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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前 스타크래프트 1 프로게이머 | |
<colbgcolor=#a9a9a9><colcolor=#ffffff> Casy | |
한동욱 (韓東旭 | Han Dong Wook) | |
출생 | 1986년 9월 25일 ([age(1986-09-25)]세) |
서울특별시 중구 약수동 | |
신체 | 170cm, 77kg |
혈액형 | O형 |
가족 | 부모님[1] |
ID | Adamas[Alive], Casy[Alive], Really[Alive] |
종족 | 테란 |
데뷔 | 2003년 KOR(舊 하이트 스파키즈) 입단 |
별명 | 아트테란, 소닉테란, 한동궈, 프로토스의 희망 |
좌우명 | 시간은 금이다. |
종교 | 천주교 |
학력 | 재능대학교 (졸업) |
병역 | 대한민국 공군 중앙전산소 병장 만기전역[2] (2008.09.22 ~ 2010.10.29) |
소속팀 | 하이트 스파키즈 (2003 ~ 2007.9.7) 위메이드 폭스 (2007.9.7 ~ 2008.9.22) 공군 ACE (2008.9.22 ~ 2010.10.29) |
경력 상금 | $66,204.80 USD (₩77,459,616)[3] |
링크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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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Han "Casy" Dong Wook |
대한민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KOR 시절 차재욱과 함께 욱욱 브라더스로 통했으며, 2004년 Gillette 스타리그 2004에 진출[5]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는 아마추어 신분으로 스타리그에 진출한 마지막 케이스로, 지역 예선 → PC방 예선 → 듀얼 토너먼트로 이어지는 살인적인 경쟁에서 살아남은 대기록이다[6]. 프로리그에서도 맹활약하여 KOR의 SKY 프로리그 2004 3Round 우승에 기여하였다.
변길섭의 고등학교 후배며 중학교 때부터 PC방에서 사사했다고 한다.
프로게이머 중에서도 희귀한 천재형 프로게이머라고 한다.[7] 팬들 사이에서는 젊고 스피드가 더해진 임요환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왜냐하면 컨트롤과 테테전 운영, 그리고 토막 기질[8] 때문이었다. 이와 반대인 타입의 게이머였던 선수가 진영수.[9]
플레이 스타일은 하나의 단어로 대변된다. 스피드. 정말 미칠듯한 속도를 주무기로 하여 상대를 쉴새없이 공격하며 때려잡는 스타일. 스2의 스피드를 브루드 워에서 구현했다고 생각해 보자. 정말 빠르다는 말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10] 변형태와 더불어 당대 최고의 공격형 테란이었다. 대 저그전에서 바이오닉 운영 능력이 최고였다면, 대 테란전에서도 당시의 트렌드를 주도했다고 할 정도로 드랍쉽을 이용한 난전 및 교전 능력의 탁월함으로 높은 승률을 보였다.[11]
대 저그전 강자 순위에는 항상 들 정도의 강력함을 자랑했지만 다른 바이오닉 테란 강자들인 임요환, 이윤열, 서지훈과는 다르게 타이밍 자체는 매우 굳어있었다. 그러나 컨트롤이 환상적이라 정형화된 타이밍으로도 저그를 쉽게 잡아냈다. 사이언스 베슬로 EMP로 디파일러 마나를 바닥내고 컨슘하기 전에 달려들어서 저그 병력을 몰살시키는 모습은 가히 경악 수준이었다. 트로이에서 장육을 만나 핵으로 성큰라인을 뚫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에 반해 토스전은 막장 그 자체. 신상문이 개인방송에서 밝힌 바로는 연습 때도 토막이었다고 한다. 신상문이 연습생으로 처음 들어갔을 때 본인보다 토스전을 못 했다고 한다.[12] 변형태는 당시 한동욱과 친해서 본인이 프로토스를 잡고 한동욱의 테프전 연습을 도와줬다고 한다. 그리고 한동욱을 상대로 프로토스로 전부 이겼다고 한다. 허나, 메카닉을 아예 못 쓰는 건 아니다. 테란전도 기본적으로 메카닉 운용이 이뤄진다는 걸 상기해 본다면 당연히 알 수 있는 것.[13] 다만, 프로토스를 상대할 때의 테란은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 어쨌든 기본적으로 프로토스는 테란에 상성상 앞서는 종족이기에 테란은 프로토스가 가장 약한 타이밍(ex:캐리어, 아비터로 넘어가는 때)을 찔러 공격한다. 그런데 한동욱은 타이밍이고 뭐고 없다며 토스전에서조차 자신의 공격적인 성향을 주체하질 못하는 모습이었다. 테테전에서는 자리만 잘 잡으면 소수 유닛으로도 이득을 볼 수 있지만 토스전은 가벼우면 안 된다. 토스의 유닛들은 기본 능력치만으론 메카닉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난전으로는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려하게 컨트롤하고 무빙샷하는 것보다 프로토스가 약한 타이밍을 꽤면서 교전시 자리를 잘 잡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14] 물론 그래도 프로게이머답게 클래스는 어느 정도 있어서 예선전에서는 박재영, 김태균, 손석희, 정윤종을 상대로 3전제에서 이기기도 했다[15]. 다만 그가 유일하게 가졌던 대 프로토스 5전제인 박지호와의 경기에서는 0:3으로 완패했다. 비슷하게 맹공격을 퍼붓는 절친 변형태의 경우 공격성과 동시에 묵직함을 담보하고 있어 토스전이 강력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16]
한동욱을 잘 아는 사람들은 스타 2에서라도 복귀했으면 임재덕 같은 레전드 대접은 받진 않았을까 하고 많이 아쉬워한다.[17]
2. 주요 경력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FFF> | 스타리그 역대 우승자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FFF> | 스타리그 역대 4강 진출자 |
2.1. 개인 리그
- 2003년 PGR21 3rd (vs. 안석열 1:2)
- 2004년 7차 iTV 랭킹전 예선 탈락
- 2004년 KBC 파워게임쇼 신인왕전 우승 (vs. 안석열 2:0)
- 2004년 Gillette 스타리그 2004 16강
- 2005년 WCG 2005 예선 탈락 (vs. 이병민 0:2)
- 2005년 구룡쟁패 듀얼토너먼트 2위 (vs. 전상욱 2:3)
- 2005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4위 (vs. 박지호 0:3)[18]
-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 우승 (vs. 조용호 3:1) (우승 상금 : 4,000만원)
- 2006년 WCG 2006 한국 최종 선발전 4강 (vs. 전상욱 0:2)[19]
-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24강
-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 4위 (vs. 변형태 0:3)[20]
- 2006년 신한은행 마스터즈 4강 (vs.
