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1-23 11:25:18

조광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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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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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대 감독
조광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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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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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기간 2010년 7월 21일 ~ 2011년 12월 8일
(1년 5개월 / 506일)
계약 종료 (성적 부진에 따른 경질)
연봉 5억 5000만 원 (감독 / 추정치) #
전술 스타일 티키타카
┗ 점유율 중시
3-4-3 또는 4-1-4-1 포메이션
성적 A매치 20전 12승 5무 3패 (승률 60%)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3위)[1]

1. 개요2. 취임3. 활동4. 해임5. 팀 스타일
5.1. 만화 축구
6. 언론과의 관계7. 평가8. 전적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제68대 감독 조광래의 대표팀에 대해 다룬 문서.

전임 허정무 전 감독은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후 감독직을 그만두었다. 그의 후임으로 조광래 전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허정무 전 감독이 남아공 월드컵이 끝나고 감독직에서 물러난뒤 차기 감독 후보 리스트에 있던 감독들이 모두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2] 이때 조광래 전 감독이 자신이 직접 대표팀 감독직을 맡고 싶다는 의견을 표했고, 축구협회는 자신들과는 정반대 성향을 가진 사람을 꺼렸지만, 분위기나 시기상 조광래 감독 밖에 없었기에 맡긴 것으로 보여진다.

2. 취임

파일:/image/076/2013/05/23/2013052401001850900150841_59_20130523155610.jpg
조광래는 취임할 때 많은 축구팬들의 환영을 받았는데 그가 비주류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대한축구협회의 주류였던 허정무에 대조되어 더 환영받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편견이다. 조광래는 청소년 시절부터 천재로 이름을 날렸으며, 연세대-상무-화랑 팀을 거친 대표적인 엘리트 선수였다. 차범근, 허정무, 조광래는 화랑 팀을 대표하는 선수로, 이들이 차례로 대표팀을 맡은 것이 우연이 아니다. 더욱이 지도자 생활도 대우-수원-안양-서울 등 당대의 명문팀만 거치다가 잠시 공백기를 갖고 경남을 맡은 것이다. 결코 비주류가 아닌 비장의 카드라고 보아야 옳다.

조광래 전 감독이 축구계 비주류로 여겨진 이유는 1993년 이후 지속된 정몽준 체제의 운영에 대해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한 일명 축구계 야당 인사이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지배적이다. 2003년 베스트 일레븐 지와 인터뷰만 봐도 1990년대 후반에 스포츠신문에서 당시 조중연 축구협회 전무를 정몽준 빽으로 버틴다고 대놓고 비난했다고 밝힌 바 있다. 빡돈 조중연이 프로축구연맹에 항의하여 감독 자리에서 해임시키라고 요구했다가 축구연맹회장이 거절한 일도 있었을 지경이라고 한다. 그래서 2009년 축구협회 회장선거 당시 조중연 회장 후보도 정몽준 체제의 연장 선상이라면서 반대 후보인 허승표씨를 지지했다.[3]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당시 네티즌들의 연령대가 1986 아겜을 마지막으로 대표팀 은퇴한 조광래가 어느 정도 위상인지 알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광래 국대 은퇴 당시 20살이면 67년생이라 2011년에는 40대 중반인데 최소 40대 중반은 되어야 조광래가 누구인지 어느 정도 알텐데 이런 사람들은 imf를 20대 초반에 직격으로 맞은 세대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이러쿵저러쿵 할 시기는 아니었다. 나무위키도 없엇고, 조광래 시기는 국대 동영상 자료도 남아 있는 게 별로 없어서 그냥 네티즌들이 잘 몰라서 그랬던 것이 사실 제일 크다.

다만 이 부분은 사정을 잘 모르는 네티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많은데, 예나 지금이나 축구협회 회장은 만만한 자리가 아니다. 국대가 국민들 사이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았던 만큼 높으신 분들의 관심도 높았고, 그만큼 정-재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들이 거쳐갔다.

역대 축구협회 집행부 목록을 보면 뭥미? 소리가 절로 나는 이름들이 회장으로 나오는데 여운형, 신익희, 윤보선, 장택상 등이다. 방금 머리에 떠올린 그 전국구 정치가들이 맞다. 백번 양보해서 이 때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넘긴다손 쳐도, 1960년대 최치환 회장은 이승만 대통령 비서관 출신인 국회의원이자 경향신문 사장을 지낸 언론인이었고, 1970년대 장덕진 회장은 행시, 사시, 외무고시를 패스한 국보급 천재에다 육영수 여사의 조카와 결혼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직책이 청와대 경제 수석비서관 & 재정차관보. 그 뒤를 이은 고태진 회장은 조흥은행장, 김윤하 회장은 국회의원, 1980년대 최순영 회장은 신동아그룹 회장, 김우중 회장은 대우그룹 회장,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사람이 바로 정몽준 회장으로 현대중공업 고문이다. 참고로 정몽준의 대항마라는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은 GS그룹 허만정 회장의 아들이다. 그리고 정몽준 전 회장의 뒤를 이은 조중연 전 회장에 이르러서야 최초의 선수 출신 회장을 볼 수 있게 되었다.[4]

저 엄청난 감투들만 봐도 알겠지만, 조중연 전 회장을 제외하면 어지간한 정재계 파워 엘리트가 아닌 이상 꿈도 꾸기 힘든 자리이다. 그리고 월드컵, 올림픽 진출, 아시안컵을 포함한 각종 대회 우승 등의 유형 무형의 실적을 내리라 기대를 받을 만한 사람들이었고, 그 기대에 못 미치는 순간 국민들의 분노와 함께 여태까지의 위상과 상관없이 대다수가 감독과 함께 냉정하게 떨려나갔다.

흔히 재야 인사로 알려진 신문선 같은 경우 김우중 시절부터 시작해서 정몽준 시절 축구협회 이사직까지 역임했고, 이용수 역시 기술위원장을 역임하며 거스 히딩크를 강력하게 쉴드[5] 바 있다. 까놓고 말하자면 아무리 언플하며 고고한 척 해봤자, 좁은 축구판에서는 정몽준 현대 계열과 허승표[6]계열 양대 라인 중 어디를 탔느냐 입장 차이일 뿐이다.

조광래가 비주류처럼 여겨졌던 이유 중 하나는 격한 성격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김호 전 감독과 불화 에피소드에서 잘 나타나지만 뭔가 아니다 싶으면 속에 담아두지 않고 곧장 내뱉는 스타일이라 축구협회와 갈등을 빚을 소지가 다분했다. 아니나 다를까, 2011년 5월 올림픽 대표팀 차출 문제를 놓고 이회택 부회장과 한바탕 붙었다.

3. 활동

3.1.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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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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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해임

2011년 12월 7일, 언론을 통해 전격 경질 사실이 터져나왔다.

레바논 원정에서 1:2로 패배한 레바논 쇼크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쿠웨이트와의 마지막 경기 결과에 따라 월드컵 본선도 아닌 최종예선 진출 여부가 꽤나 진지하게 결정되는 벼랑 끝에 선 상황이 되었고, 조광래는 한 달 후 전격 해고된 것이다.[7]

후임 감독은 외국파 중에서는 물 건너 J리그에서 감독직을 하고 있는 압신 고트비, 국내파 중에서는 최강희 감독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대한축구협회에서 강력하게 밀고 있는 모 감독을 대표팀에 픽업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음모론이 튀어나올 만큼 너무 급작스러운 경질이었다.

