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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국(1983)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축구선수/목록/대한민국, 축구 해외파 선수들
파일:attachment/Ulsan_Fabrication_Choi.jpg 파일:attachment/Sungnam_Fabrication_Choi.jpg 파일:attachment/Sangmu_Fabrication_Choi.jpg
울산 현대 호랑이 시절 성남 일화 천마 시절 광주 상무 불사조 시절
파일:attachment/Suwon_Fabrication_Choi.jpg 파일:attachment/Jomo_Cup_Fabrication_Choi.jpg 그러나...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조모컵에서 MVP를 수상했을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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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사나이
이름 최성국 (崔成國)
생년월일 1983년 2월 8일 ([age(1983-02-08)]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출신학교 정명고 - 고려대 중퇴
포지션 브로커 공격수
프로입단 2003년 울산 현대 호랑이
소속팀 울산 현대 호랑이 (2003 ~ 2006)
가시와 레이솔 (2005, 임대)
성남 일화 천마 (2007 ~ 2010)
광주 상무 불사조 (2009 ~ 2010, 군 복무)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1)
국가대표 26경기 2골


1. 개요2. 축구 선수 시절3.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4. 처벌5. 그 후

1. 개요

그의 별명은 리틀 마라도나였으나, 지금은 그를 디에고 마라도나에 비교하는건 마라도나에 대한 심각한 실례이자 모욕이다. 마라도나신의 손이라든가 약물복용은 했지만 승부조작은 안했다. 이후로 생긴 별명은 당연히 조작관련 별명 뿐.

2. 축구 선수 시절

탁월한 드리블과 돌파 능력으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아, 고등학교 시절 신문에 이름 석자가 오르내릴 정도였다.[1] 2002년 월드컵 직전 거스 히딩크 감독이 특별히 눈여겨보며 정조국과 함께 마지막 훈련때 엔트리 외, 훈련멤버로 참가시키기도 했다. 다만, 최후의 경쟁에서 정조국과 나란히 탈락했지만, 어린 나이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훈련에 합류했다는 거 자체로 충분한 가능성을 인정받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기대에 걸맞게 2003년 청소년 대표팀[2]2004년 올림픽 대표팀을 거치며 에이스로 활약한다. 최성국을 가장 돋보이게 한 활약은 중국과의 올림픽 지역예선에서 한국팀 수비진영으로 부터 중국 골에리어까지 폭풍드리볼로 조재진에게 결승골을 어시스트 해준 장면.

2003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 계약금 3억을 받고 입단한다. 갓 프로 무대에 뛰어든 신인으로선 파격적인 액수였다.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할 점은, 저 3억이 당시 규정상 신인선수 계약금 최대상한선이다. 즉, 그 이상은 주고 싶어도 못 줬다는 소리.[3]

당시 울산은 해외진출을 앞둔 이천수의 공백을 메울 대체자가 필요했다. 최성국은 그 기대에 부응하여 27경기 7득점 1도움을 기록했고, 팀은 준우승을 차지했다. 사실 이즈음 울산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승권 팀이었는데, 하필이면 성남이 2001년부터 2003년까지 K리그 3연패 전설을 남긴 시기라…

여담으로 이해 청소년 대표 시절 동료 정조국안양 LG 치타스에서 데뷔했고, 둘은 신인상 경쟁을 벌였다. 결국 신인상은 12득점 2도움을 기록한 정조국이 차지했다.

또한 리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당시 움베르투 코엘류가 이끌던 국가대표팀에도 차출되어 활약하였고, 인천에서 열린 오만과의 2004 아시안컵 지역예선 경기에서 결승골을 득점하는 등 나름 활약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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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올림픽팀 차출로 인해 19경기 1골 4도움으로 저조했고, 그 영향인지 2005년엔 해외 진출을 요구해 결국 J리그 가시와 레이솔로 6개월 임대를 간다.

물론 황선홍, 김도훈, 최용수J리그에서 성공한 공격수들의 전례가 있긴 했으나, 엄연히 이들은 아시아 어느 무대에 내놓아도 꿀릴 것 없는 대표팀의 간판급 선수로서 진출했다. 반면 최성국은 갓 유망주 태를 간신히 벗었을 뿐 확실한 검증조차 받지 못했으며, 더욱이 팀에 녹아들 시간은 부족하고 고작 반년 기간내에 성과를 보여야 했다. 당연히 일본 진출은 실패로 끝나고 초라하게 귀국하고 만다.

