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6 10:32:40

롯데 자이언츠/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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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기본 정보 롯데그룹 | 롯데 자이언츠 | 롯데 자이언츠 2군 | 프런트
구단 역사 정보 구단 역사 | 실업 롯데 | 1984년 한국시리즈 | 1992년 한국시리즈 | 1999년 포스트시즌 |
롯데 자이언츠/2019년 | 역대 감독 | 프런트 | 사건·사고 | 트리비아 | 우승 이후 | 엘롯기 | 헬로키티
구단 세부 정보 팀 컬러 | 선수단 | 등번호 | 유니폼 | GIANTS TV | 팀 응원가 | 조지훈 | 박기량 | 안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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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업 야구시절2. 프로 출범 이후3. 1992년 우승 이후 일어난 일들4. 2000년 이전5. 2000년대6. 2010년대
6.1. 2011~2012년: 양승호의 기적6.2. 2013 시즌: 최고 승률. 하지만 가을야구 좌절.6.3. 2014 시즌: CCTV가 불러온 재앙6.4. 2015 시즌: 델동강점기6.5. 2016 시즌: NC 상대 1승 15패, 결국 8위로 마감하다.
6.5.1. 원인
6.5.1.1. 경기 외적인 원인6.5.1.2. 경기 내적인 요인
6.6. 2017 시즌 : 5년만의 가을야구 진출6.7. 2018 시즌 : 롤러코스터 타고 난뒤에 7데가 되다.6.8. 2019 시즌 : 4G의 기적을 쓴 감독 Save 롯데?

1. 실업 야구시절

롯데 자이언트 참조.

2. 프로 출범 이후

파일:external/static.naver.net/1422201022089584.jpg 파일:attachment/giants-v2.jpg
1984년 우승 당시 모습 1992년 우승 당시 모습

1982년 2월 12일 롯데호텔 크리스탈 볼룸에서 박영길 실업 롯데 감독을 사령탁으로 김용희, 노상수, 김성관 등을 주축으로 한 22명으로 선수단을 구성하여 6개 구단 가운데 가장 늦게 창단식을 거행했다.

코치는 김명성 최주억 투수는 김덕열 김문희 노상수 방기만 이윤섭 이진우 천창호 최규옥 포수 차동렬 최순하 내야수 권두조 김용철 김용희 김일환 김정수 이성득 정학수 외야수 김성관 김재상 박용성 엄태섭 정문섭

인기에 비해 실제 성적은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원년부터 이어져왔음에도 불구하고 '리그를 압도하는 강팀'이라는 모습을 보인 해는 없다. 그나마 1999년 2위를 차지했지만 1위 한화보다 투타에서 안정된 전력을 보였다는 것. 이 해가 그나마...압도적인 전력이었다. 심지어는 우승한 년도조차도 드라마틱하기는 했지만 우승 전력이라 꼽히진 않았다.

시즌 전 대다수 전문가는 롯데를 중위권전력으로 점쳤다. 마운드가 약하지만 김용희 김용철 박용성 김성관 김정수 등으로 구성된 타선은 어느팀에게도 뒤지지않는 화력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시즌 출발은 좋았다. 1982년, 해태와의 개막전에서 14-2로 대승을 거두고 OB 삼미를 잇달아 꺾으며 3연승을 내달렸다. 하지만 이후 승리보다 패배하는 일이 더 익숙해지면서 이 해 0.388[1]의 승률로 5위에 그쳤고, 이듬해 1983년에는 믿었던 최동원이 9승 16패로 부진하며 종합순위 꼴찌로 추락했다. 시즌 도중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박영길 감독이 물러나고 강병철 감독대행이 지휘봉을 잡았지만 추락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1984년에는 삼성의 져주기 논란으로 후기리그 우승을 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우승[2], 1985년에도 변함없는 위용을 뽐내며 20승을 거둔 최동원은 1986년에도 OB와 시즌 최종전에서 3대1로 앞서 연속 20승이라는 대기록을 눈앞에 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9회말 김형석에게 동점 2점 홈런을 허용한 데 이어 신경식의 3루타와 실책으로 결승점을 내줘 19승에 머물려야했다.

1988년11월 23일 프로야구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롯데와 삼성이 양팀에이스인 최동원과 김시진을 포함한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롯데에서는 최동원 오명록 김성현을 삼성으로 보내고 김시진 오대석 허규옥 전용권을 받았다. 또 12월 21일에는 김용철 이문한을 보내고 삼성에서 장효조 장태수를 받는 트레이드까지 벌어졌다. 최동원이 사라진 롯데 마운드를 지킨 이는 고독한 황태자 윤학길이었다. 윤학길은 1987년 첫 두 자릿수 승리(13)를 거두며 두각을 나타냈다. 윤학길은 최동원이 연봉싸움으로 이탈한 이듬해 18승10패3세이브를 올리며 일약 롯데 에이스로 발둗움했다. 1989년에도 16승을 올리는 등 1997년까지 구단 내 최다승인 통산 117승을 거뒸다. 승수보다 더 대단한 것은 100완투(74완투승). 1984년 우승 이후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롯데는 1990년 11월 강병철 감독에게 다시 지휘봉을 맡겼다.

