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10 12:05:27

인천 유나이티드

파일:나무위키+유도.png   해당 구단의 2019 시즌에 대한 내용은 인천 유나이티드/2019년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파일:K League 1 emblem.png
2019년 K리그1 구단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7F7F7 0%, #FFFFFF 20%, #FFFFFF 80%, #F7F7F7)"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border:0px solid; margin:-10px; margin-top:-2px; margin-bottom:0px"
파일:강원 FC 앰블럼.png
파일:Gyeongnam FC.png
파일:대구 FC 앰블럼.png
파일:상주 상무 앰블럼.png
파일:FC 서울 앰블럼.png
파일:external/s20.postimg.org/snfc2017.png
파일:수원 삼성 블루윙즈 앰블럼.png
파일:Ulsan_Hyundai_logo_big.png
파일:Incheon-United-FC.png
파일:jhm emblem.png
파일:제주 유나이티드 앰블럼.png
파일:Steelers_1.png
K리그2 참가 클럽 보기 ▶
과거 참가 클럽 보기
파일:중국 국기.png 슈퍼리그파일:대한민국 국기.png K리그1
파일:일본 국기.png J1리그파일:북한 국기.png 최상급련맹전
전세계 리그 및 대표팀 보기
}}}}}}}}} ||
파일:인천광역시.png 연고 구단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border:0px solid; margin:-11px; margin-top:-8px; margin-bottom:-6px"
파일:SK와이번스 로고.png 파일:Incheon-United-FC.png 파일:external/s20.postimg.org/Elephants_eng_emblem.png
SK 와이번스 인천 유나이티드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파일:external/s20.postimg.org/sbird_logo.png 파일:Jumbos_logo.png 파일:attachment/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emblem_pinkspiders_1.png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인천광역시 연고 기타 구단 보기
}}}}}} ||
파일:Incheon-United-FC.png
인천 유나이티드
Incheon United
정식명칭 인천 유나이티드 프로축구단
법인명 ㈜인천유나이티드
구단형태 시민구단
소속 리그 K리그1
창단 2003년 12월 30일[1]
연고지 인천광역시
홈구장 인천축구전용구장 (20,300석)
라이벌 FC 서울 - 경인 더비
구단주 박남춘 (인천광역시장)[2]
마스코트 파일:external/oi68.tinypic.com/bf2o7c.png
유티
대표이사 전달수
단장 공석[3]
감독 유상철
주장 정산
부주장 고르단 부노자
셔츠 스폰서 신한은행, 인천국제공항[4]
상징색 파란색, 검은색[5]
웹사이트 및 소셜미디어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70px-Emblem_of_Incheon_United.svg.png |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 파일:유튜브 아이콘.png
유소년 시스템
U-18 팀 인천대건고등학교 축구부
U-15 팀 인천 광성중학교
U-12 팀 인천 유나이티드 U-12
2018시즌 스폰서
메인 스폰서 유니폼 메이커
파일:IIAC_jpg01.jpg 파일:external/servicecenter.hummel.dk/hummel%20JPG.jpg
인천축구시대
1. 개요2. 엠블렘
2.1. 창단 10주년 기념 엠블렘
3. 시즌별 역사4. 역대 감독5. 역대 유니폼6. 역대 캐치프레이즈7. 영구결번8. 주요 기록9. 역대 스쿼드
9.1. 등번호
10. 유소년 시스템11. 마스코트12. 홈구장 : 인천축구전용경기장13. 라이벌14. 문제점 및 사건사고15. 그 외16. 응원가17. 2019 시즌 스쿼드
17.1. 코칭스태프 명단17.2. 선수 명단
18. 역대 인천의 주요 선수
18.1. 선수들이 뽑은 10주년 기념 베스트 11들18.2. 레전드 및 주요 선수들18.3. 흑역사

1. 개요

파일:external/www.incheonutd.com/11160.jpg
2015년 FA컵 준결승전에서 전남 드래곤즈를 꺾은 뒤 서포터즈와 함께 한 기념촬영. 인천의 창단 최초 FA컵 결승 진출을 축하하는 기념비적인 사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사진이
파일:인천유나이티드팬들_락싸졸린꿈.gif
위 사진과 비교될 정도로 3~4년 사이에 팬층이 두터워진걸 확인 할수있다. 2015시즌 FA컵 준우승을 계기로 인천의 팬들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2019시즌 현재 창단 초반 이후로 다시 한번 절정을 찍고있는 추세다.

K리그1 소속의 프로 축구단. 연고지는 인천광역시. K리그 13번째 구단으로 2010년대 이후로는 대체로 중하위권을 오가는 시민구단이다. 최고 성적은 2005년 K리그 준우승 및 2015년 대한축구협회 FA컵 준우승이다. 2002 한일월드컵이 끝난 후의 축구 붐에 힘입어, 전국 곳곳에 지어진 월드컵경기장들의 사후 활용과 K리그 저변 확대를 위해서 대도시들을 중심으로[6] 팀 창단을 추진했고, 인천은 할렐루야 유치와 시민구단 창단을 두고 고민하다가 후자로 방침을 바꾸면서 시민구단으로의 창단이 확정되었다.

인천 유나이티드라는 이름은 인천시와 시민, 기업이 함께 구단을 출범시킨 ‘연합’의 뜻을 나타내 시민구단의 이미지와 어울려 팀의 명칭으로 선정되었다.#

열악한 재정 기반과 얇은 선수층, 잦은 선수 이탈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신인들과 준척급 선수들이 강한 팀워크와 정신력을 앞세워 분전하는 것이 창단 이후부터 계속된 전통적 팀 컬러. 그 덕에 승강제 도입 이후 단 한 번도 K리그2로 떨어진 적이 없다. 2016년 성남 FC가 강등당하게 되면서 유일하게 K리그2 경험이 없는 시도민구단이 되었다. 그 덕분에 붙은 별명이 K리그의 생존왕. 시즌 시작 전에는 언제나 하위권으로 분류되지만 심심찮게 상위 스플릿을 위협하고 FA컵 결승에 오를 정도로 K리그 내에서는 다크호스로 손꼽힌다.

유달리 8~9월부터 강해지는 모습을 보여 가을 인천이란 별명도 있다.[7]

다만 2000년대부터 인천유나이티드가 매년 중위권 이상에 플레이오프에도 심심치 않게 진출하고 FA컵 4강 이상으로 AFC 진출권도 노린 전력을 지녔던 시절부터 응원한 팀 사정에 정통한 올드팬들의 경우, 구단과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생존왕 이미지에 굉장히 비판적이다. 중위권 이상을 노려야 할 전력까지 올라가 있음에도 단순히 ‘우리는 생존왕이니까 막판에 생존만 하면 돼‘라는 구단의 자화자찬으로 퉁치려는 마인드를 팬들에 대한 기만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살아남은 것에는 당연히 박수들은 치지만, 야구로 따지면 비밀번호 찍고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고, 전반기 망쳐서 하위스플릿 떨어져서 겨우 생존하고 있기 때문에, "매년 단순히 생존했다고 환호해야 하나?" 하는 비판이 있다. 2019년 시즌에는 이러한 하위권 전전에 K리그판 엘롯기 동맹처럼 경남, 제주와 묶여 강등권 경제인 트리오라는 비아냥도 듣게 되었다. 이와 같은 강등경쟁권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인천유나이티드의 모습은 씁쓸하지만 K리그 시민구단이라는 태생적 구조의 한계와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애초에 시민구단 문서만 들어가도 알 수 있듯이 K리그 부실화의 주범인 시민구단은 1년 반짝 돌풍을 제외하면 상위 스플릿 진입도 힘든 하위권이다. 이전 문단에서 전술했듯 여타 시민구단들은 이미 K리그2로 강등된 경험이 있다. 이때문에 팬들도 선수들의 막판 분전 및 생존본능에는 감동과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구단의 행정 및 눈가리고 아웅식 생존왕 이미지 띄우기에는 화가 날 수 밖에 없는 상황. 2018년 12월에는 안데르센 감독도 이러한 구단의 생존왕 이미지에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그는 "내가 와서 겪어 보니 인천은 그렇게 1부 리그에 생존하는 데 만족해선 안 되는 팀이다. 훌륭한 도시, 훌륭한 팬, 훌륭한 경기장과 인프라가 있다. "라고 하며, 구단이 좀 더 좋은 행정을 해주는 조직이 되기를 희망했다.

2. 엠블렘

2003년 12월 23일부터 27일까지 4개 시안을 놓고 온라인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총 5,002명의 응모자 가운데 2,296명(46%)으로부터 1순위로 지정받음에 따라 구단 공식 엠블렘으로 선정됐다.

