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2-19 11:06:52

남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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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나이티드 2019 시즌 스쿼드
구단주 박남춘 · 대표이사 전달수 · 감독 욘 안데르센 · 전력강화부장 이천수
수석코치 임중용 · 코치 박용호 · 코치 겸 전력분석관 정영환 · GK 코치 김이섭 · 피지컬 코치 자스민
트레이너 이승재 · 트레이너 양승민 · 트레이너 김현진 · 팀 매니저 노상래 · 전력분석관 고병현 · 통역 기지용
1 정산 · 2 황정욱 · 4 김근환 · 6 김태호 · 7 남준재 (C) · 8 이정빈 · 9 무고사 · 10 하마드 · 11 문창진 · 13 김진야
14 양준아 · 15 이재성 · 16 이윤표 · 17 박세직 · 18 김승용 · 19 허용준 · 20 부노자 (VC) · 21 이태희 · 22 김강국 · 23 콩푸엉
24 이우혁 · 25 이제호 · 26 곽해성 · 27 지언학 · 28 정훈성 · 29 김보섭 · 31 김동헌 · 32 정동윤 · 33 이준석 · 34 김한빈
35 주종대 · 36 김대경 · 37 김종진 · 38 김채운 · 39 임은수 · 40 최범경 · 41 손무빈 · 44 김정호 · 47 김동민
* 이 표는 간략화된 버전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 스쿼드에 변동이 있으면 두 틀 모두 수정해주세요.

파일:2019남준재.png
인천 유나이티드 No. 7
남준재
(南濬在 / Nam Joon-Jae)
생년월일 1988년 4월 7일 (만 [age(1988-04-07)]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신지 경상북도 경주시
포지션 윙어
신체조건 182cm, 75kg
학력 달성초 - 협성중 - 청구고 - 연세대
프로입단 2010년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팀 인천 유나이티드 (2010)
전남 드래곤즈 (2011)
제주 유나이티드 (2011~2012)
인천 유나이티드 (2012~2014)
성남 FC (2015~2018.6)
아산 무궁화 (2016~2017.9, 군복무)
인천 유나이티드 (2018.6~ )
국가대표 유니버시아드 : 6경기 1골
응원가 ABBA - Dancing Queen[1]
별명 레골라스
인천 유나이티드 역대 주장
최종환
(2017~2018)
남준재
(2019~ )
현직

1. 소개2. 경력
2.1. 인천 유나이티드 1기2.2. 전남 드래곤즈제주 유나이티드에서의 실패2.3. 인천 유나이티드 2기
2.3.1. 2012년 : 영웅 등극2.3.2. 2013년 :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 공격의 주축2.3.3. 2014년 : 경쟁자의 대두와 부진
2.4. 성남 FC아산 무궁화 입대2.5. 인천 유나이티드 3기
2.5.1. 2018년 : 귀환한 영웅, 잔류의 선봉장2.5.2. 2019년 : 새로운 캡틴
3. 플레이 스타일4. 여담

1. 소개

인천의 남편, 레골라스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윙어를 주로 소화하는 공격수이며, 인천 유나이티드의 새로운 레전드급 선수로 떠오르는 인물.

2. 경력

2.1. 인천 유나이티드 1기

파일:junjae2010.jpg

연세대학교 시절 연고전마다 득점을 기록하며 주가를 올려온 선수로 이미 주목받았고, 졸업하기 이전인 2010년에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다. 이 드래프트에서 일리야 페트코비치의 인천에 1순위로 지목되어 K리그에 데뷔한다. 대학 시절에 좋은 모습을 보여준 선수라서 나름 큰 기대를 받았고, 실제로 시즌 초부터 경기에 출장하였다. 미숙한 모습이 보이기도 했지만 절친 유병수와의 공격 조합이 호평을 받기도 했고, 강수일과 함께 유병수를 보조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시즌 기록은 28경기 3골 5도움으로 신인으로 준수한 수치.

2.2. 전남 드래곤즈제주 유나이티드에서의 실패

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나, 허정무는 애제자 정인환을 노리고 있었고, 이 과정에서 김명운과 정인환을 남준재, 안재준과 트레이드하는 딜이 성사되었다.[2] 전남 이적 후 기회를 잡기는 했지만, 점차 폼이 떨어졌고 부진이 이어지며 팀 내 입지가 흔들렸다. 그 결과 남준재는 6개월만에 제주 이적을 택한다.

