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9-15 11:08:29

임중용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276fb8> 파일:Incheon-United-FC.png 인천 유나이티드
2019 시즌 스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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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표는 간략화된 버전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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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중용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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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276FB8> 파일:Incheon-United-FC.png 인천 유나이티드
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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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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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 현재
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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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
장외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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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
장외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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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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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
유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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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후임 감독(감독대행)에게 팀을 맡긴 뒤 다시 복귀한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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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중용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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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Incheon-United-FC.png 인천 유나이티드 구단 공인 레전드
장외룡 임중용 전재호 김이섭 김학철

2005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박주영
FW
마차도
MF
김두현
MF
이천수
MF
이호
MF
조원희
DF
임중용
DF
유경렬
DF
조용형
DF
김영철
GK
김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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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heon United Football Club
파일:2019임중용.png
이름 임중용
林重容 | Lim Joong-Yong
출생 1975년 4월 21일 (만 [age(1975-04-21)]세)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신체 184cm
직업 축구선수(수비수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부산 아이콘스(1999 ~ 2002)
대구 FC(2003)
인천 유나이티드(2004 ~ 2011)
감독 인천 유나이티드(2011 / 플레잉 코치)
인천 유나이티드 U-18(2013~2014 / 코치)
인천 유나이티드 U-18(2015~2017)
인천 유나이티드(2017~2018 / 코치)
인천 유나이티드(2018~ / 수석 코치)
인천 유나이티드(2019 / 감독대행)
국가대표 없음
응원가 임중용 응원가
파일:Incheon-United-FC.png 인천 유나이티드 구단 공인 레전드
장외룡 임중용 전재호 김이섭 김학철

1. 개요2. 선수 경력3. 감독 경력
3.1. 인천 유나이티드 유소년 감독3.2. 인천 유나이티드 코치3.3.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대행
4. 여담

1. 개요

"아 랴돈! 투게더, 똑같이 해 새끼야!"
- 영화 '비상' 에서 라돈치치에게(...)[1]

인천유나이티드의 레전드, 인천 그 자체.

대한민국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9년 상반기에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대행을 잠시 맡았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전설'로 일컬어지고 있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창단 멤버이면서 오랫동안 인천 유나이티드의 주장으로 활약을 했고, 선수 커리어의 마지막까지 인천 유나이티드와 함께 하며 인천 축구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그야말로 인천 유나이티드의 레전드라 할 수 있다. 실력 자체도 K리그 수준급의 수비수였지만 무엇보다 임중용이 대단했던 건 특유의 프로 정신과 리더십이었다.[2] 선수로 인천 유나이티드에 큰 족적을 남긴 데 이어서 은퇴 이후에도 인천의 코치가 되어 유스를 길러내고, 결국 1군 코칭 스태프에 합류하는 등 인천과의 동행을 지속하고 있다. 임중용이 구단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상징성을 감안한다면 언젠가는 인천의 지휘봉을 잡을 가능성도 크다. 그리고 정식은 아니지만, 안데르센 감독이 사임함으로서 2달 동안은 잠시 감독 생활을 하게 됐다.

2. 선수 경력

2.1. 부산 아이콘스

파일:external/footballk.net/240px-%EC%9E%84%EC%A4%91%EC%9A%A9.jpg

부산팬이나 임중용 본인에게나 부산 시절은 흑역사나 다름없다.[3] 본인은 27경기 동안 교체 멤버로 끌려다니면서 1경기밖에 못 나왔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비상에서도 자기 잘못이라고는 하면서도 감독이 기회를 거의 안 줬다고 사족을 달았다. 그러나 기록을 뒤져보면 임중용이 벤치에만 앉아있었던 해는 2001년(2경기 출전) 한 해 뿐이다. 1999년과 2000년은 34, 24경기 출전한 레귤러 멤버였다. 그리고 김호곤 감독 시절 영입했다던 연세대 제자라는 선수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국가대표였던 혼혈 선수 장대일, 그리고 2002 멤버 송종국이다. 근데 장대일은 2000 시즌 중간에 넘어와서 임중용과 한 시즌 온전히 보낸 적이 2001 시즌 밖에 없는데 1999년 이후 계속 하락세고 잔부상이 많아서 2000 시즌 11경기, 2001 시즌 겨우 15경기 나와서 임중용이 장대일 때문에 크게 피봤다고 하긴 힘들다. 임중용이 밀린 건 다른 뛰어난 수비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멀티 플레이어 송종국(2001 시즌 신인왕)은 이때가 최전성기여서 임중용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멤버이자 히딩크호 합류에도 성공하는 이민성이 군복무를 마치고 2001년 팀에 합류했다. 여기에 히딩크호 부임 초기 황태자 소리듣던 기대주 심재원도 있었다. 즉, 임중용이 밀린 건 당시 부산 수비진을 구성한 선수들의 면면이 쟁쟁했기 때문이고 임중용의 주장은 당시 부산 중앙 수비 뎁스와 임중용의 실제 출전기록을 보면 납득 안 가는 부분이 많아 걸러들어야 한다.