그 전 3년간 빙그레 코치로 와신상담한 강병철 감독은 마무리 투수 부재 속에서도 선발 로테이션을 꾸준히 지켜나갔다. 그 결과 윤학길(17승), 박동희(14승), 김태형(11승), 김창수(10승) 등 4명의 10승대 투수가 탄생했다. 타선에는 기존의 장효조, 김민호, 김응국 등에 신인 박정태, 전준호가 가세 하며 짜임새를 갖췼다. 시즌 4위로 7년 만에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만난 삼성에 1승1무2패로 안타깝게 무릎을 꿇었다.

1992년에는 신인 염종석이 17승을 거두고 평균자책점1위(2.33)에 오르는 대활약은 펼치며 롯데 출신으로는 2011년까지 유일한 신인왕이 됐다. 타선에서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남두오성이 빛났다. 박정태(0.335), 김민호(0.322), 김응국(0.319), 이종운(0.314)전준호 (0.300) 등 다섯명의 3할 타자를 배출한 팀타선은 8개팅 가운데 가장 적은 팀홈런 85개을기록했지만 팀타율 0.288[3]을 기록하며 상대 마운드를 무너뜨렸다. 정규시즌 3위로 마감하여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하여,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가 빙그레의 다이나마이트 타선을 상대로 꽤나 드라마틱하게 우승을 차지했다.[4]

공교롭게도 우승할 때의 감독은 강병철이었으며[5], 두 번 다 안경잡이 신인 에이스 최동원염종석을 혹사시켜 우승을 차지했다. 그렇지만 그 이후로 우승다툼에 참가한 것은 2번 뿐이다. 롯데가 한국 시리즈 우승하면 남북통일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점점 롯데로 말미암은 남북 통일이 가까워 지고 있다. 하지만 매미 야구가 지속되는 한....

단일리그 출범 이후[6]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한 적이 없다. 2위도 2011년 창단 30년 만에 최초로 단일 리그 2위를 차지하기 전 까지는 삼성의 전후기 통합 우승으로 끝난 1985년과 양대리그 체제였던 1999년 단 2번 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92년은 3위로 우승, 그리고 99년에는 4위 한화에 밀려서 준우승. 2011년 시즌은 정규시즌 2위를 차지했으나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는 바람에 최종 순위는 3위. 그런데 참으로 공교롭게도 일본의 자매구단인 치바 롯데 마린즈1974년(그것도 롯데 오리온즈 시절)을 끝으로 정규시즌 1위를 한적이 없다(...) 거기다 당시 퍼시픽리그가 후에 초창기 KBO가 본따게 되는 전후기리그제로 운영했기에(1973~1982) 후기리그 우승(전기리그는 2위)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을 거쳐 리그 우승을 거두었는지라.. 그래서 전후기리그제/PO 우승 결정제(2004~2006)가 없는 단일시즌 1위는 무려 1970년이 아지막이다(...)[7]

그에 반해 꼴찌는 8번(1983, 1989, 1997, 1998, 2001, 2002, 2003, 2004) 뒤에서 2등을 4번(1982, 1990, 2006, 2007) 차지해 이 분야에서 대적할만한 팀은 사라진 삼미 슈퍼스타즈 밖에 없는 실정이다. 특히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저지른 4년 연속 꼴등해태(現 KIA), 삼성4년 연속 우승(해태:1986~1989, 삼성:2011~2014)에 버금가는 대기록이다. 이 임팩트로 인해서, 최근 9년간 꼴찌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롯데는 여전히 "꼴데"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참고로 시즌 최다패 타이기록도 가지고 있고[8] 통산 최다패팀(1843패) 현존 팀 최다연패 타이 기록(2002년 16연패)도 가지고 있다.[9] 개막 후 연패 2위[10](2003년, 12연패), 특정팀(삼성 라이온즈)에게 제일 많이 패한 기록도 있다. 특정팀 상대 연패 기록(KIA 타이거즈, 18연패)삼미는 OB 상대로 시즌 전패를 달성했는데 뭐 이것 갖고과 특정 투수 상대 연패(선동열. 20연패. 선동렬은 최동원이 선발로 나온 한경기를 제외하고 롯데를 상대로 져본 적이 없다.)도(…). 간단히 2001년부터의 성적을 요약해 8888577이라는 비밀번호도 가지고 있다. 그외에도 삼성의 성준이라는 최대의 적도 있었다. 그리고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첫 2000패[11]를 달성하며 명문구단의 입지를 다졌다. 그리고 2015년 5월 1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패배를 기록하며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첫 2100패를 달성했다.

2016년 기준 팀 통산 승률이 역대 팀 중 뒤에서 3등인[12] 0.470로 같은 원년팀인 삼성의 통산 팀 승률이 0.564이라는 것과 대비되는 성적을 나타낸다.

3. 1992년 우승 이후 일어난 일들

1992년 롯데의 우승 이후 항목 참조.

