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3 19:34:46

김영광(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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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광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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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광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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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
파일:41 김영광.png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김영광
金永光 | Kim Young‑Kwang
출생 1983년 6월 28일 ([age(1983-06-28)]세)
전라남도 고흥군[1]
거주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3cm / 체중 87kg / A형[2]
직업 축구 선수 (골키퍼 / 은퇴)
프로 입단 2002년 전남 드래곤즈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선수 전남 드래곤즈 (2002~2006)
울산 현대 (2007~2014)
경남 FC (2014 / 임대)
서울 이랜드 FC (2015~2019)
성남 FC (2020~2023)
국가대표 17경기 15실점 (대한민국 / 2004~2012)
경기 수 605경기[3][4]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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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학력 순천중앙초등학교 (졸업)
순천매산중학교 (졸업)
광양제철고등학교 (졸업)
가족 아내 김은지, 장녀 김가율, 차녀 김가인
병역 전시근로역[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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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우승6. 논란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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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국적 前 축구선수. 현역 시절 포지션은 골키퍼였다.

2. 클럽 경력

2.1. 전남 드래곤즈 (2002~2006)

전남 U-18 팀 광양제철고 졸업 후 전남에 입단했다. 당시 한려대학교 입학을 앞두다가 이회택 감독의 부름을 받고 프로에 합류했다. 하지만 신인인 2002 시즌에는 입단 동기 염동균과 함께 R리그에만 나섰고 1군 무대는 밟지 못했다.

하지만 2003 시즌 후반 확고한 주전이던 박종문의 부상 공백을 틈타 프로 데뷔와 함께 11경기에 나섰다.

이후 이장수, 허정무 감독을 거친 2004, 2005 시즌 각각 22경기, 32경기에 나서며 주전으로 등극했다.

하지만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전후해서 당시 주전 경쟁을 펼친 염동균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다.

2.2. 울산 현대 호랑이/울산 현대 (2007~2014)

2007년 22억이라는 엄청난 이적료로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했다.[6] 해당 금액은 2021년까지도 역대 K리그 내 최다 이적료로 남아있다. 이후 좋은 활약을 보이며 주전 자리를 확고히 했으며,[7] 2011년에는 플레이오프에서 맹활약하며 울산의 깜짝 준우승에 기여했고, K리그 베스트11 골키퍼 부문을 수상하였다.

2012년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울산의 첫 번째 AFC 챔피언스 리그 무패 우승에 일조하였고, 국가대표 NO.2 골키퍼로 정성룡의 최대 경쟁자 자리를 굳게 지켰다.

2013 시즌을 앞두고 구단 역대 두 번째 골키퍼 주장에 부임할 만큼 굳건한 입지를 과시했다. 하지만, 시즌 초반 부상을 당했고, 김영광이 부상 중이던 기간에 그의 그림자에 가려 만년 2인자였던 김승규가 펄펄 날아다니기 시작한 것. 부상에서 회복하였으나 복귀전인 대구 FC와의 경기에서 5실점을 하는 최악의 부진으로 완전히 주전에서 밀려버렸다. 결국 6경기 출장에 그치며 후보 GK 신세가 되었다.

2.2.1. 경남 FC (2014, 임대)

파일:SK004_20140314_131101_59_20140314202102.jpg

2014 시즌 전 출전을 보장받는 다른 팀으로의 이적을 요청했고, 여름에 김승규를 장기간 국가대표로 보내야 했던 울산이었기에 최종적으로는 임대료를 지불한 경남으로 임대 이적하게 되었다.

당연히 주전 출장했지만, 팀의 성적이 매우 저조하여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로 밀려났다. 게다가 시즌 막판 부진하며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는 손정현에 밀려 출전하지 못했고 2차전에 출전했지만 아예 팀이 강등했다.

강등이 되든 안 되든 울산에 돌아가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고, 결국 시즌 종료 후 울산으로 복귀하였다. 그러나 그 후의 주전 출전 여부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울산으로 돌아갔지만 김승규가 여전히 확고하게 주전을 차지하고 있었다.

2.3. 서울 이랜드 FC (2015~2019)

2015년 신생팀 서울 이랜드 FC로 이적하며 K리그 챌린지 무대에 데뷔했다.

부동의 주전 골키퍼로 자리 잡아 공격력은 쓸만하지만 수비력이 엉성한 서울 이랜드에서 여러차례 선방을 해가며 대량 실점 위기서 팀을 구해냈다.

