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1 16:18:13

광주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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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FC
Gwangju FC
정식명칭 광주시민프로축구단
법인명 ㈜광주시민프로축구단
구단형태 시민구단
소속리그 K리그2
창단 2010년 4월 2일
연고지 광주광역시
홈구장 광주월드컵경기장 (40,245석)
구단주 이용섭 (광주광역시장)
대표이사 정원주
단장 기영옥[1]
감독 박진섭
용품 스폰서 켈미
메인 스폰서 광주은행
상징색 노랑색 , 빨강색 , 주황색 , 은색 , 갈색
마스코트 파일:external/s20.postimg.org/Gwangjufc_mascot.png
보니(左), 화니(右)
웹 사이트 파일:GFC-_emblem3.png |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유소년 시스템
U-18 팀 금호고등학교
U-15 팀 광주 광덕중학교
U-12 팀 광주 FC U-12
All in 광주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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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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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광주 FC
전라권 연고 기타 구단 보기


1. 개요2. 창단 과정3. 연혁
3.1. 1부 리그 시대(2011~2012)3.2. K리그 챌린지 시절3.3. K리그 클래식으로의 복귀3.4. 다시 2부 리그에서
4. 타 구단과의 관계5. 여담6. 색상 일람7. 유니폼8. 역대 성적9. 역대 주장10. 역대 감독11. 코칭스태프 명단12. 선수단 명단

1. 개요

K리그2 소속의 프로축구단. 연고지는 광주광역시. K리그 제16구단이자 시민구단이다.[2] 그리고 최초의 강등팀이자 최초의 승격 이후 잔류에 성공한 팀. 광주광역시를 연고로 한 최초의 축구팀으로 탄생하기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팀이다.

2. 창단 과정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월드컵 경기장의 활용 및 K리그의 양적 확대 차원에서 대도시에 축구팀 창단을 추진한다. 당시 광역시 중에 팀이 없던 곳이 대구, 인천, 광주였다. 하지만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흥분 속에서도 기업팀 창단이 하나도 없던게 한국축구의 현실이었다. 결국 대구는 2003년 시민구단 창단, 인천은 할렐루야 유치와 시민구단 창단을 고민하다가 손쉬운 시민구단 창단으로 가닥을 잡았고 광주도 가만있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앞에서 이야기 한것처럼 타지역도 기업구단 창단은 없었고 광주광역시 또한 그러했다. 창단을 할만한 큰 규모의 연고 기업도 없고[3] 게다가 광주의 인구도 광역시 중에서는 적은 축에 속했고 전남으로 외연을 넓히기에는 이미 전남 드래곤즈가 있었다. 그렇다고 당장 시민구단을 만들기에는 예산이 부족했다.[4] 아예 창단 안하면 세금낭비도 없겠지만 정치인들의 업적욕심과 축구인들의 시장확대, 2002 한일월드컵 전부터 제기된 새 경기장의 활용방안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만나서 결국 팀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차선책으로 군 소속팀인 상무를 K리그에 참가시키기로 했다. 그리고 연고지는 광주로 정해 광주에 축구붐을 일으킨 후, 5년 후에 시민구단이나 기업구단 창단을 시도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서 광주 상무 불사조가 K리그에 참여한다. 당시 광주 축구팬들은 상무가 군인팀이라는 이유로 반대했으나,[5]광주시에서 차후 프로축구단을 출범할 것을 약속하면서, 결국 수용한다. 그리고 광주광역시는 미리 가입금과 축구발전기금 40억을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지급한다. 그렇게 2003년부터 광주에는 상무가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약속기간인 2008년이 다 되도록 돈을 내놓고서는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광주 연고 최대 기업인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접촉도 해 봤지만,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스포츠에 큰 관심을 나타내지 않으면서 실패.[6] 한 때, 내셔널리그 미포조선을 광주로 이동시키고, 이 팀을 시에서 시민구단으로 전환하고, 미포조선과 같은 계열사로 조선소가 영암 대불공단에 있는 현대삼호조선에서 메인 스폰서로 지원하는 방법도 검토되었지만, 당시 시장인 박광태가 삼호조선이 직접 경영하는 기업구단을 주장하면서 무산되었다. 미포조선의 직접 경영은 불가능한 말인데, 이미 계열사인 현대중공업이 울산 현대 호랑이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7]

진짜 문제는, 축구판에서 안그래도 높은 현대가에 대한 의존도가 더 올라간다는데 있다.당시 15개 팀중 3개구단(울산,전북,부산)이 현대가 구단인데 만약 현대중공업 계열의 광주구단이 창단했다면 16개 구단중 4개 구단, 즉 25%에 이르는 팀이 현대가 팀이 되는 기형적 구조가 되게 된다.

