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2 02:48:38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남자여자남자 U-23남자 U-20남자 U-17
파일:Korea Republic KFA 2018.png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Korea Republic U-23 National Football Team
정식명칭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FIFA 코드 KOR
협회 대한축구협회 (KFA)
연맹 아시아 축구 연맹 (AFC)
지역연맹 동아시아 축구 연맹 (EAFF)
감독 김학범
주장
최다출전자 김동진, 김두현 (43경기)
최다득점자 이동국 (20골)
홈구장 서울월드컵경기장
첫 국제경기 출전 VS 인도네시아 (5:0 승), 대한민국 마산 (1991년 3월 24일)
최다 점수 차 승리 VS 필리핀 (10:0 승), 대한민국 서울 (1991년 5월 18일)
VS 마카오 (10:0 승), 베트남 호치민 (2017년 7월 19일)
최다 점수 차 패배 VS 스웨덴 (0:12 패), 영국 런던 (1948년 8월 5일)[1]
마스코트 백호[2] (호랑이)
올림픽 출전 7회, 동메달 1회 (2012)
아시안 게임 출전 4회, 금메달 2회 (2014, 2018), 동메달 2회 (2002, 2010)
유니폼 컬러 어웨이 골키퍼
상의
하의
양말
1. 개요2. 역대 감독 및 기록
2.1. 현 대표팀 및 감독2.2. 역대 사령탑 명단
3. 주요 국제 대회별 기록4. 개인기록
4.1. 최다 득점 선수4.2. 최다 출전 선수


1. 개요

대한민국의 23세 이하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특히 와일드카드 3명이 포함될 수 있어 선수들의 병역특례를 목표로 자주 활용된다. 병역특례 덕분에 대한민국은 U-23 대표팀은 나이만 빼면 A대표팀에 버금갈 정도의 선수들을 발탁하며 경쟁력도 높다. 대한축구협회 입장에서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은 월드컵 바로 다음가는 중요도를 가진 경기이므로 와일드카드는 반드시 A대표팀 멤버 중에서도 베스트3를 신중히 고르고 골라서 뽑는다.

과거에는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의 연령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올림픽, 아시안 게임도 월드컵에 맞먹을 정도의 전력으로 임했다. 위의 병역특례 때문에 1992년 이전까지는 아시안컵보다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1992년 올림픽과 2002년 아시안 게임부터 23세로 연령 제한을 도입하여 더이상 최정예 선수로 대표팀을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23세 이하 대표팀은 전력의 핵심이 될 와일드카드 선수 선발에 더욱 신중하게 되었다.

특히 아시안 게임은 월드컵 직후에 열리는 대회로 월드컵 성적이 좋은 경우 월드컵 멤버 중에서 와일드카드를 뽑는데 아시안 게임의 성적에 따라 한국 축구의 열기가 뜨거워지느냐 식느냐의 갈림길에 서기도 한다. 2002년엔 금메달 실패로 월드컵 4강의 열기가 식었고, 2018년엔 금메달을 따내면서 독일을 꺾은 한국축구의 열기에 불을 더 지핀 전력이 있다. 대한축구협회가 U-23 팀을 결코 A대표팀이 아니라 해서 홀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림픽 축구에서는 축구협회 엠블럼을 부착할 수 없기 때문에 예전 유니폼처럼 태극기를 가슴에 부착한다.[3] 때에 따라서는 제조사 로고까지 가린다. 아시안 게임도 올림픽처럼 원칙상 축구협회 엠블럼을 부착할 수 없지만, 아시안 게임은 축구협회 엠블럼이 부착된 원래 유니폼을 입고 나간다.

