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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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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 획득까지의 과정
2.1. 베이징 올림픽 대륙별 플레이오프2.2. 연습경기2.3. 본선
2.3.1. 1경기: vs 남아공2.3.2. 2경기: vs 호주2.3.3. 3경기: vs 멕시코2.3.4. 4경기: vs 스페인2.3.5. 5경기: vs 독일2.3.6. 6경기: vs 캐나다2.3.7. 7경기: vs 대만
2.4. 최종 순위
3. 베이징 올림픽 이전의 일들
3.1. 엔트리 발표와 잡음3.2. 최종 엔트리3.3. 평가전
3.3.1. 네덜란드 전3.3.2. 쿠바 전
4. 베이징 올림픽 본선
4.1. 예선 리그
4.1.1. 8월 13일: 한국 VS 미국4.1.2. 8월 14일: 한국 VS 중국4.1.3. 8월 15일: 한국 VS 캐나다4.1.4. 8월 16일: 한국 VS 일본4.1.5. 8월 17일: 한국 VS 중국4.1.6. 8월 18일: 한국 VS 대만4.1.7. 8월 19일: 한국 VS 쿠바4.1.8. 8월 20일: 한국 VS 네덜란드4.1.9. 예선 뒷이야기
4.2. 결선 토너먼트
4.2.1. 4강 1경기: 한국 VS 일본4.2.2. 4강 2경기: 미국 VS 쿠바4.2.3. 동메달 결정전: 일본 VS 미국4.2.4. 결승전: 한국 VS 쿠바
5. 베이징 올림픽 이후6. 대한민국 대표팀 선전 의의7. 개인기록
7.1. 타자7.2. 투수

1. 개요

"Nine starting players. Nine games. Nine wins. Perfect."
"9명의 선발 선수. 9번의 경기. 9번의 승리. 완벽하다."
MLB.com 소속 기자 마크 뉴먼#
파일:external/ph.idomin.com/263640_203531_235.jpg

한국야구사 최고의 순간. 다만 그 어느 누군가에게는 그야말로 치욕적인 순간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 핸드볼의 금메달 이후 16년 만의 단체 구기 종목 금메달.

2.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 획득까지의 과정

제24회 아시아선수권 대회 및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예선에 참가한 대표팀 성적은 김경문호/2007년 문서 참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직행 진출권을 획득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베이징 올림픽부터 신설된 대륙별 플레이오프 덕에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졌다. 대륙별 플레이오프 대표팀을 새로 꾸리는 과정 중에는 선동열 수석 코치가 사퇴하여 조계현 코치가 투수 코치로, 두산의 김광수 수석 코치가 수석 코치로 대신 들어오게 되었다.

2.1. 베이징 올림픽 대륙별 플레이오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제도로서, 각 지역별 예선에서 직행티켓을 얻지는 못했지만 뛰어난 성적을 거둔 8개의 팀을 대상으로 3장의 티켓을 가지고 3월 초에 풀리그를 치렀다.

이때까지 올림픽에 참가가 결정된 팀은 다음과 같다.
중국 주최국 자격
미국 미주 예선 1위
쿠바 미주 예선 2위
네덜란드 유럽 예선 1위
일본 아시아 예선 1위

다음 팀들이 대륙별 플레이오프에 참가할 자격을 얻었다.
멕시코 미주 예선 3위
캐나다 미주 예선 4위
스페인 유럽 예선 3위
독일 유럽 예선 4위[1]
한국 아시아 예선 2위
대만 아시아 예선 3위
호주 오세아니아 예선 1위
남아공 아프리카 예선 1위

대륙별 플레이오프에 출전한 대표팀 명단은 다음과 같다.[2]

한국팀 일정은 3월 7일 남아공 - 3월 8일 호주 - 3월 9일 멕시코 - 3월 10일 스페인 - 3월 12일 독일 - 3월 13일 캐나다 - 3월 14일 대만으로서, 휴식일의 배치와 강호인 캐나다-대만-멕시코와의 대진이 골고루 섞여 있는 무난한 대진표였다.

2.2. 연습경기

2월 24일 단국대와의 첫번째 연습경기에서 이승엽의 홈런을 앞세워 14:1로 승리를 거두었다. 류현진은 3⅔이닝 2피안타 6K 3볼넷 무실점으로 안정적인 피칭을 선보였고 이어 손민한 - 장원준 - 우규민 - 한기주가 잘 틀어막는데 성공하면서 투수진 점검도 완료.

2월 25일 단국대와의 두번째 연습경기에서 선발 김선우(4이닝 4피안타 무실점)의 호투와 이대호의 홈런등을 앞세워 9:0 승리를 거두었다.##

2.3. 본선

2.3.1. 1경기: vs 남아공

3월 7일 남아공전. 선발 손민한이 6이닝 동안 쾌투하면서, 타선의 부진과는 상관없이 5:0으로 승리를 거두었다.그때 네이버댓글이 활발하지 않아서 망정이지 지금같으면 난리 났을 것이다

2.3.2. 2경기: vs 호주

3월 8일 호주전. 선발 류현진이 선취점을 내주었음에도 큰 실점 없이 잘 막아내었고, 이승엽의 3점홈런 등을 묶어 16:2, 7회 콜드게임 승을 거두었다.

2.3.3. 3경기: vs 멕시코

3월 9일 멕시코전. 김광현이 선발로 나서 6이닝 동안 홈런 하나를 내주면서 1실점을 하는 동안 이택근의 결승 희생플라이로 6:1 승리를 거두었다.

2.3.4. 4경기: vs 스페인

3월 10일 스페인전. 4회까지 7점을 내면서 일찌감치 앞서갔으나, 5회말 선발 김선우가 4실점하면서 경기가 길어졌다. 최종적으로 14:5로 승리했다.

2.3.5. 5경기: vs 독일

3월 12일 독일전. 선발 손민한이 1실점만을 하면서 12:1로 여유롭게 콜드게임 승리를 거두었다. 이 경기의 승리로서 2008 베이징올림픽 본선 진출은 확정되었다.

2.3.6. 6경기: vs 캐나다

3월 13일 캐나다전. 선발 류현진이 컨디션 난조 속에 1⅔이닝 만에 2실점 하면서 강판하는 등, 결국 3:4로 첫 패를 당했다. 이때 류현진은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일본전-중국전, 2007 아시아 지역예선 대만전, 최종예선 호주전-캐나다전의 부진으로 '국내용 투수'라는 불명예 오명을 얻었다. 하지만 8월의 두 경기에서의 실력으로 완벽하게 해명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와서 류현진이 국내에서만 통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후에 류현진의 컨디션 난조의 원인이 배탈로 밝혀졌다. 대표팀이 삼겹살로 회식을 했는데, 하필 류현진이 이대호 앞자리에 앉는 바람에 익지도 않은 삼겹살을 허겁지겁 먹어서라는 뒷 얘기. 대호야 천천히 먹자

2.3.7. 7경기: vs 대만

3월 14일 대만전. 캐나다가 1위 확정이 되었고 두팀 모두 올림픽 본선 진출이 확정된 상태에서의 2, 3위 결정전의 성격을 띄었지만, 그것과 상관없는 자존심 대결이었다. 한국은 선발로 김광현을 내세웠다. 일방적이고 한국에 대한 모욕 섞인 대만 홈팬들의 응원 속에서 야수진의 실책으로 어려운 경기를 했으나(김광현 5이닝 3실점 1자책점) 황두성, 한기주, 정대현으로 이어진 불펜진이 무실점으로 막으면서 결국 스코어 4:3으로 승리했다.
  •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배기완 캐스터는 3회말 2사 2,3루 상황에서 심판이 김광현의 공을 스트라이크를 안 잡아주고 볼로 선언하자"심판 맞나요?"라고 일갈. 결국 헛스윙 삼진으로 처리하자 "스윙!! 스트락아웃!! 스트락아웃~~!!"을 힘차게 외쳤다. 한편 배기완 캐스터는 5회에 이대호가 가랑이 사이로 타구를 빠트리자 "이대호가 터널~"이라는 멘트를 날리기도 했다.

2.4. 최종 순위

세계예선의 순위는 아래와 같다. 파란 글씨는 본선 리그 진출 팀, 회색 글씨는 탈락 팀.
경기 승률 승차 승자승
캐나다 7 6 1 0.857 1승 0패
대한민국 7 6 1 0.857 0승 1패
대만 7 5 2 0.714 1
멕시코 7 4 3 0.571 2 1승 0패
호주 7 4 3 0.571 2 0승 1패
독일 7 2 5 0.286 4
스페인 7 1 6 0.143 5
남아공 7 0 7 0.000 6

대륙별 예선에서 2위를 거두면서 베이징 올림픽 야구 종목에 나갈 수 있게 되었으며 캐나다와 대만도 합류했다.

3. 베이징 올림픽 이전의 일들

8년 만에 올림픽으로 대표팀을 이끈 김경문 감독은 귀국한 후에 사임의사를 표명했다. 사임의사 직후에 KBO는 김경문 감독에게 선수 선발 전권을 부여하겠다고 발표했다.

김경문 감독의 말과 이후 KBO에서 행한 조처를 본다면 선수 선발에 있어서 전권을 부여받지 못했던 것이 사퇴 의사 표명의 일차적인 요인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이외에도 대륙별 플레이오프 대표팀 선수들이 소속팀으로 돌아간 후 SK 김성근 감독이 김광현의 관리를 문제로 김경문 감독을 비난하자 이에 김경문 감독과 대표팀 코칭스태프들이 분개한 사건도 있었고, 김경문 감독 자신이 소속 팀과의 계약이 마지막 해였기에 좀 더 소속팀에 집중하기 위한 것 등등의 요소가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

어찌하였건 김경문 감독은 올림픽 때까지 계속 대표팀을 맡게 되었고, KBO는 2008년 시즌을 준비기간을 포함해 무려 시즌을 25일 동안이나 중단하는 일정을 짜고 포상금 액수를 결정하는 등의 일을 했다. 또한 네덜란드 대표팀과 쿠바 대표팀의 올림픽 대비 훈련지를 한국으로 정하게끔 협상하고 평가전 일정을 합의했다.

3.1. 엔트리 발표와 잡음

엔트리 발표는 총 5차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4월 28일, 5월 26일, 6월 25일 정식예비엔트리 60인 선정, 7월 7일. 그리고 7월 14일 최종 엔트리가 발표되었다. 엔트리 발표가 여러번 이루어진 것은 선수들을 독려하기 위함이었겠지만, 이에 대해 불필요한 전시행정이라는 불만의 목소리도 있었다.

무엇보다 최종 엔트리 발표는 팬들 각자의 최고선수들에 대한 생각 차이와, '병역 특례'라는 문제가 걸려 있었기에 극심한 논란을 불러왔다. 가장 논란이 되었던 선발은 당시 성적이 그리 좋지 못하던 송승준, 임태훈, 이대호의 발탁과 손민한, 윤석민, 김태균의 탈락이었다. 이 중에서도 김경문 감독의 소속팀 선수인 임태훈의 선발과 당시 선발로서 최고의 피칭을 보여주던 윤석민의 탈락에 대해서 숱한 비난의 목소리가 나왔다.
  • 손민한[3]과 김태균[4]의 탈락이 아쉬움의 선에 그친 것과 달리, 임태훈과 윤석민의 선발에 관한 논쟁이 과열된 것은 다른 요인이 많지만, '병역필'과 '미필'의 차이란 점에 근본 원인을 둘 수 있을 것이다.
최종 엔트리 발표 후 김경문 감독이 '윤석민이 자신의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는 인터뷰가 있었고, 발표 다음날인 7월 15일 윤석민과 임태훈의 맞대결에서 임태훈이 부진하고 윤석민이 호투 끝에 10승을 거두면서 논쟁의 불꽃은 더욱 크게 타올랐다. 결국 이 논란은 쿠바와의 평가전 1차전에서 임태훈이 크게 부진하자 절정에 달했고, 결국 임태훈을 탈락시키고 윤석민을 발탁하고 나서야 논란이 종식되었다.

