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9 00:19:39

신의 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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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현실에서의 활용3. 예시
3.1. 역사적 사실3.2. 스포츠3.3. 연예계3.4. 서브컬쳐3.5. 정치3.6. 그 외
4. 관련 문서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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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の一手(かみのいって)

중국어에 신수(神手)란 단어가 있는데, 1977년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중국에선 이미 고대부터 신적인 수준의 극의에 다다른 바둑의 수라는 뜻으로, 바로 이 신수(神手)란 표현을 써왔단 걸 알 수 있다.

2. 현실에서의 활용

이게 미묘하게 변형, 확장되어 대한민국에서는 기상천외한 묘책 또는 먼 앞을 내다본 행동이 딱 맞아 떨어졌을 때 활용하는 단어가 되었다. 이 뜻과 비슷한 고사성어선견지명이 있다.

굉장히 보편화되어 있어서 인터넷상의 어떤 담론에서든 거부감 없이 자유롭게 활용될 수 있는 수준. 인터넷 언론에서도 거리낌 없이 쓰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면 일반적인 관용어의 반열에 오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실제로 한준희 축구 해설위원의 경우 케이블 지상파를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즐겨 쓴다. 그리고 SBS 프로그램 <접속! 무비월드>에서는 '신의 한 수 '라는 영화 소개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 또 특이한 점이라면 국어에 바둑에서 유래한 관용어가 꽤 많긴 하지만 바둑이 꽤 시들해진 현대에 생긴 관용어라는 점, 그 주체가 역시 바둑을 잘 즐기지 않는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한 만화에서 비롯되었는데도 계층 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정착한 점이 있다.

재미있는 건 정작 일본 웹 쪽에서는 '神の一手'로 검색해 봐도 고스트 바둑왕에 관련된 내용밖에 출력되지 않는다는 것.[1] 일본에서 태어난 관용어가 대한민국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한국으로 귀화한 어휘라 봐도 좋다. 비슷한 케이스의 단어로 흑역사가 있으며, 그 뒤를 잇고 있는 것이 츤데레[2]데헷.

이세돌 vs 알파고 4국의 78수를 중국 기사 구리 九단이 神之一手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이 시점에서 검색 결과를 돌아보면, 중국에서는 '神之一手'의 형태로 어느 정도 많이 쓰는 것으로 보이는데 반해, 일본에서는 이 난리가 났음에도 그다지 이 용어를 쓰지 않는 것 같다.[3]

3. 예시

※등재하기 전에 앞서, 정말로 해당 사례가 기상천외한 묘책 또는 먼 앞을 내다본 행동이 딱 맞아 떨어졌을 때에 해당하는지 먼저 생각해 주세요.

3.1. 역사적 사실

  • 알래스카 조약 - 신의 한 수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사례. 미국이 재정난에 빠진 러시아 제국에게서 단돈 720만 달러[4]에 구입한 알래스카는 처음에는 초대형 냉장고라고 까이며 엄청난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지만 이후 그곳에서 각종 지하자원이 펑펑 쏟아져 나왔다. 알래스카에서 생산되는 지하자원들 중에는 매장량 세계 1위의 석탄도 있었는데, 이것은 그 720만 달러의 100배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100배는 단순히 경제적인 가치만을 따진 거고 지정학적 가치까지 따지면 가늠을 할 수가 없다.
  • 마셜 계획 - 미국조지 C. 마셜 국무장관이[5] 2차 세계대전 이후 황폐화된 유럽을 부흥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미국의 국익에는 전혀 도움도 안 되고 우리 미국과 전혀 관계없는 유럽만 도와주는 병신쓰레기같은 짓거리다!"라는 악평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마셜 계획을 해냈고, 그렇게 유럽에 공산주의 확산을 철저히 막고 자본주의 확산을 철저히 시행해 절대다수의 유럽 국가들이 친미반러 성향을 가지게 하여 미국은 큰 동맹국들을 얻게 되었다.
