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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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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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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설기현
薛琦鉉 | Seol Ki-hyeon
}
출생 1979년 1월 8일 ([age(1979-01-08)]세) /
대한민국 강원도 정선군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신체 187cm
직업 축구선수(공격수[1]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로얄 앤트워프(2000~2001)
RSC 안데를레흐트(2001~2004)
울버햄튼 원더러스(2004~2006)
레딩 FC(2006~2007)
풀럼 FC(2007~2010)
알 힐랄 FC(2009 / 임대)
포항 스틸러스(2010~2011)
울산 현대 호랑이(2011~2012)
인천 유나이티드(2012~2015)
감독 성균관대학교(2015~2016 / 감독대행)
성균관대학교(2016~2017)
대한민국 대표팀(2017 / 코치)
성균관대학교(2017~2018)
국가대표 82경기 19골(대한민국)

1. 소개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선수이자 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2002년 한일월드컵의 주역 중 하나이며, 대한민국 최초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자이자 최초 챔피언스리그 골 기록, 차범근 이후 두번째 유럽리그 두자리 수 골 기록자, 최초로 중동리그에 진출 등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빼어난 윙어중 한명이지만 말년에는 K리그에서는 먹튀 논란과 더불어 배신과 과오 등으로 커리어를 안좋게 끝낸 선수이며, 이 때문에 설통수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프로 데뷔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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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부터 알아주는 유망주였다. 강릉 제일고와 광운대, 청소년 대표팀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하던 설기현은 특이하게도 2002년 월드컵을 앞둔 유망주 육성 계획에 따라 K리그가 아닌 벨기에 주필러 리그의 로얄 앤트워프에서 프로데뷔를 한다.[2]

2.1.2. 로얄 앤트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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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주필러리그에서 2000~01 첫 시즌 27경기동안 11골(리그 10골,컵 대회 1골)을 넣으며 좋은 활약을 했고 이는 차범근에 이어 역대 2번째 유럽리거 시즌 10골 기록[3]이었다. 이런 활약에 힘입어 다음 시즌은 같은 리그 우승후보인 RSC 안데를레흐트로 이적한다.

2.1.3. RSC 안데를레흐트

안데를레흐트에서 벨기에 리그 우승을 이뤘고 슈퍼컵 대회에선 헤트트릭을 하며 4:1 대승을 이끌어 우승 주역이 되었다.[4] 그리고 2002년에는 안데를레흐트 소속으로 발롱도르 후보자 1차 리스트에 뽑히기도 하는 등[5][6]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2002~03 시즌에는 시즌 43경기 13골을 기록했으며 2003-2004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여 예선라운드이긴 하지만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한 한국인이 되었고 마찬가지로 예선 라운드이긴 하지만 한국인 첫 챔피언스리그 골도 기록한다.[7] 당연히 국내에서의 위상도 어마어마해서 국대 에이스급으로 부상했다. 처음부터 빅리그 빅클럽을 노리기보다 중급리그 중소팀에서 '유럽에 적응'하고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간 성공사례로 꼽히며 이동국과의 비교가 극에 달하던 시절이었다. 주필러리그에서 4시즌 반동안 32골을 기록한다.

2.1.4. 울버햄튼 원더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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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잉글랜드 챔피언쉽의 울버햄튼에서 뛰었다. 이때 감독의 전술에 따라 최전방 공격수와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를 넘나들며 팀의 주전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2004-05시즌 설기현은 챔피언십리그와 각종 컵대회를 합쳐 총 40경기 6골을 기록했다. 2005-06시즌에는 2006년 1월 30일 박지성이 속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FA 컵에서 대결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2005년 역시 FA컵에서 아스날을 만났는데 앙리가 설기현과 경기 중 충돌할 뻔 했는데 피한 뒤 양팔을 닭날개처럼 퍼덕이는 몸짓을 해서 국내에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겁쟁이라는 뜻 외에 동양인을 비하하는 몸짓이라고 인종차별논란이 도마에 올랐으나 딱히 치킨이 동양인만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고 저런 닭날개짓이 딱히 동양인을 비하하는 제스처로 쓰이는 것은 아니라서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2005-06시즌 역시 설기현은 챔피언십리그와 각종 컵대회를 합쳐 36경기 4골로 풀타임 주전으로 활약했다.

05/06시즌 종료 후 챔피언쉽에서 우승하며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한 레딩 FC로 이적한다. 당시 레딩은 구단 최고 이적료를 지불하며 기대를 보였다.

2.1.5. 레딩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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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 초기엔 골과 어시스트를 고르게 기록하며 팀의 핵심으로 활약했다.


특히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전에서 베나윤을 농락하고 기록한 결승골은 입이 쩍 벌어질 정도의 슈퍼골.[8]

이 초기의 엄청난 활약을 바탕으로 상대팀 풀백 교체기 설바우도 설붐이라는 칭호까지 얻게 된다. 어원을 생각하면 얼마나 큰 기대를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심지어 EPL 07/08시즌 오프닝에도 출연했었다.
초반 epl 선수랭킹 17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점점 부진의 늪에 빠져 결국 4골 4어시스트로 시즌을 마감했고 다음 시즌을 앞두고 풀럼의 오른쪽 수비수인 리암 로시니어와 트레이드로 풀럼 FC로 적을 옮긴다.

2.1.6. 풀럼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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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럼의 스폰서이던 LG의 영향도 있어 보이나 등번호로 7번을 달기도 했던 만큼 팀내 대우나 입지는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설기현 영입을 추진한 로리 산체스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고 로이 호지슨이 부임하면서 입지가 크게 좁아진다. 베스트 11을 고집하는 조직력 축구의 신봉자였고 교체를 통한 전술변화도 잘 주지 않는 호지슨 밑에서 변변한 출장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2.1.6.1. 알 힐랄 FC (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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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우디 알 힐랄로 임대 이적되어 뛰다 풀럼과 계약 해지한 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한다.

2.1.7. 포항 스틸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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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작되는 역대급 먹튀전설.

포항 팬 한정 혐짤.[9] 결과적으로 K리그에서 뛴 세 팀 모든 곳에서 먹튀 및 통수로 찍히면서 먹튀 3관왕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포항 입단 직후 첫 훈련에서 부상을 당해 3월, 4월, 5월 경기에 나온다 안 나온다 하더니 결국 반 시즌을 그냥 날려먹었다(...). 그리고 후반기 들어와 골도 기록하고 나름대로 밥값은 해주나 했는데...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포항이 8강 2차전 조브아한과의 경기에서 결정적인 한가위 대보름 폭발슛을 날려 팀의 무승부에 일조[10]하면서 제대로 욕을 먹고 삐걱대기 시작하였다.