사실 윤석민의 탈락은 KIA 팀의 안하무인의 가까운 철판 깐 태도가 원인.
대표팀이 소집되고 예선전 통과를 위해 선수선발을 할때 부상이나 부진같은 이유없이 팀 차원에서 차출을 거부한 유일한 팀이 KIA 타이거즈.
윤석민뿐 아니라 거론되던 서재응도 팀이 전면에 나서서 선수차출을 거부했다. 이에 대해 감독인 김경문은 물론이고 KBO에서도 전혀 대처를 못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규정이 없어서……애초에 대표팀이 선발될 만한 국제대회가 얼마 없기도 했고 부상이나 부진을 이유로 선수 개개인이 빠지는 있은 종종 있었지만 팀이 전면에 나서서 팀 차출자체를 전면 거부한 팀은 한국야구 역사상 KIA가 유일하다. 이후 대표팀 선발에 진단서나 합당한 이유없이 차출 거부할 경우 120일간 KBO에서 뛰지 못하도록 규정이 신설됬다.

KIA가 선수 차출을 전면 거부한 가운데 부족한 선수는 김경문이 감독이 었던 두산과 외국인 감독이 부임하였던 롯데(?)가 분담해서 메꾸었다. 실제 연습경기 조차 해주는 팀이 없어서 대학팀을 제외하면 두산과 롯데가 연습경기 파트너가 되어주었다. 이는 김경문이 송승준을 선발하면서 보답.[5]

3.2. 최종 엔트리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림픽 직전의 일들은 이렇게 마무리되었고 마지막 최종 엔트리는 다음과 같다. 소속팀은 2008년 당시 기준. 당시 군대 미필 선수는 비고란에 미필로 표기.

실상 군필자라고 해도 외야수 이종욱(상무 전역) 빼면 죄다 면제거나 병역특례. 아마추어는 단 한 명도 없다.
직책 이름 등번호 소속 비고
감독 김경문
74
두산 베어스 두산 베어스 감독 겸임
수석 코치 조계현
76
수석 코치 김광수
77
두산 베어스 수석코치 겸임
타격 코치 김기태
88
포지션 이름 등번호 소속 비고
내야수 고영민
03
두산 베어스
내야수 박진만
07
삼성 라이온즈
내야수 정근우
08
SK 와이번스 [미필]
투수 오승환
11
삼성 라이온즈
내야수 이대호
10
롯데 자이언츠 [미필]
투수 장원삼
13
서울 히어로즈 [미필]
내야수 김민재
14
한화 이글스
외야수 이용규
15
KIA 타이거즈 [미필]
투수 김광현
17
SK 와이번스 [미필]
내야수 김동주
18
두산 베어스
포수 진갑용
20
삼성 라이온즈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px-Captain_sports.svg.png
투수 정대현
21
SK 와이번스
투수 한기주
22
KIA 타이거즈
내야수 이승엽
25
요미우리 자이언츠
투수 윤석민
28
KIA 타이거즈 [미필]
투수 이택근
29
서울 히어로즈 [미필]
외야수 이진영
35
SK 와이번스
포수 강민호
37
롯데 자이언츠 [미필]
외야수 이종욱
39
두산 베어스
투수 권혁
47
삼성 라이온즈 [미필]
외야수 김현수
50
두산 베어스 [미필]
투수 봉중근
51
LG 트윈스
투수 송승준
91
롯데 자이언츠 [미필]
투수 류현진
99
한화 이글스 [미필]

이때, 일본은 애당초에 목표를 금메달로 잡고서 그러한 목표를 만방에 퍼뜨리고 다녔고 한국 대표팀을 자극하는 발언을 했다. 日호시노 감독, 본격적인 한국 긁기 신경전 시작했다

3.3. 평가전

7월 31일 KBO 시즌은 중단되었고, 8월 3일 올스타전이 열렸다. 이후 대표팀은 4일 네덜란드, 5일 쿠바 1차전, 6일 쿠바 2차전 등 올림픽을 대비하여 3번의 평가전을 가졌다.

3.3.1. 네덜란드 전

8월 4일에 가진 네덜란드와의 평가전에서는 선발 투수 송승준의 5이닝 1실점 호투와 이대호의 싹슬이 3타점등을 앞세운 대한민국 대표팀이 2사 만루에서 싹슬이 3타점을 기록한 이대호, 2타점 2루타를 기록한 이종욱을 앞세워 7이닝 경기 10:2 완승을 거두었다. 다만 임태훈이 2이닝 3피안타 1볼넷을 기록하며 1실점을 기록해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아쉬운 점.
  • 송승준 5이닝 1실점
  • 임태훈 2이닝 1실점
  • 이승엽 2타수 2안타 1볼넷 1득점
  • 이대호 1타수 1안타 3타점
  • 이종욱 3타수 2안타 2타점
  • 이용규 1사구 1타점

3.3.2. 쿠바 전

  • 1차전
8월 5일 쿠바와 평가전을 치렀다.##

한국은 장원삼-김광현-류현진-오승환-한기주를 연속해서 등판시켰다. 3회초에 쿠바의 투런으로 끌려갔지만 고영민이 출루에 성공한후 도루와 히트앤 런이 성공하며 2:2 동점이 되었다. 하지만 믿었던 오승환이 8회초에 홈런 2방을 허용하며 6:2로 패배했다.
  • 2차전
8월 6일 쿠바와 두번재 평가전을 치렀다. 봉중근-윤석민-한기주가 등판한 이날 경기는 1회 김동주의 2타점을 시작으로 5회초 고영민이 중앙 펜스를 넘기는 투런, 6회초 정근우의 2루타를 시작으로 4점을 뽑아내는데 성공하는 등 17안타를 때려내며 15득점을 뽑아내는데 성공, 윤석민(2이닝 1실점)이 얻어맞은 솔로홈런, 한기주를 상대로 뽑아낸 2점등 총 3점을 내는 데 그친 쿠바를 꺽고 승리를 거두었다. 이날 승리는 프로선수가 대표팀에 합류했던 1998년 이후 9경기만의 승리라고 한다[18]. 봉중근은 4이닝 무실점에 7K를 기록하며 팀의 좌완 선발의 위용을 드러냈다. ##, MBC 뉴스
파일:/image/109/2008/08/10/200808101041211104_1.jpg

이날 평가전에서 타선의 감은 살아있고 선발진도 나쁘지 않지만 한기주-오승환의 더블 스토퍼가 불안하다는 평을 받았다. 대표팀, 마무리투수 문제 어떻게 해결하나

모든 평가전을 마치고 8월 10일, 베이징을 향해 출국했다.

4. 베이징 올림픽 본선

4.1. 예선 리그

총 8개의 국가가 참가했으며, 풀리그로 예선이 진행되었다.
핵심 경기는 나라 이름에 굵게 표시.

10회까지 승부를 정하지 못한 경우 아마추어 경기에 적용해오던 승부치기에 돌입하는 룰이 생겼다. 한국과 일본은 반발했으나 결국 확정.

4.1.1. 8월 13일: 한국 VS 미국

조별예선 8월 13일 18:00, 중국 우커송 야구장
1 2 3 4 5 6 7 8 9 R H E
파일:미국 국기.png 1 0 0 0 2 1 0 0 3 7 12 1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0 2 1 0 3 0 0 0 2X 8 9 1

봉중근, 정대현, 김광현까지는 미국의 막강한 타선을 상대로 예상했던 실점 범위 내에서 막아주고, 이대호의 연습구장 마운드까지 날아가는 큼지막한 투런 홈런을 포함하여 타자들이 미국 선발 브랜든 나이트를 상대로 6점을 뽑아주면서 첫 승을 거의 이룬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이트가 2009년에 삼성 라이온즈로 영입될 때 항상 붙었던 말이 '베이징 올림픽 한국전 선발'이었다.[19]

문제는 9회초. 대표팀의 마무리로 내정된 한기주가 올라왔지만, 홈런으로 바로 실점하더니[20] 계속 얻어맞아서 무사 2, 3루에서 아웃카운트 하나 못잡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바로 이어 올라온 윤석민은 2사까지는 잘 버텼으나 적시타를 맞아 결국 역전을 허용했다.[21]

하지만 9회말, 대타로 나온 정근우의 2루타와 김현수의 진루타, 이택근의 2루수 땅볼 때 대쓰요 대쓰요 슬라이딩 슬라이딩!! 네 대쓰요야수 선택으로 정근우가 홈으로 들어와서 동점을 이루어내었다. 야수 선택으로 1루로 진루한 이택근은 투수의 견제 실수로 아 대쓰요!! 3루 가야돼 3루 3루 가야돼요 3루 3루!! 3루까지 질주했고 이종욱의 역전 희생플라이로 우와아악!!! 대쓰요 대쓰요 대쓰요 들어와×6 쎄입!! 대쓰요!! 한국은 첫승을 거두었다.

미국은 'KBO에서 뛰었으니 한국을 잘 알겠지'라는 생각으로 롯데의 외국인 선수였던 존 갈을 선발 1번타자로 출전시켰는데 한국선수들 역시 존 갈을 잘 알고 있었고 아니나다를까 찬스를 번번히 끊어줬다. 이때 허구연은 고마워요 존 갈이라는 멘트를 날렸으며 이것이 베이징에서의 허구연 어록의 출발점이 되었다.

4.1.2. 8월 14일: 한국 VS 중국

조별예선 8월 14일 11:30, 중국 우커송 야구장
1 2 3 4 5 6 7 8 9 R H E
파일:중국 국기.png 0 0 0 0 0 0 X X X 0 2 0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0 0 0 0 0 X X X X 0 3 0

경기 중에 비가 왔었고, 6회초가 끝나자 경기가 진행이 되지 못할 정도로 비가 쏟아졌기 때문에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되어서 3일 뒤인 17일에 경기가 재개되었다. 프로야구의 시간대에 익숙해져 있는 선수들이 11:30이라는 이른 시간대에 경기가 이뤄져서 그런지 시종일관 빈타에 그쳤다.

4.1.3. 8월 15일: 한국 VS 캐나다

조별예선 8월 15일 18:00, 중국 우커송 야구장
1 2 3 4 5 6 7 8 9 R H E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0 0 1 0 0 0 0 0 0 1 3 0
파일:캐나다 국기.png 0 0 0 0 0 0 0 0 0 0 5 1

3회초 정근우의 솔로홈런 말고는 안타가 2개에 그칠 정도로 연신 빈타였다. 또 3루에서 주루 중 아웃 당했고, 와일드 피치 상황에서 홈에 들어오다 주루사 당하는 등 운도 좋지 않았다. 캐나다에도 무수한 기회를 허용했다.

특히 9회말에는 구위가 떨어진 류현진이 출루를 허용하고 주자가 3루에 있는 상황에서 우익수 플라이 때 3루로 송구하면서 공이 뒤로 빠져 동점을 내줄뻔 했으나 류현진의 커버로 위기를 모면하는 등 마지막에는 2사 만루의 위기를 맞이했으나 다행히도 중견수 플라이로 류현진의 완봉승으로 경기가 종료되었다.

이틀 정도 어깨를 못 쓸 정도로 류현진은 모든 힘을 쏟아내서 9회까지 던졌고 그 덕에 한국은 투수들을 아껴서 일본전에 대비할 수 있었다.