마재윤1:3) - 2007년 Daum 스타리그 2007 16강
- 2007년 서울 국제 E스포츠 페스티벌 64강 (vs. 임성진 0:2)
- 2008년 EVER 스타리그 2008 1차 본선
- 2008년 TG 삼보-인텔 클래식 시즌1 64강 (vs. 주현준 0:2)
- 2009년 TG 삼보-인텔 클래식 시즌3 64강 (vs. 김대엽 0:2)
- 2009년 박카스 스타리그 2009 36강 (vs. 한상봉 0:2)
2.2. 팀 단위 리그
- 2004년 SKY 프로리그 2004 2Round 공동 3위 (KOR)
- 2005년 SKY 프로리그 2004 3Round 우승 (KOR)
- 2005년 SKY 프로리그 2004 그랜드 파이널 3위 (KOR)
- 2007년 제2회 제2회 KeSPA Cup 준우승 (온게임넷 스파키즈)
3. 전적
한동욱의 스타1 양대 개인리그 A매치 통산 전적 | |||
방송사 | 온게임넷 A매치 총 전적 | MBC게임 A매치 총 전적 | 양대 개인리그 합산 전적 |
vs 테란 | 41전 21승 20패 (51.2%) | 8전 4승 4패 (50.0%) | 49전 25승 24패 (51.0%) |
vs 저그 | 44전 26승 18패 (59.1%) | 3전 1승 2패 (33.3%) | 47전 27승 20패 (57.4%) |
vs 프로토스 | 24전 7승 17패 (29.2%) | 4전 2승 2패 (50.0%) | 28전 9승 19패 (32.1%) |
총 전적 | 109전 54승 55패 (49.5%) | 15전 7승 8패 (46.7%) | 124전 61승 63패 (49.2%) |
4. 활동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은 그 전의 2개 대회에서의 극심한 저그의 부진[21]이 무색할 정도로 저그가 강세를 보인 대회였다. 24강은 그저 내려갈 선수는 내려가고 올라갈 선수는 올라가는 평범한 구도였는데, 16강에서 저그 유저들이 이병민(vs 홍진호), 임요환(vs그러나 16강에서 차재욱과의 집안싸움 끝에 8강에 진출. 은가이 박성준을 상대로 강력한 저그전을 보여주며 세트 스코어 2:0으로 승리하고[22], 4강에서도 홍진호를 상대로 풀세트 접전 끝에
이 리그에서 보여줬던 바이오닉 컨트롤은 그야말로 절륜이다. 바이오닉 하나로 리그를 제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주요 경기는 홍진호와의 4강전 러시아워3 경기와 조용호와의 결승전 3세트 백두대간, 4세트 815 III. 하지만 강력한 바이오닉 컨트롤과 대비되는 토스전 실력은 우승이 천운이라고 까이는 원인이 되었다.[25]
한편, 한동욱의 전성기였던 신한은행 시즌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에서 프로토스 유저의 수는 24명 중에 5명 뿐이었고, 8강에서 프로토스가 전멸하고 테란은 두 명밖에 없을 정도로 저그가 강세였으며,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도 본선에 진출한 토스 유저의 수는 4명 밖에 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는 단 2명이었을 정도로 프로토스의 암흑기이기도 했다.
선술하였듯이 바이오닉 컨트롤은 매우 뛰어났지만, 토막 소리를 들을 정도로 프로토스전에 상당히 약했다. 특히 공군 ACE 입대 후 테프전 승률이 0%. 임요환과 비슷한 점(저그전에는 강하지만 프로토스전에는 약하다는 점)으로 인해 데뷔 때만 해도 포스트 임요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같은 메카닉을 사용하는 테란전은 어느 정도 선전했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 뒤 우승자 징크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26]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에서 다시 4강에 오르며 부활을 알렸다. 비록 이윤열에게 패하여 결승 진출엔 실패했지만, 4강 3세트에서 보여준 믿기 힘든 역전승은 한동욱만이 보여줄 수 있는 속도전의 진수였다.
하지만 대회 종료 이후에 벌어진 한동욱 사건은 본인은 물론 하이트 스파키즈에게도 큰 상처를 입혔다. 당시 한동욱은 프로리그에서 부진에 빠져 엔트리에조차 이름도 제대로 올리지 못했는데, 이명근 감독과 한동욱 사이에 불화가 생겼고 그로 인해 팬들은 이명근과 하이트 스파키즈에게는 비난을, 한동욱에게는 안타까움을 표하며 위로했다.
하지만 한동욱이 우승 이후 인간성이 변했고, 연습도 안 하면서 매일 여자친구만 만나러 다녔다는 제보도 있었다. 그러나 선수와 팀을 다독여야 하는 감독이 선수와 직접 대립각을 세웠기 때문에 이명근이 그토록 까였던 것. 그리고 한동욱은 경기에 나가지도 않았는데도 스파키즈 패배의 원인이 자신에게 쏠렸고, 극소수를 제외한 팀원들조차도 자신을 따돌리고 험담을 했다고 파이터포럼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밝혔기에 이명근에게 등을 돌렸던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다음은 숙소 이탈 시절, 한동욱의 파이터포럼 인터뷰.