4. 2000년 이전

5. 2000년대

요약하자면 처참하다. 신생 구단인 kt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21세기에 한국시리즈를 단 한 번도 진출하지 못했다.[13]

6. 2010년대

6.1. 2011~2012년: 양승호의 기적

롯데는 2011 시즌 개막 1달만에 8위까지 떨어지게 되면서 새로운 비밀번호 시대의 서막을 여는가 했으나, 여름 이후 미친 듯이 각성한 롯데 자이언츠의 대약진으로 2위까지 올랐다. 결국 성적은 우려했던 것 보다 좋은 성적이었다. 더불어 롯데의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도 구단 최초. 게다가 페넌트레이스 2위로 플레이오프 직행을 확정지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SK에게 2승 3패로 패배하면서[14] 최종 순위는 3위로 마감했다.[15][16][17]

2012 시즌에는 시범경기에서 3승 9패인 최하위로 부진했지만, 페넌트레이스에서는 4월 20일자로 단독 1위까지 올라섰다. 단독 1위 후에는 두산과 1위 싸움을 신나게 하였다. 그러다 잠시 중위권으로 내려가다 영남 라이벌인 삼성과 1위 다툼을 치열하게 하였고, 7월 7일 단 하룻동안 상위권으로 되돌아간 적도 있었지만 다음날 패배로 다시 2위가 되면서 삼성에게 1위 자리를 내주었다.

그 이후 다시 두산 베어스와 치열하게 치고박기를 하다가 9월 9일 시점에서 2위 굳히기에 나선 상황이었다. 당시 롯데가 가을야구 걱정할 때가 아니라 20년 만의 우승을 걱정할 때라고 롯데팬들은 설레발을 쳤으나, 결국 롯데는 10월 1일 KIA와 4강 싸움을 하였다. 당시 4위였던 롯데는 9월 29일부터 KIA와 경기를 치렀기 때문에 만약 KIA에게 스윕당하면 5위 KIA와의 승차가 1.5경기차로 줄어들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몰랐었다.

그런데 롯데가 포스트시즌 진출 매직넘버를 0으로 만들고 5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의 쾌거를 이루었다. 이어진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을 3승 1패로 꺾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함으로써 비밀번호를 종결한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차기 라운드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롯데는 이어지는 플레이오프에서 또 SK를 만나서 2승 3패로 패배했다.(X-O-O-X-X), 이땐 3경기째에 2승 1패로 단 1경기만 이겨도 13년만의 코시 진출이였기에 더욱 아쉬웠다.

양승호 감독은 이에 책임을 지고 감독직에서 사퇴했다. 그리고 얼마 뒤 입시비리 혐의로 구속되었다.

6.2. 2013 시즌: 최고 승률. 하지만 가을야구 좌절.

2012년 시즌 종료 이후, 김주찬홍성흔이 각각 KIA, 두산으로 떠나고 감독의 작전들이 모두 호구가 되면서 1위부터 7위까지 롤러코스터를 탔다. 삼성과 LG에게 나란히 제쳐지더니 9월 들어 질주하는 두산과 넥센을 끝내 잡지 못하고 결국 9월 28일자로 가을야구를 6년만에 못하게 되었다.[18]

이 승률도 한화에게 14승2패[19]로 찍어 눌렀기 때문. 그리고 SK와 유종의 미를 위한 5위 싸움 끝에 결국 5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승률은 2012시즌보다는 정작 2013시즌(.532)이 더 높다. 그리고 이는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역대 최고 승률의 가을야구 실패. 그렇기 때문에 이때까지만 해도 롯데가 망한다는 생각은 어느 누구도 하지 않았다. 어찌됐든 5할은 넘었기 때문에 말이다.

6.3. 2014 시즌: CCTV가 불러온 재앙

2014년 시즌 화요일 20경기중 1승 1무 18패(승률5%) 이란 기적적인 승률을 기록했으며 7위로 마감했다. 결국 8888577을 종결한지 7년만에 다시 7데로 돌아왔다.

시즌 후 일본의 복수구단이 장원준을 노린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정말로 장원준이 복귀 1년만에(...) 해외진출을 해버리면 선발진은 더욱 암울해질 전망. 결국 장원준과의 협상은 결렬되었다. 장원준만 붙잡았으면 그래도 전력, 특히 선발진과 타선은 타고투저를 감안해도 제법 괜찮다는 점에서 희망이 있었지만 롯데 팬들은 이것으로 점점 희망을 접고 있다.

거기에다, 시즌 후 감독 선임 문제로 시작되어 터진 프런트의 막장행각으로 인해 구단 내부 및 구단과 선수단 간의 불화가 만천하에 드러나기까지 해, 이로 인한 후폭풍이 팀에 미칠 악영향을 생각하면 더욱 전망이 어두워지고 있다.[20]당연히 이번에도 FA들은 다 놓쳤으며 여기에 최하진 당시 롯데 구단 사장의 세이버메트리션 코스프레[21], 전횡까지 알려져 욕을 먹었다.

