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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축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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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코치 김광석.png
인천 유나이티드 FC 코치
이름 김광석
金光奭 | Kim Kwangsuk
출생 1983년 2월 12일 ([age(1983-02-12)]세)
서울특별시 송파구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1] 180.5cm | 체중 77.8kg
포지션 센터백, 레프트백
소속 선수 포항 스틸러스 (2002~2020)
광주 상무 불사조 (2005~2006 / 군 복무)
인천 유나이티드 FC (2021~2022)
프런트 인천 유나이티드 FC (2023 / 스카우트)
코치 인천 유나이티드 FC (2023~/ 2군 코치)[2]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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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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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송파중 - 청평공고 - 위덕대
번호 포항 스틸러스 - 3번, 39번
인천 유나이티드 - 3번
응원가 Steam - Na Na Hey Kiss Him Goodbye[3]
가족 아내,아들,딸
}}} ||
1. 개요2. 생애3. 클럽 경력4. 국가대표 경력5. 프런트 경력6. 플레이 스타일7. 기록
7.1. 통산 클럽 기록7.2. 대회 기록
8.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선수이자 포항 스틸러스의 원클럽맨 레전드 수비수였다.[4] 2020시즌 이후 계약 만료로 인천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하였으나 2년 계약이 만료되며 선수생활을 마쳤고, 현재는 인천의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2. 생애

고등학교 1학년 때 축구를 시작해서 현재는 K리그의 레전드 수비수로 인정받고 있는 선수. 지원자들 중에 빠른 발 하나 인정받아 뽑혔고 이후 그는 동료들이 쉬는 늦은 시간까지 개인 훈련에 매진해 부족한 기본기를 끌어 올렸다.[5][6]

게다가 고등학교 시절까지 주목받던 선수도 아니었고, 포항에 입단한 것도 정식 계약이 아닌 연습생 신분에 1년 계약으로 입단하였으며 입단 당시 포항의 주전 수비수는 홍명보였다. 하지만 김광석이 입단하고 나서 2002년 홍명보는 LA 갤럭시로 이적했다. 이 때문에 김광석 본인은 포항에 엄청난 고마움을 느끼고 있으며, 포항에서 맞춰 주는 연봉과 웬만큼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 팀을 옮길 생각은 없다고 한다. 김현회 칼럼: ‘연습생 신화’ 김광석, “포항 아니었으면 축구 못 했을 것”

군 복무 기간을 제외하면[7] 포항 한 팀에서만 뛴 원클럽맨으로[8] 포항에서는 이상하게 존재감은 없는데 뛰면 든든한 선수라는 이미지로 박혀있다. 김광석의 과거 포지션 경쟁자들이 너무 쟁쟁해서 그런 듯 한데 황재원, 김형일, 김정겸, 최효진, 박원재, 김성근 등 K리그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과 경쟁했다. 하지만 2019년 현재 현역으로 아직까지 주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김광석 하나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은퇴 또는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2016년 이후로는 김광석 있고 없고에 따라 포항의 경기력이 너무 큰 차이가 나면서 오히려 은퇴 시점이 다가오면서 갈수록 그의 존재감이 크게 느껴지고 있다. 2019 시즌을 마친 현재 포항의 최대 과제가 김광석의 후계자 찾기일 정도. 사실 김광석의 수비력만 대체할 수 있는 센터백은 어떻게 구할 수 있지만 최근 김광석이 빠진 경기의 대부분은 수비력 보다 후방 빌드업 부터 꼬여서 경기 자체가 안 풀리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2010년대 초반 포항에 베테랑 미드필더가 남아돌던 시기에는 굳이 김광석이 빌드업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2014년을 기점으로 공미, 수미 가리지 않고 다 팔아버리는 바람에 역으로 김광석의 빌드업이 상당히 중요해졌다.

3. 클럽 경력

파일:김광석인천.jpg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김광석(축구인)/클럽 경력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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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국가대표 경력

센터백 치고 발도 빠른데다 경기 조율 능력이 매우 훌륭하여 리그 내에서는 손꼽히는 센터백으로 분류되지만, 정작 국가대표에는 단 한 차례도 소집되지 못 하였다.

팬들은 경쟁자가 쟁쟁해서라고 말하지만 20대 중반까지 포항에서 황재원, 김형일 등 당대 대표팀을 오가던 선수들에 밀렸다가 20대 후반이 돼서야 K리그에서 주전으로 도약할 정도로 늦게 빛을 보던 선수라 연령별 대표팀도 밟지 못했다.

