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2-11 00:33:44

무소속

無所屬 / Independent
어디에도 속하지 아니하다는 뜻.

1. 사전적 의미
1.1. 일반적인 의미1.2. 선거에서의 의미1.3. 공직선거법 규정
1.3.1. 선거권자의 후보자 추천1.3.2. 후보자 등록1.3.3. 등록무효1.3.4. 무소속후보자의 정당표방제한1.3.5. 투표용지의 게재순위 등1.3.6. 역대 선거에서의 무소속
1.3.6.1. 대통령 선거1.3.6.2. 국회의원 선거1.3.6.3. 지방선거
1.4. 무소속 정치인
1.4.1. 대통령1.4.2. 국회의원
1.4.2.1. 대한민국 20대 국회 무소속 국회의원
1.4.3. 민선광역자치단체장
1.5. 그 외
2. 소드걸스의 5번째 소속

1. 사전적 의미

1.1. 일반적인 의미

문자 그대로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지만, 엄밀히 말해 사람이 살아가는 이상 가져다 붙일 만한 것은 많다. 당장 자기 자신만 해도 가족이라는 집단에 속하며, 가족이 없어도 학교직장, 국가, 더 나아가 지구라는 테두리 안에 속한다. 물리적으로 지구 밖으로 벗어난다 해도 우주 밖으로는 벗어날 수 없으니, 실제로 완벽히 무소속인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정말 탈 우주급의 인간일지라도 하다못해 살아있는 사람은 생존자, 사망한 사람은 사망자에 소속된다. 아예 생존과 사망의 중간이라도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면 실종자로 분류할 수 있으며, 만약 진짜로 사망과 생존 중간에 있다면 사망과 생존 중간에 있는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단, 무소속에 소속되는 존재자가 무소속에 소속되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는 주장은 러셀의 역설과 다름없다. 또한 이런 방법의 접근은 범주를 구분하는 인식적 행위에 의해 덧씌워지는 것이므로, 인간 의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자연적 속성이라고 볼수는 없다. 즉 애초부터 소속/무소속의 구분이 주관적인 셈.

1.2. 선거에서의 의미

무소속
무소속을 뜻하는 회색 (#808080)
선거에서 말하는 무소속은 그 어느 정당에도 가입하지 않은 정치인[1][2]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정치계의 프리랜서다. 당연하지만 정당이 하나도 없거나 금지된 국가의 정치인들은 모두 무소속이다. 물론 사적인 파벌은 있겠지만.

공직선거법에 의하면, 정당의 공천장으로 등록하는 정당추천후보자와는 달리 무소속후보자는 선관위로부터 추천장을 교부받아 선거구민으로부터 일정 수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 등록할 수 있다. 정당의 당원은 후보자 등록 전날까지 소속정당을 탈당하여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후보등록이 무효 처리된다.

