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3 10:54:51

김학철(축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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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철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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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철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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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나이티드 FC 위대한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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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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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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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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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철
파일:가톨릭관동대학교 배너.svg
CATHOLIC KWANDONG UNIVERSITY
파일:IMG_6431.jpg
<colbgcolor=#006277><colcolor=#ffffff> 이름 김학철
Kim Hak-Chul
출생 1972년 11월 4일 ([age(1972-11-04)]세)
강원도 강릉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6cm, 75kg
직업 축구 선수 (수비수[1] / 은퇴)
축구 감독
학력 강릉연곡초 - 주문진중 - 강릉상고 - 국민대
소속 <colbgcolor=#006277><colcolor=#ffffff> 선수 부산 대우 로얄즈/부산 아이콘스 (1995~2002)
상무 축구단 (1998~1999 / 군 복무)
대구 FC (2003)
인천 유나이티드 FC (2004~2008)
감독 인천 유나이티드 FC (2008 / 플레잉 코치)
인천 유나이티드 FC 2군 (2009 / 코치)
인천 유나이티드 FC U-18 (2010~2012)
동국대학교 (2014 / 코치)
강릉제일고등학교 (2015)
포천시민축구단 (2016)
파타야 유나이티드 FC (2016)
화성 FC (2017~2018 / 수석 코치)
화성 FC (2019~2021)
가톨릭관동대학교 (2022~ )
국가대표 1경기 (대한민국 / 1998)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지도자 경력6.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축구 선수 출신 감독. 현역 시절 센터백을 소화했으며, 인천 유나이티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구단 레전드이며, 인천 주축 선수 중 창단 첫 은퇴 선수였다.

2. 클럽 경력

2.1. 부산 대우 로얄즈

국민대를 졸업한 김학철은 1995년 대우 로얄즈에 입단했다. 점차 시간을 늘려나가면서 1997년에는 팀의 주전 수비수로 자리잡았고, 나름대로 쏠쏠한 활약을 하던 김학철은 1998년 상무 축구단에 입단해 1999년 전역할 때까지 주축 선수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 부산으로 복귀하지만, 여전히 출전 기회를 나름 부여받았음에도 2002년을 끝으로 팀에서 방출 통보를 받았다. 이는 이안 포터필드의 청사진에 그의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2.2. 대구 FC

방출된 김학철은 안종복의 추천을 받고 대구 FC에 창단 멤버로 입단하게 된다.

대구의 초대 부주장에 선임되며 호제리우 프라테아트와 주전 수비수로 활약했던 김학철은 임중용과도 좋은 호흡을 맞추었는데, 이런 활약이 무색하게 1년만에 인천 유나이티드의 창단 멤버로 떠나게 된다.

당시의 기사를 보면 연봉 협상에서 이견이 었었던 것으로 보인다.

2.3. 인천 유나이티드 FC

파일:인천 김학철.jpg
인천 유나이티드 FC 선수 시절


대구에서 쏠쏠한 활약을 펼치던 김학철은 부산 시절 단장과 선수로 연이 있던 안종복 단장이 있는 인천의 관심을 받았고, 창단 멤버로서 임중용과 함께 대구를 떠나 인천에 입단했다. 그리고 임중용과 함께 창단 초대 부주장에 선임됐다.

2004년 당시 인천의 감독이었던 베르너 로란트는 피지컬이 좋은 센터백을 기용하던 터라, 합류 초기에는 선발 출전하는 일이 적었지만 장외룡 감독 부임 이후 팀의 주축으로 활약하였다.

장외룡임중용에게는 빌드업을, 장신 수비수 이상헌에게는 제공권 싸움을, 그리고 김학철에게는 상대 주축 공격수를 꽁꽁 묶는 맨투맨 수비를 요구하며 인천의 탄탄한 수비진을 완성 시켰다.

김학철은 축구선수에게는 환갑을 넘긴 나이인 30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체력과 스피드에서 상대 선수에게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팀의 고참으로서 궅은 일을 도맡아 했다.