당시로서는 최강희 감독을 비롯한 국내파 감독이 감독직을 수락할 가능은 적었다.

당장 쿠웨이트전 날짜가 2월 29일, 즉 두달 반 가량밖에 남지 않은 빠듯한 스케줄인데다, 이날 패하기라도 하면 브라질행 티켓은 사라지는데 중대한 시합인데 심지어 그건 최종예선조차도 아니다. 국가대표 감독을 맡을 만한 능력 있는 한국인 감독 중에서 단 한 번 패배로 감독 커리어를 통째로 말아먹을지도 모르는 커다란 리스크는 쉽지 않다.[8]

조광래를 경질하려면 차라리 레바논전 직후에 바로 경질했어야 하긴 했다. 그러나 애초에 최종예선도 아닌데 패하면 탈락하는 위기에 몰린 조광래부터가 문제였다. 탈락하고 다음을 노리자는 것은 말도 안 되고, 감독 경질 효과라는 게 있긴 있으니 자르는 것 자체는 말이 되긴 했다.

조광래는 12월 9일 코칭스텝과 한데 모인 자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기술위원회가 축구협회의 고위층이나 외부의 영향력 있는 집단의 입김에 휘둘리는 존재가 된다면 한국 축구의 미래는 어둡다."라고 축협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후 축협이 코칭스텝에게 잔여 연봉 지급을 거부하자 12월 26일 선수 발탁에 외압이 있었음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어 작심한 듯 축구계의 초대형 지뢰를 밟아버렸다.

이후 말 그대로 축협은 조광래를 해고했다. 부랴부랴 축협은 오해 드립을 시전했으나[9] 이미 조광래 해임부터 후임 최강희 선임까지 축협이 보인 행보는 지리멸렬 그 자체였다.

축협의 졸속행정에 대한 비판, 그리고 타산지석을 못하는 팬들의 행태 등에 대한 비판은 맞고 당시로서 대안도 사실상 없었다는 중대한 위기상황이었긴 했으나[10] 조광래가 자를 만한 성적이었던 것은 맞았다. 그리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성적을 거뒀으면서도 오히려 자기가 압박을 못 이겨내고 화가 나서 자기 누울 자리 못 보는 극단적인 언플로 더더욱 자기자신에게 위기를 초래한 것이 조광래였다.[11]

현재 언론을 통해 하나둘씩 밝혀지는 전후 사정에 따르자면 역시나 절차대로 기술위원회를 거치지 않고서 높으신 분들이 모여 뚝딱 결정을 내린 밀실 행정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축구협회가 다음 감독감은 김호곤밖에 없다는 떡밥을 흘리면서 처음부터 짜고 치는 고스톱 수순으로 밀실행정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들끓고 있다.[12]

언론은 외국인 감독으로 고트비 말고도 전 잉글랜드 국대 - 맨시티 감독이었던 스벤예란 에릭손,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등을 언급하고는 있으나, 허정무의 후임으로 그 많은 해외 감독들 다 고사하고 결국 국내파 조광래를 불러온 걸 보면 실현성은 높아보이지 않는다.

5. 팀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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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싱 플레이를 통해서 FC 바르셀로나와 비슷한 축구를 추구하고자 한다고 천명했다. 결국 월드컵 예선에서 레바논에게 실력으로 패배한 뒤 조광래 전 감독은 해임되고 말았다.[13]

이해할 만한 부분은 있긴 한 게 이 당시 이런 감독들이 국대와 클럽을 가리지 않고 무수히 범람했던 시기다. 티키타카가 전세계 축구에 그만큼 강한 파급력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감독들이 대체로 실리형은 아니라 좀 또라이 같은 부분을 다들 가지고 있었는데 조광래는 그 중에서도 가장 악질 축이었다. 한국으로 바르샤 축구를 실현하겠다는 게 실력상 말이 안 되는 것이고, 결국 축구에서의 승패를 가르는 실리에 불과한 전술을 자기가 생각하기에 아름답다, 멋있다, 선진적이다라는 생각에 매몰된 개념부터가 문제가 있었다. 애초에 저렇게 대놓고 외국 클럽팀 포메이션과 이름에 자기 선수들 박아넣는 국대 감독이 좀 제정신은 아니다. 기자에게 소스를 준 걸 받아적은 건데 누구도 타 팀 타 클럽에 대해 저렇게까지는 안 한다.[14]

박지성이 은퇴한 직후에는 박주영의 폼이 멀쩡했던 덕분에 중앙에서 버티는 힘이 있긴 있었다. 그러나 사실 머나먼 대륙에 있는 팀을 한국으로 불러서 하는 평가전은 초강팀과의 대결이 아닌 이상 떡밥매치에 가깝고, 이 시기까지 3차예선은 어느 정도는 당연히 이겨주고 넣어줘야 하는 게임들이다. 레바논전 직전에는 이청용은 장기부상이고 구자철도 주전경쟁에 어려움을 겪는 시기라[15] 박주영이 버티고 있었는데 그 박주영이 빠져서 레바논전에 졌기에 박주영의 최고시절이나 조광래호의 구세주처럼 생각되는 부분이 있는데 맞기도 틀리기도 하다.

일단 이 시기의 3차예선과 같은 게 벤투호 시절의 2차예선인데, 김신욱이 벤투호에서 마지막으로 소집되었을 때 아시아 레벨이 올라갔음에도 한 경기에서 4골을 박아넣은 적이 있다. 조광래호 시절 홈에서 레바논을 6:0으로 대파했듯이 이 레벨에서의 연속득점으로 한국 중앙 공격수의 폼이나 업적을 박주영만이 버텨주고 있다는 식으로 너무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다. 물론 좋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조광래가 해임되고 소집된 이동국 역시 바로 평가전, 실전에서 연속으로 득점했다.

까고 말해서 조광래 해임의 큰 이유 중 하나가 국민 전체를 보면 이동국과 박주영은 스타일의 차이가 있는 건 맞지만 둘 중 누군가에게 우위를 확고히 주기에는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이동국이 2011년 공격포인트를 30개 이상 올리며 케이리그를 폭격할 정도로 절정의 폼을 보이는데도 개똥고집을 부리면서 소집하지 않다가 박주영 없으니 필드골 없이 레바논에게 패배하면서 탈락 위기가 다가오니까 국민은 국민대로 축협의 전문가들도 그들대로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박주영만이 최후의 보루였었다는 게 조광래호의 운영상 현실적으로는 맞는 말이기도 한데, 아시아권에서 한국이 무슨 에이스 한둘에게 의지하는 아시아 2진 3진급 팀도 아니고 고작해야 3차예선에서 그 꼬라지가 나도록 운영을 한 게 말이 안 되는 것.