이 슛의 이름은 여러가지가 있으며, 지금까지 포항 팬들 사이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름은 다음과 같다. 한가위 대보름 폭발슛, 포항제철 대붕괴슛, 용광로 대폭발슛 등(...).

천천히 끝까지 보자, 아쉬워하는 설기현, 어처구니없어하는 박창현 당시 감독대행,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닌 서포터즈, 맨 마지막 리플레이까지 봤다면 매우 심하게 빡쳐서 화가 나 죽일 기세로 달려오는 모따까지 보너스사실 모따가 웃음포인트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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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따는 전부터 '설기현에게 패스하면 골 넣는다는 감이 온다'라고 인터뷰를 하는 등 설기현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넣는다는 감이 온다고 했지 넣는다고는 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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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서포터즈들과 서로 주먹감자를 주고 받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지만 그래도 양심에 찔렸는지[11] 재계약 의사를 내비치면서 계약이 끝난 뒤에도 2월까지 팀에 잔류하자 팬들도 조브아한전의 활약상(...)을 빼면 괜찮은 활약을 보여준 설기현에 대한 지나친 비난에 대해 화해의 표시로 생일파티[12]까지 열어주었으나... 훼이크다 이 병신들아.

2.1.8. 울산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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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활약이 괜찮았던 울산 시절

결국 시즌 개막 직전 그 많은 팀들 중에 하필이면 포항의 자타공인 라이벌 울산으로 이적하면서 포항 팬들에게 죽일놈으로 찍혔다.

이적하면서도 좋은 소리를 못 들은 것이 본인은 최전방 공격수 자리에서 뛰고 싶은데 팀에선 자꾸 윙 포워드를 강요한다고.[13] 하지만 본래 볼 터치가 둔탁하고 골 결정력이 떨어지는 대신 돌파력과 크로스가 역대급인 선수라 포항 입장에선 당연히 윙 포워드로 쓰고 싶을 수 밖에 없었다.[14] 최전방 공격수 자리를 찾아간 울산에서도 센터보단 윙 포워드가 제 포지션이라 보고 측면으로 돌렸다. 막상 떠나온 포항에서는 슈바가 부상으로 전반기 결장을 했던 탓에, 남아있었다면 설기현 본인이 원하던 최전방 공격수 자리에 반시즌이나마 기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못내 포항 팬들에게 미안했는지, 2011년 4월 23일 리그 7라운드에서 벌어진 포항 홈에서의 영남더비[15]에서 한 번 더 포항을 상대로 홈런볼(...)을 차줌으로써 포항 팬들이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게 만들었다. 물론 안 좋은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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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K리그 7라운드 포항 대 울산 경기에서 포항 스틸야드 N석 철망에 걸린 대금청구서, 조브아한전 정신적 피해, 그리고 생일케익(...)이 웃음 포인트.[16]

2011시즌 성적은 41경기 7득점 10도움. 세간의 인식과 달리 울산에서의 설기현은 나쁜 선수가 아니었다. 이 기록은 정규시즌과 PO, 컵 대회를 모두 합친 것이다. PO에서 5경기동안 2골 2도움의 맹활약을 했던 것은 있지만, 정규시즌만 따지면 29경기 3골 5도움이란 연봉에 비해 공격포인트는 적었다. 다만 유럽에서도 먹힌 피지컬을 앞세운 요란한 돌파로 반대편의 인사이드 포워드 박승일과 함께 상대팀 바이탈 존을 헤집으며 포메이션 상으로만 최전방이지 실제론 뒤로 쳐져 미드필더들과 함께 움직인 김신욱의 보좌 역할을 잘 해내 철퇴축구 1기의 준우승에 공헌했다. 다만 2002년 이름값과 높은 연봉에 비해 공격포인트가 적었고, 무엇보다 1년 있다 가버려서 포항 시절 이미지를 탈피하진 못했다.

그런데 K리그/2011년 챔피언십 플레이오프에서 친정팀 포항을 상대로 페널티킥을 얻어내고 성공! 이것이 그대로 결승골이 되면서 울산을 챔피언 결정전으로 진출시킴과 동시에 챔피언스 리그 티켓을 따냈다. 반면에 포항은 K리그의 챔스티켓이 3.5장으로 줄면서 플레이오프를 노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다만 돌이켜 보면 그나마 울산 시절이 공헌도도 그렇고 임팩트도 그렇고 헤어지는 과정도 그렇고 가장 양호했다고 할 수 있다. 노쇠화가 완연했던 인천 시절과 달리 포항, 울산의 설기현은 부상으로 못나왔을때를 제외하곤 활약이 좋았다. 울산에선 시즌 절반 정도 날린 포항시절보다 많이 출전하며 철퇴축구 탄생에 한몫했고, 가장 중요한 플옵에서는 꽤나 몰아치면서 챔스 티켓에 공헌한 바 있고 아예 포항에서 울산으로 이적한 것보다야 울산에서 인천 이적한 것이 낫다. 전지훈련 참가 후 이적이긴 하나 그런 선수가 설기현뿐인 것도 아니고, 전시즌 7경기 뛰고 전지훈련 참가한 후 갑자기 은퇴하고 감독하던 인천 시절을 비교하면 그나마 울산 시절이 가장 양호했다고 할 수 있다.

2.1.9. 인천 유나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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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나이티드 역사상 최악의 먹튀

2012 시즌을 앞두고는 연봉문제로 울산 현대와 다투는가 싶더니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허정무 감독과의 인연이 큰 이적을 결심하는데 역할을 한듯. 연봉을 울산에서 받던 수준의 절반으로 줄이고, 울산 팬들의 원성 속에서[17] 인천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한 후 지도자 준비를 할 것이라 밝혔다.

2012년 11월 18일...인천 유나이티드와 대전 시티즌과의 경기에서 관중슛사건을 홈에서 저질렀다.# 무슨 이유에서건 관중석을 향해 공을 찬 것은 비상식적인 행동이다. 비록 심판은 옐로 카드로 넘어갔지만 저건 옐로 카드 하나로 넘어갈 일은 절대 아니다. 흥분했다고는 하나 고의로 찬 것이며 관중에게 맞지는 않았지만 만약 어린 관중에게 맞았으면 절대 코피가 났다 수준으로 끝날 게 아니었다.

