 효율을 위해 여러가지 색을 섞는 위장 무늬가 연구되고 있었다. 영국군 역시 이런 연구에 관심은 가졌으나, 육군 자체가 감축되어 여러 부서가 해체된 전간기 기간에는 뚜렷한 성과를 낼 수 없었다.그러나, 2차대전 발발 직후 독일군 공수부대, 무장 친위대같은 부대들이 위장복을 착용하고 실전에 투입되었고, 전쟁으로 군의 규모가 재확대 되면서 폐지됐던 위장, 기만술 관련 부서들도 살아나면서 연구가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서 데니슨 소령의 디자인을 기초로, 영국이 2차대전 중반부터 공수부대, 특수부대, 공작원들에게 지급한 데니슨 스목이 탄생하게 된다.
3.1. 개발
데니슨 스목의 개발에 영향을 준것 부터가 독일 공수부대의 위장복이었기 때문에 데니슨 스목 역시 공수부대에 지급할 목적으로 개발이 시작되었다. 애초에 스목(smock)이라는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영국군은 이것을 기존의 군복에 덧입는 옷으로 생각했고, 그 때문에 티셔츠처럼 입을 생각으로 지퍼는 상의의 절반까지만 차지하고 있었고, 소매는 니트 형식으로 되어 있었으며, 낙하산줄에 걸리지 않도록 사타구니를 가리는 "꼬리" 가 달려있었다.애초에는 이 꼬리 부분은 상의 앞쪽 똑딱 단추에만 고정시키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렇게 하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올때는 좋을지 몰라도 지상에서 돌아다닐 때 불편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병사들이 이 "꼬리"를 고정하지 않은채 다녔다. 그런데 그 상태로 돌아다니면 마치 비버 꼬리 같은것이 엉덩이에서 덜렁거리는 모양새가 되어 당시 공수부대원들에게 "꼬리달린 남자들" 이라는 별로 달갑지 않은 별명이 붙게 된다.
따라서 엉덩이 쪽에도 똑딱 단추를 추가하여 지상에 내려왔을때는 엉덩이쪽 단추에 "꼬리"를 고정시킬 수 있게 된다. 위장 패턴은 밝은 황갈색(모래색) 바탕색 위에 큰 붓으로 대충 그은 듯한 녹색과 갈색이 덧그려진 패턴이며, 실제로 녹색과 갈색이 겹쳐지는 부분에는 그 두 색이 섞인 중간색이 나타나고 있다.
3.2. 각종 형식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완성된 스타일을 제1형식1st Pattern이라고 한다.
1944년에는 소매 니트 마감이 사라지고 단추로 소매를 여미게 바뀌고, 전체 길이도 약간 짧아진 제2 형식 2nd Pattern도 출현 했다.
이 외에도 고급 장교용으로 지퍼가 자켓 전체를 열고 닫게 되어 있는 full zip 형식도 있다.
장교용 데니슨 스목을 걸친 영국 제6공수사단장 리처드 게일 소장과 일반 스목을 착용한 공수대원들
장교용 스목은 공수부대 외에도 다른 육군 장군들도 이래저래 구해다 입기도 했다.
데니슨 스목을 착용한 몽고메리 원수. 그 와중에 기갑베레모에 엄청 큰 싸제 목도리까지...
데니슨 스목을 착용한 30군단장 뎀프시 중장
3.3. 변종
데니슨 위장복을 착용한 육군 저격수.
데니슨 스목이 유행을 타면서 공수부대 외에도 특수부대나 육군 저격수등이 데니슨 스목을 구해입기 시작했고, 육군에서는 좀더 가벼운 데님 소재에 바지까지 위장 패턴을 적용한 방풍 자켓을 제작하여 지급하게 된다.
Windproof smock이라는 이름으로 지급했지만, 특수부대들에서도 널리 착용하게 되면서 SAS Windproof 라는 호칭으로 통하게 되었다. 상하의에 모두 위장무늬가 적용되어 있고 원래의 공수부대용 데니슨 스목에 비해서 위장무늬가 좀더 크게 그려져 있다.
3.4.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2차대전 이후에도 데니슨 스목은 영국 공수부대의 전투복으로 여전히 사용되었고, 해병대에서도 정식으로 채용 했다. 공수부대와 해병대 외의 육군 각 부대에도 저격수나 정찰대원용으로 조금씩 도입되었으며, 6.25 전쟁과 2차 중동전쟁에 참가한 영국군은 2차대전 그대로 BD와 데니슨 스목을 착용했다.2차 중동전에 투입된 영국 공수부대원들
영국 외에도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등 영미연합군의 지원을 받아 싸웠던 나라들에도 공수부대나 특수부대용으로 유입되었고, 전후 벨기에 군에서는 60년대 까지 제식군복으로 사용되었으며, 프랑스군에서도 데니슨 스목과 SAS Windproof은 전후에도 얼마간 사용 된 것이 디엔 비엔 푸 전투 자료 등에서도 확인된다. 또한 데니슨 스목의 디자인과 위장패턴은 프랑스 외인부대가 착용했던 "도마뱀 패턴" 위장복에 영향을 미쳤다.