인천 유나이티드 엠블렘은 당시 K리그 다른 구단에서 사용하지 않은 타원형의 모양을 활용하여 창단 주체인 인천시, 시민, 기업이 원만하게 화합하는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엠블렘의 문양은 인천을 상징하는 , 바른길로 이끄는 방향키, 비상하는 날개의 형상을 조합하여 인천 구단이 한국프로축구의 새로운 리더가 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담았다. 또 노란색의 문양과 테두리에 해양도시인 인천을 나타내는 블루와 블랙의 줄무늬는 세계로 뻗어나가는 인천구단의 역동성과 진취적인 기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축구 팬들 사이에선 멋진 엠블렘으로 손꼽히는 디자인이다.

2.1. 창단 10주년 기념 엠블렘

파일:external/www.incheonutd.com/%EB%93%B1%EB%A1%9D%EC%9A%A9%EB%93%B1%EB%A1%9D%EC%9A%A9%EC%82%AC%EB%B3%B8-IUFC_10(final)_02.jpg
2013년 시즌 구단 창단 10주년을 맞이하여 구단 정체성 확립과 함께 2013 시즌 K리그 클래식 상위 스플릿 진출 및 시·도민 구단 최초로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달성[8][9]하려는 의미를 담은 창단 10주년 기념 엠블럼을 선보였다.

기존 항구 도시 인천을 상징하는 닻 모양 형태의 형상을 기준으로 한 기본 엠블럼에다가 K리그 클래식 최고의 경기장인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단순형상화 하였고 비상의 의미를 담은 날개 형태를 형상화하여 2013년 시즌을 최고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현하였다.

3. 시즌별 역사

인천 유나이티드 시즌별 역사
2003~2011 창단부터 2011 시즌까지
2012 파란만장했던 2012 시즌
2013 꿈에도 그리던 상위 스플릿! 2013 시즌
2014 무너진 김봉길호, 2014 시즌
2015 모두의 예상을 깬 늑대축구의 돌풍, 2015 시즌
2016 기적의 잔류로 스토리를 만든 2016 시즌
2017 덜 못해서 생존'당한' 시즌, 2017 시즌
2018 막강한 공격, 형편없는 수비, 끊임없는 내분, 2018 시즌
2019 기대를 저버린 안데르센과 다시 찾아온 위기, 2019 시즌

4. 역대 감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0px"
2003년 ~ 현재
1대
로란트
파일:독일 국기.png

대행
장외룡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2대 *
장외룡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행
박이천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3대
페트코비치
파일:세르비아 국기.png

대행
김봉길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4대
허정무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행
김봉길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5대
김봉길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6대
김도훈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행
이기형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7대
이기형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행
박성철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8대
안데르센
파일:노르웨이 국기.png
대행
임중용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9대
유상철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 는 후임 감독(감독대행)에게 팀을 맡긴 뒤 다시 복귀한 경우
}}}}}} ||

인천 유나이티드 역대 감독 명단
순번 이름 국적 취임퇴임재임 시즌
초대 베르너 로란트[10] 파일:독일 국기.png 2003년 9월 25일 2004년 8월 30일 2004
대행 장외룡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2004년 8월 31일 2005년 1월 2일 2004
2대 장외룡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2005년 1월 3일 2006년 12월 28일 2005~2006
대행 박이천[11]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2007년 1월 4일 2007년 12월 20일 2007
2대 장외룡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2007년 12월 21일 2008년 12월 9일 2008
3대 일리야 페트코비치 파일:세르비아 국기.png 2009년 1월 29일 2010년 6월 8일 2009~2010
대행 김봉길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2010년 6월 27일 2010년 8월 21일 2010
4대 허정무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2010년 8월 23일 2012년 4월 11일 2010~2012
대행 김봉길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2012년 4월 12일 2012년 7월 15일 2012
5대 김봉길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2012년 7월 16일 2014년 12월 19일 2012~2014
6대 김도훈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2015년 1월 13일 2016년 8월 31일 2015~2016
대행 이기형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2016년 8월 31일 2016년 11월 28일 2016
7대 이기형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2016년 11월 29일 2018년 5월 11일 2016~2018
대행 박성철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2018년 5월 11일 2018년 6월 8일 2018
8대 욘 안데르센 파일:노르웨이 국기.png 2018년 6월 8일 2019년 4월 15일 2018~2019
대행 임중용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2019년 4월 15일 2019년 5월 14일 2019
9대 유상철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2019년 5월 14일 2019~

5. 역대 유니폼

인천 유나이티드/유니폼 문서 참조.

6. 역대 캐치프레이즈

인천 유나이티드 역대 캐치프레이즈
시즌 캐치프레이즈
2004 Blue Heart 2004
2005 푸른물결 2005
2006 시민속으로 Into the Community[12]
2007~2010 My Pride My United
2011 Change & Challenge[13]
2012 Into the New ERA[14]
2013 인천축구지대본[15]
2014 승리, 그 이상의 감동!
2015 Play, Together![16]
2016~2018 우리는 인천
2019~ 인천축구시대

7. 영구결번

인천 유나이티드 영구결번
No. 12
시민구단으로 출범한 취지를 살려 12번째 선수인 서포터즈와 팬들을 위해 창단과 함께 12번을 영구결번 처리하였다.[17]

8. 주요 기록

인천 유나이티드/기록 참고.

9. 역대 스쿼드

인천 유나이티드/역대 스쿼드 참고.

9.1. 등번호

인천 유나이티드/등번호 참고.

10. 유소년 시스템

인천 유나이티드/유소년 시스템 참고.

11. 마스코트

파일:external/field.incheon.go.kr/20140502141913.jpg
인천 유나이티드의 공식 마스코트는 유티이다.

인천광역시상징새두루미를 의인화한 형상으로 프로축구계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려는 의지와 인천광역시, 인천시민, 인천 연고 기업이 화합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의 친근한 이미지로 상징화하였다. 붉은 머리털은 축구에 대한 강한 열정을, 큰 날개는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와 페어플레이의 스포츠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파일:external/sccdn.chosun.com/2012032701001961200163951.jpg
특이사항으로는 대전 시티즌 팬에게 폭행(!!!)당한 전력이 있다.[18](...) 자세한 내용은 인천 유나이티드/2012년 참고.

12. 홈구장 : 인천축구전용경기장

파일:external/www.incheon.go.kr/20120302105238.jpg

창단 첫 해부터 홈구장으로 쓰던 인천문학경기장을 떠나 2012년부터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쓰고 있다.[19]

설계 때부터 오직 인천 유나이티드만을 위해 만들어진 경기장으로 지어졌다. 관중석 의자 색깔도 인천의 유니폼 색인 파란색을 기본으로 하고, 검정색과 노란색으로 수놓았다. 동쪽 관중석에는 의자에 구단 이름을 영문으로 새겨 넣어 인천 팬들의 자부심을 높였다.

그라운드 터치라인에서 관중석까지 거리를 최소한으로 줄여 축구경기를 가장 생동감있고 역동적으로 볼 수 있다. 골을 넣은 선수가 관중석으로 달려가 팬들과 껴안는 골 세레모니에 최적화 되어있다.[20] 관중석과 그라운드가 가깝다 보니 그라운드를 뛰는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 선수들끼리 부딪치는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다. 국내의 다른 어떤 구장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관중과의 거리를 좁혔다.

K리그 관중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큰 다른 월드컵 경기장들과는 달리 국내의 축구 관중 규모를 고려하여 약 2만 석의 규모로 지어졌다.근데 주중경기는 1만명도 겨우채운다 만명도 겨우 채운다니 언제적 얘기 제일 많이 입장했을 때가 만명이 안되는데 2019년 홈 개막전에 19,000명 채웠다 자세한 내용은 인천축구전용경기장 문서 참조.

훈련장은 연수구 동춘동에 위치한 승기천연구장이다.

13. 라이벌

인천광역시를 연고지로 하는 팀답게, 주로 수도권이나 경기도권 팀들과 라이벌 관계에 있다.

13.1. 인경전, FC 서울

K리그 팀중에 FC 서울과 사이가 좋은 팀이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인천은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서포터즈들 호전성도 강하기 때문인지 미묘한 라이벌 감정과 해마다 끊이질 않는 양 측 서포터즈들간의 충돌로 감정의 골이 깊어질대로 깊어진 불구대천의 원수 사이다. 자금이나 규모면에서 많은 차이가 나는 두팀이지만 인천의 맹렬한 라이벌 의식 덕분에 상대전적은 그렇게까지 밀리지는 않는 편.