결국 다 실패하면서, 약속기간이 끝날 때쯤인 2008년말 광주시는 약속기간을 2년 늘려달라며 뻗댔고, 광주 상무를 응원하던 서포터측은 분개하여 응원 포기라는 초강수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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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에 대한 우리들의 사랑은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당장 갈 곳이 없던 상무팀 때문에 일단 연맹에서 2년 연기를 받아주기는 했지만, 대신 2년 안에 창단을 안 하면, 미리 납입한 40억[8]도 돌려주지 않기로 결정한다.

이후 어영부영 시간이 지나다, 2010년 4월 2일 광주광역시는 전격적으로 시민구단 형태로 프로구단을 출범 시킬 것을 결정한다. 롤모델은 강원 FC. 다만, 이 선언 당시, 이 선언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는 두 달 뒤 열릴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박광태 시장이 선언한 것이라, 선거 후에도 지켜질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달 뒤인 5월 3일, 광주 시민 구단 준비위원회를 발족했으며 13일 첫 회의에 들어간다. 5월 19일 이사회를 개최하고, 6월 3일부터 시민주 청약을 시작했다. 목표액은 10억원. 이로서 의구심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7월15일 시민주 목표액의 절반인 5억원 정도를 달성했으며, 준비위에서는 12월 안으로 창단을 끝내는걸 목표로 했다.[9] 광주 출신인 기성용이 창단비 1천만원을 쾌척하기도 했다.[10]

2010년 10월 18일 초대 감독으로 최만희 감독이 선임되었고, 2010년 10월 26일, 광주 레이어스로 팀 공식 명칭이 정해졌는데, 의도치 않게 분란이 되기 시작했다. 본래 의미는 빛, 섬광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인 'Ray'가 빛고을 광주와 관련도 있고, 우승을 향해 빛처럼 뻗어나간다는 뜻을 따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Ray'는 가오리도 포함된 다의어라[11] 홍어과에 속하는 가오리를 팀의 의미로 해석하면 반호남 지역드립의 상징인 홍어가 팀이름에 들어가는 꼴이 되기에 디시인사이드의 극우성향 갤러리 등에서 이를 조롱했다. 이 홍어드립 덕분에 원 공모자가 포기신청을 했고,[12] 신청 자체는 반려되었지만 이번에는 'Rayer'가 사전에도 없는 콩글리시라는 비판이 일었다. 결과적으로 팀명에서 레이어스를 제거했다. 이와 비슷한 전례가 하나 있는데 대구 FC 창단 당시 팀 명칭을 '대구 이글스'로 하려다가 반발에 부딪혀 그냥 '대구 FC'로 정한 사례가 있다.

팀명이야 어찌되었든 2010년 12월 14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광주 FC의 창단식이 열려 광주 시민구단이 공식적으로 탄생하면서 상무는 상주시로 떠났다.

3. 연혁

3.1. 1부 리그 시대(2011~2012)


박호진을 비롯한 베테랑 선수를 영입하고, 드래프트를 통해 신인 선수들을 영입해 선수단을 구성했다. 비록 팀의 메인 스폰서를 얻지 못해 재정적인 문제는 여전하지만, 그래도 2011년 3월 5일 창단 첫 경기이자, 첫 홈경기에서 대구 FC 상대로 3:2 승리를 기록했다. 전반적으로 2011년은 창단팀의 패기와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 시즌. 초창기에는 8경기 연속 무승으로 신생팀의 한계를 보여줬고, 이 위기를 극복한 FC 서울전의 승리는 황보관 FC 서울 감독의 자진 사임을 불러왔다.

여타 신생팀과는 다르게 제법 승수도 챙겼다. 그리고 막판 6강 PO 경쟁에서 고추가루 부대의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초반에는 박기동이 공격을 주도했고, 시즌이 진행될 수록 김동섭, 이승기, 주앙 파울로가 공격을 주도했다. 적어도 공격진은 시민구단 중에서도 수준급을 자랑했다. 키퍼는 박호진이 그럭저럭 자기 역할은 다 했다. 이 중 박기동과 이승기는 국가대표로도 발탁되었고, 김동섭은 올림픽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흑역사도 있었는데, 관중 뻥튀기를 한 것이 드러나면서, 광주 FC 팬들에게까지도 욕 먹었다. 광주 FC 홈페이지 게시판에 가면, 실명을 공개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회원까지 나왔다. 언론에 기사화된 것은 당연지사. 여기에 채용비리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창단된지 얼마나 되었다고 실망감을 주냐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비록 단장은 결국 무혐의처분을 받기는 했지만.

