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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어로는 Sub-Roman Britain이라고 한다.서로마 제국이 브리튼 섬의 방어를 공식적으로 포기한 5세기부터 6세기까지 이어진 브리튼 섬의 대 혼란기를 말한다. 이민족 앵글로색슨족들의 앵글로색슨 7왕국과 로만 브리튼의 후예들이 세운 웨일스, 콘월이 서로 난립하며 전쟁을 벌였다.
2. 배경
395년 테오도시우스 1세 대제 사후에 일어난 로마 제국의 동서분할 이후 벌어진 혼란 속에서 이민족들이 브리타니아 속주를 공격하고 무차별적으로 약탈했다. 그런 상황에서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명장 플라비우스 스틸리코는 군대를 이끌고 399년 브리타니아 속주를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그러나 401년 플라비우스 스틸리코는 서고트족의 왕 알라리크의 침공에 대응하기 위해 로마 제국 변방 속주의 군대를 집결시켰는데 그중에는 브리타니아 속주의 군단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주둔하던 군대가 철수하고 브리튼 섬이 무방비해지자 주변을 노리는 야만족들의 침략도 더욱 거세졌다.
철수한 군대는 얼마 후 복귀했지만 407년 황제를 참칭하며 갈리아를 침공한 콘스탄티누스 3세에 의해 해협을 건너간 후 패배했기에 침공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결국 410년에 이르러서는 서로마 제국의 첫번째 황제 호노리우스가 편지를 통해 브리타니아 속주를 방어할 여력도 의지도 없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표명하게 된다. 보통 이 시기를 로마 제국과 브리튼의 분리로 본다. https://en.wikipedia.org/wiki/End_of_Roman_rule_in_Britain 또한 참조하면 좋다.
3. 서로마 제국 군대의 철수 이후
브리튼인들은 바다 건너 주트족 용병 대장 헹기스트, 호르사 형제를 고용해 함께 침략자들과 맞서 싸웠으나[1] 곧 주트인들이 비옥한 땅 브리튼 섬을 탐내게 되어 본토 북해 연안 일대에서 대군을 호출해 본격적인 정복 전쟁을 펼쳤다.켄트 지방에 상륙한 주트족이 455년 켄트 왕국[2]을 건설한 것을 시작으로 이내 앵글로색슨족의 대대적인 침공으로 많은 곳에 다양한 야만 왕국들이 건국됐다. 주로 해안 지방에 국가들이 설립되었다. 내륙 거점이 없는 관계로 해안 지방이 교류와 보급에 용이했기 때문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침공 초기 이민족의 대군은 해안선을 따라 침공을 개시했기 때문에 내륙의 브리튼인들은 치열하게 저항했는데 그 중 암브로시우스 아우렐리아누스가 구올로프 지방에서 430년 최초의 군사적 승리를 거뒀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게르만 야만인들의 침공은 더욱 거세졌고 결국 브리튼 인은 야만족의 침공에 시달리며 서쪽으로 계속 밀려났다.
4. 앵글로색슨 7왕국
455년 건국된 켄트 왕국을 시작으로 앵글로색슨족은 브리튼 섬에서 계속해서 세를 늘려갔다.반면에 브리튼인들은 앵글로색슨족의 지속적인 침공에 동쪽 해안지방을 모조리 상실하고 서쪽으로 계속해서 밀려났다. 산지가 험한 웨일스와 콘월로 이동했고 심지어 브리튼 섬을 탈출해 브르타뉴로 이주하기도 했다.
이 시기의 약 100년 동안의 혼란기는 아서 왕 전설의 배경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아서 왕(또는 그 모델이 된 사람)이 활약한 시기를 5세기 후반기부터 6세기 전반기까지로 추측하고 있다.
브리튼인도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만 않고 있었다. 대중에게도 잘 알려져있는 바돈 산 전투는 앵글로색슨족의 공세를 약 1세기 동안 약화시켰던 대승으로 당시 브리튼인들도 치열하게 이민족들을 대상으로 전투를 벌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몇몇 전승에는 이 당시 브리튼군을 아서 왕이 이끌었다고 한다.
그러나 519년 웨식스 왕국이 설립되면서 난립하던 앵글로색슨족의 세력들도 점차 뭉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7세기에 이르러 노섬브리아 왕국이 7왕국 중 마지막으로 건국되면서 본격적으로 앵글로색슨 7왕국 체제가 확립되었다.
[1] 중세 영국의 수도자 길다스(Gildas), 넨니우스(Nennius)의 기록에 따르면 켈트 족의 왕 보티게른(Vortigern)이 픽트 족과 싸울 용병으로 색슨 족의 족장 헹기스트(Hengist)와 호르사(Horsa) 형제가 이끄는 색슨 족을 브리타니아에 불러들이고 동맹을 공고히 하기 위해 헹기스트의 딸 로웨나(Rowena)와 결혼했으나 헹기스트 형제가 보티게른을 배신하고 켈트 족을 학살하며 색슨 족을 브리타니아에 정착시켰다. 보티게른의 아들들인 보티메르(Vortimer)와 카티게른(Catigern)이 맞서 싸워 호르사를 죽였으나 그들도 헹기스트와 로웨나에게 죽었고 켈트족은 밀려나 색슨족이 브리타니아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2] 앵글로색슨 7왕국 중 가장 먼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