그래서 서포터들 중에서는 슈퍼매치를 언론들이 억지로 만들어낸 더비라고 폄하하고, 경인 더비야말로 진짜 더비 라고 치켜세우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21]

인천이 처음 리그에 참여한 2004년부터 2006년까지는 인천의 전적이 약간 앞서있었고, 2007년부터 2009년까지는 인천이 이기질 못했다. 그리고 2010년부터는 백중세를 유지하고 있는 중.(정규리그 기준) 다만 상암 원정에선 지독히도 승률이 좋지 않았으나 2013년 3월 9일 경기에서 3:2로 승리하며 9년만에 첫 원정승리를 기록하였다. 인천에게 있어서는 서울이 가장 큰 라이벌이라고 봐도 될 것이며, 서울에게는 수원과의 슈퍼매치 다음가는 라이벌 더비로 자리잡았다. 언론과 K리그 팬들은 경인더비란 명칭을 사용하나 인천측은 2016년 7월 17일부터 이 더비를 인천광역시의 인(仁)자와 서울특별시의 경(京)자를 따서 인경전으로 칭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5년 FA컵 결승에서 인천이 서울에게 패함에 따라 이들의 적대감은 다음 시즌에도, 그 후로도 계속 표출될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사이 안좋은 것과 별개로 구단간의 선수 이동은 활발한 편이다. 굴지의 대기업 산하 기업구단과 열악한 시민구단 사이의 거래이지만 그 손익이 일방적이었던 적은 별로 없다는 점도 이채롭다.

13.2. 수인선 더비, 수원 삼성 블루윙즈

1호선 지하철 사이의 더비로 지역 내에서는 수인선 더비라 부른다. 반면 수원에게는 이상하리만치 약하다. 차범근 시절까진 수원 2중대였고 윤성효 감독 부임 이후엔 그나마 좀 할만해졌지만 여전히 까다로운 상대. 2012년 숭의 아레나 파크에서의 역사적인 홈 첫경기에서도 수원은 자비없이 2:0으로 무참히 홈 첫경기를 패배로 장식해 주었다. 하필 2골 다 인천 출신 라돈치치가 꽂아 넣었다. 반대로 2013년에는 25R에서 인천이 수원을 상대로 3:1 승리를 거두며 역사적인 첫 상위 스플릿 입성을 결정짓는 승리를 따내기도 했다. 기나긴 수원전 무승이 이어져오다가 2019년도K리그1 25라운드(8월10일)에서 인천은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원정경기에서 후반 6분 김호남이 오른 측면에서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골문을 열어 1-0으로 이겼다. 인천은 수원을 상대로 6년 만이자 원정에서는 무려 10년 만에 승리를 맛봤다.

13.3. 032[22] 더비, 부천 FC 1995

이부망천 더비 지리적으로 인천부천서울보다도 훨씬 가깝다보니 인천 유나이티드가 창단하기전엔 부천 SK를 응원하는 인천 시민들도 많았다. 그리고 2003년 인천 유나이티드가 창단하고 이 두 팀은 032더비라 하여 많은 명경기를 배출하였다. 그러나 부천SK는 이후 제주로 연고지를 이전해 제주 유나이티드가 되었고, 두 팀간의 대결은 역사속으로 사라지나 싶었지만 부천 FC 1995K리그 챌린지에 참가하기로 결정하면서 032더비가 다시 부활하였다.

재밌는건 前 인천 유나이티드의 감독인 김봉길의 아들 김신철이 부천에서 뛰고 있다는 것. 이래저래 다시 만난다면 재밌는 경기가 될것으로 예상되었으나… 팀 성적이 좋지 않다는 평가를 받으며 2014년 봉길매직은 끝났고, 김신철 선수의 부담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2015년 대한축구협회 FA컵 32강전에서 만나게 되어 10년만에 032더비가 부활하였다.

파일:external/www.incheonutd.com/969.jpg
10년 만의 더비 경기에서 2대0으로 완승하자 인천 서포터즈가 선보인 배너. 같은 032 다른 CLASS. 부천이 2부 리그인 K리그 챌린지에 소속되어 있는 것을 위트 있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훗, 이래야 더비 경기답지

13.4. 전북 현대 모터스?

이상하리만큼 전북을 상대로 강하다. 역대전적도 13승 15무 14패로 백중세다. 국가대표에 비유하자면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이 이상할 정도로 한국 국대에 약한것과 같다. 과거 전북이 동네북으로 취급당하던 2000년대 중반에 전북을 상대로 승점을 많이 쌓은것도 있지만, 리그 최강으로 군림한 2010년대 이후에도 인천은 때만 되면 전북의 발목을 잡으며 승점 3점을 획득할 정도. 유난히 인천만 만나면 부진한 모습을 보여줘서인지 전북의 수장인 최강희 감독도 인천과의 승부는 부담이 된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 반대로 인천 선수들은 전북만 만나면 오히려 힘이 난다고 하니 과거 수원과 대전의 천적관계가 생각날 정도.

한편 2013년에 정혁-정인환-이규로가 세트로 전북으로 이적했고, 2014년에는 김남일한교원이, 2015년에는 문상윤까지 전북에 합류해서 이 면에서도 인천은 전북에 경쟁 심리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이적한 선수들 모두가 하나같이 인천에서는 핵심으로 활약한 선수들인 반면 한교원을 제외하면 전북에서의 활용도가 애매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아쉬움을 표시하는 경우도 있다. 2015년을 마지막으로 인천 선수의 전북 이적은 일단은 사그라들었고 김인성, 박세직, 송제헌 등 반대로 전북에서 인천으로 합류한 선수들도 있어서 이적 면에서 전북의 2중대라는 놀림도 옛말이 됐다. 2019년 초에는 문선민이재성의 트레이드로 두 팀 간의 대형 선수 거래가 간만에 일어났는데, 문선민은 2018년 인천 소속으로 전북을 만날 때마다 공격 포인트를 기록해 고전시킨 주인공인만큼 묘한 이적이다.

14. 문제점 및 사건사고

인천 유나이티드/사건사고 참조.

15. 그 외

시민구단의 한계상 열악한 재정 탓에 어느 정도 발전을 이룬 선수들을 다른 돈 많은 구단들에게 팔아 이적료로 수입을 남기는 셀링클럽이다. 그렇게 선수를 팔고도 하위권을 기어다며 적자에 쪼들리는 시민구단들이 비일비재하고 인천도 적자로 인해 재정과 성적에 위기가 왔었다. 인천에서 매각한 선수들을 전부 모아놓으면 리그 올스타에 준할 정도로 훌륭한 선수들이 많다. 이정수, 최태욱, 이근호[23], 최효진, 김치우, 라돈치치, 데얀, 유병수, 정인환, 이석현, 문상윤, 유현 등이 있다. 요즘에는 전북 현대의 선수 셔틀노릇을 하고 있다. 2012 시즌 종료 후엔 사실상 수비진을 뜯어내다시피해서 정인환, 정혁, 이규로를 내주더니 2013 시즌 종료후엔 수비형 미드필더 김남일과 공격수 한교원을 전북으로 보냈다. 그리고 2015 시즌을 앞두고 문상윤까지 전북으로 보냈다. 때문에 구단내 선수들이 특출나게 눈에 띄기 시작하면 팬들은 기쁨 반, 다른 팀에게 뺏길까 노심초사하는 걱정 반의 감정을 느낀다. 다행스럽게도 2015 시즌이 끝난 후 케빈, 이윤표, 박대한, 요니치, 조수혁, 진성욱 등 기존의 주전급 선수들 대다수와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전력 유출을 최소화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2017년부터는 이들 중 이윤표만이 인천에 남았다.

과거 2011년까지 인천 문학 경기장 주 경기장을 홈으로 썼을 땐 바로 옆의 문학 야구장을 홈으로 쓰는 인천 SK 와이번스와 묘한 관계에 있기도 했다. 경기시작전이나 끝난 시간이 되면 서로 원수와 같은 두 스포츠의 팬들이 사이좋게 문학경기장역에서 지하철을 타는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진풍경이 펼쳐졌다. 또한 한 쪽에서는 경기를 진행 중인데 다른 한 쪽에서는 폭죽을 터뜨리며 경기에 방해를 주기도 하는 등 구단 간의 협조도 부족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문학경기장이 아무래도 종합 경기장이다보니 축구 관람에는 어려움이 있어서, 기존 숭의야구장을 헐고 그 자리에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따로 건설하여 2012년부터 사용 중이다. 중소 구단에 어울리는 작고 아담한 구장으로, 종합 경기장처럼 트랙이 없이 바로 앞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EPL급 시야를 자랑해 직관하기 매우 좋은 구장이다.