이후 언론에 밝힌 바로는 설기현 본인은 판정에 불만을 품고 공을 광고판에 찬다는 것이 그만 관중석으로 날아갔다고. 변명도 메시와 똑같다. 완전 벤치마킹 그나마 메시는 그 원수같은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원정에서 저질렀지, 설기현은 홈 관중에게 관중슛을 쏨 당연히 네티즌들은 설득력 없는 설득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조차 개발로 홈런을 치냐고 신나게 깠다. 설마 한가위 대보름 폭발슛 시즌2?

다음날 19일 인천 공식홈페이지를 통해 사과문을 게재했다.
설기현입니다.
먼저, 어제 경기중의 의도치 않은 실수로 여러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어제 경기중의 일련의 일들을 여러분께서 모두 보셨기 때문에 상황은 따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팀의 고참선수로 후배선수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소 흥분된 상태에서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했던 것 같습니다.
어제의 제 실수로 인해 불편을 겪으신 많은 분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점,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앞으로 보다 성숙된 모습으로 경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설기현 올림
사과문을 올렸다지만 너무 경솔한 행동이었으며, 설기현 정도의 위치와 나이라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 이보다 더 경솔한 행동이 기다리고 있었음을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 했다.

일단 2013시즌은 인천은 스플릿 A그룹에 드는 저력을 발휘하지만 설기현 본인은 그저 그런 평범한 활약을 한다.

그리고 2014시즌은 부상으로 골골대며 고작 7경기만 뛰고 시즌을 마치게 된다.

그리고 2015년...

2.1.10. 현역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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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계를 떠날 때까지 안고 가야할 과오.
K 팬들에게 빅엿을 주고 간 시절.

2015년 3월 3일 K리그 클래식 개막을 4일 앞둔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하고, 성균관대학교 감독[18]으로 부임한다고 한다. 시즌 개막 직전마다 일을 저지르는 설기현 심지어 전지훈련도 동참하고 시즌 새 유니폼 모델까지 맡았기에 부상으로 경기 얼마 안 뛰고 연봉만 받아먹었던 작년의 모습을 지우고 그래도 올해는 뭔가 기대에 부응해주지 않을까 했던 팬들의 당혹감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 설기현 때문에 인천으로 이적한 케빈 오리스 안습[19] 포항 팬들과 울산 팬들이 그랬던 것처럼 인천 팬들 역시 설기현을 크게 비난하고 있다. 이렇게 가는 팀마다 욕 먹기도 힘들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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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기현의 은퇴에 대한 관중들의 답례.[20]

압권은 SEOL마했던 우리가 호9[21]였네, 레며 다린 개막 실은 뒤통수.

다행히 설기현의 일방적 계약해지이기에 인천 입장에서는 위약금 받으면 끝나는 일이지만, 설기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인천의 1년 계획이 완전 틀어져버렸다. 설기현은 2014년 2년 계약을 맺어 2015 시즌까지 뛰기로 되어 있는 상태였는데, 지난 시즌 끝나고 진작 은퇴를 선언하며 계약을 해지했더라면 설기현에게 줘야 할 남은 1년치 연봉을 진작에 세이브하여 이석현, 박태민, 남준재, 문상윤, 구본상, 이보 중 몇 명은 지켜낼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이석현을 FC 서울에 헐값에 팔아치워버렸던걸 생각하면 더 열받는 상황. 게다가 김도훈 감독은 2015 시즌 케빈과 설기현 투톱 체제를 구상하고 있었기에 설기현이 갑작스레 은퇴해버린 현 시점에서 다른 자원을 억지로 투톱으로 올리거나, 여름 이적 시장이 열리기 전까지 케빈 원톱으로 버텨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22] 또 구단 측에서는 설기현의 은퇴를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그를 선수로 등록했기 때문에 로스터 자리에 그의 자리를 비우게 되었으며, 여기에 설기현이 훈련도 제대로 참여하고 각종 홍보물에 메인모델로 설기현을 두는 등 지난 시즌에 그렇게 먹튀 짓을 했음에도 설기현을 기용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여왔는데, 설기현의 은퇴로 그 홍보물들을 죄다 폐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때문에 안 그래도 돈없는 인천 유나이티드는 돈을 또 써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한 마디로 팀에 도움 안 되는 민폐 짓만 저지른 셈. 돈도 없는 시민 구단 돈 제대로 빼먹는 먹튀

이 와중에 대한축구협회에서 관리하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페이스북에서는 '설기현, 당신의 새로운 축구 인생을 응원합니다. 지도자로서 새출발하는 설기현 선수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3분을 선정해 설기현 선수 친필 사인 축구화를 드립니다.'라는 멘트를 올려 인천과 포항 팬들을 비롯한 K리그 팬들의 어그로를 제대로 끌었다. 넌씨눈 물론 댓글창은 포털 사이트 못지 않게 전쟁이 일어났다.

앞서 각주로 언급된대로 설기현에게는 감독 경력도, 1급 지도자 자격도 없기 때문에, 성균관대에서 내세운 감독 채용 응시자격과도 맞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성균관대 축구부 내부에서도 반발이 커지고 있는 상황.

이 와중에 설기현은 은퇴 기자회견에서 "지도자를 할 것이라면 감독을 먼저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나의 철학을 실현하고 검증받기 위해서는 감독으로 시작해야 한다. 내 경험을 내 팀에 입힐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 감독이다. 코치로 시작하면 그런 축구를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라는 경솔한 발언으로 멋모르고 실드치던 이들마저 떠나보내는 저력을 발휘하였다. 참고로 전남에서 스태프 생활을 시작해서 포항 스틸러스의 명감독으로 인정받은 황선홍도 시작은 전남 드래곤즈 2군 코치로 시작해[23] 전남 수석 코치 → 부산 아이파크 감독 → 포항 감독으로 차근차근 시작했다. 현재 K리그 최고의 감독 중 하나인 전북 현대의 감독, 최강희도 코치로 스태프 커리어를 시작했다. 심지어 지금 한창 욕먹는 홍명보도 어쨌든 먼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24]

물론 선수생활 끝나자마자 바로 감독을 맡는 경우가 아예 없는건 아니다. 단적인 예로 한때 프리미어리그에 있었던 미들스브로의 전 감독이었던 가레스 사우스게이트는 2005-2006시즌까지 현역으로 있다가 현역은퇴를 하자마자 다음 2006-2007시즌부터 감독을 맡았다.[25] 하지만 이 경우는 사우스게이트가 미들스브로의 주장이자 팀의 중심이었고 사우스게이트 이전 감독이었던 스티브 맥클라렌 밑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으며 선수 생활을 했는데다 미들스브로 구단에 베테랑 코치들이 많기 때문에[26] 이들이 사우스게이트를 보좌해줘서 가능한 일이었지만[27] 설기현은 지도자 수업을 받은 적도 없고, 감독 생활을 시작할 성균관대와는 어떤 연관도 없다.