여하튼 이런 상황이다보니 임중용에게 이적 제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보내달라고 김호곤에게 무릎을 꿇어가면서까지 간청했다는데 당시 부산 감독이었던 김호곤은 거절했다고 한다. 참을 수 없었던 임중용은 구단에 말만 하고 팀을 뛰쳐나와 임의탈퇴당했다. 임의탈퇴당한 이후 1년 4개월간 집에도 있어봤고 아버지를 도와 운전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김호곤이 경질당하고 선더랜드 AFC의 전설이기도 한 이안 포터필드가 감독으로 취임하고 나서 임중용에게도 기회가 찾아온다. 구단에서도 그를 다시 불렀다. 동계훈련에 참석해서 훈련을 하는데 1년 반 동안 운동을 안 해서 몸이 따라주지 않았고 부산은 임의탈퇴도 풀어주고 그를 놓아줬다.

2.2. 대구 FC

갈 곳이 없어진 상황에서 성균관대 시절 자기를 지도한 수원시청 감독인 임고석이 같이 운동하면서 공무원 자격증이라도 따자며 불렀고 전지훈련을 하고 있는 제주로 내려가게 된다. 마침 신생팀인 대구 FC도 제주에 전지훈련하러 온 상황이었고 박종환 감독과 호텔에서 만나게 됐고 박종환의 러브콜로 대구 FC의 창단멤버가 된다.

빠따 감독으로 유명한 박종환이라 힘든 훈련을 하게 됐지만 임중용 자신에겐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이 악물고 열심히 훈련했다고 한다. 새벽훈련에도 꼬박꼬박 참여했다고 한다. 전반기에는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데 주력했고 후반기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대구시절에는 나쁘지 않아서 부산 팬들도 "부산 있을때 지금 하는 거 반만큼만 하지 그랬냐"고 할 정도였으니. 그러나 시즌이 끝나고 그는 더 좋은 대우를 원했다. 신인들과 받는 연봉이 비슷했다고 한다. 당시 나이가 28이라 창창한 나이였으니 불만이 많을 법도 했다. 그래서 재계약을 원했고 협상까지는 했으나 구단은 오히려 연봉을 깎으려고 했다. 그래서 기본보다 좀 더 달라고 했더니 재계약 불가 통침을 받았다. 아마 인천 팬들에게는 대구의 이러한 처사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2.3. 인천 유나이티드

파일:external/img.sportalkorea.com/SK004_20111101_4804ext03.jpg
전설의 시작.

이러한 상황에서 전직 부산 단장이었고 그 당시에는 인천의 단장인 안종복에게서 전화가 왔다.당시 안종복은 대구에서 받던 것보다 더 많이 줄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대로 떠나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던지 재기할 수 있게 도와준 하성준 코치와 상담을 했으며 하성준이 '우리 팀에 남았으면 좋겠지만 대우를 원한다면 인천 가는게 낫겠다'라는 말을 듣고 인천으로 갈 결심을 하게 됐다고 한다.

계약이 끝난 후 박종환이 불호령을 내리고 대구 보드진도 더 좋은 조건을 내밀었지만 이미 버스는 지나간 상황. 2002 월드컵의 열기를 등에 업고 2003년 인천 유나이티드가 창단됐지만 시민구단으로서 어쩔수 없었던 열악한 환경과 개판 5분전인 팀워크로 만년 꼴찌팀이었던 인천을 임중용은 특유의 투지와 근성으로 언제나 묵묵히 팀원들을 이끌었고 장외룡 감독이 부임한 후 축구선수로서 능력이 만개. 최고 전성기를 누리며 2005년 인천은 전기리그 2위 및 전후기 통합 승점 1위, 창단 첫 플레이오프 진출권까지 획득하는 쾌거를 누린다. 하지만 이내 피로누적으로 일시적 시력 상실이란 축구 선수로서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지만 당시 부실한 팀 스쿼드 탓에 출전을 강행. 팀을 리그 준우승까지 이끌었다.[4]