그런데 여기서도... 망했어요. 2011년에도 3경기 출장에 그쳤고 2012년 전반기에도 실종되며 출전을 하지 못하면서 점차 감각이 떨어졌다.

2.3. 인천 유나이티드 2기

2.3.1. 2012년 : 영웅 등극

파일:l_2014031001000341500020311.jpg

결국 인천에서 부상으로 기회를 잃은 장원석과 트레이드되며 친정팀 인천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적 직후 인천에서는 급속도로 폼이 올라왔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펄펄 날면서 2012 시즌 후반기 하위스플릿을 정복한 인천의 공격진을 진두지휘하였다. 당시 그는 반 시즌만에 설기현의 7골을 제치고 8골로 팀 내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때문에 리그 수위급 측면 자원으로 평이 수직 상승. 당시 남준재는 뛰어난 위치 선정을 기반으로 득점을 하기도 하고, 개인 능력으로 상대 수비를 흔들기도 하는 등 인천 공격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옵션으로 평가받았다. 인천은 남준재가 라인업에 가세하면서 최전방에 설기현, 우측에 한교원, 그리고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는 이보가 자리잡은 화려한 스쿼드를 완성했고, 19경기 무패라는 기록을 세우는 데 이른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후반기의 히어로로, 특유의 레골라스라는 별명을 안겨준 화살 세레모니 덕분에 승리의 화살로도 불렸다.

2.3.2. 2013년 :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 공격의 주축

이 활약에 힘입어 다음 2013 시즌에는 7번을 받았고, 역시나 공격진에서 번뜩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골 결정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고 경기력도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작년에 비해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특히 시즌이 진행될수록 판단력이 아쉽다는 평. 그래도 남준재 - 디오고 아코스타 - 한교원의 공격 라인업이 이 시즌 인천의 상위 스플릿 진입에 큰 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다. 인천은 여기에 이천수 카드를 간간히 쓰면서 효과를 봤지만, 이천수가 음주 폭행 사건으로 징계를 받아 시즌 아웃이 되고 설기현이 노쇠화로 인해 점차 활약도가 떨어지는 가운데 공격력도 무뎌지며 최종 7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2.3.3. 2014년 : 경쟁자의 대두와 부진

2014 시즌 초반에는 주전으로 나왔고 개막전 득점도 기록했지만, 결국 이천수, 문상윤, 최종환에 밀려서 벤치 신세를 진다. 문상윤이 아시안게임에 차출된 이후 다시 기회를 잡았고, 다시금 가벼운 몸놀림을 보여주었지만 출장 수는 17경기로 반토막이 났다. 이 시즌 최종환이 그간 윙으로는 다소 애매한 모습을 보인데서 탈피해 좋은 플레이를 선보였고, 김봉길 감독이 이천수를 중용하면서 남준재의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2.4. 성남 FC아산 무궁화 입대

시즌 종료 후 수많은 선수들이 연달아서 이탈하던 인천에서 남준재 역시 FA 대상자가 되었고, 박태민과 함께 성남 FC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성남으로 이적한 2015 시즌 초반에는 경기력이 좋지 않은 모습이었으나 라운드가 진행될수록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파일:성남 남준재.jpg
골을 넣은 후 활을 쏘는 레골라스세레모니가 화제가 되고 있다. 이후 경기들에서 간간이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성남의 측면 자원 중 가장 좋은 모습을 보였다.[3] 2015 시즌 총 30경기에 출장해 4골 2도움을 기록했다. 2015 시즌 종료 후 안산 무궁화 FC로 입대했다.

파일:external/www.asanfc.com/qDBHtt.png
안산에서 남준재는 로테이션 정도의 지위로 경기를 소화하였다. 그런데 자신의 본 소속팀인 성남이 군 입대를 한 사이 강등을 당하면서 전역 이후에도 챌린지에 머무르게 되었다. 안산이 아산으로 옮겨간 후에 계속 시즌을 치르다가 2017년 막판에 전역하였고, 복귀전까지 치렀다.