조광래호 전술의 핵심이라는 포어리베로를 찾는데 실패한것도 컸다. 기성용에게 이 포어리베로 역할을 맡기면서 3백에서 4백으로 포메이션 변화를 주었지만 최종예선도 아닌데 마지막 경기인데도 탈락위기까지 몰리는 최악의 모습을 보이며 실패했다. 비록 마지막 레바논 쇼크 때 기성용이 출장하지 않긴 했으나 그동안 경기력이 대내외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레바논에 지기 전까지 챙길 수 있는 승점을 다 챙겼다면 위기에 몰리진 않았다.[16]

조광래호를 기점으로 대한민국 축구의 특징이자 강점이었던 투박하지만 강한 체력으로 상대를 압박한 후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역습 및 침투를 보여주던 선 굵은 축구 색이 사라지고, 의미없는 횡패스 백패스만 주고받으면서 점유율만 높여가는 무특성 축구로 변해버렸다.[17] 더군다나 이 때 뻥축구는 구식, 최신 문물인 티키타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으로 언론이 억지로 대세를 만들었다.[18][19]

이 조광래호 시절부터 슈틸리케호 시절까지는 강한 체력, 빠른 스피드, 역습 및 침투 전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강한 체력은 초반 20분 압박한 걸로 체력 다 빠져서 후반 30분만 되면 헥헥대고,[20] 상대 수비수 하나를 못 제껴서 몸싸움 조금 하다 나뒹굴고 심판 바라보면서 팔 활짝 벌리는게 국대 공격수들이 매 경기 보여주는 모습이며 역습해야 할 때 의미없이 옆으로 횡패스하면서 상대 수비수들 자리잡을 때까지는 공격하지 않는 신사축구, 드리블 조금 하다가 상대 수비수 한 명 붙으면 책임전가 백패스 후 빌드업이라고 포장하는 추태가 반복되었다.

그리고 벤투가 오면서 그 모습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지만 조광래호와는 다르게 공격적인 부분은 많이 개선 되어 2022년 최종 예선에서는 큰 어려움 없이 통과했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본선에서도 성과를 보여주었다.[21]

5.1. 만화 축구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1060802672_0.jpg
그는 취임식 때 더 아름답고 세련된 축구를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는데, 이후 이청용이 조광래의 공격전술에 대해 '머리로는 다 이해하고 있는데 경기장에서 실제로 나타내기는 어려움이 있었다, 만화에서 나온 축구'라고 말했다.[22][23]

이청용의 발언이 실제로는 상당한 비판이었지만 조광래는 오히려 매우 좋아했다.[24][25] 조광래는 스페인FC 바르셀로나 같은 패스 축구를 꾸준히 추구해서 되게 만들겠다는 의견이었는데, 당시 전세계를 통틀어도 이걸 비슷하게 흉내라도 낼만한 팀도 없었다.[26] 심지어는 바르셀로나의 최고의 에이스인 리오넬 메시를 직접 보유한 아르헨티나조차 불가능했다. 그런데 그런 선수가 아무도 없는 한국의 실정에 이 전술은 맞지 않을 수밖에 없다. 박지성이 빠지고 나서는 그냥 단순히 선수들을 마구 굴리는 경기가 되고 말았다.[27]

발상이 아무리 좋아도 조광래의 대표팀 선수 선발 및 운영을 보면 그 결과가 좋게 나올 수 없었다는 것이다. 조광래는 국가대표팀에서 주전 멤버 11명을 최대한 빨리 확정해서 그들만 가지고 월드컵까지 내내 돌리면서 아름다운 축구를 하겠다는 주장이었는데 그야말로 만화 같은 발상이다. 좋은 아이디어와 허무맹랑한 공상의 차이는 발상을 현실화하고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의 유무 차이다.

국민들이 이청용의 발언을 빌려 조광래의 전술을 '만화축구'라고 비아냥대었던 이유는 단순히 조광래호의 일본전, 레바논전 결과가 안 좋아서가 아니었다. 국민들이 생각해도 세계 최고의 클럽 하나만 하는 걸 하겠다고 하니까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고, 조광래가 그 해결책으로 제시한 베스트 11 확정 후 4년간 주구장창 돌리기도 만화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28]

시대가 흘러서 조광래가 좋아하는 쓰리백이 찾아오긴 했지만 조광래의 맥락과는 큰 관련이 없는 것으로 생각이 된다. 조광래가 망하고도 한참 후에 찾아온 흐름이 쓰리백인데 스페인 축구에 전세계가 달아오르면서 모두가 다 포백을 쓰던 시대흐름도 그렇고, 이제 여기에 카운터를 먹고 먹이면서 쓰리백까지 가는 흐름을 조광래가 단숨에 거기까지 통찰해냈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그냥 쓰리백을 좋아했던 것이고 만약 쓰리백까지 가는 흐름을 통찰해냈으면 경기 내에서 그런 모습이 보여야 되는데 없었다. 그리고 승률은 원래 최종예선, 월드컵 대비 평가전, 월드컵 본선 등을 하면서 떨어지는 거고 떡밥 매치나 예열용 아시아 예선을 이기면 올라가는 거라 조광래가 최고 승률이라고 해도 실전에서는 아시아 최종예선도 아닌 곳에서 탈락위기를 맞이한 만큼 아무 의미가 없다. 슈틸리케호도 이 정도 시기까지는 승률이 아주 좋았고 히딩크호는 실전 들어가기 전까지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이름값으 나름대로 한국과 비슷해서 그럴싸해도 한국 홈으로, 지구 반대편으로 부르는 평가전 떡밥 매치는 어지간하면 이기게 되어 있는 거라 세부적인 사항들이 문제인 거지 승률은 별 의미 없다.

6. 언론과의 관계

직언을 꺼리지 않는 성격 덕분에 10년 넘게 스포츠 지면에서 칼럼을 연재했다. 그리고 이 무렵 칼럼에서 안 씹어댄 감독이 없다.[29] 차범근부터 베어백까지 오만가지 이유로 까였다.[30] 그야말로 축구계의 모두까기 인형. 특히 유럽의 강팀과 경기를 벌여 참패를 당하고 모든 선수들을 대상으로 주전 경쟁을 시켰던 거스 히딩크에 대한 비난이 매우 컸는데, 이는 일찌감치 베스트 일레븐을 확보해서 그들 위주로 경기를 해야 한다는 조광래의 생각이 서로 대비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대표팀 감독 부임 초기에는 언론과 호의적인 관계였다.[31] 이런 밀월 관계 덕분에 까여야 할 때 안 까이고 별것 아닌 결과를 내도 언론이 앞장서서 포장해주고 있었다. 당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 기록과 '아시안컵 세대교체' 덕분에 팬들이 대표팀에게 긍정적인 시선을 던지던 때라 언론 역시 이런 논조를 유지했다. 하지만 삿포로 참사 이후 팬들의 신뢰를 크게 잃었고, 이동국 기용 논란이나 손흥민 파동, 해외파 중시, 들쭉날쭉한 경기력 등 불만 섞인 목소리가 터져나오면서 언론에서도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경기 며칠 전에 언론을 상대로 스타팅 명단, 전술을 모두 까발리고 시작한다는 거다. 물론 언론이야 기사거리가 되니까 좋다하고 취재해가지만 이건 전술을 감추고 시작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천명하는 셈이 된다.[32][33]

그리고 대망의 2011년 11월 15일. 레바논에게 완패를 당한 이후 그나마 남아있던 호의적인 언론과 전문가 역시 가루가 되도록 까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조광래 본인은 선수 탓, 심판 탓, 잔디 탓을 하고 있다.[34] 잔디나 훈련 등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거저거 비교하고 생각해 보면 결국 조광래가 못했다는 얘기밖에 더 안 된다.

