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30 10:58:40

김영광(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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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시즌 스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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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영광 · 2 서경주 · 3 박성우 · 4 변준범 · 5 안지호 · 6 마스다 · 7 이현성 · 8 허범산 · 9 김동섭 · 10 두아르테
11 전석훈 · 13 유정완 · 14 김민균 · 15 이경렬 · 16 한지륜 · 17 김경준 · 18 원기종 · 19 최한솔 · 20 이병욱 · 21 윤성열
22 윤상호 · 23 권기표 · 24 이태호 · 25 강정묵 · 27 김도윤 · 28 이민규 · 29 김민서 · 30 알렉스 · 31 김영호
32 고준영 · 41 서동현 · 50 쿠티뉴 · 55 김동철 · 61 최종환 · 65 김호준 · 77 김태현 · 99 이상헌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우성용 ·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황희훈 ·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정현규 ·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류병훈 ·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구대령
* 이 틀은 간략화된 버전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 서울 이랜드 스쿼드에 변동이 생기면 두 틀 모두 수정해주시길 바랍니다.
* 타 팀으로 임대 간 선수는 제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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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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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2대 3대 4대 5대
김재성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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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광
(2017~2018)
안지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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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랜드 FC No. 1
김영광 (金永光 / Kim Young‑Kwang)
생년월일 1983년 6월 28일 ([age(1983-06-28)]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신지 전라남도 고흥군
포지션 골키퍼
신체 조건 182cm, 85kg[1][2]
프로입단 2002년 전남 드래곤즈
소속팀 전남 드래곤즈 (2002~2006)
울산 현대 (2007~2014)
경남 FC (2014) (임대)
서울 이랜드 FC (2015~ )
국가대표 17경기 11실점
2011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동국
FW
데얀
MF
염기훈
MF
윤빛가람
MF
하대성
MF
에닝요
DF
박원재
DF
곽태휘
DF
조성환
DF
최철순
GK
김영광
2018 K리그2 베스트 일레븐
FW
나상호
FW
키쭈
MF
호물로
MF
이명주
MF
황인범
MF
안현범
DF
서보민
DF
이한샘
DF
윤영선
DF
김문환
GK
김영광

1. 소개2. 선수 경력
2.1. 전남 드래곤즈2.2. 울산 현대2.3. 경남 FC2.4. 서울 이랜드
3. 우승4. 논란5. 기타

1. 소개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대표적인 별명은 리틀 칸과 이름에서 유래된 글로리 킴.[3]

최은성, 김용대와 함께 실력은 있지만 국대에서 빛나지 못한 선수.

굉장히 안타까운 부분인데, 이미 청소년 대표 시절부터 엄청난 기량을 보여주며 높은 잠재력을 보여준 선수였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 그리스전에서 김영광은 엄청난 선방을 보이며 사실상 무승부를 이끌었다고 봐도 될 정도의 슈퍼세이브를 했었다. 대중에게 존재감을 각인시킨 것이 바로 이 시기이며 리틀칸의 별명이 생긴 것도 2004년 올림픽에서였다.

이후 2006년 독일 월드컵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 승선하였으나, 주전 골키퍼가 이운재였다. 당시 이운재는 체력 평가 성적과 노쇠화 및 체중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기량면에서 말이 많았으나 결과적으로 봤을때 엄청난 슈퍼세이브를 보여주며 프랑스전을 하드캐리했으니 김영광이 서브였던 것은 납득할만한 상황이었다.

2006년 월드컵 직후 출범한 핌 베어벡호에서 주전으로 낙점된 김영광은 꾸준히 경기에 기용되었으나... 핌 베어벡 감독은 당시 한국 국가대표팀의 최우선 과제는 세대교체였고, 특히 수비진 세대교체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또한 히딩크호에서부터 시작한 4백 전술을 한국축구는 아직 제대로 구사할 수 없었고, 지역 수비가 기반인 4백을 대인마크 기반의 4백으로 변형하여 사용하고 있던 상황이기 때문에 지역 수비 기반의 4백 수비 전술로 바꾸는게 최우선시되었다.

선수 발굴을 위해 매 경기가 상당히 신예 선수들을 대거 기용하고 실험적인 전술을 테스트하는 등 과도기적인 시기였는데, 2002년 월드컵의 환상에 빠져있던 국민들의 기대에 못미치고 2006년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한 국가대표팀을 겨냥한 기레기들의 공격에 주요 타겟이 되고 만다.

