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9 14:04:03

김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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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1983 1984 1985 1986~1988 1989~1990
배대웅 천보성 함학수 장효조 박승호
1991~1992 1993~1994 1995~1996 1997 1998
김용국 강기웅 이종두 류중일 양준혁
1999 2000 2001 2002~2003 2004~2008
류중일 김기태 김태균 김한수 진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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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만 강봉규 진갑용 최형우 박석민
2016 2017 2018 2019~
박한이 김상수
박해민(임시 주장)
김상수 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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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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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2 200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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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1999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2001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2002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2003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2004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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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KBO 페어플레이상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0번
박철수(1992~1993) 김한수(1994~1995) 박근영(1997)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5번
김종국(1993~1995) 김한수(1996) 양용모(1997~1998)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번
김성래(1984~1996) 김한수(1997~2008) 조동찬(2009~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6번
한대화(2004~2009) 김한수(2010~ )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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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한수 감독.jpg
삼성 라이온즈 No.86
김한수(金翰秀/Kim Han-soo)
생년월일 1971년 10월 30일 ([age(1971-10-30)]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동작구[1]
학력 서울강남초 - 신월중 - 광영고 - 중앙대
십이지 돼지띠
별자리 전갈자리
신체 186cm, 90kg, B형
포지션 3루수 (1994년~2005년 시즌 초반)[2]
1루수 (2005년 시즌 중반~2007년)[3]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4년 2차 1라운드 지명 (전체 8번,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94~2007)
지도자 삼성 라이온즈 2군 타격코치 (2008)
삼성 라이온즈 2군 수비코치 (2010)
삼성 라이온즈 1군 타격코치 (2011~2016)
삼성 라이온즈 감독 (2017~)
응원가 실로암[4][5]
종교 불교
1. 개요2. 선수 시절
2.1. 연도별 성적
3. 지도자 시절4. 여담

1. 개요

대한민국야구선수 출신 감독. 2017년부터 삼성 라이온즈 감독을 맡고 있다.

광영고와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1994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2007년에 은퇴할 때까지 줄곧 삼성 라이온즈에서 뛴 프랜차이즈 선수다. 현역 시절 라이온즈의 원조 소리없는 강자로 유명하며 지금은 박한이가 김한수의 기믹을 물려받았다. 심지어 FA 총액마저도 28억원으로 같다...[6]

주 포지션은 3루수. 2008년 4월 30일 은퇴식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2008년에는 2군 코치로 활동했다. 등번호는 50번-25번-5번 순이며 코치 시절에도 1년간 5번을 달았지만[7],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코치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2010 시즌에는 86번으로 등번호를 바꾸게 된다.

2016년 10월 15일 자로 류중일 감독의 뒤를 이어 삼성 라이온즈의 제14대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삼갤, 엠팍 등에서는 류중일 감독의 재계약 불발에 아쉬워하면서도 다른 감독보다는 차라리 김한수가 제일 낫다는 평가. 사사방에서는 1군 감독이기 때문에 깔 예정 여담으로 찬물옹이라는 별명에 따라 감독으로서의 별명은 냉동님, 찬동님이 되었다.

류중일도 그렇지만 김한수 역시 삼성 원클럽맨으로 활동한 삼성의 진골 프랜차이즈 선수이다. 게다가 둘 다 내야수 출신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출신지몸담은 팀의 연고지가 다르다는 것, 그리고 현역 선수 시절의 우승 경력 정도로, 류중일은 현역 시절 우승 반지를 껴보지도 못하다가 코치가 되고 나서 첫 우승반지를 껴봤고, 김한수는 선수 시절 3 우승을 경험하고 코치가 되고 나서 3 더 경험해봤다.[8]

2. 선수 시절

삼성 라이온즈에 지명받기 전까지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졸업한 서울 토박이다.

서울 동작구에서 태어났다. 상도동에 있는 서울강남초등학교에 진학하여 5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이후 양천구 신월동 소재 신월중을 거쳐 역시 신월동 소재 광영고를 졸업하고 중앙대에 진학했다. 중앙대 야구부 시절 우상 장종훈을 만나 많은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파일:/image/295/2008/04/02/ba_04.jpg
현재윤?

파일:external/img.imnews.imbc.com/kimhansoo1_600.jpg

김진영삼미 슈퍼스타즈 감독과 김경기 SK 와이번스 2군 감독 부자(父子)와 더불어 KBO 리그의 대표적인 부자 야구스타로 유명했다. 김한수의 아버지인 故 김영복 前 농협 야구단 감독은 1950년대 등번호 5번을 달고 실업야구를 주름잡았던 명 3루수 출신의 야구인이었다.[9] 아들인 김한수도 대를 이어 3루수를 맡았고 현역 시절 등번호도 아버지와 같은 5번을 달았다.[10]

강남초등학교 5학년 때에 야구를 시작했으며, 장종훈을 존경했다고 한다. 또한 양준혁과 마찬가지로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할 뻔한 에피소드가 있었다.[11]

핫 코너의 본좌, 김성래 - 김한수라는 삼성의 5번라인 중 한 명. 한때 김종훈과 함께 삼성 가을야구의 쌍두마차로 역임을 했다. OB 베어스 - 두산 베어스안경현 - 장원진에 뒤쳐지지 않는 최강의 쌍두마차로 꼽히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1995년 유니폼의 전성 시대를 이끌었던 3김 타자 중 한 명이다.[12] 단 나이로 보나 커리어로 보나 인지도로 보나 가을에만 강하고 커리어 상 주전에는 한끗 못미친 둘보다 김한수가 한 수 위다.