골키퍼 성경모는 승부조작 가담으로 인해 영구 제명되었다. 다른 선수들의 연루 의혹도 나왔지만, 다행이 묻혔고, 성경모 자신은 승부 조작을 하기로 했지만, 실제로 기회를 잡지는 못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흑역사는 흑역사. 다행히 다른 선수들에게까지 마수가 퍼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리그 최종성적은 9승 8무 13패로 리그 11위로 마무리했다. 중하위권이긴 하지만 열악한 재정 및 여러가지 악재 속에서 꽤 선전한 셈, 참고로 리그 10위인 성남 일화도 똑같이 9승 8무 13패였는데 골득실로 밀렸다. 보다 자세한 리그 결과는 위의 링크인 광주 FC/2011년을 참조 바람.

2012 시즌에는 부족한 재정 때문에 수비진의 공백을 전혀 메우지 못했다. 공격진은 나쁘지 않았지만, 수비진의 공백은 시즌 내내 발목을 잡았고, 결국 스플릿 B로 떨어진 후, 스플릿 B에서 부진을 거듭하면서 15위를 기록, 2부리그로 강등당했다.

광주는 일정도 아쉬웠다. 상무가 강제 강등에 대한 보이콧으로 스플릿 B의 전경기를 보이콧함에 따라 상무와의 경기 일정이 커다란 변수로 작용했다. 홈, 원정을 나눠서 각기 7번씩 총 14번을 치르는 일정 속에서, 광주의 첫번째 상주전은 스플릿 시작 후 5번째 경기였다. 다른 팀이 중간중간 체력을 비축했던 것에 비해 체력적으로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6번째나 7번째로 걸리는 팀보다는 나아 보이는 이 일정이 최악인 이유는 그 다음 주가 a매치 관계로 그러지 않아도 휴식기였기 때문이다. 경기감각과 긴장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다른 팀들도 체력을 보존하고 정신무장을 하기 때문에 휴식에 대한 이점도 전혀 없었다. 차라리 a매치 다음 주가 상주전인 것보다도 못한, 최악의 일정이었다. 결국 그 탓에 광주는 하위 스플릿의 호구 성남에게도 패배했고, 불운하게도 성남전 다음 주는 최강자 인천을 맞아 연패를 당하게 되었다.

더더군다나 광주의 2번째 상주전은 8번째 하위 스플릿 경기였고, 이 말은 광주가 나머지 6번째 경기를 연속으로 치룬다는 얘기였다. 성남과 인천에게 연패를 당한 다음에 휴식기를 가지는 건 연패를 당한 것이 문제이지만, 그러나 다른 팀이 휴식에 맞춰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것에 반해 광주만이 최후의 6경기를 연속으로 치러야 한다는 건 너무나 불공평하고 가혹한 운명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2012 시즌 16개 팀 스플릿의 과밀일정 탓에 마지막 5경기는 주중 2경기로 치러졌다. 광주는 최선을 다했지만, 과밀 일정에 따르기 마련인 체력고갈과 부상과 경고 트러블에는 방법이 없었다. 일정 자체가 강등이라는 낭떠러지로 광주의 등을 떠밀고 있었다. 상주의 보이콧이 불의의 사태이긴 하지만,[13] 2012시즌 강등은 최후의 한 끝 차이로 결정이 났는데, 정말이지 일정이 너무나도 불리했다.

결국 초대 감독인 최만희 감독도 강등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하면서 2부 리그에서 새로운 출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2013년 시작하면서 방만경영에 대한 기사가 떴다. 광고수입, 입장료를 다 포함하면 광주의 1년 예산에 버금가는 규모가 나오는데 대출을 받을 정도로 방만경영을 하고 있었다고.

강등후 파이어세일이 벌어져 이승기, 김동섭, 박기동, 박호진, 이용 등 기존 주전선수들이 대거 떠나버려 2부리그에서도 고난이 예상된다.

3.2. K리그 챌린지 시절


K리그 역사상 첫 2부리그 강등 팀이 되는 굴욕을 맛본 광주 FC는 K리그 챌린지 2013 우승 팀에게만 주어지는 승격 플레이오프 티켓을 목표로 시즌에 임하였으나 두 팀이 너무 강한데다가 시즌 내내 기복이 심하여 1위는커녕 2위조차 한 번 오르지 못하고 결국에는 승격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2014 시즌 개막 이후 4월까지는 기복이 있는 경기력을 내내 보여주면서 중위권을 유지했다. 상위권으로 올라갈 쯤하면 패배가 계속되면서 연승을 하지 못해, 좀처럼 치고 나가지 못했다. 1위 대전과 2위 안산이 상대적으로 치고 나가 혼전 양상이 된 챌린지 중위권에서 꾸준히 버티는데 성공하며, 결국 막판 유니버시아드 준비 관계로 홈 경기를 치루지 못한다는 약점도 이겨내면서, 꾸준히 성적을 내면서 4위에서 극적으로 미끄러진 FC 안양을 제치고 4위를 확정지으며 승강 PO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승강 PO에서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마치 정규시즌은 버린 양, 정규시즌에 오락가락한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인 양 승강 PO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뿜어냈다. 강원과의 준PO 원정 경기에서 1:0으로 이기더니, 부상자가 많았다는 행운도 따랐지만 경찰 축구단도 3:0으로 완파하고 승강 PO에 진출했다. 그리고 승강 PO 1차전 홈 경기에서 경남을 3:1로 잡으면서 이제 원정에서 두 골차 이상으로 지지만 않으면 승격에 성공하게 된다. 드디어 대망의 승강 PO 2차전에는 경남에게 선취골을 먹혔지만, 곧바로 김호남이 극적으로 동점골을 넣으면서 1:1로 경기가 종료되었고, 광주는 2012년 강등된 이후, 3년만에 다시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했다. 그렇게 3년만의 K리그 클래식 복귀로 선수들과 팬들은 기쁨의 비명을 질렀고 행복한 다음 시즌이 기다리고 있었다.