무소속 정치인도 그 입지가 천차만별이다. 국가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부터, 군소후보로 분류되는 듣보잡까지... 이러한 무소속 정치인이 발생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국회의장
    국회의장은 원내 다수당 의원 중에서 선출하는 것이 관행이나, 현행법상 국회의장은 공정성, 중립성을 위하여 당적을 가질 수 없으므로 취임 다음 날 탈당하여 무소속이 된다. 이 규정이 적용된 첫 번째 국회의장은 제17대 국회의 전반기 국회의장이었던 김원기 의장이다.[3] 물론 이때는 법에 그렇게 되어있으니 형식상 탈당할 뿐이고 임기가 종료되면 원래 소속되었던 정당으로 복귀하는 게 일반적. 부의장의 경우 이에 해당되지 않아 당적을 가질 수 있다.
  • 탈당
    어떤 당에 있다가 탈당한 무소속 의원들도 많다.[4] 인지도가 높은데도, 당 내부의 경선에서 밀려서 공천받지 못했을 때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도전하는데 이때 무소속 출마자는 당선되면 자신을 내친 그 당으로 바로 복귀할 것을 선언하고 당은 설사 당선돼도 받아주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낙선하면 정치 생명은 끝이지만, 당선하면 바로 복귀하여 앙금을 씻고 활발히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20대 총선새누리당 탈당 후 무소속 당선자 7명은 당에 일괄 복귀[5]했고, 더불어민주당 탈당 후 무소속 당선자 2명인 이해찬홍의락 모두 복당하였다.
  • 교육감
    교육감 피선거권 조항 자체에 1년 이상 당적을 가져선 안 된다는 내용이 있다.
  • 기타
    정치 신인 등 정당 공천을 받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정당을 만들 능력도 없는 사람들. 이렇게만 보면 정당에도 못 들어간 듣보잡들이 혼자 나대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무소속이라 함은 어느 정도 입지를 갖추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갈 만한 능력이 되니까 나오는 것. 사실 지역구 국회의원에 무소속으로 당선될 정도라면, 역으로 정당 타이틀이 없어도 의석을 따올 정도로 지지기반이나 인지도가 굳건하다는 뜻이므로[6] 어느 정당이나 탐내지 않을 수가 없다.
보통 선거에 나서면 결과는 처참하기 그지없다.[7] 정당에 소속하여 출마한 다른 후보에 비해 지명도도 적을 뿐더러 당의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적을 가졌다 탈퇴한 경우를 빼면 "그런 사람 있었나?" 할 정도로 안습한 지명도를 가진 경우도 많다.

그러나 무소속으로 성공한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인지 각 정당은 의외로 무소속 출신 인물을 포섭하는 데에 애를 쓰고 있다. 타 정당에서 포섭해 오는것도 가능하긴 하지만 그런 철새 같은 인물에 대한 시선이 좋을 리도 없고, 신뢰감도 약간 떨어지고...

그 유명한 2008년 재보궐선거고성군(강원도) 군수 1표차 당선자와 낙선자도 모두 무소속이었고,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결과, 무소속으로 7선에 성공한 기초 의원들이 주목받고 있다.기사

2016년 미국 대선 주자인 버니 샌더스는 무소속임에도 힐러리 클린턴, 젭 부시, 도널드 트럼프, 벤 카슨과 같은 유력 주자에 뒤지지 않는 지지율을 얻었다. 정치 세력이 공화당민주당으로 양분되어있고 무소속 후보는 (로스 페로의 예 처럼) 이 두개 당 중 한쪽으로부터 표를 빼앗아서 다른 쪽 당을 유리하게 하는 들러리 수준으로 취급되던 것에 비하면 확실히 심상치 않은 흐름을 보였다. 그러나 끝내 힐러리 클린턴과 통합한 이후 클린턴을 싫어하면서 샌더스를 지지하던 다수의 젊은 층을 잃었고, 결국 대통령에는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선거 개표방송 등에서 무소속 후보의 정당 표시 부분은 대개 흰 배경에 검은색 글자로 무소속이라고만 쓰는데, 일부 사람은 이것을 잘못 알아서 "정말 무소속이란 정당이 존재하나 보다." 하는 때도 있다(...). 아닌게 아니라, 1996년 제15대 총선 때는 누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무소속전국연합이라는 이름의 정당 등록을 신청했으나 혼동될 우려가 있음을 이유로 거절당한 적이 있다.[8]

1.3. 공직선거법 규정

1.3.1. 선거권자의 후보자 추천

관할선거구 안에 주민등록이 된 선거권자는 각 선거(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 및 비례대표지방의회의원선거 제외)별로 정당의 당원이 아닌 자를 당해 선거구의 후보자("무소속 후보자")로 추천할 수 있다(공직선거법 제48조 제1항,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 이는 정당추천후보자의 공천에 대응한다.