김시진 감독이 자진사퇴하고, 4강에 들지 못한 5팀 중 준플레이오프 기간에 KIA가 먼저 선동열 감독 계약 2년 연장을 발표하고(하지만 선동열은 재계약 포기, 2014 시즌 중 LG 감독직에서 자진사퇴한 김기태가 선임된다) SK김용희 감독을, 두산김태형 감독을 선임하고 뒤이어 한화김성근 감독을 선임했다. 하지만 유독 롯데만 새 감독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가 공필성 감독 내정설이 나오고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CCTV 사찰 사건까지 터져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가운데 플레이오프 4차전이 되어서야 이종운 감독이 선임되었다는 발표가 난다. 하지만 팬심은 이종운 감독에게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고, 암흑기를 다시 연장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6.4. 2015 시즌: 델동강점기

시범경기에서 선전하고 4월까지는 승패마진 +2로 선방하면서 이종운 감독의 평가가 좋아지는 듯 했다. 5월 시작하자마자 한화를 상대로 루징 시리즈를 당한 후 SK와 NC를 상대로 연속 스윕 패를 당해 침체되다가 kt 상대 스윕 승을 포함한 6연속 위닝 시리즈로 반등에 성공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러나 6월 들어 귀신같이 연패 행진을 거듭하며 순위가 8위까지 떨어졌다. 게다가 이 시기에 위닝시리즈 하나 못가져갔고, 이승엽에겐 400호 홈런을 허용, KT에겐 구단 최초의 피스윕 팀이 되었다. 게다가 6월 한 달간 성적도 10개 구단 중 꼴찌, 9위 LG와 0.5 게임 차로 추격당하며 6월을 마감해야 했다.

그리고 7월 14일 한화에게 패배하면서 기어코 9위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아직 꼴찌 kt 위즈가 시즌 초반 연패를 거듭하면서 바닥 수준의 전력을 보여줬지만, kt가 6월부터 제대로 된 프로야구 팀의 실력을 발휘하는 탓에 kt와의 게임차는 10경기 내외에서 점점 좁혀지고 있는 상황. 만약 kt에게 역전당하는 사태라도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무관중 운동이 시전될 가능성도 높은데다가 최근 롯데家 소송 분쟁으로 한창 시끄러운 가운데 기업 이미지 자체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된다. 당시 부산에서도 롯데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걸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8월 사이 한화, 기아, SK가 모두 하향세를 타버리면서 그 사이 롯데는 9월 5일 현재 5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결과론적으로 현재 5강 티켓의 마지막 주인공은 개싸움이 된 상황.

그러나 다시 도로 내려갔고 결국 9월 30일 트래직넘버가 0이 되면서 가을 야구 탈락 확정이 되었다. 그리고 10월 2일 패배하면서 최종 순위는 8위가 되었다. 팀 수가 10개로 늘어났으므로 꼴찌는 아니지만 어쨌든 11년만의 8위.

여기에다가 시즌 후 2015 프리미어 12 기간 전에 손아섭황재균이 모두 MLB포스팅에서 모두 0원이 나와버리면서 각 구단들의 비웃음을 샀다. 반면 김현수는 그 해 두산의 우승으로 우승 팀 프리미엄까지 받고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이적하는데 성공했다!

그 외의 내용은 롯데 자이언츠/2015년, 이종운, 이종운/평가 문서를 참조.

6.5. 2016 시즌: NC 상대 1승 15패, 결국 8위로 마감하다.

제리 로이스터 거르고 조원우

NC를 제외한 상위팀들이 모두 전력 약화가 되면서 1~2팀 정도 가을야구가 물갈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윤길현, 손승락을 영입했는데, 가을 야구의 가능성이 충분히 보인다.
모 기사에 따르면 3강-4중-4약 중 4중에에 속한다고 한다.

7월 14일 전반기가 종료된 시점 롯데는 39승 43패(승률 .476)으로 5위이며 4위 SK와는 2.5게임차, 6위 KIA와는 1게임 차[22]로 가을 야구의 희망을 이어나가고 있었으나....

머지 않아 DTD가 시작되었다.

일단, 7월 마지막 주 엘 꼴라시코에서 루징이 나온 이후 KT 원정에서 스윕을 당했다. 그리고 여기서 족발게이트가 터져버리면서 팀 분위기가 뒤숭숭해지게 된다. 이후 강팀인 두산-넥센과의 홈 6연전에서 3승 2패로 선전했다.넥센전 1경기는 우취되었으며 1승 1패를 거두었고 두산에게 위닝시리즈를 거두었다.

헌데 그 이후 2연전 체제로 재편되면서 이 기간 동안 투수진은 더 무너지고, 타격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강민호와 맥스웰이 부상으로 빠진데다가 김문호가 대타자모드에서 대타 모드가 되어버렸다. 하는 수 없이 로 시즌을 운영해나갔다. 그러다가 8월 4주차에서 KT전 1승 1패 이후 두산 원정에서 결국 우취가 떠버려 이기고 있던 경기가 날아가면서 1패만 추가해버렸고, 대구 원정에서도 우취 1경기 제외하고 다시 1패를 추가, 결국 8월 29일 기준 삼성과 승차 없는 8위에 랭크되어있는 상황이다. 이러는 와중에 감독은 전준우를 제대하자마자 복귀시키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 만에 하나 FA를 오프시즌 도중 영입하게 되면 보상 선수를 묶을수 있는 폭이 좁아져 현재 많은 팬들이 우려하고 있다. 멀리 안 가고 이런 식으로 선수 보호를 대충 처리한 한화에서 박한길최영환을 데려왔다. 그리고 진짜 전준우와 같이 제대한 신본기, 김사훈까지 등록하면서 현실이 되었다.