1959년에는 위장패턴등을 개선한 1959 Pattern이 등장했으며
1972년 DPM(Disruptive Pattern Material)이 등장하면서 데니슨 스목은 서서히 퇴역하게 된다.
4. DPM(Disruptive Pattern Material)
DPM 군복을 입은 영국 왕립 해병대
위장 효과 테스트 영상
7~80년대 DPM 위장 효과 테스트 영상
오랜 기간 써온 위장으로 영국군을 고증하는 코스어 및 에어소프트 게이머들에게 많이 이용되었다. 영국군은 40년간 이 위장을 사용해왔으며, 계속 개량을 거쳐왔다.
위 사진처럼 수목지형 패턴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막패턴도 있다.
하지만 2010년 영국 국방부는 DPM을 사용하는 대신 멀티캠 위장을 영국식으로 개량한 MTP(Muli-Terrain Pattern)을 도입하기로 발표, 현재 MTP를 사용하고 있다.
영국 외에도 네덜란드군, 인도네시아군 등 여러 나라 군대에서 DPM을 제식 위장무늬로 채택하였으며, 러시아 내무군 스페츠나츠 일부 부대에서도 부대피복으로 DPM 위장무늬 군복을 사용 중이다.
또한 한국에서도 80년대의 어느 모 부대에서 비슷한 무늬의 위장복을 사용하였다.
5. PCS-CU
2010년경 도입된 영국군의 신형 군복이다. 기존의 CS95전투복을 교체하는 전투복이며, 후술할 MTP가 위장패턴으로 도입되었다.전투복 상하의와 영국군의 컴뱃셔츠인 UBACS로 구성되어있다.
5.1. MTP (Multi-Terrain Pattern)
신형 위장무늬 MTP 군복을 착용한 영국군
위장 효과 테스트 영상
2010년 기존에 사용하던 DPM을 대신하여 사용하고 있는 신형 위장이다. 보듯이 미국의 'Crye Precision'사에서 제작한 멀티캠과 유사하다. 실제로 영국군이 MTP를 체용할 시 멀티캠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름에서 보듯 멀티캠처럼 다양한 지형에서의 위장력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영국 국방부는 새로운 위장으로 더 나은 위장력과 편안함을 줄 것으로 기대했고 아프간을 시작으로 전 병력에 보급했는데 영국 병사들의 반응은 "우리가 양키네 육군놈들이냐?", "디자인도 별론데, 재질도 맘에 영 안 드네.", "무슨 장난감 병정이 된 것 같다." 이런 식이다. 오랫동안 사용해온 DPM에 대한 향수와 영국 특유의 전통과 존심이 이유가 아닐까하는 의견이다.
그리고 4년 후에 미 육군이 멀티캠을 살짝 바꾼 스콜피온 W2 위장패턴을 OCP라는 제식명칭으로 채택하면서, 정말 미 육군과 비슷한 군복이 되어 버렸다.
6. 현대의 정예복
영국 육군의 현용 예복인 레드 코트. 왼쪽은 아이리시 가드의 명예 대령 예복을 입은 웨일스 공 윌리엄, 오른쪽은 블루스 앤 로열스의 예복을 입은 서식스 공작 헨리 왕자이다.
영국 육군의 현용 카키색 정복을 입은 닉 호턴 장군. 영국군은 전통과 의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군대라, 연대장쯤 되면 평시에는 정복을 많이 입고 다닌다.
[1] 이 탓에 과거에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역할을 했던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도 흰색이다.[2] 여담으로 해태 타이거즈 유니폼이 검빨인 이유는 팀 창단 당시 해태에서 제조하여 판매하던 런던 드라이진이라는 술의 술병에 그려져 있는 영국 근위병의 제복의 색에서 가져왔기 때문이다. 타이거즈 초대 감독이자 주당으로 유명한 김동엽 감독이 이 술을 먹다가 영국 근위병 제복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당시 술병에 그려진 영국 근위병은 빨간 상의에 검은 하의를 입고 있었다. 당시 해태산업 런던드라이진 광고.[3] 사진 속 인물은 유럽식 별모양 중 하나인 핍(Pib)이 3개이므로 육군 대위이다.[4] 그러나 몇몇 하이랜더 부대는 타탄 체크 바지를 착용했다. 이 역시 그 부대의 전통이었다.[5] 미군의 20세기 후반 위장복인 BDU와 헷갈리지 않도록 주의[6] 즉, 흔히 말하는 "건빵 주머니"가 달린 군복의 시초가 되었다.[7] 사진 확인상 장교용 배틀드레스와 카키드릴/정글그린을 착용한 것으로 보이나 흑백사진이라 정글그린이라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