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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뉴델리 | 1954 마닐라 | 1958 도쿄 | 1962 자카르타 | 1966 방콕 | |
<rowcolor=#373a3c> 6회 | 7회 | 8회 | 9회 | 10회 | |
1970 방콕 | 1974 테헤란 | 1978 방콕 | 1982 뉴델리 | 1986 서울 | |
<rowcolor=#373a3c> 11회 | 12회 | 13회 | 14회 | 15회 | |
1990 베이징 | 1994 히로시마 | 1998 방콕 | 2002 부산 | 2006 도하 | |
<rowcolor=#373a3c> 16회 | 17회 | 18회 | 19회 | 20회 | |
2010 광저우 | 2014 인천 | 2018 자카르타·팔렘방 | 2022 항저우(연기) | 2026 아이치·나고야 | |
<rowcolor=#373a3c> 21회 | 22회 | 23회 | 24회 | 25회 | |
2030 도하 | 2034 리야드 | 2038 미정 | 2042 미정 | 2046 미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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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뉴델리 아시안 게임 | ||
제9회 아시안 게임 1982 뉴델리 아시안 게임 IX Asian Games™ New Delhi 1982 | ||
대회 기간 | 1982년 11월 19일 ~ 1982년 12월 4일 | |
개최국 | [[인도| ]][[틀:국기| ]][[틀:국기| ]] / 뉴델리 | |
참가국 | 33개국 | |
참가 인원 | 3,411명 | |
경기 종목 | 21개 종목 - 196개 세부 종목 | |
개회 선언 | 자일 싱 인도 대통령[1] | |
성화점화 | P. T. 우샤[2] | |
개·폐회식장 | 자와할랄 네루 스타디움 |
[clearfix]
1. 개요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제 9회 하계 아시안 게임.마스코트는 코끼리 아뿌이다. |
2. 메달 순위
1982 뉴델리 아시안 게임 메달 집계 최종 집계 | |||||
<rowcolor=#e51625,#ffffff> 순위 | 국가 | 메달 | 합계 | ||
금 | 은 | 동 | |||
1 | [[중국|]] 중국 | 61 | 51 | 41 | 153 |
2 | [[일본|]] 일본 | 57 | 52 | 44 | 153 |
3 | [[대한민국|]] 대한민국 | 28 | 28 | 37 | 93 |
4 | [[북한|]] 북한 | 17 | 19 | 20 | 56 |
5 | [[인도|]] 인도 | 13 | 19 | 25 | 57 |
6 |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 4 | 4 | 7 | 15 |
7 | [[이란|]] 이란 | 4 | 4 | 4 | 12 |
8 | [[파키스탄|]] 파키스탄 | 3 | 3 | 5 | 11 |
9 | [[몽골|]] 몽골 | 3 | 3 | 1 | 7 |
10 | [[필리핀|]] 필리핀 | 2 | 3 | 9 | 14 |
11 | [[이라크|]] 이라크 | 2 | 3 | 4 | 9 |
12 | [[태국|]] 태국 | 1 | 5 | 4 | 10 |
13 | [[쿠웨이트|]] 쿠웨이트 | 1 | 3 | 3 | 7 |
14 | [[시리아|]] 시리아 | 1 | 1 | 1 | 3 |
15 |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 | 1 | 0 | 3 | 4 |
16 | [[싱가포르|]] 싱가포르 | 1 | 0 | 2 | 3 |
17 | [[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스탄 | 0 | 1 | 0 | 1 |
[[레바논|]] 레바논 | 0 | 1 | 0 | 1 | |
19 | [[바레인|]] 바레인 | 0 | 0 | 1 | 1 |
[[영국령 홍콩|]] 영국령 홍콩 | 0 | 0 | 1 | 1 | |
[[카타르|]] 카타르 | 0 | 0 | 1 | 1 | |
[[사우디아라비아|]] 사우디아라비아 | 0 | 0 | 1 | 1 | |
[[베트남|]] 베트남 | 0 | 0 | 1 | 1 |
3. 이모저모
- 일본의 9연속 종합 1위 달성이 좌절되었다. 중국이 1974년 첫 참가 이래로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2위로 밀어내고 아시안 게임에서 종합 1위를 차지하였고 최근에 개최한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까지 꾸준히 1위를 유지하고 있다.