결국 10월 02일 NC에게 지면서 가을 야구 탈락을 확정지었다.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이미 기아가 kt를 이겨서 롯데의 트래직넘버가 소멸되었다. 가관인 건 NC와의 전적이 무려 1승 15패라는 것.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시즌 압도적 1위였던 두산에 유일하게 열세를 면한 팀이 바로 롯데다. 그러나 시즌 마지막 대결에서 승락극장이 개봉하여 결국 두산에게 한 시즌 최다 승(92승)을 선물해주고 말았다.] 같은 엘롯기 멤버인 LG와 기아가 가을 야구에 진출, 그것도 와일드카드전에서 맞대결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충격적인 결과. 게다가 이번 시즌을 앞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가장 가을 야구가 유력했던 팀은 롯데였다. LG와 기아는 이번 시즌은 리빌딩 모드로 가기로 해 큰 기대가 되지 않은 데다가 롯데의 작년 투타 밸런스는 괜찮았으나 델동님이 말아드셔서 망했기 때문에 새 감독 하에서는 잘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기 때문. 뭐 결과는 잘 알다시피...

결국 시즌 최종전인 10월 09일 넥센전에서 이기게 되면서 작년에 이어 최종 8위를 확정짓게 된다. 결국 5788 생성.

그 외의 내용은 롯데 자이언츠/2016년, 조원우/2016년 참조.

6.5.1. 원인

6.5.1.1. 경기 외적인 원인
가장 큰 원인은 역시 프런트에 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2014년 시즌부터 일부 코치들끼리의 권력 쟁탈전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특히, 2013년 시즌 당시 벌어진 20승 투수강민호 이전의 안방마님의 다툼으로 인해 최기문 코치는 NC 다이노스로 가버렸으며, 2014년에는 CCTV 사건의 방패막이였던 권두조 수석코치와 공필성 코치 역시 문제가 있었다. 결국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CCTV 사찰 사건으로 대표되는 프런트의 병크가 안습한 성적의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는 평이 많다. 그 결과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롯데 자이언츠는 CCTV 사찰 사건이 터진 2014년에 FA 선수들을 단 한 명도 단속하지 못했다. 여기에 2015년 손아섭황재균의 잇다른 메이저리그 진출 선언 또한 롯데를 탈출하기 위한 시도로 보는 해석이 많다.

하지만 2016년 족발게이트 사건 이후로 벌어진 DTD로 인해서, 이제 롯데 팬들은 락커룸의 분위기가 놀자판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 상황이다. 홍성흔, 이대호와 같은 베테랑들이 떠난 이후 무게를 잡아줘야 할 일부 고참들의 자기 관리 부실로 인해서 선수들에 대한 팬들의 신뢰가 떨어지고 있는 것은 덤이다. 특히 이는 승부처 시에 벌어지는 엉성한 수비와, 자이언츠 타자들의 득타병 성향 등과 맞물려 더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2016년 시즌 홈경기 승차가 41승 31패로 +10이지만, 원정 경기 승률은 25승 47패로 -22이였다. 게다가 원정 성적 승률은 2015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추락한 상황이다.
6.5.1.2. 경기 내적인 요인
그러나 이것은 엄연히 외부의 사정이고, 실질적으로 감옥님 시절 이후 불펜 혹사 및 불펜에 대한 잘못된 투자가 주 원인이다. 실제로 이명우, 임경완, 김사율 등을 무리하게 썼고, 이 혹사가 김시진 때 절정에 달하는 바람에 김성배, 김승회와 같은 투수들이 14년 8월부터 줄줄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불펜진이 순식간에 붕괴된 것도 한 몫 하고 있다. 그나마 이정민 선수는 혹사의 틈바구니에서도 묵묵히 제 몫을 했었다.

그렇다고 불펜 FA가 잘했냐고 물으면 그것도 아니다. 정대현의 경우에는 이적 후 부상으로 인해 눕는 기간이 더 많았으며 2016년에는 아예 몰락해버렸다. 작승호의 경우는 2012년 활약이 미진하여 NC로 넘겨졌고, 결국 NC에서 연봉 도둑으로 각성해버렸다. 윤길현의 경우 족발게이트 이후 완전히 몰락했으며, 손승락의 경우 아직까지 나쁘지는 않지만 먹은 돈이 크다보니 문제. 이렇게 불펜진이 붕괴된 상황에서 땜질 처방을 할려다보니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두번째, 2014년 장원준의 두산 이적 이후, 현재 자이언츠는 선발 투수 용병의 의존도가 굉장히 높은 팀이 된 상황이다. 멀리 볼 것 없이, 2016년 9월 30일 기준 레일리의 WAR는 3.91, 린드블럼의 WAR는 2.85이다. 이에 반면 토종 선발진[23] WAR의 합은 3.64로 평균으로 따진다면 1.0도 되지 않는다. 여기에 4월 이후 급격하게 무너진 이성민과 16 시즌 먹튀화가 된 송승준까지 계산한다면 아예 승수기여도가 -대로, 이 둘의 WAR 합은 -0.49이며, 6인 총합이 3.15으로 평균 0.53에 불과하는 수준이다. 또한, 이마저도 박세웅이 1.99로 하드캐리해서 나온 수치다. 더하자면 앞에 말한 장원준은 혼자 4.65를 찍고 있다(...) 당장 주형광 코치와 옥스프링 코치가 2군 육성에 힘을 기울이고는 있으나 리빌딩에는 시간이 걸리는지라...