김재성, 조원희 등 창단년도에 영입된 3인방 중 2명이 팀을 떠나고 유일하게 서울E에 남았다. 이후 2017년에 2022년까지 5년 장기 계약을 맺었고, 팀에 대한 공헌도를 인정받아 주장까지 맡았다.

2017년 5월 6일 FC 안양전에서 K리그, 리그컵 통산 4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파일:FB_IMG_1498545325807.jpg

2018 시즌엔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그리고 서울 이랜드의 마지막으로 남은 스타 플레이어로[8]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팬들에게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전 경기, 전 시간 출전상과 K리그 2 베스트 11 GK상을 받았다. 전 경기, 전 시간 출전상은 2017년에 이어 2년 연속. 여러 팀에서 영입 요청은 많았지만 서울 이랜드의 K리그1 승격까지 이랜드에 남겠다고 인터뷰했다.

2019 시즌엔 그나마 해주던 전민광과 최오백도 나가버렸고 공격의 핵심 주민규도 이적하면서 허허벌판이 된 팀에서 홀로 고생했다. 안산전에서 패널티킥을 2번이나 막아냈는데도 수비진이 추가시간 1분을 못 버티고 실점하며 무승부를 당하는 경기도 있었다.

2019 시즌을 끝으로 서울 이랜드를 떠났는데 왜 팀에서 쫓겨났는 지 모르겠다는 평을 들었다. 노쇠화로 실력이 형편없어졌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2019 시즌 종료 후 정정용이 부임하면서 대대적인 리빌딩을 천명하며 어린 선수 육성에 집중하기로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2.4. 성남 FC (2020~2023)

2020년 3월 19일 성남 FC는 김영광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FA로 성남에 입단하면서 6년 만에 K리그1에 복귀하였다.

2.4.1. 성남 FC/2020년

1라운드 광주 FC전에서 성남 데뷔전을 치렀다. 여러 번 슈퍼 세이브를 보여 주며 무실점 승리에 기여했다.

2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전에서도 공격이 부실한 인천을 상대로 무난하게 2경기 연속 클린시트를 기록하였다.

3라운드 강원 FC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 줬지만 전반전 고무열의 니어포스트로 빨려 들어가는 슈팅에 선제골을 내주며 시즌 첫 실점을 허용했다.

4라운드 FC 서울전에서 결정적인 슈퍼 세이브 3회를 기록하며 무실점 승리를 이끌었고, 4라운드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4경기 1실점으로 2020시즌 K리그 골키퍼들 중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 노쇠화 우려를 무색하게 했다.

파일:FB_IMG_1591528300335.jpg

5라운드 대구 FC전에 선발 출장하였다. 이날 김영광은 프로 500번째 경기를 치러 등번호를 500번으로 하였다.

16라운드 부산 아이파크전도 선발 출장해 안정적인 선방쇼를 펼첬다. 후반 45+1분에 부산의 코너킥을 멋지게 펀칭한 이후에 맨바닥에 그대로 떨어지면서 부상 위험이 있었으나 큰 부상은 아니었고 팀은 후반 45+5분에 도스톤벡 투르스노프에게 통한의 동점골을 먹히면서 승리를 지키진 못했다.

21라운드 대구 FC전에 선발 출전했다. 전반 시작10분만에 데얀에게 실점하면서 끌려가기 시작했고 이후 37분에는 세징야의 추가골에 실점하였고 다행히 전반 종료 직전 이창용의 골로 2대1로 전반을 마첬고 후반 14분에 나상호의 동점골로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으나 이후 데얀에게 한번 더 실점하면서 2:3으로 패했다.

23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전에서는 뜻하지 않은 상황이 펼처졌다. 전반 시작 2분 만에 연제운의 퇴장으로 성남은 시작하자마자 수적 열세에 놓이게 되었는데 전반 11분 김준범에게 실점한 것을 시작으로 7분 뒤 무고사에게 실점하면서 전반을 마쳤다. 하지만 후반에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져가며 후반 시작 9분 만에 김도혁에게, 22분에 김도혁에게 또 한 번 실점하였고 이후 6분 뒤 무고사에게 실점, 추가시간 1분에 무고사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는 실점을 하면서 6:0 대패를 하였다.

24라운드와 25라운드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으나 팀은 패배했다. 시즌 최종전까지 주전으로 나서서 팀의 잔류에 기여했으며 시즌 종료 후 1년 재계약을 발표했다.

2.4.2. 성남 FC/2021년

김영광의 프로 데뷔 20주년이 되는 시즌이다.

