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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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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나이티드 No. 11
문창진
(文昶辰 / Moon Chang-Jin)
생년월일 1993년 7월 12일 (만 [age(1993-07-12)]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출신지 경상북도 포항시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섀도 스트라이커
주발 왼발
신체 조건 168cm, 63kg
학력 광양제철남초 - 포항제철중 - 포철공고 - 위덕대
소속팀 포항 스틸러스 (2012~2016)
강원 FC (2017~2017.9)
알 아흘리 클럽 (2017.10~2018.6)
강원 FC (2018.6~2018.12)
인천 유나이티드 (2019~ )
국가대표 U-20 9경기 7골
U-23 27경기 14골

1. 소개2. 경력
2.1. 유소년 생활2.2. 포항 스틸러스
2.2.1. 입단 초기2.2.2. 2014년 : 늘어난 기회, 해결되지 않은 미숙함2.2.3. 2015년 : 부상이 발목을 잡은 비상2.2.4. 2016년 : 끝내 해결하지 못한 약점
2.3. 강원 FC, 알 아흘리 클럽
2.3.1. 2017년 : 잠시나마 강원에서 빛을 발한 재능2.3.2. 2018년 : 김병수 축구에서의 부적응
2.4. 인천 유나이티드
3. 클럽 기록4. 국가대표 경력5. 플레이 스타일6. 여담

1. 소개

대한민국의 축구선수로, 현재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이다.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을 주로 소화하며, 윙어와 섀도우 스트라이커 자리에서도 자주 기용되었다.

2. 경력

  • 2012년 6월 14일, 인천과의 무관중 경기에서 프로 데뷔이자 K리그 데뷔전을 치뤘다. [1]
  • 2012년 6월 20일, 광주 FC를 상대로 FA컵 데뷔전을 치뤘다.
  • 2013년 3월 13일, 분요드코르를 상대로 ACL 데뷔전을 치뤘다.
  • 2013년 4월 17일, 강원과의 원정 경기에서 단 5분을 뛰고 팀의 세번째 골이자 자신의 K리그 첫 골을 넣었다.
  • 2015년 4월 29일, 대구 FC를 상대로 팀의 첫 골이자 자신의 FA컵 첫 골을 넣었다.

2.1. 유소년 생활

광양제철남초와 포항 스틸러스 유스클럽인 포철중학교, 포철공고를 졸업하였다. 광양제철남초 시절에는 TSV 바이어 04 레버쿠젠보루시아 도르트문트, SV 베르더 브레멘에서 훈련을 받는 등 주목받는 유망주였으며, 국내 복귀 이후에는 포항 유스클럽에 진학했다. 포항 유스 시절 문창진은 2010년 백록기 우승에 크게 기여했고, 2011년 K리그 U-18 챌린지리그에서 6골 4도움을 기록하면서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한편 해당 리그에서 본인은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 연령별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다.

이러한 활약에 문창진은 대학 진학 대신, 우선지명을 통해 바로 프로로 직행했으며 이는 신광훈 이후로 2번째 사례가 되었다.[2]

2.2. 포항 스틸러스

파일:포항 문창진.jpg

2.2.1. 입단 초기

큰 기대를 받고 입단한 문창진은 2012년 6월 14일 인천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아직 어린 나이였기에 초기에는 기회를 그리 많이 받지 못했지만, 청소년 대표팀에서의 활약상은 점차 높아져서 그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높아졌다. 2013 시즌까지는 본인도 어렸고, 팀도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전력이 강했기에 확실한 입지를 다지지 못한 유망주 수준에 그쳤다.

2.2.2. 2014년 : 늘어난 기회, 해결되지 않은 미숙함

2014 시즌에 들어서면서 팀이 황진성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문창진을 그 대체자로 낙점한 상황덕분에 서서히 출전횟수를 늘려가고 있다. 하지만 피지컬이 약점으로 지적되는데 허리 디스크 경력 때문에 웨이트를 신중하게 해야 하는 상황이라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 이명주의 이적과 손준호의 아시안 게임 차출로 반강제적으로 주전으로 뛰는데도 피지컬 때문에 조금만 압박이 들어와도 아무 것도 못하고 막혀버리는 모습이 자주 연출되었고, 그러다보니 포항 팬들이 속을 태울 정도로 성장이 더뎌지는 것이 눈에 보였을 정도였다.[3] 유리몸