- 주최국인 인도의 경기장 및 선수촌 부실공사와 공사지연으로 무지 욕을 먹었다.
- 북한의 서길산 선수는 사격 부문 개인전에서 금메달 4개, 단체전에서 금메달 3개를 획득하여 7관왕에 올랐다. 7관왕은 아시안 게임 사상 단일 대회 최다관왕이다.
- 북한 축구 대표팀은 쿠웨이트와의 준결승전에서 2:3으로 패한 직후 편파 판정으로 졌다며 주심을 폭행한 사건으로 인해 3, 4위전 출전이 금지되었고, 이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이 자동으로 3위(동메달)에 오르게 되었다. 한편 아시아 축구 연맹(AFC) 집행위원회는 북한에 2년간 국제 축구 대회 출전을 금지하는 강력한 추가 제재를 가하게 된다. 그리고 이 덕을 제대로 본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 아시아 청소년 대회에서 광탈했던 대한민국은 북한이 실격되자 북한의 쿼터를 받아 결선 라운드에 진출 후 우승,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 진출해서 4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한다. 이 북한의 쿠웨이트전 주심폭행 사건은 당시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과거 출판된 반공동화 및 반공교재에서 '북한의 스포츠맨십은 개같다'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언급된 사례중 하나이기도 하다.[3][4]
- 대한민국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은 4강전에서 226cm의 장신 센터 오카야마 야스다카가 있는 일본을 91:90으로 승리하더니, 결승에서 중국을 85:84로 1점차 승리를 거두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이 중국을 제친 것은 1974년 대회 이후 두 번째였다. 관련 기사 이 때 우승 이후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은 아시안 게임에서 번번히 중국 앞에서 좌절했다가 20년이 지난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극적인 우승을 차지한다.
- 대만은 중국의 압박으로 참가하지 못했다.
- 대한민국의 여자 테니스 선수인 설민경은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 대회 이후 32년 뒤 설민경의 아들인 야구선수 황재균(당시 롯데 자이언츠 소속)이 대만과의 야구 결승전에서 8회초에 쐐기타를 날리며 금메달을 차지해 대한민국 스포츠 사상 최초의 모자(母子)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가 된다.
- 대한민국은 여자 배드민턴 복식에서 강행숙-황선애 조가 금메달을 획득하며 배드민턴 종목에 있어서 최초의 금메달을 얻었다.
[1] 인도의 제7대 대통령으로 당시 대통령에 취임 5개월차였다. 1994년 12월 25일에 사망했다.[2] 당시 인도의 육상선수이며 이 아시안 게임에선 은메달 2개를 땄다. 현재는 인도올림픽협회 회장이다.[3] 이외에도 북한 vs 중국의 A매치에서 갑자기 북한선수가 "중공놈의 새끼들 때려죽여라"라면서까지 중국선수를 폭행한 사건도 언급되고 있는데, 여러 정황상 사실무근일 가능성이 높다. 일단 북한이 국부천대 이후의 중화민국을 국가로 인정한 적은 전혀 없으니 중국 대륙을 중공이라 칭할리도 없다. 또 다른 이야기지만 한 반공 서적에서 북한의 여자 체조 선수가 몸을 유연하게 해준다는 주사를 맞았다가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도핑에 걸려 참가하지 못했고 그에 따라 생명도 위험하다면서 실명까지 거론했는데, 이 선수는 모스크바 올림픽에 멀쩡히 참가했고(메달은 못 땄지만), 본 대회에서는 금메달을 땄다. 이 책은 이 대회 이후에 나왔다는 것이 또 함정. 원래 당시 반공 서적에서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쓴 것도 꽤 있다.[4] 물론 지금도 북한 스포츠맨쉽이 매너가 개같은 건 사실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일본과의 8강전에서 보여준 비매너 플레이와, 경기 후 대한민국 선수와의 악수를 무시하거나 기자회견을 거부하는 모습을 봐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