2. 역대 감독 및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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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0px; color:#000000"
1990년 ~ 현재
1대
김삼락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2대
비쇼베츠
(비쇼베츠호)
파일:러시아 국기.png
3대
허정무
(허정무호)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4대
박항서
(박항서호)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5대
김호곤
(김호곤호)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6대
베어벡
(베어벡호)
파일:네덜란드 국기.png
7대
박성화
(박성화호)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8대
홍명보
(홍명보호)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9대
이광종
(이광종호)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0대 (대행)
최문식
(이광종호)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1대
신태용
(신태용호)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2대
김봉길
(김봉길호)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13대 (대행)
정정용
(정정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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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김학범
(김학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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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현 대표팀 및 감독

현 대표팀 김학범호
현 사령탑 김학범
계약기간 2020 도쿄 올림픽
참가대회 및 성적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금메달

2.2. 역대 사령탑 명단

감독 수석코치 경기 수 승률 비고
김삼락 29 20 6 3 68.96% [4]
아나톨리 비쇼베츠 39 17 13 9 43.58%
허정무 29 24 2 3 82.75%
김호곤 28 17 5 6 60.71% [5]
핌 베어벡 6 5 0 1 83.33% [6]
박성화 13 7 5 1 53.84%
홍명보 25 14 8 3 56% [7]
이광종 19 12 4 3 63.15% [8]
최문식 (대행) 3 2 1 0 66.66% [9]
신태용 26 16 8 2 61.53% [10]
정정용 (대행) 3 2 1 0 66.66%
김봉길 6 4 0 2 66.66% [11]
김학범 7 6 0 1 85.71%

3. 주요 국제 대회별 기록

3.1. 올림픽

세계 최초의 올림픽 본선 8회 연속 진출 국가
년도 결과 순위 경기 득점 실점
미국 로스앤젤레스 1984 예선 탈락
대한민국 서울 1988 조별리그 11 3 0 2 1 1 2
스페인 바르셀로나 1992 조별리그 11 3 0 3 0 2 2
미국 애틀랜타 1996 조별리그 11 3 1 1 1 2 2
호주 시드니 2000 조별리그 9 3 2 0 1 2 3
그리스 아테네 2004 8강 6 4 1 2 1 8 8
중국 베이징 2008 조별리그 10 3 1 1 1 2 4
영국 런던 2012 동메달 3 6 2 3 1 5 5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2016 8강 5 4 2 1 1 12 4
일본 도쿄 2020
프랑스 파리 2024
미국 로스앤젤레스 2028
합계 동메달 1회 7/7 26 9 11 6 33 28
  • 이전 모든 연령의 선수 참가에서 1992년 대회부터 23세 이하로 변경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첫 8강 진출 성과를 이뤄냈다. 당시 홈팀 그리스[12]]와 멕시코, 말리와 한 조가 되었는데 당시 그리스전에서 김치곤이 퇴장당했음에도 불구하고 2대 0 리드[13]까지 만들어냈으나 뒷심부족과 불운으로 2대 2로 경기를 종료한다. 그러나 다음 경기에서 김정우의 중거리슛 한 방으로 멕시코를 1대 0으로 잡아서 반전을 만들어냈다. 남은 경기는 그 유명한 말리와의 경기. 겉보기에는 최약체일것같지만 멕시코와 0대 0으로 비기고 우리를 고전시켰던 홈팀 그리스를 2대 0으로 잡아 같은 1승 1무를 거뒀음에도 골득실이 1점 앞서있었다. 그리고 말리는 은디아예의 해트트릭[14]으로 한국을 신나게 털며 3대 0까지 만들어놓았다. 그러나 당시 1, 2차전에서 득점을 올리지 못해 극대노해있던 조재진이 각성하여 1분 간격으로 방아찧기 헤딩슛을 두 번 연속 성공시켰다.[15] 순식간에 2대 3으로 따라붙고, 3분 뒤 최성국이 왼발로 센터링한 공을 아다마 탐부라가 그대로 자기 편 골대에 헤딩으로 꽂으면서(...) 스코어는 동점이 되었다.[16] 그렇게 경기는 어찌어찌 종료되어 한국은 1승 2무 조 2위로 8강에 진출한다. 비록 8강전에서 파라과이에게 2대 3으로 패하긴 했지만[17] 그리스전을 수적 열세의 상태에서 리드하고, 멕시코전은 아예 이겼으며, 말리전은 3점 차이를 따라붙는 등 2002 월드컵 이후로 강해진 한국 대표팀의 전력을 여실히 보여준 대회였다. 심지어는 한국이 패했던 파라과이마저 조별리그에서는 이탈리아를 꺾고 올라왔고 한국을 꺾은 후 결승까지 올라간 강팀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파라과이전도 꽤나 선전한 경기였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성적과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대회.