세 번째로는 전성기에 취해 있던 나머지 제대로 된 백업 멤버를 육성하지 못한 부분에 있다. 각 포지션 별로 사례를 살펴본다면 이렇다.
1루수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박팡야 선생 되시겠다. 그나마 이 부분은 김상호가 2016년에 혜성처럼 등장해서 문제가 해결될 듯 하다. 단, 그 김상호도 1루수 평균 OPS에는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이 함정. 그러나 이대호의 복귀와 채태인 영입으로 연명하는 중.
포수 강민호 선수가 부상 당했음에도 안중열, 김준태 같은 백업 포수들이 있어서 해결되긴 했다. 또 2017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나종덕이라는 포수를 지명함으로써 포수 자원은 넘치게 되었다. 하지만 강민호의 이적으로 넋 놓고 있던 롯데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 나종덕은 1군 경험이 거의 없고, 안중열은 부상으로 복귀 시점도 알 수 없는 상태, 강동관은 감감무소식, 김준태는 군 복무 중으로, 강민호의 보상선수인 나원탁과 기존 자원인 김사훈, 나종덕이 해결해야 될 일이 많아졌다.
2루수 조성환의 은퇴로 정훈이 주전이 되었는데, 정훈 이외에 특출난 멤버가 거의 없어 공, 수 양면에서 실력이 퇴보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2016 시즌 김동한이 투입되었다. 이여상은 2017시즌 퇴출당했다. 일단 앤디 번즈가 들어오게 되어 정훈 자리는 다소 위태로워졌다.
3루수 황재균의 공백으로 오승택을 기용했으나 수비가 엉망. 결국 트레이드 되었다. 이대호의 복귀로 김상호가 3루를 잠시 하는가 했으나 17시즌의 컨디션 난조로 주로 2군에 머물렀다. 손용석은 17시즌 은퇴를 선언해서 벌써 코치가 되었다. 2017시즌엔 황진수, 신본기, 김동한, 김민수 등 다양한 내야수들이 컨디션에 따라 기용되었다. 2018시즌엔 신인인 한동희와 그 외의 내야수들이 3루를 맡을 예정.
유격수 신본기문규현, 그리고 김대륙....
김문호, 전준우, 손아섭, 박헌도, 나경민민병헌, 이병규의 투입으로 다른 포지션에 비해 풍요로운 자원 구축 완료. 와중에 이우민은 은퇴를 선언했고, 김민하는 방출 후 한화에 입단하였고, 김재유는 군입대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 144경기를 모두 버텨내기란 매우 힘든 일인 상황이다.

6.6. 2017 시즌 : 5년만의 가을야구 진출

일단 홍성민김준태는 내년 시즌에 군 입대 관계로 없을 예정이다. 여기에다가 2016년 11월 7일, 이성민프로선수로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했음이 확인되어 선수 생명이 끝날 위기에 몰렸다. 그렇잖아도 허약한 불펜의 부담이 더더욱 가중화될 듯.

황재균이 1월 23일 부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타선이 거의 최약체가 될 수 있었지만, 다음 날 이대호가 롯데로 컴백을 하면서 일단 큰 위기는 면할 수 있게 되었다.

7월 초에는 무려 1,099일만에 NC 다이노스를 스윕하였다. NC와의 총 상대전적은 6승 6패로 작년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기아 상대로 1승 8패를 기록하고 있는 부분은 반드시 고쳐야 할 것이었는데, 7월 4째주 주말 3연전에서 광주 원정을 스윕하면서 4승 8패까지 올렸다.[24]

전반기까지의 모습은 가을야구와 거리가 다소 멀었다. 김원중, 박진형[25]의 선발진의 성장이 더딘데다가, 윤길현은 기아전만 되면 불지르고 있고,[26] 신본기, 문규현, 정훈, 앤디 번즈 등의 내야 자원이 부상과 부진에 빠진데다가, 레일리는 부활했고 애디튼은 배팅볼 투수짓 하다가 전반기 막판에 살아났지만 린드블럼으로 다시 교체 되었다. 게다가 이대호는 6 ~ 7 월들어 급격하게 득병이 되어버리면서 심각하게 욕을 먹는 중이다.[27] 일단 전반기를 41승 44패 1무 승패마진 -3으로 7위를 기록하며 마쳤다. 4위권과는 4~5경기 차이이니 그 사이에 차이를 얼마나 좁힐수 있으냐가 관건이 될 듯 하다.

그러나 그 사이 치고 올라가면서 8월 18일, 4, 5위인 LG, 넥센과 게임차는 단 0.5게임차까지 좁혀졌고. 같은날, 롯데가 넥센을 잡고 4위를 탈환했다. 참고로 5위는 LG.

8월 31일 이제 NC와 마지막으로 붙게 된다. 이번 시리즈 결과에 따라서 손시헌이 억울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3위 싸움을 할지 다시 내려갈 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일전이 될 상황이다. 결국 NC와의 마지막 두 경기를 이기면서 8승 8패도 아닌 9승 7패로 롯데의 우세로 끝났다.