최성국의 불운은 계속 되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명예 회복을 노렸지만, 피지컬을 중시했던 조 본프레레 감독은 좀처럼 최성국을 눈여겨 보지 않았다.

하지만 최성국K리그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으로 길이남을 시합에서 활약하며, 아직 리틀 마라도나는 끝나지 않았음을 만천하에 증명한다.



2007년 이적료와 연봉 등 30억 2년 계약으로 성남으로 깜짝 이적하면서 K리그 팬들을 놀래킨다. 심지어 등번호는 신태용이 성남에서 12년간 달고 뛰었던 7번이었다. [5] 물론, 성남은 측면 공격수가 절실한 상황이었으나 반면 울산은 상주 상무에서 정경호가 복귀한다고는 해도 최성국을 잉여자원으로 분류하기는 좀 애매했다.

또한 당시 핌 베어벡 감독이 이끌던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되어 2007년 AFC 아시안컵 본선에 출전하였고,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득점해 사우디전 무승 사슬을 끊는 듯 했다...만 페널티 킥으로 동점골을 허용해 1-1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2008년 K리그 J리그 양국 올스타팀이 격돌한 조모컵에서 최성국은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MVP를 수상한다.

결국 최성국은 성남에서 2시즌을 뛰고, 2009년 광주 상무 불사조에 입대한다. 성남에서 뛴 2년 동안 남긴 기록은 54경기 10득점 5도움. 상무에서 꾸준히 뛰며 폼을 잃지 않았으나, 다행히도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다.

이후 대표팀 감독에 취임한 조광래 감독이 10월 12일 한일전에 선발했다. 최성국은 선발출장했으나, 시합은 득점 없이 비겼다.

광주에서 2시즌 동안 52경기 13득점 5도움을 기록하고, 2010년 10월 31일 전역(…)하여 원 소속팀 성남으로 복귀했다. 이후 성남은 2010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FIFA 클럽 월드컵에 참가하는데, 최성국이 23인 엔트리에 들었다.

FA 자격을 취득하고는 "프리미어리그 이적 희망' 발언을 했다. 그러자 여러 축구 커뮤니티의 반응은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리그 말이냐?" 몽골 프리미어 리그? 식으로 영 좋지 않았다.(…) 결국 2011년 1월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했다. 이적료 13억원.

수원으로 이적을 한 지 불과 1주일만에 수원의 주장이 되었다. 윤성효 감독이 등번호로 몇 번을 원하는지 묻자, 최성국이 10번을 원한다며 '10번만 주면 주장이라도 하겠다' 해서 주장 완장을 건넸다고 카더라.

그런데...

3.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이 본격화되면서 최성국도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최성국 본인은 결백하다고 부인하면서 승부조작 방지 워크숍에 참석해서도 절대 안 했다고 주장했으나, 결국 자진신고 기한 마감일 하루 전인 6월 29일, 김동현의 권유를 받고 "승부조작 모의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모두 시인하며 이를 자진신고했다.

본인은 이후에도 "모의에 참여만 했을 뿐, 돈은 받지 않았다"라면서 관여 사실을 계속 부인했고, 구단과 팬들도 최성국의 말을 믿고 그를 옹호해 줬지만,[6] 7월 8일, 검찰 측의 발표를 통해 김동현권유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김동현을 비롯한 주변의 많은 선수들을 직접 끌어들이고 승부조작을 직접 조장한 브로커 역할을 수행했음이 밝혀졌고,# 결국 그간 최성국을 옹호하던 소수의 이들조차 모두 등을 돌리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저연봉에 시달리다 돈 몇 백만원에 양심을 판 단순 조작가담 선수들조차도, 축구협회의 강력 대응 방침에 따라서 전원 영구제명을 면치 못하는 판국인데, 최성국처럼 고액의 연봉을 받던 선수가 브로커 노릇까지 했으니, 용서를 할래야 용서를 할 수 없는 것이다.

4. 처벌

8월 25일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의해 영구제명 처분을 받았으나,# 승부조작을 자진신고한 점이 참작되어 5년의 보호관찰 기간과 500시간의 봉사활동을 거친 뒤 심사를 거쳐 복귀할 수 있는 길은 열어 놓았다. 10월 5일 축구협회에 의해 판결이 확정되어 제명 처분되었다.

제명 처분 후 "죄송하다는 말씀은 당연하고, 아껴주신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긴 것 깊이 반성하고 회개한다."고 말했다. 헌데 이젠 회개를 해도 축구계에서 영구 퇴출이잖아?