4.1.4. 8월 16일: 한국 VS 일본

조별예선 8월 16일 19:00, 중국 우커송 야구장
1 2 3 4 5 6 7 8 9 R H E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0 0 0 0 0 0 2 0 3 5 9 1
파일:일본 국기.png 0 0 0 0 0 2 0 0 1 3 7 1

6회말, 총 2피안타 만을 기록한 김광현이 주자를 하나 두고 내려간 후 올라온 윤석민아라이 타카히로에게 투런홈런을 맞으면서 선취점을 내주었다. 하지만 7회초에 이대호삿포로 참사의 주역이자 한국 킬러 와다 츠요시를 상대로 관중석 상단에 꽂히는 큼지막한 투런홈런에 힘입어 동점을 만들었다[22] .

9회초 2사 1,2루 상황에서 일본의 특급 마무리 투수이자 좌타 킬러로 소문난 이와세 히토키를 상대로 김경문 감독은 좌타자 김현수를 대타로 기용했다. 좌타 킬러를 상대로 좌타를 기용하는 모험수에 팬들은 걱정이 많았으나[23][24]리그에서 4할 타율을 유지하며 절정의 타격감을 보였던 김현수는 적시타를 때려내며 3:2로 역전에 성공했다. 당시 대표팀에서는 "이와세 공이 공략하기 쉬워보인다"라고 타자들이 말했다는 후문[25].

곧이어 이종욱이 기습번트를 시도[26], 3루수였던 무라타 슈이치가 공을 더듬으며 1점 더 추가, 주자는 1,3루가 되었다. 곧이어 1루에 출루한 이종욱이 포수 아베 신노스케가 공을 잡고 난 뒤에 뛰는 딜레이드 스틸을 시도하였고, 당황한 아베가 중전안타 2루수 키를 넘기는 송구실책을 범하며 김현수가 홈인, 9회에만 3점을 내면서 5:2가 되었다.

하지만 9회말 불기주한기주가 올라오자마자 아라이 타카히로에게 3루타를 맞고, 3루수 김동주의 실책[27]과 2루타로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1실점을 한 채 무사 2, 3루 상황에서 내려왔다. 위기 상황에서 권혁이 올라와 아베를 얕은 외야플라이로 아웃카운트를 하나 잡고, 정대현이 삼진과 땅볼로 경기를 마무리. 대표팀으로서는 연승은 했지만 9회말을 참 힘들게 마무리했던 세 경기였다. 이 경기 이후부터 김경문 감독은 한기주를 포기하고 정대현을 마무리로 내세우게 되었다.한편 일본은 대회 첫날 대 쿠바전에서 패배한 바 있었기 때문에 2승 2패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 경기의 재미 포인트는 9회초 전타석에서 홈런 친 이대호의 번트. 이대호의 인터뷰에 따르면, 시합에서 번트를 대 본 건 갓 데뷔해서 뛸 때 이후 4년만에 처음이라고. 번트 대는 모습이 꽤 깜찍하다.

4.1.5. 8월 17일: 한국 VS 중국

조별예선 8월 17일 18:00, 중국 우커송 야구장
6 7 8 9 10 승부치기 R H E
파일:중국 국기.png X 0 0 0 0 0 0 4 2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0 0 0 0 0 1X 1 7 0
  • 승: 오승환(1승), 패: 루 지엔강(1승 1패)
  • 장원삼(4⅓이닝 무실점) - 오승환(⅔이닝 무실점)

원래 이 날은 휴식날이었으나 8월 14일 중국전에서 서스펜디드 게임 선언이 되었기 때문에 결국 8월 17일에 경기가 재개되게 되었다. 이날 한국의 경기 내용을 쉽게 정리하면 못했다. 게다가 중국은 16일 승부치기 끝에 대만을 8:7로 이기면서 상승세였다. 이후 밝혀진 바에는 대만 대표팀이 승부조작을 한 의혹이 있다는 대만 검찰의 발표가 있긴 했지만.

원래 휴식일에 경기를 하게 되어서인지 타자들은 연신 빈타에 허덕여 결국 승부치기까지 가게 되었다. 승부치기에서 11회초 희생플라이때 3루주자 순린펑이 외야수가 공을 잡기 전에 베이스에서 발이 떨어지는 실수로 득점 무효 및 아웃이 선언되면서 선방했고, 11회말에 무사만루 상황(번트를 대자 3루로 공을 던졌는데 세이프)에서 이승엽이 무난한 적시타로 1점을 얻음으로서 승리했다.

4.1.6. 8월 18일: 한국 VS 대만

조별예선 8월 18일 11:30, 중국 우커송 야구장
1 2 3 4 5 6 7 8 9 R H E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7 1 0 0 0 0 1 0 0 9 16 2
파일:attachment/TWN_Flag.jpg 0 2 0 0 4 2 0 0 0 8 12 2

3회까지만 해도 콜드게임 룰을 검색했던 경기. 하지만 경기 중반에 봉중근의 체력이 떨어지면서 대량실점을 하게 되고, 그 뒤에 등판한 불의 신께서 상황을 막장으로 만들어 버리셔서 분위기는 완전히 뒤집어졌고 동점까지 내줬다. 그래도 한기주는 아웃카운트를 잡아서 방어율 무한대 신세를 면했다. 당시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은 한기주의 방어율은 108.00으로 일각에서는 108번뇌 드립도 나왔다. 다행히 7회에 1점을 뽑아서 이 점수가 결승점이 되면서 한기주는 승리투수가 되었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대만전의 아쉬움이 크게 남았을 경기였다. 애당초에 윤석민은 전천후 불펜으로 기용될 계획이었지만, 1회초에 7점이나 낸 유리한 상황에서 중반의 실수로 인해 또 기용될 수 밖에 없었던 아쉬움이 있었다. 또 낮경기여서 수비진들이 낯설었다고는 하지만 수비에도 문제가 있었다. 거기에 가장 큰 불안요인은 1회초에 주전포수인 진갑용이 주루 중에 햄스트링 부상을 입어서 사실상 출전이 힘들게 된 것이었다. 어이없는 실점과 수비, 주전 포수의 낙마 등으로 야구팬들에게는 걱정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어찌됐든 이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한국팀의 4강 매직넘버가 -2가 되었다. 즉, 4강 진출이 확정되었다. 게다가 5전 전승의 한국이 남은 두 경기를 모두 패하고 3승 2패의 미국이나 일본 중 한 팀이 남은 두 경기를 모두 승리해서 동률이 되더라도 승자승 원칙에서 이미 한국이 앞서있기 때문에 최소 2위도 확정했다.

여담으로 이 경기 때 MBC에서 방송 사고가 나왔다. 경기가 끝난 직후, 대한민국의 탁구경기로 넘어갈 때 화면은 탁구로 넘어왔으나 오디오가 야구 중계석에 남아있어서 허구연과 한광섭의 사설이 그대로 흘러들어갔다. 대략 "이야, 드라마네 드라마. 감독 김경문, 주연 한기주." 이런 내용이었다. 허구연이 무릎팍도사에서 회고하길 그 상황에서 욕설이라도 나왔으면 어쨌을까하고 그 때 생각하면 지금도 오싹하다고 한다. 그 뒤로 여러 후배 해설들에게 입조심할 것을 신신당부했다고.

4.1.7. 8월 19일: 한국 VS 쿠바

조별예선 8월 19일 11:30, 중국 우커송 야구장
1 2 3 4 5 6 7 8 9 R H E
파일:쿠바 국기.png 0 3 0 0 0 0 0 1 0 4 7 2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0 0 0 5 0 1 1 0 X 7 9 0
  • 승: 송승준(1승), 패: 비쇼안드리 오델린 (1승 1패), 세: 오승환(1세이브)
  • 송승준(6⅓이닝 3실점) - 권혁(⅓이닝 무실점) - 윤석민(1⅓이닝 1실점) - 오승환(1이닝 무실점)

이 경기 전, 김경문 감독은 쿠바전에 내세울 선발이 없다고 밝혔다. 원래는 윤석민이 나갈 예정이었으나 대만전에 뜻하지 않게 던지게 되면서 투수 운용이 헝클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원래는 네덜란드전에 내세울 예정이었던 송승준이 그래서 쿠바전에 나오게 되었다. 이미 4강 진출이 확정된 상황이었기에 버리는 경기에 가까웠고, 2회초에 3실점을 하면서 그대로 흘러가나 했으나, 의외로 송승준이 호투를 해주었고 4회에 점수가 폭발하면서 결국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오승환도 이날 대회 첫 세이브를 기록. 여담으로 진갑용은 이번 승리가 자신의 대표팀 경력 가운데 유일한 대 쿠바전 승리라고 감격했다.

이 경기 전 한국은 5전 전승이었고 리그 우승 매직넘버는 2였지만, 똑같이 5전 전승인 쿠바를 상대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 경기의 승자는 바로 매직넘버가 0이 되고 승자승 원칙에 의해 리그 우승을 확정하게 되는 경기였다. 이로서 마지막 남은 네덜란드전에 관계없이 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그리고 이 경기와 한국에서의 쿠바와의 평가전 2차전 승리가 이후 결승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당시 관계자들은 평가한다.

4.1.8. 8월 20일: 한국 VS 네덜란드

조별예선 8월 20일 11:30, 중국 우커송 야구장
1 2 3 4 5 6 7 8 9 R H E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2 0 0 0 4 2 0 2 X 10 16 1
파일:네덜란드 국기.png 0 0 0 0 0 0 0 0 X 0 4 1
  • 승: 장원삼(1승), 패: 알렉산더르 스미트(2패)
  • 장원삼(8이닝 무실점, 완봉승)

한국 입장에서는 당연스럽게 했던 경기. 그 결과는 들어 맞아 무난하게 8회 콜드게임으로 승리했다. 게다가 장원삼이 완봉승을 해줬기 때문에 불펜진의 휴식도 겸으로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다른 대회에서 2번이나 만났다.

이 경기가 끝난 뒤 어느 정도 결선 대진이 짜여진 상태에서 미국과 일본의 예선 경기가 열렸다. 당시 상황은 이기는 팀이 쿠바와, 지는 팀이 한국과 4강전을 치르게 되었다. 즉, 아마야구 최강을 만나느냐 컨디션이 많이 올라와있는 동아시아의 반도 국가를 만나느냐의 문제였기 때문에 일본 입장에서는 한국을 만나는 게 조금은 더 편했을 것. 그래서 일본은 쿠바를 피하기 위해서 미국과 연장 승부치기까지 가는 작전을 씀으로서 억지로 지는 경기를 진행했다. 호시노 센이치는 이날 경기가 끝나고 ' 미국을 만나 힘든 경기를 했다'곤 하지만, 얼굴은 웃음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웃고 있었다. 그 뒤…

4.1.9. 예선 뒷이야기

파란 글씨는 준결승 진출 팀, 회색 글씨는 탈락 팀.
경기 득점 실점 승률 승차 승자승
대한민국 7 7 0 41 22 1.000
쿠바 7 6 1 52 23 0.857 1
미국 7 5 2 40 22 0.714 2
일본 7 4 3 30 14 0.571 3
대만 7 2 5 29 33 0.286 5 1승 0패
캐나다 7 2 5 29 20 0.286 5 0승 1패
네덜란드 7 1 6 9 50 0.143 6 1승 0패
중국 7 1 6 14 60 0.143 6 0승 1패

예선 리그 최대 이변은 초약체이자 아시아 야구 동네북 신세였던 중국이 한국과 승부치기까지 간 것대만을 꺾은 것이다. 전자는 낮경기에다 서스펜디드 게임의 영향으로 경기 템포가 끊기게 된 것을 원인으로 보기도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충격 그 자체. 심지어 12회 연장전까지 가고 대만을 8: 7로 꺾었다.(7: 8이 아니다!)