무소속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관할선거구선거관리위원회가 후보자등록신청개시일전 5일(대통령의 임기만료에 의한 선거에서는 후보자등록신청개시일 30일, 대통령의 궐위로 인한 선거 등에서는 그 사유가 확정된 후 3일)부터 검인하여 교부하는 추천장을 사용하여 다음 각호에 의하여 선거권자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공직선거법 제48조 제2항,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
  • 대통령선거 : 3,500인~6,000인(광역자치단체별로 700인 이상)
  • 지역구국회의원선거 및 자치구·시·군의 장 선거 : 300인~500인
  • 지역구시·도의원선거 : 100인 이상 200인 이하
  • 시·도지사선거, 교육감선거 : 1,000인~2,000인(기초자치단체별로 50인 이상)
  • 지역구자치구·시·군의원선거 : 50인~100인(다만, 인구 1천인 미만의 선거구는 30인~50인)
이 경우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공직선거법 제48조 제3항,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
  • 검인되지 아니한 추천장에 의하여 추천을 받는 행위
  • 추천선거권자수의 상한수를 넘어 추천을 받는 행위
  • 추천선거권자의 서명이나 인영을 위조·변조하는 등의 방법으로 허위의 추천을 받는 행위
이를 위반하여, 검인되지 아니한 추천장에 의하여 선거권자의 추천을 받거나 받게 한 사람, 선거운동을 위하여 추천선거권자수의 상한수를 넘어 선거권자의 추천을 받거나 받게 한 사람, 허위의 추천을 받거나 받게 한 사람은 처벌을 받는다(공직선거법 제256조 제5항 제1호,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

추천장 검인·교부신청은 공휴일에도 불구하고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할 수 있다(공직선거법 제48조 제2항,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

선거권자의 추천장의 서식·교부신청 및 교부 기타 필요한 사항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규칙으로 정한다(공직선거법 제48조 제5항,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

1.3.2. 후보자 등록

무소속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위와 같이 선거권자가 기명하고 날인(무인을 허용하지 아니한다)하거나 서명한 추천장[단기(單記) 또는 연기(連記)로 하며 간인(間印)을 요하지 아니한다]을 등록신청서에 첨부하여야 한다(공직선거법 제49조 제1항,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 이는 정당추천후보자의 경우에 추천정당의 추천서를 첨부하여야 하는 것에 대응한다.

정당의 당원인 자는 무소속후보자로 등록할 수 없으며, 후보자등록기간중(후보자등록신청시 포함) 당적을 이탈·변경하거나 2 이상의 당적을 가지고 있는 때에는 당해 선거에 후보자로 등록될 수 없다(공직선거법 제49조 제6항 전문,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

소속정당의 해산이나 그 등록의 취소 또는 중앙당의 시·도당창당승인취소로 인하여 당원자격이 상실된 경우에도 또한 같다(공직선거법 제49조 제6항 후문,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

1.3.3. 등록무효

무소속후보 특유의 등록무효 사유로서, 후보자등록후에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때에는 그 후보자의 등록은 무효로 한다(공직선거법 제52조 제1항 제4호, 제7호,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
  • 무소속후보자로 등록할 수 없는 자가 무소속으로 등록된 것이 발견된 때
  • 무소속후보자가 정당의 당원이 된 때

1.3.4. 무소속후보자의 정당표방제한

무소속후보자는 특정 정당으로부터의 지지 또는 추천받음을 표방할 수 없다(공직선거법 제84조 본문).[9]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같은 조 단서).
  • 정당의 당원경력을 표시하는 행위
  •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 정당이 무소속후보자를 지지하거나 지원하는 경우 그 사실을 표방하는 행위

1.3.5. 투표용지의 게재순위 등

투표용지에는 무소속후보자는 후보자의 정당추천후보자의 소속정당명의 란에 "무소속"으로 표시하여야 한다(공직선거법 제150조 제1항 단서 전단).[10]

후보자의 게재순위를 정함에 있어서는 후보자등록마감일 현재 국회에서 의석을 갖고 있는 정당의 추천을 받은 후보자, 국회에서 의석을 갖고 있지 아니한 정당의 추천을 받은 후보자, 무소속후보자의 순으로 한다(같은 조 제3항 전단).[11]

이에 따라 관할선거구선거관리위원회가 후보자의 게재순위를 정함에는 무소속후보자 사이의 게재순위는 관할선거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추첨하여 결정하는 순에 따른다(같은 조 제5항 제3호).