하지만 무죄를 주장하면서 국내 리그가 아니라면 해외 리그에 진출하겠다고 뜻을 밝히면서 논란이 되었다. 원칙적으로 프로 축구선수가 해외로 이적할 경우 소속팀이 속한 축구협회에서 국제이적동의서를 발급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사유로 동의서 발급을 거부당했을 경우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피파(FIFA)에서는 1년짜리 임시이적동의서를 발급해준다. 최성국은 이런 제도상의 허점을 이용해서 해외이적을 추진했기 때문에 축구팬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마케도니아 FK 라보트니키로 이적이 확정되었다. 전번 리그 9위인 하위권 팀. 뭔가 초라한 해외진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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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인낭은 인생의 진리

참고로 최태욱은 응원이나 한답시고 당시 트위터에다 이렇게 썼다가 분노한 축구 팬들의 항의로 재빨리 삭제했다. 어이가 없어하는 축구 팬들사이에서는 "너도 승부조작했냐?"라고 조사들어가야 한다고 까기도 했다. 결국, 최태욱 본인이 스스로 경솔했다고 인정하는 사과 트윗을 올렸는데 "어쨌든 승부조작은 사라져야 한다."며 어설픈 물타기를 시도했다가 욕을 또 다시 바가지로 먹었다. 덤으로 양준아도 쉴드를 치다가 까였다.

하지만 이 타국가로의 이적도 FIFA에서 제동을 걸었다. FIFA는 징계위원회를 통해 국내에서의 제명이 해외에서도 유효하다는 결정을 내렸고 이는 한국프로축구연맹, 대한축구협회, 아시아 축구 연맹, 유럽축구연맹, 마케도니아 축구협회 등 관련 기구에 모두 통보됐다. 최성국에게 부과된 영구제명은 국내경기는 물론 국제경기와 친선경기 등 모든 공식 경기에 적용되었다. 다시 말하면 축구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완전히 막혔고[7] 축구하고 싶으면 조기축구회밖에 답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이 경우는 승부조작에 의한 징계를 피해서 외국으로 튀는 선례에 FIFA가 직접 제동을 건 것이라 한 마디로 망했어요. 이후 FIFA에서 최성국의 징계를 5년 자격 정지라고 발표했지만, 대한축구협회영구제명이니까 확인해달라고 문서를 보냈고, FIFA는 "5년은 실수였다."라고 의사를 보이면서 다시 영구제명으로 정정했다고 한다.

5. 그 후

2012년 6월, 분당구에 있는 한 병원 원무과에 취직하게 되었는데, 병원 간부와 잘 알던 사이라서 취직하게 되었다고... 기사를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낱같은 현역복귀를 꿈꾼다는 헛생각을 하고 있었는 듯 하다.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아빠가 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현역 복귀를 꿈꾼다는 발언을 하였다. 그럼 처음부터 주작질을 하지 마셨어야지 불쌍하니 길을 열어주자는 극소수의 동정론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절대 다수는 "한 집안의 가장이니 일하는 것은 당연하고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줄 수도 있지만, 두 번 다시 축구를 할 생각은 꿈도 꾸지마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반성을 위해서 차도 외제차가 아닌 국내차로 바꿨다고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축구선수로 나서겠다고 열심히 비정기 연습경기에서 나섰다고 한다. 2013년 1월 14일 전 국가대표 선수이자 부천 SK 출신인 이임생이 감독이 이끄는 싱가포르 홈유나이티드와 이광종 감독이 이끄는 U-20 대표팀의 연습경기(U-20 대표팀이 7-2 승)에서 뻔뻔스럽게도 홈 유나이티드 팀 게스트 선수로 나와 경기에 참여했다. 경기가 끝난 뒤 스포츠서울 지 인터뷰에서 "축구선수로 나와 활약하는 게 사죄하는 길이다." 라는 뻔뻔한 발언을 했다. 이에 기자가 "당신 FIFA에게도 영구제명당해서 축구선수로 길은 어렵지 않느냐? FIFA 영구제명은 축구선수 뿐만 아니라 지도자로도 박탈이다."는 말에 "몰랐다"(...?)는 말도 안 되는 답을 하고는, 기약 없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겠다는 태도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죄 모두 씻고 팬 앞에 설게요." 라며 그라운드에 복귀하겠다는 망상을 하고 있는 듯한 기사가 또 나왔다. 죄는 씻을 수 있습니다? 죄가 무슨 기름때인가? 죄를 씻겠다는 말 자체가 희한한 거다. 사람이라면 어떤 죄라도 평생 짊어지고 가는 것인데.. 더구나 승부조작같은 더러운 짓을 하고 이런 말을 한다는 건 이 인간이 반성을 안 하고 있다는 소리다.