대륙을 빼앗긴 이후로 다른건 몰라도 국기인 야구 만큼은 본토에 우위라고 생각했던 대만인들에게는 국제대회에서 처음으로 중국 대표팀에게 패한 것은 그 날 야구를 생중계로 보던 1명의 대만인이 심장마비로 사망했을 정도로 대충격이었다.

베이징 현지에서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다음날 아침에 KBO 신상우 총재와 만나기로 약속을 먼저 잡았던 CPBL 커미셔너가 전날 밤부터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약속을 펑크냈을 정도였다고. 사실 그날 경기 내용을 보면 그럴 만도 한게, 대만 팀은 12회초 4점을 득점해서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놀랍게도 이걸 불을 질러서 12회말 폭풍실점하면서 역전을 허용했다. 심지어 승부조작 의혹이 있다는 대만 검찰의 발표까지 있었을 정도.(출처 확인필요) 비록 결과적으로는 중국이 이 대회에서 꼴찌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전까지는 눈에 띄지 않았던 중국의 실력이 점점 오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당시 경기의 스코어보드는 다음과 같다.
조별예선 8월 15일 ??:?? , 중국 우커송 야구장
1 2 3 4 5 6 7 8 9 10 11 12 R H E
파일:attachment/TWN_Flag.jpg 0 0 0 0 1 1 0 0 1 0 0 4 7 11 4
파일:중국 국기.png 0 0 0 0 0 0 0 3 0 0 0 5X 8 11 3

그리고 중국은 이듬해 2회 WBC에서 일본에게 불과 4실점만을 허용했고, 패자전에서 또 한번 대만을 잡으면서 광탈의 나락으로 밀어넣었다. 정말 무시 못 할 정도까지 실력이 올라간 것으로 분석되었다.

한편, 중국에게 그것도 승리를 코 앞에 두고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한 대만은 분위기가 급격히 다운되며 4강에 진출할 가능성이 낮아졌고 그 다음 경기인 쿠바전에서 대등한 경기를 펼치는 듯 하다가 7회말 통한의 실점을 당하면서 패배, 그 다음 한국전에서는 2:8로 뒤지던 상황에서 5회말과 6외말에 각각 4점과 2점을 올리며 동점까지 만들었다가 더 이상의 추가점수를 내지 못하고 7회초에 한 점을 더 실점하면서 석패.

그 다음 미국전에서는 5회까지 1:1로 대등한 경기를 펼치다 6회말 2점 실점 후 7회초에 1점을 만회하며 역전의 희망을 살렸으나 점수를 더 내지 못하고 8회말에 1점을 더 실점하며 2:4 패배. 1승 5패로 4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그나마 마지막 캐나다전에선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6:5로 신승하면서 체면치레는 했다.

한국은 전승을 거두면서 결선리그에 진출했다. 매 경기 아슬아슬한 승부와 수비실책으로 인해 야구 팬들의 눈에는 이번 대표팀의 성적을 비관적으로 보는 견해가 많았으나, 의외로 SBS 특별 해설위원으로 위촉된 김성근 감독은 전승에 금메달을 예상했다.

네이버에서는 문자중계에 유명 야구인사들을 초빙하여 문자중계에 해설을 맡겼다. 김인식 한화 감독, 이만수 SK 코치, 서용빈 LG 코치, SK 박재홍 선수, 김동수 히어로즈 선수, 송재우 해설위원, 최훈 작가 등.

TV중계의 경우는 예선전에는 낮에 열린 중국전을 제외하고는 3사가 돌아가면서 중계했으며, 준결승 이후부터는 3사가 동시중계했다. 시청률의 승자는 허구연의 MBC.

4.2. 결선 토너먼트

예선에서 1위를 거둔 한국(7승)과 4위를 한 일본(4승 3패)의 매치, 예선 2위 쿠바(6승 1패)와 3위 미국(5승 2패)의 매치. 세팀 모두 7년후 토너먼트에서 만나게 되는데...[28] WBC 1차 대회 준결승전의 악몽과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의 승리의 추억이 함께 맴도는 상황이었다.

한국은 예선까지 전승이었지만 져주기 게임을 하는 미국과 일본을 보면서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일단 일본은 져주기 경기가 아니라고는 했지만, 예선전 때 악몽을 씻기 위해 고의적으로 한국을 택한 티가 팍팍 나는데다가 한국팀의 예선 전반 3경기가 참 안습이었다는 점에서 불안감은 점차 커져만 갔다.


4.2.1. 4강 1경기: 한국 VS 일본

4강전 8월 22일 10:30, 중국 우커송 야구장
1 2 3 4 5 6 7 8 9 R H E
파일:일본 국기.png 1 0 1 0 0 0 0 0 0 2 6 2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0 0 0 1 0 0 1 4 X 6 10 1

한국은 예선전 도중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주전 포수 진갑용이 부상으로 결장했고, 강민호가 대신 마스크를 썼다. 강민호는 훗날 인터뷰에서 "덕아웃에서 조계현 코치님이 계속 '민호야 침착하게 천천히 가자'라고 지시를 하셨다는데 전혀 들리지 않았다"며 그 날의 긴장감이 얼마나 컸는지 밝혔다.

한국의 선발투수는 예선에서 호투한 김광현. 김광현은 이전 시즌인 2007년 3승 7패에 평균자책 3.62를 기록했으나 한국시리즈를 기점으로 각성하며 2008년에는 이미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 중 한 명으로 성장해 있었다. 이에 맞서는 일본의 선발투수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좌완 에이스 스기우치 토시야. 전 시즌에 15승 6패에 평균자책점 2.46을 기록한 스기우치는 특히 국제 대회에서 한국 타자들이 영 힘을 못 쓰는 것으로 유명했다.

김광현은 1회 안타와 수비실책으로 맞은 1사 1,3루 상황에서 투수땅볼을 유도하며 위기를 잘 넘기는가 했으나, 2루 베이스커버를 두고 유격수와 2루수가 겹치는 상황이 벌어진데다 그 와중에 김광현이 던진 공도 방향이 좋지 않아 병살플레이에 실패하면서 1실점했다. 3회에도 니시오카를 출루시킨 뒤 폭투와 안타 등으로 추가 실점. 당시만 해도 아직 경험이 부족했던 김광현-강민호 배터리가 많이 긴장한 듯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몸이 확실히 풀렸는지 더 이상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고, 김광현 혼자서 8이닝이나 소화하며 예상했던것 이상의 호투를 펼쳐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강민호 역시도 초반에는 쉬운 포구를 놓치거나 하며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고, 공격에서도 3연속 폭삼으로 구멍이 되었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은 예상대로 스기우치의 페이스에 말리다가 4회말에 G.G.사토의 실책을 동반한 이용규의 2루타와 김현수의 연속 안타로 무사 1, 3루의 기회를 잡았으나 이승엽이 병살타를 치는 바람에 한 점 만회에 그쳤다. 이 때까지 이승엽은 정말로 미친듯이 까였으며 심지어는 관중석에서도 우리나라 관중들의 야유가 나왔을 정도.

일본은 예상 외로 스기우치를 4회를 끝으로 빨리 내리고 5회 가와카미 켄신, 6회 나루세 요시히사 등을 연이어 마운드에 올렸고, 7회말에는 철벽 마무리 후지카와 큐지까지 조기에 투입하면서 승리 굳히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너무 빨리 내보낸 후지카와 카드는 오히려 독이 되고 말았다. 7회말 1사에서 이대호가 볼넷을 골랐고, 김경문 감독은 바로 대주자 정근우를 기용하였다. 이어 고영민의 안타로 1사 1, 2루가 되었다. 강민호가 삼진을 당했으나, WBC 때부터 일본전에 강했던 대타 이진영의 적시타 때 정근우가 포수의 블로킹을 피해 왼발이 살짝 홈플레이트를 스치는 최고 수준의 홈슬라이딩으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우익수 이나바의 수비 위치가 앞으로 당겨져 있었고 송구도 정확했기 때문에 대주자 기용과 명품 슬라이딩 어느 하나라도 없었다면 홈 승부를 걸지 못하거나 주자가 객사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추가로 한국이 후지카와를 공략해서 동점을 만든 이후부터 일본의 불펜운영이 어긋나기 시작했는데, 필승조이자 마무리인 후지카와를 조기에 투입했음에도 동점을 허용했기 때문에 다음에 낼 투수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후지카와는 더 이상의 실점을 하지 않고 이닝을 마무리.

일본은 이용규-김현수-이승엽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8회 공격을 막기 위하여 좌완 이와세를 투입했다. 선두타자 이용규는 3유간을 날카롭게 뚫는 안타로 출루, 김현수는 아웃. 1사 1루 상황에서 이승엽이 타석에 들어섰을 때 이미 팬들의 기대는 싸늘히 식은 상황이었다.

베이징 올림픽 성적 23타수 3안타로 극도의 부진을 기록하고 있었으며, 이날 경기에서도 무사 1,3루 찬스에서 득점은 올라갔지만 병살타를 치는 등 까임 지분을 차곡차곡 적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이승엽을 끊임없이 기용하는 김경문 감독 외에는 아무도 이승엽을 믿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일본 배터리는 타격감이 좋지 않은 이승엽을 상대로 철저하게 바깥쪽 승부를 고집하면서 1B 2S까지 몰아넣고, 허를 찌르려는 듯 몸쪽 승부를 걸었다. 그리고…
한광섭: 아 우측에 떴습니다
허구연: 아 큽니다!
한광섭: 자 우익수 자 뒤로... x6
허구연: 커요
한광섭: 이나바... 이나바...
허구연: 커요!! 커요!!!!!!!!!!!
한광섭: 넘어갔습니다!
허구연: 아앍!! 느므가쓰요!!!
한광섭: 이승엽~!! 두 점짜리 홈런
허구연: 네에~!
한광섭: 이승엽 결국 해냅니다!
MBC 중계 멘트 중
배기완: 아~ 높이 뜨는데요?
김성근: 아~ 갔다.
배기완(김상훈): 으어어어?? (어?)어어어어!!!
김성근: 갔어.
배기완: 으어어어어어!!!!
김성근: 갔어.
배기완: 아아아아↘↗아아아아앍!!!!
김상훈: 뜨아아앍!!!
(이후 배기완과 김상훈의 탄성과 웃음)
배기완: 이승엽입니다!! 투런!!!
SBS 중계 멘트 중

MBC 한광섭 캐스터는 우측에 떴다면서 처음엔 잡힐 것처럼 말했지만[29], 허구연 해설은 커요를 외치다가 우익수 이나바가 타구를 포기하자 그제서야 확신에 찬 함성을 질렀다. 이어 허구연은 "지금 타구는 독도를 넘긴 것 같다"는 개드립 어록을 남겼다. 한편 이승엽에게 홈런을 맞은 후 일본측 중계를 보면 무려 11초간 말이 없었다.[30]

홈런의 충격과 환희가 채 가시기도 전에 김동주가 안타를 때려내면서[31] 이와세는 결국 강판, 와쿠이 히데아키가 올라왔다. 정근우가 중견수 아오키 노리치카의 머리를 넘기는 큰 타구를 쳤으나 아오키가 담장까지 따라가 점프해서 잡아내는 호수비를 보여주면서 아쉽게 물러갔다.

그 뒤 타석에 들어선 고영민의 타구가 정근우의 타구보다도 훨씬 덜 위협적인 타구였는데, 타구를 친 고영민의 빠던이 일품이다 좌익수 G.G.사토어이없는 실책을 보여주는 바람에 아~ 대쓰요! 노쳐쓰요! 노쳐쓰요! 1루에 있던 김동주가 홈인. 이어 3타수 3삼진으로 고생하던 강민호마저 2루타를 때려내 점수차를 4점으로 벌렸다. 사토의 실책 때부터 이미 일본 중계방송은 멘붕의 집합체.

