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14:22:14

김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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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
파일:시티즌김한섭.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김한섭
金翰燮 | Kim Han-sup
출생 1982년 5월 8일 ([age(1982-05-08)]세)
인천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조건 177cm, 74kg
포지션 풀백
학력 창경초 - 도봉중 - 영등포공고 - 동국대
프로 입단 2009년 대전 시티즌
소속팀 창원시청 축구단 (2005~2008)
경찰 축구단 (2007~2008) / 군 복무)
대전 시티즌 (2009~2011)
인천 유나이티드 (2011~2012)
대전 시티즌 (2013~2014)
용인시청 축구단 (2015~2016)
지도자 용인시청 축구단 플레잉 코치 (2015)
용인시청 축구단 트레이너 (2016)
기타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 고문 이사

1. 소개2. 선수 경력
2.1. 유소년2.2. 내셔널리그2.3. 대전 시티즌2.4. 인천 유나이티드2.5. 대전 시티즌 2기2.6. 내셔널리그 복귀
3. 은퇴 이후4. 여담5. 관련 문서

[CLEARFIX]

1. 소개

김한섭은 前 축구 선수이자 기업인, 행정가로 현재는 FIFPro Korea (프로축구선수협회)의 이사이다.

2. 선수 경력

2.1. 유소년

김한섭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하여 영등포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에 진학하였으며, 동국대에서는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던 선수였다.

한편 원래 윙 포워드였지만 동국대 재학시절 포지션을 사이드 풀백으로 전환했다.

2.2. 내셔널리그

2004년 동국대를 졸업하고,이듬해부터 내셔널리그[1]창원시청 축구단의 창단 멤버로 입단하게 되었다.[2]

김한섭은 창원시청의 플랫 3의 한축과 윙백을 오가는 스위칭 플레이를 펼치며 대활약하였으며, 특히 2006년에는 플랫 4에서 사이드 풀백을 담당해 창원 시청을 내셔널리그 선수권대회 우승으로 이끌었다.

특히 창원시청 축구단은 2006년 김한섭 - 김영중 - 전광철의 철벽 수비라인을 바탕으로 그 해 내셔널리그 최저 실점 2위 팀에 랭크되었다.

2.3. 대전 시티즌

파일:20110306000003201_4.jpg

2006년까지 2년 간의 창원 시청 활약후, 경찰청 축구단에 입단하여 2년간 군복무를 마친 후 2009년 드래프트에서 대전 시티즌에 번외지명으로 지명되어 프로무대에 입문하였으며, 그 해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최고령 선수가 되었을만큼 상당히 늦은 나이에 프로에 데뷔하였다.[3]

사실 경찰청 전역 후를 다시 떠올린 그다. 당시 그에게는 울산현대미포조선, 고양국민은행 등 내셔널리그 강팀들의 영입 제의가 따랐는데, 가서 잘 뛰면 최고 연봉인 5천만원까지도 충분히 손에 넣을 수 있었는데도 김한섭는 법으로 정해진 당시 한 달 최저 임금 수준에도 못 미치는 연봉 1천2백만원의 번외지명으로 대전을 선택했다고 한다.#

입단 첫해 김한섭은 주전에서 밀리며 주로 2군에만 머물렀으나, R리그에서 좋은 활약도와 충실한 수비능력을 보였으며, 6월 김호 독의 고별전이었던 부산 아이파크전을 통래 프로 데뷔전을 치렀고, 이날 경기에서 김한섭은 사력을 다해 뛰어 다니면서 팀의 3:2 승리에 공헌했으며, 이날 경기서 무한 체력과 끈끈한 수비력을 보여주면서 김한섭은 왕선재 감독대행의 눈에 들어왔고 이후 주전으로 기용되며 양정민과 좌우 풀백 라인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수비능력에 비해 공격능력이 아쉽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으며, 또한 공중볼 장악에 미숙함을 보여, 헤딩 미스로 뒷공간을 내줘 실점위기를 자초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그래도 우승제의 로테이션 자원으로 김한섭만한 자원도 없다는게 다수의 평가였다.

2010 시즌에도 우승제의 로테이션 자원으로 각 경기를 소화했으며, 2011시즌에도 승부조작 여파속에서도 묵묵히 제역할을 수행해냈다.

2.4. 인천 유나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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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시즌 중반 김영빈, 전보훈과 2:1 트레이드되어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했으며, 인천에서는 전재호의 대체자로서 오른쪽 윙백으로 간간히 출전하며 그럭저럭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었다.

2012시즌 시즌 초반 부상에 시달리면서 부진했으나, 이후 간간히 오른쪽에서 활약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4월 초 상주 상무와의 원정경기 이후 부상으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그 기간동안 이규로가 부상에서 회복하여 주전 자리를 차지하면서 백업 멤버로 전락하였다. 그래도 가끔씩 출장 기회가 있을때마다 수비적인 면에서는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긴 했다.

2.5. 대전 시티즌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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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시즌을 앞두고 대전 시티즌로 복귀하였다.[4]

친정팀 격인 대전에 복귀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문제는 윤원일, 박진옥 등의멤버들에 밀려 6월까지 1경기 출장에 그쳤으며, 이후 후반기부터 경기를 소화하였으나 기량이 예전같지 않다는 평을 들으며 소속팀의 강등을 막아내는데는 실패하였다.

하지만 2014시즌을 앞두고 대전과 재계약하며 팀에 잔류하였으며, 임창우와 함께 대전의 측면 수비라인을 책임졌으며, 시즌 막판에는 공격수로도 기용되는 등 활약하면서 대전의 리그 우승과 K리그 클래식 승격에 공헌하였다.

2.6. 내셔널리그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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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시즌을 끝으로 대전과 계약이 만료된 김한섭은 지도자 생활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용인시청 축구단에 플레잉 코치로 입단하게 되었으며, 2015시즌에는 보직을 트레이너로 변경해 트레이너와 선수를 병행하였다.

3. 은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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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시즌을 끝으로 용인시청이 해체되면서 김한섭은 야인이 되었으며, 이후 은퇴했다.

이후 스포츠 의류업 사업을 시작했으며, 새로 설립된 프로축구 선수들의 노조격인 FIFPro의 한국 지부인 프로축구선수협회의 이사로 부임하며 행정가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4. 여담

  • 2021년 대전 하나 시티즌의 리그 33라운드 홈경기는 2014년처럼 한밭종합운동장에서의 승격을 기원하며 '응답하라 2014' 컨셉으로 진행됐는데, 이날 경기에 2014년 리그 우승 및 승격 주역으로 경기장에 방문했으며, 이날 경기 대전은 4:1로 완승을 거두었다.

5. 관련 문서



[1] 당시 명칭은 K2리그였다.[2] 동국대 4학년 재학시절, 갑작스레 팀 감독이 교체되면서 새로운 감독의 눈밖으로 벗어난 김한섭 포함 동국대 졸업생 4명은 모두 창원 시청에 입단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3] 당시 27살이였다.[4] 김한섭은 FA로 김창훈과 트레이드 된 것이였는데 아무래도 2013년부터 적용되는 FA 보상금 지불 대신 선수 트레이드 방식을 이용한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