3.3. K리그 클래식으로의 복귀


2015시즌 전에는 강등 후보로 뽑혔으나 이러한 전망을 한 큐에 날리고 시즌 초중반까지는 승승장구. 강등권도 아닌 상위권 팀들을 위협하며 상위스플릿 언저리인 5~6위권을 오가며 2015시즌 K리그 클래식 최대의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결국 후반기부터 힘이 떨어졌지만, 광주광역시의 열악한 선수수급과 지원에도 불구하고 결국 K리그 클래식 잔류를 확정지었다! 챌린지에서 승격한 팀 최초의 잔류확정이라는 기록은 덤.

2016년에도 개막하기 전부터 무려 정조국을 영입하는 강수를 두며 스쿼드를 보강했고 이후로도 상위권 팀들을 꾸준히 위협하는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결국, 정규리그(스플릿 전 33R) 결과는 아쉽게 상위 스플릿 진출 실패. 하지만, 37R 포항전에서 잔류를 확정지었고, 8위로 전 시즌보다 2단계 상승한 순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그리고 정조국20골로 득점왕에 등극했으며, 리그 MVP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하지만 시즌 종료 후 정조국강원 FC로 이적하고 수비형 미드필더 이찬동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중앙에서 공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던 여름상주 상무에 입대했기 때문에 공격과 미드필더에 공백이 크게 발생했다. 적절한 보강이 이뤄지지 않으면 2017 시즌은 고단할 것으로 보인다.

예감은 적중하였다. 1라운드 대구 FC전 승리 이후, 6G 연속 무승, 그리고 강등권까지도 밀려나면서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8라운드에서 전북 현대를 상대로 첫 승을 따냈다!

2017년 8월 14일부로 광주의 영광을 함께했던 남기일 감독이 자진 사퇴하고, 이후 학범슨이라 불리는 김학범 감독을 전격 선임하여 시즌 끝까지 함께 할 예정이었으나, 11월 4일 대구 FC 원정경기에서 0:2으로 패배해 하위스플릿 최하위로 자동 강등이 확정되었다. 결국 김학범 감독은 3개월만에 강등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다.

참고로 2014년 광주 FC의 승격 희생양이 된 경남 FC는 2017년 챌린지 우승으로 클래식에 승격했다.

3.4. 다시 2부 리그에서

4. 타 구단과의 관계

아직 역사가 오래되지는 않은 팀이고 1부리그에서는 늘 하위권의 성적을 냈기 때문에 자타가 공인하는 라이벌 관계는 없지만 팬들 사이에서 이 팀만큼은 꼭 이겨야 한다라는 각오가 있는 팀은 몇 군데 있다.

4.1. FC 안양

2013 K리그 챌린지 3라운드 광주 FC와의 경기 종료 후 안양 서포터들이 원정 온 광주 서포터들을 둘러싸고 다툼이 있었다. 사건의 배경은 광주FC가 안양 원정에서 2대1로 승리를 했고 광주의 서포터들은 기분좋게 웃으면서 퇴장을 하고 있었는데 안양 종합운동장 특성상 원정 팬의 경로와 홈 팬들의 경로가 겹칠 수 밖에 없는 구조라 경기에 패배후 분노한 안양팬들과 마주하게 되었고 일부 안양팬들은 욕설과 지역 비하 발언 그리고 물리적 충돌까지 생기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광주의 원정팬 몇 명은 얼굴에 상처를 입었으나 가해자인 안양팬은 도주했고 잡지 못했다.

결국 사건발발 다음날인 4월 1일 안양 서포터즈가 광주 서포터즈 측에 공식 사과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논란이 되었는데 실제로 지역비하 발언을 듣고 욕설을 듣고 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에게는 단 한 마디의 사과도 없었고 이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회장단끼리 사과를 하고 그들끼리 사건을 종결시켜버린 것이다.