이 영상의 6:17 지점부터 보면 나온다. 사토의 실책이 벌어지자 캐스터는 제대로 멘붕에 빠졌고, 해설자는 힘없는 목소리로 "이 1점은 정말 크네요. 이건 정말 큽니다."라는 말만 되뇌였다. 실제로 이 일본 해설가의 지금의 1실점은 정말 크다는 코멘트가 그냥 넋두리만이 아닌 것이 만일 G.G.사토가 고영민의 타구를 잡았다면 4:2로 이닝이 끝날 수 있었고 다음 9회초가 일본 공격이기 때문에 추격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추가득점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이 심리적으로 쫓기게 되는 입장이 되는 반면 일본에게는 대량 실점을 면한 상황이 되므로 안정된 상태에서 9회 공격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 허구연은 "G.G.사또 고마워요. 아~ 지금은 글러브에 들어갔던 공이 나왔어요. 아~고마워요 사또"라고, 아마 베이징 기간 중에 허구연이 남긴 어록 중 가장 유명한 어록을 남겼다. 허구연은 이후 인터뷰에서 "사실은 아리가또라고 하고 싶었다"고 농담. 그리고 wbc에서 아리가또 아오키를 시전했다[32] 당시 일웹에서는 물론 사토가 나노단위로 까였지만, 원래 우익수였던 사토를 무리해서 좌익수로 기용한 호시노 역시 까임거리를 하나 추가했다.

9회초에선 선발 김광현에 이어 윤석민이 나와 3자범퇴로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이날 한국 대표팀은 투수를 고작 두 명만 쓴데다, 선발 김광현이 무려 8이닝을 소화하면서 결승전을 대비해 다른 투수들을 총동원할 수 있게 되었다.

끝까지 이승엽을 기용했던 김경문 감독의 승부수는 보답을 받았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23타수 3안타로 부진하던 이승엽이 좌타자 킬러이자 시즌 중에 단 한 번도 안타를 때려내지 못한 이와세 히토키를 상대로 투런홈런을 치면서 약속의 8회가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인터뷰에서 김경문 감독은 "감독이 욕을 안 먹으려고 하면 경기를 망친다. 승엽이 너 못치면 너도 죽고 나도 죽고 이런 심정이었다"라고 밝혔다. 여담으로 김경문은 삼성에서 이승엽과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다.

이승엽은 경기 종료 후 기자가 소감을 묻자 눈물을 잠시 보이다가 "선배로서 후배들 보기에 너무 미안했는데 마음의 빚을 갚은 것 같다"고 밝혔다. 이 날 선발로 나왔던 김광현이 이승엽의 방졸이었는데 이승엽이 치지 못해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한 적도 있었다.

일본의 경우 순리를 어기고 져주기 게임을 한 것에 대한 승부의 여신의 철퇴를 맞았다. 1984 LA 올림픽 당시 시범종목이었던 야구에서 우승한 이래 금메달을 따 본 적 없는 일본으로서는 한 수 아래로 여겨지는 한국을 잡고 처음이자 마지막 금메달을 따고자 했으나, 이 패배로 결국 좌절. 여기에 프로들의 대결에서 참패했다는 사실이 또다른 수치로 다가왔다. 후에 서술할 대목이지만 프로선수들의 참가가 허용된 2000년 시드니 대회 이후 일본이 올린 최고의 성적이란 게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의 동메달이었다.

더구나 이 아테네 동메달 역시 미국도 참가하지 못한 대회에서 얻은 성적이란 점에서 일본측에겐 원통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일본에게 있어선 자신들의 최대의 강적 이 나오지 못한 대회에서, 거기에다 프로선수들을 총출동시키면서까지 금메달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지만 예상치 못한 호주에게 덜미를 잡히면서 동메달에 그쳐야 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비단 올림픽뿐 아니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라든지, 프리미어 12에서도 프로들간의 대결에서 한국이 절대로 밀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일본의 자존심을 상해놓고도 남을 만한 일이었다. 그것도 자국 프로리그의 내로라하는 선수들을 총동원한 경기에서 한국은 이기기도 많이 이겼지만 졌던 경기에서도 허무하게 진 경기는 별로 많지않다. 정말 진을 잔뜩빼게 한 경기들을 얼마나 치렀는지 모른다. 아다시피 아시아 야구역사가 길고 프로야구 역사도 기성세대격인 일본에게 한국의 프로출신 선수들이 이런 경기력을 지녔다는 점에 대해 일본은 그저 아연실색 할 뿐이다.

경기 시작 전, 일본 대표팀 감독 호시노 센이치는 "이승엽? 그게 누구냐? 제대로 치지도 못하고 있는 타자를 4번에 계속 두고 있다니 대단하다" 라든지, "이대호도 약점은 있다. 투수들이 실투만 하지 않으면 된다", "김광현은 슬라이더만 참으면 된다. 어찌됐든 왼손투수 김광현은 두 번 연속인데 지난번처럼 호투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냐?"라고 대표팀에 대해 폄하하는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서는 이승엽에게 무모한 몸쪽 인코스 승부를 많이 하다 투런 홈런을, 이대호에게는 실투를 많이 하지 않으며 3타석 연속 볼넷 출루를, 김광현에게는 슬라이더를 많이 참지 못하며 8이닝 2실점 선발승을 헌납했다. 역레발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호시노 센이치의 막장운영이 결승 진출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현지에서는 특집 방송까지 편성하여 거의 '그것이 알고싶다' 급으로 깠다. 이 경기에서 그의 삽질을 정리해보면,
  • 1사 1루에서 희생번트를 대고(한번은 득점에 성공하긴 했지만)
  • 아직 결승 진출이 확실하지도 않은데 결승전을 대비한답시고 우에하라 고지, 다르빗슈 유를 불펜에 쌓아두고[33]
  • 심지어 후지카와 큐지조차 제대로 된 타이밍에 내지를 못했으며[34]
  • 승부처가 올 때마다 당시 컨디션이 막장이었던 이와세 히토키를 내서 역전을 허용[35]
  • 이와세의 기용은 일본에서도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물론 좌타자가 연달아 나와서 정상급 좌완 마무리를 올린게 뭐가 잘못이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지면 끝인 토너먼트에서 대회 내내 최악의 모습인 투수를 기용한 건 무리수였다는 의견이 더 우세였다. 추가로 실책으로 8회에 대량득점을 도와준 G.G.사토는 그저 고마울 뿐. 일웹에서는 호시노 센이치, 이와세 히토키, G.G.사토삼대 역적으로 까댔으며 재일 드립도 성행했다.
  • G.G.사토의 실책도 경기 운영적인 측면에서 보면 자초한 부분이 있는게 주로 우익수로 기용되던 선수였고 공격력 강화를 위해 좌익수로 별로 뛰어본적 없는 선수를 억지로 좌익수로 낸것이다. 고영민의 타구가 잡을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쉽지 않은 타구라는걸 생각해보면 사토의 실책역시 호시노의 억지스러운 선수기용에서 시작된 것임을 부정하기 힘들다. 같은 외야수에 위치도 대칭이라 상관 없어 보이지만 좌익수에게는 우타가 당겨친 타구와 좌타가 밀어친 타구가 가고 우익수에게는 좌타가 당겨친 타구와 우타가 밀어친 타구가 가게 된다. 같은 좌타/우타가 친 타구라면 당겨칠 때와 밀어칠 때의 타구의 질이 달라지고 같은 당겨친 타구/밀어친 타구라면 타구의 방향이 다르게 되어 착오가 생길 수 있다. 물론 다른 포지션 이동에 비하면 별 거 아니지만 그것도 포지션 훈련을 제대로 했어야 먹히는 말이지 훈련도 제대로 안 시키고 멋대로 좌익수로 기용한 호시노 센이치의 잘못이 100%다. 그저 같은 외야수니까 어련히 잘하겠거니 한거다 이 양반은…. G.G.사토는 (최소한 이 실책이 대해서는) 사실 억울하게 욕을 먹은 것이다.

올림픽 병역 특례 특성상 색깔에 관계없이 메달만 확보되어도 병역이 해결되기 때문에, 경기를 이기는 순간 병역 특례가 확정되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플라이를 잡은 다음 바로 무릎꿇고 기도하는 이용규의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36]. 여튼 이 경기로 대표팀 선수 중 송승준, 이택근, 이대호, 정근우, 고영민, 권혁, 장원삼, 강민호, 이용규, 윤석민, 김현수, 류현진, 한기주, 김광현 등 총 14명이 군대 등으로 손실될 2년의 시간을 프로에서 뛰면서 벌 수 있게 되었다. 메이저리거가 몇명이야 진짜 메이저리거는 류현진 한명 뿐

7년 후, 한국과 일본어느 한 대회준결승에서 또다시 격돌하게 되는데…

4.2.2. 4강 2경기: 미국 VS 쿠바

4강 8월 22일 18:00, 중국 우커송 야구장
1 2 3 4 5 6 7 8 9 R H E
파일:미국 국기.png 0 0 0 1 1 0 0 0 0 2 6 2
파일:쿠바 국기.png 0 0 2 1 0 1 0 6 X 10 14 2

3회말, 1사 1루에서 헥토르 올리베라가 3루타를 쳤는데 미국 2루수 브라이언 바든이 실책을 하는 사이 올리베라가 홈까지 파고들어 2점을 먼저 냈다. 4회초, 곧바로 미국은 1사 2,3루를 만들었지만 매튜 브라운의 희생플라이로 1점을 내는데 그쳤다. 4회말 쿠바의 알프레도 데스파이네가 솔로 홈런으로 1점 달아나자 5회초에 미국은 제이슨 도날드의 적시타로 곧바로 1점 따라붙는다.

6회말, 프레데릭 세페다가 솔로 홈런을 치며 4-2로 2점차로 점수가 벌어지자 쿠바는 불펜 에이스 루이스 페드로 라조를 7회부터 투입했다. 그리고 8회, 알렉세이 벨과 아리엘 페스타노의 연속 쓰리런 홈런이 터지며 단숨에 스코어는 10-2, 라조는 3이닝 무실점으로 경기를 끝내며 세이브를 기록했다.

대학생이면서도 160km를 넘나드는 구속을 자랑하며 미국 대표팀 투수 내에서도 에이스 대접을 받았던 스트라스버그는 홈런 2방을 맞으며 4이닝 3실점 2자책을 기록했다. 쿠바의 선발 베라는 6이닝 2실점 1자책. 쿠바 타선은 홈런을 4개나 때려내면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결승전 패배를 완벽하게 설욕했다.

이날 쿠바는 단 2명의 투수만 소모했다. 하지만 그 2명이 한국 대표팀으로 치면 류현진과 윤석민에 해당할 정도로 투수진의 기둥이었던 투수였고, 이는 결승전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었다. 특히 라조는 이날 30개 넘게 던진 여파로, 결승전에 나왔지만 투구내용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반면에 한국은 전날 일본전 선발투수인 김광현 말고는 총동원이 가능했던 상황이었다. 윤석민도 전날 등판했지만 1이닝을 깔끔하게 막으면서 짧게 던진터라 구원등판에는 문제없는 상황이었다.

4.2.3. 동메달 결정전: 일본 VS 미국

동메달 결정전, 8월 23일 10:30, 중국 우커송 야구장
1 2 3 4 5 6 7 8 9 R H E
파일:일본 국기.png 1 0 3 0 0 0 0 0 0 4 6 1
파일:미국 국기.png 0 1 3 0 4 0 0 0 X 8 9 0

1회, 일본의 아라키 마사히로가 선제 솔로홈런을 때리자 미국도 2회에 맷 라포타가 솔로홈런을 때리면서 응수했다. 4회초, 무라타 슈이치니시오카 츠요시의 연속볼넷 이후 이번 대회 일본의 유일한 까방권 보유자 아오키 노리치카[39]의 쓰리런 홈런이 터지면서 4-1로 달아났는데......