2.2.3. 2015년 : 부상이 발목을 잡은 비상

그랬던 문창진이 2015 시즌이 시작되고 포텐이 터졌다. U-23 올림픽 대표팀과 포항을 가리지 않고 맹활약 중. 2015 시즌에는 전에 비해 피지컬도 어느 정도 보강이 됐고 탈압박 능력도 어느정도 익히면서 패스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본래 안드레 모리츠의 영입으로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였으나 모리츠가 심각하게 부진했고, 문창진은 성장을 보여주면서 예상과는 달리 입지가 역전되었다. 포철고 후배 이광혁과 함께 팀 내 크랙 수준으로 활약하고 포지션 경쟁자인 조찬호가 극악의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문창진의 임무가 막중해졌고, 전반기까지는 그 기대감을 충분히 충족시켰다. 그러나 6월에 6주짜리 부상을 당하고 그 뒤로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2015 시즌도 부상으로 통째로 날린 셈. 리그에서 14경기 4골 2도움을 기록했는데, 확실히 부상만 아니었다면 역대급 시즌이 될 수 있었던 기록이었다.

2.2.4. 2016년 : 끝내 해결하지 못한 약점

2016 시즌으로 접어들어서 부상에서 한결 자유로워진 문창진은 점점 팀의 에이스로 그 날개를 펼치고 있다. 팀 내 거의 유일한 정통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인지라 꾸준히 기용되는 중. 팀이 AFC 챔피언스리그와 K리그 클래식을 병행하는 중이라 자칫 혹사 논란에 휘말릴 뻔 했으나 손준호가 대신 노예가 되면서 그나마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면서 출전하는 중. 특히 3월 20일에는 후반전 중반에 투입되어 인천 유나이티드의 수비 세 명을 벗겨내고 난 후 바이시클 킥을 통해 팀의 추가골을 넣는 기염을 토해냈다. 드디어 문창진이! 드디어! 그와 함께 후반전 끝까지 인천 중원과 수비진을 그야말로 유린하며 K리그 최고의 재능 중 하나라는 걸 보여주었다. 부상 등의 악재가 없는 한 주전으로서 계속 기용될 듯하다.

다만 뒤로 갈수록 올림픽 대표팀에서의 활약에 비해 포항에서의 활약은 미미한 편이다. 일단 손준호가 시즌아웃을 당하고 5월까지 조수철이 복귀하지 못하니 사실상 공미자원은 문창진 혼자 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무리 문창진이 지난 시즌보다 실력이 좋아지고 올대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고는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린데다 험하기로 소문난 포항의 중원을 손준호같은 믿을만한 파트너 미드필더의 지원 없이 혼자 맡기는 무리였다. 실제로도 최진철이 그나마 남은 포항의 다른 미드필더 자원들을 가지고 조합을 해보았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최진철은 전술 자체를 3-4-3으로 바꾸어 해답을 마련했는데, 이 포메이션에서는 기존의 4-2-3-1 스타일에 맞춰져 있던 문창진의 자리가 붕 떠버렸다. 그러다 보니 포항에서의 출전 기회마저 줄어들었는데 그나마 이런 와중에도 중간중간 불려나가는 올림픽 대표팀에서는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어 2016 리우 올림픽 최종엔트리에 포함되었다.[4] 그리고 최진철도 3-4-3에서 해법을 찾아내었는데 그냥 원래 자리였던 측면 2선자원으로 문창진을 돌려버리면서 중원을 맡아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게 해주자 양동현, 심동운과 호흡을 맞춰가며 다시 공격력이 살아나는가 했다. 그러나... 리우 올림픽에서 잠재되어 있던 문제점들을 모두 드러내며 아시아를 벗어난 세계무대에서 별다른 활약을 펼지지 못했고, 포항 복귀 이후에도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시즌을 마무리 하였다.