한동욱 심경고백 '게임을 하고 싶다… 이제 1%의 희망은 공군 입대 뿐' -지금 심경은. ▶착잡하다. 잘 해결되길 바랬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 결국 이렇게 됐다. 프로게이머를 하고 싶은 의지는 강하지만 더이상 온게임넷 소속으로는 하고 싶지 않다. -왜 그렇게까지 사이가 벌어졌나. ▶창단 초창기부터 감독님에 대한 신뢰를 많이 잃었고, 내가 납득하지 못할 대우를 받았다. 연봉 문제가 아니라 생활 면에서 그런 대우를 받았다. 그래서 나도 많이 힘들었고 의견차가 심해져서 사이가 많이 벌어진 것 같다. -숙소는 왜 나오게 됐나. ▶처음에 감독님에 대한 불만때문에 프런트인 이학평 차장님께 하소연을 하러 갔다. 차장님은 그래도 내가 잘못한 것이 있을 것이라 해서[27] 납득을 하고 감독님에게 무릎을 꿇고 빌었다. 팀원들의 연습도 열심히 도왔고, 생활 태도도 문제가 없게 처신을 했다. 하지만 이틀 뒤 프로리그에서 MBC게임에게 팀이 패하고 나자 화살이 나에게 쏠렸다. 나는 출전하지도 않은 경기였는데 말이다. 그 날 나를 제외한 팀원들을 하나씩 불러다 면담을 했고, 나중에 들어보니 나에 대한 험담을 했다고 하더라. 나에게 한 마디도 없이 프로리그 출전도 금지했다. 그 일 때문에 너무나도 자존심이 상하고 감독님의 얼굴도 보기 싫어서 숙소를 나가고 싶었다. 처음 이학평 차장님을 찾아갔을 때도 이적을 요청했지만 차장님이 잘못을 빌고 생활 태도를 바르게 한 뒤에도 감독님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이적을 시켜주겠다고 했었다. 그래서 차장님을 다시 찾아갔더니 이적을 시켜주겠다고 했고, 숙소를 나가도 되겠냐고 묻자 알아서 해결하라고 했다. 그래서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숙소를 나오게 됐다. -연봉에 대한 문제는 없었는지. ▶재계약 시점이 되자 온게임넷에서는 두 가지 연봉협상안을 제안했다. 온게임넷에서 뼈를 묻을 생각이면 1안을, 이적을 하고 싶으면 2안을 택하라고 했다. 1안은 지난해 연봉보다 인상된 액수였고, 2안에 제시된 연봉은 1안에 비하면 기본급 수준이었지만 나는 이적을 택했다. 나는 다른 팀에 가서도 기본급 수준의 연봉을 받아도 상관없다고 했고, 차장님은 그 정도라면 이적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적료 역시 너무 높지 않게 부르기로 금액을 정해놨다. 그래서 나는 흔쾌히 2안에 사인을 했다. 적은 연봉을 받더라도 다른 팀에서 열심히 해볼 생각이었다. -공군 입대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집에서 다른 선수들이 게임을 하는 것을 볼 때마다 너무 가슴이 아팠다. 내가 있어야 할 것도 저 곳인데 지금 이렇게 있는 것이 초라해보였고, 이대로 포기하기는 너무 싫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이적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래서 공군을 가야겠다고 결심했고 프런트에도 공군에 가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그러고 난 뒤 갑자기 집안 사정이 어려워졌다. 부모님이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죄책감을 느꼈고, 모든 것을 접고 팀에 들어가려 했다. 8월 15일에 숙소에 복귀하기로 돼 있었지만 감독님께서 막았고, 예선에 탈락한 뒤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고 많이 속상해 하셨다. 그 뒤 아버지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온게임넷을 찾아가 얘기를 했지만 이적과 트레이드, 웨이버 공시가 모두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같이 의논한 뒤 공군을 택하게 됐다. -현재 어떻게 지내나. ▶가슴을 졸이며 지낸다. 공군 입대를 원하긴 했지만 공군 측에서 나를 무조건 받아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마음이 많이 불안하다. -공군 입대가 안된다면. ▶더이상 방법이 없으니 프로게이머 활동을 할 수 없지 않겠나. |
이 인터뷰를 보면 장진남&장진수와 정수영이 싸웠을 때와는 달리 이명근 감독이 일방적으로 잘못했다는 사실을 잘 알 수가 있다.[28] 차라리 연봉을 덜 받더라도 스파키즈에서 나가고 싶다 할 정도면 말 다한 셈.
유독 다른 올드게이머들보다 어린 나이에 공군을 지원하려 했을 정도로 힘들었던 생활이 고달팠던 모양으로 숙소에서 방출당하고 집에서 다른 선수들이 게임하는 것을 보던게 너무 가슴이 아팠다던 문구를 보면 굉장히 상처도 많이 받고 공군 입대가 불가피될 시 은퇴 수순을 밟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자신의 몸담던 게이머 생활이 한 순간에 끝장날 수도 있었다.