주전 3루수였던 김용국태평양 돌핀스로 트레이드 되자, 우용득 감독은 3루수 후보로 김한수를 낙점했다. 또한 그 뒤를 받칠 김태룡이 수비로는 나무랄 데가 없었으나 워낙에 타격이 빈약했던지라 김한수는 신인시절부터 주전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1995년과 1996년 사이 방위병으로 복무하게 되여 반쪽짜리 선수가 되었고[13], 부상으로 시즌을 통째로 쉬기도 했다. 1997년 방위병에서 소집해제된 후 백인천 감독 아래에서 본격적인 두각을 나타냈는데, 당시 이승엽-정경배-김태균-김한수로 이어지는 삼성의 철벽 내야진 라인업으로 종횡무진하며 맹활약하기 시작한다.

끊임없이 트레이드 떡밥이 나돌던 선수. 원래는 조계현과 현금이 아닌 김한수가 트레이드 될뻔했다는 설이 있었고[14] 2000년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어 최대어로 떠올랐던 홍현우가 만약 삼성으로 갔으면 김한수는 벤치워머 신세 내지는 자동적으로 팀 이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지만 삼성 프런트진들은 김한수를 믿고 홍현우를 포기했다는 일설이 있다는데 1999시즌은 김한수 개인적인 커리어 하이였지만 99시즌은 역대급 타신투병 시즌이였는데다가[15] 김한수가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게 군복무를 마치고 98년도부터로 이 당시에는 별로 보여준게 없었다. 그래서 2000년에 상당히 부진했을때 만약 FA로 풀렸던 홍현우가 왔으면 벤치워머가 될 수도 있었다. 어쨋든 3루수 홍현우의 공격력이 워낙 좋았던데다가 홍현우는 1990년대 누적 WAR 1위를 할 정도로 보여준게 있었다. 그러나 밀리긴 밀리더라도 2루 정경배가 먼저 밀렸을 가능성이 높다. 정경배가 나름 꾸준한 활약을 이어줬다고 하나 꾸준히 선발출장해주는 수준이였지 2루 홍현우랑 비교하기 민망한 수준의 공격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홍현우가 2루로 간다고 해도 정경배가 밀릴 가능성이 높았다.[16] 게다가 홍현우는 이종범이 일본으로 간 뒤로 정성철이 유격수를 보는 대신 가끔 유격수로도 뛰었다. 즉, 내야 아무 포지션이나 뛸 수 있는 선수가 수비, 타격 그리고 주루 역시 수준급이였기 때문에 데려왔으면 어떻게든 쓰일 수 있었지만, 그냥 삼성이 FA로 영입을 안 했고 이것이 신의 한수가 되었다.[17] 그리고 홍현우는 당시 삼성 못지않게 FA에 돈을 많이 투자하던 LG로 갔다. 그리고 망했어요...

비슷한 시기에는 두산 베어스김동주와도 트레이드가 이루어질 뻔했다는 이야기도 있고[18] 이후 주전 3루수를 찾던 롯데와 KIA의 요청으로 트레이드 될 뻔했던 일화도 있었을 정도로 트레이드 떡밥이 많던 선수였다. 하지만 김한수의 경우 수비가 괜찮은 수준이였고 2000년 한 해만 폭망했지 한 5년간은 꾸준히 타율 0.280, 15홈런 정도를 쳐줬던 선수였던데다가 WAR 2~4 정도 찍었을 정도로 준수했기 때문에[19] 은퇴할 때까지 삼성이 붙잡고 있다가 확연히 성적이 떨어진 2006년을 기점으로 밀려난다.

2004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고, 한 때 삼성과 협상이 결렬되어 팀을 떠날 위기에 처했으나, 우선 협상 마지막 날 4년 총 28억원(계약금 10억원, 연봉 4억원, 옵션 2억원)에 삼성과 계약하였다.

이후 2005년 선동열 감독이 부임한 뒤 골든글러브 유격수 출신 박진만이 FA로 합류하고 전년도 유격수를 맡던 조동찬이 3루수로 가게 되었고 이미 30대 중반에 나이에 접어든 김한수는 자동적으로 1루수로 전향하며 10년간 정들었던 3루수를 포기하게 된다. 1루수 전향 첫 해인 2005년에는 타율 0.298에 15홈런으로 괜찮은 모습을 보였으나 2006년부터 노쇠화가 시작되며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한 때 KIA 타이거즈와 트레이드설도 있었다.[20] 결국 2007 시즌 후 은퇴, FA 계약기간이 1년 남아 있던 2008년에는 마이너스 옵션 5천만원을 삭감한 금액인 3억 5000만원의 잔여연봉을 받으며 2군 플레잉 코치로 뛰었다. 은퇴식은 3월 30일 대구 KIA전에서 열렸으며, 삼성 선수 출신 은퇴식은 류중일-김현욱 이후 3번째였다.