3월 1일 홈개막전 제주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장하여 좋은 선방을 보여주며 클린시트를 기록했다. 팀은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3월 7일 수원전에 선발 출전했으나 전반 37분에 박정수가 퇴장당하는 악재가 겹첬고 3분 뒤 결국 김민우에게 실점하면서 1대0으로 패했다.

3월10일 FC 서울전에 선발 출전하여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팀은 후반 43분 기성용의 핸드볼 파울로 얻어낸 PK를 뮬리치가 성공하면서 1:0으로 승리하면서 클린시트와 시즌 첫 승을 가저갔다.

3월 14일 수원 FC전에 선발 출전해 전반 19분 무릴로에게 실점하면서 전반을 마첬으나 후반들어 성남의 공세가 매서웠고 후반 30분 뮬리치의 동점골이 터졌고 7분 뒤 박지수의 퇴장으로 경기가 여유로워졌고 후반 41분에 세르지우 부쉬의 역전골이 터지면서 팀은 2:1로 승리했다.

3월 21일 포항과의 경기에 선발 출전했으나 시작 5분만에 송민규에게 실점하면서 끌려가기 시작했으나 전반 35분 이승모의 자책골로 1대1로 군형을 마첬고 이후 후반에는 송민규의 퇴장으로 경기가 여유로워졌고 후반 43분에 이중민의 결승골이 터지면서 2:1로 승리했다.

4월 3일 울산과의 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그러나 전반 26분 이동준에게 실점하면서 끌려가기 시작하면서 전반을 마첬고 후반에 성남은 맹공을 퍼부었으나 조현우에게 번번히 막히면서 1:0으로 패했다.


4월 6일 대구 FC 원정 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대구의 폭풍 공격에 맞서 연이은 선방쇼를 이어가면서 팀은 0:0 무승부를 기록했고, 축구 커뮤니티에서 팬들은 나이가 10년만 젊었으면 국대 골키퍼 주전 경쟁도 가능했다고 칭찬했다. 이후 해당 경기 MOM에 선정되었다.

4월 10일 광주 FC 홈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전반14분 페이살 뮬리치의 선제골로 앞서나가면서 전반을 마첬고 후반 시작 9분만에 뮬리치의 추가골이 터지고 퇴장당하면서 리드와 동시에 수적 열세라는 위기가 찾아왔으나 다행이 수비수들이 펠리페를 잘 막아주면서 2:0으로 승리하였다.

4월 18일 전북 현대 모터스전에 선발 출전했다. 전후반 내내 안정적인 모습으로 골문을 지켰으나 팀은 후반 29분 한교원에게 실점하면서 1:0으로 패했다.

4월 21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에서도 선발 출전했다. 안정감 있는 모습을 여러차례 보여주었으나 김현과 네게바의 근접 헤딩슛과 아길라르의 페널티킥[9]에 실점하며 3실점을 하면서 1:3으로 패했다.

4월 25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홈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전후반 내내 선방쇼를 보여주었으나 후반 37분 이기제의 프리킥에 실점하면서 결국 1:0으로 패했다.

4월 30일 FC 서울과의 경기에 선발로 출전했다. 전반 5분만에 박용지의 선제골로 앞서갔으나 전반 종료 직전 팔로세비치에게 실점하면서 전반을 마쳤고 이후 후반 12분 홍준호의 자책골로 앞서갔으나 후반 39분에 나상호에게 실점하면서 승부가 원점으로 돌아갔고 이후 두 팀 모두 골문을 열지 못하면서 1:1 무승부로 끝났다.

5월 29일 수원 FC와의 경기에 선발로 출전했으나 시작 4분만에 라스에게 실점하면서 끌려가기 시작했고 이후 전반 26분에 무릴로에게 추가 실점하면서 전반을 마쳤고 이후 후반에는 성남의 공격이 살아나면서 후반 시작 5분만에 뮬리치에 추격골이 터졌으나 10분 뒤 이영재에게 실점하였다. 후반 45분 뮬리치에 추격골이 터졌으나 이후 경기가 종료되면서 3:2로 패했다.

6월 6일 순연된 전북과의 경기에 선발로 나왔다. 하지만 전반 15분만에 백승호의 장거리 프리킥에 실점했고 설상가상으로 김민혁의 퇴장 이후 선수단 전체의 조직력이 무너져 수비 라인이 크게 흔들렸다. 김영광 본인은 일류첸코의 1:1 찬스를 막아내는 등 분투했으나 결국 구스타보에게 4골을 추가로 내주며 1:5로 패배를 거두고 말았다.