2013년 9월 16일,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사회공헌 사업의 일환으로 인천 유나이티드에 5년 간 100억 원 규모의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인천일보 기사 당초 요구보다는 낮은 금액이지만 점차 연간 지원액을 늘려갈 계획도 갖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연 20억 지원금액은 그리 크지 않은 숫자고 아니나 다를까 2014년 연말에 2달치 월급이 밀려 일부 선수들은 학자금 대출을 받는 등 안습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파일:external/www.incheonin.com/1300032433-7.jpg
인천 유나이티드의 공식 서포터즈는 미추홀 보이즈(MEETYOUHALL BOYS)였으며(2014년 9월부로 해체) 규모는 작지만 적극적인 행동력과 특유의 호전성으로 다른 대형 구단들의 대형 서포터즈들과도 전혀 밀리지 않는 악명과 사건 기록을 자랑했다. 수원의 프렌테 트리콜로, 서울의 타나토스와 함께 클래식에선 제일 악명 높았던 서포터다. 미추홀 보이즈가 해산된 후에는 인천의 각 서포터 소모임이 파랑검정이라는 이름의 현장 연합 팀을 구성하여 응원을 진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K리그 구단들이 그렇듯 구단 차원에서의 응원단은 두고 있지 않다. 대신 푸른 목소리라는 이름으로 2명의 장내 아나운서인 안영민 아나운서김민정 아나운서가 활동하고 있으며, 경기 전 응원 연습이나 하프타임 행사 진행, 인천의 선수가 골을 넣었거나 호수비를 보여줬을 경우의 선수 응원 콜 선창, 경기 종료 후 승무패 알림 등을 맡는다. 소개 영상 이들 중 김민정 아나운서는 결혼을 계기로 2018년을 마지막으로 퇴직.

파일:external/dimg.donga.com/70706802.3.jpg
인천 축구 경기장 전광판에 수시로 선수들의 외모 별점이 떠오른다. 경기장 아나운서가 "인천의 소닉붐 김인성!" 이라는 식으로 별명을 부르면 99%의 확률로 전광판에 외모 별점이 나타나는데, 별점이 높으면 기분이 좋을 수 있겠지만 별점이 낮으면 홈-원정 관중 가릴 것 없이 소소한 비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런 연유로 인천의 김도혁 선수는 자신의 얼굴에 매겨진 별점 반 개 (...)에 애교 섞인 항의글을 페이스북 댓글에 올려 작은 논란이 일기도 했다. #

2010년까지 메인 스폰서가 GM대우였고, 초대 단장이자 현 대표이사인 안종복, 전임 감독인 장외룡을 비롯하여, 2005년 원년멤버 선수로 임중용김학철 등 부산 대우 출신 선수를 수혈한 상태로 창단하는등, 경영진과 선수단에 과거 대우 로얄즈와 관련된 인물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인유를 로얄즈의 후신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양 구단은 직접적인 계승 관계가 아니므로 어디까지나 별개로 취급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대우 로얄즈를 계승하는 팀은 부산 아이파크이다.

구단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공식 등록된 중학부 축구 팀이 드는 인천 지역에서 '미들스타 리그'라는 아마추어 중학생 리그를 매년 혹은 격년제[24]로 운영중이다. 인천 지역 남자 중학생들은 이 경기를 통해 어쩌다 부평고나 도화기계공고 같은 축구부가 있는 고등학교에 뽑히기도 하고, 인유의 U-18팀인 인천대건고등학교에 스카웃되기도 한다. 다만 도서 지역과 강화군 지역은 지역 특성 상 참가가 힘들다. 대체적으로 연수구 지역과 계양구 지역 중학생들이 강한 편.

장외룡 감독 시절 언론 인터뷰에서 호나우두앙리가 나이 들어 은퇴할 때쯤 되면 데려오겠다고 호언장담한 적도 있다. 그리고 팬들은 이를 그냥 지방구단 흥보 차원에서 한말로 이해했고, 실제로 둘 다 은퇴했지만 안 왔다 (...)

일본어 위키에서는 인유가 '유나이티드'라는 명칭을 유럽에서의 쓰임새와 달리 단순히 이념적으로 사용한 거라고 서술했지만, 사실은 유럽에서도 여러 구단이 통합된 게 아니더라도 '유나이티드'는 뜻이 좋아서 (...) 엄청나게 자주 쓰인다. 유나이티드라는 이름을 쓰면서 여러 구단이 통합되지 않은 가장 대표적인 구단이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다. 맨유는 철도 회사의 실업 팀에서 프로 팀으로 전환한 경우이며 통합된 구단은 없다.

2017년 기준 유료 관중 비율이 K리그 클래식 12개 구단 중 광주 FC와 더불어 최하위권이라고 한다. 반은 돈 내고 반은 안 내고 인천의 오락가락 탁상행정 탓이 커 죽도록 까이고 있다. #
2019년 7월 21라운드 기준 유료 평균관중수가 K리그1 12개 구단중 6위(누적 9만4539, 평균8594명)이다. 애매한 중위권에 놓이는 것보다 매년 강등권 전쟁을 벌이다 보니 많은 스토리가 양산되고 그에 따라 어이없게 팬수도 늘어나고 있는것으로 분석이 된다. FC서울이 누적 관중(17만1934명) 평균 관중(1만7193명)에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전북(누적 15만8896명, 평균 1만4445명) 대구(누적 11만5010명, 평균 1만455명) 수원삼성(누적 10만4029명, 평균 1만403명) 울산(누적 9만4896명, 평균 1만544명)순이다. 보다시피 대부분 상위권 팀들이 관중동원도 높은 반면 최하위를 달리는 팀이 관중동원에 6번째로 성공했다는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천은 2018시즌 종료후 시즌 주장이자 레전드로 꼽힐만한 선수였던 최종환을 계약 만료와 함께 떠나보냈었다. 당시 최종환을 보낼 때 인천은 1년 뛴 신인 선수를 보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대우를 하면서 그를 보냈고, 그 뒤 그 자리에 김승용을 영입했다. 그러나 김승용이 심각하게 부진하면서 이 이적은 두고두고 레전드에 대한 박대와 형편없는 선택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레전드인 이윤표는 계약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수단 등록조차 해주지 않아 반 시즌을 훈련만 하는 잉여 자원으로 전락하고 고 아직도 임금체불의 문제가 남아있다.[25]
2세대 레전드라 부를만한 선수들은 모두 인천에서 좋지 못한 말로를 맞았는데, 그 중심에 있는 캡틴이자 리빙 레전드인 남준재마저 2019시즌중 갑자기 트레이드 발표를 하게 되자 구단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1세대 레전드들도 허정무 등장 이후 떠밀려나가듯이 은퇴 및 이적을 선택한 전적이 있었는데, 2세대 레전드들마저 비슷한 길을 걷게 되면서 심하게는 인천의 근본이 사라졌다는 평도 나왔다. 현재 인천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도 이 꼴을 지켜보며 과연 이 팀에 대한 로열티라는것이 생길지 만무하고 적당히 뛰다 다른팀으로 이적을 꾀하는 떠돌이 마인드로 팀 전체의 사기가 와해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는 시각이 많다.

이런 일련의 사건에 대해서 이 팀의 대표 서포터즈인 파랑검정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많은데 19시즌 26라운드 제주와의 경기에서 트레이드후 첫 인천과의 경기를 끝마치고 인천팬들에게 인사하러 온 남준재에게 굉장한 강도높은 비난조의 야유와 '야반도주, 남패준재'라는 걸게를 내걸어 많은 K리그 팬 뿐 아니라 인천팬들에게도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 실제로 남준재사태 직후 비난의 여론이 인천구단에게 쏠리자 인천구단은 황급히 간담회를 파랑검정과 열어 논란을 잠재우고 파랑검정은 일방적으로 구단의 이야기만듣고 설득을 당한것인지 남준재를 비난하기 시작. 간담회 직후 페이스북에는 어찌되었던 잔류를 위해 끝까지 응원한다라는 식의 내용을 게재하였다. 파랑검정은 약간 정치적인 색도 띄고 있는 집단으로 실제 보수인 유정복 시장이 구단주였을때에는 약간의 잡음에도 구단을 강도높게 비난하는등의 언행을 보였으나 진보계열의 시장이 구단주가 된 현재상황에는 굉장히 얌전한 성격으로 바뀌어서 많은 인천팬들을 당혹하게 했다고 한다.

르엉쑤언쯔엉, 응우옌꽁프엉이 잠시나마 뛰어서 베트남에서 인지도가 높다. 이 둘이 나가고 베트남 팬층도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인천 유나이티드 공식 페북 페이지와 인스타그램에는 남은 베트남인들이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남긴다.[26]

16. 응원가

인천 유나이티드/응원가 참고.