추후에 잠시동안 개인방송을 할 때에도 아예 풀고 싶은 썰은 다 풀면서 대놓고 까던 차재욱과는 달리 한동욱은 최대한 감독과의 관계나 썰을 물어봤을 때 최대한 언급 자체를 하지 않는 쪽으로 주제를 돌렸다. 그 때의 트라우마는 생각하기도 싫었던 모양이며, 아예 언급하기도 싫고 가치도 없었던 모양. 또한 본인이 그 썰에 대해서 언급 자제를 부탁했었다고 한다.[29]
물론 KOR 시절부터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주면서 차재욱 다음가는 프로리그 우승의 주역으로써 후에 불화가 있을지언정 이런 식으로 매장을 시켰으면 안 됐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30]
그렇게 더이상 프로게이머로의 미래가 보이지 않던 한동욱이 공군 ACE 소속으로 입대하려던 찰나에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개막을 1주일 앞두고 위메이드 폭스로 이적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로 하이트 스파키즈는 100만 년 까일 소스를 사람들에게 제공해줬고, 반면에 위메이드 폭스는 완전 호감 구단이 되었다. 그리고 위메이드의 김양중 감독도 한동욱을 예의가 바르고 겸손하다고 칭찬을 했다.[31] 어쨌든 한동욱과 그의 팬, e스포츠 관계자들은 마음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위메이드 폭스로 이적한 후에도 그 동안에 있었던 불화 사건으로 인해 연습량이 급격하게 하락하여 예전만큼의 경기력은 복구하지는 못했으며, 그 와중에도 온게임넷 스타리그에는 몇 번 진출하거나 계속해서 선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프로리그에서는 내내 1승도 기록하지 못하다가 2008년 7월 중순, 공군에 지원한다.
2014년 10월 20일 경, 전 한빛 소속 프로게이머 신정민이 자신의 개인방송에서 자신이 온게임넷 팀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를 풀었는데, 그 내용에서 한동욱 선수의 의리를 볼 수 있다.
내용인 즉슨, KOR 팀이 온게임넷에 인수되면서 KOR 소속이던 신정민 자신은 자연스럽게 온게임넷 팀에 들어갈 줄 알았으나 이명근 감독은 신정민 선수와의 계약을 반대했다. 계속되는 협상에서 이명근 감독이 제시한 내용은 팀에서 받아주긴 하겠으나 연봉은 줄 수 없다는 조건이었다. 이를 알게 된 한동욱 선수는 신정민 선수와 같이 가겠다며 자신의 연봉의 반을 신정민 선수에게 지급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팀의 간판인 한동욱 선수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결국 신정민 선수는 온게임넷에 들어갈 수 없었고, 여차저차해서 이재균 감독과 연이 닿아 한빛 스타즈에 들어가게 된다. 자신의 연봉을 반으로 깎는 한이 있어도 같이 이끌고 가려는 모습을 보아 정말로 상당히 의리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32]
5. 공군 ACE 입대와 활동
공군 지원 이후 합격하였고, 2008년 9월 22일에 공군 병 668기로 박정석, 오영종과 함께 공군 ACE에 입대하였다.[33]2009년 상반기에 박카스 스타리그 2009 36강에 진출한 적이 있는데, 저그전의 달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한상봉에게 2대0으로 패배해 탈락하고 말았다. 바이오닉의 강자지만, 당시 맵들은 고전적인 바이오닉으로는 저그를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맵들이었다. 결국 어설픈 발리오닉을 시도하다가 탈락해 버렸다.
또한, 입대 초반에는 프로리그에 자주 쓰이면서 한 자리 잡나 싶었으나 점점 패가 늘어나더니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시즌에는 그냥 패만
그리고 2010년 1월 24일 일요일,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9-10에서 한상봉을 상대로 2배럭 더블 후 10마린 2메딕 타이밍에 뛰쳐나와 성큰 콜로니를 파괴하고 다수의 드론을 잡는 특유의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 후 김승현의 흑마술에 걸려 그의 숨겨진 토막 본능이 뛰쳐나온 탓에 패하고 말았다. 참고로, 한상봉전이 안타깝게도 한동욱의 2010년의 유일한 처음이자 마지막 공식전 승리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대망의 2010년 4월 19일,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4라운드 화승 OZ전에서 프로리그 19연패 중이던 화승토스와 스덕들이 꿈에만 그리던 드림매치가 이루어졌고, 토스전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막장이란 걸 보란듯이 증명하며 화승토스의 프로리그 연패를 끊어줘 버렸다.[35]
그래도 MSL이나 OSL 예선전에서는 자신의 최대 약점이라는 토스전을 극복하고 손석희와 정윤종 등을 3전제에서 탈락시키는 등 기본 실력은 아직 남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둘 다 예선도 뚫지 못하고 탈락하긴 했지만...
6. 은퇴와 근황
2010년 10월 29일에 전역을 했지만, 각자 원 소속팀들로 돌아간 동기들인 오영종과 박정석과는 다르게 건강이 좋지 않은 모친의 병간호와 가업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개인사정으로 원래 소속팀인 위메이드 폭스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은퇴한다고 했다. 그렇게 한동욱의 우승을 천운이라고 까던 사람들조차도 그의 절륜했던 바이오닉 컨트롤을 그리워하며 아쉬워했다.한 때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당시 위메이드 폭스 소속 전상욱이 추후에 개인방송에서 말하기를 전역한 후 팀에서 코치 자리를 만들어 주겠다고 제의까지 했었다고 하나 이마저 거절하고 은퇴하였다고 한다. 이로써 길고 험난했던 게이머 생활을 종지부를 찍었다.
이후 2011년 중에 팀 선배 차재욱이 운영하는 오리고깃집[36]에서 공군 2기 소속 선수들이라고 할 수 있는 선수들이 모두 모여 회동을 하였고[37], 이것을 끝으로 근황 자체가 알려지지 않다가, 2015년에 사업 시작을 하기 전에 잠깐동안 아프리카TV에서 개인방송을 하였다. 사업을 시작한 이후로는 방송은 접은 것으로 보이는데, 2017년을 마지막으로 방송을 킨 적이 없었으나 2019년 5월 방송을 잠깐동안 켰던 이력이 남아 있었고, 2019년 8월 경,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라디오 방식으로 방송하거나 취미로 게임 방송을 하고 있다.