6월 20일 순연된 울산과의 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하지만 전반 13분 세트피스 상황에서 나온 힌터제어의 근거리 헤더에 실점하면서 끌려가기 시작했으나 13분 뒤 이스칸데로프에 동점골이 터지면서 승부가 원점으로 돌아갔으나 5분뒤 김민준에게 실점하면서 전반을 마쳤다. 후반 시작하자마자 이태희의 동점골이 터졌으며 이후 울산의 맹공을 잘 막아내면서 2:2로 무승부로 끝났다.

8월 8일의 리그 23라운드 포항 스틸러스 홈경기에서 포항의 슈팅을 여러번 막아내면서 팀의 1 : 0 승리와 무실점 승리를 챙겼다. 8월 17일자 리그 25라운드 수원 삼성 블루윙즈 원정 경기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경기가 무관중으로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관중석을 향해 인사를 하였는데, 이유를 궁금해하는 팬들이 묻자 자신의 SNS를 통해 "팬분들이 코로나로 인해 경기장에 아무도 안 계시더라도 인사 드립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K리그는팬프랜들리다"라는 게시물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8월 21일 전북 현대 모터스전에 선발 출장했다. 전반 초반 구자룡의 헤더를 슈퍼 세이브로 막아냈고, 후반 문선민의 드리블 이후 날린 슈팅마저 세이빙해내며 0:0 무승부에 기여했다. 성남이 애초에 이 경기에서 로테이션을 돌리며 비기는 것을 제 1목적으로 삼은 것을 감안하면 김영광의 이 선방은 천금과도 같았다.

9월 22일의 리그 31라운드 수원 FC 원정에서는 팀이 2:1로 지는 상황에서 후반 추가시간 4분에 박수일의 백패스가 김영광의 발 앞에서 갑작스럽게 불규칙 바운드가 되어 튀어올랐고, 이에 제대로 낚여 헛발질을 해 공이 뒤로 흘러 자책골을 내주며 성남의 패배에 쐐기를 박고 말았다. 좋지 않은 잔디 상태로 인해 선수 입장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불규칙 바운드가 튀어버려 누구의 실책이라고 할 수 없는 억울할 상황이 된 셈. 볼이 튀지 않았다면 김영광이 멀리 차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김영광의 자책골로 표시되었으나 이후 볼이 김영광에게 아예 접촉이 안된 것이 확인되어 백패스를 한 박수일의 자책골로 정정되었다.

9월 26일 리그 32라운드 강원 FC전에 선발 출장하면서 2:0 클린시트 승리로 경기를 마쳤다. 이날 출전으로 리그 통산 549경기에 출장하는 대기록을 세웠고, 548경기의 이동국을 넘어 역대 K리그 최다 출전 2위에 이름을 올렸다. 1위는 리그 통산 706경기에 달하는 김병지. 김영광도 인터뷰에서 이 기록을 깨려면 6~7년을 더 뛰어야 한다며 절대 깰 수 없다는 걸 안다고 발언했다.#

10월 30일 리그 34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의 홈 경기에서 여러 차례 슈퍼세이브를 선보이며 골문을 단단히 지켜 1:0 승리를 이끌었다. 11월 27일 리그 37라운드 광주 FC전에서도 수번의 선방을 성공시키며 팀은 안진범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둬 잔류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2021시즌의 성적을 인정받아 2021 K리그1 베스트 11 GK 부문 후보 중 1명으로 선정되었다. 2021시즌 성남에서의 기록은 리그와 FA컵을 합쳐 38경기 출전 46실점 클린시트 13회. 베스트 11엔 들지 못했으나 조현우와 더불어 ‘전 경기&전 시간 출장’ 상을 받았다. 사진

2.4.3. 성남 FC/2022년

시즌 종료 후 재계약에 성공하면서 이번 시즌도 성남 소속으로 뛰게 됐다. 이로써 통산 2위이자 현역 1위인 최다 출장 기록은 갱신될 예정.

K리그1 1라운드 강원 FC전에 선발 출전했다. 전반전에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고 후반전에도 강원의 공격을 잘 막아냈으나 후반 35분 마상훈의 실책으로 인하여 역습을 허용해 결국 디노에게 실점하면서 끌려가기 시작했고, 7분뒤 김대원의 감아차기 원더골에 추가로 실점하면서 결국 2대0으로 패했다.

2월 26일의 리그 2라운드 울산 현대 전에서는 55분에 바코페널티킥을 선방하는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재차 페널티킥을 내주는 등 팀의 수비 불안이 쌓이며 이번에도 2실점하고 말았다.