  • 척준경 - 고려시대를 통틀어서 한민족 역대 최강의 맹장. 윤관은 그를 정치적으로 숙청될 위기에서 구해줬고, 그를 장군으로 등용하게 된다. 이에 척준경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 죽음을 불사했고, 결국 혼자 무쌍난무를 찍으면서 여진족과의 전쟁에서 크게 압승하면서 고려를 위기에서 구해냈다. 이에 윤관은 눈물을 흘리면서, "난 너를 자식처럼 생각할 테니, 너는 나를 아버지로 여기거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 임진왜란 발발 1년 전 류성룡이 친구 이요신의 동생을 전라좌수사로 천거하자 무과에도 떨어진 적이 있는 사람을 천거했다고 말이 많았다. 심지어 8계급 특진이라는 정신나간 천거였으니 더더욱. 그럼에도 선조는 8계급 특진이라는 미친 제안을 쿨하게 받아들였고, 그 사람은...
  • 한고제한신 등용 - 홍문의 연 이후 파촉으로 사실상의 유배를 떠난 한고제였으나, 소하의 천거로 한신을 등용한 이후 단숨에 삼진을 평정하고 패왕 항우와 천하를 두고 맞대결할 수 있었다. 이후 한고제는 팽성전투에서 참패했으나, 스스로 형양에서 모루의 역할을 하는 동안 한신은 일부 병력을 이끌고 하북을 휩쓸고 다니며 항우의 팔다리를 잘라냈고, 결국 한신은 해하전투에서 항우의 군단을 포위섬멸시키고 항우를 죽음으로 몰아넣음으로써 한고제에게 최후의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 유비삼고초려 끝에 제갈량 등용 - 발붙일 곳 하나 제대로 없던 일개 군웅을 황제로, 유망했지만 시골 청년에 불과했던 이를 중국 역사상 가장 추앙받는 재상 중 한 사람으로 이끈 사건. 만약 이 사건이 없었다면 한 제국 이후의 중국 역사는 삼국시대가 아니라 바로 통일 제국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으며, 이를 통해 제갈량이 구상했던 천하삼분지계가 실현되었다.[6] 물론 치명적인 패배로 인해 처음 구상 당시 목표로 했던 최종 단계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유언장 - 본인은 느닷없이 암살당할 줄은 생각도 안하고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18세의 어린 옥타비아누스를 유언장을 통해 미리 자신의 후계자로 선정해 놓았다. 이 유언장은 카이사르의 암살 이후 공개와 동시에 모든 이들의 의문을 낳았으나, 유언을 받아들인 이 어린 후계자는 당대의 쟁쟁한 거물들이었던 키케로, 레피두스, 안토니우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를 모두 물리치고 최후의 승자가 되어, 제정 로마의 시대를 연 첫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되었으며, '카이사르'라는 이름은 황제를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 황형의 소나무 - 조선 중기의 무인이었던 황형은 말년에 아름드리 소나무 수백 그루를 심었다. 주변 사람들의 '소나무를 심을거면 차라리 굴곡진 소나무를 심는 게 더욱 보기 좋지 않겠느냐' 는 질문에 '곧게 뻗은 소나무야말로 여러모로 실용적이다.'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정말 나무를 심은 때로부터 8~90년이 흘러 조선에 엄청난 사건이 터지면서 목재가 많이 필요해졌는데, 그 때 심은 소나무들로 군선을 제작하고, 강화 행궁을 짓고도 목재가 남아돌았다고 한다.[출처]
  • 와무라 고토쿠 - 후다이에서 촌장을 지냈던 인물로, 쓰나미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둑의 높이를 기존 안건보다 더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면서까지 과감하게 밀어붙였고, 이 때문에 생전에는 주민들로부터 예산 낭비라고 욕을 먹었으나, 사후에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그가 예견했던 대규모 쓰나미가 발생했으나 수문 내 사망자 없이 마을 어귀에 물이 들어차는 수준의 피해로 끝나 후다이의 기적을 만들었다.
  • 한국전쟁 당시의 육군 6사단 김종오 사단장 - 육군본부에서 비상경계령을 해제했고, 국군 6사단 김종오 사단장은 부하 장병들이 경계태세를 유지하느라 피로가 쌓여 최소한 휴식할 시간은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건의가 들어왔지만, 경계태세를 해제하는 대신 경계병력을 최소화하는 조건으로 계속 유지하는 선택을 했고, 평소에도 북한군의 예상 진격로에 포격하는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결국 이 선택은 동부 전선으로 남침하는 인민군의 선발 병력을 춘천-홍천 전투에서 사실상 전멸시키면서 동부전선의 병력을 빠르게 남하하여 서울 후방을 차단해서 국군을 궤멸시키려는 김일성의 계획을 완전히 뒤엎어버리는 결과가 나왔다.
  • 키스카의 기적 - 1943년 7월에 키스카 섬에 안개가 낀다는 예보를 받고 일본군 구출작전을 위해 가와세 시로 제독과 기무라 마사토미 제독이 출항. 그런데 중간에 안개가 걷히는 바람에 속행할 지 퇴각할 지 의견이 분분한 끝에 속행이 결정되어 위험한 도박이 시작되었다.[9] 그 순간 걷혔던 안개가 다시 끼기 시작했고, 미군 함선이 레이더 결함으로 엉뚱한 곳을 공격하면서 그 틈을 타 주둔하던 일본군을 모두 데리고 탈출할 수 있었다.
  • 한미상호방위조약 - 초반에는 반쯤 억지로 성립된 조약이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적화통일이 불가능한 원흉이나, 한국 입장에서는 아주 든든한 우방을 얻게 된 성공적인 조약.[10]