낙구의 신G.G.사토가 평범한 좌익수 플라이를 떨어뜨렸고 사토가 또! , 사또떨 결국 1사 1, 2루에서 맷 브라운이 용규놀이를 시전하면서 9구 승부까지 간 끝에 동점 쓰리런을 날리는 바람에 승부는 원점. 그나마 쉴드의 여지가 있던 준결승전 실책과는 다르게 이것은 G.G.사토의 명백한 삽질이나 다름없는 플레이였다. 이미 나카지마 히로유키가 포구 준비에 들어간 뒤라 사토는 천천히 접근해 실책에 대비한 백업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도리어 자기가 잡겠다고 달려들었다가 파투낸 상황이었기 때문. 이 어처구니가 없는 플레이 직후 와다가 "뭐 저런 ㅁㅊ!!"이라는 듯 노려보는 리액션과 호시노 감독이 좌절하는 장면이 압권.

어처구니없게 동점을 허용한 일본은 흔들렸고 설상가상 4회초 무사 1루에서 어떻게든 리드를 다시 잡겠다고 시도한 번트까지 실패하면서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5회말 카와카미 겐신이 2사 1,2루에서 타일러 티가든에게 2타점 2루타를 맞은데 이어 곧바로 제이슨 도날드에게 투런홈런을 허용하면서 순식간에 더블 스코어가 되었다.

8회초 1사에 모처럼 주자가 출루했지만 곧바로 귀신같이 병살타를 치면서 그대로 공격 종료. 8회말 구원등판한 다르빗슈마저 폭투로 주자를 3루까지 보내며 실점위기에 몰렸다가 간신히 무실점으로 이닝을 끝마쳤다. 9회초 2사 2, 3루까지 갔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면서 결국 예선 순위대로 동메달은 미국이 받았으며 금메달을 외치던 일본팀은 불명예스러운 목메달을 받고 베이징을 떠났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때는 운이 없었다며 대표팀에게 박수를 보냈던 일본은 베이징 올림픽때는 팬이고 언론이고 할 것 없이 그야말로 대폭발. 아테네 때는 쿠바도 이기면서 예선 1위(6승 1패)로 토너먼트에 올라갔다가 4강에서 호주에게 덜미를 잡히면서 동메달을 땄으며 재미있는 건 예선에서 기록한 1패가 호주에게 패한 것이었다. 결국 일본은 호주에게만 2패를 한 셈. 반면 호주는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일본을 이기면서 4승 3패 예선 4위로 가까스로 토너먼트 막차를 탔고 4강에서 다시 일본을 꺾으면서 은메달을 받았다. 일본을 격파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투수들인 애드리안 번사이드, 크리스 옥스프링, 제프 윌리엄스는 이를 계기로 NPB에 진출했다. 특히 베이징 때는 일본 현지에서 방송된 특집에 의하면 미국전을 패한 뒤 관중에 대한 인사 중 한 팬이 "죄다 바다에 빠져 뒈져버려!!!!!!"라고 일갈하는 장면이 방송됐다.

예선리그에서 졸전을 거듭한데다 마지막 경기에서는 져주기 의혹까지 있었다. 토너먼트 2경기에서는 선취점 내고도 자멸하다시피 역전패한데다 대회내내 최악이었던 이와세를 주구장창 올리고 에이스 다르빗슈를 쿠바와의 예선 첫 경기에서 선발등판 시키고는 내내 놀리다가 동메달 결정전에서 4점이나 점수가 벌어진 다음에나 등판시키는 등 쉴드를 쳐줄래야 쳐줄 건덕지가 없었다. 대회 후 장훈은 일본선수들의 정신상태가 글러먹었으니 당연한 결과라며 TV 방송에서 일갈했다. 한국은 대일본전에서 만큼은 '반드시 이긴다'는 정신력으로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이번 2017 삿포로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일본을 제압한 한국 아이스하키 남자 국가대표팀의 김원중은 "한일전은 가위바위보도 져선 안된다잖는가,"라고 했을 정도로 필승의 각오로 나오는 것은 확실하다.

거기에 한국 대표팀은 선수촌의 2인 1실을 사용한데 비해서 일본대표팀은 최고급 호텔에서 1인 1실을 사용했다는 것이 보도되자 팬들은 더욱 분기탱천. 일본 야구대표팀 수준의 환경에서 지낸 건 몇몇 국가의 축구대표팀과 미국 농구대표팀 정도였다. 게다가 다르빗슈 유와쿠이 히데아키가 경기 전날에 밤새 비디오 게임을 하고 있다는 썰까지 나왔으니 말 다한 셈이다. 심지어 일본 올림픽위원회에서까지 야구대표팀에게 지급한 선수단 강화비를 되돌려 받고 싶다는 드립을 치기도 했다. 2년 후 유럽의 어느 축구 국가같이 선수단과 코칭 스태프들 모두 가축수송 신세로 귀국했다 카더라.[40]

무엇보다 일본을 당혹하게 만든 것은 프로 선수들의 참가가 허용된 2000년 시드니 대회 이후의 일본 야구팀의 성적이 막장급이라는 점인데 시드니 대회땐 한국에 패한 4위였고,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는 동메달, 그리고 2008년 이 베이징 대회에서 또 다시 4위에 머물렀다. 여기에 대한민국이 참가하지 못한 2004년 대회를 제외한 다른 대회에서는 아예 메달을 받지 못한 사실에 치를 떨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더욱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대회 때는 미국도 참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일본측에겐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41].

더구나 이 대회 전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고 했었는데 오히려 한국이 그 위업을 달성함으로서 일본의 자존심이 더 상했다. 무엇보다 한국의 야구에서의 올림픽 금메달은 아시아 국가가 획득한 금메달 중 처음이자 마지막(야구가 다시 정식종목으로 복귀할 때까지는)이 되었다.는 점에서 일본을 확실하게 멘붕시킨 대 사건이었다.

특히 빈손으로 돌아간 일본 쪽은 대회 이후 분위기가 완전 개판으로 되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일본에서는 대회 후 특별기획 프로까지 편성해 일본의 참패 원인과 이에 대한 언론인들, 그리고 원로 야구인들과의 대담까지 방송하는 등 그야말로 난리도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야구를 다시 정식종목으로 올린건 일본의 자존심 회복용이라고 보는게 맞다. 야구가 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이래 일본은 금메달을 획득, {아시아 야구의 적자 + 최강자}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려 했었는데 오히려 반대의 결과로 귀결됐고 그나마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선 한국과 미국이 나오지도 않았음에도 금메달에 실패했으며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다음 대회에서 한국이 토너먼트 전승 우승이란 대기록을 아시아 최초로 찍어버리자 그야말로 충공깽 멘붕을 해버린 것. 일본의 입장에서는 2020년 대회가 유일한 희망인지라 만약 2020년 대회에서도 금메달을 못따면 진짜로 우스운 모양새가 되어버린다.

4.2.4. 결승전: 한국 VS 쿠바

결승전, 8월 23일 18:00, 중국 우커송 야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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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쿠바 국기.png 1 0 0 0 0 0 1 0 0 2 5 1
  • 승: 류현진, 패: 노베르토 곤살레스, 세이브: 정대현
  • 류현진(8⅓이닝 2실점) - 정대현(⅔이닝 무실점)

쿠바는 전통적인 야구 종목에서의 강국이며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1992년 이래 3번의 금메달과 1번의 은메달[42]을 받은 전적이 있다. 야구월드컵[43]에서 25번 우승했을 정도로 아마추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었다.

다만 프로에서는 그다지 빛을 못보고 있는데, 쿠바가 공산주의 성향이 강한 것도 있지만, 2009년에도 2회 WBC 일본전에서 던진 아롤디스 채프먼이 망명해서 신시내티 레즈 소속으로 데뷔하는 등 잇단 주축 선수들의 망명으로 인해 옛날만은 못했던 상황. 게다가 미국과의 준결승에서 한동안 쿠바의 마운드를 지켜온 베라(6이닝)와 라조(3이닝)를 소모해버린 터라 막상 결승전에서 노베르토 곤살레스를 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선수도 좌완이면서 사이드암에 가까운 투구폼이라 여전히 공략하기는 까다로웠다. 한국팀의 선발은 류현진으로, 캐나다전 126구 등판 이후 계속 등판하지 않으며 어깨를 보존한 상태였다.

1회초에 이승엽이 투런홈런을 치면서 기분좋은 출발을 했으나, 바로 1회말에 쿠바가 솔로홈런을 치면서 점수를 만회했다. 이후 류현진과 노베르토의 팽팽한 투수전이 이어졌다. 양팀 다 멋진 수비를 보여주면서 기회를 용납치 않는 모습이었다. 다시 기회가 찾아온 것은 7회초. 연투로 지쳐있는 라소가 6회초에 올라왔고, 7회초에 2사 상황에서의 박진만의 안타와 이종욱의 볼넷으로 만든 2사 1, 2루의 기회에서 이용규의 2루타로 1점을 얻으며 3:1로 앞서나갔다. 하지만 바로 7회말에 쿠바도 솔로홈런을 치면서 다시금 한국의 3:2 박빙 리드가 계속되었다.

이용규의 2루타때 1루 주자인 이종욱이 리그와 같은 상황이었으면 충분히 들어왔을 상황이었으나 들어오지 못한 것은, 나중에 본인이 밝혔지만 아웃카운트를 1아웃으로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김경문 감독은 "그때 나중에 위기가 한 번은 오겠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운명의 9회말, 많은 공을 뿌린 류현진은 완연히 지쳤다. 하지만 김경문 감독은 올림픽 결승전 완투승을 기록하는 영예를 경기를 끝까지 끌고 온 에이스 류현진에게 안기게 하기 위해 계속 등판을 지시했지만 선두 타자가 안타를 치고 나갔고, 바로 희생번트가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 타자와 다다음 타자 타석에서 분명한 스트라이크조차 볼로 선언하면서 1사 만루의 위기가 빚어졌다. 포수 강민호가 주심에게 항의하자, 주심은 강민호를 퇴장시켰다.

이날 주심은 이용규가 히트 바이 피치를 맞았음에도 아픈 내색을 안했다고 볼로 판정하기도 했었다. 또 강민호의 말에 따르면, 주심이 스페인어로 쿠바 선수들과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고.[44]

퇴장당한 강민호 대신 올라갈 수 있는 포수는 몇 년째 포수미트를 잡지 않은 이택근과 햄스트링 부상으로 출전도 하기 힘들었던 진갑용 뿐이었다. 이택근이 '올라가야 하나…'하는 순간 진갑용이 스스로 장비를 챙겨입었다고 한다. 불펜에서 같이 공을 받아주고 있던 이택근은 '그때가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다'고 회상. 한편 진갑용은 "나는 한번은 '괜찮냐?'고 물어볼 줄 알았는데, 그 순간이 되니 그런 말이 나오기 전에 내가 장비를 입고 있더라"고 회고. 김경문 감독은 원래는 윤석민을 내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불펜에서 공을 받아보던 진갑용이 정대현을 추천했고, 평소 그런 충고를 잘 안들음에도 그날은 왠지 진갑용의 말대로 정대현을 등판시켰다. 정대현이 요만큼도 긴장이 없는 걸 보고 그때서야 확신을 했다고 한다. 반면 윤석민은 '가장 긴장되던 순간'이라고 회고.[45]

시청자들 모두의 눈앞에서 은메달이 아른거리면서 연장전이라도…라는 소망이 들던, 문자 그대로 공 하나가 모든 것을 가르는 시점이었다. 초구는 가운데 약간 높은 스트라이크. 2구째는 완전히 한가운데 들어가는 스트라이크. 하지만 구리엘은 배트를 내지도 않았다. 내지 않은건지 못 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정대현은 후일담에서 (2구는)실투였는데 이 공을 치지 못하자 자신감이 생겼다고 밝혔다.