이후에도 인천 유나이티드의 주장이자 수비의 핵으로 인천을 이끌었다. 쓰리백의 일원 김학철이 노쇠화로 먼저 은퇴하던 때에도 젊은 김영빈, 장경진과 그 자리를 지켰고, 얼마 후에는 훗날 인천의 아들로 불리는 안재준이 인천에 입단했는데 그 때도 다른 수비수들을 컨트롤하는 수비의 중심이었다. 한편 2007년에는 당시 수원 삼성 블루윙즈 소속의 에두와 충돌한 사건이 있었다. 누가 먼저 침을 뱉었는지 자체는 영상이 확실히 남지 않아서 애매하지만, 에두가 뱉은 것은 확실하고, 둘 사이에서 일어난 충돌이 격해지면서 임중용은 퇴장, 에두는 경고를 받았다. 이 판정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전재호이관우를 엘보로 가격하고 퇴장당하다가 카메라에 욕설을 내뱉기도 했고, 구단이 전광판에 에두가 침 뱉는 영상을 반복 재생시키면서 팬들이 격분하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에두, 전재호, 인천 구단도 징계를 받았으나, 정작 심판에게는 아무 징계가 없었다. 한편, 인천은 이로 인해 예의주시대상이 됐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석연치 않은 판정에 방승환이 불복하며 거세게 항의를 하자 1년 출장 정지 징계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나가는 세월 앞에 임중용도 어쩔 수 없었다. 경기에 뛰는 횟수는 조금씩 줄어들었고, 허정무 감독 부임 이후 등떠밀리다시피 플레잉 코치로 보직을 변경하며 은퇴 수순을 밟았다. 허정무는 배효성, 정인환, 이윤표 셋을 2011년 한 해동안 영입하며 수비를 완전히 재구성했고, 그 과정에서 임중용 외의 수비수인 안재준, 김영빈, 장경진도 자리를 잃어 떠났다.

결국 2011 시즌 마지막 상주 상무와의 경기를 끝으로 현역 은퇴. K리그 통산 294경기 출전. 그중에서 인천 유나이티드에서만 219경기를 뛰었다. 구단은 은퇴식을 열어주었고 임중용은 팀 동료들의 목마를 받으며 홈 팬들의 환호 속에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이 기록은 2018년 2월 현재까지도 인천의 최다 출장 기록이지만, 이윤표가 맹추격을 하며 거의 그 대기록에 다가왔다.

2.4. 은퇴 이후

이후 독일 베르더 브레멘에서 1년 6개월 가량 코치 연수를 받았고[5] 2013년 다시 인천으로 돌아와 인천 유나이티드 산하 U-18팀인 대건고등학교의 코치로 부임하며 지도자의 길을 걷는 중이다.

2013 인천에서 열린 전국체전에서 대건고등학교가 결승에 올랐지만 2:0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2:2 동점을 허용하였고 이후 승부차기에서 패하면서 준우승을 차지하고 만다.

풋볼 매니저에서도 만들기 힘든 이런 감동적인 스토리 덕분에 인천 홈 팬들의 임중용의 사랑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다. 팀 역사가 이제 10년을 갓 넘긴 신생팀에서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팀의 첫 레전드이니 말이다. 인천 서포터즈들은 그가 은퇴한 이후에도 아직도 그를 기리는 걸개를 내걸고 있으며 그의 등번호 20번은 이후 인천의 수비를 책임지는 최고의 선수에게만 허락하는 등번호가 되었다.

이 계보는 임중용 - 정인환[6]-안재준-요니치-부노자로 이어진다. 참고로 5명 중에서 선수로서 클래스는 요니치가 가장 낫다고 평가받는다. 정인환은 2012시즌에는 리그 정상급 수비수였지만 이후 쭉 내리막길을 걸었으며 안재준도 전남에서 돌아와 2013, 14 두 시즌은 빼어났으나 경찰청 2년차인 2016년부터 급격한 하락세를 보였다. 부노자는 실력은 좋은데 에고가 강해서 활용에 어려움이 많은 편이었고, 2018년 중순부터는 각성하여 20번에 걸맞는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3. 감독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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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인천 유나이티드 유소년 감독

2011년 플레잉 코치로 활동하였고, 2013년부터 인천 유나이티드의 U-18[7] 팀의 코치를 맡고 있다. 2015 시즌부터 U-18 팀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대건고 유스들 중에 뛰어난 선수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 추세이고, 임중용은 대건고의 황금 세대를 이끌고 호성적을 거두고 있다. [8]

그리고 2015년 U-18팀을 2015 대교눈높이 후반기 전국고등축구리그 왕중왕전 결승에 올려놓는 등, 감독으로서도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보인다.