2005년 무려 36경기를 소화하며 창단 2년 만에 인천의 역대 최고 성적인 통합 리그 우승 및 플레이오프 준우승을 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2006년 32경기, 2007년 26경기를 소화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그러나 2008 시즌을 앞두고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장외룡 감독은 안현식, 안재준 등 신인들에게 기회를 주며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진행했다.

결국 만으로 36세가 된 김학철은 구단으로부터 은퇴를 권유받으며 여름부터 플레잉 코치로 전환했다. 결국 프로 통산 284경기에 머물며 목표하던 300경기 출전은 무산되고 만다.

2008년 11월 9일 문학 경기장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상대로 은퇴식을 치르며 선수 생활을 화려하게 마쳤다.#

3.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 경력도 한 번 있는데, 1998년 3월에 요코하마에서 열린 다이너스티 컵 경기였다. 당시에는 상무 소속이었지만 그 전 해 프로 무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것을 기억하고 있던 차범근 감독이 부임한 이후 국가대표팀에 차출했는데, 무려 데뷔전이 한일전이었다. 그러나 전반 17분에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데다 부상을 당하며 국가대표팀 경력이 그대로 끝나버렸다.

4. 플레이 스타일

찰거머리 수비수. 100m를 11초에 주파하는 빠른 스피드와 터프한 수비로 주목 받았다. 특히 대인 마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는데, 당시에는 최고라 불리던 황선홍부터 최용수, 안정환, 박주영 등 K리그에서 내로라 하는 공격수도 김학철의 마크가 붙으면 90분 내내 볼을 못 잡는 일이 허다했다.
센터백으로선 작은 신장을 지닌지라 제공권에서 밀리는 일도 있었으나 타고난 점프력을 통해 보완하였다.

선수 생활 막바지인 인천 유나이티드에서도 대체로 피지컬이 좋은 외국 용병 선수 (이따마르, 산드루, 에두 등) 들을 맡는 모습을 보이며 뛰어난 자기 관리 능력을 보여줬다.

5. 지도자 경력

2008년부터 플레잉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고 은퇴 이후 인천 유나이티드의 2군 코치로 보직을 변경했으며, 얼마 후에는 인천의 유스팀인 인천대건고등학교를 이끌기도 했다. 그러다가 2012년에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귀국한 이후 2014년에 동국대학교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가 2015년에는 모교이자 강원 FC U-18 팀인 강릉제일고등학교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2016년에는 K3리그포천시민축구단의 감독으로 임명되면서 성인 무대 감독으로 발돋움했고, 2016년 6월에 태국 프리미어 리그의 파타야 유나이티드의 감독 제안을 수락하면서 반 년만에 프로팀 감독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하지만 파타야에서는 그리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다.

이후 화성 FC에서 코치 생활을 했고, 2019년 FA컵에서는 화성 FC의 감독이 되어 팀 역사상 두 번째 K3리그 어드밴스 우승K3리그 구단 최초의 FA컵 4강에 올리는 쾌거를 기록했다.

하지만 2020 시즌에는 정규리그 6위에 그치며 챔피언십 진출에 실패했다.

2021시즌에는 아예 구단 역대 최저 순위인 리그 12위를 기록했고, 결국 2021시즌을 끝으로 화성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2022년 이기근 감독의 후임 감독으로 강원도 대학 강호 가톨릭관동대학교 감독으로 부임했다.
가톨릭관동대학교에서 아쉬운성적을 보여 경질 위기에 쳐 했으나 2024년 통영 대학축구대회에서 4강이라는 성적과 전국체전 선발전 우승을 이루어내면서 다시 한번 학교에서 기회를 받았다.

6. 여담

  • 임중용과 함께 대구 FC인천 유나이티드 양 팀에서 창단 멤버로 기록된 인물이다.
  • 인천 선수 시절 응원가가 있었다. 원곡은 뭉게구름. 가사는 아래와 같았다.
    인천의 레전드 김학철, 우린 널 노래하네

    영원히 못 잊을 너의 이름, 나의 사랑 김학철


[1] 센터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