그래서 막상 피해자는 사과를 받지 못했으며 가해자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그리고 그 피해자들은 지금까지도 사과를 받지 못했다

오죽하면 광주FC 팬들이 2017시즌 종료 후 챌린지에 강등된 이후 선수들에게 다른 팀에게는 져도 되니까 안양만큼은 꼭 이겨달라고 당부할 정도

4.2. 수원 FC

FC 안양과의 관계는 팬들간의 갈등이지만 수원FC는 선수들 역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는 팀이다.

2014년 광주FC가 클래식에 승격하면서 1년동안은 만나지 않았지만 2015년 수원FC도 승격하면서 2016시즌 클래식에서 만나서 총 네 차례의 맞대결을 가지게 되었다.

2016년 4월 3일 정조국이 선재골을 넣었으나 이승현과 오군지미에게 실점하면서 광주FC에게 역전패를 안겼다.[14]
이때까지는 그저 챌린지에서 올라온 팀들간의 라이벌 의식이라고 볼 수 있는데

2016년 5월 28일 경기에서 첫 번째 사건이 터졌다.
이날 광주FC는 전반전 정조국의 선재골을 90분내내 지키면서 1대0 승리를 기록했는데 경기 종료 휫슬이 울리자 김병오가 박동진의 복부쪽으로 의도적으로 강하게 공을 찼고 공에 맞은 박동진이 잠시 쓰러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다행히 정조국이 잘 중재를 해주면서 사건이 마무리되는 듯 보였으나 수원FC의 코치들이 광주FC 벤치쪽으로 여러 분노를 표출했고 남기일 감독이 이에 항의를 하자 조덕제 감독이 "이런 어린놈의XX가"라고 남기일 감독에게 욕을 했으며 이 장면이 방송에 그대로 잡히면서 논란이 되었다. 후에 조덕제 감독은 사과를 했으나 수원FC에 대한 광주FC 팬들의 이미지가 나빠지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8월 21일 경기에서는 광주FC의 박동진과 수원FC의 김종국 선수간의 충돌이 있었다 [15]

10월 16일 하위스플릿 경기에서는 역시 사이가 안좋은 것이 그대로 보여졌는데 이날은 양 팀 모두 일부 선수들이 상대 벤치에 도발하는 일이 수차례 있었다.
이날 경기는 광주FC가 2대1로 이겼다. 경기 종료 후 역시나 또 갈등이 있었는데 윤보상이 경기 승리시 늘 하는 기도 세레머니를 보고 수원FC의 이창근 골키퍼가 시비를 걸면서 또 충돌이 생겼다. 그러면서 평소에 팬들에게 멘탈갑이라고 칭송받는 윤보상이 화를 내고 평소에 트러블 메이커였던 박동진이 윤보상을 제지하는 흔히 보기 어려운 장면이 보여졌다. 그리고 이날 역시 김병오는 김병오했다.

2016시즌 종료 후 수원FC가 꼴좋게 강등이 되면서 2017시즌에는 만나지 않았지만 광주FC 역시 강등이 되면서 2018시즌 다시 두 팀이 만나게 되었다.

광주FC와 수원fc의 그동안의 스토리와 라이벌 의식은이곳칼럼에서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4.3. 강원 FC

4.4. 전남 드래곤즈

남기일 전 감독과 전남의 악연 덕분인지 남 감독 시절부터 광주는 아무리 부진에서 헤매다가도 전남만 만나면 이상하리만큼 보약같은 승리를 거두거나 최소한 리그 팬들의 칭찬을 받을 만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전 골키퍼 윤보상의 프로 데뷔전이 이루어진 것도 전남과의 경기였다.[16] 이후 두 팀의 유니폼 색에서 따온 '옐로 더비'라는 별명을 얻었다. K리그의 많은 더비들처럼 처음에는 언론이 또 더비를 억지로 만들었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2019시즌 양팀에 리그2에서 만나게 되면서 더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5. 여담