결국 포항에서도 입지가 불안해지자 2016년 12월 16일 강원 FC 서보민과의 트레이드 오피셜 기사가 나오면서 강원으로 이적하였다. 잠재력이 큰 문창진의 이적을 놓고 설왕설래가 많으나 문창진의 경기를 꾸준히 보아 온 포항 팬들로서는 납득할만한 트레이드라는 게 대체적인 의견인데 데뷔 때만 해도 이명주 - 손준호를 이을 중앙 미드필더 자원으로 여겨졌으나 결국 피지컬의 한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중앙 정착에 실패했으며, 손준호와 같이 옆에서 보호해줄 미드필더가 없으면 혼자서 중앙에서 버티기, 공격전개 모두 안 되는 단점을 보여주었다. 최진철은 결국 이런 문창진을 궁여지책으로 윙어로 쓰긴 했으나 발재간에 비해 스피드가 떨어지는 지라 윙어자리도 애매하며 결국 잠재력은 있으나 어느 한 포지션을 믿고 맡길 만큼의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결국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게 되는 이유가 된 듯 하다.

2.3. 강원 FC, 알 아흘리 클럽

2.3.1. 2017년 : 잠시나마 강원에서 빛을 발한 재능

파일:강원 문창진.jpg

강원 이적 후에도 패스할 타이밍에 슛을 하는 등 다소 이기적인 스타일은 여전하지만, 팀의 시스템이 전반적으로 문창진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덕분에 본인의 입지는 공고했다. 또한 문창진 역시 그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고, 드디어 문창진의 재능이 만개하는게 아닌가라는 말이 다시 나오기도 했다. 문창진은 스플릿 이전까지 29경기에서 6골 3도움을 기록하며 개인의 커리어 하이를 달성하기도 했고, ACL 진출을 노리는 강원 FC에 큰 힘이 되고 있다.

그러던 와중 2017년 10월 7일에 갑자기 아라비안 걸프 리그의 클럽인 알 아흘리 클럽로 8개월간 임대된다는 기사가 떴으며, 강원 FC에서는 임대료 수익을 받고 문창진을 보내주기로 합의했다. # 그런데 이후 UAE 언론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임대가 아닌 자유 계약이라고 하는데, 아라비안 걸프 리그의 이적 시장이 이미 종료됐기 때문에 임대는 불가능했고 자유 계약만이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그래서 이 계약을 일종의 꼼수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5]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연장 옵션이 붙은 1년 계약이라고 한다.

그리고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넣으며 4:0 대승에 일조했다.# 하지만 이후로는 중동 무대에서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고, 전술을 많이 타는 문창진의 성향만이 다시 드러났다.

2.3.2. 2018년 : 김병수 축구에서의 부적응

2018년 6월 3일 계약 만료로 중동을 떠났고, 강원 FC로의 복귀가 유력하다고 한다. # 결국 1년도 안 돼서 원래 본인의 소속팀이었던 강원으로 복귀했다.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울산 현대를 상대로 VAR을 통해극적으로 얻어낸 패널티킥을 디에고가 실축하자 튀어나온 볼을 집어 넣으며 팀을 무승부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 이후론 폼이 많이 저하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기회을 많이 못 받고 있다. 이 역시도 문창진의 활용하기 어려운 플레이 스타일의 영향이 있었고, 김병수 감독의 스타일에서는 제대로 그 모습을 펼치기 어려웠다. 김병수 감독은 전술에 맞지 않는 문창진을 비롯 일부 선수들을 배제하기 시작했고, 그 여파로 문창진은 10경기 1골이라는 초라한 기록을 남기고 말았다.

2.4. 인천 유나이티드

시즌 종료 후 상주 상무 입대를 신청했지만 무산되었고, 팀 내 입지도 흔들려서 미래가 불안정했다. 그런 그에게 아길라르를 잃은 인천이 접근했고, 2019년 1월 16일 2년 계약을 맺으며 인천 이적이 성사되었다. 인천의 문창진 영입은 욘 안데르센 감독이 다시 4-2-3-1 포메이션으로 회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는 영입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 발 빠른 윙어가 많고 최전방에 다양한 부분에 강점을 가진 공격수 무고사도 있으니 문창진이 마지막 열쇠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많다.

개막전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는 서브에 머무르다가 후반전 막판에 남준재와 교체되어 데뷔했지만 시간이 짧아 임팩트를 남기지는 못했다. 그래도 경쟁자 박세직의 부진과 중원 조합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는 상황이라 조만간 기회를 더 얻을 전망. 그러나 이후 부상을 당하면서 명단 제외되었고, 그 기간 동안 박세직, 이정빈, 양준아, 하마드 등이 모두 부진한 모습을 보여 팬들의 안타까움이 가중되고 있다.