그러나 남준재의 성남 커리어는 위기를 맞게 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남준재는 일방적인 방출 통보를 받으며 2019년까지 남은 계약을 해지하고 성남을 떠나는 데 합의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서 남준재는 성남에 미지급 급여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이에 성남 측도 반박을 내놓기는 했지만, 남준재에게 1월 급여를 안 준 것은 사실이고 분명한 잘못이라는 것이 중론. 어떻게 해결을 봤는지 일단 2차 전지훈련에는 남준재가 성남과 동행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후 등번호 39번을 배정받았지만, 이미 구단과 사실상 갈라선 상황이라 전반기 내내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러다가 여름 이적시장을 앞두고 친정 인천으로의 복귀가 확실시되고 있다.

2.5. 인천 유나이티드 3기

2.5.1. 2018년 : 귀환한 영웅, 잔류의 선봉장

인천에 세 번 영입된 최초의 선수.

그리고 인천 팬의 인스타그램 페이지인 인모것을 통해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준재의 모습이 공개되며 오피셜만 나오지 않았을 뿐 인천 복귀는 확정되었다. 그간 고생해서인지 살이 다소 빠진 모습으로 등장했는데, 그래도 웃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복귀 자체에는 행복해 하는 듯하다. 이전 단독 기사를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1년 6개월 계약이고, 인천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생각이라고 한다. 시즌 중반에 송시우-박용지-이호석이라는 세 명의 윙어가 동반 입대를 한 인천 입장에서 남준재 영입은 도움이 될 전망. 솔직히 송시우 말고 나머지 둘은 있어도 도움이 딱히... 이후 6월 12일에 공식적으로 오피셜이 나오며 입단이 확정되었다. 이후 송시우가 떠나며 빈 7번을 배정받았다.

월드컵 휴식기 종료 이후 문선민이 햄스트링 문제로 결장하게 되자, 2018년 7월 11일 강원 FC를 상대로 선발로 투입되면서 복귀전을 치렀다. 전반기를 사실상 날린 것으로 인해 우려도 있었지만 왕성한 활동량과 날카로운 움직임으로 건재함을 증명했고, 아길라르의 골을 어시스트하면서 공격 포인트까지 쌓았다. 팬들도 4년만에 남준재의 응원가를 불러주며 화답했다.

문선민의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은 상황해서 남준재는 지속적으로 선발로 투입되어 인천의 측면 공격을 이끌었고, 활발한 활동량을 기반으로 수비 가담도 적극적으로 수행하였다. 그리고 7월 22일 시즌 2번째 경인 더비에서 박종진의 크로스를 받아 인천 복귀를 알리는 골을 넣었다. 레골라스 골 세레모니 역시 건재했다. # 고슬기의 부족한 활동 반경을 직접 뛰면서 메워 수비에도 혁혁한 공을 세운 남준재는 후반에 이정빈과 교체되기 전까지 좋은 활약을 이어갔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후 서포터즈가 그의 선수콜을 불러주자 남준재는 눈물을 보였다. 친정팀 복귀 이후 첫 골과 첫 승에 감격한 것도 있지만 성남 FC 이적과 아산 무궁화 입대 과정에서 겪었던 서러움이 생각났는지 눈물을 펑펑 흘렸다.

그 다음 전남 드래곤즈 원정 경기에도 선발로 출장하였다. 전반에 전남의 공격에 휘둘리던 인천 수비를 개선하기 위해 활동량을 엄청나게 가져갔고 볼 탈취도 실제로 몇 차례 성공했다. 그리고 이슬찬의 실수를 포착하고 침투해서 공을 잡은 후, 스테판 무고샤에게 완벽한 패스를 넣어서 시즌 2호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전반전에 좋은 플레이를 펼친 남준재는 이후 후반 시작과 함께 문선민과 교체되었다. 전남 전을 마치면서 주중 경기까지 섞인 강행군이 일단 종료되었는데, 남준재가 그간 팔 골절에도 불구하고 출장을 감행했음이 알려졌다. 현재까지 경기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최고의 영입으로 꼽히는 남준재가 부상을 안고 계속 경기를 뛰었다는 점에서 많은 팬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남준재가 당분간 결장하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만일 결장하게 된다면 마찬가지로 햄스트링이 완전하지 않은 문선민이 혹사당할 염려가 있다. 그래도 박종진의 폼이 많이 올라온 상황이라서 박종진을 중심으로 윙 조합을 짜서 대비할지도.