17. 2019 시즌 스쿼드

17.1. 코칭스태프 명단

인천 유나이티드 2019 시즌 코칭 / 지원스태프 명단
직책이름영문 이름국적생년월일
감독유상철Yoo, Sang Cheol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71년 10월 18일
수석코치임중용Lim, Joong Yong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75년 4월 21일
코치박용호Park, Yong Ho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81년 3월 25일
코치[27]정영환Jung, Young Hwan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87년 1월 19일
골키퍼 코치김이섭Kim, Lee Sub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74년 4월 27일
피지컬 코치바우지니Myung Baldini파일:브라질 국기.png 파일:이탈리아 국기.png1988년 8월 11일
트레이너이승재Lee, Seung Jae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78년 9월 29일
트레이너양승민Yang, Seung Min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86년 7월 23일
트레이너김현진Kim, Hyun Jin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94년 10월 22일
팀 매니저노상래Ro, Sang Rae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90년 6월 28일
전력분석관고병현Ko, Byung Hyun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90년 7월 18일
통역기지용Ki, Ji Yong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91년 3월 4일
인천 유나이티드 2019 시즌 유소년 코칭스태프 명단
직책이름영문 이름국적생년월일
U-18 감독김정우Kim, Jung Woo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82년 5월 9일
U-18 코치최재영Choi, Jae Young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83년 9월 22일
U-18 GK 코치윤진호Yun, Jin Ho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88년 7월 4일
U-15 감독이성규Lee, Sung Kyu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82년 4월 13일
U-15 코치안준혁Ahn, Jun Hyeok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87년 2월 2일
U-15 GK 코치최승주Choi, Seung Ju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90년 4월 6일
U-12 감독이재홍Lee, Jae Hong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82년 3월 13일
U-12 코치조동욱Cho, Dong Wook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85년 5월 21일
U-12 코치한승호Han, Seung Ho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92년 9월 15일
유소년 트레이너이동원Lee, Dong Won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85년 11월 25일

17.2. 선수 명단


인천 유나이티드 2019 시즌[주의]
등번호 국적 포지션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생년월일 신체 조건 비고
1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GK 정산 Jeong San 1989년 2월 10일 190cm, 83kg 주장
2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황정욱 Hwang Jung-wook 2000년 3월 27일 188cm, 82kg
3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이지훈 Lee Ji-hun 1994년 3월 24일 176cm, 69kg [a]
4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김근환 Kim Kun-hoan 1986년 8월 12일 193cm, 86kg
5 파일:호주 국기.png 파일:케냐 국기.png MF 마하지 Rashid Mahazi 1992년 4월 24일 182cm, 75kg
6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김태호 Kim Tae-ho 1989년 9월 22일 182cm, 72kg
7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MF 김도혁 Kim Do-hyuk 1992년 2월 8일 174cm, 69kg [b]
9 파일:몬테네그로 국기.png FW 무고사 Stefan Mugoša 1992년 2월 26일 188cm, 81kg
10 파일:나이지리아 국기.png FW 케힌데 Lanre Kehinde 1994년 5월 7일 195cm, 97kg
11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MF 문창진 Moon Chang-jin 1993년 7월 12일 170cm, 63kg
13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김진야 Kim Jin-ya 1998년 6월 30일 177cm, 63kg
14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MF 양준아 Yang Jun-a 1989년 6월 13일 188cm, 81kg
15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이재성 Lee Jae-sung 1988년 7월 5일 188cm, 80kg
16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이윤표 Lee Yun-pyo 1984년 9월 4일 184cm, 79kg
17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MF 이상협 Lee Sang-hyeob 1990년 1월 1일 177cm, 63kg [c]
18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MF 김승용 Kim Seung-yong 1985년 3월 14일 181cm, 75kg
19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FW 서재민 Seo Jae-min 1997년 12월 4일 169cm, 60kg
20 파일: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기.png 파일:크로아티아 국기.png DF 부노자 Gordan Bunoza 1988년 2월 5일 197cm, 95kg 부주장
21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GK 이태희 Lee Tae-hui 1995년 4월 26일 188cm, 81kg
22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MF 김강국 Kim Kang-guk 1997년 1월 7일 181cm, 72kg
23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FW 명준재 Myeong Jun-jae 1994년 7월 2일 174cm, 74kg [d]
24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MF 이우혁 Lee Woo-hyeok 1993년 2월 24일 185cm, 77kg
25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MF 이제호 Lee Jea-ho 1997년 7월 10일 184cm, 77kg
26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곽해성 Kwak Hae-seong 1991년 12월 6일 178cm, 73kg
27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MF 지언학 Ji Eon-hak 1994년 3월 22일 175cm, 73kg
28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FW 정훈성 Jung Hoon-sung 1994년 2월 22일 175cm, 73kg
29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FW 김보섭 Kim Bo-sub 1998년 1월 11일 183cm, 73kg
31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GK 김동헌 Kim Dong-heon 1997년 3월 3일 186cm, 80kg
32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정동윤 Jeong Dong-yun 1994년 4월 3일 174cm, 62kg
33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FW 이준석 Lee Joon-suk 2000년 4월 7일 179cm, 69kg
34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MF 장윤호 Jang Yun-ho 1996년 8월 25일 180cm, 68kg [d]
35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주종대 Ju Jong-dae 1996년 4월 23일 176cm, 71kg
36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여성해 Yeo Sung-hae 1987년 8월 6일 186cm, 77kg [e]
37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FW 김호남 Kim Ho-nam 1989년 6월 14일 180cm, 75kg
38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김채운 Kim Chae-woon 2000년 3월 20일 176cm, 67kg
39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MF 임은수 Lim Eun-su 1996년 4월 1일 182cm, 70kg
40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MF 최범경 Choi Bum-kyung 1997년 6월 24일 177cm, 73kg
41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GK 손무빈 Son Moo-been 1998년 5월 23일 191cm, 85kg
44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김정호 Kim Jeong-ho 1995년 5월 31일 187cm, 84kg
47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김동민 Kim Dong-min 1994년 8월 16일 180cm, 72kg
구단 정보
대표이사: 전달수 / 감독: 유상철 / 홈 구장: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출처: 인천 유나이티드 홈페이지
인천 유나이티드 2019 시즌 군 입대 및 임대 선수
구단 국적 포지션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생년월일 신체 조건 비고
상주 상무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MF 송시우 Song Si-woo 1993년 8월 28일 174cm, 70kg 2020년 1월 21일 전역
상주 상무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FW 박용지 Park Yong-ji 1992년 10월 9일 183cm, 71kg 2020년 1월 21일 전역
상주 상무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FW 이호석 Lee Ho-seok 1991년 5월 21일 173cm, 65kg 2020년 1월 21일 전역
상주 상무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MF 한석종[FA] Han Seok-jong 1992년 7월 19일 186cm, 80kg 2020년 8월 27일 전역
상주 상무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김대중 Kim Dae-joong 1992년 10월 13일 188cm, 83kg 2020년 8월 27일 전역
부천 FC 1995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김한빈 Kim Han-bin 1991년 3월 31일 173cm, 63kg 2019년 12월 31일 임대 만료
FC 안양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MF 이정빈 Lee Jeong-bin 1995년 1월 11일 174cm, 65kg 2019년 12월 31일 임대 만료
시흥시민축구단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김대경 Kim Dae-kyung 1991년 9월 2일 179cm, 69kg 2021년 4월 22일 전역
강릉시청 축구단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김종진 Kim Jong-jin 1996년 3월 5일 179cm, 75kg 2019년 12월 31일 임대 만료
포항 스틸러스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FW 허용준 Heo Yong-joon 1993년 1월 8일 184cm, 75kg 2019년 12월 31일 임대 만료

[주의] 이 틀은 기기 환경에 따라 볼 때 상당히 길 수 있습니다. 스쿼드에 대한 간략한 틀은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또한 이 틀을 수정할 때는 여기도 같이 수정해주시기 바랍니다.[a] 울산 현대에서 임대[b] 아산 무궁화 전역[c] 상주 상무 전역[d]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임대[d]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임대[e] 경남 FC에서 임대[FA] FA 상태로 군 입대, 전역 후 이적 예상

18. 역대 인천의 주요 선수

18.1. 선수들이 뽑은 10주년 기념 베스트 11들

  • 선정한 선수들 본인은 본인을 무조건 엔트리에 포함.
  • 뽑은 선수들과 직접 같이 뛰어본 선수로만 선정.
정혁이 뽑은 10주년 기념 인천 유나이티드 베스트 11 (4-4-2)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W
유병수
FW
설기현?
MF
김민수
MF
정혁
MF
김남일
MF
박준태
DF
전재호
DF
임중용
DF
안재준
DF
박태민
GK
김이섭
}}}||
전재호가 뽑은 10주년 기념 인천 유나이티드 베스트 11 (3-5-2)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W
라돈치치
FW
데얀
MF
전재호
MF
김치우
MF
정혁
MF
아기치
MF
최효진
DF
임중용
DF
이정수
DF
안재준
GK
김이섭
}}}||
박재현이 뽑은 10주년 기념 인천 유나이티드 베스트 11 (4-4-2)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W
유병수
FW
데얀
MF
방승환
MF
김상록
MF
노종건
MF
박재현
DF
전재호
DF
임중용
DF
김학철
DF
최효진
GK
김이섭
}}}||
임중용이 뽑은 10주년 기념 인천 유나이티드 베스트 11 (3-4-3)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W
셀미르
FW
데얀
FW
방승환
MF
전재호
MF
노종건
MF
아기치
MF
최효진
DF
임중용
DF
이정수
DF
김학철
GK
김이섭
}}}||