3.2. 스포츠

  • 국내축구
    • 수원 삼성 블루윙즈조나탄 영입 - 2016 시즌 수원은 극도의 부진에 빠져있고 여름 이적시장에서 대구 FC에서 MVP와 득점왕을 먹은 조나탄을 영입했고, 그 결과 평소보다 치열한 스플릿 B에서 10위로 강등 일보 직전의 수원을 스플릿 무패 기록을 세우며 7위까지 올려놨고 FA컵까지 우승했다. 2017 시즌도 수원과 3년간 재계약을 하면서 현재는 수원을 3위까지 올리는 데에 일조를 하고 있다.
    • 이용수 기술위원장의 거스 히딩크 선임 -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11]
    • 전북 현대이동국 영입 - 그 해에 전북은 K리그 첫 우승을 하였고 이동국 역시 MVP를 받으며 부활에 성공. 이 효과로 전북은 리그 6회 우승을 기록하고 7년 연속 AFC 챔피언스리그에 나가면서 강팀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 전북 현대최은성의 영입 - 2012년에 대전 시티즌에서 방출당한 최은성을 자유계약으로 영입했다. 그 뒤에는 40의 나이에 권순태를 밀어내고 주전을 차지했다. 전북서포터즈는 항상 대전 시티즌에게 방출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러지 않았다면 전북이 2012년에 준우승은커녕 아챔 출전권도 못땄을 것이다.[12]
    • 김학범 감독의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선수 선발 - 김학범호/선수단 선발 논란 참고.
    •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조기호 대표이사 사표 반려 - 김경수가 경남도지사에 당선되자 정치색이 서로 달랐던 조기호는 정치에 엮일까봐 사표를 썼지만 김경수 도지사는 호성적을 내는 걸 보고 되려 사표를 반려했다. 그리고 경남은 승격하자마자 준우승을 기록하며 AFC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했다.
    • 대구 FC대구시민운동장 축구장 리모델링 - 대구 FC의 2019년 흥행에는 구장 리모델링 외에도 조현우 등의 스타선수, 좋은 경기력과 성적(2018년 FA컵 우승, 2019년 K리그1 상위스플릿 진출[13] 등)도 많은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구장 리모델링은 대구 FC가 2부리그에 있던 시절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신의 한 수라고 칭할 만하다.
  • 해외축구
    • 호마리우1994 미국 월드컵을 앞두고 아버지가 납치당하자 불참을 선언했다. 이에 정부와 갱단까지 아버지를 찾아 나섰고 결국 납치범들은 호마리우의 아버지를 아무 소득 없이 풀어줘야만 했다. 그리고 브라질은 그 월드컵을 우승했다.
    • 펠리팡호마리우 제외 - 팀워크에 도움이 안 되는 호마리우를 제외했다고 살해협박까지 받았으나 그 없이 한 한일 월드컵 우승으로 모두의 입을 다물게 했다.
    • 곤살로 이과인의 국적 선택 -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엔트리멤버에 뽑혔을 때 이를 거절하고 계속 무명 선수생활을 했다. 그러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지역예선(남미) 막판에 결국 그렇게 원하던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 뽑히는 데에 성공했다. 자칫 잘못했다간 그 어떤 국가대표에도 뽑히지 못할 그런 위기까지 감수해가면서 프랑스 국가대표가 되길 거부하고 버텼다. 그리고 그 결과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는 결승전에서 뛰었다. 지네딘 지단이 현역일 때만 유일하게 우승후보였던 프랑스 국대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그는 국적을 정말 잘 선택했고 그 덕에 월드컵 결승전에서 뛰어보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14]
    • 바르셀로나리오넬 메시 영입 - 호르몬 이상으로 성장이 더뎌 외면받았지만 바르샤가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메시를 영입해왔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메시가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으며, 라이벌일련의 논란으로 체면을 구긴 뒤에는 메시가 더욱 고평가받고 있다.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사무엘 에투 영입 - 인테르는 리그에선 줄줄이 4번째 우승하지만 챔스만 가면 16강에서 떨어졌고 이 상황에 불만을 하며 당시 전관왕을 달성한 FC 바르셀로나로 가고 싶어하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주젭 과르디올라 감독과 갈등 중이던 에투와 바꿨다. 심지어 바르셀로나는 에투에다 4800만 유로라는 거금까지 얹어줬다! 자연히 2009년 최고의 화제가 된 거래가 되었다. 이에 주제 무리뉴 당시 인테르 감독은 즐라탄에게 인테르가 챔스 우승 할 거라는 말을 했고 실현되며 에투는 현재까지 유일무이한 2연속 트레블이라는 진기록을 세우게 되며 아프리카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하나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 UEFA 유로파 리그UEFA 챔피언스리그에 밀려 침체기에 빠졌을 무렵 UEFA는 이것을 오히려 역이용하여 2014-15 시즌부터 UEFA 유로파 리그 우승 팀에게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주는 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그 결과는 유로파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모두에 윈윈으로 작용하는 데에 성공.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알레한드로 사베야 임명 - 디에고 마라도나 시절부터 시작된 쇠락의 길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월드컵 결승전에 진출시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을 다시 한번 황금기로 올려놓았다.