# 2013년 4월 11일 한 기자감성팔이 식의 최성국인터뷰를 내놓아 네티즌들의 몰매를 맞았다.

여담이지만, 모 요식 브랜드안습 CF 대열에 합류한 적이 있다. 물론 승부조작 사실이 밝혀진 만큼 이 정도는 흑역사라고 하기도 부끄러울 지경이 됐다. 또한 전지 훈련 중 휴식시간 수영하는 중간 삼각 수영복을 걸치고 비치베드에 누워있는 사진에, 뭔 요상한 자국을 낸 합성사진이 떠다니기도 했다.

2013년 7월 11일 프로축구연맹은 보호관찰 기간에 봉사활동을 50% 이상 성실히 수행하고 뉘우치는 빛이 뚜렷한 선수들의 보호관찰 기간을 절반 이상 경감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최성국은 현역 복귀가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이에 축구팬들의 반응은, 도대체 무슨 마약하시길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어라? 엿맹이 승부조작 브로커짓을 하고 있네?

# 이에 이용수 해설위원은, 승부조작 선수들의 복귀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하여,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서 축구팬들을 충공깽에 빠뜨렸다.

승부조작 가담자들은, 대한축구협회가 선수 자격 박탈을 내린 상태이기 때문에 이 조치가 해제되어야만 복귀가 가능하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K리그 경기에서 K리그의 모든 구단의 서포터들이 연합하여 한 목소리로 한국프로축구연맹을 비판하는 걸개를 곳곳에 매다는 식으로 비난하면서 프로축구연맹도 당황해 하고 있다. 이뭐병도 아니고, 당황은 개뿔! 당연히 욕 쳐먹어야지? 이 상태로 복귀를 해봐야 온갖 비난과 야유가 나올 게 뻔할 뻔자이며, 골을 넣었어도 골키퍼한테 돈을 쳐먹였다는 비난도 당연히 나올 테니, 결국 대한축구협회에서 조기 사면은 그런거 없는 것으로 결정했고 이에 따라 최성국은 앞으로 최소 3년을 더 기다려야만 복귀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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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남양주시에 위치한 모 축구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많은 이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고 있다.

이 덕분에 한국프로축구연맹마재윤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당사자들을 철저히 지워낸 한국e스포츠협회비교당하면서 까이게 된다. 세상에! 살다살다 케스파가 칭찬받는 날이 오다니! 우리 케스파가 달라졌어요!

2013년 12월 27일, 음주운전을 한 사실이 알려졌다. # 아직도 정신 못 차린 듯. 여담이지만 최성국은 승부조작 이후 차도 국산차로 바꾸고 자숙중이라고 밝혔는데 # 막상 음주운전 당시 몰고 있던 자기 소유의 자동차미니 쿠페였다. 어째 하는 말마다 다 거짓말이다냐? #

2014년 5월부터는 신림동에서 '최성국의 Mr.꼬조'라는 간판을 내걸고 술집을 운영 중이었는데 망했다는 증언이 있다. 그리고 연예인야구연맹 챔피언스 투수로 뛰기도 한다. 박현준과 사이좋게 지내도 되겠네?

2015년 5월, 불법 도박에 대한 종편 방송 뉴스에 나와 "사죄한다는 마음으로 다시 그라운드에 와서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크고요. 다시 한 번 제2의 인생을 살고 싶고." 라는 철면피 짓을 시전했다. 게다가 여기서는 후배가 부탁한 걸 마지못해 했다고 또 한번 위에 서술한 대로 승부조작 브로커 짓을 한 걸 거론하지도 않고 억울하게 당했다고 자기변명이나 또 지껄였다. 헌데 이 항목에 이 기사 관련은 10달 넘도록 추가되지지도 않았을 정도

