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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승빈 · 2 장현수 VC · 3 강동현 · 4 연제민 C 5 연응빈 · 6 박규민 · 7 류승우 VC · 8 정현우 · 9 마촙 10 리마 · 11 정건욱 · 13 김건오 · 15 오브라도비치 · 16 박채준 · 17 류승완 · 19 이재환 20 송범 · 21 김도담 · 22 진호진 · 23 박시화 25 조지훈 · 26 임지민 · 28 김정현 · 29 김준형 30 이준한 · 31 김민재 · 32 김승현 · 42 최단 · 44 하츠젤 · 55 이효준 · 66 김백민 · 77 말론 · 87 도승우 · 92 김인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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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color=#ecbd81> ※본 문서는 간소화한 것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타 구단으로 임대한 선수는 제외했습니다. |
| <colbgcolor=#00A885><colcolor=#00263d> 안산 그리너스 FC 감독 | ||
| Ansan Greeners Football Club | ||
| <nopad> | ||
| 이름 | 최문식 崔文植 | Choi Moon-sik | |
| 출생 | 1971년 1월 6일 ([age(1971-01-06)]세) | |
| 서울특별시 | ||
| 신체 | 키 172cm / 체중 70kg | |
| 주발 | 오른발 | |
| 국적 | | |
| 직업 | 축구 선수 (공격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행정가 | |
| 소속 | <colbgcolor=#00A885><colcolor=#00263d> 선수 | 포항제철-포항 아톰즈/포항 스틸러스 (1989~1998) → 상무 축구단 (1996~1997 / 군 복무) 전남 드래곤즈 (1999~2000) 오이타 트리니타 (2001)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1) 부천 SK (2002) |
| 감독 | 포항제철중학교 (2007~2008 / 코치) 포항 스틸러스 (2009~2010 / 2군 코치) 전남 드래곤즈 (2011 / 수석 코치) 대한민국 U-17 대표팀 (2012) 대한민국 U-20 대표팀 (2012~2013 / 수석 코치) 대한민국 U-23 대표팀 (2013~2015 / 수석 코치) 대한민국 U-23 대표팀 (2015 / 감독 대행) 대전 시티즌 (2015~2016) 연변 FC (2017 / 수석 코치) 클란탄 FC (2023) 안산 그리너스 FC (2025~ ) | |
| 행정 | 안산 그리너스 FC (2025 / 테크니컬 디렉터) | |
| 기타 | 한국프로축구연맹 (2023~2024 / TSG 위원) | |
| 국가대표 | 37경기 9골 (대한민국 / 1992~1999) | |
| 서명 | ||
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현재 안산 그리너스 FC의 감독으로 재직 중이다.선수 시절 한국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명성을 날렸고, 선수 인생을 은퇴한 후 코치와 유소년 지도자 경력을 착실히 쌓았고, 2015년 대전 시티즌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프로 감독으로 데뷔하게 되었는데 자신의 선수 시절 장점을 앞세운 대전식 '티키타카'인 '대전셀로나'를 구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신인 감독으로서의 경험과 역량 부족 등의 한계를 넘지 못하며 결과는 참담한 실패로 끝나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는 속설을 몸소 보여 주었다.
2. 선수 경력
2.1. 포항 스틸러스
1986년 동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30회)에 입학하여 3년간 축구부에서 활동했고 특히 1988년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대통령금배 대회에서 7골로 동대부고의 우승에 기여하며 대회 MVP와 득점왕을 휩쓸며 고교 최고의 선수로 발돋움했고, 효창의 디에고 마라도나로 불렸다.
그리고 1989년 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포항제철 아톰즈에 지명을 받으며 K리그 1호 고졸 프로 직행 축구선수가 됐다. 심지어 빠른 71년생이었기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았다.
입단 첫해부터 준수한 활약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개막전에서 바로 데뷔골을 터트렸고 뒤이어 일화 천마 축구단[1]과의 경기에서 경기 종료 10초 전 극적인 바이시클 킥을 작렬해 동점골을 기록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당시 차희철 이후 역대 최연소 득점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첫 시즌인 1989년에 17경기 6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거듭났고, 팬들로부터 믿을맨으로 불렸다.