    • 아마우리 - 세리에 A 2011-12 시즌 AC 밀란과 1, 2위를 다투던 유벤투스 FC는 연봉값을 못하던 아마우리를 ACF 피오렌티나로 이적시켰는데, 피오렌티나:밀란 경기에서 아마우리가 결승골을 기록하여 1위이던 밀란이 2위로 처지고 유벤투스가 역전 우승을 차지하였다.
    • 히샤를리종 - 어린 시절 친구들이 모두 마약사범으로 변해 자신에게 일확천금을 노리자고 유혹했다. 하지만 14세 때 마약도둑으로 오해받아 죽을 뻔한 일을 겪고 마약이 악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껴서 결코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으며, 가업이자 떳떳한 물품인 아이스크림을 계속 팔았다고 한다.
    • 힉포드 가문 - 델레 알리의 양가. 그들의 아들 해리 힉포드가 바로 델레의 축구 친구였다. 매우 불우했던 델레의 친가와는 달리 사업을 해서 여유로웠던 이 집은 델레를 거둬줬지만 사업 특혜 받으려 입양한다는 시선이 싫어서 정식 입양은 안 했다. 그래도 델레는 양부모의 보살핌 아래서 차세대 잉글랜드 축구스타로 거듭났으며 자신의 친부모보다는 이 양부모에게 애정을 보여 사실상 진짜 가족이 되었다.
    • 마티아스 베시노 - 이탈리아계였던 그를 안토니오 콘테 당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그를 꼬셨으나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 우루과이를 선택했고 러시아 월드컵 8강까지 갔다. 그리고 2017-18 시즌 마지막 경기 선발로 나와 그 전까지 못했지만 넘어가자 멋진 헤딩골로 팀을 챔스로 이끌었다. 근데 유로파 갔다 ㅠㅠ
    •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2009-10 시즌 중앙 미드필더로의 포지션 변경 - 이 시즌 전까지 슈바인슈타이거는 윙어 포지션으로 뛰었지만 평소 경기력 기복이 심하다는 평가가 있었고 거기에 아르옌 로벤도 영입되면서 벤치 신세가 될 위기에 처하지만 오히려 루이 반 할 감독의 제안에 따른 중앙 미드필더 포지션 변경으로 경기력 기복이 훨씬 적어지는 것과 동시에 상승하였고, 이는 훗날 2012-13 시즌 바이에른 뮌헨분데스리가 클럽 최초의 트레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으로까지 이어졌다.
    • 발로텔리 가문 - 마리오 발로텔리의 양가로 인종차별 심한 이탈리아 출신으로 흑인 이민자의 아들인 마리오 형제를 모두 입양했다. 그래서 인종차별을 이겨내고 마리오를 키워내 아주리에 입성시켰으며, 마리오 역시 친부모가 뒤늦게 추파를 던져도 양부모를 친부모로 여긴다고 한다.
    • 하비에르 사네티의 인내심 - 모든 충신 선수들이 이 사람처럼 됐으면 좋겠다 1 2002년 호나우두와 함께 레알 마드리드로 가려고 굳게 마음을 먹었으나 마시모 모라티 당시 구단주의 간곡한 설득에 마음을 접었다. 그 후 4년 동안 트로피를 타지 못했으나 칼치오폴리가 터져 스쿠데토를 품에 안은 걸 시작으로 인테르는 잘나가기 시작해 챔스 빅이어를 포함해 트로피들을 한번에 타게 된다.
    • 뤼카 에르난데스의 충성심 - 모든 충신 선수들이 이 사람처럼 됐으면 좋겠다 2 뤼카와 동생 테오는 스페인인 아버지를 둔 혼혈인 형제다. 뤼카는 자기가 어릴 때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보다는 당연히 어머니의 나라 프랑스를 더 애정해 프랑스에 남았고 그를 키워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남아 두 군데에서 모두 주전에 들었고 국대로는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반면 테오는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에 들기 위해 프랑스 청소년 국가대표팀 훈련까지 무단 불참했으나 공교롭게도 스페인 국대가 늘 그랬듯이 그의 자리조차 없다. 그리고 스페인 국대는 2014년부터 영 힘을 못 쓰고 있다. 게다가 자신이 키워진 팀 아틀레티코의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가 정작 자리를 못 잡아서 임대생으로 전락해 버렸다.
    •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인내심 - 축구를 하다가 내성적인 성격에 그만둔 뒤 목수로 일했으나 다시 축구로 시작해 7부 리그부터 천천히 올라와 프로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한일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거둔 후 12년 후 우승에 성공했다.
    • 마르첼로 브로조비치를 계속 팀에 남긴 인테르 - 브로조비치가 인테르 첫 3년간 못했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제 자리에서 뛰지 못해서다. 애시당초 수비형 미드필더를 공격을 시키니 잘할 리가. 그래서 팔아버려야 한다는 소리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다른 팀의 링크가 났을 때 감사한다고 외치는 팬들도 많았다. 하지만 팀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를 계속 팀에 남겼다가 마티아스 베시노가 부상으로 이탈한 자리에 그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쓰기 시작하자 초대박이 났다. 욕들은 모두 칭찬으로 바뀌었고 그는 밀란 슈크리니아르, 하피냐 아우칸타라, 마우로 이카르디, 사미르 한다노비치와 함께 팀을 오랜만에 챔스로 이끌었으며 러시아 월드컵 때에는 붙박이 주전으로 크로아티아를 준우승으로 이끌었다.[15]
    • 크리스티안 키부의 배신 - AS 로마에서 4년간 뛰며 팬들의 사랑을 받던 키부는 인테르의 제안을 받고 그 동안 보였던 충성심까지 거짓말이었다고 밝히며 이적해버렸다. 이로 인해 로마 팬들 사이에서 금지어가 되었지만 하비에르 사네티와 함께 트레블 동기가 되었다.