  • 마스코트 '보니'로 활약하고 있는 사람이 놀랍게도 (활약 당시엔) 여고생이었다(!!!). 지금은 대학생이다. # 창단 준비부터 광주FC의 팬으로 있었다가 구단의 제안으로 2012시즌부터 시작했다고. 여기 기사를 참고하길 바란다. #
  • 위와 관련해서, 광주 FC의 마스코트는 봉황을 상징하는 화니(♀)와 보니(♂)이다. 그러나 팬들은 치킨 꼬꼬라고 부른단다. 즉 위에 언급한 희원 양이 맡고 있는 역할은 수컷봉황이라는 것.
  • 2014년 10월에는 광주의 조기축구회 선수이자 서포터가 광주 FC의 숙소에 침입해서 2차례에 걸쳐 13켤레의 축구화를 훔친 사건이 있었다.기사
  • 새 홈구장으로 쓰일 광주축구전용구장과 클럽하우스, 구단 전용 연습구장 건설이 확정되었다. 2018년 개관이 목표라고 한다. 전용경기장은 현 홈구장인 광주월드컵경기장 아랫편의 보조경기장에 1만석 규모의 가변좌석을 설치하는 형태로 건립해 1부리그 경기가 치러질 수 있는 수준의 경기장을 만들고 전용구장 관중석 옆에는 선수들이 생활하는 클럽하우스를 짓는다. 전용 연습구장은 현재 서향순 올림픽 제패기념 양궁장이 진월동으로 이전을 마치는대로 조성 작업에 들어간다. 새 홈구장과 클럽하우스, 구단 전용 연습구장 모두 염주체육관과 광주월드컵경기장 인근이다. 기사
  • 2012년에 유니폼 마킹을 특이하게도 선수들의 트위터 주소를 쓴적이 있다. 팬과 선수의 소통을 쉽게 하려는 의도였지만 예상외로 반응이 안좋아서 1년만 하고 접었다.
  • W석 원정팀 벤치 뒷쪽의 맨 앞에서 왕눈이 세안밴드를 쓴 작년까진 두건 아저씨가 혼자서 소리치며 응원한다. 이 분은 2018년 05월 12일 기준으로 현재 89경기 연속 홈경기 관람의 기록을 쓰고 있다(2013년 10월 20일 ~ 2018년 05월 12일, FA컵 4경기 포함). 오죽하면 어느 기사의 댓글에도 성대하게 언급됐을 정도로 유명하다.기사 (기사내용보단, 댓글의 내용을 보시길 바랍니다.) W석에서 혼자 응원하시는 열성팬분의 말에 따르면 혼자서 응원하는 이유는 본인이 원하는 응원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선수들과 더 가까이서 응원하고 인사하고 얘기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혹시나 W석에서 이 분을 보게 되면 응원을 볼 수 있다. 이곳을 통해서 인터뷰를 볼 수 있다. 그분의 별명이 광주의 거성이다.
  • 기성용이 구단 주식 4000주를 갖고 있다.
  • 올댓광주fc라는 광주FC를 소재로 한 팟캐스트 방송이 있다. 광주FM에서도 청취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페이스북 페이지 "시민구단 광주FC"를 운영하고 있다.
  • 시민구단 중 드물게 가입금을 완납한 팀이다. 자체적으로 무너지는 일은 있을지언정 연맹 외압으로 해체되는 일은 없을 듯.[17]

6. 색상 일람

파일:GFC-_emblem3.png 광주 FC 색상일람
상징색 RGB
(헥스 코드)
CMYK Pantone
Yellow R255 G210 B79
(#ffd24f)
C4 M23 Y74 K0 Pantone 122c
Red R196 G18 B48
(#c41230)
C29 M100 Y85 K1 Pantone 1807c
Orange R242 G101 B50
(#f26532)
C4 M74 Y80 K0 Pantone Warm Red c
Gray R165 G179 B171
(#a5b3ab)
C41 M25 Y32 K0 Pantone 443c
Brown R75 G57 B5
(#4b3905)
C67 M71 Y100 K44 Pantone 7533c

7. 유니폼

광주 FC/유니폼 문서로

8. 역대 성적[18]

역대 성적
K리그 FA컵
리그 연도 경기 승점 득점 실점 득실차 순위 결과
K리그2011309813353243-1111/1632강
201244101519455767-1015/16
강등
16강
K리그 챌린지20133516514535554+13/816강
201436131211514035+52/10
승격
16강
K리그 클래식20153181112352833-510/1232강
201638111413474145-48/1216강
20173861220303361-2812/12
강등
8강
K리그220183711151148514295/103라운드

9. 역대 주장

광주 FC
기간 이름
2011년 박기동
2012년 김은선
2013년 박병주
2014년 임선영
2015년 이종민
2016년 여름
2017년 송승민
2018년 안영규
2019년 김태윤

10. 역대 감독

역대 이름 재임 기간 비고
초대 최만희 2011년 ~ 2012년 K리그2 강등
2대 여범규 2013년 시즌 중 사임
3대 남기일 2013년 ~ 2017년 K리그1 승격
시즌 중 사임
4대 김학범 2017년 K리그2 강등
5대 박진섭 2018년 ~

11. 코칭스태프 명단

광주 FC 코칭스태프 명단
직책이름영문 이름국적생년월일
감독박진섭Park, Jin Seob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77년 3월 11일
수석코치유경렬Yoo, Kyoung Youl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78년 8월 15일
필드코치조성용Cho, Sung Yong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81년 6월 5일
GK코치주용국Joo, Young Kuk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70년 1월 27일
피지컬코치길레미-파일:브라질 국기.png1982년 8월 26일
주치의이준영Lee, Jun Young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70년 7월 15일
분석관정재선Jung, Jae Sun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78년 3월 22일
트레이너김범수Kim, Beom Soo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87년 12월 27일
트레이너김용호Kim, Yong Ho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88년 3월 27일
통역서주항Seo, Ju Hang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85년 12월 8일
주임김종문Kim, Jong Mun파일:대한민국 국기.png1971년 10월 13일