김광석의 전성기 시점이라고 할 수 있는 2010년대 초중반 대표팀 센터백은 홍정호, 김영권, 장현수 등 김광석의 스타일과 비슷한 데다 6~8살 어린 선수들을 중심으로 전력이 꾸려져 있었다. 물론 김광석이 경험으로 비벼볼 수 있지 않을까 싶겠지만 김광석보다 2~3살 형인 이정수, 곽태휘 등이 이미 해당 부문에서 김광석보다 높은 기량을 보여주고 있었다. 심지어 조성환, 정인환, 김주영, 황석호, 김기희, 오반석, 윤영선, 임채민, 김원일 등 K리그에서 김광석보다 윗 레벨이라고 볼 순 없지만 스타일 상 대표팀 감독의 성향에 따라 대표팀 문턱을 밟은 케이스도 있었지만, 상술했듯 김광석의 스타일은 김광석보다 이미 한 단계 위의 선수들로 가득했기 때문에 불운하게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던 것.

5. 프런트 경력

2022년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이후 2023시즌부터 인천 유나이티드 스카우트로 새로 합류하며, 첫 행정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2023년 여름 이후 보직 이동이 있었다. 김광석 스카우트가 코치로 합류하고, 수석코치이던 김한윤 코치가 스카우트로 이동했다.

6. 플레이 스타일

K리그에서 몇 안 되는 커멘더형 수비수며 파이팅 넘치는 수비력과 관록에서 오는 수비 리딩도 장점이지만 국내 수비수들에게서 찾기 힘든 발기술과 빌드업에도 능하다. 수비에서는 모든 포지션을 뛸 수 있으며 어떤 위치에서 뛰어도 평균 이상의 기량을 과시한다. 오죽하면 팀 내에서 축구 천재로 불린다고. 문제는 이런 다재다능함 때문에 어느 포지션이든 붙박이로 뛴 적이 별로 없었는데, 황선홍 감독 부임 후 센터백으로 정착했다. 이후 포항의 센터백 조합은 무조건 김광석 + 로테이션 1명으로 돌아가는데, 부상이나 징계가 아닌 이상 결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인천으로 이적한 이후에는 인천 스리백에 스위퍼형 센터백을 담당하고 있다.

센터백치고는 평범한 신장이지만 경험에서 나오는 우수한 수비력과 터프한 만능 센터백이라는 점에서 세르히오 라모스와 닮았다.

7. 기록

7.1. 통산 클럽 기록

2022년 12월 20일 기준
  • ( )는 리그컵 기록이며 리그 기록과 별도로 표기하였다.
    수정전 자료는 리그와 리그컵 기록이 합산되어 있었으나 최근 연맹 자료에서는 리그컵 수치를 제외하고 표기하고 있다.
시즌 소속리그 클럽 리그 FA컵 대륙대회[9] 합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02 K-리그 포항 스틸러스 - - - - - - - - - - - -
2003 K-리그 포항 스틸러스 9 0 0 1 0 0 - - - 10 0 0
2004 K-리그 포항 스틸러스 - - - - - - - - - - - -
2005 K-리그 광주 상무 불사조 10 1 0 1 0 0 - - - 11 1 0
2006 K-리그 광주 상무 불사조 12(2) 0 0 - - - - - - 12(2) 0 0
2007 K-리그 포항 스틸러스 12(5) 0 0(1) 5 2 0 - - - 17(5) 2 0(1)
2008 K-리그 포항 스틸러스 20(1) 1 3 1 0 0 5 0 0[10] 26(1) 1 3
2009 K-리그 포항 스틸러스 17(2) 0 0 1 0 0 9[11] 0 2 27(2) 0 2
2010 K-리그 포항 스틸러스 12(4) 0 0 - - - 7 0 1 19(4) 0 1
2011 K-리그 포항 스틸러스 31(3) 0 0 4 0 0 - - - 35(3) 0 0
2012 K-리그 포항 스틸러스 41 1 0 5 1 0 6[12] 0 0 52 2 0
2013 K리그 클래식 포항 스틸러스 36 0 0 5 0 0 5 0 0 46 0 0
2014 K리그 클래식 포항 스틸러스 33 2 0 2 0 0 9 0 0 44 2 0
2015 K리그 클래식 포항 스틸러스 24 0 0 2 0 0 - - - 26 0 0
2016 K리그 클래식 포항 스틸러스 37 1 0 1 0 0 6[13] 0 0 44 1 0
2017 K리그 클래식 포항 스틸러스 16 1 0 1 0 0 - - - 17 1 0
2018 K리그1 포항 스틸러스 36 3 1 - - - - - - 36 3 1
2019 K리그1 포항 스틸러스 19 0 0 - - - - - - 19 0 0
2020 K리그1 포항 스틸러스 27 - - 3 - - - - - - - -
합계 365(17) 10 4(1) 29 3 0 47 0 3 441(17) 13 7(1)
  • 합계 탭의 기록들은 모두 2019 시즌 종료 시점 기준. 2019 시즌까지 커리어 통산 458경기 13골 8도움, 포항 스틸러스 통산 433경기 12골 8도움 달성(K리그 정규리그만 따지면 포항 소속으로 343경기 9골 4도움 기록)
  • 최종 수정 2019년 7월 21일. 2008 ACL 출전기록과 2009 ACL 도움기록 찾아서 반영
  • 파일:K리그 로고(2013~2020).svg 김광석 K리그 기록한국프로축구연맹 DB