    • 손흥민토트넘 핫스퍼 FC에 잔류시킨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 EPL 첫 시즌이었던 2015~16시즌에서 유망주라는 기대를 보기좋게 배신하고 최악의 폼으로 토트넘 팬들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까였던 손흥민은 당장이라도 방출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이었으나, 감독인 포체티노는 손흥민을 믿고 그를 팀에 잔류시켰다. 그 이후 손흥민은 토트넘의 핵심 공격수인 DESK라인 중 하나로 거듭날 정도로 포텐셜이 폭발했으며, 특히 2018~19시즌에 케인이 부상으로 아웃되어 있을 동안에 팀을 극적으로 구해내기까지 했다. 또한 국가대표팀에서도 손흥민을 전술적으로 활용하는 데 중요한 방향성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16]
    • 알리송을 영입한 리버풀 - 리버풀은 클롭 감독을 영입한 이후로부터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고, 급기야 2017-18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결승에 진출, 레알 마드리드와 상대하게 된다. 선수층을 보면 트리오는 물론 모든 이 월클급으로 성장했기에 잘하면 레알과 연장전 아님 승부차기까지 갈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스쿼드가 두터웠다.[17] 물론 경기 중 살라가 라모스와의 충돌로 인한 부상으로 빠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0:1로 뒤진 상황에서 마네가 동점골을 작렬, 레알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여기까지는 잘하고 있었다. 그. 러. 나 경기 운영은 잘했는데, 문제는 엉뚱한 데서 터졌으니... 바로 골키퍼 쪽이었다. 당시 골키퍼였던 카리우스는 후반 82분경 베일이 30미터 거리에서 중거리슛으로 때린 공이 자신의 정면 방향으로 날아갔는데, 여기서 이걸 쳐내는 대신에 잡아내려다가 속도에 힘입은 공이 자신의 손바닥을 맞고 그대로 미끄러지며 골(...) 결국 3:1로 패배하며 준우승에 그치게 되었다.[18] 그리고 결승 이후에 클롭 감독과 리버풀은 골키퍼를 바꾸기로 결심하고 AS 로마에서 활약하고 있는 알리송을 무려 €62.5m + 옵션 €10m 규모의 이적료로 데려온다.[19] 그리고 이 영입은 신의 한 수가 되었고, 1년 후 다시 챔스 결승에 진출한 리버풀은 1:0으로 앞서나간 상황에서도 토트넘의 위협적인 공격을 받았지만, 전년의 카리우스와는 다르게 알리송은 여유있게 선방해내며 마침내 6번째 빅이어를 들어올리는 데 성공한다. 여담으로 전년도 결승에서 실수로 레알에게 우승컵을 헌사한 카리우스는 리버풀에 축하한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근데 이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티켓을 받았지만 가지 않았다는데, 경기 관전을 하면 리버풀이 질까봐 안 갔다 카더라.
    • 2019 FIFA U-20 월드컵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의 공격수 선발 - 우크라이나의 주포 공격수 다닐로 시칸이 이번 대회에서 4골을 기록할 정도로 득점력을 인정받았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U-20 대표팀과의 결승전에서 당연히 선발 출전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페트라코프 우크라이나 감독은 시칸 대신 대회 내내 잠잠했던 블라디슬라프 수프리아하를 선발로 내세운 것에 대해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그 동안 우크라이나는 조별리그 1위로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도, 고비였던 8강전 콜롬비아전을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전부 시칸의 맹활약 덕이었다.[20] 또한 우리나라와의 결승전 직전까지 기록한 10골 중 4할을 시칸이 해냈다는 점은 무시못할 공헌도다. 하지만 그런 시칸을 결승전 라인업에서 빼고, 존재감이 보이지 않았던 수프리아하를 투입시켰다.[21][22] 그러자 여기저기서 '왜 득점력을 뽐내던 시칸을 빼느냐'는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지사. 하. 지. 만... 이러한 결정은 오히려 우크라이나에게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이강인에게 전반 5분 만에 PK실점을 당하기는 했지만, 감독의 결정에 보답이라도 하듯 수프리아하는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 있는 마무리 능력을 맘껏 뽐냈다. 그리고 그 결과 전반 34분, 우크라이나의 숨은 어시스트 1호 김세윤의 패스를 정확한 밀어넣기로 동점골을 기록했으며, 후반 8분에는 순간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숨은 어시스트 2호 김현우의 터치에 의한 주어진 볼을 받아 역전골을 터뜨렸다. 대회 내내 존재감이 제로에 가까웠던, 후배 공격수 시칸에게 자리까지 뺏길 정도로 쓸쓸한 대회를 치러야 했던 수프리아하가 결승전에서 우리나라를 상대로 2골을 터뜨리며 완벽히 각성해 버렸던 것.물론 이것이 전부 우리나라 선수들의 수비 실수가 존재감 제로에 가까운 공격수를 에이스로 키워준 격이 되어버렸다(...) 무명 공격수를 단숨에 스타 공격수로 키워주는 월클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 한국 수비수들(...) 결국 우크라이나는 후반 막판 치타이시빌리의 쐐기골로 3:1로 승리, 사상 첫 U-20 월드컵 트로피를 가져갔다. 또한 아시아 최초로 결승 진출과 결승전 첫 득점[23]을 기록한 우리나라 선수들도 정말 잘 싸웠다고 할 수 있다.
    • 인테르의 밀란 슈크리니아르 영입 - 원래는 툴루즈 FC이사 디오프를 노렸으나 실패해 대신 잔루카 카프라리를 내주고 영입한 게 슈크리니아르였기에 실망한 팬들에 의해 물음표가 마구 붙었으나, 이적한 지 반 년도 안 돼 FC 바르셀로나 등과 링크가 나는 등 기대를 아득히 뛰어넘게 잘하고 있다.
    • 칼리두 쿨리발리를 남긴 SSC 나폴리 - 원래 쿨리발리는 몇 년 전만 해도 못한다고 욕먹는 선수였으나 계속 남겨 키운 결과 조르조 키엘리니의 자리까지 위협하는 막강한 센터백이 되었다.
  • 국내야구
    • 2008 베이징 올림픽 4강전 이승엽 - 준결승전에 오기 전까지 이승엽은 4번 타자답지 않게 부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감독은 이승엽을 끝까지 믿어 이승엽을 준결승전 4번 타자로 기용했고, 결국 홈런을 터뜨려 김태균의 추가 타점과 함께 일본 상대로 역전극을 썼다.