12. 선수단 명단


광주 FC 2019 시즌[주의]
등번호 국적 포지션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생년월일 신체 조건 비고
1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GK 윤평국 Yoon Pyeong-guk 1992년 2월 8일 189cm, 88kg
2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정준연 Jeong Jun-yeon 1989년 4월 30일 178cm, 70kg
3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png DF 아슐마토프 Rustam Ashurmatov 1996년 7월 7일 185cm, 74kg
4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김태윤 Kim Tae-youn 1986년 7월 25일 183cm, 79kg 주장
5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MF 최준혁 Choi Jun-hyeok 1994년 9월 5일 187cm, 88kg
6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MF 박정수 Park Jeong-soo 1987년 1월 13일 181cm, 74kg
7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MF 여름 Yeo Reum 1989년 6월 22일 175cm, 62kg 부주장
8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이으뜸 Lee Eu-ddeum 1989년 9월 2일 177cm, 73kg
9 파일:브라질 국기.png FW 펠리페 Felipe de Sousa Silva 1992년 4월 3일 193cm, 90kg
10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MF 임민혁 Lim Min-hyeok 1997년 3월 5일 168cm, 64kg
11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FW 김정환 Kim Jeong-hwan 1997년 1월 4일 173cm, 65kg
12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이시영 Lee Si-young 1997년 4월 21일 173cm, 68kg [a]
13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FW 두현석 Doo Hyeon-seok 1995년 12월 21일 169cm, 65kg
14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MF 여봉훈 Yeo Bong-hun 1994년 3월 12일 176cm, 70kg
15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홍준호 Hong Joon-ho 1993년 10월 11일 192cm, 85kg
16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FW 이희균 Lee Hee-gyun 1998년 4월 29일 168cm, 63kg
17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FW 엄원상 Um Won-sang 1999년 1월 6일 173cm, 63kg
18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FW 조주영 Jo Ju-young 1994년 2월 4일 186cm, 76kg
19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MF 정현우 Jeong Hyun-woo 2000년 7월 12일 174cm, 65kg
20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이한도 Lee Han-do 1994년 3월 16일 185cm, 80kg
21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GK 이진형 Lee Jin-hyung 1988년 2월 23일 189cm, 85kg
22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FW 김주공 Kim Joo-gong 1996년 4월 23일 180cm, 73kg
23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MF 손민우 Son Min-woo 1997년 4월 25일 176cm, 74kg
24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MF 김대웅 Kim Dae-woong 1995년 9월 11일 175cm, 68kg
25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정다훤 Jeong Da-hwon 1987년 12월 22일 181cm, 78kg
27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박선주 Park Sun-ju 1992년 3월 26일 174cm, 66kg
29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임진우 Lim Jin-woo 1993년 6월 15일 186cm, 82kg
31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GK 김태곤 Kim Tae-gon 1998년 12월 29일 187cm, 81kg
33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MF 김준형 Kim Joon-hyung 1996년 4월 5일 177cm, 73kg [b]
40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파일:대만 국기.png DF 왕건명 Wang Geon-myung 1993년 7월 04일 180cm, 76kg
55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DF 김진환 Kim Jin-hwan 1989년 3월 1일 186cm, 78kg
77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FW 정영총 Jeong Yeong-chong 1992년 6월 24일 180cm, 70kg
94 파일:브라질 국기.png FW 윌리안 Willyan da Silva Barbosa 1994년 2월 17일 170cm, 62kg
구단 정보
대표이사: 정원주 / 감독: 박진섭 / 홈 구장: 광주월드컵경기장
출처: 광주 FC 홈페이지

[주의] 이 틀은 기기 환경에 따라 볼 때 상당히 길 수 있습니다. 스쿼드에 대한 간략한 틀은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또한 이 틀을 수정할 때는 여기도 같이 수정해주시기 바랍니다.[a] 성남 FC에서 임대[b]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임대

  • 군 입대
김영빈(DF) 상주 상무
윤보상(GK) 상주 상무[19]
최봉진(GK) 아산 무궁화
조성준(FW) 아산 무궁화[20]
이민기(DF) 상주 상무[21]
이순민(DF) 포천시민축구단[22]
  • 임대
조주영(FW) 인천 유나이티드
홍준호(DF) 울산 현대
정호민(DF) 김해시청 축구단
황인혁(DF) 대전 코레일
이중서(FW) 강릉시청 축구단
김지수(DF) 강릉시청 축구단