7.2. 대회 기록

8. 여담

  • 포항에 처음 입단할 때는 연습생 신분이었는데, 어느덧 프로 19년 차가 되었다.
  • 2002년과 2004년에만 출전 기록이 없는데, 17세라는 늦은 나이에 축구에 입문한 까닭에 포항에 입단한 2002 시즌은 팀이 내주는 기본기 훈련에 매진하였고, 2004 시즌은 큰 부상을 당해 한 시즌을 통째로 날리는 비운을 겪었다. 05년 상무 입대도 부상 후유증을 완전히 털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남은 재활과 군복무를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방편이었다고 밝힌바 있다.
  • 곱상한 외모와 다르게 경기 내에서는 굉장히 터프한 성격. 플레이가 영리하여 카드는 그렇게 많이 받는 편은 아니지만[15] 상대편 선수와 얼굴을 맞대는 신경전을 꽤 자주한다. 황지수와 더불어 팀내 최고참으로서 군기반장 역할을 맡고 있으며 실제로 경기 중에 후배들을 독려하고 갈구는 모습이 많이 보이지만, 경기 후에는 후배들을 일일이 챙겨줄 정도로 고참으로서 인망도 괜찮은 편.[16]
  • 다만 말주변이 부족하여 가끔씩 잡히는 인터뷰를 보면 귀찮아 하지는 않는데 뭔가 동문서답형의 인터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경기 후 인터뷰에서 캐스터나 기자들이 애를 많이 먹는 편이다. 그나마 이것도 2018년 이후로는 인터뷰 기회가 늘어서 그런지 많이 나아졌다.
  • 인천 이적후 머리에 노랑 고무줄을 끼고 경기를 뛴다.
  • 포항 스틸러스시절 2013시즌 우승 결정전이던 울산 현대와의 리그 마지막 라운드에서 신경전을 벌인 강민수와 인천에서 재회하였다. 인천팬들은 이 둘의 케미를 기대하고 있다.
  • 특별한 날을 제외하곤 술을 일절 먹지 않으며, 담배 또한 피우지 않을 정도로 자기관리에 상당히 철저한 편이다.관련 기사
  • 팬서비스가 좋다.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팬들이 댓글을 남기면, 댓글마다 좋아요는 물론이고 정성스럽게 답글까지 하나하나 달아줄 때가 많다.
  • 인천 유나이티드 유튜브 그것이 알고싶다 컨텐츠에서 강민수가 인천에 오자마자 사과했다고 한다. 김광석도 지나간 일이니 잊고 지내자는 등 화해했다고 한다.


[1] 슈팅스타 기준[2] 시즌 중 수석코치였던 김한윤과 2군코치였던 변재섭과 서로 서로 보직을 교환했다.[3] 그 누구도 넘지 못해 포항의 김광석![4] 말년에 인천으로 이적했지만 19년 동안 포항에서 뛴 공로를 인정받아 같은 시기 포항에서 선수생활을 한 황지수, 신화용, 황진성과 같이 포항 스틸러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5] 이게 말이 쉽지, 얼마나 대단한 거냐면 보통 유소년 축구는 9살에 시작하면 13살 때 그 선수의 기술적인 면이 완성되어 15살 이후로는 고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으며 시작한 시기가 늦을수록 대성하는 선수가 극히 드물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양반이 그 극히 드문 케이스 중 한 명이다.[6] 또 다른 유명한 케이스는 곽태휘. 그 역시 고등학교 때 축구를 시작했다.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인 넬송 세메두 역시 만 16세에 축구를 시작했는데 그는 한술 더 떠 초일류 클럽인 FC 바르셀로나에서 뛰었었다.[7] 부상으로 폼이 저하되자 영리하게도 상무 입대를 선택해 재활과 군 문제를 동시에 해결했다.[8] 2021시즌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면서 원클럽맨은 아니게 되었다.[9] ACL 출전 기록은 진출 플레이오프 기록도 포함[10] 창춘 야타이와의 조별리그 4차전 도움 기록 확인불가(황진성의 2번째 골을 어시스트를 제공한 선수가 누구인지 확인 불가능)[11] ACL 출전 기록. 참고로 김광석은 2009 클럽월드컵에 출전하지 않았다)[12] P.O 기록 포함[13] P.O 기록 포함[14] 출전 기록이 없는 2002, 2004 시즌을 제외하면 14시즌이다.[15] 심지어 K리그 400경기 넘게 출장하는 동안 퇴장은 한번도 없었다.[16] 신화용의 그늘에 가려 기회를 못 받다가 뒤늦게 데뷔전을 치르고 승리한 강현무가 감격에 겨워 펑펑 울자, 남자가 겨우 이 정도로 울면 어떡하냐 하면서 강현무를 달래주었다. 정작 방송에 잡힌 화면은 혼내는 모습으로 잡혔다는게 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