안데르센 경질 후 8라운드 FC 서울 원정에서 드디어 명단에 들었다. 이후 후반전 막판에 투입되면서 간만에 모습을 보였는데, 꽤 가벼운 몸놀림과 좋은 패스를 보여 주면서 기대감을 끌어 올렸다. 폼이 올라오면 당분간 자주 기용될 전망. 9라운드 성남과의 홈 경기에서도 후반에 조커로 투입되었으며 확실히 기대받는 만큼 공을 다루는 재능이 좋음을 입증했다. 공을 가지고 직접 돌파하는 장면, 좋은 패스를 공급해주는 장면 등 여러 부분에서 호평을 받았고 슈팅까지 만들어 내면서 답답한 인천 공격의 활로가 될 가능성을 보였다. 때마침 무고사, 남준재의 복귀도 임박해서 이들의 조합도 금방 볼 수 있을 전망.

이렇듯 조커로 좋은 인상을 남겼지만, 정작 선발로 나올 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동료들이 부진하고 있고 본인도 상대의 견제를 쉽게 이겨 내지 못하는 모습. 그래서 문창진도 결국 인천의 구세주는 아니었다는 팬들의 탄식이 있었다. 그러다가 유상철 감독 부임 후 첫 경기였던 12라운드 대구 FC 원정에서는 선발 멤버 중 공격진에서 홀로 분전하며 괜찮은 모습을 보여 주었고, 0:1로 지고 있던 후반 12분 김진야의 크로스를 환상적인 발리 슛으로 연결하며 본인의 인천 데뷔골이자 4라운드 이후 인천의 첫 골을 터뜨렸다. 이후 문창진을 중심으로 자신감을 얻은 인천의 공격이 후반으로 가면서 더욱 매서워졌지만, 인천은 에드가의 결승골로 또 다시 패배해 최하위에 머무르며 아쉬움을 남겼다. 그래도 유상철 감독 데뷔전에서 드디어 득점이 나오면서 일말의 희망을 남겼다는 점은 고무적.

그러나 또 부상을 당하면서 상승세가 다시 꺾인 상황. 대구전 이후 공격 포인트가 전무하다. 문창진이 빠진 상황에서 유상철 감독은 지언학, 최범경, 하마드를 활용하면서 공백을 메우려고 했지만 그의 스타일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마드와 지언학은 풀어 주기보다는 직접 득점을 노리는 움직임이 어울리는 선수고, 최범경은 활동량을 많이 가져가는 대신 체력을 유지하는 데는 힘들어 하고 있어서 후반에 위력이 반감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중원에 부상자가 발생하면서 최범경이 내려가게 되어 당분간은 하마드가 플레이 메이커를 맡을 전망인데, 문창진이 돌아오면 하마드가 윙어로 이동하고 문창진이 플레이 메이커 역할을 받는 조합을 쓸 것으로 보인다.

득점을 기점으로 인천에서 혼자 축구하는 선수 소리를 들을 정도로 물이 올랐다. 인천 선수들 중에서는 만들어가는 플레이가 거의 유일하게 가능해서, 다른 선수들이 공격 작업에서 내지르기만 할 때 문창진만큼은 무언가 해 보려는 의욕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팀워크 문제를 비롯해서 팀원들이 문창진에게 많이 못 맞춰주다보니 그 위력이 반감되는 점이 아쉬운 부분. 이적생들 중 거의 유일하게 밥값을 하고 있지만, 상대의 압박에 마주치면 종종 고립되는 등 안타까운 장면도 있었다. 14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 원정에서는 선발 원톱으로 나온 지언학이 활동량과 움직임으로 문창진에 대한 압박을 분산시켜 주었고, 동시에 문창진과의 호흡도 상당히 잘 맞아서 간만에 팀의 공격이 체계성을 갖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주변 선수들이 문창진의 스타일에 익숙해지고 그를 잘 활용할 수 있다면 인천 역시 반등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보이며, 인천이 최하위에 머무름에도 불구하고 희망으로 꼽히는 몇몇 요소이기도 하다.