7. 까임
장점과 단점이 뚜렷한 데다 인기 선수들과 엮인 라이벌리가 많은 선수라 깔 거리가 무진장 많다.- 스타계 1위의 전무후무한 토막이라 테란빠에게 까인다. 공식전 25.5%, 비공식전 포함 40.9%.
- 그런데 영웅 박정석에게 2승 0패(비공식 포함 4승 0패)로 앞서서 등짝팬에게 까인다. 이긴 경기 중 SKY 프로리그 2004 3Round 결승전 3경기에서 이긴 경기가 있어서 KT 팬에게도 까인다.[38]
- 바이오닉 컨트롤이 맵빨 덕분이었다고 까인다. 더불어서 우승도 맵빨이라고 까인다.[39]
- 토스전을 못한다는 점 때문에 우승한 리그에서 저그, 테란만 만나서 우승했다고 까인다. 실제로 리그에서 프로토스와 만난 건 강민과 김성제와의 경기 뿐이다.[40][41] 팬들조차도 이것만큼은 실드를 못 치는 듯.
- 그나마 만난 테란, 저그 게이머들도 당시 테란전 성적이 저조했던 게이머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 부분으로도 까인다.
- 이제동에게 4승 1패(비공식 포함하면 5승 1패)로 앞서서 이제동 팬들에게 까인다. 저 유일한 1패도 한동욱이 공군 ACE 소속이었을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패한 경기다.
- EVER 스타리그 2008 1차 본선에서 이제동을 벙커링으로 이겼지만 다음 경기에 패하고 이제동과 함께 탈락해서 '왜 하필 우리 제동이 이기고 나서 떨어지냐?'는 식으로 이제동 팬들에게 또 까인다.
- 온게임넷에서 불화가 있었기 때문에 악질 까들에게 좋은 먹잇감을 제공했다.
- 홍진호의 마지막 개인리그 준우승 기회를 막아버려 콩빠들에게도 까인다. 덤으로 여기서 홍진호가 이겼으면 결승전이 저저전이었을 것이라며 저그빠들에게도 까인다.
- 우승할 때 4강에서 홍진호, 결승에서 조용호 두 명의 저그를 때려잡고 우승하여 저그빠들에게 또 까인다.[42] 게다가 저 두 명은 모두 KTF 소속이었던지라 전술했던 박정석과의 악연까지 엮여서 KT빠들에게 또 까인다.
사실 김캐리가 조용호의 우승을 예상해서 그런 거다.
8. 주요선수와의 상대전적
8.1. 저그전
vs. 심소명 2:0vs. 홍진호 4:3[43]
vs. 조용호 4:2[44]
vs. 박경락 2:5
vs. 박태민 1:0
vs. 변은종 1:5
vs. 박성준 5:3
vs. 삼성준 3:2
vs. 안석열 5:3
vs. 조형근 0:2
vs. 이재항 2:1
vs. 신노열 1:3
vs. 성준모 2:1
vs.
vs. 박명수 0:2
vs. 이제동 5:1
vs. 한상봉 2:2
vs. 김준영 1:4
vs. 박재혁 2:2
vs. 서경종 4:3
vs. 박준오 2:0
vs. 김현우 2:0
총전적 113승 70패 61.7%
8.2. 프로토스전
vs. 이재훈 1:2vs. 박정석 4:0
vs. 박용욱 1:3
vs. 강민 0:2
vs. 김환중 3:1
vs. 김성제 1:0
vs. 전태규 1:3
vs. 안기효 4:1
vs. 박지호 0:5
vs. 오영종 3:3
vs. 송병구 0:5
vs. 박영민 2:3
vs. 박종수 1:2
vs. 박정길 0:3
vs. 김택용 1:0
vs. 도재욱 0:1
vs. 윤용태 1:4
vs. 손찬웅 0:2
총전적 45승 66패 40.5% [46]
괜히 토막이 아닌지라 전반적으로 처참하지만 오영종 상대로 동률이고 박정석, 안기효, 김환중 상대로 압도적인 전적을 보여주는 의외의 면모도 있다. 김택용에게도 의외로 1:0으로 앞서지만 딱 한 번 이겼을 뿐이라...
8.3. 테란전
vs. 이윤열 3:5vs. 임요환 1:1
vs. 최연성 4:4
vs. 서지훈 3:3
vs. 이병민 5:2
vs. 변길섭 1:0
vs. 차재욱 2:0
vs. 나도현 1:4
vs. 전상욱 2:7
vs. 진영수 3:0
vs. 변형태 6:7
vs. 염보성 2:4
vs. 이성은 2:4
vs. 이재호 1:0
vs. 이영호 0:4
총전적 58승 71패 45%
승률은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자신의 리즈 시절이라 할 만한 2006년에는 변형태, 전상욱 등과 함께 스피드 있는 스타일로 테테전을 휩쓸었다. 한동욱의 최전성기인 2006년의 테테전 승률은 20승 10패이며, 승률은 66%에 달한다.
상당히 낮은 승률의 토스전과는 달리 본인 특유의 속도감 있는 테테전으로 상대를 앞서나갔고, 이윤열, 최연성과의 다전제에서 역스윕에 실패했지만 근성의 테테전을 보여줬으며 서지훈을 상대로도 중요한 경기에서 두 차례나 꺾는 모습을 보이면서 토스전과는 달리 테테전만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는 걸 증명했다.
대표적인 천적으로는 전상욱이 있었으나[47], 반대로 이병민에겐 강했다.[48] 그래서인지 이 선수들처럼 한 동안 이병민<전상욱<한동욱<이병민... 으로 먹이사슬이 형성되기도 했었다.
9. 기타
우승자 출신이지만 양대리그 본선 5전제에서 1세트 승률이 0%... 한번도 못 이겼다. 그나마 신한은행에서 후원한 신한은행 마스터즈 에서아이디를 정말 많이 바꿨는데, 데뷔 초엔 Casy를 썼다가 2005년에는 ioi, 2006년 이후엔 Really로 바꿨다.
