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6 16:49:49

김용대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1932년생 대한민국의 정치인에 대한 내용은 김용대(정치인)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전 경상북도 행정부지사에 대한 내용은 김용대(공무원)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제2대 드론작전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김용대(군인)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logo_jtbc3.png 파일:K리그1 로고.svg 중계진
{{{#!wiki style="margin: 0 -10px -6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22ad50> 진행자 <colbgcolor=#ffffff,#191919>임경진, 박용식, 윤영주, 이인환
해설자 김환, 김동완, 차상엽 }}}}}}}}}
김용대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파일:하나은행 FA컵 로고.svg
2004 · 2017
베스트팀
파일:K리그1 로고.svg
2010 · 2012
파일:AFC 챔피언스 리그 로고.svg
}}} ||
2022 시즌 K리그 해설진
파일:축구김용대.jpg
<colbgcolor=#001c48><colcolor=#fff> 이름 김용대
金龍大 | Kim Yong-Dae
출생 1979년 10월 11일 ([age(1979-10-11)]세)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퇴로리 334번지[1]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9cm[2] | 체중 82kg | 혈액형 A형[3]
직업 축구선수 (골키퍼 / 은퇴)
축구해설가
학력 밀양 밀성국민학교 (졸업)
남지중학교 (졸업)
거제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체육교육학 98 / 학사)
소속 <colbgcolor=#001c48><colcolor=#fff> 선수 부산 아이콘스/부산 아이파크 (2002~2005)
성남 일화 천마 (2006~2009)
광주 상무 불사조 (2008~2009 / 군 복무)
FC 서울 (2010~2015)
울산 현대 (2016~2018)
벽산 플레이어스 FC (2019)
해설 JTBC GOLF&SPORTS (2022~)
국가대표 파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21경기 11실점 (대한민국 / 2000~2008)
정보 더 보기
{{{#!wiki style="margin: 0 -10px -6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가족 <colbgcolor=#ffffff,#191919><colcolor=#000000,#ffffff>아내
장녀 김리유(2014년생)
차녀 김은유(2017년생)
종교 불교
선수콜 서울의 김용대 라라라라라라라라 서울의 김용대 언제나 널믿어 [4] [5]
}}}}}}}}} ||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해설 경력5. 기록
5.1. 우승5.2. 개인 수상
6.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축구선수. 현역 시절 포지션은 골키퍼.

2. 클럽 경력

2.1. 부산 아이파크(02~05)

2002년에 연세대학교 체육교육과(98학번)를 졸업하고 부산 아이콘스에 입단하였다. 입단 당시 1번을 달고 싶었지만, 이미 정유석이 차지하고 있어서 0번을 요구하여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0번이라는 유례없는 번호는 당연히 거절당했고 김용대는 그 후 40번을 선택했다. 2004년 FA컵 우승을 이끌며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 AFC 챔피언스 리그에도 출전했는데, 4강전에서 알 이티하드 FC에 도합 7실점을 하며 망신을 당했다. 부산 아이파크에서 85경기를 뛰고 성남 일화로 이적하였다.

2.2. 성남 일화 천마(06~09)

파일:김용대 성남.jpg

2006년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하였다. 이적 시즌인 2006년 K리그 우승, 2007년도 K리그 준우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2.3. 광주 상무 불사조(군 복무, 08~09.11)

2007 시즌 이후 병역 해결을 위해 당시 광주 상무로 입대, 주전으로 뛰며 50경기를 뛰고 2009년 11월에 전역하였다.

2.4. 성남 일화 천마

인천과의 2009 시즌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김정우와 교체되며 복귀전을 치렀다.[6] 이 경기에서 승부차기를 3개나 막아내는 활약 끝에 3:2로 승리를 거두었다. 남은 경기에서 주전으로 뛰고 있던 정성룡과 경쟁을 했지만 신태용 감독은 정성룡을 선택하였고, 그 결과 2010 시즌을 앞두고 FC 서울로 이적했다. 성남에서는 총 53경기를 뛰었다.

2.5. FC 서울(10~15)

파일:김용대 서울.jpg

이적 후 FC 서울의 주전 골리로 안정감있게 활약하며 2010년 더블(포스코컵+K리그), 2012시즌 K리그 우승, 2013년 ACL 준우승을 이끌었다. 이 때가 최전성기로 10, 12시즌 베스트 11과 12시즌 ACL 베스트 11에 올라가기도 했다. 2013 시즌 20라운드 제주전, 후반 추가시간에 제주가 얻어낸 PK를 선방해내며 끝끝내 무실점으로 팀의 1:0 승리를 지켜내는 명장면을 만들기도 했다.