설기현의 경솔한 발언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은퇴식에서 그는 "사실 3년 전부터 은퇴를 생각했다.", "내가 인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인천에는 케빈이라는 좋은 공격수가 있다. 전력 공백은 특별히 없을 것이다", "김도훈 감독님은 너무나 흔쾌히 결정을 해줬다. 사실 서운하기도 한데, 그런 부분이 도움이 됐다"는 등, 본인은 농담이라고 하지만 정작 인천 구단 관계자 및 팬들을 더욱 화나게 하는 발언을 했다. 일단 재미도 없고 구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없으니까 은퇴해도 된다??? 그런 식이면 여러 팀에서 주전 경쟁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선수들을 무시하는 발언이나 다름없다. 인천에는 벤치에 앉는 선수들은 죄다 은퇴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케빈이 인천에 오게 되면서 설기현이 더욱 중요해진 것이 인천은 통역사가 없기 때문에 선수단중 영어를 제일 잘하고, 해외 경험이 많은 설기현이 통역사 대리를 해 주고 있었다. 그것도 자기가 자청해서. 게다가 케빈은 인터뷰에서 대놓고 벨기에 리그 시절 설기현을 언급했을 정도이다. 은퇴 선언 얼마전 인터뷰에서도 "케빈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최대한 적응을 돕겠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갑자기 은퇴해버렸으니... 이대로라면 케빈은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팀 멤버들과 같이 뛰어야 한다.

포털 사이트에서는 설기현을 옹호하는 댓글의 의견 대부분이 직장에서 일하는 도중에 더 좋은 제안을 건넨 직장이 있는데 당연히 거절할 수가 있겠냐라며 옹호를 하지만, 애초에 예시가 틀렸다. 그들이 말하는 예는 이적 시장 종료를 며칠 앞두고 이적한 선수들에 한해서만 예시가 맞다. 알바도 이딴 식으로 그만두면 욕먹는다..아니 알바는 비정규직인 알바기라도 하지 어떤 사람들은 인천 유나이티드 구단이 삽질을 계속 하고 있었으니[28] 설기현도 팀에서의 입지가 불안하니까 은퇴한 게 아니냐고 왜 설기현이 욕 먹냐고 하는데...

중요한 것은 설기현의 은퇴 여부가 아니고 설기현의 은퇴 시기다. 설기현이 그동안 잦은 부상으로 인해 몸 상태가 안 좋아 팀에서의 입지가 안 좋았던 것은 사실이고 그가 은퇴해도 인천 팬들이 크게 아쉬워할 것도 없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시기가 너무 안 좋았다. 한참 시즌을 준비해야 하는 2 ~ 3월에 전지 훈련도 꼬박꼬박 참가하고 홍보 모델로도 꼬박 꼬박 참여하면서 은퇴에 대해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다가 이적 시장이 다 끝나가고 시즌이 개막하는 시점에 갑자기 은퇴를 하니, 구단으로서는 어이가 없을 수 밖에 없다. 누가 저런 행동을 하는 사람을 당장 은퇴할 사람으로 보겠는가?

설기현의 이번 상황을 간단히 말하자면, 한 때 실적이 좋았던 사람이 회사 내에서 계속 삽질만 하다가 다른 유능한 직원들이 떨어져서 이 사람을 믿고 써야 하는데, 이 사람이 자신이 해야 할 중요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나 슈퍼스타K 나가서 상금탈 거니까 회사 관두겠음. 요번에 신입이 나보다 일 더 잘하니까 걔한테 내 일 맡기셈" 이런 식의 행동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의 은퇴에 대해 인천의 한 관계자는 "인천이 기분 좋게 보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싸울 수도 없다. 꽃다발을 전해주기는 하지만 아름다운 이별로 보기는 어렵다"라고 말했고 김도훈 역시 시기가 아쉬웠다며 올 시즌 그를 중요 선수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게 말은 이렇게해도 속뜻을 보자면 "니를 중심으로 전술, 시즌계획을 다 짜놨는데 니가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 있어? 꼴도 보기 싫으니까 그냥 꺼져!"나 마찬가지다(...). 설기현 본인은 감독이 쉽게 은퇴시켜주었다고 하더니??

참고로 역시 같은 시즌 은퇴 예정자였던 차두리는 시즌을 전부 소화하고 소속팀인 FC 서울에 FA컵 우승을 안겨주며 은퇴했고, 설기현 은퇴 직전까지 같은 팀이었던 이천수는 연봉을 자진삭감하고 팀에 잔류했으며,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맡아 인천이 막판까지 상위스플릿 경쟁, FA컵 결승까지 올라가게 만드는데 공헌한 끝에 인천 팬들의 감사를 받으며 은퇴하였다. 이천수랑 설기현이 바뀌었나??

이후 국가대표팀 은퇴식도 2015년 10월 13일에 있었던 자메이카와의 평가전 하프 타임에 치렀다. 하지만 설기현이 은퇴 과정에서 워낙 대형사고를 쳐놓은지라 "뭐하러 저런 사람에게 은퇴식을 치러주냐?"는 부정적인 의견도 많았고, 실제로 하프 타임에 야유가 나오기도 했었다. 야유를 하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분명히 야유가 나온 것이 100% 사실이다. 실제로 직관을 간 사람들로부터 이야기가 나왔으며, 이 내용을 적은 위키러도 실제로 직관을 갔다 왔었다.

2.2. 대표 팀 경력

2.2.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2000년 1월 23일 뉴질랜드와의 친선경기에서 데뷔하여, 2002년 FIFA 월드컵, 2006년 FIFA 월드컵 등에 참가하였다.