18.2. 레전드 및 주요 선수들

  • 임중용 (2004~2011) : 2018년 12월 기준 인천 유나이티드 역대 최다 출전을 기록한 인천의 상징. 인천의 창단멤버였고 최장기간 주장을 역임한 선수이며, 2005년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됐을 정도로 실력을 갖춘 수비수였다. '라돈 투게더'의 주인공이기도 하고, 인천의 등번호 20번이 의미있는 번호가 된 이유도 20번이 임중용의 번호였기 때문이다. 은퇴 이후에도 인천에 코치가 되어 돌아오는 등 인천 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선수.
  • 전재호 (2004~2011) : 임중용과 함께 인천의 전설을 언급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선수로, 출장 횟수도 역대 세 번째 순위에 해당한다. 좌측면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고 2010년에 주장을 역임하기도 한 선수. 강원 FC에서 2013년에 은퇴한 이후 2015년부터 인천대건고의 코치가 되어 인천에 돌아왔고, 2017년에는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 김이섭 (2004~2010) : 인천 역대 골키퍼 중 최고로 인정받는 전설. 창단멤버였고 앞의 두 선수와 함께 언급되는 경우도 많다. 숟한 경쟁을 인천에서 겪었으나 대부분 최후의 승자는 김이섭이었다.
  • 노종건 (2004~2010) : 아쉽게도 원클럽맨이 되지는 못했으나, 묵묵히 제 몫을 다한 인천 중원의 살림꾼으로 평가받았다. 2010년까지만 해도 창단 멤버 + 원클럽맨이 가능해 보였지만, 폼이 급락하여 아쉽게 팀을 떠나고 이후 공익 근무를 하다가 은퇴했다.
  • 김학철 (2004~2008) : 초창기 인천 수비를 임중용과 함께 이끈 베테랑. 임중용처럼 대구 FC 창단 멤버 - 인천 창단 멤버를 연속으로 거친 선수였다.
  • 방승환 (2004~2008) : 초창기 인천 공격진에서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판 항의 사건으로 8개월 간 그라운드를 떠나있기도 했으나, 돌아와서 복귀골을 신고한 뒤 서포터즈에게 절을 하기도 했다.
  • 제난 라돈치치 (2004~2008) : 인천 외국인 선수 중 최다 출장, 최다 득점 기록자. K리그의 다른 팀들도 거쳤지만, 인천에서는 특히 그 의미가 깊은 선수이다.
  • 최태욱 (2004) : 인천의 창단 멤버 중에서도 최고의 네임밸류를 자랑하는 선수. 2004 시즌의 에이스였지만, 한 해만에 결국 팀을 떠난다.
  • 이정수 (2004~2005) : 주전 경쟁에서 낙오된 이정수는 인천 이적 이후 엄청난 발전을 보여주었고, 부상에 시달리던 때에도 변함없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결국 그 활약으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 이적.
  • 김현수 (2004) : 인천의 첫 주장. 경력도 화려한 선수였고, 혼란스러운 창단 시즌을 그래도 지탱해준 선수.
  • 미오드라그 안젤코비치 (2004) : 인천의 1호골을 기록한 선수. 그러나 반 시즌만에 팀을 떠나 그 활약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 라디보예 마니치 (2004~2005) : 안젤코비치가 나간 자리에 들어왔고, 2004 시즌 후반기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임팩트를 남겼다.
  • 박재현 (2005~2009) : 2005 시즌에 입단하여 2007 시즌에 기량이 만개했다. 다만 적절한 스쿼드 로테이션 플레이어로는 평가받았으나, 핵심 소리를 듣지는 못했다.
  • 최효진 (2005~2006) : 2005, 2006 시즌 우측면을 든든하게 담당한 선수. 당시에는 쓰리백에서 전재호와 양 측면 미드필더를 담당했다.
  • 서동원 (2005~2006) : 트레이드로 인천에 합류하여, 과거 국대 출신답게 중원을 안정화시켜 준우승에 공헌한 선수.
  • 야스민 아기치 (2005~2006) : 2005 시즌 서동원, 노종건과 중원을 형성하여 대단한 기량을 보여준 핵심 미드필더.
  • 셀미르 (2005~2006) : 저니맨 답게 인천에서 뛴 기간은 짧았으나, 그 와중에도 중요한 공격 포인트를 많이 기록하며 좋은 추억을 남기고 떠난 공격수이다.
  • 장경진 (2005~2011) : 2005 시즌부터 인천에 합류하여, 긴 기간 수비진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 그러나 김학철, 임중용 등에 비해 확고한 주전으로 올라간 시기는 짧았다.
  • 드라간 믈라데노비치 (2006~2009) : 이름값이 굉장히 높아서 올 때부터 기대를 모았고, 오자마자 코너킥 직접 득점에 최단시간 골 등 화려한 기록을 쓴 미드필더였다. 인천에서 3년 반동안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은퇴했다.
  • 김영빈 (2006~2011) : 인천 수비진에서 적절한 역할을 수행했고 김학철의 노쇠화 이후로 주전으로 승격되었다.
  • 김상록 (2007~2009) : 2007 시즌을 이끈 에이스. 방승환, 데얀과 함께 닥공의 주축이었다. 아쉽게도 그 이후로는 감독 교체와 전술 교체로 인해 폼이 급락했다.
  • 데얀 다미아노비치 (2007) : 2007 시즌 한 해만을 뛰었으나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고, 인천을 떠난 이후로는 말 안해도 모두가 알 자타공인 K리그의 레전드에 등극했다.
  • 안재준 (2008~2010, 2013~2016) : 인천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임중용의 후계자로 주목받았다. 실제로 입단 직후부터 잦은 기회를 받았고 또 그를 잘 살렸다. 허정무 부임 이후 트레이드로 팀을 떠나 많은 팬들이 아쉬워했지만, 2013 시즌을 앞두고 돌아와서 다시 그의 기량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군 입대 이후 노쇠화를 보여주면서 아쉽게 팀을 또 떠났다.
  • 유병수 (2009~2011) : 인천 구단 역사 상 최다득점자. 2년 반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을 뛰었음에도 엄청난 스탯을 기록했다. 동시에 인천 역사 상 최초의 리그 득점왕 배출.
  • 정혁 (2009~2012) : 부상은 좀 잦았지만, 중원에서 항상 제 몫을 다했다는 평을 들었다. 2013 시즌 시작 전에 정혁 + 정인환 + 이규로 세트 이적에 묶여서 전북 현대 모터스로 떠났다.
  • 남준재 (2010, 2012~2014, 2018~ ) : 2010 시즌에 신인임에도 주전으로 기용되면서 가능성을 선보였다. 안재준과 함께 트레이드로 떠났으나, 일이 잘 안 풀리자 2012년에 장원석과 트레이드되어 귀환, 그리고 곧바로 반 시즌만에 8골 1도움을 쓸어담았다. 이후 2018년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다시 한 번 인천에 귀환, 인천 역사 상 최초로 인천에 세 번 합류한 선수가 되었다.
  • 이윤표 (2011~ ) : 인천의 차기 레전드로, 별명은 미추홀 파이터. 초창기에는 그리 신뢰를 받지 못했으나, 꾸준히 활약하며 자신의 이름을 팬들에게 점점 각인시켰고, 어느새 인천의 최고참의 자리에 올랐다. 임중용의 후계자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지만, 자신만의 등번호 16번에 새 의미를 부여하는 또 다른 레전드. 이렇게 훈훈하게 마무리가 되는 줄 알았지만 인천에서 10년 가까이 뛰며 232경기를 소화한 이윤표가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선수협)와 함께 구단을 상대로 소송. 사전에 한국프로축구연맹과 대한축구협회의 조정이 있었지만, 그 결과 역시 구단 편에 선 판단이었단 게 이씨가 밝힌 법원행의 이유다. 구단과 계약은 2019년 말까지였지만, 구단은 올해 초 연봉협상 과정에서 계약된 액수에 비해 터무니없는 급여를 제시하면서 이적 또는 탈퇴를 언급했다고 한다.
  • 티무르 카파제 (2011) : 인천의 아시아 쿼터로는 첫 성공작이었고, 2011 시즌 인천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 한교원 (2011~2013) : 인천 시절에 좋은 추억을 많이 남긴 윙 포워드. 특히 2012 시즌 후반기부터 2013 시즌까지의 활약은 주목할 만했다. 전북 이적 후 인천과의 경기에서 한퀴아오 사건을 저지르기는 했으나, 팬들에게 아직까지는 좋은 기억에 가깝다.