2015 시즌을 치르면서 최용수 감독이 후보 골키퍼인 유상훈을 집중적으로 키우면서 단 12경기 출장에 머물렀다. 시즌 종료 후 그 해 최고의 활약을 펼친 유현을 영입하자, 김승규비셀 고베로 이적해 공백이 생긴 울산 현대로 이적한다.[7]

2.6. 울산 현대(2016~2018)

선수 소개 멘트는 울산의 수문장, 정신적 지주

윤정환 감독의 신임을 받으며 주전 골키퍼 자리를 꿰찼다. 대체적으로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가끔은 전성기를 연상케 하는 뛰어난 선방도 선보이고 있지만, 아무래도 나이를 속이기는 어려워서 가끔씩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특히 바로 전년도의 주전 골키퍼였던 김승규의 활약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는 경향도 있다. ACL 플레이오프 킷치 FC 전에서 1:1로 연장전까지 모두 끝나 경기가 승부차기로 접어들어 자칫하면 울산이 K리그팀 최초로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할 수도 있던 상황에,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의 PK를 선방해내어 울산의 조별리그 진출에 크게 기여한 적도 있다.

파일:김용대 기름기름열매.gif

2017 시즌 초반 주전 골키퍼로 출전했지만, 저조한 모습을 보이며 조수혁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게 된다. 조수혁이 좋은 활약을 보이며 울산의 상승세를 이끌었으나 이내 곧 다시 주전을 차지했고 주간 MVP에도 여러 차례 선정되면서 김도훈 감독의 신임을 받았다.

시즌 중반 베트남까지 가서 올스타전에 참가했는데, 후반전을 담당한 조현우 골키퍼와 함께 칭찬을 받은 선수였다.

2017년 FA컵에서 팀의 우승에 기여하고 13년 만에 다시 한 번 FA컵 MVP를 수상하였다.

2018년 AFC 챔피언스 리그로 일정을 시작했지만, 작년보다 더 저조한 몸놀림을 보이며 팬들의 불안과 원성을 듣고 있는 중이며,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2018 시즌이 끝난 뒤 계약 만료로 울산을 떠났다.

그 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이강, 송종국과 함께 SLFC라는 클럽에서 지도자 생활에 전념하고 있다.

2019년 4월 20일 울산 홈에서 열리는 성남 FC와의 K리그 1 8라운드 경기에서 은퇴식을 치렀다.

2.7. 벽산 플레이어스 FC

프로 무대에서 은퇴한 이후, 의류 브랜드인 플레이어스의 모델로 발탁되어 2019년에는 대한민국 5부 리그인 K5리그 서울권역 우승팀인 서울 벽산 플레이어스 FC에서 잠시 플레잉 코치로 뛰기도 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일시적이었고, 이후에는 플레이어스가 용품을 공급하는 "김용대 GK 아카데미"라는 축구 교실을 운영하여 유소년 골키퍼 양성에 전념하고 있다.

3. 국가대표 경력

3.1.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1 이운재 [[와일드카드(스포츠)|
W
]] · 2 조병국 · 3 현영민 · 4 박요셉 · 5 김영철 [[와일드카드(스포츠)|
W
]] · 6 박용호 · 7 변성환
8 김두현 · 9 이천수 · 10 박지성 · 11 최태욱 · 12 이영표 [[와일드카드(스포츠)|
W
]]
VC
· 13 김동진 · 14 박규선
15 조성환 · 16 김용대 · 17 최성국 · 18 김은중 · 19 박동혁 · 20 이동국
C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박항서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최강희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최진한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김현태


3.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 예선 라오스 전에서 데뷔하였다.[8]

준수한 외모와 빼어난 실력[9] 덕분에 2000년대 초반에는 김병지, 이운재를 이을 차세대 국가대표 골키퍼로 각광을 받았지만,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거스 히딩크 당시 대표팀 감독은 2001년 말에 선수들 개개인에게 체력단련과 관련된 숙제를 내줬었는데, 2002년 초 대표팀이 다시 소집되었을 때 보여준 김용대의 체력은 도저히 숙제를 잘 했다고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결국 이후 식사 시간 때 실컷 포식하는 모습을 보이며 불성실한 선수라고 찍혔으며[10], 결국 써드 키퍼 자리는 성실하게 훈련에 임한 선배 최은성에게 돌아갔다.[11]

그래도 2003년 출범한 코엘류호부터 대표팀 넘버2로 급부상했고 김영광과 함께 꾸준히 대표팀 넘버2 자리를 두고 경쟁했다.