5라운드에선 의외로 최필수가 선발로 나오면서 처음으로 벤치에 앉았다.


4월 9일 9R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 무려 4:0 패배했고, 결국 이날 경기 종료 후 김남일 감독이 선수단과 같이 직접 서포터즈석 앞까지 찾아가 팬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는데,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팬들이 선수단을 향해 강하기 야유를 날리자 눈물을 보이며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11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전에 선발로 출전했다. 그러나 후반 27분 고영준에게 실점하면서 끌려가기 시작했고 이후 팀은 포항의 골문을 열지 못하면서 1대0으로 패했다.

12라운드 수원 삼성전에 선발 출전했다. 전후반 내내 선방쇼를 보여주었으나 경기 종료 직전 전진우에게 실점하였고 이후 그대로 경기가 종료되면서 결국 1대0으로 패했다.

14라운드 FC 서울전에 선발 출전하였다. 전반 22분 구본철의 선제골로 앞서갔으나 3분 뒤 권완규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는 악재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맹공을 막아내며 팀의 승리를 지켜내는데 성공하였다.

토트넘과의 올스타전 후반 시작과 함께 교체 출전해 5실점을 허용했다.

수원 FC와의 경기에서 엄청난 선방으로 1실점 만을 내주면서 팀의 2:1 승리로 이끌었다

29라운드 우승팀 울산 현대와의 경기에서 많은 슈퍼세이브로 팀의 2:0으로 완승을 이끌었다.

37라운드 FC 서울와의 원정경기에서 엄청난 선방을 보이며 성남의 승리를 이끌었다.

2022시즌 성남에서의 기록은 리그와 FA컵을 합쳐 33경기 출전 60실점 클린시트 2회.

시즌 종료 후 강등된 성남을 떠날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 경남 시절 이후 두 번째 강등을 경험했다.

2.4.4. 성남 FC/2023년

강등된 성남을 떠날 것으로 예상을 했지만 결국 잔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월 28일 전지훈련을 끝낸 선수들을 마중 나와 환영하는 동영상이 구단 공식 인스타에 올라간 것을 통해 거의 재계약이 확정되어 잔류하는 것으로 보인다.

리그 4라운드까지 최필수에 밀리며 벤치명단에 있다가 FA컵 2라운드 평창 유나이티드전에 선발 출전하였다. 이날 심동운의 결승골에 팀은 1:0 으로 승리.
리그 5라운드 충북 청주 FC 전에 출장하여 2경기 연속 선발되었고, 2실점을 기록하였다. 팀은 3:2 승리

9월 23일 33라운드 청주와의 홈경기에 풀타임을 소화하며 한국프로축구연맹 주관 대회 통산 600경기 출장 대기록을 세웠다.#

10월 7일 아산과의 리그 홈경기에서 자신의 600경기 축하 기념 경기를 치뤘고, 클린시트로 자축하며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11월 26일 안산과의 홈경기에서 K리그2 통산 200경기 출전을 기록했다.

2023시즌 성남에서의 최종 기록은 19경기 27실점 클린시트 6회.

스포츠니어스에 따르면 성남 FC를 떠난다고 한다.

2023년 12월 27일 성남을 떠난다는 보도가 나왔다. SNS로 먼저 작별을 고했으며 고향팀 전남 이적설 및 은퇴 등 다양한 선택지가 거론되지만 몸관리 및 실력은 녹슬지 않아 베테랑 골키퍼가 필요한 팀은 노릴 수 있는 자원이다.

2.5. 은퇴

2024년 1월 6일, 본인의 SNS로 은퇴를 선언했다.

2.6. 은퇴 후

은퇴 이후에 김영광은 이천수의 컨텐츠에 나왔다.

2024년 K리그2 4라운드 서울 이랜드 FC의 창단 10주년 경기인 FC 안양전에[10] 홈인 목동종합운동장에 참가한다.

3. 국가대표 경력

3.1. 연령별 대표팀

초등학교 6학년 때 유소년 대표팀으로 첫 태극마크를 단 이후, 1998년 5월 16일 AFC U-17 챔피언십 예선 경기에 출장하였고, 2002년 AFC 청소년 선수권 대회, 2003년 U-20 월드컵 모두 전경기 출장하며, U-20 대표팀에서도 주전 골키퍼로 뛰었다.