2002 월드컵을 5일 앞둔 시점에 프랑스와 가진 평가전에서 박지성의 동점골에 이은 역전골을 넣어 이름을 알렸다. 경기 자체는 후반전에 2골을 먹히고 2:3 패배로 끝났지만, 당시 디펜딩 챔피언이자 피파 랭킹 1위였던 프랑스를 상대로 잠시나마 2:1로 리드하는 상황을 만들어내어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2.2.1.1.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특히,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동국을 과감히 제외시키고 대체 자원으로 발탁된 후, 16강 이탈리아전에서 후반 막판 천금같은 동점골을 넣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대한민국의 4강 진출에 큰 공헌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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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일 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넣고 환호하는 모습


2002 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에서 후반 경기종료 직전인 43분에 0:1 상황에서 기적같은 골을 넣으면서 경기를 연장전으로 끌고 가, 한국의 8강 진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로써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고 이 때가 정점.
2.2.1.2. 2006 FIFA 월드컵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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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독일 월드컵에서 유니폼을 교환하는 모습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프랑스전 후반에 크로스 패스를 날려 공이 조재진 머리에 닿았고 그 공은 결국 박지성의 발에 맞아 천금 같은 동점골을 넣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오른발을 많이 썼지만 양발이 두루 능숙해서 어느 발로도 중거리슛이나 세트피스 처리가 가능했다.

2.3. 기록

2.3.1. RSC 안데를레흐트

  • 주필러 리그 우승 1회 : 2003-04
  • 주필러 리그 준우승 1회 : 2002-03

2.3.2. 알 힐랄 FC

  •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리그 준우승 1회 : 2008-09
  • 크라운 프린스컵 우승 1회 : 2008-09

2.3.3. 울산 현대 축구단

  • K리그 준우승 : 2011
  • K리그 컵 우승 : 2011

2.3.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AFC 아시안컵 3위 : 2000
  • FIFA 월드컵 4위 : 2002

2.3.5. 통산 성적

2.3.5.1. 국가대표
연령 출전
U - 17 0 0
U - 20 12 7
U - 23 24 10
A 대표 82 19
종합기록 118 36

2.3.6. 주요 개인 수상

  • 체육훈장 맹호장 : 2002
  •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 수상 : 2002

2.4. 플레이 스타일


빠른 스피드, 유럽 선수들과 대등한 몸싸움이 가능한 체격, 정교한 크로스 3박자를 갖춘 양발잡이 측면 공격수로 한국 축구에서 상당히 드문 스타일의 선수다. 대부분은 앞의 셋 중 하나가 부족하다. 부평고 듀오 이천수최태욱은 스피드와 크로스는 좋았으나 170 초반의 단신이라 몸싸움이 안됐고, 스피드와 몸싸움으로 유럽 선수들을 압도할 수 있었던 차두리는 크로스가 부정확했다. 그래서 히딩크는 유럽 선수들과 몸 싸움이 가능한 설기현을 월드컵 무대에서 주전으로 기용하고 이천수차두리, 최태욱은 상황에 맞춰 백업으로 활용했다.[29] 설기현 이후 대표팀에선 이 3박자를 갖춘 측면 공격수가 완전히 사라졌다. 특히 크로스는 제대로 올리는 선수가 아예 없다. 히딩크는 설기현을 두고 "한국에서 유일하게 외국 선수들과의 몸싸움을 이겨내고 크로스를 올려줄 수 있는 선수"로 평했다. 2001년 대표팀이 공격수 부재에 시달렸을 때도 담담하게 "설기현만 오면 다 해결된다"는 답변을 남겼다.

크로스를 평하자면 고정운 이후 대표팀에서 가장 정확한 크로스를 올리는 선수였다. 정확도는 물론이려니와 속도가 빨랐고, 각도 예리했다. 양발 잡이라 좌우도 가리지 않았으며, 정지상태에서 올리는 크로스 뿐 아니라 러닝 크로스도 한국에선 독보적이었다. 2006년 월드컵 프랑스전에서 박지성의 동점골 과정에서 올린 런닝 크로스가 좋은 예.

피지컬도 한국 기준으론 스피드, 경합능력 모두 최상급이었고 187의 장신이라 공중볼도 상당히 잘 따냈다. 이 피지컬을 바탕으로 약팀들 상대할 때는 최전방 스트라이커로도 뛰었다. 왼쪽 윙포워드가 주포지션이었지만 양발 모두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어 오른쪽 윙 포워드로도 종종 뛰었고 클럽에서는 중앙 공격형미드필더로 시즌을 소화한 적도 있다.

단점은 둔탁한 볼터치와 떨어지는 축구지능. 그가 대표팀 생활 내내 지적받은 골 결정력 부족이나 패스 정확도 부족은 둔탁한 볼터치에 기인한다. 건장한 신체를 바탕으로 한 슈팅파워는 좋았으나 볼을 부드럽게 다루는 능력이 부족하니 공이 뜨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갔다.[30]박지성만큼의 축구지능을 가진 선수는 아니었기 때문에 공간 창출력이 부족해 다른 공격수들과의 연계 플레이가 약했다.

주력은 빠른 편이지만, 큰 키와 우람한 체격으로 인해 민첩성은 조금 떨어졌었다.

이런 특성들 때문에 손흥민같은 인사이드 포워드는 맞지 않는 옷이고 전통적인 윙어의 역할, 라인파고 크로스가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었다. 설기현을 밑에둔 감독들도 설기현을 측면으로 기용하려 하고 그가 원했던데로 중앙 공격수로 기용하려 하지 않았다. 연계능력이나 공간창출 능력이 떨어지는 선수를 중앙에 세우면 효율이 떨어지는데다 스피드와 크로스는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팬들의 생각이나 추억보다는 상당히 훌륭한 실력과 업적을 남긴 선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이 저평가를 하게 되는 원인, 가장 큰 단점이 뭐냐면 이 선수가 괴짜라는 것이다. 고집이 너무 강하고 지도자들과 잘 소통을 하지 않는다. 자꾸 중앙 공격수로 뛰려는 황소고집을 부리는 게 대표적인 고집인데, 레딩에서도 이 때문에 스티브 코펠 감독과 갈등이 생겨 결국 이적하게 되었다.[31][32]

3. 지도자 경력

3.1. 코치 경력

3.1.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2017년 2월 6일, 슈틸리케호의 코치로 새롭게 합류한다는 소식이 떴다.#

3월에 개막하는 대학리그는 둘째 치고, 당장 1주일 뒤인 2월 12일부터는 전국춘계대학축구연맹전이 시작되는지라 또 통수인가 하는 비판이 많았지만,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성균관대 감독직을 유지하면서 국가대표 코치로 파견되는 형식이라 궁색하게 설명하며 급수습했다. 하지만 당장 성균관대는 시즌 준비 직전 감독이 사라지는 사태를 겪게되면서 여기에 대한 비판은 피할수 없게되었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K리그 시절 3번의 통수칠때와 너무 비슷하게 흘러간것도 문제. 다만 네이버 풋볼앤토크K에 따르면 코치로 내정된 것은 좀 더 이전의 일이며 조정기간을 거쳐 2월 6일에 발표된 것이라고 한다. 기간 좀더 늘어난거 빼고는 차이없잖아?