1 이운재
C
· 2 김영철 · 3 김동진 · 4 최진철 · 5 김남일 · 6 김진규 · 7 박지성 · 8 김두현
9 안정환 · 10 박주영 · 11 설기현 · 12 이영표 · 13 이을용 · 14 이천수 · 15 백지훈 · 16 정경호
17 이호 · 18 김상식 · 19 조재진 · 20 김용대 · 21 김영광 · 22 송종국 · 23 조원희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딕 아드보카트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핌 베어벡
스태프
파일:미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압신 고트비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홍명보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정기동



2006 FIFA 월드컵 독일 때도 김영광과 함께 백업 골키퍼로 뽑혔지만, 체중 논란에도 불구하고 눈부신 선방을 보여준 이운재의 벽에 막혀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아시안컵 본선 명단에 들긴 했지만, 역시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상황을 반전시킬 뻔했던 때는 2007년 2월 그리스와의 평가전인데, 말 그대로 눈부신 선방으로 1:0 승리를 거의 단독으로 캐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맹활약을 보였다. 경기 종료 후 카메라도 김용대를 단독으로 잡을 정도였고, 때마침 본인도 굉장히 만족한 듯한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이후 국가대표 커리어에 서광이 비치는 듯 했으나... 끝내 주전을 꿰차는 데에는 실패했다.

2008년 5월 31일,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시아 지역예선 요르단전에 출전했는데, 2:2 무승부로 경기가 끝났다. 해당 경기 전반전, 후반전. 이 경기가 국가대표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또한 이운재의 기량이 떨어질 쯤에는 성남에서 잠시 경쟁했던 후배 정성룡까지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전도 좌절되고 태극마크와 점차 멀어졌다.

1 정성룡 · 2 최효진 · 3 황재원 · 4 조용형 · 5 곽태휘 · 6 이용래 · 7 박지성
C
· 8 윤빛가람
9 유병수 · 10 지동원 · 11 손흥민 · 12 이영표 · 13 구자철 · 14 이정수 · 15 홍정호 · 16 기성용
17 이청용 · 18 김보경 · 19 염기훈 · 20 김신욱 · 21 김용대 · 22 차두리 · 23 김진현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조광래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박태하
스태프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서정원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김현태 · 파일:브라질 국기.svg 알렉산드레 가마


그렇게 한동안 대표팀과 인연이 없다가 약 2년 반만에 선발되었다.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최종 명단에 선발은 되었지만,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최전성기를 맞이한 서울 시절 때도 2012 런던 올림픽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2015 AFC 아시안컵 호주를 거치며 이범영, 김승규, 김진현 등 젊고 실력 있는 자원들이 속속 등장한데다 나이 문제도 있었는 바람에 국대 재선발은 되지 못한 채 은퇴했다.

4. 해설 경력

은퇴 이후 2022년부터 JTBC 스포츠 K리그1 4월 10일 9R 강원 FC vs 포항 스틸러스경기에서 처음으로 현장해설을 하게된다.

2022년 5월, 해설에 대한 평은 매우 안 좋다. 매끄럽지 못한 멘트, 재미와 감동, 쓸모없는 해설, 좋지 않은 발음, 명확하지 않은 문장 등 지적받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샤우팅을 하다가 삑사리를 내는 둥, 해설 위원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른 지적들은 선수 출신 해설자가 많이 겪는 문제라고 칠 수도 있겠지만, 캐스터가 말한 내용을 반복하는 정도의 멘트만 할 뿐 해설자로의 분석이 거의 없는 것은 큰 문제로 보인다. 축구 해설자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소라고 한다면, 축구 규칙이나 각 팀의 전술적 포인트나 전술 변화 등 캐스터가 전하기 어려운 전문적인 축구 지식을 전하거나, 선수 출신의 입장에서 각 선수들의 경기 상황에 따른 심리 상태나 플레이의 변화 등을 전해 주는 것이 필요한데, 이러한 준비를 거의 하지 못한채 이름값 만으로 해설에 투입된 것이다.