골키퍼 김영광의 경우 특히 그 정도가 심했는데, 수비진과의 사인 미스로 인한 실점이 나왔던 이란전[4]을 계기로 실체가 없는 안정성 논란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2006년 이란전-4분 10초 https://www.youtube.com/watch?v=g-iEzkkqwnA) 이후 시리아전에서 롱패스 한방에 어처구니 없이 뚫린 수비진이 만들어낸 1:1 상황을 차단하려고 오버래핑을 시도해서 성공... 하는듯 했으나 수비 복귀가 굉장히 늦어 이후 처리가 안돼 실점하게 된다. 당시 김영광의 판단은 매우 정확했으나... 언론의 보도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214&aid=0000020221 참조.

축구협회는 감독을 보호하지 않았고, 언론의 비난은 선수단 전체 감독 모두에게 쏟아졌다. 결국 이후 경기들은 실험적인건 하나도 없이 지지 않으려는 지루한 경기가 되는 최악의 사태를 낳게 되고, 김영광은 당시 소속팀이었던 전남 드래곤즈의 프런트 및 감독(허정무)과의 불화로 인해 이후 울산으로 이적하는 등 영 좋지못한 해를 보내게 되고, 결국 2006년 아시안 게임 이후 부동의 주전에서 밀려나게 된다.

2007년 아시안컵에서는 결국 다시 이운재를 불러들이는 등 막장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2000년 이후 역대 올림픽 국가대표 골키퍼 중 가장 존재감 없었던 정성룡이 뜬금없이 국가대표로 발탁되고, 그 결과는 2010년 월드컵 삽질, 2011년 아시안컵 빅삽질, 2014년 월드컵 자동문 참사로 이어지게 된다.

주된 장점은 환상적인 반사신경과 위치선정으로 가끔 먹힐 골도 막아낸다. 이운재와 김병지 이후 최고의 반사신경을 가진 골리로 불린다. 이 당시 올리버 칸도플갱어로 불린 까닭에 별명이 '리틀 칸'으로 불리기도 했다.

2. 선수 경력

2.1. 전남 드래곤즈

2003년 U-20 대표팀 주전 골키퍼로 이름을 알린 이래 김병지이운재의 후계자로 낙점받아왔으며, 2004 아테네 올림픽, 2006 FIFA 월드컵 독일, 2007년 AFC 아시안컵,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등 꾸준히 대표팀에 승선했다.

리그에서도 2002년 전남 드래곤즈에서 데뷔한 이후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전후해서 당시 주전 경쟁을 펼쳤던 염동균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다.

2.2. 울산 현대

2007년 22억이라는 엄청난 이적료로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했다.[5] 이적 이후 좋은 활약을 보이며 주전 자리를 확고히 했으며,[6] 2011년에는 K리그 베스트11 골키퍼 부문을 수상하였다.

2012년까지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국가대표 NO.2 골키퍼로써 정성룡의 최대 경쟁자 자리를 굳게 지켰으나 2013년의 부상이 그의 전환점이 되어버린다. 김영광이 부상 중이던 기간에 그의 그림자에 가려 만년 2인자였던 김승규가 펄펄 날아다니기 시작한 것. 부상에서 회복하였으나 복귀전이었던 대구 FC와의 경기에서 5실점을 하는 최악의 부진으로 완전히 주전에서 밀려버렸다. 결국 6경기 출장에 그치며 후보 GK 신세가 되었다.

2.3. 경남 FC

2014 시즌 전 출전을 보장받는 다른 팀으로의 이적을 요청했고, 올 여름 김승규를 장기간 국가대표로 보내야 했던 울산이었기에 최종적으로는 임대료를 지불한 경남으로 임대 이적하게 되었다.

당연히 주전 출장했지만, 팀의 성적이 매우 안습하여 승강 플레이오프로 밀려났다. 게다가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는 아예 출전하지도 못했고 2차전에 출전했지만 아예 팀이 강등이 되어버렸다. 강등이 되든 안 되든 울산에 돌아가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고, 결국 시즌 종료 후 울산으로 복귀하였다. 그러나 그 후의 주전 출전 여부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울산으로 돌아갔지만 김승규가 여전히 확고하게 주전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2.4. 서울 이랜드

결국 2015년 신생팀 서울 이랜드로 이적했으며, 서울 이랜드 FC 첫시즌에 그야말로 최후방을 하드캐리하는중. 공격력은 쓸만하지만 수비력이 엉성한 서울 이랜드에서 여러차례 선방을 해가며 대량실점 위기서 팀을 구해내고있다. 2015년 11월 5일 현재 36경기 48실점을 기록중이다.

김재성, 조원희 등 창단년도에 영입된 3인방 중 2명이 팀을 떠나고서 유일하게 서울E에 남았다. 이후 2017년에 2022년까지 5년 장기 계약을 맺었다.