그 후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기어이 동메달을 따냈다. 동메달이지만 유럽 팀중에 유일하게 8강에 올라온 개최국 영국[18][19]을 꺾고 4강에 진출하였다. 이 올림픽은 유럽 팀이 아무도 4강에 올라가지 못한 몇 안되는 대회였으며, 동메달 결정전이 한일전이었을 정도로 일본의 선전 또한 만만치 않았던 대회였다.[20] 결국 그 일본을 2대 0으로 완파하고 동메달을 따서 선수들은 병역혜택까지 받는 해피엔딩으로 마친 대회였다.

2016년 1월 27일 카타르와의 AFC U-23 챔피언십 4강전에서 승리함으로써[21] 2016년 리우 올림픽 진출이 확정됐다. 이로써 대한민국 올림픽 축구 대표팀은 1988 서울 올림픽부터 올림픽 축구 본선에 8회 연속으로 진출한 세계 최초의 팀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하게 되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본선에서는 첫 경기부터 약체 피지를 상대로 8대 0의 대승을 거두며[22] 올림픽 대표팀 역사상 최다점수차 본선무대 승리 기록을 갱신했고[23] 두 번째 조별리그 경기인 독일전서는 3대 3 무승부를 일궈내며[24] 선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점자판기 피지의 존재 때문에 마지막 멕시코전서 패배하면 8강에 진출하지 못할 위기였으나[25] 다행스럽게 권창훈의 결승골로 1대 0으로 이기며 2승 1무 조 1위라는 역대 최고의 조별리그 성적으로 8강 진출에 성공한다.[26] 비록 8강 온두라스전에서 호르헤 핀투[27]감독의 전략에 말려들어 0대 1로 패하긴 했지만한국판 미네이랑의 비극 신태용호의 색깔은 이 대회에서도 빛을 발했다.

3.2. 아시안 게임

본 대회 최다 우승팀
년도 결과 순위 경기 득점 실점
대한민국 부산 2002 동메달 3 6 5 1 0 17 2
카타르 도하 2006 4위 4 6 4 0 2 9 2
중국 광저우 2010 동메달 3 7 5 0 2 18 5
대한민국 인천 2014 금메달 1 7 7 0 0 13 0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 2018 금메달17601 19 7
중국 항저우 2022 미정
일본 아이치/나고야 2026 미정
합계 금메달 2회 5/5 33 27 1 5 76 16
  • 이전 모든 연령의 선수 참가에서 2002년 대회부터 23세 이하로 변경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의 아쉬운 동메달.

특히 이 때는 월드컵이 끝난 지 한 달 지난 뒤에 있던 아시안 게임이었고, 심지어 대한민국에서 열린 경기였기에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경기였다. 이 때문에 이동국은 결국 상무에서 군복무를 하게 되며 기껏 월드컵 4강으로 달아올랐던 축구 열기 자체가 언제 그랬냐는 듯 확 꺼져버렸다.


U-23 대표팀의 최초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이후 28년만에 얻은 아시안 게임 금메달이었다. 심지어 1986년 당시에는 A대표팀이었으므로 현재의 U-23 대표팀으로서는 최초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인 셈.



U-23 대표팀의 두 번째이자 2연속 아시안 게임 금메달

특히 이번에는 아시아 최고의 축구선수로 불리는 손흥민이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는 마지막 대회였기에 전세계적으로 많은 관심을 보였던 경기였는데, 2연속 금메달을 이룩했을 뿐만 아니라[28] 이 때 황의조라는 네임드급 스트라이커가 새롭게 발굴되면서 그야말로 전설이 된 대회가 되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인해 축구 대표팀의 인기가 2002년 이후 16년만에 급상승하는 데 공헌하였다.