3.2. 인천 유나이티드 코치

이후 2017년 인천의 코치로 부임했다. 워낙 인천 팬들의 지지를 많이 받던 인물이고, 대건고에서 유스들을 훌륭하게 지도한 덕분에 대체로 호의적인 평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편 대건고 감독 후임으로는 역시 인천의 레전드였던 전재호가 선임되었다. 2017년 인천이 수석코치를 따로 두지 않으면서 박성철 코치와 함께 이기형 감독을 보좌하게 되었다. 그런데 시즌 말미로 갈수록 다양한 루머가 나오며 임중용과 이기형의 관계, 대표이사 강인덕 월권 행위 논란, 코치 전원 해임설까지 터져나와 상당한 논란이 되고 있다. 지속적으로 차기 감독은 임중용이라는 여론이 돌다 보니 이기형이 이를 불편하게 여기고 견제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대다수. 하지만 해임 루머가 터지자 마자 팬들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결국 임중용을 포함해 권찬수, 박성철 등 국내 코치들은 모두 잔류했고, 외국인 피지컬 코치만 프라노에서 야스민 무이쟈로 변경되었다. 그럼에도 임중용과 이기형의 동행은 여전히 불편한 관계로 여겨졌고, 강인덕 대표와 이기형 감독에 대한 팬들의 반감이 커지면서 반대급부로 임중용은 더 큰 지지를 얻게 되었다. 시즌 중반에 이기형이 결국 경질당하면서 감독 대행의 가능성도 제기되었으나 박성철 코치가 대행을 맡고 임중용은 코치직을 유지하였다.

욘 안데르센 부임 이후에도 박성철과 함께 일반 코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다가 강원 FC 원정 7 : 0 참사가 일어나면서 감독과 코칭 스태프 사이의 소통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그 직후 임중용은 수석코치로 승격되어 안데르센의 옆을 보좌하고 박성철은 본인이 자원한 것이라고 밝혀지기는 했으나 관중석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행보를 보이며 코치의 구도가 다소 변화하였다. 일단 그간 이기형의 주변 인물 내지는 능력이 부족한 코치로 평가되던 박성철 대신 임중용이 단독 수석코치가 된 것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2019 시즌을 앞두고는 공식적으로 수석코치 직함을 받게 되었고, 김이섭이 복귀하는 등 함께 움직이는 코치진의 개편도 이루어졌다.

3.3.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대행

한편 4월 15일 욘 안데르센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자진사임함으로서 정식감독 부임 이전까진 최대 60일동안 감독대행을 맡을 예정이다.[9][10]

4월 17일 청주 FC와의 FA컵 경기를 통해 감독 대행 첫 경기를 치렀는데, 1 : 0 패배로 탈락하면서 자존심을 구겼다. 다만 이 날 경기에서는 R리그만 뛰는 선수들을 대거 내보냈고 프로 데뷔전을 치르는 이들도 많아서 크게 의미를 둘 경기까지는 아니었다. 이후 리그에서의 첫 경기는 8라운드 FC 서울 원정이었는데, 이 경기에서는 현재 인천의 팀 상황을 고려하여 짠 수비적인 전술을 기반으로 시즌 첫 무실점을 달성했다. 지루한 경기라고 비판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인천에게 제일 맞는, 실리적인 전술이었으며 박세직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환경을 만들었고 인천도 역습을 통해 슈팅을 종종 진행하는 등 완전히 수비일변도로 나서지는 않았다. 서울보다 유효슈팅 많이 때렸다. 서울은 유효슈팅이 아예 0개였으니까... 인천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했고, 이를 통해 시즌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를 제시했다는 평이 많다.