2017년 5월 6일 FC 안양전에서 통산 4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파일:FB_IMG_1498545325807.jpg

모기업이 완전히 투자의지를 잃어버려 형식상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랜드에서 혼자서 고생 중. 창단시즌에 같이 들어온 김재성과 조원희는 이미 다른 곳으로 갔다.

2018 시즌엔 이랜드의 마지막으로 남은 스타 플레이어로[7]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팬들에게 미안하다며 사과까지했다.

전 경기, 전 시간 출전상과 K리그2 베스트11 GK상을 받았다. 전 경기, 전 시간 출전상은 2017년에 이어 2년 연속. 여러 팀에서 영입요청은 많았지만 이랜드의 K리그1 승격까지 이랜드에 남겠다고 인터뷰했다.

2019 시즌엔 그나마 해주던 전민광과 최오백도 나가버렸고 공격의 핵심 주민규도 이적하면서 정말 허허벌판이 된 팀에서 홀로 고생하고 있다. 안산전에서 패널티킥을 2번이나 막아냈는데도[8] 수비진이 추가시간 1분을 못 버티고 실점하며 무승부를 당하는 경기도 있었다.

3. 우승

  • 전남 드래곤즈 (2002 ~ 2006)
    • FA컵 : 2006
  • 울산 현대 (2007 ~ 2013)
    • K리그 리그컵 : 2007 , 2011
    • AFC 챔피언스리그 : 2012
  • 국가대표 (2003 ~)
    • 2007 AFC 아시안컵 : 3위

4. 논란

파일:htm_200710211834260110000001100200-001.jpg

2007년 10월 21일 대전 시티즌과의 K리그 플레이오프 경기서 대전 관중이 던진 물병을 다시 주어서 대전 관중을 향해 던지면서 논란이 일었고, 이에 흥분한 대전 팬들은 물병을 계속 그라운드로 던져졌고, 일부 팬은 그라운드로 진입하려고 했으며, 경호원들의 제지로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5분여동안 경기는 중단됐으며, 결국 김영광은 이날 경기에서 퇴장을 당하는 것은 물론 6경기 출장 정지와 벌금 600만원의 징계를 받았다.

물론 먼저 대전팬이 물병을 던져서 시비를 건 것은 정말 잘못된 행동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병을 다시 관중석에다 대고 던진 김영광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한편 이 사건으로 김영광은 대전팬들에게 완전히 찍혀버렸고, 대전과의 경기 때마다 강한 야유를 듣고 있다.

5. 기타

킥 패스가 꽤나 정확하다. 특히나 골 킥과 펀트 킥, 수비수나 자기 진영에서 내려오는 백패스를 다시 센터 아크 넘어 상대진영에 우군에게 넘겨주는 정확도가 꽤 쓸만한데 비록 리그의 차이가 있지만 현 대표팀에서 골키퍼들의 롱킥 빌드업이 안습인 걸 생각한다면 슈틸리케 감독이 원하던 골키퍼부터 시작되는 전체적인 빌드업이 중시되는 대표팀에 재합류할 가능성이 있어보였으나 실제로 발탁된 적은 없다.

프리커버리라는 회사에서 김영광을 위한 전용 골키퍼장갑이 제작되고 있는데 그 모습이 나이키 베이퍼그립 RS와 매우 유사하다. 심지어 장갑 모델명이 글로리다.

기업도 논란이 있고 구단주도 AFC 진출 가능성이 없어지자 관심을 버려 사실상 해체만 안 하고 운영 중인 서울 이랜드 FC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스타선수.

팬 서비스가 매우 좋은 선수이기도 하다. 네이버 뉴스에서 '가자매아빠'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팬들에게 일일이 댓글을 달아준다.


[1] 서울 이랜드 프로필[2] 키에 비해 팔이 긴 편이며, 본인이 직접 인증한 적 있다.[3] 2015 시즌부터 서울 이랜드 FC 에서 그의 별명을 딴 GLORY로 배번 마킹을 했다(...).[4] 김상식-김영광 사이의 콜 미스로 인해 김상식이 공을 받으러 나오던 김영광에게 패스를 하지 않았고, 그 상태에서 공을 뺏기고 어처구니 없이 로빙슛에 무너진 경기[5] 하지만 이로 인해 당시 K리그 몸값 거품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표주자 중 한 명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6] 이런 까닭에 울산의 골키퍼 기대주였던 김지혁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하게 되었다.[7] 주민규는 상무에서 시즌 막바지에 복귀[8] 두번째 킥은 정규시간 종료 30초전에 준 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