3.2. 감독 경력

3.2.1. 성균관대학교 감독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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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감독 대행이 된 이후 풋볼리스트[33]설기현은 왜 그렇게 감독이 되었나라는 이름의 인터뷰 기사를 냈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제목으로 나온 '왜' 감독이 되었나라는 내용은 변명으로 점철되어 있다. 또 왜 급작스럽게 출신학교도 아니고 자격증도 없으며 공채에도 응시하지 않은 설기현이 감독 대행이 됐는지 대한 내용은 스리슬쩍 넘어가고 감독 대행이 된 뒤 성균관대 출신 지도자들이 설기현의 선임에 불만을 품고 그 자리는 내 자리라며 물러나라고 협박했다는 내용이 주된 내용으로 논점을 흐리고 물타기만 하고 있는 기사여서 인천 팬들을 비롯한 K리그 팬들의 속을 뒤집어 놓고 있다.

또한 기사에 따르면 1급 지도자 자격증을 지닌 광운대 후배 홍복표 코치를 선임했다고 한다. 2급 자격증만 취득한 설기현은 벤치에 앉을 수는 있어도 지시는 내릴 수 없어 경기에 나가면 홍 코치가 지휘를 해야하고, 경기장 외에서만 감독의 직무를 대행하는 웃지 못할 상황을 설기현이 1급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는 2016년 1월까지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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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리그 개막전으로 감독 데뷔를 했지만 자격증 문제때문에 경기장 벤치에도 못 앉고 학교 건물에서 경기를 봐야했다. 예원예술대를 3-1로 이기며 데뷔전에서 승리를 기록한다.

대한축구협회 FA컵에선 2라운드부터 출전했는데 영남대에 0:1로 패해 일찌감치 짐을 싼다.

[인터뷰] ‘지도자’된 설기현 “운동? 하루 딱 한 번, 1시간 10분”
최근 인터뷰가 또 나왔는데 "저는 선수 때부터 평소 갖고 있는 철학을 펼치려면 대학 감독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성균관대에서 마침 좋은 제안을 주셔서 선수 은퇴라는 중대한 결심까지 하면서 수락한 건데 생각지도 않은 논란이 발생해 솔직히 당황스러웠죠." 이 말을 남기면서 자기만 아는 사람이란걸 또 인증하며 인천 팬들의 어그로를 또 끌고 있다.

10월 13일 대표팀의 자메이카와의 친선경기때 은퇴식을 연다고 한다. 한동안 소식도 없다가 갑작스럽게 나온 발표에 축구팬들의 반응은 엥? 시바끄 이 무신 소린교?

은퇴식 후 인터뷰에서는 자신을 지지해준 포항, 울산, 인천 팬들에게 감사히 여긴다는 안해도 될 말을 해서 더더욱 팬들의 공분을 샀다.

저 위의 홍명보, 황선홍, 사우스게이트 등을 거론하며 늘어놓은 저주와 달리 성균관대는 대학리그 결승전까지 올라갔다. 즉 지도자로써의 능력은 있다. 성균관대는 U리그 결승전에서 용인대에게 0:2로 지면서 준우승을 차지했다.[34] 애초에 대학팀에 설기현 정도의 커리어와 위상을 가진 사람을 거스를 선수가 어디 있겠는가? 사우스게이트처럼 본인 인품과 상관없이 팀 장악에 문제를 겪을 가능성은 없었다.
성균관대는 안방에서 재학생들과 학교 관계자 등이 지켜보는 앞에서 첫 U리그 챔피언십 정상 정복을 노렸지만, 용인대의 기동력과 압박축구에 이렇다할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서 아쉽게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그럼에도 성균관대는 살림꾼 위현욱과 해결사 정준규(이상 3학년)의 BTV-CUP 대학선발 차출, '캡틴' 김성현과 최영효 등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경고누적 등 온갖 악재[35] 속에서도 인천대와 숭실대, 서남대, 선문대 등 만만치 않은 상대들을 줄줄이 연파하는 저력을 뽐내며 '설기현호'의 장밋빛 미래를 암시했다. 해당기사
U리그 왕중왕전 당시 인터뷰를 보면 교육 다 받은 상태에서 자격증 발급만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결국 2016년 1월에 1급 지도자 자격증을 획득한 후 정식 감독이 되었다.

3.2.2. 성균관대학교 감독

성균관대 감독으로서는 계속 순항 중. U리그 서울-경기권 대학 1위를 차지했고 2016년 FA컵에선 챌린지의 강호 이랜드를 승부차기 끝에 물리치며 16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프로 선수를 키우는 바탕인 대학팀에서 기존의 한국 축구의 관행과는 다른 자신의 철학을 펼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2016년 자연과학캠퍼스에서 열린 체육대회에서는 아마추어 축구 결승전 주심으로도 활약하기도 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 해임 이후 국가대표팀과의 계약이 해지되었고, 다시 성균관대로 복귀하였다. 복귀 후 제 13회 1,2학년 대학축구대회에서 중앙대학교에 패해 준우승하였다.

10월 1일 뜻밖에도 성균관대학교 축구부에서 감독 채용공고가 떴다. 아무래도 감독직을 그만 둔 듯 하다. K리그 선수 시절이나 성균관대 감독 시절 도중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코칭스태프 합류 논란과는 달리 별말이 없이 끝나서 의외다.

사퇴 후 한때 FC 서울 감독 부임 루머가 돌아서 서울팬들을 불안에 떨게 했으나, FC 서울 프런트가 아무리 돈이 쓰기 싫다 해도 선배고 지도자 경력이 더 풍부한 이을용도 실패한 자리에 대학 감독에 대표팀 코치 경력 뿐인 설기현을 넣을 리가 있나? 이는 최용수 감독이 복귀하며 잊혀진 루머가 되었다.