3.3. AFC U-23 챔피언십

년도 결과 순위 경기 득점 실점
오만 2013 4강 4위 6 3 2 1 8 3
카타르 2016 준우승 2위 6 4 1 1 14 6
중국 2018 4강 4위 6 3 1 2 8 9
합계 준우승(1회) 3/3 12 7 3 2 22 9

4. 개인기록

4.1. 최다 득점 선수

순위 이름 활동기간 경기수 득점
1 이동국 1999-2002 29 20
2 최태욱 2000-2004 39 14
2 황의조 2012-2018 22 14
4 박주영 2006-2012 30 12
4 서정원 1991-1992 23 12
4 최용수 1994-1996 23 12
7 이우영 1994-1996 30 11
7 조재진 2003-2004 28 11
7 이천수 1999-2006 27 11
10 설기현 1999-2000 27 10
  • 와일드카드 선수 기록 포함. 출처

4.2. 최다 출전 선수

순위 이름 활동기간 경기수 득점
1 김동진 2002-2008 43 6
1 김두현 2002-2006 43 3
3 김정우 2003-2010 40 3
3 최성국 2001-2006 40 3
5 이기형 1993-1996 39 7
5 최태욱 2000-2004 39 14
7 최성용 1994-1996 37 0
8 박동혁 1999-2002 32 5
9 서동명 1994-1996 31 0
10 박주영 2006-2012 30 12
10 이우영 1994-1996 30 11
  • 와일드카드 선수 기록 포함. 출처