엠막의 대표주자로, 김준영과 함께 개인리그 우승자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MSL 본선 진출 경력이 전무하다.[50]
양대 개인리그 우승자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근황이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근황이 밝혀졌는데, 2015년 초부터 아프리카TV의 방송을 시작했다고 한다. 방송국은 여기. 방송 시간대는 주로 새벽. 그리고 해당 개인방송에서 밝힌 근황으로는 치킨집을 인수해서 오픈을 했다고 한다.
프로게이머로서는 보기드문 외동아들이다. 외동아들이라 부모님께서 크게 반대할 만도 하겠지만 본인이 하고싶은대로 하라고 하셨다고 한다.
최종 상금 순위는 30위. 그런데 욱한동이라고 오기되어 있다. 오영종도 종오영이라고 되어 있다.
한창 주가를 올리던 시절인 2006년에도 스파키즈 내부 랭킹전에서는
이탈리아 축구선수 안드레아 바르잘리와 닮았다.
2022년 전상욱의 개인방송 중 한동욱에 대한 언급이 나오자 현재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9.1. 별명
- 황태자: 테란의 황제 임요환의 후계자라며 불리었던 별명. 수준급의 테저전 바이오닉 컨트롤과 절망적인 토막의 모습이 흡사 전성기 시절의 임요환을 떠오르게 한다며 붙은 별명이다. 임요환의 '좁아' 짤과 엮은 짤방도 자주 생산됐었다.
- 아트테란: 한동욱의 가장 대표적인 별명. 뛰어난 마이크로 컨트롤이 예술 같다고 하여 붙여졌다. 온게임넷에서 한창 한동욱이 떠오르던 시절 주력으로 밀던 별칭이다.
- 소닉테란: 아트테란과 비슷한 시기에 생겨난 별명으로 아마 스피디한 스타일이 소닉 더 헤지혹을 연상시키기에 붙은 것으로 보이나, 아트테란보단 상대적으로 묻힌 별명인지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 시대 사람들은 '아 이런 별명도 있었지.' 하는 정도.
- 한동궈: 한동욱의 이름 장난.
- 핵동욱: 장육과의 스타 챌린지에서 핵관광으로 완전히 보내버렸다고 해서 붙은 별명.
- 프로토스의 희망: 상술된 부족하고도 끔찍한 프로토스전 때문에 붙은 별명. 특히 슈퍼파이트 종족 대항전을 진행하던 때에 더욱 흥한 별명이었는데, 당시 종족별 대표선수를 팬투표로 뽑았었기 때문에 수 많은 프로토스 팬들이 이성은과 더불어 한동욱에게 투표를 하면서 '한동욱이야말로 프로토스의 희망'이라며 널리 퍼졌다.
[1] 외동 아들이다.[2] 공군 ACE 소속으로 프로게이머 생활도 같이 보냈다.[3] Casy 경력 상금.[4] BJ명 '동쪽동욱', 2019년 8월 28일 이후 방송을 하지 않고 있다.[5] 당시 박태민, 조용호를 잡았다. 그러고 보니 스타리그 우승할 때도 조용호를...[6] 진에어 스타리그 2011의 마이 스타리그의 방식도 이와 비슷했다.[7] 실제 온게임넷 해설자들이 언급한 적이 있다.[8] 하지만 임요환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 임요환은 전성기 시절에는 엄연히 토스전 또한 강했으며 그가 롱런하면서 토스전 기량이 다소 하락한 것일 뿐이다. 게다가 임요환이 한동욱보다 스타리그 토스전 승수는 4배가 많고 스타리그 토스전 승률도 20%나 더 높다. 한동욱에 비할 바는 아니라는 것.[9] 실제로 진영수가 데뷔 3년차에 들어서야 빛을 본 반면 한동욱은 데뷔 직후부터 팀의 주전력으로 기용된 케이스다.[10] 같은 팀 후배였던 신상문의 말에 따르면 빠르기로는 프로 선수 중 따라올만한 선수가 없었다고 한다. 잔손질도 거의 없었다고.[11] 한동욱 테란전의 백미는 이윤열과의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 4강 3세트 경기. 0:2 상황에서 거의 다 진 경기를 한동욱 특유의 스피드로 역전해낸다. 역대 최고의 테테전 경기이자 테테전 5전제 중 하나로 꼽힌다.[12] 신상문은 토막까진 아니었으나 뛰어난 저그전, 테란전에 비해서 토스전 성적은 다소 저조한 편이었다.[13] 이는 역시 토막테란으로 유명했던 이성은도 비슷하다. 그 역시 바이오닉의 강자였지만 스스로 가장 큰 자부심을 가진 특기는 메카닉인 시즈 탱크 거리재기이며, 실제로도 정교한 시즈 탱크 활용으로 테테전에도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14] 이와 비슷한 경우로는 이성은이 있다. 그나마 이성은은 Clubday Online MSL 2008 32강에서 토스를 연파할 때는 그럭저럭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이후 공군에 입대하여 오히려 토스전 기량이 상승하여 전체 프로토스전 10경기 성적 6승4패의 성적을 내기도 했으며 윤용태를 잡고 프로리그 100승에 성공하기도 했다. 다만 장기였던 테란전, 저그전에 비해 토스전이 중요한 순간에 발목을 잡아서 토스전에 약한 테란 선수로 기억된다.[15] 예선전에서 위의 프로토스 게이머들을 이겼을 때는 전부 게이머 말기인 공군 ACE 소속 선수 시절이었다.[16] 대신 변형태는 바이오닉 컨트롤이 안 받쳐줘서 한동욱에 비해 저그전 승률이 낮았으나 한동욱의 프로토스전과는 비교하는게 실례일 정도로 좋은 편이다. 애초에 A급 테란 기준으로 저그전을 못한다는 건 50% 정도의 승률을 찍는걸 말하지, 한동욱의 토스전같은 30%를 이야기하는게 아니다.