남준재 결장 기간 동안에 이정빈, 박종진이 기용되었으나 강원에게 대패를 당하면서 둘 다 엔트리에서 밀려났고 김보섭이 대신 나오게 되었다. 김보섭은 멀티 골을 기록하는 등 나아지는 플레이를 보였으나 감정 조절 미숙으로 경기를 그르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고, 또 다른 윙 자원인 쿠비도 피지컬에 비해 부족한 경기 지능의 약점을 그대로 노출했다. 김진야는 풀백 자리에 고정되었고, 김용환은 간혹 윙으로 투입되기도 했지만 합격점을 받지 못해 문선민의 좌측에 비해 우측 공격이 아쉬운 모습이 계속 연출되었다. 2군에서 폼을 올리던 남준재는 마침내 30R FC 서울 원정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렀고, 투입 직후 가벼운 몸놀림과 돌파를 선보이며 팀의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다른 윙 자원에 비해 과감하고 투지 있는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선수이고 정신적 지주이기도 해서 금방 선발로 올라올 것이 예상되었고 실제로 다음 경기인 경남 FC 전에서 선발로 투입되었다. 이 경기에서도 중간 중간 날카로운 슈팅을 시도하고 측면에서 분전하는 등 가치를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

스플릿 이전 마지막 경기인 33라운드 전북 현대 모터스 원정에서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초반에 우측면을 돌파하여 최철순을 제치고 올린 크로스가 최보경에 맞고 굴절되었는데 이를 무고사가 득점으로 연결하면서 선제 골에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었고, 이후 문선민과 스위칭을 하며 좌우측을 넘나들었다. 그리고 전반 막판 문선민이 공을 잡고 좌측으로 드리블하다가 빈틈으로 준 킬패스를 받고서는 좋은 볼 컨트롤로 이용의 압박을 벗겨내고 바로 강력한 슈팅으로 연결해서 시즌 2호골을 기록했다. 이대로 경기가 종료됐다면 영웅으로 등극할 수 있었지만, 후반에 팀은 수비 강화를 위해 남준재를 빼고 최종환을 투입했는데 그 최종환이 위험지역에서 파울을 일으키는 바람에 동점골을 먹히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이동국의 역전골까지 나오면서 2018년 전북 전 무패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34라운드 대구 FC를 상대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었으나 1대1 찬스가 조현우의 선방에 막혀 무산되면서 득점에 실패했고 팀도 패배하고 말았다. 그러나 35라운드 상주 상무와의 경기에서는 김대중의 롱패스를 스테판 무고샤가 헤딩으로 돌려놓자 이를 멋진 슈팅으로 연결하면서 선제 골 득점에 성공했다. 그 이후로도 위협적인 돌파와 활발한 전방 압박을 수행하여 상대에게 부담감을 주었고, 팀은 후반 무고사의 골까지 나오면서 2 : 1 승리를 굳혀 일단은 탈꼴찌에 성공했다. 이로써 남준재는 시즌 3골 2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주축 윙어로 꾸준히 출전하던 남준재는 마지막 전남 드래곤즈와의 최종전에서 손 부상을 안고 다시 한 번 선발로 출전했다. 그리고 코너킥 상황에서 루즈볼을 멋있는 하프발리슛으로 연결하면서 시즌 4호골이자 선제골을 성공시켰다. 이어서 최효진의 태클을 유도해 패널티킥을 획득, 이를 무고사가 해결하면서 두 골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으며, 후반에 김보섭과 교체되면서 시즌 마지막 경기를 마무리했다.

시즌 기록은 14경기 4골 2어시. 반년 넘게 경기를 뛰지 않았던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는 활약을 했고 공격포인트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경기력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남준재는 사실상 인천의 시즌 전체 최고의 선수나 다름이 없는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많아진 나이에도 원숙한 기량을 여전히 뽐냈고, 정말 많이 뛰면서 수비, 공격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했으며 문선민이 버티고 있던 왼쪽 윙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우측 윙어들을 대신해 선발출장함으로써 문선민에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팀을 이끌었다.[4] 해이해진 팀의 기강을 바로잡는 중심이었으며, 포기하지 않는 인천의 정신을 다시 팀에 불어넣은 선수이다. 안데르센 감독, 문선민, 무고사, 아길라르 등 잔류에 공헌을 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중심에 선 핵심은 바로 남준재였다. 재영입 오피셜이 나왔을 때는 환영하면서도 기량에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5], 결국 스스로의 능력과 가치를 증명해내는 데 성공했다.