그 뒤에는 또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한동안 휴식을 취하다가, 19라운드 울산 현대 원정에서 다시 명단에 합류했다. 후반에 교체 투입된 이후 여전한 기량을 선보이며 인천의 공격을 이끌었지만, 팀은 주니오에게 당한 실점으로 인해 패배. 그런데 이 경기 이후로는 귀신같이 다시 부진에 빠졌다. 부상으로 인해 신체 컨디션이 무너진 영향도 있겠지만, 피지컬이 상대의 압박을 버티기에는 너무 약해서 쉽게 무너지는 부분도 굉장히 아쉽다. 공을 다루거나 패스를 할 때 센스가 종종 나오지만, 전반적인 경기를 모두 보면 본인의 존재감이 많이 떨어졌다. 3선이나 윙어가 문창진의 압박을 분산시켜주지 못하는 영향도 있지만, 본인의 폼이 안 좋은 것도 분명한 사실. 22라운드 친정 팀인 포항 스틸러스 원정에서는 활동량을 늘리면서 본인의 존재감을 발산할 방도를 찾았지만, 단점은 여전해서 정작 공을 많이 잡았음에도 원하는 활약은 쉽게 펼치지 못했다.

인천이 4-4-2로 전환한 이후에는 윙어로 전직했으나, 주전 자리에서도 밀려났다. 4-4-2의 윙어는 수비 가담도 중요한데 문창진은 그런 면에서 부족함이 있고, 딱히 스피드가 빠르거나 피지컬이 좋은 선수도 아니라서 원하는 역할을 소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유상철 감독은 김호남을 핵심 윙어로 활용하면서 명준재, 문창진은 로테이션 내지는 조커로 기용하고 있는 상황. 문창진의 테크닉은 인천 내에서 최고 수준인지라 포기하기는 힘들지만, 전술적으로 애매한 구석도 있어서 이래저래 인천에게 딜레마를 주고 있다. 무고사-케힌데 투톱 조합이 불협화음을 내면서 후반에 조커로 투입되어 4-2-3-1로 전환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지만, 본인의 판단력이 시즌 초중반에 비해 많이 떨어지면서 팬들에게 아쉬움을 많이 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역할도 지언학의 부상 복귀로 인해 맡기 어려워지면서 더더욱 입지가 애매해졌다.

3. 클럽 기록

2019년 1월 16일 기준
시즌 클럽 리그 출전 리그 골 리그 도움 FA컵 출전 FA컵 골 FA컵 도움 ACL 출전 ACL 골
2012 포항 스틸러스 4 - - 1 - - - -
2013 포항 스틸러스 7 1 - 1 - - 2 -
2014 포항 스틸러스 24 2 2 2 - - 7 -
2015 포항 스틸러스 11 4 2 2 1 - - -
2016 포항 스틸러스 23 3 4 - - - 5 -
2017 강원 FC 29 6 3 2 1 - - -
17-18 알 아흘리 15 1 1 - - - - -
2018 강원 FC 10 1 0 - - - - -
K리그 클래식 123경기 18골 12도움
FA컵 8경기 2골 0도움
ACL 14경기 0골

4. 국가대표 경력

파일:올대 문창진.jpg

역대 최악의 골짜기 세대라고 평가받던 2012년 U-19 대표팀[6]이 출전한 2012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4골 2도움을 기록하며 하드캐리를 해 U-19 대표팀이 8년 만에 AFC U-19 대회에서 우승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사실상 해당 대회에서는 거의 혼자서 팀을 결승까지 끌고 간 수준이었으며, 팀은 승부차기로 가까스로 우승했지만... 정작 본인은 2013 FIFA U-20 월드컵 본선은 대회 직전 허리 디스크로 낙마했다. 그리고 문창진의 서브 자원이였던 류승우가 해당 대회에서 맹활약을 보이며 스타덤에 오른다.

이후 부상과 피지컬 문제로 고생하다가 신태용호의 유럽 원정 평가전에서 두각을 보였다. 슈틸리케 감독이 8월 동아시아 대회에 젊은선수들과 올림픽 대표 위주로 선발하겠다고 밝혀 선발이 유력해 보였지만, 부상 때문에[7] 예비 엔트리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수원의 소년 가장 권창훈이 슈틸리케호에서 날아 다니는 걸 생각하면 소속 팀 선배들처럼 벌써부터 국대 운이 안 좋다.