U-23 대표팀에서도 주전 골키퍼로 뛰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본선에서 8강까지 4경기 모두 출장하였다. 이 시기 김영광의 최대 업적을 꼽자면 올림픽 최종예선 6경기 전 경기 무실점이다.[11]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본선에서 4위를 차지할 때까지 6경기 모두 출장하였다.
  • U-23 대표팀: 31경기 출전, 19실점 허용

3.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최은성, 김용대와 함께 실력은 있지만 대표팀에서 빛나지 못한 선수.

2003년 U-20 대표팀 주전 골키퍼로 이름을 알린 이래 김병지이운재의 후계자로 낙점받아, 2004 아테네 올림픽, 2006 FIFA 월드컵 독일, 2007년 AFC 아시안컵,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등 꾸준히 대표팀에 승선했다.

청소년 대표 시절부터 엄청난 기량을 보여주며 높은 잠재력을 보여준 선수였다. 2004 아테네 올림픽 당시 그리스전에서 김영광은 엄청난 선방을 보이며 사실상 무승부를 이끌었다고 봐도 될 정도의 슈퍼 세이브를 했다. 대중들에게 존재감과 이름 석자를 널리 각인시킨 때도 바로 이 시기이며, 리틀 칸이라는 별명이 생긴 것도 2004년 올림픽에서였다.

1 이운재
C
· 2 김영철 · 3 김동진 · 4 최진철 · 5 김남일 · 6 김진규 · 7 박지성 · 8 김두현
9 안정환 · 10 박주영 · 11 설기현 · 12 이영표 · 13 이을용 · 14 이천수 · 15 백지훈 · 16 정경호
17 이호 · 18 김상식 · 19 조재진 · 20 김용대 · 21 김영광 · 22 송종국 · 23 조원희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딕 아드보카트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핌 베어벡
스태프
파일:미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압신 고트비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홍명보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정기동




이후 능력도 인정받아 2006 FIFA 월드컵 독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승선하였으나, 주전 골키퍼는 선배 이운재였다. 당시 이운재는 체력 평가 성적과 노쇠화 및 체중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기량면에서 말이 많았으나, 결과적으로 봤을 때 엄청난 슈퍼세이브를 보여주며 프랑스전을 하드캐리했으니 김영광이 서브인 것은 납득할 만한 상황이었다.[12]

2006년 월드컵 직후 출범한 베어벡호에 주전으로 낙점되면서 꾸준히 경기에 기용되었으나...핌 베어벡의 당시 한국 대표팀의 최우선 과제는 세대교체였고, 특히 수비진 세대교체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또한 히딩크호에서부터 시작한 4백 전술을 한국 축구는 아직 제대로 구사할 수 없었고, 지역 수비가 기반인 4백을 대인 마크 기반의 4백으로 변형하여 사용하던 상황이기 때문에 지역 수비 기반의 4백 수비 전술로 바꾸는 게 최우선시되었다.

선수 발굴을 위해 매 경기가 상당히 신예 선수들을 대거 기용하고 실험적인 전술을 테스트하는 등 과도기적인 시기였는데, 여전히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직후 열린 월드컵이라 당시 국민들의 기대에 못 미치고 2006년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한 국가대표팀을 겨냥한 기레기들의 공격에 주요 타겟이 되고 만다.

김영광의 경우 특히 그 정도가 심했는데, 수비진과의 사인 미스로 인한 실점이 나온 2006년 9월의 이란전[13]을 계기로 안정성 논란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2006년 이란전 4분 10초. 한달 후 시리아전에서는 롱패스 한방에 어처구니 없이 뚫린 수비진이 만들어낸 1:1 상황을 차단하려고 오버래핑을 시도해서 성공하는 듯 했으나, 하필 수비 복귀가 늦어 이후 처리가 안 되어 실점하게 된다. 당시 김영광의 판단은 매우 정확했으나...언론 보도 참조.

대한축구협회감독을 보호하지 않았고, 언론의 비난은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모두에게 쏟아졌다. 결국 이후 경기들은 실험적인 건 하나도 없이 오로지 무승부도 절대로 안 되고 승리하려고만 하는 지루하고 임팩트 없고 식상한 경기가 되는 최악의 사태를 낳게 됐으며, 또한 김영광 본인도 당시 소속팀 전남 드래곤즈의 프런트 및 당시 감독 허정무와의 불화로 인해 이후 울산으로 이적하는 등 영 좋지 못한 해를 보내게 되고, 결국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이후로는 주전 골키퍼 자리에서 밀려나게 된다.