충격적 패배라 조광래 전 감독 본인을 겨냥한 노골적인 기사들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비뚤어졌다' 라는 말까지 나오니...
조광래 전 감독, 선수들 ‘힘’ 빼기 명수?
김정우는 왜 없나, 조광래호의 비뚤어진 시각

그리고 이제는 부상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기성용을 무리하게 차출시킨 건에 대해서 셀틱의 레논 전 감독이 불만을 토로하기까지 했다. # 선덜랜드의 브루스 전 감독도 조광래의 지동원 관련 발언에 대해서 한 마디를 하기도 했고. # 국가대표팀과 클럽 간의 선수 차출에 관한 잡읍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지만, 보통 국가대표팀으로 차출된 선수가 부상당해 돌아와서 생기는 잡음이 대부분이지, 부상중인 선수를 차출시켜 잡음이 생기는 상식 미만의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7. 평가

파일:2011111600019_0.jpg
한국 축구 몰락의 서막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실패도 그냥 실패가 아니고 깊은 상처와 후유증을 남긴 처절한 실패가 되었다. 2010년대 대한민국 축구의 암흑기를 연 신호탄이었다.[35]

시간이 지나면서 최강희호의 힘겨웠던 본선 진출이나 홍명보호의 대실패로 인해 재평가하는 여론과 조광래가 최소 월드컵까지는 맡았어야 한다는 말 역시 나오기도 했다. 특히 '그나마 만화축구가 보는 재미는 있었다', '전술 완성에 시간만 더 주었더라면 훨씬 나았을 거다', '만일 최강희가 아니라 조광래였으면 본선 진출에 크게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축협이 끈기가 없어도 너무 없다' 등의 여론들이 꽤 있는 편이지만 전체를 조망하는 게 아닌 파편적인 사고에 의한 발언이었다. 조광래호는 그냥 대실패였다.[36]

선수 시절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고, 경남fc에서 지도력과 돌풍을 보여준 것은 맞지만 결과는 대실패였다. 전술적인 부분에서 실제로 조광래는 문제가 많았다. 조광래가 초기에는 좋았다, 보는 재미가 있었다는 의견이 많은데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은 당시 화려한 언론의 지원사격을 등에 업으며 첫인상을 좋게 가져간 효과가 컸고, 실상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망상적 전술임에도 박지성이라는 세계 최고의 전술능력을 가진 선수의 등에 업혀서[37] 감독이 잘 하고 전술이 뛰어난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슈틸리케호, 최강희호보다 안 좋은 게 실제로 보는 재미와 전술능력 등도 박지성에 업혀가는 거라 이미 해외 언론에서조차 한국 이상한데? 왜 저럼? 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시아 3차예선에서조차 축 처져 있던 것이 박지성 빠진 조광래호였다.[38]

결정적으로, 대표팀 선수를 국내파 vs 해외파 구도로 나누게 한 장본인이 바로 조광래이다.

인터뷰에서도 대놓고 "해외파에게 상처를 주어선 안 된다."라는 말도 안 되는 발언을 했는데 언론 앞에서 이럴 정도면 내부 운영은 어떻게 했을지 가관인 수준이다. 조광래호 아래에서 박주영이 계속 득점하면서 보여주긴 했으나, 어쨌거나 출전하지 못한 선수를 계속 소집하는 것도 논란이 되었다. 별로 문제가 없을 수는 있으나 이동국이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 이청용이 부상으로 아웃되어서 소속팀인 볼턴 원더러스 FC에서 대표팀 차출이 안 된다 하는데도, 조광래 본인이 확인할 테니 비행기 태워 한국까지 보내라는 어처구니 없는 발언으로 보기에 추하기도 했고 편애가 지나치게 심했다.

본인은 국내파들이 해외파들의 속도를 못 따라잡는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J리그에서 뛰는 선수들도 해외파로 분류하면서 사람들을 도무지 납득시키지 못했다. K리그와 J리그에 스타일 차이는 있지만, 절대적인 선수 퀄리티 소위 말하는 육각형 크기 자체에 극적인 차이가 없으니 결국 무조건 자기 스타일대로 하겠다는 아집에 불과했다. 게다가 경기 전에 언론에다 대놓고 선발 라인업, 전술 등을 미리 공개하는 행위라던가, 폴란드와의 평가전에서 교체 인원 초과로 A매치 인정을 못 받게 하는 등 이해 못할 엽기적인 짓거리를 상당히 많이 했다. 이래놓고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이후 베스트 일레븐 인터뷰에서나에게 시간을 조금 더 주었더라면...이라고 변명하기도 했다. 관련 링크.

조광래의 편애가 선수들은 물론 언론, 팬들까지 갈라치기가 되는 최악의 사태로 번지면서 2010년대 한국 대표팀 축구가 그야말로 혼돈에 빠지면서 정말로 한국 대표팀 축구가 몰락하기 직전까지 갔다. 돌이켜보면 결코 올려서는 안 되는 최악의 인물 중 하나가 대표팀 감독에 오른 셈이다.

그리고 감독으로서의 정치력과 언론플레이도 최악의 인물이다. 축구선수치고는 공부도 잘 하고 말이 축구계 야권 인사라지만 본인 선택이고 실제로는 평생을 한국 축구의 중심으로 살아와서 그런지 고집도 세고 자기 멋대로에 정말 어려서부터 스타가 되어 평생을 스타로 지멋대로 살아가는 예체능계 인사를 그림으로 그린 듯한 인물이다.
조광래는 분명히 자기 말대로 한 번 믿어줄 수도 있는 이른 타이밍에 경질당한 듯한 부분도 있기는 있다. 그런데 해임을 자초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조광래는 '대표팀 감독이 인터뷰를 할 때 협회의 사전 통제를 받아야 하나'고 디스를 걸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감독 재량권의 확대가 아니라 때에 따라 적절히 포장하고 쉴드를 쳐줄 축구협회 홍보부와 척을 지면서 진심이든 오해든 모든 발언에 대한 뒷감당은 감독 혼자 한다는 결과로 이어졌다. 야권 인사가 저렇게까지 말하면 축구협회 홍보부 입장에서야 조광래가 뭔 소리를 하건 당연히 자기들 알 바가 아닐 뿐이다.

본인 말에 따르면 절차의 공정성이니 낙후된 축구행정이니 하고 있는데 대중선동적인 발언일 뿐이다. 축협에서 감독 자를 때 되서 자른 건 절차의 공정성 따위를 얘기할 가치도 없다. 축구행정이 낙후된 것은 사실이지만 축구란 게 원래 축구 매니아들의 강력한 열기를 벗어나서 보면 의외로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도 크지도 않은 사업이라 각국의 축구 행정은 다 낙후되어 있다.[39] 향상이야 어느 업계야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만 규모와 수준이라는 현실적 한계를 보면 딱히 대단할 것도 없고 나중에 조광래 본인이 10년 넘게 대놓고 감독 위의 상왕 행세하고 있는 대구 fc의 행태를 보면 절차적 공정성? 낙후된 축구행정? 그냥 어휴... 말을 말아야 될 지경이다.