3구째, 타석에 있던, 쿠바 타선의 핵심 타자인 율리에스키 구리엘은 공을 받아쳤는데...... 그 공이 맥없는 땅볼로 되면서 유격수 박진만에게 갔고 아 뜨블푸레이! 뜨블푸레이! 박진만은 2루에 있는 2루수 고영민에게 토스. 2루수 고영민은 특유의 송구로 1루에 뿌렸고, 고앵민! 고앵민!1루수 이승엽은 공을 받고 환호했다.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 아니 드라마를 이렇게 쓰면 판타지 쓰고 있다고 욕먹을 만큼 드라마틱한 경기. 금메달이었다.

9회말 장면
허구연: 고의 씽볼 투…(한광섭: 네!)
한광섭: 자 오다 정말 직각으로 하나 떨어져 주면 좋은데요. (투수 투구동작) 자, 투나씽!
(타자 타격)
한광섭(허구연): 유격수! (아악!) 잡았어요! (뜨블프레이! 뜨블프레이!) 어! 1루로-!!(고엥민! 고엥민-!!) 아아악-!![46]
허구연: 아아앆-!! 우승이에요~! 증대여~~!
허구연: 하으아아아아아아!!! 샤우팅이라기 보다는 비명, 거의 혼절하셨다
한광섭(허구연): 대한민국~! (예~!) 우승입니다~! (예~! 우승이에요!) 베이징 올림픽 야구 우승! 대한민국!!
-MBC 중계진의 우승 순간 멘트
김현태: 3구 자, 유격수 병살코스입니다! 2루에 포스아웃! 자 1루에, 1루에!!
이용철: 아아앆-!! (중략) 대한민국입니다!!!
-KBS 중계진의 우승 순간 멘트

박진만은 1사 만루 상황이 되자 제발 이쪽으로만 오지 마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우연히 정면으로 와서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고 후에 밝혔다. 당시 박진만은 정대현의 변화구를 믿고 병살타에 대비해서 2루쪽으로 약간 시프트한 상태였다.

당시 고영민의 송구는 러닝 점프 역동작 터닝 스로우였다. 2008년 겨울 방송된 특집프로그램에서 공을 고영민에게 토스했던 박진만은 뒤에서 고영민이 던진 공이 1루로 뽈뽈거리며 날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미치는 줄 알았다고 회상. 당시 마스크를 쓰고 있던 진갑용 역시도 아니 고영민이는 그 상황에서 러닝 스로를 하냐고…라고 미치는 줄 알았다고 푸념. 고영민 본인도 같은 프로그램에서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후에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너 때문에 금메달 못 따는 줄 알았다는 잔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정작 두산팬들은 저런 송구에 익숙해서 그러려니 했다 카더라 당시 고영민은 2루로 들어오다 스텝을 잘못 밟아서 불안한 자세로 송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 영상을 보면 2루 베이스를 왼발로 밟았다. 그래서 한발 더 내딛는다고 터닝 스로가 된 것.

여담으로 이승엽은 환호하다 말고 잡은 공을 바로 주머니에 넣어서 챙겼다. 당시 하이라이트를 보면 이승엽이 점프하다 말고 뒷주머니로 공을 집어넣는 장면이 보인다.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이 생긴다면 바로 들어갈만한 역사성있는 야구공이니…

이때의 장면은 스포츠채널에서 심심하면 리플레이 되었고, 한광섭 캐스터의 "자 오다 정말 직각으로 하나 떨어져 주면 좋은데요"라는 말은 정대현에게 직각갑이라는 별명을 선사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결정적인 상황에서 병살을 칠 때 이 장면이 패러디가 되었는데 김현수[47]차일목 문서에는 이때 음성을 그대로 덮은 패러디 영상이 있다.

시청률은 MBC 29.5%, KBS2 13.4%, SBS 9.9%. 순간시청률은 71.7%였다. 토요일 오후라는 황금시간 대에 펼쳐진 덕도 있지만 그만큼 경기가 재미있었다는 얘기. 대표팀이 금메달을 딸 때 태권도에서도 차동민 선수가 금메달을 따면서 니콜라이디스 선수를 콩라인에 가입시켰지만 철저하게 묻혔다.
또 이승엽이 공을 잡는 순간 아파트 전체가 환호를 지른 경우도 있었다.
결국 우리나라는 9전 전승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금메달[48]을 땄다.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가 프로야구의 원년을 찬란하게 빛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26년만에 이뤄진 세계대회 우승인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은 프로야구의 중흥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

5. 베이징 올림픽 이후

  • 베이징 올림픽 2년 후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다시 한번 금메달을 따면서 우울했던 도하 아시안게임에서의 치욕 또한 저 멀리로 잊혀졌다. 그리고 2009 한일시리즈WBC 준우승과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승승장구를 이어갔다. 2013 WBC에서 충격적인 타이중 참사가 있었지만, 그래도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간신히 금메달을 따 체면치례를 하고 프리미어 12에서 일본을 기적적으로 꺾고 초대 우승을 차지하기도 하는 등 여러 국제대회에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중.하지만 곧...
  • 결승전이 열린 우커송 야구 경기장은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몇달도 안가 철거되어서 야구팬들에게 아쉬움을 안겨주었다. KBO는 베이스라도 소장하겠다고 중국 당국과 협상했지만 국가재산이라고 하면서 중국측이 완강히 거부해서 결국 불발되었다고 알려져있지만, 실제로는 추후 협상을 통해 2009년에 중국 체육협회로부터 기부받아 우커송 구장의 베이스는 한국에 들어와 있는 상태다. 계획대로라면 2019년에 개장할 한국 야구의 전당 및 야구박물관에 전시될 예정.
  • 2008년부터 현재까지 마지막 올림픽 야구에서 최초로 금메달을 딴 날을 기념하며 KBO는 올림픽 우승일인 8월 23일야구의 날로 지정했다. 그리고 매해 사인회 등 각종 행사를 열고 있다.
  • 2005년 메이저리거의 올림픽 차출을 요구하는 IOC와 거부하는 MLB와의 알력 다툼으로 인해 야구종목이 올림픽에서 퇴출되어 베이징 올림픽을 끝으로 당분간 올림픽에서 야구를 볼수없게 되었다. 일단 IBAF에서는 여자 소프트볼의 올림픽 재입성을 노리는 국제 소프트볼 연맹(ISF)와 손을 잡고 세계야구소프트볼 총연맹(WBSC)를 창설했다. 그리고 남자 야구와 여자 소프트볼을 하나의 종목으로 묶어 양성 평등을 강조하면서 올림픽 복귀를 노리고 있다.[49] 다만 소프트볼이 야구보다 듣보잡이라는 게 문제. 거기에 야구·소프트볼의 경쟁상대인 크리켓도 올림픽 재입성을 노리고 있으며 새로 들어가려면 이전 종목이 빠져야 하기에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래도 2013년에 2020년 올림픽 개최지가 일본 도쿄로 결정됨에 따라 개최국 일본의 입김에 따라 야구가 부활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섞인 보도가 2014년에 나오기도 했다.#
  • 그러다가 올림픽에 돈만 많이 들어간다고 개최국들이 줄어드는 상황에 갑질만 하던 IOC가 부랴부랴 올림픽 어젠다 2020라는 개혁안을 발표했는데, 개최지에서 정식 종목을 직접 추가하는 것을 허용하게 되었다. 일본의 로비가 통한 셈. 야구가 영구적으로 올림픽에 복귀하는 건 아니더라도, 2020년 올림픽을 비롯하여 야구가 인기 있는 국가에서 치러지는 대회에서는 경기가 정식 종목으로서 치러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2028 LA 올림픽에서도 야구를 볼 수 있을 전망이지만 2024 파리 올림픽에선 모를 상황이 되었다.
  • 프로야구매니저 2008년 국가대표 카드에선 한기주를 은근히 깐다. 바로 모든 능력치가 9로 끝나는 것. 속이 꽉찬 남자 99.9
  • 이때 활약했던 한국야구 선수들 중 류현진, 김현수, 이대호, 오승환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에 성공했다. 윤석민도 해외진출을 하였지만 마이너리그에서 매우 부진해 지명할당을 당하고, 스프링캠프에서도 불러주지 않는 등 안습한 상태를 겪다가 국내로 복귀했다. 김광현도 진출을 도모했지만 처참한 몸값과 계약조건을 제시받으며 무산.
  • 이외에 강민호[50], 권혁, 윤석민, 이용규, 이택근, 정근우 등이 FA 대박을 치기도 했다.
  • 4강전과 3, 4위전에서 실책을 저지른 G.G.사토는 이 올림픽 이후로 팀에서 찍혀서 몇 년 못가 팀에서 방출당했고, 12구단 모두의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바람에 1년 동안 팀을 못 구해서 이탈리아 야구리그까지 갔다가 2013년에 겨우 치바 롯데 마린즈로 복귀하는 데 성공했다.
  • 이때 꼼수를 부리다 망신당한 일본은 2012년2015년에 다시 실수를 했다.
  • 2019년에 김경문호가 11년 만에 부활했다.

6. 대한민국 대표팀 선전 의의

베이징올림픽 당시에는 집에서 TV로 경기를 봤다. 그때는 2002한일월드컵 이후라 야구가 침체돼 있었다. 어떻게 하면 야구를 살리느냐를 놓고 고민했을 때다. 동네엔 온통 축구만 했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이 선전을 하자 금방 분위기가 바뀌었다.[51]야구경기를 하는 날이면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 동네 주차장에서도 아이들이 야구를 했다. 좋은 기회다 싶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작은 아이가 동네 클럽에서 축구를 했다. 축구하는 학부모들에게 '내가 야구를 가르쳐도 되겠나'라고 물어봤는데 모두 좋다고 했다. (중략) 잘 하는 아이들은 리틀 야구 보냈다. 이후 야구붐이 일어났고, 동네에 축구 클럽이 없어졌다. 2009, 2010년 학교 운동장에는 거의 대부분 야구를 했다.
양해영 KBO 사무총장 인터뷰 中

리그에서 젊은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계속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도 있었지만, 이제 대한민국 야구계 스스로 자신들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생겨났다. 이는 다음해 열린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도 좋은 성적으로 연결되었고, 대한민국에 야구 붐이 더욱더 일어나는 계기로서 작용되었다. 유소년 야구도 대폭 증가하게 되었는데, 초·중·고·대 선수들은 2006년 6,400명에서 2015년 16,000명으로 늘어났다. 팀은 282팀에서 455팀으로 173개팀이나 늘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이후 침체되어 있던 야구계가 다시금 재도약하게 되었고, SK 와이번스두산 베어스를 필두로 여성 관중들의 대거 유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며[52]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또한 관심도가 올라가면서 자금의 유입 규모가 커졌고 이는 야구계 인프라 산업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는데 2008년의 선전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

당시 프로야구와 대등한 싸움을 하던 K리그에도 타격이 있었는데, 축구기자간의 대담에서도 이때의 충격이 상당했음을 보여준다. ##

참고로 이때 처음 야구본 사람을 일컬어 베이징 뉴비라 부르며 에드먼턴 키즈 이후 베이징 키즈가 생기면서 다시 전성기를 열었다.