1 이운재 · 2 오범석 · 3 김형일 · 4 조용형 · 5 김남일 · 6 김보경 · 7 박지성
C
· 8 김정우
9 안정환 · 10 박주영 · 11 이승렬 · 12 이영표 · 13 김재성 · 14 이정수 · 15 김동진 · 16 기성용
17 이청용 · 18 정성룡 · 19 염기훈 · 20 이동국 · 21 김영광 · 22 차두리 · 23 강민수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허정무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정해성
스태프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박태하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김현태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명단에 포함은 되었지만, 경기는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16강 우루과이전에서 정성룡의 실책이 워낙 컸던 탓에 그를 주전으로 채용 안 한 허정무 감독에게 원망 섞인 목소리 또한 있었다.

2012년 2월 25일,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 출전했고, 팀은 4대2 승리를 했다. 해당 경기 풀버전
나흘 뒤인 2월 29일,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아시아 지역예선 3차 예선 경기 쿠웨이트전은 정성룡이 출전했고, 경기는 2대0 승리.
김영광이 2024년 초에 은퇴를 해서 우즈베키스탄전이 국가대표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주된 장점은 반사 신경과 위치 선정으로,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 슈퍼 세이브를 보여준다. 이운재김병지 이후 최고의 반사 신경을 가진 골리로 불린다.[16] 이 당시 올리버 칸도플갱어로 불린 까닭에 별명이 '리틀 칸'으로 불리기도 했다.

또한 킥 패스가 꽤나 정확하다. 특히나 골 킥과 펀트 킥, 수비수나 자기 진영에서 내려오는 백패스를 다시 센터 아크 넘어 상대 진영에 우군에게 넘겨주는 정확도가 꽤 쓸만하다.

5. 우승

  • 전남 드래곤즈 (2002~2006)
    • FA컵: 2006
  • 울산 현대 (2007~2013)
    • K리그 리그컵: 2007, 2011
    • AFC 챔피언스 리그: 2012

6. 논란

파일:htm_200710211834260110000001100200-001.jpg



2007년 10월 21일 대전 시티즌과의 K리그 플레이오프 경기서 대전 관중이 던진 물병을 대전 관중을 향해 던지면서 논란이 일었고, 이에 흥분한 대전 팬들은 물병을 계속 그라운드로 던져졌고, 일부 팬은 그라운드로 진입하려고 했으며, 경호원들의 제지로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5분여동안 경기는 중단됐다. 결국 김영광은 이날 경기에서 퇴장을 당하는 것은 물론 6경기 출장 정지와 벌금 600만원의 징계를 받았다. 링크

물론 먼저 대전팬이 물병을 던져 시비를 건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한편 이 사건으로 김영광은 대전팬들에게 완전히 찍혀버렸고, 대전과의 경기 때마다 강한 야유를 듣는다.

7. 여담

  • 골키퍼 치고 단신에 속하지만 팔 길이는 길다. 키를 키우려고 우유를 매일 2000ml를 마시고 척추를 늘리기 위해 매일 철봉에 3~40분씩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팔 길이만 길어졌다고 한다. 본인의 언급으로는 키퍼는 공을 손으로 잡기 때문에 팔이 2cm 늘어나면 키가 2cm 늘어나는 것과 같다고 한다.
  • 일찍이 국가대표팀 주전 골키퍼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최종예선에서 5차전에 일찌감치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뒤 자신에게도 출전 기회가 올 것이라 기대했지만 조 본프레레 감독이 통역을 대동하고 김영광에게 직접 6차전이 자신에게 굉장히 중요한 경기라 출전 기회를 주지 못해 미안해 했다고 한다. 다만 본선에 진출하면 꼭 기용할 것이라 약속을 했는데 최종예선 6차전에서 패배한 뒤로 본프레레는 경질 당했고 후임 감독인 딕 아드보카트는 월드컵 본선에서 기존 주전인 이운재를 계속 기용하였다. 이후로 허정무 감독 체제에서 이운재가 음주파동으로 잠시 대표팀에 뽑히지 않았을 때 기회를 잡지 못했고 이 시기에 이운재에서 정성룡으로 주전이 바뀌었다. 김영광에겐 아쉬운 시기가 될 듯하다.
  • 프리커버리라는 회사에서 김영광을 위한 전용 골키퍼 장갑을 제작하는데 나이키 베이퍼그립 RS와 매우 유사하다.
  • 팬 서비스가 매우 좋은 선수이기도 하다. 경기가 끝나고 팬들에게 일일이 사진과 사인을 해준다. 에펨코리아 등의 축구 커뮤니티에 '가자매아빠'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팬들에게 일일이 댓글을 달아준다. 그 외에 SNS나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팬들과 친근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보인다. 때문에 국축팬들 대다수가 좋아하는 호감형 선수이다. 서울 이랜드 소속이던 2018년 5월, 보배드림에 직접 글을 올려 직관을 부탁하였고, 이는 많은 유저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었다. 성남 이적 후 코로나로 직접 사인은 못해주지만, 골키퍼 장갑을 블랙존 팬들에게 선물하거나 인스타그램에 남긴 댓글에 일일이 호응해주는 걸로 대체한다.
  • 성남 FC에 입단 후에는 등번호 41번을 사용한다 데뷔할 때 썼던 등번호로, 초심을 이어가기 위해서라고 한다.
  • 2005년에 맥도날드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건강 캠페인을 함께 진행한 적이 있다. #
  • 어린 시절부터 레귤러를 해왔기에 아무리 골키퍼가 선수 생명이 긴 포지션이라지만 많은 경기 출장에 손가락 부상도 꽤 많이 당해왔고 이 부상을 안고 무리하게 출장하느라 결국 김영광의 왼쪽 4번째 손가락은 옆으로 휘어진 채로 붙어서 평생 결혼 반지를 못끼게 되었다는 사연이 있다.
  • 재미있게도 데뷔 시절부터 지금까지 유니폼 뒤에 적힌 이름은 영어식 표기인 young-kwang이 아닌 자신의 이름 '영광'을 그대로 영어로 바꾼 glory다.김글로리