4. 여담

  •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한때 이동국과 언론이 만든 라이벌 기믹이 있었다. 비슷한 나이대에 엘리트코스를 타던 이동국과 언더독이었으나 스스로 길을 개척하여 유럽에서 성공한 설기현이라는 구도로 많이 비교되었다. 2000~2002년까지는 설기현이 거의 유일한 유럽에서 뛰는 선수였고[36] 벨기에 리그이긴 하지만 챔피언스리그에도 나가고 팀의 주전으로 자리잡았기에 분데스리가에서 실패하고 온 이동국을 보고 설기현을 배우라는 둥 아래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가야지 처음부터 한꺼번에 너무 높은 곳만 가려고 했다는 둥 게으른 천재와 노력형 준재 등으로 이동국을 비난하는 용도로 자주 애용되던 선수다.
  • 강원도 출신이기 때문에 강원 지역[37]에서는 이을용과 마찬가지로 애지중지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때문에 국내 복귀 이야기가 나오면서 강원FC로 오지 않겠느냐는 설레발이 있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강릉 제일고의 전설에 따르면 설기현은 아침에 일어나서 숙소에서 식당까지의 경사진 길을 볼 리프팅하면서 가고, 다시 식당에서 숙소까지 볼 리프팅하면서 돌아갔다고 할 정도로 연습에 매진했다고 한다.
  •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데다 자기 주관이 뚜렷해서 주변 사람들과 티격태격하는 일이 잦았다. 이거 아니면 안 한다 등의 일도 잦았고 포지션 관련해서 다투는 일도 많았다. 이 때문인지 잉글랜드 시절에도 여러 차례 팀과 다툼이 있었고, K리그로 돌아와서도 포항, 울산, 게다가 마지막에는 인천과도 영 좋지 않게 헤어졌다.
  • 이영표전도실패한 몇 안되는 사람이 설기현이라고 한다. 김신욱도 울산 시절에 시도해 봤지만 그럴 때마다 저 교회는 뭐가 안 좋다더라, 저 교회는 누가 비리 있다더라 하면서 조목조목 튕겨내는 바람에 실패했다고... 게다가 애초에 설기현은 불교 신자에 신앙심도 깊어서 전도는 거의 꿈도 못꾼다. 2002년 4강 이후 쓰여진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서 훈련 중 거스 히딩크가 자유시간을 주자 들은 PC방이나 목욕탕 등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곳을 가 놀았는데, 설기현은 혼자 방에서 염주를 끼고 불경(?)을 외고 있었다고 한다(...).
  •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영웅에서 불과 30분만에 그야말로 대역적으로 추락할 뻔했다. 연장전에서 한국 존에서 수비하던 와중 어이없는 백힐 패스로 젠나로 가투소에게 골든골을 헌납할 뻔했기 때문. 물론 다행히도 이운재가 선방해줘서 위기를 모면했지만 진짜 아찔한 순간이었다.
  • 과거 나이키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 2002 월드컵 시즌을 앞둔 나이키의 Secret Tournament라는 캠페인에 데니우손, 호나우딩요와 같은 팀으로 나왔으나 정작 출연한 것은 이름(SEOL)뿐 실제로는 그림자도 안나왔다. 당시 국내에서 설기현의 위상을 알 수 있는 CF이긴 하다. 티에리 앙리, 피구와 함께 나온 CF도 있었다. 한국 대상 지역모델.
  • K리그 팬들 사이에서는 활약 초기에는 국가대표 출신에 2000년대 초반의 몇 안 되는 유럽파 선수들이었다는 점에서 좋은 이미지도 많았지만, 국내 복귀 후 거듭된 통수질로 이미지가 상당히 안 좋아졌다. 아예 본명인 설기현으로 부르지 않고 통수, 설사 등의 혐칭으로 부르는 팬들도 상당수.
  • 2000년대 중반 자동차 본넷 위에 쭈그려 앉아 있는 사진이 한 때 합성요소로서 많이 쓰였다. 설기현의 아내가 네티즌에게 합성 자제를 요청했고 그 뒤 그 사진은 그다지 쓰이지 않았다.