또한 해임의 원인은 누가 봐도 레바논전 패배고 이겼더라면 경질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조광래 스스로는 해임 원인에 대해 레바논전 패배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조중연 축협 회장의 재선 문제만 원인이라고 들먹이고 있다. 조광래는 예전부터 패전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

조광래는 공정한 절차 운운하고 있지만 일단 그 전에 본인부터 누가 봐도 공정하게 대표팀을 운영하진 않았다. 감독의 권한이 있는데 저 정도야 그럴 수도 있지 정도의 공정성은 결코 아니었다. 그리고 유화적인 제스처라든가, 남의 말을 듣는 태도, 상식적인 선에서의 행동거지를 보였다면 아무 말 없이 경질하기 이전에 먼저 형식적인 소통의 의사라도 타전해 보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조광래가 극단적인 강수나 외통수를 즐겨 쓴다는 건 이회택과의 대립에서도 잘 드러난다. 선수 차출 문제로 이회택과의 대립이 불거졌는데, 사실 축협 입장에서 선수 추천의 권한도 의무도 있으므로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회택이 그 대화 과정에서 조광래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어투였을 수도 있지만, 조광래는 이회택의 이야기를 듣고 대뜸 테이블을 엎고 나가며 기자들 불러서 모든 사실을 까발리는 극단적인 언플을 시전했다. 이회택의 이미지가 젊은 사람들에게 여러모로 안 좋은 것을 생각하면 그 공격 자체는 훌륭하게 먹히긴 했는데, 축구계 내부에서의 문제를 보자면 조광래는 정몽준 라인이 아니라 허승표 라인이고 국대 감독 취임 후에도 여권의 정몽준 라인과는 뜸하단 걸 고려하면 문제가 크다. 그리고 그렇게 한 방에 큰 모욕을 당한 이회택은 조광래 이상의 국축 레전드이자 조광래에게 있어서는 대선배다.[40][41] 거기다 이회택이 여권 내에서 나름대로 조광래의 감독 발탁에 기여한 친조광래파라는 것까지 고려하면 조광래가 좀 정치적인 감각 면에서 제정신이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선배고 레전드고 뭐고 없고 여권 내에서 본인 편이고 뭐고 없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한 얘기를 바로 언론에 대놓고 공개하는데 이쯤 되면 본인 심기를 거스르면 나는 난동을 피울 것이라고 축협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친 격이다. 이쯤 되면 어설프게 달래기나 토론보다는 차라리 한 방에 목을 치는 게 낫다는 결론이 아니었을까? 솔직히 이 부분은 나는 시간을 주거나 눈치를 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사람이니 스스로 소통 없이 절차 없이 잘라달라고 탄원한 거나 다름없다. 나이 50 후반에 저랬다는 게 초년부터 스타가 된 예체능계 스타의 막무가내가 그대로라 우스울 지경. 체육계가 스스로 자랑하는 자기들은 선후배 관계가 깍듯하고 예의가 있다는 주장을 대놓고 뒤집어버린 게 50대 후반의 조광래다.

이랬으면서 어이없게도 본인이 암흑기와 분열을 일으킨 장본인이면서도 "예선에서 1패했다고 대표팀 감독에서 짤린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다"라며 2014 브라질 월드컵 실패를 자신의 책임은 인정 안 하고 불만만 실컷 터트렸다.

그런데 일단 2003년 ~ 2004년 국대 감독이던 움베르투 코엘류는 약체 몰디브 상대로 1무로 승점 1점을 빼앗껴서 짤렸다. 더구나 이 당시 몰디브의 FIFA 랭킹은 142위였고, 2011년 조광래를 이기던 당시 레바논의 피파 랭킹은 146위였다. 거기다 이 때에 조광래는 코엘류의 지도 스타일이나 성격이 한국팀과 맞지 않고 감독한지 1년이 지났는데 선수 파악도 못 했다면서 협회에서 손을 써야 한다고 비판했다. 더구나 이 당시에 코엘류 전 감독이 개인기를 중시한다며 유럽이나 남미에 비해 기술이 처지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랬던 사람이 현실도 모르고 베스트 일레븐이나 짜서 대한민국 축구 현실에 맞지도 않은 티키타카를 하려고 했고, 그러다가 일본에게 대차게 패했다. 그야말로 남에게는 가혹하면서 본인에게는 너그러운 전형적인 소인배 같은 행실이 아닐 수가 없다.

그리고 레바논 쇼크도 그냥 1패가 아니라 너무할 정도로 본인의 아집에서 나온 잘못이며 단순히 1패를 했다고만 해서 잘린 것도 아니다.

여러모로 한국축구에 해악밖에 남기지 않은 게 조광래호였다. 보통 감독이 해임되면 거기서 끝나는 게 많은데, 특이하게도 조광래는 정신나간 언플과 불공정하면서도 신들린 듯한 갈라치기 선수단 운영으로 해임되고 나서도 엄청난 내상에 신음하는 한국 대표팀을 만들어냈다.

결코 대표팀 감독 자리에 취임해서는 안 될 최악의 인물이었다.

8. 전적

경기수 득점 실점 승률[42]
20 12 5 3 37 8 60%
[공식 A매치로 취급되지 않는 폴란드전의 전적을 포함하고 계산할 시]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cd313a><tablebgcolor=#cd313a><width=15%> 경기수 ||<width=14%> ||<width=14%> ||<width=14%> ||<width=14%> 득점 ||<width=14%> 실점 ||<width=15%> 승률[43] ||
21 12 6 3 39 10 57.1%
일시 / 장소 상대팀 결과 대회 득점 비고
2010년
2010년 8월 11일
(수원)
파일:나이지리아 국기.svg
나이지리아
2 : 1
친선 경기 윤빛가람, 최효진
2010년 9월 7일
(서울)
파일:이란 국기.svg
이란
0 : 1
2010년 10월 12일
(서울)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0 : 0
2010년 12월 30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파일:시리아 국기.svg
시리아
1 : 0
지동원
2011년
2011년 1월 10일
(카타르, 도하)
파일:바레인 국기.svg
바레인
2 : 1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16강 본선 조별리그 C조
구자철(2골)
2011년 1월 14일
(카타르, 도하)
파일:호주 국기.svg
호주
1 : 1
구자철
2011년 1월 18일
(카타르, 도하)
파일:인도 국기.svg
인도
4 : 1
지동원(2골),
구자철, 손흥민
2011년 1월 22일
(카타르, 도하)
파일:이란 국기.svg
이란
1 : 0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8강
윤빛가람
2011년 1월 25일
(카타르, 도하)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2 : 2
(PSO 0:3)
[44]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준결승
기성용, 황재원
2011년 1월 28일
(카타르, 도하)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우즈베키스탄
3 : 2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3·4위전
구자철,
지동원(2골)
대회 3위
[45]
2011년 2월 9일
(터키, 트라브존)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튀르키예
0 : 0
친선 경기
2011년 3월 25일
(서울)
파일:온두라스 국기.svg
온두라스
4 : 0
이정수, 김정우,
박주영, 이근호
2011년 6월 3일
(서울)
파일:세르비아 국기.svg
세르비아
2 : 1
박주영, 김영권
2011년 6월 7일
(전주)
파일:가나 국기.svg
가나
2 : 1
지동원, 구자철
2011년 8월 10일
(일본, 삿포로)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0 : 3
삿포로 참사
2011년 9월 2일
(고양)
파일:레바논 국기.svg
레바논
6 : 0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박주영(3골),
지동원(2골),
김정우
2011년 9월 6일
(쿠웨이트, 쿠웨이트 시티)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쿠웨이트
1 : 1
박주영
<rowcolor=#000000> 2011년 10월 7일
(서울)
파일:폴란드 국기.svg
폴란드
2 : 2
친선 경기 박주영(2골) [46]
2011년 10월 11일
(수원)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아랍에미리트
2 : 1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박주영,
함단 알 카말리(OG)
2011년 11월 11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아랍에미리트
2 : 0
이근호, 박주영
2011년 11월 15일
(레바논, 베이루트)
파일:레바논 국기.svg
레바논
1 : 2
구자철 레바논 쇼크