하지만 이후 신태용이 이끄는 2016 리우 올림픽 대표로 뽑혔고, 올림픽 예선을 겸한 AFC U-23 대회 조별리그 1차전 우즈베키스탄전에서 황희찬과 함께 맹활약하여 멀티골을 넣으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황희찬과 더불어 전체적으로 전력이 약한 대표팀을 이끌다시피 하고 있으며, 8강전에서는 황희찬이 후반전 초반에 부상으로 실려 나가자 사실상 원맨쇼를 벌이며 팀을 4강으로 이끌었다.[8] 4강전에서는 2:1로 앞선 후반 추가시간에 승부의 쐐기를 박는 골을 작렬시켰는데, 골이 터지는 순간 경기는 그대로 끝나며 대한민국은 세계 최초 8연속 올림픽 축구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결승에서는 후반 중반까지 혼자서 공격진과 수비진을 연결하며 개인기를 통한 탈압박 후 연결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다 김현 투입 후 롱볼로 팀의 전술이 변경됨에 따라 공격진으로 올라갔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9] 그리고...

3월에 열린 알제리 올림픽 대표팀과의 2연전에서 왜 자신이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에 들어가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1차전에서 선발로 출장, 권창훈의 패스를 이어받아 중거리에서 아웃프런트로 강하게 때려 넣어 골키퍼를 완벽히 속이는 골을 넣었고, 2차전에서는 후반 교체출장하여 김현의 패스를 이어받아 개인기 한 번과 함께 수비 세명을 그대로 벗겨내고 정확한 왼발 인프런트 킥으로 중거리 골을 작렬시켰다.

올림픽 대표팀에 권창훈류승우라는 걸출한 2선 윙어들이 있다 보니 주로 2선과 3선에 걸쳐서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다 점점 쉐도우 스트라이커로 그 역할이 변화하는 중. 그러나 어느 역할이던 권창훈과도, 류승우와도 구별되기에 서로가 서로의 앞길을 막지는 않을 듯 하다.

리우 올림픽 본선에서 볼을 소유하고 있을때나 소유하지 않고 있을때나 한결같이 아쉬운 플레이를 보이면서 보는 이들의 탄식을 자아냈다. 피지전은 4-3-3에서 중앙 미드필더에 가깝게 뛰었기에 본 포지션이 아니라는 쉴드는 쳐줄수 있지만 PK를 날려먹었고, 독일전에서는 독일 선수들의 피지컬에 완벽하게 밀려 여러 차례 좋은 기회를 날렸다. 결국 멕시코전은 결장했고 8강 온두라스전에서 선발 출전했으나 역시 이번에도 어정쩡한 플레이와 흐름을 끊는 백패스와 탐욕을 일삼다 팀을 좌초시키고 말았다.[10] 결국 포항 소속으로 경기할때 보이는 문제점인 기복있는 플레이와 피지컬 적인 한계, 탐욕, PK 미스 등이 정작 본선 무대에서 골고루 터져버리며 그동안 국대 팬들에게만큼은 까이지 않았던 문창진이었으나 이번 대회를 기점으로 안티가 늘어나게 되고 말았다.

연령별 대표팀에서는 40경기 23골을 넣을 만큼 에이스 노릇을 했고 클럽에서의 활약도 준수하지만 국가대표팀에는 한 번도 차출된 적이 없다. 동기인 진성욱, 김동준, 이창민, 권창훈 그리고 2살 아래인 황희찬이 차출된 적이 있는 만큼 문창진에게는 안타까운 부분. 하지만 다르게 보면 문창진은 나머지 선수에 비해서 전술의 영향을 크게 타는 편이고, 진성욱의 피지컬처럼 한국 축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특이하고 뚜렷한 아이덴티티가 있는 선수도 아니고, 리그에서의 활약도도 특출나지 않으니 저들처럼 국대로 올라갈만한 메리트가 부족한 아쉬움도 있다. 문창진처럼 청대에서보다 리그 활약이 부족하고, 확실한 색깔도 애매한 류승우 역시 국대에 차출된 적이 없다.