이후 리그와 컵 대회의 대부분의 경기를 꾸준히 소화했고 1992년까지 3년간 한 시즌에 5~6득점을 기록하는 준수한 득점력을 보여줬고 1994년에는 6득점 6어시스트를 기록해 리그 최상위급의 공미로 거듭났다. 그의 이러한 활약 덕분에, 포항은 1992년 K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1996년에도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다만 1995년엔 부상이 잦아 6경기 출전에 그쳤고 1996년과 1997년엔 군대에 입대해 상무 축구단에서 활동하며 1996년 9월 23일 추계실업축구연맹전 결승전에서 전반 2분에 선제골을 넣으며 상주가 한국전력을 2:1로 격파하는 데 기여해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1998년 포항에 복귀해 36경기 6골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리그 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2.2. 전남 드래곤즈
포항을 떠나 전남 드래곤즈로 전격 이적했다. 포항 스틸러스에서 1989년부터 1998년까지 9년간 활동하며 160경기 33골 1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전남에서도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김도근, 노상래, 김종현, 임관식 등과 함께 활약한 전남에서의 첫 번째 홈 경기에서 데뷔골을 터트렸고 2000시즌까지 2년 동안 65경기에 출전해 11골 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다만 전남의 전력이 약한 편이라서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고 2000 시즌 대한화재컵에서 결승에 진출했으나 부천에게 패해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2000 시즌 리그 7위라는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을 찍은 전남에서의 생활에 회의를 느껴 2001년 일본의 오이타 트리니타로 이적했다.
2.3. 오이타 트리니타
2001년 당시 J2리그에 속해 있던 오이타 트리니타와 협상 끝에 연봉 4000만 엔을 받는 조건에 합의하고 일본 축구 리그로 전격 이적했다. 9경기에서 2골을 넣었지만 그를 영입했던 감독이 시즌 도중 교체되고 새로 부임한 감독은 그와 맞지 않는 전술을 썼기에 그를 벤치에 앉혀놓고 기용하지 않았다. 더 많은 출전 시간을 원해 오이타 구단과 갈등을 빛다가 결국 7개월 만에 방출되었다.
2.4. 말년
오이타에서 방출된 후인 2001년 6월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그를 엔트리에 포함시켰던 김호 감독의 부름을 받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했다. 그러나 12경기에 출전해 0골 1어시스트라는 실망스런 성적을 기록했다.결국 2002년 쫓겨나듯 팀을 떠나 부천 SK와 FA 계약을 체결하고 27경기 3골 1어시스트를 기록한 후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2.5. 국가대표 경력
포항 스틸러스에서 데뷔하자마자 화려한 활약을 선보였기에 자연히 국가대표로 차출되어 1994년 미국 월드컵과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하지만 주로 서브 자원으로 활용되었으며, 월드컵에서는 단 한 차례도 기용되지 못했는데, 그 까닭은 후배 윤정환과 동일했다. 볼 다루는 기술은 당시 한국에서 최상급이었지만, 체격이 왜소하고 스태미너가 떨어지며 압박에 취약했기 때문이다. 유럽에 비하면 걸음마도 못 땐 수준이었던 90년대 한국 축구의 압박으로도 굉장히 힘들게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1999년까지 37경기에 출전에 그쳤다.
2.6. 플레이 스타일
고종수, 윤정환 등과 함께 90년대 대한민국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한 명으로서 레전드급 활약을 선보였으며, 90년대 한국 선수가 2010년대 유럽선수들에 뒤지지 않는 기술적 완성도와 볼 다루는 감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남미나 유럽 최고의 테크니션들이나 보여줄 법한 테크닉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엄청난 탈압박 능력도 갖춘 당시로서는 드문 선수였다.특히 한국에서 사포(힐 리프트)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
그러나 체격이 왜소하고 피지컬이 약해 압박에 취약한 약점이 뚜렷해 국가대표로는 별로 중용받지 못했는데, 기술은 발군이나, 압박을 견뎌낼 피지컬을 갖지 못해[2] 중용받지 못한 테크니션 계보는 최문식에서 시작해 윤정환과 이관우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들도 상기한 문제 때문에 별로 기용받지 못하고 활동량과 피지컬 문제를 어느 정도 상쇄시킬 오프더볼까지 장착한 황인범까지 가서야 테크니션이 대표팀에 중용된다.