9월 17일 SK 와이번스를 스윕하면서 드디어 포스트시즌 매직넘버를 1로 줄이면서 다음 경기만 이기면 무조건 순위결과에 상관없이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짓게된다. 그리고, 9월 21일 LG가 삼성에 패해 자력진출이 좌절되면서 롯데는 5년만에 가을야구를 확정지었다. 그리고 10월 3일, 3위의 고지에 오르게 되어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롯데에게 찾아왔...으나 NC 다이노스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에서 한 선수의 실책으로 9-2로 지고, 이후 승-패-승-패를 해서 2승 3패로 탈락하고 말았다. 말그대로 2011년 플레이오프의 재림이 된 것이다. 경험 부족이 가져온 아쉬운 결과인 것이다.

참고로 롯데의 후반기 성적은 80승 62패 2무로였다, 특히 후반기 한정으로 무려 39승 18패 1무를 기록하면서 후반기 승률은 6할 6푼에 근접했다.

6.7. 2018 시즌 : 롤러코스터 타고 난뒤에 7데가 되다.

한편 롯데는 지난 2년 동안 288억을 투자한 탓에[28] 이들을 모두 잡기는 매우 힘들고,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연봉 총액의 증가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잡아야 하지만, 최대어인 손아섭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했는데, 결국 4년 98억에 재계약을 하면서 일단 한 고비를 넘겼다. 그리고 강민호가 타 팀으로 이적하면서 2018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에서 괜찮은 수비형 포수를 구해오는 것 역시 필요한 과제였는데, 강민호의 보상선수로 나원탁을 지명하면서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문규현을 2+1년, 10억에 잡으면서 일단 유격수 구멍을 최소화했다.

한편 군 제대 자원으로 투수로는 최영환, 이인복, 구승민 타자로는 내야수 자원인 오윤석이 새롭게 합류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 해 시즌 말미에 홍성민김준태가 드디어 돌아온다.

신인인 윤성빈이승헌도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11월 28일 민병헌이 영입되면서 중상급 외야진을 구성하게 되었으나 오프시즌 도중 12월 13일 SBS 유영민 기자의 보도로 조쉬 린드블럼의 계약서 파동이 터지면서 꼴런트는 무지막지하게 까였다. 결국 대신에 2013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우승 멤버이기도 했던 펠릭스 듀브론트를 새로 영입하면서 일단 구멍을 메웠다. 그러나 듀브론트의 경우 몸관리, 워크에씩 면에 문제가 있다는 평이 전 소속팀 보스턴, 오클랜드 팬들 사이에서 나오는 중.

그리고 개막전부터 경남고 출신 신인 3루수 한동희가 데뷔 첫 적시타를 기록하며 기대를 높이고 있다.

강민호는 놓쳤지만 그야말로 돈을 들이붓는 FA 지출과 KBO 페이롤 2위 팀[29]이라는 점으로 인해 여러 전문가들도 5강 멤버에 롯데를 놓을 정도로 희망적인 전망이 점쳐졌으나...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투타의 난조[30], 불안한 수비로 인해 6연패를 기록하며 단독 꼴찌를 차지했다. 롯데가 보인 한심한 경기력으로 인해 경기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롯데자이언츠 해체 청원이 올라왔을 정도. ???: 야! 그러면 작년에 6연패한 우리는 뭐가 되는데?[31]사실 26년 전에 이미 답변했다고 한다.

4월 6일 기준 2018년 첫 엘꼴라시코 이후 1승 10패로 1할 승률도 붕괴되었다. 역대 KBO 역사상 이런 초반 승률로 가을 야구를 한 팀은 전무하다. 총체적 난국의 경기력에 개선해야 할 부분을 굳이 꼽기도 힘들 지경. 그냥 꼴데 그 자체다. 오죽하면 롯데 팀 전체에서 손아섭만 야구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 하지만 4월 10일~12일 넥센전에서 첫 위닝 시리즈를 가져가고 13일 현재 5승 12패까지 오르면서 조금씩 반등을 보이고있다. 그리고 4월 24일부터 6연속 위닝시리즈(중간에 1승1패 시리즈 1번)를 거두며 5월 14일 기준으로 승패마진 -1까지 줄이고 4위에 위치해 있다. 여러 모로 2009시즌과 비슷한 시즌인데 오랜만에 가을야구 진출한 다음 시즌 초반에 꼴찌에 몰려있다가 반등하는 점이 비슷하다.

다시 5월 하순에 또 3월 초반의 승패 재림이 일어나서 하위권으로 떨어졌는데, 또 6,7,8월에 승패마진을 채우다가 또 1승 10패로 무너지고 다시 9승 2패로 또 마진을 채웠고, 마침내 5위 KIA와 승차없는 6위까지 쫒아왔다. 하지만 kt에게 2연패함으로써 1.5게임차까지 벌어졌고, 결국 KIA를 상대로 3승 혹은 2승 1무를 해야 가을야구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첫 경기에선 이겼지만, 그 뒤에 1승 1패를 해서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고, 마지막 경기에서도 패해서 7데가 되었다.

6.8. 2019 시즌 : 4G의 기적을 쓴 감독 Save 롯데?