현역으로 뛰던 당시 수비만은 국내 정상급의 3루수였으며 언제나 안정된 수비로 김태균, 김재걸과 더불어 삼성의 철벽 내야진 구축에 일조했다. 김한수의 폭풍간지같은 수비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일품이다.[21] 골든글러브 3루수 부문 경쟁에서 김동주가 밀렸으나[22] 이는 실력과 성적으로 보면 공평한 평가라고 보기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한국 프로야구 3루수 골든 글러브의 계보는 한대화-홍현우-김한수, 김동주-최정으로 볼 수 있으나 성적으로 보면 김한수는 저기에 끼일 선수가 아니다. 김동주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할만도 한게 김동주는 커리어 내내 김한수의 타격을 압도했으며 홈런은 모든 시즌에서 우위에 있었다. 거기다 김동주가 속한 두산 베어스의 홈 구장은 그 드넓은 잠실 야구장이었던 반면, 삼성 라이온즈의 홈 구장은 대구 야구장이었으니.... 타격성적만으로 골든글러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는데 수비 하나로 눌렀다기에는 논란이 많은 수상기록이다. 물론 수비실력이야 김한수가 약간 우위였어도 대부분 타격성적이 김동주가 넘사벽이였며, 수비에서도 김동주는 국가대표팀에서 3루수를 볼만큼 돌글러브도 아니다. 삼성의 호성적과 김동주가 데뷔 초부터 잦은 부상과 사생활 문제로 인한 논란을 일으키면서 김한수가 혜택을 받았다는 게 정설. 또 김동주의 경우 2000대 초반에 부상으로 지명타자로 나오기도 했었지만 대부분 3루수였다. 반대예로 장종훈에게 밀린 류중일이 있다고 하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일단 둘의 데뷔시절인 1987년 정도를 제외하면 수비지표는 비슷한 수준이였고 1987년 류중일이 장종훈보다 wRC+(공격력)가 떨어졌으나 수비덕분에 WAR이 약간 더 높았던 1987년에는 류중일이 골든글러브를 받았지만, 그 다음부터는 WAR이나 wRC+에 거의 맞아 떨어지게 받았다. 아마 1990년 골든글러브를 말하는 것 같은데 wRC+ 131.2 OPS 0.823으로 류중일의 개인적인 커리어 하이 시즌[23]이였으나 그 해 장종훈은 wRC+ 165.1 OPS 0.946으로 류중일보다 훨씬 더 잘했다. 즉, 당시에 류중일은 장종훈과 비교해서 골든글러브를 받을 성적이 안 됐으니까 못 받은 것이다. 심지어 장종훈은 강정호도 못 한 유격수 홈런왕이었다. 고작 OPS 8할에 상대적으로 조금 뛰어난 수비력으로 홈런왕을 이길 수는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OPS가 1할 가량 차이가 났는데 류중일이 골든글러브를 타면 그거야말로 사기.

팀의 가을야구 진출, 2002년, 2005년, 2006년 한국시리즈의 우승 주역으로 활동했으며 2002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 할 때에는 팀의 주장으로 활약했다.

별명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봤자 별명제조기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 소리없이 강한 남자, 한수옹, 찬물옹찬물이란 별명은 현재 박용택이 이어받았다. 뭔가 다른 이유로(...)[24] 등등 여려 별명이 있었다. 특히 현역 시절 크게 눈에 띄지 않는 것같은데 찬스에서는 유감없이 클러치 능력을 보여주었고 수비에서도 공헌도가 높아 팬들은 김한수를 소리없이 강한 남자 라고 입을 모아 칭송하기도.

등번호인 5번과 '달려라 김한수~'와 '날려라 김한수~'로 시작하는 응원가는 김한수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25][26][27] 김한수의 등번호는 조동찬이 물려받았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코치 연수를 받기도 했다. 사진으로 보면 안경을 쓰고 있는데 혹시 동일인물이 아닐까 싶을 정도. 현역 시절 사진도 안경을 쓰는 사진이 보이는데 일상 생활 때는 안경을 쓰는 듯 하다.

선해 보이는 외모에 걸맞게 대인배로 유명하며, 성실함과 인성을 모두 갖춘 선수로도 알려져있다. 방위복무 때 원정 때면 경산에 찾아가 연습을 할 정도였다. 특히 요미우리 코치로 연수 중이던 도중에 일본 코치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2016년 롯데 자이언츠의 수석코치이자 한때 같은 팀의 동갑내기인 김태균과 친한 사이라고 한다.[28][29]
전체적인 선수시절의 커리어로 따져 볼 때는 등번호 5번의 전 주인인 김성래의 기[30]를 이어받았는지 몰라도 김성래처럼 뭔가 어정쩡한 스텟이다.[31] 통산 1497경기 출장[32]에 통산 타율 0.289, 149홈런, 1514안타, 782타점, 골든글러브 3루수 부문 6회수상[33], 최다 사구 2위, 최다 끝내기 안타 1위. 괜히 별명이 소리 없이 강한 남자 겠는가? 하지만 이를 거꾸로 생각해보면 임팩트 있는 시즌이 없었다. 꾸준하게 뛰어난 수비와 적당한 스텟은 찍어줬으나 2000년대 삼성 우승에 공헌한 바가 있으므로 "소리 없이 강한 남자"는 김한수에게 적당한 별명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강석천과 굉장한 비슷한 경우.[34] 통산 WAR도 비슷하다

특히 초구에 강한 것으로 유명했는데, 김한수의 타격론으로는 경기 말 찬스 상황에서는 투수가 수세에 몰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초구에 스트라이크를 던지려고 할 확률이 높아서 초구를 집중적으로 노리는게 타자 입장에서는 유리하다는 것의 그의 타격론이다.

2.1. 연도별 성적

  • 붉은 글씨는 리그 1위 기록.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역대 기록
연도 소속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4 삼성 103 279 .272 76 13 2 10 31 41 6 17 .441 .313
1995 34 92 .304 28 4 0 2 13 17 3 4 .413 .330
1996 30 54 .185 10 0 0 0 1 7 1 4 .185 .241
1997 124 466 .292 136 27 1 9 68 57 9 43 .412 .350
1998 126 463 .300 139 24 1 15 80 65 5 25 .454 .332
1999 128 497 .340
(4위)
169
(4위)
36
(3위)
1 18 88 87 7 46 .525 .391
2000 126 464 .263 122 26 1 7 57 54 8 43 .369 .322
2001 117 427 .311 133 29 2 13 61 59 3 41 .480 .366
2002 127 486 .311 151
(5위)
23 1 17 76 69 4 49 .467 .371
2003 131 478 .295 141 23 1 17 70 67 5 46 .454 .354
2004 133 498 .271 135 30
(3위)
1 16 84 60 1 50 .432 .335
2005 114 406 .293 119 18 0 15 73 55 1 53 .448 .372
2006 103 343 .254 87 15 0 7 54 41 6 47 .359 .340
2007 101 289 .235 68 11 1 3 26 25 0 21 .319 .283
KBO 통산
(14시즌)
1497 5242 .289 1514 279 12 149 782 704 59 489 .432 .346

3. 지도자 시절

3.1. 타격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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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코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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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WBC 타격코치.