반대로 씁쓸한 일이 있는데 이 당시 한국야구대표팀 단장이 바로 하일성이었다. 2016년 자살로 삶을 끝내던 그가 살아생전, 묘비명을 올림픽 야구단장 하일성이라고 적어달라고 강조했던 걸 보면 그도 이 올림픽 금메달이 가장 인생에서 좋았던 일로 생각한 모양이지만 결승전 이후 대표팀 선수들과 웃으며 사진찍은 게 하일성을 기억할 때 씁쓸하게 남게 되었다.

7. 개인기록


전반적으로 미필자의 기록이 좋은 것을 알 수 있다. 면제로이드

7.1. 타자

대한민국 대표팀 개인별 성적
포지션 이름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도루 삼진 4구
포수 진갑용 6 10 1 0 0 0 0 1 0.100 0.182 0.100 0.282 0 0 1
포수 강민호 6 22 6 2 0 0 4 3 0.273 0.304 0.364 0.668 0 10 1
내야수 이승엽 8 30 5 1 0 2 6 4 0.167 0.265 0.400 0.665 0 9 4
내야수 정근우 8 29 9 1 0 1 1 5 0.310 0.310 0.448 0.758 1 2 0
내야수 고영민 8 24 5 0 0 1 5 6 0.208 0.269 0.333 0.602 1 9 1
내야수 박진만 7 15 1 0 0 0 0 1 0.067 0.125 0.067 0.192 0 1 1
내야수 김민재 5 11 0 0 0 0 0 1 0.000 0.154 0.000 0.154 0 4 1
내야수 이대호 9 25 9 1 0 3 10 5 0.360 0.525 0.760 1.285 0 3 7
내야수 김동주 6 17 5 0 0 0 0 4 0.294 0.429 0.294 0.723 0 3 4
외야수 이용규 9 27 13 2 0 0 4 8 0.481 0.531 0.556 1.087 1 2 4
외야수 김현수 8 27 10 2 0 0 4 3 0.370 0.393 0.444 0.837 2 5 1
외야수 이종욱 9 34 10 0 0 0 3 4 0.294 0.342 0.294 0.636 2 4 3
외야수 이진영 7 18 6 0 0 0 4 2 0.333 0.400 0.333 0.733 0 3 2
외야수 이택근 5 16 3 0 0 1 3 3 0.188 0.176 0.375 0.551 0 3 0

7.2. 투수

대한민국 대표팀 개인별 성적
이름 경기 이닝 방어율 홀드 세이브 피안타 피홈런 자책점 삼진 4구
류현진 2 17.1 1.04 2 0 0 0 10 2 2 13 5
김광현 3 14.1 1.26 1 0 0 0 10 0 2 12 3
송승준 2 12.1 2.19 1 0 0 0 7 0 3 12 5
장원삼 2 12.1 0.00 1 0 0 0 6 0 0 11 0
봉중근 2 8.1 8.31 0 0 0 0 14 0 8 6 4
윤석민 5 7.2 2.35 2 0 0 1 6 1 2 6 1
정대현 3 4.0 2.25 0 0 0 2 2 1 1 7 0
한기주 3 2.1 19.31 1 0 0 0 7 1 5 3 2
오승환 2 1.2 0.00 1 0 0 1 0 0 0 1 0
권혁 3 1.1 0.00 0 0 0 0 0 0 0 2 1


[1] 유럽 예선 2위인 영국은 소요경비 1억을 마련하지 못하여 참가할 수 없게 된 관계로, 4위인 독일에게 플레이오프 출전권이 승계되었다.[2] 예비엔트리에 속해있지 않았기에 아시아예선에는 참여할수 없었던, 그래서 2007년 한국시리즈와 코나미컵에서 대호투를 보고 김경문 감독이 줄곧 아쉬워 했던 김광현과 손가락 부상에 시달리던 요미우리의 이승엽을 포함한 엔트리가 짜여졌다.[3] 2000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로 병역 특례.[4]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4강으로 병역 특례.[5] "선수차출 보답성은 좋지않다"라고 주장할수도 있지만 예선전 과정을 보면 그렇게 말할수도 없다. KIA가 대놓고 철판깔아서 그렇지 다른팀들도 대표팀에 협조하지 않았던건 마찬가지.[미필] [미필] [미필] [미필] [미필] [미필] [미필] [미필] [미필] [미필] [미필] [미필] [18] 실제로는 1999년 대륙간컵 야구대회에서 아마추어로 구성된 대표팀이 당시 대학생 선수였던 정대현 등의 호투로 쿠바 국가대표팀에게 4:3으로 이미 승리한 기록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도 비록 공식 경기는 아니었지만 친선대회 경기에서 쿠바대표팀을 세차례 꺾은 적이 있다.[19] 그리고 4년 후, 이 미국 선발투수는 한국 리그를 씹어먹기 시작했다.[20] 진갑용은 공이 나빴다기보다는 타자가 잘 쳤다고 표현. 이후로 맞은 안타는 이때의 홈런이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21] 후에 윤석민과 진갑용의 회고에 따르면 같은 구종을 선택했던 것이 실수였다고 한다.[22] 이때 중계를 맡은 MBC가 홈런을 맞고 분해하는 와다 츠요시를 클로즈업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23] 실제로 이 경기의 취재를 맡았던 일본 기자의 후기에 따르면 당시 한국이 대타로 김현수를 내보내자 "이게 뭐지?"라며 고개를 갸우뚱 했다고 한다.[24] 사실 KBO에서의 김현수는 2016년에 보는 것과는 다르게 좌투수에게도 상당히 강했고 이 당시에는 오히려 좌투 상대 타율이 더 높을 정도였다.(물론 시즌 하나에다가 좌투로 한정하기까지 하면 표본이 적기는 하지만 10시즌 가까이 뛰면서 쌓은 좌투 상대 타율은 상당히 높다.) 그러다 보니 안그래도 국제대회에서 펄펄 날았고(물론 김현수의 화려한 국가대표로서의 기록은 이 올림픽으로 시작되기는 했다) 김현수를 대타로 쓰기에는 문제가 없었다.[25] 실제로도 대한민국 대표팀은 이 대회에서 이와세를 철저하게 농락했다.[26] 이 기습번트 이전에 1루주자였던 김현수가 기습도루를 성공, 일본팀의 허를 찌른것이 주요했다.[27] 글러브로 타구를 막았는데 뒤쪽으로 높게 튀면서 던지지도 못했다. 내야안타가 될 수도 있었지만 일단 기록은 실책.[28] 준준결승 쿠바, 준결승 일본, 결승 미국.[29] 실제로 보면 타구음이 그렇게 크지도 않았던데다가 카메라 앵글도 처음엔 외야에 머무는 플라이볼 같이 잡혔기 때문에 홈런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허구연 해설도 처음엔 먹힌 (외야로 뜬 공)줄 알았다고 했을 정도. 게다가 이 타석 전까지 이승엽의 타격감을 생각해 보면 넘어가기보다는 잡힐 것이라고 생각하는게 당연할 정도로 공이 높이 떴다.[30] 이 영상의 4:55 지점을 보면 이승엽의 타격 때 중계진이 "큽니다! 큽니다! 큽니다아!!!!!"라고 외친 뒤 홈런임이 확인되자 침묵한다.[31] 이때 중계를 맡은 MBC 중계진의 코멘트와 김동주의 타격장면이 곁들여지면서 재미있는 장면이 연출됬는데; 허구연: "한점만 도망가면 더 편안하죠.", 한광섭 캐스터: "편하지요, 편하지요 (김동주의 타격장면이 보여지며)편해요!!!".[32] 2009년 wbc 결승전에서 5회초, 1사 1, 3루에서 1루 주자였던 아오키 노리치카는 타자 오가사와라 미치히로가 투수 정현욱을 상대로 3구째 삼진으로 물러날 때 2루 도루를 감행했는데, 타이밍은 세이프였지만 오버런으로 인해 손이 베이스에서 떨어지며 박기혁에게 태그 아웃되며 순식간에 3아웃으로 한국의 위기를 종결시켜 주었다. 이에 허구연 해설위원은 이를 "아리가또 아오키"라고 표현하여 깊은 인상을 남겼다.[33] 이건 일본이 한국을 얕잡아봤다는 증거다. 즉, 한국 정도는 쉽게 잡을 수 있으니 결승에 올라올 미국이나 쿠바에 대비해 이들을 아껴놓았다는 뜻. 이건 대등한 실력을 갖춘 지금에도 계속되는 현재진행형이다.[34] 당장 준결승 한국전만 보더라도 너무 성급하게 이른 타이밍에 등판시켰다는 점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 스기우치가 비교적 호투하고 있었고 후에 마운드를 물려받은 나머지 투수들이 선전하고 있었던 점을 보더라도 가와카미나 나루세 중 한명을 1이닝 더 던지게 한 후 8회말에 후지카와를 투입시켰더라면 오히려 확실한 승기를 잡을 수 있었을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성급한 투수기용이었다.[35] 더구나 일본리그에서 앞의 후지카와보다 더 많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는 MBC 허구연 해설의 코멘트를 상기해 보더라도 의아해 할 수밖에 없는 기용이라는 점은 면하기 어렵다.[36] 특히 당시 일본대표로 출장한 미야모토 신야가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서 밝혔다.[37]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69승을 기록 중인 그 투수가 맞다.[38] 대학 리그를 폭격하다시피 한 스트라스버그는 올림픽대표 최초의 대학리그 차출 선수가 되었다.[39] 당시 일본 타자들 가운데 김광현을 성공적으로 공략했던 유일한 타자였으며 일본에서 김광현을 공략하는 특집 프로에서 김광현의 제구력 결여를 먼저 간파해내기도 했다.[40] 실제로 저 축구 대표팀은 남아공에서 전부 이코노미를 타고 귀국했고, 심지어 청문회까지 열렸다.[41] 그런 상황에서 금메달을 땄어도 모르는데 최종성적이 동메달이니...일본이 얼마나 착잡했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다만 한편으로는 이게 최소한 일본의 자존심은 살렸다고 해도 무방한 게 만일 금메달을 땄다면 '한국과 미국이 없어야 금메달 따는 일본'이라는 다른 의미의 조롱을 들을 게 뻔했다.[42] 2000년 시드니에서는 미국이 우승했다.[43] 1982년 김재박의 개구리번트와 한대화의 쓰리런 홈런으로 일본을 꺾고 우승한 세계야구선수권대회가 이름이 바뀐 대회. 하지만 아마추어 대회가 월드컵이란 이름을 쓰는 게 초라하다는 지적이 생기면서 2011년 파나마 대회를 마지막으로 프리미어 12라는 이름으로 아마추어 대회로 개편되면서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명칭이다.[44] 강민호는 퇴장당하면서 분노의 미트던지기를 시전한다. 관련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강민호 문서를 참조.[45] 진갑용은 정대현을 추천하고는 아차 싶었다고 한다. '내가 미쳤지, 실점하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냐'라고 생각했단다.[46] 사실 이 부분은 허구연의 샤우팅이 워낙 커서 한광섭의 중계는 잘 들리지 않는다…[47] 그의 별명 중 하나가 김구리엘이다.[48] 남자 단체 구기 첫 금메달이다. 참고로 여자는 1988 서울 올림픽 핸드볼에서 이미 금을 획득했다.[49] 극소수이긴 하지만 엄연히 여자 야구 선수와 남자 소프트볼 선수도 있다. 일본에서는 아예 여자프로야구도 있을 정도이다.[50] 그것도 FA대박을 2번씩이나 치면서 진갑용과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ㄷㄷ[51] 대한민국 축구가 메달을 딴것이 2012년 런던대회에서였다.[52] 더구나 이 두 팀은 한국시리즈에서의 맞대결을 통해 주가도 높았던 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