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명 전 이름이 방승환이었던 종합격투기 선수에 대한 내용은 방태현 문서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 |
이름 | 방승환 方承奐 | Bang Seung-hwan |
출생 | 1983년 2월 25일 ([age(1983-02-25)]세) |
부산광역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85cm, 82kg |
포지션 | 스트라이커, 윙어 |
학력 | 영도중학교 (졸업) 영등포공업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 / 학사) |
소속 구단 | 인천 유나이티드 FC (2004~2008) 제주 유나이티드 FC (2009) FC 서울 (2010~2011) 부산 아이파크 (2012~2013) 무앙통 유나이티드 FC (2013) UiTM FC (2013 / 임대) 에어포스 센트럴 (2014) 케다 FA (2015~2016) 로얄 타이 네이비 FC (2017~?) 인천 송월 FC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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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본래는 공격수였으나 나이가 들면서 센터백으로도 자주 뛰었다.또한 K리그 역대 최단 시간 골[1] 기록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2. 선수 경력
2.1. 인천 유나이티드 FC
랄랄랄랄라라 나의 방승환! (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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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시절 응원가
랄랄랄라라라 나의 방승환! (승환!)
인천 시절 응원가
영도중 - 영등포공고 - 동국대를 거친 그는 2004년 인천의 창단 멤버로 합류하면서 프로 선수가 됐다. 신인이었음에도 첫 해부터 기회를 많이 얻으며 팀 공격진에서 한 자리를 차지했고, 2005년에는 제난 라돈치치, 셀미르와 함께 뛰면서 5골 3도움을 리그에서 기록해 팀의 준우승에 공헌했다. 하지만 2006년에는 라돈치치와 함께 득점을 많이 올리지 못했다.
2007년에는 리그, 리그컵, FA컵에서 나름 고르게 활약해 전 대회를 합치면 한 해 동안 9득점을 기록, 당시 데얀 다미아노비치와 김상록을 앞세워 공격 축구를 하던 박이천 대행 하의 인천에서도 자리를 잡았으나, 사건이 일어나는데...
2007년 10월 3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대한민국 FA컵 2007 4강전 경기에서, 당시 전남 소속이었던 이규로에게 파울을 범한 이후 경고누적으로 퇴장 당했다. 퇴장을 당하는 것 자체는 사실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퇴장 자체는 좋지 못하지만 축구선수로 퇴장을 당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으니까. 그러나 판정에 불만이 있던 방승환은 심판에게 달려가 유니폼 상의를 벗어 던지고 욕설을 하는 등 거친 항의를 했고 그 결과 큰 논란이 일어났다. 결국 구단 자체적 상벌위에서 우선 무기한 출장정지 + 벌금 500만원을 먼저 부과했고, 얼마 후에는 축구협회에서 상벌위를 열었는데... 자그마치 1년 출전 정지라는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전재호의 욕설 사건이 일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더 큰 중징계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1년의 정지에도 인천은 방승환과 계속 함께 가기로 결정, 2008년에도 11번을 달고 팀 스쿼드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8개월의 시간이 지난 후, 인천 구단은 방승환의 사면을 협회에 요청하였고, 협회는 이를 수용했다. 방승환은 2008년 6월 26일 공식적으로 징계가 해제되었고, 이후 컵 대회는 이미 다 탈락해서 나오지 못했지만 리그에서는 서서히 감각을 끌어올리며 뛰었다. 그리고 서포터들은 그가 징계를 받아 못 나온 동안에도 계속 응원했고 그 결과 방승환은 복귀 득점을 성공시킨 뒤 서포터에게 절을 했었다.
2.2. 인천을 떠난 뒤
2008년은 방승환이 인천에서 뛰는 마지막 해가 되었다. 2009 시즌에 그는 제주에 합류했고, 시즌 동안 5개의 득점을 기록하며 딱 인천 시절 보여준 정도의 모습이었다.그리고 2010년에는 이상협과 트레이드되어 FC 서울에 합류했다. 서울에서는 조커 내지는 로테이션 정도의 입지였고, 정조국, 데얀, 최태욱, 이승렬과 경쟁하며 리그 우승에 이바지했다. 그리고 2011 시즌이 끝난 뒤에는 박희도와 트레이드되어 여효진과 함께 부산에 합류한다.
그러나 부산에서는 지독한 부진에 빠졌다. 주전 공격수로 뛰기는 했으나 득점을 많이 올리지 못한 것이 문제. 본인은 윙을 선호했으나 피지컬적 요소로 인해 안익수 하에서는 최전방에서 뛰었고, 감독 교체 이후에는 윙 자리를 요구했으나 오히려 기회가 줄었다. 2012년에는 그래도 5골을 넣었고 그냥 이전에 보여주던 방승환과 크게 다를 것 없는 기록이지만 2013년에는 무득점에 그치며 많은 원성을 샀다.
2.3. 해외로
결국 2013년 시즌 중간에 팀을 떠나 태국의 무앙통 유나이티드에 합류하지만 이 팀에서도 특별한 활약은 없었다. 그러다가 말레이시아로 넘어가 UiTM, 에어 포스 센트럴을 거쳐 케다에 합류햤고, 케다에서는 피지컬 조건을 활용해 포지션을 센터백으로 변경 후 팀의 승격을 이끌었고 이후로도 1년 더 케다에 머무르다가 계약이 종료되어 자유계약 상태가 됐다. 그 뒤 다시 태국 무대로 돌아와서 뛰고 있다.한편 방승환이 2017년부터 뛰고 있는 로얄 타이 네이비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해군 팀으로, 한국의 상무 등과는 다르게 외국인 선수 영입이 가능한 특이한 구조이다. 방승환 역시 외국인 쿼터로 영입되어 뛰고 있는 것. 2018 시즌에도 네이비에 남았으나 팀이 부진에 빠졌고 실점이 이어지면서 수비수를 소화하고 있는 방승환의 입지도 다소 흔들리고 있으며, 김형일이 네이비에 합류하게 되면서 방승환의 이적이 점쳐지고 있다.
2.4. 국내 무대 복귀
2020년, 대한민국 5부 축구리그인 K5리그 인천권역 참가팀 인천 송월 FC에서 뛰고 있는 것이 알려졌다. 권역에서 2년 연속 우승하여 K5리그 챔피언십과 대한축구협회 FA컵에도 출전한 강팀이다.3. 플레이 스타일
발이 꽤 빠르고 활동량, 수비가담 능력도 준수한 공격수. 꽤 이타적이고 신체 조건도 좋은 선수이지만 거칠기도 하고 인천 시절의 심판 항의 사건처럼 이런 모습으로 손해를 본 적도 있다.심판 항의 사건으로 인해 풋볼 매니저에서는 '심판과의 언쟁 선호' 선호 플레이가 있다.
4. 여담
-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2007 시즌 K리그컵 포항과의 경기에서 경기 시작 11초 만에 골을 넣은 적이 있다. 대한민국 프로 축구 최단 시간 득점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