2010년 시즌 후 1군 코치로 승격했다. 기존 1군 타격코치였던 타네다 히토시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즈로 옮겼다. 대신 같은 등번호를 달았던 내야수 선배가 들어왔다.

팬들 가운데에서는 김태한[35], 김재걸과 함께 3金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물론 아주아주 안 좋은 의미로. 2011년에 류중일 감독이 공격야구를 시도하려 했으나 정작 원래 잘하던 최형우와 각성한 배영섭, 김상수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타자들이 전년대비 성적이 폭락했고,[36] 이렇게 침체된 타자들에게 김한수가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바람에 류중일 감독이 할 수 없이 기존의 공격야구를 하겠다는 계획을 전면 수정해 출루와 도루 위주로 경기를 풀어나가야만 했다. 이후 2012년에는 타격감이 올라오기는 했으나 코치진의 효과가 아닌 이승엽 효과 덕분이라는게 중론. 거기에 타격 스탯에서 최상위권을 찍었던 2012년에도 타선이 롤러코스터를 탈 때 극복에 도움을 별로 주지 못했으며, 이 문제는 고질병이 되어 2013년에도 삼성이 선두 싸움을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거기에 배영섭, 조동찬, 이승엽, 박한이, 박석민 등이 부진할 때 이를 전혀 극복하지 못하면서 김한수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졌다. 사실 호불호가 갈리는 가장 큰 요인은 컨택에 집중하는 특유의 코칭의 스킬 때문. 공을 끝까지 보며 볼넷을 노리거나 풀스윙으로 휘들러 장타를 생산하기보다는 어떻게든 맞추는 컨택에 집중한다는 점. 삼성에 장타자야 여럿 있지만 본래부터 장타자였던 이승엽, 최형우, 박석민, 나바로 같은 선수들을 제외한 어린 야수들은 풀스윙을 자제하고 툭 갖다 맞추는데 최대한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때문에 2012년부터 팀 타율은 크게 올랐지만 볼넷은 줄었고 어린 야수들 중 장타에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가 안 보인다.

이런 코칭은 타율을 올릴 수 있지만 볼넷과 장타가 줄어들기 때문에 타자의 기여도를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OPS가 낮아지게 된다. 그래서인지 2014년 이후로 삼성 타선이 알게 모르게 뻥야구에 의존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 라는 주장과는 달리 2012~2015 시즌까지 팀 OPS 1,2위권이었다. 즉 홈런이 나오면서 타선이 터지는 날은 상대 투수를 복날 개패듯 잡지만 그렇지 않으면 상대 투수의 투구수만 줄여주는 답답한 타선이 되는 것. 삼성 팬들의 비판도 이러한 점에서 나온 듯 하다. 다만 팀 타격 스탯 자체는 괜찮다는 이유와, 위에서 주장한 것과 별개로 팀 출루율 순위는 꾸준히 상위권에 들었다는 점, 그리고 한 번 터질 때는 그야말로 살벌하게 분위기를 타고 연달아 터진다는 점 때문에 옹호하는 의견 역시 있어서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장타 가능성이 있는 젊은 타자가 없다는 것도 선동열 시절에 발빠른 똑딱이 야수들만 주구장창 긁어 모았다는 점도 있다.[37][38]

사자 사랑방에서는 확실하게 평가가 안좋으며,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는 의견이 다소 분분하나 전체적으로는 부정적인 여론이 주류이며, 네이버 뉴스 댓글에서는 평가가 호의적인 편.삼갤 의견 #1#2#3

2014년부터 2015년까지 2년 연속 팀타율 1위를 해냈다.[39][40]

그러나 이 때까지만 해도 구단 역대 최악의 감독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3.2. 삼성 라이온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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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팬 여러분 최고의 감독을 영입했습니다

2016년 10월 15일, 류중일의 후임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계약 조건은 3년 총 9억원(계약금 3억원, 연봉 2억원). 만약 김한수가 1번이라도 우승을 한다면, 삼성에서 선수-코치-감독으로 모두 우승한 최초의 감독이 된다.[41] 5월 27일 기준 취소선 없이 최악이고, 이제는 김성근-백인천-이순철이 오히려 김한수보다 명장으로 보이고 이들과 김한수의 비교질은 3명에게 실례가 될 지경이라는 소리도 듣고 있다.[42]

먼지가 되고도 남을 정도로 탈탈 털리는 중

3.2.1. 2017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한수/2017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인터뷰 본능이 있는 것인지 합리적 경쟁을 내세웠지만, 정작 라인업 변화를 주지 않는 편이다.[43] 거기다 대졸 미필인 탓에 본인 임기 내내 쓸 수 없는 최재원을 보상선수로 풀고 백업 포수로 쏠쏠한 활약을 해줬던 이흥련도 풀어 버렸다. 그 대신 영입한 선수가 최재원보다 한살 어리고 똑딱이인 대졸 미필 강한울과 금지 약물 복용 의혹을 받고 있는 최경철. 이흥련과 최재원이 풀리고 해당팀들의 팬이 쾌재를 부른 것은 덤이다.[44] 최경철의 경우, 결국 봉사시간과 더불어 72경기 출전 금지 처분을 받아 안데려오느니 못한 수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최재원은 폭망했고 강한울은 언제부턴가 각성했다. 그리고 최경철은 약+성적+나이 라는 3박자를 모두 맞추어 2017시즌이 끝나고 삼성이 재계약 불가를 통보했다

아직 시즌 초지만 기본적으로 감독 자질이 부족한 인간이 감독을 맡으면 팀이 어떻게 추락하는지의 좋은 표본이 되고 있다.[45] 대표적으로 밑도 끝도 없는 좌우놀이, 투수 혹사는 기본이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야수 혹사는 덤, 팀을 박살내는 출처불명의 희대의 작전[46] 등등 이미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프로야구 10개 구단 중 가장 무능한 감독으로 낙인된 상황. 이 정도면 감독 자격 실격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629대첩에선 외인 페트릭을 벌투시켜 2이닝 14실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또한 그래놓고 페트릭을 비웃어 한수콘 확정. 삼성진영인 3루 익스트림존에 한수 울타리존이라는 자리까지 만들어서 경기시작전 김한수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할수 있는 곳이 있었지만, 처참한 초반 성적에 소리소문없이 사라질정도.