실제 중계로도 나왔던 아래와 같은 멘트들을 보면 이해가 쉽다.
"자신감이 생겨서 슛이 떴어요."
"(수비)발에 안 걸렸으면 좋은 찬스가 나올 수 있었어요."
"~선수가 컨디션이 좋으니까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고비를 어떻게 넘길지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1 대 0 스코어는 얼마든지 뒤집어질 수 있기 때문에 서울은 조심해야 하고 김천은 공격적으로 해야합니다.""수비 안정화를 가져가기 위해서 김천은 수비 실수를 줄여야 합니다."(2022.5.28 서울:김천 경기)

이렇게 단순한 멘트만 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당연히 캐스터도 쉽게 할 수 있는 멘트들이다. 전술적인 분석, 해당 상황에서 각 선수들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등에 대한 해설은 듣기가 매우 힘들다. 게다가 선수 교체를 할 때는 전술적인 변화나 포메이션, 감독의 의도 등 해설로서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이 얼마든지 있는데도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다.

이러한 여러 이유로 박찬우, 서호정, 이상윤, 서형욱, 김대길 같은 사람들이 K2리그를 해설하고 있는데 왜 김형일, 오범석, 김용대 같이 경험 없는 사람들이 K1을 중계하느냐며 축구팬들의 불만이 계속 나오고 있다.(14라운드 서울vs성남 경기가 대표적인 예) 가뜩이나 말을 조리있게 하는 편도 아니고, 골키퍼라는 특수 포지션 출신이라 해설하는 것에 어려움이 예상되었는데 별다른 실전 경험도 없이 1부 리그 해설을 하고 있으니 단점이 너무 무방비하게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5. 기록

5.1. 우승

  • FC 서울 (2010~2015)
    • K리그1: 2010, 2012
    • FA컵: 2015

5.2. 개인 수상

6. 여담

  • 미중년이다. 불혹이 넘은 나이인만큼 얼굴에 주름이 조금씩 생기고 몸놀림도 무뎌졌지만, 그래도 미남이다. 거기에 대부분의 골키퍼들이 그렇듯 체격도 상당히 훤칠한 편이다.
  • 첼시 등 EPL에서도 감독 생활을 했던 고 이안 포터필드 감독이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산 아이파크 선수들 가운데 빅리그로 갈 수 있는 재능으로 김용대를 꼽았다.
  • 광주 상무를 제외하고 소속됐던 모든 구단에서 우승을 거머쥔 우승청부사 기질도 있다.


[1] #. 이 지번에 있는 퇴로정 한옥카페가 김용대의 생가라고 한다.[2] 한국프로축구연맹 기록. 링크[3] #[4] 서울시절선수콜이다[5] https://www.youtube.com/watch?v=BU0jD1Oqo1k[6] 이 경기에서 골키퍼로 뛰고 있던 정성룡은 잠시 필드 플레이어로 뛰었다.[7] 이적 당시 친정팀 FC 서울과의 경기에는 출전할 수 없다는 조항을 달아놨다.[8] 이때 김용대는 연세대 재학생 신분이었다.[9] 거스 히딩크도 차후 3~4년 열심히 하면 국대 주전이 될거라 예상했었다.[10] 다만 세간에 알려졌던 아이스크림을 자주 먹었다는 것은 오해로, 대표팀 선배들이 김용대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오라고 시켰는데, 그 광경을 히딩크가 보고 김용대 본인이 먹으려고 구매한 것이라고 오해한 것이 와전된 것이다.[11] 히딩크호 초기엔 이운재 - 김병지 - 김용대 순이었지만, 김병지가 윙병지 사건으로 잠시 대표팀에 뽑히지 못할 때 서드 키퍼 김용대가 잠시 세컨드 키퍼 자리를 맡았다. 이 시기에 대표팀에 발탁된 또다른 선수가 최은성이다. 최은성은 알려진 대로 자기관리가 철저한 선수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것이 결국에는 히딩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후 김병지가 다시 세컨드 키퍼로 복귀하게 되고 김용대가 탈락하면서 이운재 - 김병지 - 최은성 3인 체제로 월드컵 본선을 치렀다. 실제로 국제 대회에서는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비주전 선수들이 팀을 위해 희생하는 자세로 분위기를 잘 유지하는 것이 팀의 성적에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서드 키퍼나 백업 수비수 등의 경우 훈련 태도나 다른 팀원들과 관계가 실력보다 더 중요한 선수 선발요인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