시즌이 끝나고 안데르센이 구단에 직접 핵심급 선수들을 지켜달라는 말을 전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는데 남준재는 무고사, 문선민, 아길라르, 부노자, 고슬기??와 함께 그 선수들 사이에 포함되며 반년 뛴 선수 중에서 유일하게 핵심급 선수로 대우를 받았다.

2.5.2. 2019년 : 새로운 캡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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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겨울 전지훈련에서 임시 주장으로 선정되었다. 작년 주장이었던 최종환이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기 때문에 주장 후보로 팬들 사이에서 거론되는 중이다. 그 외에도 부노자, 정산, 정동윤 등도 거론되는 중. 이후 2월 14일에 공식적으로 2019 시즌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3. 플레이 스타일

윙어지만 크로스보다는 본인이 몰고 간 이후 직접 슈팅을 때리는 것을 즐기는 전형적인 인사이드 포워드이다. 다만 결정력이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고 판단력이 부족해서 한계점도 보이는 편. 2012년에 인천으로 돌아온 당시에는 판단력이 굉장히 좋아졌고, 팀원들과의 팀플레이나 골 결정력도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와서 주가가 상당히 올랐었다. 그러나 2013년 후반기에 폼이 떨어지면서 과거의 단점이 다시 나왔고, 이로 인해 2014년에도 주전 경쟁에서 밀려났다.

2018년에 인천에 돌아온 이후 남준재는 과거보다 더 많은 활동량을 가져가면서 수비 가담을 적극적으로 해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기동력도 여전히 준수하며, 간간히 멋진 돌파도 보여주고 있다. 예전에 비해 슈팅 숫자는 적어졌고, 대신 크로스를 올리거나 침투를 하거나 수비 가담을 늘리는 등으로 대신하고 있다. 인천에 구심점이 되는 선수가 필요했는데, 남준재는 그런 면에서 인천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좌우로 스위칭을 계속 시전하면서 상대 수비를 분산시키고, 침투를 계속 시도하며 필요에 따라 직접 슈팅으로 마무리까지 짓는 모습은 전반기 내내 쿠비김보섭, 송시우가 부족한 모습을 보여 문선민이 지키는 좌측에 비해 우측 공격력이 부족했던 문제를 해결했다. 더군다나 많이 뛰면서 수비가담도 활발하게 하며 수비가담을 거의 하지 않던 문선민과 자리를 바꿔가면서 수비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4. 여담

파일:남준재유병수5.jpg
  • 유병수와 굉장히 친하다. 어릴 때 둘 다 대구에서 살아서 인연이 닿았고, 이후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 인천 입단 이전의 루머로 드래프트를 신청한 것이 해외 진출 실패에 대비한 보험 차원이었다는 말이 존재했었다. 남준재는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면서 좋은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는데, 이후 연세대에 자퇴를 신청하코 체코 팀에서 훈련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드래프트를 보험삼아서 신청해둔 것이 아니냐는 소문에 시달렸는데, 본인의 말에 따르면 연세대와 드래프트 이전 마찰로 인해 자퇴서를 제출하고 드래프트까지 약 두 달 정도 공백기가 생긴 상황이었고, 운동할 곳이 없는 상황에서 유럽 경험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 팀에서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1] 남준재~ 활시윌~ 당겨줘 우리에게~ 오오오 기억해~ 준재 넌~ 이 씬의 주인공~[2] 이후 트레이드로 인천에 온 김명운은 최악의 폼을 보여주였고, 정인환은 활약상은 좋았으나 결국 언론 플레이를 하며 팀을 떠나 팬들이 극도로 싫어하는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이 때 팀을 떠난 안재준, 남준재는 돌고 돌아 둘 다 인천으로 돌아왔고, 이후 차례대로 다시 떠나 성남에서 재회했다.[3] 사실 인천 시절부터 즐긴 세레모니. 애초에 레골라스라는 명칭이 남준재의 별명 중 하나로 고정되었다. 인천으로 다시 복귀할 때 입단 영상에서도 본인 스스로를 레골라스라고 지칭하기도 했다.[4] 사실 남준재가 없을 때 우측 윙으로 뛴 선수는 쿠비, 김보섭, 박종진 등이 있는데 이 중에서 투박하지만 간간히 골도 넣어주며 수비도 잘 해준 김보섭을 제외하면 남준재에게 조금이라도 비빌 수 있는 선수는 없었다.[5] 사실 당연했던게 남준재는 성남과의 갈등으로 약 반년동안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