4월 중반부터 김한심, 돌한수, 망한수, 유다한수, 기만수, 김한성근, 폐동님, X동님, 돌동님, 김한숨(숨동님), 냉동님, 씨판수(X한수), 김일수, 한수. 투수 및 부상선수 혹사가 늘면서 가네바야시 한수콘, 냉이콘, 찬물콘 등등 온갖 안 좋은 별명들만 아주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쯤 되면 거의 종신감독 확정이다. 오죽하면 리빌딩 안했다고 2016 시즌 내내 전임 감독을 욕하던 삼성 팬들이 반대로 그리워하는 현상이 생겨나고 있을 정도다. 선수 시절의 성격이 감독으로도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 좋지 않은 쪽으로 작용하기도 한 사례.

타격코치로서의 평가는 나쁘지 않았음에도 시간이 지나 감독시절에 대한 평가항목이 생긴다면 이종운 급으로 긍정적인 평가가 없는 항목이 작성될 것이 유력한 상황.[47] 이종운은 박세웅 데려오고 장성우 처분했잖아? 근데 그게 끝이잖아! ㅠㅠ[48]

3.2.2. 2018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한수/2018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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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기간이 남은 감독들 중 한 명으로 분류되면서 결국 2018 시즌에도 삼성 라이온즈를 이끌게 되었다.[49] 4월의 졸전으로 인해 경질 여론은 더 악화 되어가고 있으며 옹호하는 쪽에서도 그래도 해줬던 정을 생각하면 타격코치로 강등하는게 어떠냐 정도이다.[50]

다만 5월 이후 나름대로 상식적인 운영을 보여주며 팀이 상승세를 타자 일단은 지켜보자는 여론이 우세하다가 6월 부진으로 다시 욕을 먹고 있다. 그러다 7월 이후부터 뒤늦게 발동이 걸리면서 차곡차곡 승수를 쌓더니 5강 싸움에 불을 지피면서 비판 여론이 다시 줄어든 상황.

현재 커뮤니티에서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 육성형 감독, 성장형 감독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분명 5~6월까지는 종신 감독이였는데?

부정적인 모습은 김상수의 2번 기용, 전반기 최충연의 살려조급 기용, 전반기 조동찬, 배영섭의 중용과 손주인의 중용으로 인해[51][52][53] 타선 리빌딩이 전혀 되지 않았는 점 정도가 되겠고(투수진 리빌딩은 빠르게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또한 선발 윤성환에 대한 무한 신뢰로 많은 게임을 말아먹었다.(시즌 중반엔 선발 자원들이 부상으로 이탈하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윤성환을 중용하게 된 점도 있었지만 9월 30일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해진 시점에서 직전 등판에서 7이닝 1실점으로 좋은 모습을 보였던 최채흥이 아니라 윤성환을 선발로 내세운 점은 욕을 먹을 만 했다.) 결국 한끝 차이로 포스트시즌 진출에는 끝끝내 실패.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연장전에 너무 약한 모습을 보였으며, 이 또한 다음 해에는 분명히 개선되어야 할 점이다. 그나마 한 방이 있는 전업 지명타자 요원을 트레이드로 받아왔으니 올해는 괜찮을...지도?

3.2.3. 2019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한수/2019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감독 계약 마지막 해. 지난 해 그리 좋지 못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리빌딩과 본인의 발전된 모습을 보인 끝에 아깝게 6위로 포스트시즌에 실패했고 나름대로의 전력보강을 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 삼성을 다크호스로 지목하고 있다. 어느 정도 기대가 있는 만큼 이젠 성적으로 보답해야 할 때가 왔으나, 여전히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팬들에게 물매를 맞고 있다.

3.3. 역대 감독 성적

역대 감독 전적
연도 소속팀 경기수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17 삼성 라이온즈 144 55 5 84 9위 -
2018 144 68 4 72 6위 -
통산 288 123 9 156

3.4. 평가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한수/평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여담

덧붙여 前 LG 트윈스 선수인 최동수, 前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한화 이글스 선수인 권준헌과는 광영고등학교 동기이며, 최동수와는 대학도 동기다.

1971년생으로 한국 나이로 이미 48세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동안 외모를 유지중이다. 변함없는 동안 외모 탓인지 한때 같은 팀에서 선수로 뛰었던 현재윤 해설위원과 제법 닮은 편이며, 안경을 쓴채 정면을 보면 야왕 한대화와 비슷해보이고, 썬글라스와 모자까지 씌운 모습마저 투수코치 시절 금지어되어 현재 수석코치로 앉힌 김태한과 닮았다. 코칭능력도 닮았다 해외에도 닮은꼴이 있는데 용사 요시히코와 마왕의 성에서 부처로 분한 배우 사토 지로와 닮았다.

은퇴 이후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와인바를 열었으며, 2010년까지는 영업을 한 것으로 추정되나 이후 별다른 소식이 없다. 아마도 완전 폐업한 듯 하다.