1.3.6. 역대 선거에서의 무소속

파일:대한민국 정당별 득표율.png

파일:대한민국국회정당별의석20180716.png

파일:대한민국지방선거정당별당선직20180716.png
1.3.6.1. 대통령 선거
후보자 기호 연도 대수 득표수 득표율 결과
안재홍 - [12] 1948년 1대 2[13] 1.02% 3위
신흥우 4 1952년 2대 219,696 2.1% 4위
조봉암 1 797,504 11.4% 2위
1956년 3대 2,163,808 30.0% 2위
최규하 1 1979년[14] 10대 2,465 100.0% 당선
전두환 1 1980년[15] 11대 2,524 100.0% 당선
백기완 8 1987년 13대 - - 사퇴[16]
1992년 14대 238,648 1.0% 5위
김옥선 7 86,292 0.4% 6위
장세동 2002년 16대 - - 사퇴[17]
이회창 12 2007년 17대 3,559,963 15.1% 3위
박종선 4 2012년 18대 12,854 0.04% 6위
김소연 5 16,687 0.05% 5위
강지원 6 53,303 0.17% 3위
김순자 7 46,017 0.15% 4위
김민찬 15 2017년 19대 33,990 0.1% 7위
1.3.6.2. 국회의원 선거
연도 국회 전체 의석수 결과
1948년 1대 85 / 200 원내 1당보다 많음
1950년 2대 126 / 210 원내 1당보다 많음
1954년 3대 67 / 210 원내 2당보다 많음
1958년 4대 26 / 233 원내 3당보다 많음
1960년 초대 참의원 20 / 58 원내 2당보다 많음
5대 49 / 233 원내 2당보다 많음
1973년 9대 19/219[18] 원내 3당보다 많음
1978년 10대 22/231[19] 원내 3당보다 많음
1981년 11대 11 / 276 원내 4당보다 많음
1985년 12대 4 / 276 원내 5당보다 많음
1988년 13대 9 / 299 원내 5당보다 많음
1992년 14대 11 / 299 원내 4당보다 많음
1996년 15대 16 / 299 원내 4당보다 많음
2000년 16대 5 / 273 원내 4당보다 많음
2004년 17대 2 / 299 원내 6당보다 많음
2008년 18대 25 / 299 원내 3당보다 많음
2012년 19대 3 / 300 원내 4당보다 적음
2016년 20대 11 / 300 원내 4당보다 많음
1.3.6.3. 지방선거
연도 횟수 광역자치단체 기초자치단체 광역자치단체의회의원 기초자치단체의회의원
1995년 1회 2 / 15 53 / 230 152 / 875 -[20]
1998년 2회 0 / 16 44 / 232 39 / 616
2002년 3회 0 / 16 30 / 232 26 / 682
2006년 4회 1 / 16 29 / 230 14 / 733 228 / 2888
2010년 5회 2 / 16 36 / 228 36 / 761 305 / 2888
2014년 6회 0 / 17 29 / 226 20 / 789 277 / 2898
2018년 7회 1 / 17 17 / 226 16 / 824 171 / 2926

1.4. 무소속 정치인

1.4.1. 대통령

대한민국 대통령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24px-Seal_of_the_President_of_the_Republic_of_Korea.svg.png
이름 임기 선출 방법
취임일 퇴임일
4 파일:최규하대통령초상화.pn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최규하
(1919 ~ 2006)
10 1979년 12월 6일[21] 1980년 8월 16일 1979년 대선
간선 100.0%
5 파일:전두환대통령초상화.png
파일:external/static.tumblr.com/purple_pixel.png
전두환
(1931 ~ )
11 1980년 8월 27일[22] 1981년 2월 25일 1980년 대선
간선 100.0%