제대로 말아먹고있다
[1] 삼미만 아니였으면 최하위였다. 2005년 KIA의 승률이 0.389였던 것을 보면 답이 나온다.[2] 게다가 1984년 시즌 리그 통산 성적은 4위에 불과하다. 하지만 전설의 무쇠팔의 맹활약 덕분에 5할은 넘겼다.[3] 당시에는 역대 2위, 현재는 역대 4위, 1위는 1987년 3할을 기록한 삼성[4]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92 롯데와 01 두산, 15 두산에서만 나온 기록이며, 일본의 경우도 10 지바롯데에서 사상 최초로 나온 기록이다.[5] 상대 팀 감독도 공교롭게도 김영덕 감독이었다.[6] 전후기 리그 체제에서는 84년 후기리그 1위를 했다.[7] 그것도 이 당시엔 구단주가 아니라 네이밍 스폰서였다. 1970년 시즌 종료 후 롯데는 정식으로 구단을 매입하여 구단주가 되었다.[8] 2002년 97패. 그 안습의 1999 쌍방울과 타이기록.[9] 역대 팀별 성적으로 따져도 공동 3위. 1위는 1985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18연패, 2위는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17연패. 그나마 KIA와 공동 타이 기록을 작성.[10] 안습의 13한화가 13연패로 그 기록을 10년만에 깨주었다.[11] 2013년 8월 1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달성. 기사.[12] 팀 승률 꼴찌는 kt wiz(0.368), 2위가 쌍방울(0.410).[13] 20년내내 epl 우승 못한 팀이랑 롯데랑 누가 먼저 우승할 지에 대해 이야기가 많다[14] 패-승-패-승-패, 참고로 6년 뒤인 2017년 준PO때도 NC를 상대로 이 구도를 만들었다.[15] 최종 2위팀으로 기록되는 팀은 한국시리즈 준우승팀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플레이오프에서 진 팀이 3위라고도 할 수 있으나 정규시즌 4위로 준플레이오프를 이겨서 플레이오프로 간 팀은 져도 3위가 안 된다. (결국 정규시즌 2위나 3위만 최종 3위가 될 수 있다.)[16] 2008년에는 최종 순위가 3위였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게 스윕당해 최종순위는 4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준플레이오프는 최종순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것은 3위에게 주어지는 약간의 어드벤티지. 그러나 만약 2008년에 삼성이 두산을 이기고 한국시리즈에 올라갔으면 롯데의 최종순위는 4위였을 것이다. 한국시리즈 진출 후 패배한 팀이 2위이기 때문에.[17] 이 시기 롯데 구단 직원 출신인 김태룡이 두산 단장으로 부임하여 롯데에 유리한 것으로 의심되는 선수이동을 많이 해서 두산팬들에게 까였는데 정작 두산 구단은 김태룡이 입사한 1990년부터 그가 롯데에 있을 때(1983~1989)보다 우승을 많이 했다. 그리고 꼴태룡이 되었다[18] 다만 13시즌에는 시즌 최하위 팀이 대놓고 개그를 선보여서(...) 승률 5할 3푼 2리를 찍고도 5위를 한 것이다.[19] 여담이지만 한화와의 마지막 맞대결에서 승리했지만, 넥센LG를 잡으면서 가을야구에 실패했다.[20] 이 사건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국회의원까지 나서서 사법처리까지 촉구할 정도로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이다.[21] 이문한 전 운영팀장이 공개한 카카오톡 캡쳐에서도 야알못이 훈수 두는 수준으로 세이버메트리션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데, 진짜 세이버메트리션을 둔 팀 프런트는 별도 데이터팀을 두고 통계, 수학 및 야구 전문인력을 영입해 현장의 의견을 신중하게 듣고 분석한다.[22] 당시 LG는 중하위권이었다.[23] 박세웅 + 박진형 + 노경은 + 박시영. 이 중 박시영이 선발 등판한 경기는 딱 1경기다. 경기의 대부분을 중간계투로 등판했다.[24] 그리고 NC는 이후 기아와의 전반기 마지막 3연전에서 스윕을 당하며 3위로 추락했다가 이후 DTD로 인해 두산과 3위 싸움을 하게 된 상황이다![25] 결국 후반기 불펜으로 전환.[26] 사실 다른 투수들의 사정도 좋지만은 않다. 박시영의 경우 경기를 많이 뛰어서 구위가 많이 죽었으며, 손승락은 잊을때만 하면 가끔 블론이 나온다. 배장호는 패는 없었지만 6월 14일 경기 첫 패를 떠안았다. 그나마 롱 릴리프로 뛰고 있는 강동호김유영이 잘해주고 있는 부분은 다행인 상황.[27] 9월 3일 경기에서 31호포를 쳐내면서 일단 30홈런-100타점은 성공했다. 3할 유지 여부가 관건.[28] 이대호 150억 + 손승락 60억 + 송승준 40억 + 윤길현 38억[29] 2017년 KBO에서 발표한 자료 기준으로, 신인선수와 외국인선수는 계약금, 환율 등의 영향으로 인해 제외되었다. 연합뉴스 기사에서는 외국인선수와 신인선수를 제외한 연봉총액 1위가 KIA, 2위가 롯데라고 명시되고 있는데, 이건 이대호, 민병헌, 손아섭의 영향이 크다.[30] 홈런이 안 터지다 보니 오죽하면 강백호 선수와 김롯데 선수가 2018년 최다홈런 경쟁에 들어갔다는 농담도 돌았다. 민병헌의 경우 두산 재적시 월별 타격지표가 극과 극을 달렸다는 지적도 있었다.[31] 결국 이 국민청원은 부산일보매일신문로 떴다. 그런데 삼성 텃밭인 매일신문 기사가 더 자세한 건 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