자신의 팬카페를 통해 매년 야구용품 자선경매를 열고 있다. 야구용품은 주변 동료 코치나 선수들에게 기증받는듯 하다.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의 대미를 장식한 명품조연(?)이다. 당시 롯데 김민재의 안타때 3루에 있던 김한수가 공을 더듬는 바람에 누상에 있던 임재철이 부리나케 홈으로 돌진, 결국 그게 롯데의 결승타점 및 득점이 되어 삼성은 치열했던 플레이오프에서 허무하게 탈락했다.

은퇴 후 요미우리에서 코치 연수를 받다가 야구선수 기무라 타쿠야와 친해져 나중에 기무라가 한국에 오면 밥 한끼 사주기로 약속했지만, 기무라 타쿠야가 급사하면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라이온즈 파크 문서에도 서술되었지만, 2017년에 3루측 익사이팅존 일부 좌석을 한수 울타리존으로 지정했다. 해당 좌석을 구매한 팬들에게는 경기 전 그라운드로 초대해 승리를 기원하는 의미로 김한수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기회가 주어진다. 취지와는 별개로 괴상한 이름 때문에 삼성 팬들 모두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한수 울타리'는 김한수 감독 팬클럽의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즌 시작 후 20경기도 채우지 못하고 잠정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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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는 신경쓰지 말자. 사실 감독을 육성한다 카더라.

사시가 있다. 위의 감독 취임식 당시 사진을 보면 양쪽 눈의 촛점이 약간 다르다는 걸 알 수가 있다. 삼성 라이온즈 공식 홈페이지의 프로필 사진에는 좀 더 명확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선수는 잘 째려본다.

가끔씩 신의 한 수를 둔다! 이원석을 본인 요청으로 영입한 것과 4월 내내 삽질하던 다린 러프를 믿어준 것.

2018년 골든글러브 시상식 때 수염을 기른 것이 발견되었고, 이후 2019년 미디어데이에는 상당히 많이 길렀다[54]. 까만 렌즈 고글끼면 미스터 빅 닮았다.