[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48년 런던 올림픽에서 낸 성적이었다.[2] 처음에 엠블렘이 공개되었을 때, 호랑이가 너무 순해 보인다는 둥, 고양이 같다는 둥, 해체된 해태 타이거즈의 엠블렘의 호랑이가 간지 넘치니 훔쳐오자(...)는 둥 시끌벅적했었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을 거치며 유야무야 정착되었다.#[3] 실제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경기를 다시 보면 대한민국 대표팀의 유니폼에 부착된 축구협회 엠블럼을 가리고 출전했다. 이전에는 IOC에서 축구 유니폼의 엠블럼 노출에 강한 제재를 가하지 않았지만, 베이징 올림픽부터는 엄격하게 관리했다. 관련 기사[4] 1991년 1월부터 1992년 2월까지 데트마어 크라머 총감독직 (기술고문) 수행하였으며 그 후 올림픽 본선까지는 김삼락이 감독 단독으로 지휘하였다.[5] 2004 아테네 올림픽 8강 진출[6] 국가대표팀 감독과 겸임[7]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획득[8]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9] 이광종 감독이 급성 백혈병으로 인해 감독직 수행이 어려워지자 감독 대행을 맡았다.[10] 이광종 감독의 후임으로, 국가대표팀 코치 겸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2016 리우 올림픽 8강 진출.[11] 2018 AFC U-23 챔피언십에서의 성적 부진으로 인해 경질.[12] 무려 두 달 전에 유로 2004에서 우승한 국가였다![13] 전반 막판 김동진이 선취점을 넣어 리드를 잡은 뒤 후반전에 그리스의 빈트라가 공을 걷어낸다는 것이 자기 골대로 걷어내버려 자책골까지 헌납했다. 빈트라는 6년 뒤 월드컵 무대에서 박지성에게도 어시스트를 했다.[14] 선제골은 오프사이드 + 핸드볼 반칙 논란이 있는 골이었지만 두 번째 골은 골대맞고 나온 프리킥을 문전에서 받아내 침착하게 넣은 골 이었으며 세 번째 골은 한국 수비진이 잘못 걷어낸 공을 그대로 낚아채 넣은 골이었다.[15] 김동진의 왼발 크로스 후 조재진이 헤딩골을 꽂았는데 두 번 다 선수들의 위치나 공의 궤적이 너무도 똑같아서 일부 해설진은 두 번째 골을 첫번째 골 리플레이로 잘못 알고(...) 중계를 했을 정도였다.[16] 이 선수는 1985년생으로 당시 말리에서도 꽤나 신예 선수였다. 같은 시간대에 멕시코가 그리스를 1점 차로 리드하고있어서 만일 한국이 말리에게 졌다면 멕시코가 같은 승점과 같은 골득실 하에 다득점에서 한국을 누르고 8강에 진출해버리는 절체절명의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 자책골로 멕시코전과 그리스전을 생각할 필요도 없이 8강에 진출할 길이 열렸으니 그야말로 국내 축구팬들은 난리가 났다. 탐부라 선수의 국내 주민등록증 짤탐부라가 참여하는 X맨, 그리고 탐부라 : 후반전 시작되고 골대 바뀐 줄 몰랐다는 식의 온갖 패러디와 드립이 쏟아져 나왔다. 한편 경기 이후 탐부라 본인은 당연히 자국 팬들로부터 욕을 먹고 심지어는 가족들한테마저 의절당할뻔했다고(...).[17] 역시 세 골을 먼저 내주고 따라가는 경기였다. 말리전에서 조재진이 캐리했다면 파라과이전에는 이천수가 있었다. 중거리슛으로 만회골을 넣은 다음 페널티킥까지 연달아 성공시키며 한 점 차이로 파라과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18] 1960년까지 올림픽 축구에 참가하였으나, 축구협회간의 불화로 인해 1964년 대회부터는 불참하게 된다. 그러나 2012년 런던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영국 단일팀으로 52년 만에 출전하게 되었다.[19] 당초 영연방 4개국 모두 출전하려고 했으나 선수 선발 과정에서 갈등을 빚어 결국 잉글랜드와 웨일스로만 구성되었다.[20] 일본은 조별리그에서 스페인을 이겨 스페인을 무득점 광탈의 나락으로 빠뜨렸으며, 8강전에서는 이집트를 3대 0으로 이겨 4강 멕시코전 이전까지 단 한 개의 실점도 허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멕시코전 패배도 불운이며, 동메달 결정전에서 당연히 한국이 패할 거라고 예상하는 축구팬들도 많았다.[21] 비록 결승전에서 일본에게 도하 참사를 당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태용호의 공격적인 색깔이 유감없이 드러났던 대회로 평가받는다.[22] 전반에는 겨우 선제골을 넣어 1대 0으로 앞서는데 그쳤지만, 후반 17분부터 약 40초 간격으로 세 골을 몰아넣으며 공격의 물꼬를 텄다. 그 후 네 골을 더 넣으며 8대 0 대승 완성.[23] 종전의 기록은 2012년 한일전의 2점차 기록.[24] 황희찬의 선제골을 넣으면 독일의 세르쥬 나브리가 동점골을 넣는 등 난타전을 벌였으며 세르쥬 나브리가 후반 추가시간에 프리킥 동점골을 넣기 전까지 한국 측에서 3대 2로 앞서고 있었다! 카잔 대첩의 전주곡[25] 2012년 당시 금메달을 땄던 팀이 멕시코 팀이었다. 참고로 멕시코팀은 첫 경기를 한국과 했는데, 0대 0으로 비겼다. 멕시코가 유일하게 이기지 못했던 한국[26] 이 경기로 인해 올림픽 대표팀에 한정하여 멕시코는 공한증을 가지고 있음이 증명되었다.[27] 2년 전의 월드컵에서 코스타리카 대표팀을 8강에 올려놓은 감독이었다. 같이 죽음의 조에 속해있던 우루과이, 이탈리아를 연속으로 쳐바르고 잉글랜드까지 조 최하위로 광탈시킨 것은 덤[28] 아시안 게임은 금메달을 획득하여야만 병역 특례가 주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