대표팀 감독으로 있는 동안 패배는 단 3번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일본에게 아시안컵 승부차기에 막힌 것도 있어서 체감적으로는 4패다. 짧은 시간 동안 한일전을 3번이나 했는데 2무 1패, 체감상으로는 1무 2패라는 한국 대표팀 입장에서는 쓰레기 같은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임팩트가 큰 레바논 쇼크삿포로 참사가 포함되어 있기에 결국 조광래 전 감독은 대한민국 축구 팬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기 힘들게 되었다.

이 두번의 경기만 가지고 지나치게 일찍 경질한거 아니냐는 동정론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레바논 충격패로 3차예선 최종전에서 꽤 진지하게 탈락에 대한 경우의 수가 나왔다. 최종전을 앞두고 한국이 10점 레바논이 10점으로 넘볼 수 없는 득실차로 한국이 1위, 레바논이 2위. 쿠웨이트가 3위였는데 8점이었고 2위까지 최종예선 진출이었다. 그런데 4위 아랍에미리트는 1승도 1무도 못해서 0점이었다. 한국과의 최종전에서 한국이 지고 쿠웨이트가 이기면 쿠웨이트가 11점으로 10점의 한국을 넘어선다. 그리고 승점 0점의 아랍에미리트를 레바논이 이기거나 비기면 레바논도 11점, 13점이 되므로 10점의 한국을 제끼고 진출하고 한국은 3위 탈락한다.

이것은 물론 아랍에미리트가 충격적으로 아래로 깔아주면서 승점을 마구 나눠준 탓이 제일 크다. 그리고 최종전을 앞두고 1위지만 1무 1패, 전승 기준으로 4점 정도 드랍을 한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어느 정도 남아있었던 아시아 축구의 실력차 때문에 깔아주는 팀 한 팀 정도는 모든 조에 있었다.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는 아예 끝날 때까지 0점이었고 타지키스탄은 1점이었다. 이런 와중에 한국의 체급이나 조편성까지 감안하면 용납되기 어렵다. 무엇보다 경기장 상태가 안 좋은 원정경기 갔으면 그냥 맞춰서 할 것이지 거기서까지 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고 지는 건 진짜....