[1] 본인 스스로는 스트라이커에서 뛰고 싶어했으나 선수생활 대부분 윙어로 중용되었다. 이유는 골결정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반면에 상당한 수준급의 러닝크로스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2] 참고로 이 때 이상일이 KSK 베베런에 입단했으며, 설기현과 이상일은 한국 선수 중 최초로 벨기에 1부 리그에서 활약한 선수가 되었다.[3] 이후 박주영과 손흥민, 석현준이 유럽 리그에서 한 시즌 10골 이상을 기록했다. 그런데 스포츠서울은 설기현을 빼고 석현준을 4번째 유럽 진출 선수 시즌 10골 달성이라고 기사를 냈다가 비난을 받았다.[4] 로얄 앤트워프는 설기현을 이적시킨 뒤, 03-04시즌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동팡저우를 임대하면서 그에게 기대를 걸었지만 보기좋게 2부리그 강등당하고 만다. 그리고 2015년까지도 줄곧 2부리그인 Belgian Second Division 신세이다.[5] 발롱도르 후보자에 들어간 한국인은 2005년 PSV 박지성, 2015 레버쿠젠-토트넘 손흥민이 있다.[6] FIFA 올해의 선수상까지 고려하면 2002년의 홍명보도 공동 17위를 차지한 적이 있다.[7] 챔스 본선무대 한국인 첫골은 PSV 시절 박지성이 04-05시즌 4강전에서 넣었다.[8] 이 골은 BBC에서 선정한 '06-07 EPL Goal of this season'에서 18위에 올랐다.[9] 포항의 1년 연봉 12억을 낼름! 아주 그냥 먹고 튄 것까진 아닌데 중요한 부분에서 말아먹는 바람에... 하지만 이후 행적들은 이미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먹튀.[10] 황진성이 킬패스를 찔러줬고 일대일 찬스에서 골키퍼까지 제쳐진 완벽한 빈 골문을 두고 허공에 공을 찼다. 저게 들어갔으면 2:0으로 앞서가는 경기였고 후반 막판 골을 먹어도 2:1로 연장까지 갈 수 있었다.[11] 그래도 리그 스탯만 놓고보면 정말 잘 했다. 후반기부터만 나와서 16경기동안 7골 3어시스트를 했다. 하지만 그 연봉에 시즌을 반 날려먹은 것과 한가위 대보름 폭발슛의 임팩트가 너무 컸다. 그리고 그 후엔...[12] 설기현의 집에선 생일을 음력을 기준으로 삼는다고 하는데 포항 선수진들이 열어준 파티는 양력이 기준이었다. 즉 본의 아니게 생일파티를 두 번 연 셈. 그래서 황선홍 감독은 음력 생일에 이미 선물을 주었기 때문에 선물을 주지 않았다고.[13] 유럽 시절부터 감독과 드잡이질 많이 하는 선수였다. 그런 문화가 생소했던 한국 언론에서 왜 그렇게 감독하고 싸우냐고 묻자 유럽은 다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야한다고 답하곤 했다.[14] 인천에서는 최전방자리에서 뛰었는데, 골 삽입보단 포스트플레이와 사이드로 빠진 후 자신의 장기인 크로스를 올려주는 역할을 맡았다.[15] 여러모로 볼거리가 많은 경기였는데 그 중 하나가 경기 시작 전 포항팬들이 철조망에 붙인 "설기현 선수에 대한 피해보상비 청구서(아래 짤방에 나온)"와 홈 경기 서산 개최에 따른 울산 팬들의 울산 구단 디스 현수막 등.[16] 설기현이 1월생이라 팬들이 차려준 생일파티 직후에 곧바로 울산으로 튀어서 더욱 안습(...).[17] 단순히 연봉 감소만이 불만의 원인이 아니었다. 전지 훈련에도 참가하고, 재계약할 것처럼 이야기하더니 갑자기 인천으로 이적했기에 울산 팬들에게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특히 포항 시절과 달리 울산에서는 스탯조차 좋지 못했으니... 이로 인해 포항과 울산에서 모두 뛰었음에도 두 팀 팬들 모두에게 욕먹는 거의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18] 지도자 1급 자격증이 없어서 올해 내로 딴다고 했지만 감독 모집 공고에 지원도 하지 않았으면 지원 조건에도 맞지 않다.#[19] 인천에는 통역이 없다. 그래서 영어를 잘하는 설기현이 통역을 맡았다고...[20] 3월 7일 있었던 2015 시즌 K리그 클래식 개막전, 광주 FC와의 경기 중에 걸려있던 걸개들이다.[21] 인천에서 설기현의 등번호가 9번이었다.[22] 그나마 지난 시즌에 포텐을 터뜨린 진성욱이 있긴 하나, 아직은 한참 어린 선수이고, 여러 가지를 잘 하는 선수이긴 하지만 체력적인 면에서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무작정 주전으로 쓰기도 애매하다. 실제로 지난 시즌엔 디오고와 계속해서 주전 경쟁을 해야 했다. 또한 부상으로 초반에 어쩔 수 없는 결장을 하는데 이럴 경우 사실상 주전급 공격수는 케빈밖에 없다.[23] 게다가 그 와중에 해외 연수까지 다녀왔다.[24] 물론 홍명보는 자격에 맞지 않는 라이센스를 가지고 국가대표 코치를 맡았기에 논란이 있었다.[25] 물론 이 당시 지도자 자격증이 없어서 말썽이 있기는 했다. 1년 만에 따내기는 했지만.[26] 이 당시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코치들 커피 심부름하는 장면도 자주 보였다(...). 감독이 코치들 커피셔틀[27] 결정적으로 미들스브로는 사우스게이트가 감독이 된 뒤 유리몸 조나단 우드게이트를 임대하고 로베르트 후트를 영입해 사우스게이트의 포지션인 중앙 수비 보강에 성공했다. 후트야 말할 것도 없고, 우드게이트는 명불허전 레알 마드리드에서 부상을 달고 와 초반에 경기를 뛰지 못했으나, 매우 좋은 활약을 보이며 결국 완전 영입 협상에도 성공했다. 이게 다 사우스게이트가 갑자기 은퇴한 것이 아니라 미리 은퇴를 이야기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28] 김봉길 해임, 이임생 감독 임명 실패, 이석현을 매우 싼 값으로 FC 서울로 이적시킨 것 등.[29] 2002 월드컵은 특이하게 미국전을 제외한 6경기가 유럽팀이었다. 폴란드, 포루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터키. 미국도 남미나 아프리카보다는 유럽 스타일에 가깝다.[30] 2002년 월드컵에서도 이탈리아전에서 동점골을 넣기 전까지 설기현은 이 때문에 욕을 먹기도 했다. 미국전에서 완벽한 찬스를 세 번이나 날려먹고 포르투갈 전에서는 후반 막판에 1대1 찬스도 말아먹었다.[31] 당시 레딩에는 케빈 도일, 데이브 킷슨, 르로이 리타, 셰인 롱 등 이미 1군 공격수로 쓸 만한 선수가 네 명으로 시즌을 다 꾸릴만 했고정확한 크로스와 빠른 스피드와 돌파력을 생각하면 오히려 오른쪽 윙어 쪽이 설기현이 경쟁하기 더 쉬운 편이었다. 그런데 이미 저 네 명이 있는데도 볼 터치나 골 결정력이 좋지 않은 설기현을 저 선수들을 제끼고 굳이 공격수로 쓸 이유는 사실상 없었다. 사실상 편하게 주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자기 스스로 내쳐 버리고 팀을 이적하며 커리어과 완전히 꼬여버린 것.[32] 이 문제는 한 때 시오 월콧도 겪었던 문제인데 아스날 입단 후 중앙 공격수로 뛰기를 원했던 월콧은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생각한 건지 16-17 시즌부터 벵거를 설득하여 오른쪽 윙어로 정착하는 데 성공했다. 꾸준히 잘했던 것은 아니지만[33] 축구 해설가 서형욱이 대표로 있는 축구 언론으로 한 쪽에 치우친 논지의 칼럼을 자주 작성해 비난을 받았다.[34] 공교롭게도 용인대 에이스 이현성은 인천에서 프로 데뷔를 하게 되었다.[35] 학업-운동 병행 정책이 시행되며 학점도 악재로 작용했는데,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KUSF)의 규정에 따라 학점 미달(2016학년도 1,2학기 평균성적 C 이하) 선수들도 경기에 참가할 수 없다. 2017년 성균관대 축구부에선 30명 중 8명이 학점미달로 U리그 참가 제한조치를 받았다.[36] 당시는 지금과는 달리 유럽에서 뛰는 한국선수가 정말 거의 없었다. 설기현 이외에는 안정환 정도인데 안정환도 이적 초기에는 팀 적응에 어려움을 겪던 시기다. 한국인의 유럽 진출이 수월해진건 02월드컵 4강신화와 박지성, 이영표 등의 해외진출 성공 등의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다.[37] 이을용과 같은 강릉 상고(현 강릉 제일고)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