  • 권정혁 (2011~2014) : 故 윤기원 선수의 죽음 이후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한 대체자로 영입되었고, 유현에게는 계속 밀리는 모습이었으나 본인이 주전이던 때에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골킥으로 득점을 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 빠울로 (2012) : 빗속의 경인 더비에서 넣은 단 1개의 골로 전설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해당 골 이후로는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이후 백혈병으로 투병하다가 2018년 2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 김남일 (2012~2013) : 인천 소속으로 국가대표에 뽑힌 몇 안 되는 선수.[28] 특히 2013 시즌에는 축구 도사 소리를 들을 정도로 좋은 기량을 펼쳤다.
  • 이보 (2012, 2014) : 짧은 기간이었지만, 엄청난 양의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잠시나마 인천 역대 최다 어시스트 기록을 전재호와 함께 보유했지만, 케빈이 이를 순식간에 앞질렀다.
  • 박태민 (2012~2014) : 3년간 측면 수비를 꾸준히 책임진 선수. 2014년에는 주장도 역임했다. 그 뒤 남준재와 같이 성남 이적.
  • 문상윤 (2012~2014) : 인천 유스 출신 첫 번째 성공작. 측면과 중앙을 오가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 구본상 (2012~2014) : 데뷔전에서 퇴장을 당하는 불행도 있었지만, 중원에서 김남일의 파트너로 꾸준한 모습을 보여줬다.
  • 최종환 (2012~2018) : 굉장한 킥력을 지닌 측면 플레이어로 측면 미드필더 자리부터 시작해서 풀백까지 다양한 포지션에서 제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6 시즌부터는 팀의 새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2019년 시즌중 서울 이랜드FC로 자유계약형태로 영입된다.
  • 유현 (2012~2015) : 사실상 유현의 전성기가 인천 시절으로, 그의 존재만으로도 수비가 든든해진다는 인식이 생길 정도였다. 인천을 떠난 이후 계속 내리막길을 걷는 것이 아쉬운 점.
  • 진성욱 (2012~2016) : 인천 유스 출신의 두 번째 성공작이고, 4경기 연속 골 등 임팩트로는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인천 소속으로 U-23 대표에도 뽑혔었다.
  • 이천수 (2013~2015) : 그 이름값으로 인해 올 때부터 많은 주목을, 또 우려를 받았다. 중간에 논란도 일으켰지만, 위기에 빠진 팀과의 재계약을 선택하고 마지막 해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경기장에서 보여주며 마무리만큼은 멋있게 하였다. 이후 인천의 전력강화부장으로 부임하면서 인연을 이어나가는 중. 직함은 전력강화부장이나 인천팬들 사이에서는 전력약화부장으로 통한다고 한다.
  • 이석현 (2013~2014) : 2013 시즌에 보여준 모습만큼은 팀의 에이스로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이보의 존재로 인해서 포지션이 애매해지며 아쉽게 인천 생활을 마무리.
  • 김대중 (2014~ ) : 초창기에는 불안하다는 소리를 지속적으로 들었지만, 수비진 로테이션 멤버로는 확실한 능력을 입증했고 거기에 2017 시즌에는 공격수로도 재능이 있음을 입증했다.
  • 김도혁 (2014~ ) : 젊은 나이에 부주장, 주장을 모두 경험한 차기 레전드 1순위. 구단에 대한 애정을 항상 드러내온 바 있고, 팬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깊게 남겼다. 2017 시즌에는 최종전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잔류에 공헌했다. 2017년이 끝나고 아산 무궁화 FC에 입대했다.
  • 김용환 (2014~2018) : 측면이라면 좌측, 우측, 공격, 수비 모두 가리지 않고 소화하는 인천의 만능 자원. 데뷔 초에는 힘든 시기도 있었으나 2016 시즌부터 측면의 확고한 주전으로 올라섰다. 유스 출신인 만큼 특히 주목받는 선수.
  • 권완규 (2015~2016) : 트레이드로 인천에 입성하여 초기에는 실책도 간혹 범했지만, 팀 수비의 일원으로 최소 실점을 이끌기도 하고 2016 시즌에는 해결사의 면모까지 보여주며 팬들의 인정을 받았다.
  • 박세직 (2015~) : 중원에서 전체적인 흐름을 조율하며 공수 밸런스를 잘 맞췄고, 왼발 킥이 좋아 세트피스 상황에서도 맹활약했다. 2017년 여름 아산 무궁화 FC로 입대했다.
  • 박대한 (2015~2016) : 입단 테스트를 거쳐 간신히 들어온 만큼 절박한 플레이를 보였고, 2015 시즌 베스트 11 후보에도 들어갔었다. 권완규와 함께 측면에서 믿음직한 기량을 보여주었다.
  • 김원식 (2015) : 임대로 짧은 기간 함께 했음에도 인천 팬들의 큰 애정을 받는 선수. 실제로 2015 시즌 전술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 김인성 (2015) : 원래부터 빠른 발로 유명했고, 그 발을 살려 한 해동안 공격의 축으로 자리잡았다. 몸값 문제로 아쉽게도 1년만에 보낸 선수.
  • 케빈 오리스 (2015~2016) : 단 2년의 활약으로 구단 역대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한 선수. 그 2년동안 인천의 공격은 케빈으로 시작해 케빈으로 끝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특히 2016 시즌에는 시즌 전체로 보면 10-10을 한 시즌에 달성하는 면모를 보여줬다.
  • 마테이 요니치 (2015~2016) : 2년 연속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발된 인천 역사 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 실력이 정말 탁월한 선수였고, 수비진의 중심으로 모두에게 인정받았다.
  • 송시우 (2016~ ) : 입단 초기부터 조커로 극적인 득점을 기록하며 시우 타임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2017 시즌에는 팀 내 최다득점자가 되었다.
  • 한석종 (2017~2018) : 데뷔전에서 오심으로 퇴장당하는 불운도 있었지만, 어느새 인천 중원의 상징이 되어 상대 중원을 틀어막고 공수 양면에 큰 기여를 하였다.
  • 김진야 (2017~ ) : 유스 출신으로 새로이 주목받는 스타. 아시안게임을 거치면서 인천 내에서도 상당한 인지도를 지닌 선수로 성장했다.
  • 문선민 (2017~2018) : 인천 역사 상 인천 소속으로 첫 대한민국팀 월드컵 참가자 및 출전자 명단에 포함된 선수. 스웨덴 리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가 인천에 합류했으며, 특유의 저돌적 플레이로 눈길을 끌었다. 결국 2018 시즌의 맹활약을 통해 국가대표에 데뷔했고, 데뷔전 데뷔골까지 기록했다.
  • 스테판 무고샤 (2018~ ) : 제 2의 데얀이라는 별명을 받을 정도로 놀라운 활약을 이어가는 특급 공격수.
  • 엘리아스 아길라르 (2018) : 과거 이보가 보여주었던 퀄리티를 보여준 코스타리카 출신 미드필더. 인천에서 최초로 MF 부문으로 시즌 베스트 11에 선정된 선수이기도 하다.
  • 고르단 부노자 (2017~) : 초창기에는 불안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2018 시즌 동안 인천 수비의 핵심이 된 선수. 구단에서 불합리한 대우도 받았지만 자신의 실력으로 증명함으로써 구단과 팬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또한 리더십도 아주 출중한 선수라 팀의 분위기 메이커가 되는 선수. 하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불안함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실수도 잦아서 위험한 상황도 자주 연출하는 편이고 PK를 내주는 경우도 꽤 있는 편. 2019시즌 초기부터 부상으로 25라운드까지 복귀를 못하고 있는 상황. 인천 역시 해당시즌 중앙수비수의 부재로 골머리를 앓았지만 25라운드 수원삼성과의 경기에서 중앙수비수로서 이재성, 여성해가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주며 클린시트를 기록. 복귀한다해도 이 두 조합을 깨고 주전으로 들어가기는 쉽지 않을듯하다.
  • 하창래 (2017) : 2017시즌 인천은 여느해와 마찬가지로 강등권 전쟁을 치루게되고 쓸만한 DF가 없자 신인으로 영입된 하창래를 주전으로 기용하게 된다. 이윤표-하창래, 김대중-하창래의 구성으로 경기에 자주 나왔었고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안정적인 플레이를 선보이며 팬들사이에 각인된다. 하지만 인천은 이 좋은 자원을 이듬해에 포항 스틸러스로 팔아버리고 2018시즌 또다시 엉망인 수비력으로 곤혹을 치루게 된다. 반면 하창래는 포항으로 이적후 굉장히 좋은 수비력을 보여주면 2019시즌까지 계속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중. 인천이 선수장사를 얼마나 못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