[1] 16개 진출팀 중 3위 기록.[2] 외국인 감독은 차기 감독 후보에서 처음부터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3] 이들의 다툼을 뿌리깊은 연고대학교 학맥 다툼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조중연은 고려대학교 출신이고, 보통 그 반대에 섰던 허승표, 신문선, 조광래가 연세대 출신이다. 다만 실제로 조중연과 가까운 인사 중 이회택, 황보관 등은 고려대 출신이 아닌 점을 두고 볼 때는 지나치게 단순한 프레임이다. 이것은 親조중연 인사인 허정무(연세대학교)와 위명에 비해 축협에서 야인취급 받는 차범근(고려대학교)의 경우를 봐도 학맥과는 무관함을 알 수 있다.[4] 엄밀히 말하면 1990년대에 이종환 회장이 선수 출신으로서 축구협회 회장을 맡긴 했지만 약 4개월간의 회장직 대행이었기 때문에 보편적으로는 조중연 전 회장을 최초의 선수 출신 회장으로 지칭한다.[5] 사실 2002년 이전까진 거스 히딩크에게 명줄을 맡긴 공동운명체였지만, 4강 신화 이후 논공행상를 하는 과정에서 섭섭한 대우를 받았다고 정몽준과 결별했다.[6] GS에서는 허승표와 선을 그은 상태다.[7] 2011년 여름에 일본에게 0:3으로 완패한 삿포로 참사는 친선경기로, 이 경기도 물론 많은 비판을 받긴 했지만, 친선경기라서 최종 예선 진출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여론이 나빠지긴 했어도 아무래도 친선경기이기도 하고 선수들이 공에 강타당해 교체 카드를 낭비하게 된 문제도 있어서 일단은 지켜보자는 분위기도 컸다. 그러나 아시안컵에서의 진출 실패까지 생각하면 사실상 꼴사나운 한일전 2연패인 셈이라 이미 턱끝까지 온 셈이다.[8] 최강희 감독이 결국 어쩔 수 없이 떠맡았지만, 조광래 때문에 감독 커리어를 통째로 망칠 뻔했다. 관련 기사 참고.[9] 비록 실명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미 축빠들은 어느 선수인지 대충 감 잡은 상태다. 그 선수가 맞다면 분명히 현 상황에서 한번쯤 추천할 만한 좋은 선수지만, 문제는 뒤에는 이회택이 있었다는 거다.[10] 거론이 되던 압신 고트비, 히딩크, 박태하 당시 수석코치 등은 다 애매했다.[11] 이 후 연봉 미지급 문제는 무려 1년 넘게 질질 끌다가 2013년, 정몽규 회장이 취임한 후에야 해결이 되었다.기사[12] 그렇긴 하나 인간사에서 조광래 정도로 일도 못하고 난장을 피우고도 용인을 받으려면 가족, 혈연관계 말고는 없다.[13] 빨리 확정시켜서 4년 내내 주구장창 돌려야 한다는 베스트 11을 보면 이용래, 이정수, 김영권, 김정우를 제외하면 골키퍼 정성룡까지 공격형이다. 심지어 김정우도 공격형으로 쓰겠다는 걸 보면 공미 자리에서 나름대로 밸런스를 중시하긴 하되 침투해서 득점을 보조하는 역할이고, 수비형이라는 기성용도 그냥 수비형 자리에 있는 공격형이다. 순수 수비용으로 놔둔 선수는 이용래, 이정수, 김영권 3명인 거 같은데 현대축구에서 굳이 한쪽 풀백을 아예 버리는 건 그렇다 쳐도 이정수는 2014 시점에서 35살인데 만약 그대로 갔다면 35살의 이정수가 느려터진 홍정호와 기성용 사이를 뛰어다니면서 커버가 가능했을까?[14] 무슨무슨 스타일을 하겠다고 말하는 게 그렇게까지 희귀한 건 아니고 밖에도 말하는 감독들이 종종 있지만 저렇게까지 대놓고 카피캣, 사대주의자 행세를 하는 게 자기는 깨닫지 못해도 외국에서 남보기에는 우스운 꼬락서니인 것이다. 만약 외국 보이그룹이 나와서 우리는 bts 스타일이라고 하면서 멤버 하나하나에 bts 멤버들을 따라한 포지션을 부여하면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보겠는가? 오.. 하고 기분이 좋으면서도 왠지 좀 우습게 보인다던가 그러지 않겠는가? 조광래는 정말 이런 상식적인 센스와 국제적인 감각이 결여된 수치스러운 부분이 있다.[15] 또한 전형적인 구자철, 기성용 부조화가 이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사실상 런던 올림픽은 군입대 면제를 향한 강철같은 의지로 인해 타국과 선수구성, 동기부여가 차이가 나서 어떻게 어떻게 되었던 거지 성인 대표팀 내내 구자철, 기성용 조합이 좋았던 적이 없었다.[16] 해당 지역예선 5개 조 1위팀 가운데 한 번만 삐끗한 팀이 3팀이다. 최종전까지 가기도 전에 두 번 삐끗한 것은 그리 어려운 조편성도 아니었는데 꽤 평균 이하의 성적을 거뒀다는 것이다.[17] 아시안컵 시기에는 좋았다고 하지만 사실 이 시기부터 이미 측면공격이 실종되었다. 불과 6개월 전과 달리 이청용의 공격 영향력이 많이 사라졌다. 그리고 박지성 역시 모든 월드컵 본선에서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던 선수인데 아시안컵 공격포인트 0, 페널티킥 유도 1이었다. 2010월드컵에서의 파괴력을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는 것. 물론 그렇게 박지성을 갈아서 지동원, 구자철 중앙에 힘을 주었으나 일본, 이란 등 아시아 1티어 국가에게 막혀버리자 측면 변수가 살아나지 않으며 게임이 지지부진했다. 당시 바르셀로나도 크랙을 이용한 측면 변수를 중시하였음에도.[18] 특히 당시 한국의 실력과 특성으로는 세계무대에서는 되지도 않는 패스축구 애무메타가 유소년한테까지 마수를 뻗치는 바람에 2012년 U-19 AFC에서 우승했던 대표팀은 바로 다음 2014년, 2016년 연속해서 광탈해버렸다.[19] 이런 무특징 축구는 신태용호 때 다시 시메오네식 4-4-2 두 줄 수비 전술로 바꾸면서 해결된다. 역습 전술에 맞는 손흥민이 대표팀 득점을 터트리기 시작했고, 지난 월드컵 우승팀에 점유율 80:20으로 내주면서 존버하다가 역관광시켜버리는 대사건을 일으키며 2010년 그리스전 이후로 처음으로 월드컵에서 피파랭킹 1위, 디펜딩챔피언 요아힘 뢰브 감독의 독일을 상대로 2:0 승리를 이루었다. 유소년에도 좋은 영향을 미쳐서 2019 FIFA U-20 월드컵 폴란드에 나간 정정용호가 이 전술로 한국 축구계 역사상 남자 국제대회 결승에 최초로 진출하는 성과를 보였다.[20] 사실 정상이긴 하다.[21] 애초에 벤투호랑은 비교가 실례인 게 빌드업을 전개할 때 디테일적인 측면에서는 비교 불가였다. 벤투 역시 이상하고 강한 고집이 많아서 한국 국가대표팀까지 흘러온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포르투갈 축구 자체가 실리 축구라서 벤투 역시 기본적으로 실리인 부분이 있어서 필요에 따라 롱패스도 과감하게 활용하는 등 어느 정도의 유연성은 갖추고 있었다. 일례로 2022년의 최종 예선 7차전 레바논과의 경기는 잔디가 레바논 쇼크 때보다 더 심한 수준이었는데, 과감하게 롱볼 축구를 꺼내들어서 조규성의 결승골로 승리를 거뒀다. 조광래급 경직성이었다면 분명 레바논 쇼크 시즌2가 되었을 것이다.[22] 사실 만화 축구를 말한 사람이 다름아닌 이청용이라는 것만 봐도 조광래의 전술이 얼마나 무리수인지 알 수 있다. 이청용은 어린 나이에 프로에서 활약했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였고, K리그에선 명장인 세뇰 귀네슈의 지도를 받았으며, 이후 바로 빅리그로 직행해서 확실한 자기 자리를 잡았을 정도로 경험도 풍부한 선수였다. 그런 선수가 "만화축구"라고 말하는 것은 곧 대한민국 축구의 엘리트도 소화하기 힘든 전술이라는 말이다.[23] 상단의 조광래호 베스트 11 포메이션만 봐도 그야말로 상대는 없고 자기자신만을 생각하는 망상에 섬뜩할 지경이다. 그 어떤 수비나 안 좋았을 때에 대한 고려가 없다. 차두리가 오른쪽 수비수긴 하지만 수비력이 정교하지는 않은 편이고, 이청용도 수비력과 수비가담 능력이 부족하다. 홍정호가 능력이 뛰어나긴 하지만 빠르진 않고, 정성룡 역시 선방력이 국가대표 수준에서는 대단한 편도 아니고 실수도 좀 있다. 