[1] 대구 연고팀의 지명을 받고 프로 입문 당시부터 대구광역시에서 활동한 탓에 현역 선수 시절에도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오해받곤 했다. 데뷔 초 선수 시절에는 삼성의 나이 많은 팬분에게 "니는 경고 아가? 상고 아가?"서울 출신입니다...라는 소리를 그렇게 많이 들었다고 한다(...).[2] 1루수로 전향이후에도 3루수는 간혹 보는경우가 있었다.[3] 3루수를 유리몸 조동찬에게 남기고 1루수로 전향. 전향하기 전에는 양준혁이 1루수를 잠깐 봤었다.[4] 날려라~ 김한수(헤이!) 날려라~ 김한수(헤이!) 날려라~날려라~ 김한수X2[5] 육군 훈련소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그 찬송가 맞다.[6] 물론 김한수가 2004년 말 계약한 28억원과 박한이가 2013년 말 계약한 28억원은 물가 차이를 감안한다면 김한수가 더 많은 돈을 챙긴 셈. 영원히 고통받는 박한이[7] 김한수는 2004년 말 FA로 4년 계약한 뒤 계약 3년차였던 2007 시즌을 마치고 은퇴를 선언하기는 했지만, 정확하게 따지자면 2008년에는 FA 계약기간이 1년이 남아 있던 탓에 플레잉 코치 신분이었기에 등번호와 연봉을 그대로 보장받을 수 있었다. 이후 (선수 생활이였으면 정상적으로 끝났을) 4년 간의 FA 계약이 끝나자마자 바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코치 연수를 갔으며, 등번호 5번은 조동찬으로 이어지게 된다.[8] 만약 김한수가 감독으로써 삼성을 우승시킨다면, KBO 리그 역사상 최초로 한 팀에서 선수-코치-감독으로 모두 우승해 보는게 된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2001년 우승 당시 1군 정식 코치가 아니라 플레잉코치였기 때문에 제외. 참고로 선수-코치-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모두 경험해 본 사람은 바로 1982년 OB 선수로, 2002년 삼성 코치로, 2009년 KIA 감독으로써 우승을 해본 조범현.[9] 공교롭게도 앞서 언급한 김진영 前 감독과는 인천고등학교 야구부 동문이다.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뛰었고 국가대표에도 함께 선발될 정도로 실력이 서로 뛰어났다.[10] 김영복 씨는 지난 2000년 막내아들이었던 김한수의 결혼식 전날에 급정거하는 버스 안에서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히고 2달 동안 사경을 헤메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11] 중앙대 시절에 그닥 유명한 선수가 아니었던 김한수를 당시 신생 팀이었던 쌍방울이 김한수를 지명할 것으로 예상되었고 김한수 본인도 쌍방울이 지명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정작 삼성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자 본인도 놀랐다고 한다.[12] 나머지는 김종훈, 김재걸.[13] 그 시기에 이동수가 신인왕을 탔고, 홍현우가 3루수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14] 김한수가 1998년 해태 3루에서 그 정도 했으면 해태는 4강이 아니라 2위도 넘볼 수 있을만큼 2위와 5위의 차이가 몇 경기 안났다. 게다가 김재걸이 계속 주전으로 뛰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김한수와 포지션이 겹치는 홍현우야 2루로 가면 되니까.[15] 한국프로야구/1999년에 잘 나와 있다.[16] 2루수 홍현우는 한마디로 야마이코 나바로서건창급이였고 3루수 홍현우는 최정, 김동주급이였다. 어쨌든 사기캐잖아[17] 삼성이 홍현우와 계약을 하는 조건으로 엄청난 옵션 달성을 걸어서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말이 있다.[18] 2000년 혹은 2001년경으로, 당시 두산에서 연봉 문제로 갈등이 있던 골든 글러브 경쟁자 김동주를 삼성이 김한수와 현금을 내주고 영입하려는 시도를 실제로 했었지만, 두산에서 추가금을 요구하는 바람에 그냥 트레이드를 안 하고 넘어갔다는 비화도 기사로 나온 바가 있다. 그리고 두산이 추가금을 요구한게 당연했다. 당시 김동주는 20대 초중나이로 OPS 0.9~1.0을 넘기를 밥먹듯이 하던 리그 최고의 타자였는데, 김한수는 김동주에 비해서 공격력이 좋지 않았던 데다가 나이도 이미 30대에 접어든 상황이었다. 실제로 당시 김응용 감독도 강력하게 트레이드를 요청했다.[19] 특히 2002년은 제 2의 커리어 하이였다.[20] 당시 부상과 태업 의혹까지 받던 투수 임창용과 함께 KIA의 병역문제가 해결된 좌완투수 전병두를 상대로 트레이드된다는 소문이 있었다.[21] 그러나 잘 알려져 있는 1999년 한 시즌 무실책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1999년 김한수의 실책은 12개.[22] 김한수 6회 수상, 김동주 3회 수상.[23] 당시 삼성이 핫한 팀이였던 빙그레/한화를 준플에서 물리치고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으나 결과는...전승준[24] ...라지만 사실 마지막 시즌이었던 2007년에서는 정말로 찬스 때마다 찬물을 끼얹곤 했다. 다만 2007년 삼성의 타선이 김한수뿐만 아니라 조평신 브라더스, 김대익, 김종훈 등등 여러 선수들이 단체로 삽질을 하던 때인지라 상대적으로 덜 언급이 되는 편이지만......[25] 그 전 주인은 김성래.[26] 논산 육군훈련소 기독교 종교행사의 공식 주제곡 실로암을 따왔다.[27] 대구구장 장내 아나운서 경력의 김제동의 증언에 따르면 어째서인지 이 노래가 경기장을 한바퀴 돌고나면 '달려라 이만수~'로 변질되었던 적도 있었댄다.[28] 같은 1971년생 동갑에, 중앙대학교 출신에, 1994년에 삼성에 입단한 동기에, 비슷한 시기에 군복무를 마치고 백골프의 총애를 받아 주전 3루수와 주전 유격수로 자리잡은 것, 그리고 각각 김성래강기웅의 등번호를 물러받은 것까지 둘의 공통점은 많은 편이다. 사실 위에 언급된 김종훈보다는 오히려 김태균이 쌍두마차의 성격이 더 강한 편이었다. 비록 김태균이 2002년 시즌 초 롯데로 이적하고, 그 이후에 삼성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여러번 하기 시작하면서 묻혀지게 되었지만.[29] 참고로 김한수-김태균의 관계는 2002년 입단 동기인 조동찬-손주인이 2009년 이후에 이어받게 된다(조동찬은 2009년에 5번을, 손주인은 2010년에 6번을 달게 된다는 점, 그리고 둘 다 주전으로서의 활약을 상대적으로 못 보여줬다는 것(물론 조동찬은 2010년 군대로이드로 인해 각성하게 되지만)등이 김한수-김태균 관계와는 다른 편이기는 하다). 물론 이 쪽도 2012년 시즌 후 손주인이 LG로 이적함에 따라 한동안 깨진 상태였다가 다시 만나게 된다. 역시 2호기1호기와 붙어야 제맛. 그런데 이쪽도 이미 깨진 상태인 것은 마찬가지[30] 다만 김성래는 3루수가 아니라 2루수였다.[31] 단 김한수가 활약하던 시기는 우동수이마양 등으로 대표되는 극악의 타고투저 시대임을 감안해야 하는 점도 있다.