[17] 스타 2의 테란은 브루드 워와 달리 상대를 정신없게 하는 엄청난 속도전으로 끌고 나가 주도권을 잡는 게 가장 중요한데, 이와 마찬가지로 임재덕도 스타 2의 저그에게 가장 필요한 뛰어난 추리 능력으로 스타 2 자유의 날개 저그의 레전드가 되었는데, 만약 한동욱이 자날 베타 시절부터 했다면 어쩌면 자유의 날개 테란 정파의 거물로 대접 받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세상 일에 만약이라는건 없지만.[18] 4강에서 최연성에게 2:3 패배.[19] C조 결승에서 변형태에게 2:1로 승리하여 최종전에 출전.[20] 4강에서 이윤열에게 2:3 패배.[21] So1 스타리그 2005에서 16강에 진출한 7명의 저그 중 8강에 진출한 저그라고는 박성준 겨우 한 명 뿐이었고, 설상가상으로 다음 대회에서 최악의 저그압살맵으로 손꼽히는 개척시대까지 등장했다. So1 스타리그,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2개 대회에서 8강에 진출한 저그는 박성준 단 하나 뿐.[22] 여담이지만, 16강 최종진출전에서 마지막으로 상대한 선수도 투신 박성준이었다. 자신에게 온게임넷 스타리그 최초 4드론을 구사하고 로열로더에 등극했던 박성준을 무려 멀티한 척 하기 위해 앞마당 미네랄에 SCV만 붙였는데 박성준의 오버로드는 그 미네랄의 광경만 보고 운영을 가려다가 한동욱의 날빌에 당하고 만다. 그 전에 상대해 승리한 김성제전을 포함해서 2승으로 진출.[23] 투신 박성준의 기량 하락 이후 마재윤과 함께 저그 최강자라고 분류되던, 조용호 게이머 인생에서 2003년 못지않은 제2의 최전성기 시절이였다. 이 때의 활약덕에 KeSPA 랭킹 1위까지 차지했을 정도였다.[24] 참고로 조용호는 안타깝게도 이 대회에서 우승 실패의 후유증 때문이었는지 이후로 슬럼프에 빠지면서 프로리그와 개인리그 모두 침체되기 시작했고, 결국 2008년 1월에 갑자기 은퇴를 하고 말았다.[25] 아이러니하게도 팀의 프로리그 우승과 본인의 개인리그 커리어가 빛나기 시작한 계기가 모두 토스전이다. 거기에 상대가 각각 박정석과 오영종, 당시 박정석은 우승을 노릴 기량의 선수였고 오영종은 전 대회 우승자였는데 8강 진출이 걸린 끝장승부에서 완벽하게 이겼다.[26] 라고는 하지만 우승한 다음 시즌인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의 24강 조별리그에서 붙었던 상대들이 자신의 천적 전상욱, 투신 박성준, 오영종이다. 전상욱은 당시 테란 중에 기량으로써는 최정상의 게이머였으며, 박성준은 전성기 때보다는 테저전 실력이 많이 저하되기는 했지만 무시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고, 마지막으로 오영종은 이 당시에는 그다지 기대를 못 받았지만 이후 계속되는 가시받길을 뚫고 지나가며 이 리그에서 준우승까지 했던 선수다.[27] 이때 이명근의 이미지가 덕장이었던 것이 원인. 아마 이학평 차장은 그 사람 좋기로 유명한 이명근 감독이 설마? 했을 것이다. 근데 그 설마가 사실로 되었다. 그리고 이제 이명근은 마재윤 못지 않은 흑역사가 되었다. 사실 실상을 잘 알면 이것은 의외로 그다지 놀라울 게 없는데, 이명근은 스파키즈 선수(전태규와 차재욱 등 코치까지 맡은 고참들부터 이경민 등 후배 에이스까지)들이 공통적으로 정치질 능력이 무시무시했던 인물로 증언한다. 그처럼 인성파탄자지만 정치질을 잘 하는 인물은 자기보다 상위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한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스스로를 호인으로 인식하도록 만들면서 자기 휘하의 인물들은 그야말로 짓밟는다. 이명근의 화려한 처세술에 스파키즈의 프론트가 속았던 것이다. 어디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 야구계에도 그런 감독이 있다.[28] 밝혀지지 않은 한동욱이 미흡한 점이 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으나, 이 시절 한동욱은 고작 만 20세를 갓 넘긴 사회초년생의 나이였다. 애시당초 이런 미숙한 나이의 선수들을 옳은 길로 이끌어주어야 하는 사람이 바로 감독이다.[29] 차재욱과 전태규는 그 동안에 있었던 이명근에 대한 썰들을 대차게 풀어대며 실상을 언급했다. 사실 이 팀 선수들이 모일 때 가장 단골로 나오는 토픽이 바로 감독 관련 썰이다.[30] KOR 시절에 우승한 프로리그 준결승전에서 한동욱이 당시 0대2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 한 경기만 지면 끝나는 매치포인트에서 GO 팀의 대표 에이스 서지훈을 꺾으면서 역스윕의 발판을 마련해주었으며, 특유의 토막 불치병을 앓으면서도 결승전에서 KTF의 박정석을 잡아내면서 우승에 큰 기여를 하였다. 한동욱이 마련한 기회를 발판 삼아 모두 다 마무리는 차재욱이 담당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뒀다.[31] 한동욱은 사실 평소에 팬들에게 토스전 실력으로 까였으면 까였지, 이미지나 행실 등으로 까인 적은 없었다. 인터뷰 때도 항상 겸손한 자세로 일관했고, 스파키즈에서 촬영을 했을 때도 촬영 감독이 온갖 까다로운 사항들을 요구해도 그걸 아무런 불만없이 다 들어줬을 정도였다. 공군 ACE 소속이었던 선수들도 한결같이 한동욱은 천사였다고 할 정도.[32] 신정민 본인도 이 사건 때문에 이명근 감독과 사이가 좋지 못하다고 했다. 정작 이명근 감독 본인은 신정민과 사이가 좋은 줄 알고 있다는 후문. 