5. 플레이 스타일

발재간이 좋고 축구 센스가 뛰어나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는 선수이다. 탈압박과 드리블 능력이 좋고, 왼발 킥도 좋아서 세트피스를 담당한다. 섀도 스트라이커로서의 침투도 괜찮은 편. 하지만 패스타이밍에 슈팅을 한다거나 드리블을 하는 탐욕이 있어 템포를 죽이는 경향이 있다. 미드필더임에도 결정력이 확실하고, 테크닉도 상당하지만 판단력이 부족하고, 피지컬이 너무 큰 약점으로 작용해서 상대의 거친 압박이 있는 경기에서는 지워지는 경향이 있다. 패스 감각은 성장하면서 점차 좋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패스 타이밍을 못 잡고 드리블을 치는 문제점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장점을 활용하기 위해서 윙어로 기용하는 시도도 있었지만, 윙에서는 생각만큼 빠르지 않은 발이 문제가 되었다. 잘 보면 문창진이 좋은 모습을 보여줬을 때는 문창진이 잘 하는 역할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한 시기였고, 부진할 때는 너무 많은 것을 요구받은 시기가 대부분인데, 그만큼 문창진은 활용하기 까다롭지만 동시에 여건이 마련되면 그 안에서는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선수이다. 함께 기용하는 파트너가 누군지, 팀의 전술과 포메이션이 무엇인지에 따라 가치가 천차만별인 선수로, 어찌 보면 재능을 다 활용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선수이다.

6. 여담

  • 국가대표팀과 올림픽에 나가는 U-23팀에 대한 집착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타공인 동년배 에이스이자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평가받는 문창진이지만 잦은 부상 때문에 선발되지 못할까봐 걱정한 것. 그 황선홍 감독조차 대표팀에 너무 마음이 많이 가 있다고 염려할 정도였으니... 거기에 혹시나 나이 때문에 올림픽에 나가지 못할까봐 날짜 단위로 계산까지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성필의 NOW 도하]생일 날짜까지 계산했던 문창진의 대반전


[1] 3월 24일, 인천은 대전 시티즌과의 2012 K-리그 4라운드 홈경기에서 원정 팬들이 그라운드에 난입해 팀의 마스코트를 폭행하자 홈 팬들이 보복 폭행을 가하는 불상사가 일어났고 그에 대한 징계로 1경기를 무관중으로 치뤄야했다.[2] 이때 같이 프로로 직행했던 동기로 이광훈, 문규현이 있으나 문규현은 2013 시즌 이후 방출당했고 이광훈은 2015 시즌 대전 시티즌에 임대 갔다가 임대 종료 후 수원 FC로 이적했다.[3] 더도 말도 덜도 말고 황진성의 신인 시절이다. 물론 황진성은 문창진보다 발이 느리고, 기술은 더 좋았다. 그리고 문창진보다는 상대의 견제를 잘 뚫어냈어서 조커 역할을 쏠쏠하게 해냈다. 결론은 창진아 형이랑 고기 먹자[4] 그냥 포함된 것도 아니고 어쩌다 보니 문창진이 없으면 올림픽 팀 중원 자체가 안 돌아갈 정도로(...) 핵심 자원이 되어버렸다.[5] 선수가 급한 알 아흘리가 강원한테 계약 해지를 요청하는 대신 위약금 등의 비용을 지불했고, 돈을 얻은 강원은 문창진과 상호 합의로 계약을 해지했다는 설.[6] 2013 U-20 월드컵 대표팀.[7] 올림픽 대표팀의 유럽 원정 평가전에서 갈비뼈 부상을 입고 귀국했다.[8] 골을 넣어 승리에 일조했을 뿐만 아니라, 공수 모두가 붕괴된 후반전 사실상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가 되어 공격 수비 모두 문창진 혼자서 책임 지다시피 했다.[9] 이는 신태용 감독의 전술변화에 의한 것으로, 상대적으로 제공권 장악력과 포스트 플레이가 가능한 김현을 투입하면서 수비진에서 한번에 공격진으로 연결하는 전술 변화에 의한 면이 크다. 하지만 피지컬이 약점인 문창진마저 최전방으로 내몰면서 결국 공격과 수비의 가교 역할을 하던 문창진마저 공격을 강요받으면서 팀 밸런스가 붕괴하고 만다. 여기에 대회 내내 사실상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굴려진 문창진의 체력이 후반에 바닥 나 버린 건 덤.[10] 다만 이 경기는 문창진 혼자만의 책임이라기도 보기 힘든게, 사실상 황희찬 혼자서 멱살을 잡고 가는 경기였고 소몰이 손흥민, 풀백 수비 모두 삽질을 일삼다가 결국 역습 한 방에 팀이 털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