1.4.2. 국회의원

무소속 제13대 총선 당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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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록 김태환 박지원 성윤환 송훈석
유기준 유성엽 유재중 이경재 이무영
이윤석 이인기 이인제 이진복 이해봉
정해걸 최구식 최연희 최욱철 한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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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제19대 총선 당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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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표 박주선 유성엽 }}}}}}
무소속 제20대 총선 당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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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부 김종훈 안상수 유승민 윤상현
윤종오 이철규 이해찬 장제원
주호영 홍의락 }}}}}}
1.4.2.1. 대한민국 20대 국회 무소속 국회의원
  • 기준 (17명)
이름 지역구 탈당 사유 탈당 전
소속 정당
이정현 전남 순천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책임 새누리당
이용호 전북 남원시·임실군·순창군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 과정에서의 당내 갈등 국민의당
강길부 울산 울주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의 홍준표 대표와의 갈등 자유한국당
서청원 경기 화성시 갑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참패에 따른 책임 자유한국당
문희상 경기 의정부시 갑 국회의장 선출에 따른 탈당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서울 마포구 을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 대응을 선언하며 자진 탈당 더불어민주당
이언주 경기 광명시 을 당의 '선거제 개편공수처 설치 개혁법안' 패스트 트랙 지정 동참 결정에 반발하며 탈당 바른미래당
김종회 전북 김제시·부안군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에 동참하며 탈당 민주평화당
박지원 전남 목포시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에 동참하며 탈당 민주평화당
유성엽 전북 정읍시·고창군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에 동참하며 탈당 민주평화당
윤영일 전남 해남군·완도군·진도군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에 동참하며 탈당 민주평화당
이용주 전남 여수시 갑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에 동참하며 탈당 민주평화당
장병완 광주 동구·남구 갑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에 동참하며 탈당 민주평화당
정인화 전남 광양시·곡성군·구례군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에 동참하며 탈당 민주평화당
천정배 광주 서구 을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에 동참하며 탈당 민주평화당
최경환 광주 북구 을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에 동참하며 탈당 민주평화당
김경진 광주 북구 갑 21대 총선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며 탈당 민주평화당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무소속 국회의원 11명이 당선되었다. 이들 중 7명의 의원들은 탈당 전 원래 소속의 새누리당으로 복당하였고(유승민, 주호영, 윤상현, 안상수, 장제원, 강길부, 이철규), 이해찬, 홍의락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하였다. 이후 정세균[23], 서영교, 이찬열, 최명길, 이언주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고, 이 중 이찬열, 이언주, 최명길 의원은 국민의당에 입당하였다. 구 통합진보당 울산연합 출신이었던 윤종오, 김종훈 의원은 새민중정당 창당에 참여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김용태 의원이 먼저 새누리당을 탈당하였으며, 비박 세력이 다시 무더기로 새누리당을 탈당하여 먼저 탈당한 김용태 의원 등과 함께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친박계에서는 이정현, 정갑윤 의원이 새누리당의 상황을 어렵게 만든 데 대한 책임을 지고 탈당했고 조원진 의원이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 홍준표 경남지사가 선출된 것에 반발해 탈당 후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2017년 5월 2일, 바른정당에서 집단 탈당하여 자유한국당으로 복당을 희망하는 12명(장제원, 홍문표, 박성중, 여상규, 박순자, 이진복, 이군현, 김성태, 김재경, 김학용, 권성동, 홍일표)은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인 홍준표의 권한(대선 후보의 당무 우선권)으로 복당시키려 했으나 자유한국당 친박 세력의 반발로 인해 10일 가량 무소속 상태로 있다가 대선이 끝나고 5월 12일에 바른정당 탈당파 12명과 1월에 탈당했던 정갑윤 의원 포함해서 13명이 정우택 당 대표 권한대행이 자유한국당으로 복당시켰다. 이정현 의원도 함께 복당 제안했으나 당사자는 복당 제안을 거절했다.

2017년 9월 11일 서영교 의원이 선거법 무죄 판결을 받아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하였다.

2017년 11월 8일 바른정당 탈당사태로 8명의 무소속 의원이 발생하였으며 이튿날 모두 자유한국당에 복당하였다. 13일 주호영 의원이 바른정당에서 탈당하여 다음날 자유한국당에 복당하였다.