[32] 본인은 1500경기 출장 못한 게 아쉽다고.[33] 역시 위의 논란대로 김한수가 받은 대부분의 골든글러브는 실력대로 받은게 아니라 우승 프리미엄 등으로 받았다는 것이 중론이다.[34] 다만 강석천의 경우에는 김한수와 달리 골든글러브를 한 번도 수상한 적이 없다.[35] 김태한 대신 김성래를 넣는 사람도 있다.[36] 특히 박석민은 2009년부터 20홈런 아니면 3할 둘 중 하나는 무조건 기록했는데 2011년에는 둘 다 못했다. 그 외에도 박한이는 2할 5푼 4홈런을 기록하는 등 커리어 로우를 보냈고 신명철과 조동찬은 타율 2할대 초반을 기록하는 등 팀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2011년 삼성의 우승 원동력의 대부분은 투수력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해 삼성 타선은 그리 강하지 못했다.(팀타율 0.259)[37] 수비나 컨택툴은 프로에서 다듬어 개선시킬 수 있지만 파워툴은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타고나야 한다.[38] 류중일도 선동열과 마찬가지로 똑딱이 야수만 뽑는다는 소리도 있지만, 2012년 이동훈, 2015년 김기환, 2016년 황선도 등 장타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도 뽑는다. 아직 프로에서 보여준 게 없을 뿐.[39] 그러나 좋은 장타자들이 빠져나간 2016년 이후 최악의 감독에 오르면서 이러한 타격 지론이 안 좋은 쪽으로 재평가가 되었다. 타율=출루율=장타율인 선수가 클린업 트리오 제외한 대부분의 타자가 되었으며, 팀타율은 상위권지만 한가운데 직구를 못치고 변화구만 노리는 스윙을 하며 단타만 양산하게 되었다. 그래서 팀OPS가 적어 팀득점력은 하위권을 머물게 되었다. 결국 12년부터의 좋은 타격성적은 코칭능력보다는 원래 타격 실력이 있던 선수들과 우산효과가 제대로 융화되서 효과를 봤다는 평. 당장 천적관계 니퍼트는 몇년이 지나도 잘 이기지를 못하고 신인 좌완 선발에는 언제나 침묵한다는 점.[40] 2017년도 2군경기 중계 도중 해설 양준혁도 이러한 타격이론이 구식이라고 다른 팀을 비교하며 몇분 간 비판했다. 물론 17년도 타자 진 중에 양준혁의 타격이론을 따라갈 선수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지만[41] 원조 삼성 원클럽맨인 류중일도 선수 시절에는 우승하지 못했다.[42] 이중에 최근에 사퇴의 형식으로 경질당한 김성근은 프로 지도자 생활 자체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논란거리이긴 해도 어찌됐든 우승도 하고 한때 전성기를 누려본 감독이다. 한편으론 상대방 흔들기 등의 외적인 부분으론 아주 노련한 점도 있지만, 김한수의 경우 시작하면서 부터 무의미한 작전야구, 투수 혹사 등 현재 문제점이 터져나오는 김성근 감독의 스타일을 그대로 옮겨와서 안 좋은 점만 증폭시킨 듯한 모습이다. 그래도 시스템을 직접적으로 망가뜨리고 언플을 하거나 호구 트레이드를 일삼고 프런트와 잇따른 기싸움을 하며 스스로를 부각시키는 급의 막장은 아니고, 이승엽을 발굴한 야인처럼 타 스포츠 얘기만 하다 냅다 잠만 자는 것도 아니고, 선수 시절 한정 레전드마냥 감독을 맡은 뒤 프렌차이즈 스타들을 쫓아내듯 은퇴시키는 짓거리를 한 것도 아니다. 6월 들어서는 '그래도 우리 감독인지라 이기고 좋아하는 거 보니 좋다'는 의견도 가뭄에 콩나듯 나오는 중.[43] 시즌 전 박한이 와도 자리 없다는 희대의 망발은 덤이었다가 처참한 팀 사정상 복귀를 준비시키는 중이라고 말을 뒤집었다.[44] 이흥련이야 군 입대 선수라 설마하고 안 묶었다고 쳐도, 내야 전 포지션 소화가 가능한 최재원을 푼 것은 류중일 전 감독의 색을 지우려는 시도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샀다. 그후 아무런 해명도 없으니 팬들은 답답해 하는 중.[45] 온건하게 표현하자면 감독인데도 코치 시절처럼 감독 일을 한다.[46] 삼성팬을 포함한 상대팀인 두산 팬 및 나머지 8개 구단 야구팬과 스포츠 기자들을 모조리 멘붕시킨 무사 1,2루에서의 강공 후 1사 1,2루 쓰리번트 후 대타 강한울[47] 이는 과거 김성근, 이만수 문서와 마찬가지로 류중일은 미화와 찬양, 김한수는 폄훼만으로 가득차 있던 시기에 작성된 내용이기에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다행히 류중일 항목은 김성근처럼 재평가를 받으며 정상화가 되어가는 중이지만 김한수 항목은 아직도 폄훼가 대부분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김성근과 류중일은 과거 왕조 시절 감독이었고 그로 인해 악성 개인팬도 많이 지닌 감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 악성 개인팬들은 아직도 후임 감독에 대한 저평가와 폄훼를 계속 하고 있는 중이다.[48] 이종운은 코치 경력이 김한수에 비하면 일천한 편이며, 레일리, 박세웅 등을 선택했던 걸로 보면 선수 보는 눈은 뛰어났다. 물론 혹사도 심했고 고교야구에서나 할 법한 기용을 했다. 냉정히 얘기하면 2군 육성 총괄 내지는 고등학교 야구 감독 감을 데려와 그 사단이 났던 것. 그에 비하면 김한수는 이종운에 비해 선수 경력은 물론 코치 경력 또한 뛰어난 편이였다.[49] 시즌 초 류중일 감독이 LG 트윈스의 사령탑으로 부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삼성팬들이 그리워했으며, 동시에 김한수 감독을 향한 분노를 표출했다.[50] 실제로 시즌 중에도 타격감이 떨어졌던 선수들(구자욱, 러프, 강민호, 이원석, 박해민, 김상수...)이 하나같이 타격감이 살아난 뒤에 "감독님께서 조언해주셨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타격코치로서의 능력은 가히 국내 최고라고 할 수 있다. 3년의 감독 임기가 끝나면 타격코치로 다시 모시자는 의견도 존재한다.[51] 그러나 조동찬은 4월 22일 이후 2군행 통보를 받았고, 5월 23일 콜업된 후 6월 17일까지 백업 내야수로 뛰다가 다시 한 번 2군행 통보를 받았고, 그 이후 조동찬은 1군에서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조동찬이 맡았던 백업 1루수의 자리는 시즌 초에는 이원석이(손주인이 3루로), 중반에는 최영진이, 후반에는 백승민이 메꿨다.[52] 배영섭은 시즌 초만 하더라도 김헌곤과 함께 주전 좌익수 경쟁을 할 것 처럼 보였다. 실제로 4월에 배영섭 76타수, 김헌곤 97타수로 상당히 많은 출전 기회를 받았으나 김헌곤이 4월 타율 0.361로 맹타를 휘두르면서 사실상 밀려났고, 3번의 콜업과 3번의 엔트리 말소를 거치며 결국 배영섭은 시즌 후 방출 통보를 받았다. 시즌 막판, 9월 타율 0.169에 허덕였을 정도로 김헌곤은 부진에 빠졌는데도 김헌곤을 9번으로 계속 기용하고, 배영섭을 기용하지 않은 걸 생각하면 배영섭에 대한 미련을 완벽히 버린 듯 했다.[53] 손주인은 후반기 끝도 없는 부진 이후 2타석도 기회를 주기전에 바로 대타를 사용하는 등 믿음이 거의 사라진듯 하다.[54] 김한수는 삼성에 있는 동안 수염을 안 길렀다. 그래서 팬들이 못 알아보는 경우도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