18.3. 흑역사

  • 알파이 외잘란 (2004) : 굉장한 기대를 받고 영입된 선수이지만, 더티 플레이 논란을 계속 일으켰고 반 시즌만에 팀을 떠난 뒤에는 K리그를 디스하기도 했다.
  • 김치우 (2004~2006) : FK 파르티잔 임대 당시부터 구단과 묘한 기류가 흘렀고, 이적 절차에서도 본인은 FC 서울을, 구단은 전남 드래곤즈를 주장하였고 결국 구단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면서 김치우와의 사이가 틀어졌다. 이후 전남 시절 당시 인천의 데얀 다미아노비치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리는 모습도 보여줬는데, 결국 나중에 같은 팀에서 만나게 된다.
  • 이준영 (2005~2011) : 오랫동안 인천에 헌신적이었던 선수라서 레전드의 반열에도 오를 가능성까지 보였던 인물이지만... 충격적이게도 승부조작이 적발되었다. 정황 상 인천에서 승부조작을 한 타 선수들도 이준영에게 포섭당했을 가능성이 있다.
  • 성경모 (2005~2010) : 김이섭과 오랜 경쟁 구도를 형성한 골키퍼지만, 팀을 떠난 이후 다른 팀에서 승부조작이 적발되어 쓸쓸히 축구계를 떠났다.
  • 도화성 (2009~2010) : K리그 최장거리 골 기록을 세우기도 했지만, 그 역시도 승부조작이 적발되었다. 게다가 도화성은 브로커로도 활동했고 사설 도박장까지 운영한 만큼 다른 조작범들보다도 죄질이 나쁘다.
  • 정인환 (2011~2012) : 남준재, 안재준을 정인환, 김명운과 트레이드하면서 인천에 합류했고 실력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선수였지만, 전북으로 이적할 당시 온갖 언플을 선보이다가 인천 팬들에게는 원수같은 존재로 낙인이 찍혔다.
  • 설기현 (2012~2015) : 전무후무한 세 개 구단에서 흑역사 취급을 받는 선수. 2015 시즌 개막이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돌연 은퇴하여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 수많은 손해를 남긴 장본인. 거기에 이후로도 분위기 파악을 잘 못하는 인터뷰를 몇 차례 했다.
  • 네이선 번스 (2012~2013) : 큰 마음을 먹고 영입한 대형 외국인이었지만 부상으로 1년을 날리고 이후로도 연봉만을 축내며 즐겁게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이 찍혀 팬들의 공분을 샀다.
  • 조수철 (2014~2015) : 나름 인생역전의 주인공이었고 국가대표 예비명단까지 이름을 올렸으나, 인터뷰로는 잔류 의사를 말하면서 뒤에서는 시장에서 평가받고 싶다고 한 이중적인 모습이 논란이 되면서 인천 팬들에게 실망감을 남기고 이적했다. 하지만 자금사정이 넉넉치 못한 인천구단인 만큼 선수 살길은 선수가 알아서 챙겨야 하는 것이 실정이므로 이것에 비난해야하는 것이 맞는가 의문. 구단 역시 쓸모가 없어지면 선수를 팔아버리는 냉정한 프로의 세계이고, 구단보다 선수 개인이 더 약한 존재이므로 겉으로는 구단과 팬을위해 충성심을 표한다해도 마음언저리 한군데에는 누구나 자연스럽게 이런 마음이 있을터. 대표적으로 구단에 충성하며 많은 시즌 전력을 다해 함께하였으나 구단에게 처절하게 팽당한 사례는 최종환, 이윤표.
  • 달리보르 베셀리노비치 (2017) : 실력으로만 보자면 달리만큼 부진한 선수는 이전에도 존재했으나, 2년간 좋은 활약을 보여줬던 케빈의 후임이었기에 그 충격은 더 컸다. 게다가 달리의 영입 과정에 대한 논란도 이후 불거지면서 더더욱 흑역사 취급을 받고 있다.
  • 응우옌꽁프엉 (2019) : 딱히 보여준 것도 없고 영입 자체도 박항서의 베트남 감독 활동덕분에 엉겁결에 임대로 입단했다. 인천 입단식에 인천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박항서와 그 코치들이 참석한 것이 대표적 예. 그마저도 5개월도 안되 인천과 임대 계약해지하고 벨기에 리그로 이적해버렸다.



[1] 2003년에 창단하여 2004년 리그부터 참가했다.[2] 국내의 모든 시민구단이 다 그렇듯 시민구단의 구단주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장이 맡는다.[3] 전력강화부장 이천수가 사실상 단장의 역할과 비슷한 직책에 있다.[4] 인천국제공항공사 운영 공항[5] 쉽게 말해 구단 상징색과 홈 유니폼 디자인 기반으로만 치면 '한국판 인터밀란'. 팀의 유니폼은 물론 홈 경기장 좌석의 의자 배색도 파란색과 검은색이다. 장내 아나운서가 선수를 소개하는 별칭에도 '파검(파랑+검정)의 OOO'라는 명칭을 쓸 정도로 팀의 상징으로 깊게 뿌리 박혀 있다. 물론 2012년에 허정무가 그걸 왜곡해서 욕을 바가지로 퍼먹었다.[6] 당시 팀이 없었던 도시는 인천, 대구, 광주였다. 이 중 대구는 가장 먼저 대구 FC를 창단했으며, 광주는 차선책으로 상무 불사조를 유치했다가 2010년대에 들어서 시민구단인 광주 FC로 다시 참가했다.[7] 여담으로 같은 동네 야구팀에게도 비슷한 별명이 있다. 정확히는 이쪽이 원조.[8] 2013 시즌에 상위 스플릿 진출은 성공했지만,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은 실패.[9] 시도민 구단 최초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은 2014년 성남 FC가 달성했다.[10] 이스탄불 더비에서 종종 언급되는 페네르바흐체의 6-0 대승리 당시 감독이기도 하였다. 당시 툰자이의 선취골을 보고도 태연히 서서 펩시콜라를 들이키던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11] 2007시즌에는 장외룡 감독이 유학을 다녀오면서 한시즌 통째로 박이천 감독대행이 이끌었다.[12] 이 캐치프레이즈는 당시 인천 단장이었던 안종복과 연관이 있다. 안종복이 인천 구단을 떠난 뒤 2013년 경남 FC 사장으로 간 후 2006년 캐치프레이즈와 똑같은 컨셉의 '도민속으로'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경남 FC 캐치프레이즈로 썼으나 팀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자신은 콩밥까지 먹게 됐다.(...)[13] 당시 인천 감독이었던 허정무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언급했던 '유쾌한 도전' 이라는 말에서 차용됐다.[14]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입주 첫 해를 기념하는 의미.[15] '인천이 세상 축구의 중심이다'라는 의미.[16] '투게더'는 2006년에 개봉한 인천유나이티드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에 등장하는 현 인천 U-18팀 임중용 감독의 명대사로 유명하다. 라돈치치 의문의 1패[17] 인천 유나이티드 12번 영구결번[18] 일명 '두루치기' 사건이라 불린다.(...)[19] 물론 여전히 인천문학경기장도 명목상 홈구장 중 하나다. 팀의 흥행이 절정에 다다라서 4만명 이상의 대관중이 들어올 수 있는 경기가 열린다면 인천문학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르겠다는 계획을 세워놓은 상태지만 과거와 달리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 제도는 오늘날 폐지됐기에 메가톤급 흥행 이슈가 몇 겹으로 터지지 않는 한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인천 유나이티드 홈경기가 다시 치러질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 여담으로 인천문학경기장을 현재 관리하고 있는 주체는 한때 옆집 팀이었던 SK 와이번스.[20] 파일:/image/396/2012/07/15/20120715215411_20120715002004_0_0.jpg 2012년 7월 15일 극적인 결승골을 성공시킨 빠울로의 골 세레모니.[21] 다만 이것은 서울과 수원이 서로를 라이벌이라고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을 정도로 싫어하기 때문이고, 실제로는 분위기로 보나 뭘로 보나 슈퍼매치가 더 격렬하고 관심을 끄는 매치이다. 게다가 경인더비도 처음에는 서포터들에게 언론이 만들어준 더비라는 소리를 들었다. 인천 관중동원력이 수원보다 훨씬 약한데도 지금의 위상을 갖춘데는 언론의 지원사격 덕이 컸다.[22] 부천은 경기도임에도 지역번호를 031이 아닌 인천과 같은 032를 사용한다. 여기에서 착안한 이름.[23] 인천 시절 2군 MVP를 하긴 했지만 인천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 트레이드로 영입한 대구 FC에서 잘 키웠다고 보는 게 맞겠다.[24] 연도개최가 가끔 지연되거나 빨라지거나 할 때가 있다.[25] 2019년 9월 이윤표는 공식으로 선수등록이 되었다.[26] 쯔엉, 꽁프엉과는 별개로 그냥 인천팬되었다는 사람도 있다.[27] 전력분석관 겸임[28] 국대 출신 내지는 이후 국대급으로 성장한 선수는 좀 있지만, 인천에서 국대에 뽑힌 선수는 유병수, 김남일, 김치우, 정인환, 전재호, 문선민 여섯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전재호는 부상으로 데뷔조차 하지 못했다. 최태욱조차도 인천 시절에는 청소년 대표로만 불려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