    • 2015 프리미어 12 준결승전 8회 말 대타 오재원 - 도쿄에서의 극적인 역전은 오재원의 출루로부터 시작되었다.
    • 탈쥐효과를 불러온 모든 트레이드. 특히 김상현LG 트윈스에서 KIA 타이거즈로 이적한 이후 KIA 타이거즈12년 만의 우승을 이끌어 냈다.
    • 김시진이장석 설득 - 위의 넥센 히어로즈 리빌딩과 맞물리는 과정에서 김시진이 염경엽을 넥센 히어로즈의 코치로 데려오기 위해 별로 내키지 않아 하던 이장석을 설득했고, 그 결과는 이장석-염경엽의 윈윈으로 평가받는 행보다. 하지만 덕분에 김시진 자신의 목은 잘렸다.
    • 김종호 - 삼성에서도 듣보잡 소리 듣던 선수를 NC 다이노스김경문이 20인 외 특별지명으로 삼성에 10억 원까지 안겨주고 데려왔다. 그리고 그 결과는 도루왕. 타율이 2할 7푼이긴 하지만 어쨌든 창단 초기 NC리드오프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 kt wiz댄 블랙 영입 - 댄 블랙을 영입하기 전 물타선으로 연패를 하던 팀이 댄 블랙을 데려온 후 고춧가루 팀이 되어 중상위권 팀들의 순위 싸움에 큰 영향을 주었다. 다만 kt wiz 자체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 1999년 플레이오프 7차전 - 경기가 뒤지고 있던 9회초, 김명성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 대타로 누구를 쓸까 고민하던 차에 임수혁과 눈이 마주쳤고 대타로 기용하게 된다. 훗날 인터뷰에 따르면 임수혁의 눈에서 "제가 아니면 안됩니다. 저를 보내주십시오."라는 기세를 느꼈다고.
    • 1984년 한국시리즈 7차전 - 강병철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 라인업을 제출했을 때 5번 박용성 - 6번 유두열이었으나, 기록원의 실수로 5번에 유두열이 들어서게 되었고 9회초에 역전 3점 홈런을 때려내며 팀의 첫 우승을 이끌어 냈다.
    • 서종철KBO 초대 총재로 임명 된 것 - 전두환노태우의 육사시절 교관이자, 하나회의 후원자였던 인물. KBO 리그 초기에 불필요한 입김을 모조리 차단해 준것도 서종철의 힘이었다.
    • 1978년 야구 월드컵에 단장으로 임명된 이용일 - 당시 단장으로 야구 월드컵에 참여한 이용일은, 아마 야구 최강이었던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 관계자로 부터 "우리는 연고제를 도입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훗날 전두환의 지시로 프로야구 창설 계획을 발표하라고 했을때 지역 연고를 강력히 주장해 관철 시켰고 그 결과 KBO 리그의 참여팀들은 지역연고를 다른 스포츠 팀들보다 먼저 선점하게 되며 큰 인기를 끌게 된다.
    • 정권이 내
  • 농구
    • 서울 삼성 썬더스김태술 트레이드 - 2016-2017 시즌을 앞두고 삼성은 김태술을 당시 삼성에 온지 얼마 안 된 이현민과 트레이드시켰다. KCC에서 먹튀 소리를 들으면서 삼성 팬들은 우려를 했지만 결과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 미셸 램버트 - 지미 버틀러의 양모. 친모에게 차갑게 버림받고 노숙하던 13세 소년을 아들이 데려오자 이미 자식이 많아 넉넉치 않은 환경에도 그를 거둬 키웠고 지미 버틀러는 양모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농구계 대스타가 됐다.
    • 토론토 랩터스 2018-2019 시즌. 팀의 에이스 더마 드로잔을 트레이드하고 여러 문제가 있던 카와이 레너드를 얻어 왔다. 미디어 데이에서 펀가이로 등극한 그는 정규시즌 내내 백투백 중 한 경기를 결장하는 등 괜찮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의문 부호가 붙었으나, 막상 플옵이 되자 전 경기 출장은 물론 나중에는 부상까지 안고 뛰면서도 랩터스를 멱살 캐리, NBA 챔피언으로 만들었다.
  • 기타
    • 2012년 런던 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 - 국가대표인 최현주 선수가 대표전 이후 부진한 성적을 거두자 교체론이 오갔을 때 협회에서는 '선발전에 대한 원칙을 깰 수 없다'며, 끝까지 믿고 갔다. 그 결과 최현주 선수가 디펜딩 챔피언을 지키는 데 1등 공신이 되면서 협회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 2014년 V리그 여자부 FA시장 - 당시 센터 최대어였던 김수지가 현대에서 흥국으로 이적하면서 당시 현대의 신임 감독인 양철호가 보상으로 보상선수+연봉2배가 아닌 연봉3배를 선택했는데, 팀의 노답 수비를 고려하면 멍청한 짓으로 보였지만 역대급 역관광이 되었다. 흥국으로부터 보상금만 5억 가까이 뜯어가고 계획도 제대로 꼬이게 만들어서 도공서의 보상픽을 급선회했는데 그게 약쟁이라 팀이 또 쑥대밭이 되고 이후 선수 이적의 주도권을 완벽히 뺏겼다. 반대로 현대는 김수지 공백을 은퇴했던 김세영으로 메꾸면서 15-16 시즌 16경기 연속 승점행진과 퍼펙트 스윕 우승을 했다.
    • 가리 카스파로프 vs 딥 블루 - 연산 버그로 나이트를 희생시켜 폰을 잡은 수. 이 수로 인해 카스파로프는 캐슬링이 불가능해졌고 이후 몇 수 만에 승부가 나버렸으며 이 승부는 카스파로프의 체스시합 사상 최단시간 내에 패배한 기록이 되었다.
    •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 1차전에서 알파고의 백 102수, 4차전에서 이세돌의 백 78수.[24][25] 자세한 것은 각 문서 참고.
    • 기아자동차 - 라파엘 나달과의 스폰서 계약이 유명하다. 나달이 아직 세계랭킹 50위권이자 부상으로 2004년 클레이 시즌을 날리게 됐을 때, 부상을 당한 경기를 본 기아자동차 높으신 분이 스폰서 계약 체결, 그 후 나달의 행보에 대해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준결승 한일전 연장 11엔드 해머샷 - 일본 대표팀이 하우스 안에 1, 2번을 차지하고 있던 한국 대표팀의 스톤들 사이로 정확한 샷을 구사해 1번 스톤 위치를 뺏아 한국팀에게 있어 굉장히 어려운 판세가 되어버린 가운데, 스킵 김은정 선수의 완벽한 투구와 스위퍼들의 신들린 스위핑으로 정확히 버튼 안에 정착, 8:7로 일본 대표팀을 누르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유튜브 링크