일단 여러 기행이나 사고에도 불구하고 5년의 보호관찰기간 자체는 유지되었기에 별 이변이 없다면 보호관찰기간이 끝나는 2016년 8월. 징계가 사실상 해제되었다.[8] 물론 그 죄질을 감안할 때 받아줄 곳이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최성국 본인은 5년이라도 어떻게든 채워서 선수로 복귀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으며, 승부조작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능할지 몰라도 위에 서술하듯이 피파 영구제명을 당한 터에 과연 그런 걸 각오하면서 받아줄지? 게다가 나이가 나이이다. 1983년 생인 최성국이 2016년 말에 운좋게 복귀한다 한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뛸 수 있을지가 아니라 몇 개월이나 더 뛸 수 있을지 모른다. 미로슬라프 클로제는 거의 40줄까지 뛰었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클로제가 세계적인 선수이자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내에서는 최고의 레전드라서 가능한 거고... 아무리 대한민국이라고 해도 최성국박지성같은 선수가 아니다. 그냥 포기하고 자신의 잘못을 반면교사 삼는 게 더 낫다. 복귀해도 워낙 인지도가 나빠서 주전으로 뛰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거니와 필드에서 뛸 수 있다 하더라도 뛸 수 있는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을 뿐더러 위 아 더 월드로 욕먹으면서 서포터들까지 분노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징계 기간이 끝나는 2016년 7월에 축구계에서는 여전히 복귀할 가능성이 없다고 밝혔다.[9]

이 항목의 선수 소개란에 어떤 반달한국프로축구계 한줄기의 빛이라고 왜곡을 적어둔 적이 있는데, 이 선수는 승부조작을 했다는 증거가 명백했고 심지어 단순가담자도 아닌 스스로가 다른 선수들에게 승부조작을 권한 브로커였다. 그 결과 프로축구계에서 영구제명을 당했음에도 스스로의 잘못을 반성하긴 커녕 후배가 한 것이라고 남의 탓을 하며 자기 책임이나 사죄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는 철면피일 뿐이다. 자기 혼자만 승부조작에 연루된 농구박모씨배구전모씨도 명백하게 영구제명이 되었는데 하물며 이런 짓을 남에게 권한 브로커 최성국은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2016년 3월에는 토토 분석 사이트에 출연하여 여전히 자기합리화와 변명을 곁들여 그라운드로 가고 싶다고 망상을 풀었다(...). 유튜브.

이후 조용히 잊혀지나 싶더니 스포플레이[10]에서 하필이면 세리에A 중계를 하게 되었다. 흑역사를 극복하고 다시 상승하고 있던 세리에의 팬들은 단체로 분노를 쏟아내는 중. 한 팬이 스포플레이에 승부조작범에게 해설을 시키냐며 항의했지만 가볍게 묵살당했다...

2016년 12월에는 강남역 인근에 고깃집을 열었다. 최성국은 평소 요식업에 관심이 많았고, 열심히 살기 위해 매장을 오픈하게 되었다고. 그런데 한편으로는 여전히 축구계로 복귀를 꿈꾸고 있다는 사족을 붙였다. 물론 지금도 복귀는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영원히 복귀는 안 된다. 조작 C급들도 안현식을 제외하면 결국 축구계를 다 떠났는데, B급도 아니고 A급을 받아줄 팀도 없다.
[1] 이때 같이 뛰었던 선수로 조한선이 있다.[2] 당시 멤버가 다름아닌 정조국, 박주영, 조원희, 이호, 오범석, 김영광 등이다. 그야말로 황금세대.[3] 이게 화제가 되어 버스 운전기사로 일하던 최성국의 아버지는 동료들에게 술 한잔 사라는 말을 지겹게 들었다고 한다.[4] 참고로 이번에는 반대로 오만으로 원정을 가서 경기를 한 한국 대표팀은 오만에게 1-3으로 패했고, 이는 오만 쇼크로 남게 되었다.[5] 하지만 이로 인해 당시 K리그 몸값 거품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표주자 중 한 명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6] 일부 팬들은 이를 양심선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수사망이 좁혀져 오던 상황에서 자진신고를 한 것인 만큼 이를 양심선언이라고 보긴 어렵다.[7] 승부조작으로 퇴출된 선수들의 이후를 봐도 자신이 몸담았던 곳에서 계속 남아 있는 경우는 없다. 게다가 최성국은 외국으로의 이적으로 승부조작에 관해서는 이미지가 더 떨어질래야 더 떨어질 수 없는 상황이다.[8] 징계 해제가 안 됐다면 별도로 보도가 됐을 것이나, 별 말이 없는 걸 보면 보호관찰대상자들은 모두 기한을 채운 뒤 징계가 해제된 것으로 보인다.[9] 복귀 가능성이 없다는 말이 완전영구제명으로 조정되어 그런 건지 아니면 죄질이 나빠서 징계가 풀려도 어차피 복귀 못할 선수라서 가능성이 없는가에 대한 설명이 없는데, A, B급들이 거진 대부분 복귀하는 데 실패했음을 감안하면 후자 쪽이 더 가망이 있어보인다.[10] 스포티비가 아니다. 혼동 주의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