나중에 연봉 0원과 방출통보는 프런트가 제시했기 때문에 감독 자신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단다. 한 마디로 KOR은 이명근 감독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프런트부터가 문제덩어리였을 정도로 아주 팀 자체가 문제투성이였던 셈.[33] 이 3명의 맞고참은 공군 병 653기로 2007년 6월 25일에 입대한 박대만과 이주영이었다. 박대만과 이주영은 1년 넘게 막내 생활을 한 꼬인 군번이었으며 이에 반해 이 3명은 공군 병 670기로 2008년 11월 24일에 입대한 홍진호와 차재욱을 시작으로 후임을 꾸준히 계속 받은 풀린 군번이었다. 훗날 인터뷰에서 어떻게 막내 생활을 1년 넘게 할 수 있었는지 존경한다는 말까지 할 정도였다.[34] 그나마 그 중에 서지훈은 말년에는 한동욱의 말년보다 훨씬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서지훈의 경우에는 자주 못 나왔던 사유가 부진 때문이 아니라 손목 부상 때문이었다.[35] 그런데 이 경기가 있던 날의 작년에 있던 MSL 예선전에서는 한동욱이 그 화승토스 선수 김태균을 예선 탈락시켜버렸다.[36] 현재는 알다시피 운영을 더 이상 하지 않고 있다.[37] 한동욱 본인도 당연히 참석.[38] 그리고 박정석은 차기 2005년 광안리 결승에서 한동욱의 절친 전상욱에게 또다시 초반 러쉬에 당해 패배하면서 프로리그 결승의 저주를 이어갔다. 마침 두 경기 다 같은 맵이라는 점도 아이러니.[39] 헌데, 우승했던 시즌의 8강 진출자 종족 분포가 저그 6명, 테란 2명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맵빨이라고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더욱이 상대했던 저그들이 한창 황혼을 불사르던 홍진호와 조용호였다는 점을 생각하면...[40] 강민과의 경기는 전진 게이트+캐논 러시에 농락당했다. 김성제에게는 이겼지만, 이것도 토스 압살맵 러시아워 3에서 거둔 승리였다. 게다가 이 시기는 프로토스 최악의 암흑기였다. 올드 게이머들을 보자면, 강민, 박용욱은 MSL에서만 활약했고, 박정석은 개인리그 진출도 버거울 정도였으며, 전태규 역시 하락세에 빠진 상태였다. 오영종은 우승 이후 부진하던 시기였고, 박지호는 프로리그에서만 활약했으며, 송병구는 와우에 빠져 부진했고, 안기효가 그나마 꾸준히 스타리그 본선에 올라왔지만 한동욱과 본선에서 만난 적이 없었다. 드래프트 세대들을 보자면, 김택용은 포텐이 터지기 전이었고, 허영무와 윤용태, 김구현은 이 시절에는 이름이라도 아는 팬조차 없다시피 했고, 도재욱은 아예 데뷔하기도 전이었다. 시운이 매우 잘 따라줬단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다.[41] 또한 이런 실드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의 토막이 개인리그 우승까지 거머쥐었고, 거기다 추가로 4강을 2번 더 진출해 호성적을 거둔 점은 프징징들이 범람하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객관적으로 봤을 때 테막 혹은 저막이었던 선수들은 아무도 우승하지 못했기 때문. 저그 중 대표적인 테막으로 평가받은 장진남과 심소명, 차명환도 최고 성적이 준우승이었고, 그 외에 4강을 간 것도 조일장과 이영한이 전부였다. 프로토스 중 희대의 저막으로 유명한 도재욱도 박카스 스타리그 2008 준우승이 본인의 역대 개인리그 최고 성적이다. 4강을 간 선수도 박영민, 손찬웅 정도가 전부.[42] 이때까지 결승에서 테란을 이긴 저그는 양박이 한 차례씩 이긴 것밖에 없었고, 저그가 테란에게 탄압받은 긴 역사가 있었는데, 그 와중에 또다시 테란이 저그를 잡고 우승했으니 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43]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1 4강전에서 3:2 승리[44]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1 결승전에서 3:1 승리[45] 신한은행 마스터즈 4전에서 1:3 패배[46] 공식전이 15승 44패, 25.4%로 역대 최저급이다...[47] 전적과는 별개로 사석에선 전상욱과 친한 사이다.[48] 또 이병민은 한참 잘 나가던 전성기 시절에 한동욱에게 약하고 전상욱에게 강한 모습을 보여줬으며, IOPS 스타리그 04~05 8강과 EVER 스타리그 2005 8강전에서 이병민이 전상욱을 다전제에서 두 차례나 꺾었다. 다만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3위 결정전에서는 전상욱이 이겼다. 다만 이 때의 이병민은 바로 앞 경기인 4강에서 이윤열한테 0:3 셧아웃 패를 당하는 등 테막이 되어 가는 중이었고, 결정적으로 이 시절 온게임넷 스타리그는 24강 체제여서 4강 진출자는 무조건 시드를 받았기 때문에 저 다전제는 상금 차등(200만원)과 1번 높은 시드의 의미밖에는 없었다.[49] 과거의 챌린지 리그와 같은 위치라 보면 된다.[50] 이와 반대되는 케이스로는 온막 중에서 개인리그 결승 진출자 출신임에도 스타리그 본선 진출 경력이 전무한 심소명이 있다.[51] 아마 토막 성향으로 인해서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박찬수, 박명수도 한동욱보다는 덜할 뿐 토막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