3.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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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식 감독은 과거 자신이 뛰어난 테크니컬 선수였던 만큼 맨체스터 시티,FC 바르셀로나식의 티키타카를 선호한다 그러나 대전 시티즌 시절에는 선수단에 한계와 자신이 신인감독으로서 넘어설수 없는 역량을 보여줘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5. 논란 및 사건 사고
5.1. 클란탄 FC 구단과의 갈등
클란탄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최문식의 에이전트는 클란탄의 노리잠 투키만 클란탄 구단주가 부당하게 라커룸에 개입하는가 하면 임금 체불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며 폭로했다.클란탄은 7라운드가 진행된 2023 말레이시아 리그에서 1승 1무 5패로 14개 팀 중 13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안 좋은 성적이지만 아직 시즌 일정이 많이 남아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다소 성급한 경질이었으며, 중위권까지 두 경기 정도 격차가 있는 터라 흐름을 타면 언제든 반전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구단은 최문식을 경질하고 레잘 잠베리 야야 감독 대행 체제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최문식 노리잠 구단주로부터 크게 모욕을 당한 것으로 보이는데, 말레이시아 진출에 기여한 정명호 에이전트는 <말레이 메트로>와 인터뷰에서 "노리잠 구단주가 진실을 말하지 않고 팬들에게 거짓말을 했다"라며 "모욕적 처사와 관련해 FIFA 제소를 준비하고 있다"라고 폭로했다.
<말레이 메트로>에 의하면, 정명호 에이전트는 "구단주는 항상 선수들에게 욕을 했다. 라커룸에서 늘 코치나 선수들과 싸우고 있다. 선수들이 목격자"라며 "선수들에게 최 감독에 대해 물으면 나와 같은 말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매 라운드마다 구단주가 감독의 선수 선발 관련 회의에 참석했다. 지난주에는 감독이 선수를 선발하지도 못했다. 선수들은 두 달 동안 급여를 받지 못해 훈련을 거부했다. 구단주가 선수들에게 훈련하라고 협박하더라. 하지만 급여가 지급되지 않았다"라고 팀 상황을 설명했다.
또한 "구단주가 늘 모자와 물통을 집어던졌다. 매번 최 감독에게 '클란탄이 지면 한국으로 돌아가라'라고 말했다"라고도 말했다.
정명호 에이전트는 "클란탄 팬들에게 고마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팀에 대해 계속 공개하려 한다. 구단주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다. 당신 말이 항상 옳은 건 아니다. 당신 팀에 심각한 일이 생기기 전에 우리 감독에게 사과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말레이 메트로>는 노리잠 클란탄 구단주가 정명호 에이전트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고 보도했다.
6. 여담
- 평소 짧은 머리를 고집하는 것에 비해 2000년대 초반에는 긴 머리를 유지하기도 했다.
- 축구 감독으로서 최상위 자격증인 P급 라이선스를 취득한 사람이다.
자격증이 중요한 게 아니다.[3]
- 피파 98 시절, 대한민국 대표팀 유니폼 색깔조차 틀리게 나오던 게임인데 최문식이 공 잡으면 "문-쉭" 하면서 이름을 불러줬다. 당시 주전급이던 홍명보 황선홍 서정원 고정운도 이름을 불러주진 않았는데 의외로 파격적인 대우. 근데 정작 98 월드컵 명단엔 최문식이 없었다.
7. 관련 문서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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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팀 | ||||
| 17대 | 9대(대행) | |||
| 클럽 | ||||
| 9대 | 8대 | |||
[1] 지금의 성남 FC의 전신[2] 당장 위 움짤에서도 기껏 사포를 성공해놓고 상대에게 힘으로 밀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3] 급이 비슷하다고 다 같은 자격증이 아니다. 축구선진국과 한국의 교육수준이 차이가 많이 나서 여건 되면 유럽가서 공부하는 게 낫다. 최문식의 후임 감독이었던 이영익 역시 P급 라이선스를 취득한 사람인 것을 보면, 정말 자격증 취득 여부가 다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분류
- 1971년 출생
- 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동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출신
- 대한민국의 남자 축구 선수
- 미드필더
- 1989년 데뷔
- 2002년 은퇴
- 포항 스틸러스/은퇴, 이적
- 상무 축구단/전역
- 전남 드래곤즈/은퇴, 이적
- 오이타 트리니타/은퇴, 이적
- 수원 삼성 블루윙즈/은퇴, 이적
- 제주 유나이티드 FC/은퇴, 이적
- 대한민국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94 FIFA 월드컵 미국 참가 선수
- 대한민국의 남자 축구 코치
- 대한민국의 남자 축구 감독
-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감독 대행/축구
- 대전 하나 시티즌/역대 감독
- 클란탄 FC/역대 감독
- 안산 그리너스 FC/역대 감독
- 축구 행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