3.3. 연예계

  • 김명민불멸의 이순신 캐스팅 - 이성주 PD는 당시 무명 탤런트였던 김명민의 목소리를 듣고 "저 사람이다."라고 필이 꽂혀 캐스팅 제의를 했다. 김명민은 "저 이민 갈 겁니다."라며 거절했는데, 이 말을 들은 이성주 PD는 "이렇게 큰 배역을 거절하다니, 뭔가 있는 놈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캐스팅을 제의했고, 결국은 캐스팅을 거절했던 김명민도 "내가 언제 이런 역할을 맡아 보겠는가? 이것까지만 하고 떠나야겠다."라며 캐스팅 제의를 받아들였다. 이후 고증 논란이 좀 있긴 했으나, 그의 열연은 고증 논란마저도 잠재웠으며, 2005년 KBS 연기대상 당시 모두가 예상한 대로 대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 소녀시대의 <Gee> - 소녀시대는 2008년도부터 이어진 지나친 완전체 공백기로 인해 ‘해체하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 정도로 그룹의 상황이 심히 좋지 않았다.[26] 때문에 컴백을 해도 그렇게 희망이 밝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렇게 나온 <Gee>는 각종 차트와 시상식을 모조리 휩쓸면서 대히트를 했고, 지금의 소녀시대를 있게 한 상징곡으로 남았다.
  • TWICE모모, 쯔위 추가선발 - TWICE의 멤버를 선발하기 위해 엠넷에서 방영한 서바이벌 프로그램 식스틴에서 잠정적으로 기획된 정원은 7명이었으나, 마지막까지 이에 대해 아무 말 없던 박진영이 "이들을 조금 더 완벽한 그룹으로 만들어줄 두 명의 멤버를 추가하겠다"는 말과 함께 모모와 쯔위를 추가로 뽑았다. 이에 대해 "조작, 사전내정설, 무리수" 등의 이야기가 나왔으나[27], 결과적으로 각자 팀 내에서 안정적으로 자리잡으며 호평을 받았다.
  • 미우새의 편성: 그간 미우새는 매주 금요일 오후 11시 20분에 방송됐으며 첫방 당시 6%의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평판이 좋지 못했다. 하지만 자사의 예능 등극을 위해 기꺼이 숭고하게 희생한 K팝스타가 종영하자 그 시간대를 대체했고,[28] 이후에 미우새는 일요 예능 뿐 아니라 지상파 + 공중파 + 종편을 합친 시청률 1위를 거침없이 씹어먹으며 대한민국 예능 전체를 지배하는 대표 예능으로 우뚝 올랐다.
  • 런닝맨전소민, 양세찬 섭외 : SBS 예능 프로그램인 런닝맨은 2012년 한 때 시청률이 20%를 육박하는 등 황금전성기를 누릴 정도로 잘 나갔던 프로였다. 하지만 2014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시청률이 내리막길을 가더니 마침내 한 자릿 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암흑기를 보낸다. 급기야 2017년 프로그램을 종영하기까지에 이르렀지만 다시 번복하며 종영은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런닝맨 제작진은 6인 체재로는 버거움을 느꼈는지 변화의 필요성을 실감하였고, 마침내 배우 전소민과 개그맨 양세찬을 고정 멤버로 전격 섭외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것은 곧 신의 한수가 되었다. 특히 전소민은 노홍철도 울고 갈 특유의 똘끼스런 면모와 이광수의 트롤링, 박나래식의 섹드립에 무맥락 드립과 애드립을 마음껏 치며 죽어가던 런닝맨을 멱살캐리했고, 양세찬은 전소민에 비해 상대적으로 존재감은 미미했어도 멤버들의 뒤를 잘 받쳐주는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29] 전소민과 양세찬의 눈부신 활약 덕에 런닝맨은 아무 문제 없이 순항할 수 있었고, 2019년 7월 14일 런닝맨은 프로그램 첫방 기념 9주년을 맞이할 수가 있었다.
  • 달러 멘디의 <투낙 투낙 툰>: 자신의 신곡 <투낙 투낙 툰>으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제작사들마다 거절해서 포기하려 했지만, "아무도 안 받아주면 내가 직접 만들면 된다"는 생각으로 자신이 뮤비를 직접 제작해서 발표했고, 결국 이 노래는 전 세계적으로 초대박을 친 히트곡이 되었다.
  • 김연자열린음악회 출연: 김연자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아모르 파티는 2013년에 등장한 곡이다. 이 곡의 작곡자는 윤일상, 작사가는 이건우, 신철(DJ처리)이었는데, 평소 이은미의 '애인...있어요'라는 곡을 좋아해서 소속사 대표에게 얘기했더니 대표가 자신과 친분이 있는 신철에게 얘기를 했고, 신철이 애인 있어요의 작곡자인 윤일상과 친해서 곡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윤일상과 만나 고기 대접을 했는데 윤일상이 어떤 노래가 하고 싶은 물음에 '인생의 찬가'에 대해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연자송(당시 가제)이라는 곡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곡이 EDM이라 처음에 깜짝 놀랐고 간주를 못 찾아 노래를 못 했다고 한다. 이어 윤일상에게 노래를 못하겠다고 했더니 가이드 녹음을 해서 다시 보내주었지만, 가사가 너무 많고 숨가쁘다고 해서 4년 전에 접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모르 파티가 뒤늦게 빛을 발휘한 계기가 된 일이 있었다. 2016년 12월 열린음악회에 출연을 했는데, 열린음악회 PD가 김연자를 섭외하기 위해 찾아왔는데, 정작 본인의 노래인 아모르 파티가 인기가 없었던 데다가 가사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출연 요청을 거부했지만 PD의 끈질긴 설득 끝에 출연 요청을 허락했다.그러나 이것이 곧 신의 한 수가 된다. 그리고 나서 열린음악회에 출연을 했는데, 당시 그 방송에서 김연자의 공연 순서는 EXO 다음이었다.EXO-L 팬들이 있었던 것은 당연지사 엑소 다음에 바로 이 곡이 나왔는데, 예상치 못한 흥겨움에 당시 모여있던 젊은 관객 및 시청자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30] 마침내 김연자는 노년층 뿐만 아니라 젊은 층들 사이에 인기를 끌어모으는 대중 가수로 우뚝 올랐다. 그리고 2018년 KBS 가요대축제에서 엔딩곡인 아모르 파티를 부르며, 모든 아이돌 가수들과 어우러지는 대통합의 무대를 보여주었다. 여담으로 이 공연 당시 세계구급 아이돌이 안무를 모두 외우기라도 한 듯 사실상의 백업 댄서 역할을 자처하자 해외의 K-PoP 팬들은 대체 저 여자 가수가 누구기에 저런 광경이 나오느냐며 크게 놀랐다고 한다. 또 A.R.M.Y가 아닌 다른 아이돌의 해외 팬들도 자기네 아이돌들을 배경으로 깔아버리는 김연자의 위엄에 놀란 건 마찬가지. 덕분에 유튜브에서 김연자 동영상에 갑자기 외국인들의 댓글이 증가하는 일도 있었다. 영상(해외ip 전용)영상(국내용)
  • 케이윌, 클라라 - 원래는 각각 김형수, 이성민이라는 본명으로 활동했지만 무명이 오래되자 예명을 바꾸거나 영어 이름을 쓰기 시작했더니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 - 1988 서울 올림픽 올림픽 앨범의 메인 테마곡인 <The Victory>였으나 서브 테마곡으로 제출되었던 <손에 손잡고>가 조직위에서 호평을 받아 메인 테마곡으로 등극했다. 그리고 이 메인 테마곡은 서울 올림픽이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제3세계 진영 국가들이 모두 참가하는 올림픽이었기에 평화를 사랑하자는 노래 가사가 스포츠 정신으로 평화를 실천하자는 올림픽의 취지와, 냉전기의 양 진영이 모두 참가하는 상황과 훌륭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이 곡은 전세계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불후의 명곡이 되었고, 독일의 통일과 동구권 국가들의 독립을 축하하는 노래가 되기도 했다.