이후 유상철이 새 감독에 임명되면서 본인은 바통을 넘기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4. 여담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0709261041100110000001100200-001.jpg
  • 에두와의 침두 사건으로 유명하다. 2007년 9월 22일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수원과의 리그 경기에서 에두가 발을 들어서 임중용에게 가격을 했는데 이에 화가 난 임중용이 밀쳤고 에두는 침을 뱉었던 사건이다. 이걸로 임중용은 레드, 에두는 옐로를 받았다. 이후 에두는 FC 샬케 04로 이적하게 되는데 이적하기 전 인터뷰에서 침두 사건에 대해서 사과를 한다.
  • 2008년, 전북과의 경기에서 혼절하기도 했다.
  • 대구 FC인천 유나이티드의 창단 멤버이다. 하지만 대구에서는 1년만에 떠났고,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임중용은 전설이 되었다.
  • 베르더 브레멘으로 연수갔던 시절에 인천 로고가 박힌 옷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녔는데 팬들이 항의했다고 한다. 인천 유니폼의 색이 은근히 함부르크와 비슷한데 베르더와 함부르크의 사이가 좋지 않은걸 생각해보면 어느정도 수긍이 간다.
  • 강인덕 전 대표이사의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진 출발점이 임중용을 비롯한 코칭스태프 전원을 내쫓으려고 한다는 소문이었다. 임중용이 인천에서 지니는 위상이 워낙컸던 만큼 논란이 순식간에 번졌고, 결국 이후 강인덕에 대한 수많은 폭로전이 시작되는 도화선이 되었다. 만약 임중용 건이 아니었다면 강인덕 논란이 언젠간 터지기는 했겠지만 훨씬 늦게 사건이 알려졌을 것이며, 강인덕에 대한 여론도 그렇게 급속도로 악화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면 인천 구단은 더한 위기에 처했을테니 결국 임중용의 존재가 인천 구단의 정상화에 큰 도움을 준 셈이다.


[1] 희대의 명대사가 등장했던 바로 그 장면이다. 가평 에덴스포츠타운 잔디구장에서 훈련하던 어느 날 미니게임을 위해 골대를 그라운드 밖으로 옮겨야 했는데 다른 선수들이 다같이 골대를 들고 옮겼지만 라돈치치는 골대를 잡지 않고 골망을 만지작거리며 골대를 드는 척만(...) 했다. 라돈치치는 허리 아프다고 핑계를 댔는데 이에 빡친 당시 주장 임중용이 라돈치치를 향해 저 말을 던지며 말다툼을 벌였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라돈치치가 자신의 모국어로 핑계를 대며 계속 구시렁구시렁하자(...) 임중용이 욕을 하며 라돈치치를 향해 돌진하기도 했다.[2] 영화 '비상'에 그의 프로 정신과 리더십이 잘 드러나 있다.[3] 여러 인터뷰나 비상 영화를 보면 임중용은 김호곤 감독 밑에서 출전 기회를 별로 못 얻었다고 주장해왔다. 비상 감독인 임유철 감독과의 인터뷰.[4] 당시 인천 유나이티드의 결승진출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에 더 자세한 일화들이 나와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하늘을 찌르던 오만함과 게으름으로 팀 케미를 저해하던 라돈치치를 어떻게든 팀에 녹아들게 하려는 임캡틴의 모습은 그야말로 눈물이 앞을 가린다. 임중용의 말로는 라돈치치는 잘한다고 해주면 거만해지는 성격이었고 자기를 제외한 그 누구도 싫은 소리를 안 했기 때문에 자신이 나서서 쓴소리를 한 것이라고 한다.[5] 처음에 브레멘 구단에서 연수 받지 못하고 지역 유소년팀에만 떠돌며 연수를 하다가 인천 창단 때 골키퍼 코치를 했던 미하엘 크라프트가 마침 브레멘의 1군팀 골키퍼 코치로 있어서 그의 도움을 받고 본인도 2군 감독 앞에서 열심히 준비하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서 브레멘 구단에서 연수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6] 정인환은 전남시절부터 아끼던 허카우터가 남준재, 안재준과 트레이드해 영입했고 안재준은 2013시즌 박재준과 트레이드되어 다시 돌아와서 달았다. 참고로 이 과정에서 인천팬들이 보여준 모습은 상당히 표리부동했다. 안재준 보내고 정인환 데려왔다고 그렇게 욕을 퍼붓더니 정인환이 잘하자 정인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싸고돈건 그렇다치고 트레이드를 성사시킨 허정무의 공로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7] 대건고등학교[8] 연령별 국대에 계속 선수들을 보내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김진야. 단순히 선발만 되는 것이 아니라 결승전에서 쐐기골도 넣었다. 뛰어난 유스 시스템의 비결은 투게더를 강조한 덕분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9] 임중용은 프로축구연맹이 K리그에 요구하는 P급을 아직 보유하지 못한 관계로 임기가 60일까지만 가능하다고 한다.[10] 아시아축구연맹(AFC)은 2020년부터 챔피언스 리그에 참가하는 팀 감독에게 P급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에 따라 연맹은 클럽 라이센스 심사 과정에서 이 내용을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