[1] 자란 곳은 순천이다.[2] #[3] 2023년 11월 26일 기준[4] 역대 K리그 최다 출전 2위 1위는 김병지[5] 2008년 오른쪽 무릎 후방 십자인대 파열[6] 하지만 이로 인해 당시 K리그 몸값 거품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표 주자 중 한 명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7] 이런 까닭에 울산의 골키퍼 기대주였던 김지혁은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하게 되었다.[8] 주민규는 상무에서 시즌 막바지에 복귀했고, 그마저도 부상을 이유로 거의 출전하지 못하다 다음해 울산 현대로 이적했다.[9] 원래 김현이 차서 김영광이 막았으나 키커가 차기 전에 미리 골라인을 벗어나서 막았다는 이유로 다시 주어진 페널티킥을 아길라르가 차서 성공시켰다.[10] 서울 이랜드 FC의 첫경기이자 서울 이랜드의 잠실 첫경기였다.[11] 현재는 올림픽이 개최되는 해에 개최되는 AFC U-23 아시안컵 본선이 올림픽 예선을 대체하고 있다. 지금으로 치면 U-23 아시안컵 6경기(조별 라운드 3경기를 포함하여 8강부터 토너먼트 3경기)를 무실점으로 올림픽 본선행을 확정지은 골키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김영광은 올림픽 2차 예선부터 최종 예선까지 도합 8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이러한 기록은 올림픽 예선과 U-23 아시안컵을 통틀어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아주 위대한 업적이다.[12] 이후 김영광이 이천수의 유튜브 채널에 나와서 증언한 바에 의하면 마지막 지역예선 경기인 사우디 아라비아전을 앞두고 조 본프레레가 김영광 본인을 따로 불러서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 얘기는 이미 진출이 확정된 상황에서 김영광을 쓰고 싶었지만 사우디전이 워낙 자신에게 중요한 경기가 될 거 같아서 쓸 수 없다고 말했으며, 대신 지역예선 때는 이운재가 잘 했지만 체중 때문에 점점 실력이 떨어질 거 같으니 본선에선 김영광을 쓰겠다고 약속까지 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 약속은 사우디전 이후 본프레레가 해고되면서 지킬 수 없게 되었고, 김영광은 그대로 벤치를 지키게 되었다.[13] 김상식 - 김영광 사이의 콜 미스로 인해 김상식이 공을 받으러 나오던 김영광에게 패스를 하지 않았고, 그 상태에서 공을 뺏기고 어처구니 없이 로빙슛에 무너진 경기.[14] 이운재, 김용대, 김영광[15] 정성룡, 이운재, 김영광[16] 동시대에 자신을 밀어내고 주전을 차지했던 정성룡이 워낙 기복이 심하고, 잔실수가 많은 탓에 그를 주전에서 밀어낸게 미스터리라는 팬들도 있을 정도다.[17] 부상을 당하기 전에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을 통해 병역특례를 노려볼 기회는 있었다. 그러나 동메달까지 예술체육요원 자격이 부여되는 2004 아테네 올림픽은 8강에서 탈락했고 오직 금메달만 예술체육요원 자격이 부여되는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은 준결승에서 탈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