2018년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에 반발해 2월 1일 이용주 의원이, 2월 5일 김광수 외 13명의 의원들[24]국민의당을 탈당하였다. 이들 15명은 모두 민주평화당 창당에 합류하였다. 이어 2월7일 손금주 의원이 국민의당을 탈당하였으나 민주평화당에 합류하지 않고 무소속 신분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2018년 5월 6일 강길부 의원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의 갈등으로 자유한국당을 탈당하였다.

2018년 6월 1일 정세균 의원이 전반기 국회의장 임기 만료후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했다.

2018년 6월 10일 정태옥 의원이 막말로 인한 자유한국당 징계 이전에 탈당했고, 2018년 6월 20일 서청원 의원이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참패에 따른 책임을 지겠다며 탈당했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에서 탈당 의원의 제적 보고, 탈당 처리를 미루었다. 상임위 배분에서 한 자리라도 더 얻으려고 꼼수를 쓴 것이다.(기사) 뭐 결국 두 의원 다 무소속이 되긴 했다, 정태옥 의원은 다시 복당했지만.

2018년 12월 28일에 손금주, 이용호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입당을 선언하고 공식적으로 입당원서를 제출했다. 이들의 입당이 성사되면 무소속 의원은 5명으로 줄어들게 될 뻔 했으나 2019년 1월 13일 두 의원 모두 입당이 불허되었다.

2019년 1월 20일 손혜원 의원이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 끝까지 싸우고, 당에 부담을 지우지 않겠다고 밝히며 더불어민주당에서 자진 탈당했다.

2019년 1월 21일 이부망천 논란으로 자유한국당을 탈당했던 정태옥 의원이 탈당한 지 7개월 만에 자유한국당에 복당했다.

2019년 4월 23일 이언주 의원이 바른미래당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선거제 개편안 및 공수처법 제정에 관한 패스트 트랙 지정 동참 결정에 반발하며 바른미래당에서 탈당했다.

2019년 8월 12일 민주평화당 소속 9명의 의원들이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에 동참하며 평화당에서 탈당했다.

2019년 11월 15일 국민의당 출신 무소속 손금주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1.4.3. 민선광역자치단체장

  • 서울특별시장
    대수 이름임기 비고

    35대 박원순 (朴元淳) 2011년 10월 27일 ~ 2014년 6월 30일 재임중 민주통합당에 입당.
  • 대구광역시장
    대수 이름 임기 비고

    11대 문희갑 (文熹甲) 1995년 7월 1일 ~ 1998년 6월 30일 재임중 한나라당 입당.

1.5. 그 외

스포츠 분야에서는 보통 "자유계약선수(Free Agent)"라고 한다. 보통 특정 구단과의 계약이 만료되거나 강제로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 발생하며, 이전 소속팀의 간섭 없이 다른 구단으로 자유롭게 이적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방출에 의한 경우 무적(無籍)이란 용어를 쓰기도 한다.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의 단체 스포츠에서는 개인만으로 경기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은퇴하지 않는 이상 당연히 새로운 구단에 입단하는 것이 원칙이다. 또한 무소속으로 장기간 있을 경우 선수의 몸 상태나 경기 감각 등에 이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가급적이면 빠른 시일 내에 새로운 구단에 들어가게 된다.

참고로 스타판이 원숙한 이후 케스파 소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케스파등신같은 규정상 무소속이 존재할 수 없으며 반드시 게임단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2011 ~ 2012년몇몇 게임이 해체되어 졸지에 무소속이 된 선수들이 몇 명 있긴 했다.[26][27] 방송 경기에 나온 사례로는 아마도 구성훈지난 시즌시드를 받아 듀얼 토너먼트에 출전한 것이 유일.

스타크래프트 2 리그의 경우에는 오픈 대회로 펼쳐지기 때문에 특정 조건만 갖춰진다면 무소속으로 출전 가능하다. 프로게이머 변현우는 무소속으로 결승 무대를 밟은 엄청난 일을 해내기도 했다. 그리고 끝내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2016년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가 폐지되면서 진에어 그린윙스를 제외한 모든 팀들이 해체된 관계로 많은 스타크래프트 2 선수들이 2017년부터는 무소속으로 대회를 참여하게 되었다.