[1] 기성용의 아버지이며, 광주축구협회장도 겸임하고 있다. 기영옥이 단장직으로 일하면서 연봉을 모두 유소년 팀에 투자한다고 한다. 사실상 무보수로 일하는 셈이다.#[2] 우리나라의 축구 리그 중 차상위 리그인 K리그2의 승강제가 시행되기 전에 창단한 마지막 구단이다.[3] 광주를 기반으로 탄생해 대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으로는 금호아시아나그룹삼양사 등이 있다. 하지만 이 두 회사는 1980년대 초 프로야구 출범 당시 호남 연고 구단 창설과정에서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게다가 2010년 금호아시아나는 워크아웃 크리. 아마 안 될거야... 이외에도 광주에 공장을 둔 기아자동차삼성전자도 있지만 둘 다 광주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옅으며 이미 프로 스포츠단을 운영하고 있던 상태였다.[4] 광주는 광역도시임에도 재정자립도가 16개 시도에서 늘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심지어 과거 옛 마산시보다 시 예산이 적은 적도 있었다. 거기다 인구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고.[5] 본 소속팀도 아닌데다 2년마다 선수가 바뀌는 팀을 응원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선수들을 말뚝박게 할 수도 없고. 그런데 부산 상무는 선수들을 반강제로 말뚝을 박게 만들어서 논란을 낳기도 했다.[6]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자금사정이 당시 문제도 됐겠지만 일단 여기는 스포츠에 큰 관심이 없다. 있던 팀도 다른 곳에 처분할 정도. 대신 음악에 관심이 많다. 박삼구 현 회장도 그렇지만 그의 큰형인 박성용 명예회장이 꽤 유명한 클래식덕후였기 때문. 그래서 음악보다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원이 상당히 빵빵하다.[7] 포스코에서 포항 스틸러스전남 드래곤즈를 운영하고 있으므로 아예 불가능한것만은 아니다.(현대중공업 측에서 2개 구단을 운영할 의지나 자본력이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지만...)[8] 시민구단을 비판 하는 사람들은 40억 아깝다고 그보다 훨씬 많은 세금이 계속 들어가는 프로축구팀 창단이 옳은거냐고 말한다.[9] 하지만 광주광역시 공무원들에게 시민주를 강제 할당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특히 구입 의무 대상이었던 5급 이상은 급수에 따라서 최소 10만원 상당의 시민주를 구입해야 했으며, 의무가 아니었던 6급 이하의 공무원들도 승진고과에 대한 염려 덕분에 구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매번 시민구단 창단 때마다 공무원노조에서 항의 성명을 내고, 공무원들이 딱히 K리그 시민구단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나 열성적인 지원 의식을 갖지 않는데는 이런 사정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도 돈이 부족한지, 공무원들에게 또 시민주를 사라고 종용하고 있다.[10] 그리고 훗날 그의 아버지인 기영옥 씨가 이 팀의 단장으로 부임하게 된다.[11] 탬파베이 레이스의 'Rays' 역시 지금은 빛, 섬광의 뜻으로 쓰이지만 창단 당시의 이름이었던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에서의 데블 레이는 가오리라는 뜻이었다.[12] 팀명은 공모로 선정되었는데, 1위 1명은 100만원의 상금이 있었다.[13] 근데 따지고 보면 공평하게 돌릴 수도 있는 리그에서 상주를 강제 강등 시킨 건 광주를 비롯한 지방구단들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결과다. 결국 경쟁팀 하나를 떨어뜨려놓고 나머지 하위 스풀릿 팀들끼리 돌린 러시안 룰렛에 광주가 당첨된 셈.[14] 참고로 이 역전패가 2016시즌 광주FC의 유일한 역전패이다 광주FC는 2016시즌 선재골시 10승 3무 1패로 선재골을 많이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한 번 넣을 경우에는 잘 지키는 축구를 보여주었다[15] 이때 박동진이 김종국에게 욕을 하는 장면이 방송에 잡히면서 논란이 되었다.[16] 이 경기에서 윤보상은 PK를 막아내는 등의 맹활약을 펼치며 광주의 승리를 이끌었고 이 경기 이후 광주의 주전 골키퍼 자리를 꽤 찬다[17] 이 외 창단 당시 기업구단이었던 대전 시티즌성남 FC를 빼면 가입금을 완납한 시민구단은 없다. 연맹이 "더 이상 못 기다리겠으니 자리 빼!"라고 하면 시민구단들 대부분이 바로 해체될 수 있다.[18] 2011년을 끝으로 폐지된 리그컵은 제외. 참고로 리그컵은 2011년 조별리그 1승 4패 탈락이 전부다.[19] 2018년 시즌 도중 입대.[20] 2017년 시즌 도중 입대.[21] 2018년 시즌 도중 입대.[22] 사회복무요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