결정적으로 기성용이 느리고 둔해서 수비능력이 부족하고 수비의식도 부족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또한 김영권을 오버래핑 자제하고 커버 위주의 왼쪽 풀백, 지동원 왼쪽 측면 공격수면 사실상 왼쪽에서의 진격은 버리고 결정적일 때 박주영과 지동원의 스위칭 정도나 쓰겠다는 일종의 불균형 축구를 하겠다는 건데 왜 굳이 저렇게까지 했는지 도통 모를 지경이다. 지동원이 중앙에 붙을 경우 왼쪽 측면 공간은 누가 커버하고, 기본적으로 오른쪽의 약한 수비력은 또 누가 커버한단 말인가? 뭔가 디테일한 해결책이 훈련장에서 있었겠지만 진짜 박지성이 있어야나 가능한 개쌩만화축구다.[24] 만화 같이 재미있고 아름다운 축구가 자신이 하고 싶은 축구라며 브라질에선 청용이 말대로 만화축구해야한다며 대표팀의 슬로건으로 삼았다. 기사 내용 그래서 취임 초기 박지성이 있고 잘 나갈 때는 만화축구가 비꼬기 용어로 쓰이지 않긴 했다.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그 기조와 슬로건은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은근히 많이 확인할 수 있다.이 몽상가들이 문제였다 심지어 "조광래의 만화 축구"라는 칼럼까지 본인이 쓰는 등 팬들이 어떻게 보거나 조광래 본인은 맘에 들어했다. 이래저래 조광래를 상징하는 단어임엔 분명했고, 조광래에 속아넘어가고 원래 이상을 좋아하는 성향의 축구팬들도 그 이후까지도 좋아하고 지지했던 부분은 있다.[25] 그러나 브라질 축구도 하락세인 걸 보면 헛꿈이었던 것 같다.[26] 당시 국대에서 티키타카를 사용해 재미를 본 팀은 스페인뿐이며, 그나마도 FC 바르셀로나 + 레알 마드리드를 거의 그대로 뜯어와서 재미를 보았다. 설령 조광래가 브라질까지 갔다 하더라도 조광래호 공무원들이 부상을 당하지 않고, 좋은 폼을 유지하고 있을 거라는 장담은 할 수 없다.[27] 일본의 경우 수십년간 꾸준히 그런 축구를 추구한 기초체력이 드러나는 것이고, 스페인조차 사비가 은퇴하고 나서는 그 당시 같은 티키타카는 접었다. 2014 언저리의 독일도 뮌헨 위주의 조직력으로 우승한 팀이었다. 결국 시대를 관통한 선수 몇 명의 천재성에 의존한 축구에서 나온 아름다움인데 너무나도 현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조광래가 경남에서 윤빛가람 데리고 놀던 거하고 다른 것이다.[28] 티키타카의 완성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생각들을 했지만 사실 그건 이제 와서 보면 일부 전문가나 극도의 매니아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속았거나 자기 자신들을 포함해 모두를 속인 것이다.[29] 특히 10년 가까이 스포츠 조선에서 연재했던 '조광래의 눈' 시리즈의 칼럼은 지금 본다면 성지에 가까운 언행 불일치를 보일 정도. 납득하기 힘든 선수-선발 전술베어벡의 책임 떠넘기기[30] 안티들에 의하면 베어백을 거의 불구대천의 원수로 취급해서 2007년에 국대 차출 거부를 주도했다고 한다.[31]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대표팀의 지역 예선 통과를 다룬 공간과 압박이라는 다큐멘터리에 보면 축구 대표팀 소집 훈련을 위해 파주 트레이닝 센터에 조광래 전 감독이 들어설 때 사진을 찍던 기자들이 조광래 전 감독이 따봉을 하자 "오오~"하고 환호하고 이어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고 조광래 전 감독도 "여기서 보네."하고 말을 건네는 화기애애하고 훈훈한 모습이 나온다.[32] 이 부분은 약간 다르게 생각할 부분이 있긴 한 것이, 차라리 전술을 밝힌 뒤 상대팀의 대응에 따라 다른 대응법을 쌓아 나가는 것 역시도 하나의 방법이다.[33] 하지만 꼼수도 한 번 두 번이지 남들 안 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게임으로 비유하면 특정 캐릭터나 덱스를 미리 사용한다고 심리전을 걸고 그게 성공했다 해도 어차피 특정되어버린 이상 이후 취할 만한 행동은 몇 개 정해져 있고 본인의 패턴을 적에게 보여 준다면 현재 벤투호는 경기전에 스타팅 포메이션을 깔 이유가 없다며 아예 스타팅 멤버 공개하는 걸 나열식으로 바꾼걸 생각해보자.[34] 차라리 레이저 문제를 걸고 넘어졌으면 레바논 축구협회로 하여금 벌금이라도 물리게 할 수 있었다.[35] 허정무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의 호성적 앞에서 이 정도면 앞으로는 한국인 감독으로 충분하다며 협회에서 외국인 감독을 후보에서 아예 배제해 버렸다는 점에서부터 이미 비판의 목소리가 많았다.[36] 조광래가 크게 잘못하고 있지만, 최종 예선도 못 가고 탈락하는 한이 있더라도 쿠웨이트전까지는 무조건 조광래호에게 맡기고, 어찌어찌 해서 탈락하지 않고 통과한다면 중도에 감독을 교체하려고 해도 맡으려고 할 인물도 없었고, 감독을 새로 영입한다고 해서 팀 성적과 경기력이 무조건 좋아진다는 보장이 없으니 그래도 최종 예선까지는 조광래에게 맡기는 식으로 갔어야 한다고 보는 의견이 당시까지 있긴 있었으나 현재는 경기를 보는 열정은 있으나 그 이상까지는 아닌 국대축구팬의 시각으로 정리된다. 왜냐면 한국축구의 미래는 유소년에게 있는 게 당연한데 이 예산은 월드컵 진출로 인해서 충당되기 때문이다. 월드컵을 진출 못한다면, 그것은 유소년 예산 말도 안 되게 대폭 삭감과 같은 말이라 모양새를 생각하는 차원에서 이상한 놈 하나 봐주자고 절대 감수할 수가 없다. 축구에서 위기에 빠지면 감독 경질 카드를 쓰는 게 이상한 것도 아니고.[37] 농담이 아니라 당시 세계 최고의 팀이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도 박지성의 전술능력은 최고라고 수많은 전현직 맨유인사들이 계속 증언하고 있다.[38] 삿포로 참사를 기점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으나, 실제로는 극도의 분노를 초래하고 환상을 깨게 해준 계기였지 실제로는 박지성 빠진 다음부터 못했다.[39] 가장 큰 피파도 쓰레기 같고 불공정한 밀실 인맥 정치와 비리, 뇌물 투성이다.[40] 이회택의 발언에 따르면 야. 조 감독. 요새 누구 좋더라. 한 번 봐라 이렇게 얘기했다는데 조광래는 선수 명단을 집어던지면서 소리를 질렀다고 발언했다. 이회택의 주장에 따르면 조광래의 거짓말이란 것인데, 이회택의 성격상 아무래도 그 말이 맞아 보인다. 기껏해야 조광래가 느끼기에 어투가 기분 나빴다던가 압박으로 느껴졌다던가 하는 정도.[41] 네티즌들도 대충 그럴 수도 있겠다, 아니 기술위원회가 추천하라고 있는 곳이라면 추천하는 게 뭐가 이상하냐 싶은 반응을 많이 보였지만, 실상은 더욱 답답하다. 조광래는 차두리를 빼면 오른쪽 수비수를 확정하지 않았다. 문제는 차두리가 이 당시 잔부상을 안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교체요원으로건 부상 대비 요원으로건 2번 오른쪽 수비수가 필요하다. 최효진을 좀 쓰긴 했는데 마음에 안 들었는지 뽑다가 안 뽑다가 했고, 중앙 미드필더인 김재성 포변, 공격수인 조영철 포변 등을 일삼았는데 잘 되지도 않았다. 멀쩡히 전업 풀백들이 있는데 이 선수 포변했다 저 선수 포변했다 하고 있으면 전문가 입장에서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당연히 추천하는 것이고 안 하면 오히려 직무유기다.[42] 축구야구와 달리 무승부를 분모에 산입 계산해서, 무승부는 승리로 취급되지 않는다. 자세한 내용은 승률 문서 참조 바람.[43] 축구야구와 달리 무승부를 분모에 산입 계산해서, 무승부는 승리로 취급되지 않는다. 자세한 내용은 승률 문서 참조 바람.[44] 승부차기 기록은 공식적으로는 모두 무승부로 취급된다.[45] 차기 대회 본선 진출 확정.[46] 이 경기는 조광래 감독이 선수 교체를 FIFA 규정에서 정하는 6명을 초과하여 교체하는 바람에 비공식 A매치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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