2. 소드걸스의 5번째 소속

해당 문서 참조.

[1] 국회의장, 장관, 국회의원 등등.[2] 교육감의 경우 정당공천이 아니므로 당적이 없기에 모든 후보가 정당 기준에서는 무소속이다.[3] 다만 전임 국회의장이었던 박관용 국회의장이 일본영국의 사례를 들어서 스스로 당시 소속 정당이던 한나라당을 탈당했던 전례가 있다. 김원기 의장과 그 뒤의 국회의장들은 아예 국회법에다가 당적보유 금지를 명문화 했다는 게 차이점.[4] 다만 지역구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의원 선거에서 후보자를 내지 않은 정당은 무소속 후보자가 그 정당에서 지지받고 있음을 표명할 수 있다.[5] 새누리당이 원내 1당이 되고, 유승민을 통해 친박을 견제하기 위한 비박계의 전격적인 제스처. 예외로 이 때 복귀했던 의원 중 한 명인 윤상현은 당시 친박이었다.[6] 대표적인 케이스가 정몽준이다. 총 7번의 국회의원 당선 이력 중에서 5번은 울산 동구에서 당선됐고 그 중 3번(13·15·16대)이나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는 아버지 정주영이 이끌던 통일국민당 당적으로 당선됐고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국민통합21의 당적으로 당선됐는데 국민통합21은 사실상 정몽준의 1인 정당이어서 무소속 당선 때와 다름없다고도 볼 수 있다. 참고로 울산 동구는 정몽준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의 본사가 있는 곳이다.[7] 실제로 18대 대선에서 4명의 군소후보는 모두 무소속이었는데 이들이 얻은 득표율은 고작 0.41%.[8] 그렇다고 해서 정당 결성을 못 한 것은 아니고 무당파 국민연합무정파 전국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등록해서 활동했다! 물론 총선 결과는 시망...[9]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은 이 규정은 준용하고 있지 아니하다.[10]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은 이 규정은 준용하고 있지 아니하다.[11] 본래는 무소속후보자가 한 선거구에 복수 출마할 경우 가나다순으로 기호를 배정했으나 2010년 법 개정으로 현재는 무작위 추첨을 통해 기호를 배정한다.[12] 당시 정부통령 선거에는 기호가 없었고,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있었다.[13] 간선제로 실시되어 국회의원의 투표로 이루어졌다.[14] 통일주체국민회의가 투표하는 간선제이다.[15] 통일주체국민회의가 투표하는 간선제이다.[16] 양김이 분열되자 재야 후보로 출마하나 군부독재 종식을 외치며 사퇴한다.[17] 투표 하루 전날에 사퇴한다.[18] 유신정우회를 포함한 숫자다[19] 유신정우회를 포함한 숫자다[20] 3회 지선까지의 기초자치단체의회는 정당공천이 실시되지 않았다. 즉, 전원 무소속.[21] 취임식은 1979년 12월 21일.[22] 취임식은 1980년 9월 1일.[23] 이쪽은 국회의장에 선출되면서 자동 탈당.[24] 김광수, 김경진, 김종회, 박지원, 박준영, 유성엽, 윤영일, 장병완, 정동영, 정인화, 조배숙, 천정배, 최경환, 황주홍[25] 제18대 대통령 선거 경선에 나가기 위해 자진사퇴.[26] 앞서 해체된 eSTRO는 남은 선수 전원이 일찌감치 다른 팀으로 드래프트 이적하였고, 하이트 스파키즈는 모기업의 합병으로 인해 CJ 엔투스로 넘어갔다.[27] 참고로 이 무렵에 해체된 팀에 있던 몇몇 선수들을 모아서 만든 게임단이 진에어 그린윙스이다. 창단 당시에는 스폰서가 없어 제8게임단으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