3.4. 서브컬쳐

  • 강철의 연금술사 오리지널 - 2003년에 강철의 연금술사의 첫 애니화가 결정되었으나, 당시 연재 중이던 원작을 그대로 애니화하기에는 분량이 모자랐던 관계로, 원작자인 아라카와 히로무의 허락 하에 애니 제작진이 원작과 정반대 노선의 51부작 오리지널 스토리로 애니를 제작했는데, 당시 초판 2만 부로 그저 그런 판매고를 올리던 원작만화가 100만 부를 넘는 대작으로 성장했고, 해당 애니메이션도 작품성과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원작을 그대로 재현한 강철의 연금술사 BROTHERHOOD 또한 큰 성공을 거두면서 보기 드문 오리지널과 원작의 동시 성공을 달성했다.
  • 유희왕 관련
    • 매직 & 위저드의 등장: 원래 유희왕은 '각종 게임으로 악을 처단하는 다크 히어로 이야기'라는 스토리의 '호러 만화'로써 처음 연재되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나온 일회성 게임 중 하나로 매직 더 개더링의 패러디 게임인 '매직 앤 위저드'가 나왔는데, 이 게임의 연재분이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독자들로부터 '매직 앤 위저드 편을 더 연재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하였고, 그래서 호러만화 유희왕은 DEATH-T편을 기점으로 아예 매직 앤 위저드를 주요 소재로 삼은 '카드 게임' 만화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그 결과, 유희왕은 세계 최초의 카드배틀물 작품이 되면서 모티프가 된 게임인 매직 더 개더링의 판매 성적을 뛰어넘은 것은 물론, TCG라는 장르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작품이 되었다.
    • 듀얼 디스크의 등장: 일정한 크기를 차지하고, 설치해놓고 쓰는 장비라는 특성상 특정한 장소에서만 실체화된 게임을 즐길수 있는 원작의 듀얼 박스, 애니메이션의 듀얼링과는 대조되는, 휴대용 장비인 '듀얼 디스크'를 등장시키게 되면서 '언제 어디에서든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는 유희왕이 타 TCG매체들과 차별화되는 요소로 크게 작용한다.
    • 각종 판권 이동 - 소년 점프에서 연재되던 만화 유희왕의 인기에 힘입어 1998년, 반다이에서 카드 게임의 판권을, 토에이에서 애니메이션의 제작을, TV 아사히에서 애니메이션의 방영권을 가지고 유희왕의 첫 애니메이션을 방영하게 된다. 그러나, 원작보다 순화시켰음에도 많이 어두웠던 스토리라인, 울트라맨 가이아와의 장난감 시장 경쟁을 피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관련 상품을 적게 내고, 홍보 또한 하지 않는 반다이의 무책임한 행보로 유희왕의 첫 미디어 믹스 기획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결국 애니메이션의 제작은 NAS로, 애니메이션 방영은 TV 도쿄로, 카드 게임의 판권은 코나미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1999년, 코나미에서 새롭게 카드 게임 상품들을 출시하였고, 2000년에는 유희왕의 새로운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유희왕 듀얼몬스터즈가 나오게 되면서 다시 한 번 미디어믹스를 기획하게 된다. 그 결과 유희왕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2000년부터 꾸준히 방송되는 전통있는 장기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되었고, 카드 게임은 세계에서 제일 많이 팔린 카드 게임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로 코나미의 든든한 자금줄이 되었다.
    • 한국 유희왕전술의 발전 조기출시사건 - 당시 일본판으로 택티컬 에볼루션을 구매한 모든 유저들의 욕을 먹는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조기 출시를 한 결과, 10년이 흐른 2017년 현재 일본판과 발매 시기 차이가 최소 2~3년이나 차이나던 것을 단 3~4개월로 좁히는 데에 성공하면서 동시에 한글판 유저들까지 다 잡는데에 성공한 케이스. 어찌보면 한국 유희왕의 운명을 완전히 가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 한국 유희왕동봉카드 엿먹이기 - 바로 위의 사건처럼 일본에서는 250엔 이상인 V점프에 동봉되는 카드들이 한국에서는 1000원 정도하는 프리미엄 팩으로 버젓이 판매되었다. 덕분에 V점프까지 산 유저들은 허탈해 했지만 오히려 카드 수요층이 일본에 비해 연령대가 어린 편인 한국 시장에 걸맞는 가격대가 되어 한글 유저들을 사로잡았다.[31] 오죽하면 본토인 일본에서조차 "지갑에 부담이 적은 한국이 부럽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
  • 해적전대 고카이저 28화 - 당초 메인 각본가인 아라카와 나루히사도 반대했고 배우인 와카마츠 토시히데 역시 반대했던 블랙 콘돌레전드 대전 참전이었지만 담당이었던 우츠노미야 타카아키 토에이 PD에 의해 블랙 콘돌이 참전했고 28화의 각본을 맡게 된 이노우에 토시키는 와카마츠 토시히데의 출연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고 이에 이노우에는 와카마츠에게 "책임은 각본을 쓰는 내가 지니까 꼭 나와달라. 당신이 나오지 않으면 난 각본을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결과는.......
  •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 기획 단계에서는 닌텐도 스위치가 공개되지 않은 상태여서 Wii U를 염두하고 제작되고 있었으나, 스위치 발표 후 Wii U 뿐만 아니라 스위치의 런칭 타이틀로써 같이 발매했는데, 결과는 말라죽어간다고 평가받던 닌텐도의 이미지와 주가를 바꾸고 닌텐도 스위치의 대박을 터뜨리는데 일조한 신의 한 수가 되었다.
  • 쥬라기 공원의 엔딩 - 원래는 로버트 멀둔이 들어와 랩터들을 총으로 모두 죽이고 탈출하는 것으로 계획했으나 결국 렉시가 랩터들을 모두 물어 죽이고 포효하는 것으로 바꿨고, 그 결과 티라노사우루스의 인지도를 대폭 상승시킨 것은 물론 영화계의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되었다.
  • 폭풍수면! 꿈꾸는 세계 대돌격의 주제가 담당 가수 변경 - 담당하기로 했던 가수가 불륜 스캔들을 내는 바람에 케츠메이시로 변경되었는데 곡도 좋고 가사가 영화의 내용(우정의 중요성)과 일맥상통해서 양쪽 다 대박났다.
  • 2004년 EVO 스파3 준결승에서 나온 전설의 역전 - 봉익선 모두 블로킹 > 점프 중K > 앉아 중K > 중 승룡권 > 질풍신뢰각으로 봉익선. 대부분 불가능이라 여기는 블로킹 자체는 선수 수준에 비해 어렵지 않다. 저스트 가드를 내는 방법이 프레임에 맞춰 전진인데 어떻게 어렵지 않냔 의견도 있으나, 오히려 슈콤의 블로킹은 암전이 있기때문에 타이밍을 잴 수 있어서 예측이 불가능한 기본기나 기술에 비해 어렵지 않고, 봉익선은 타수가 많은만큼 비교적 높은 체력에서도 가뎀사를 낼 수 있으므로 대책을 세워야 하는 대표적인 슈콤이다. 당시 춘리를 쓴 저스틴 웡도 실피인 다이고의 켄을 잡기 위해 약공격을 넣는 이유도 봉익선의 블로킹을 재는 각이 보였으므로, 실수로 앞으로 와 맞으면 좋고, 타이밍에 따라선 봉익선의 블로킹을 넣을 수 없도록 타이밍 흘리기를 위한 견제를 넣는 것이었다. 다이고의 입장에선 맞거나 가드를 허용하면 바로 봉익선이 이어져 그대로 패배할 상황이었다. 오히려 눈여겨 볼 것은 블로킹이 성공한 뒤로, 단 한번에 승부를 끝내기 위해 봉익선의 마지막 공격을 굳이 지상이 아닌 점프 블로킹으로 받아내는 콤보로 끝낸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 이 역전은 흥행에 실패해 망작이 될 뻔한 스파3의 한 장면에서 게임의 역사에 남을 대사건으로 남게 만들었다.

3.5. 정치

  • 노기태의 더불어민주당 입당 - 이전엔 새누리당 소속이였지만, 더불어민주당으로의 입당 후 유일한 강서구청장이 되었고, 이후에는 자신과 함께 당선된 現 자유한국당 소속이 잇따라 낙선하는 동안, 자신만 혼자 살아남았다.
  • 추미애의 '박근혜 정권 계엄령 준비' 발언 - 2016년 11월 18일 발언 당시에는 여론 선동이나 과장된 소리가 아니냐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었으나, 실제로 계엄령을 준비 중이었음을 드러내는 증거들이 속속 밝혀짐에 따라 사전에 계엄령 관련 발언을 흘림으로서 군대의 유혈사태를 저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33]
  • 박영선이종걸의 더불어민주당 잔류 - 대표적인 비문계 인사들로 문재인의 경선 승리로 이언주와 함께 국민의당으로 옮길 게 유력했지만 남았다. 이후 둘은 문캠으로 합류하며 문재인의 당선에 큰 기여를 했으며 특히 박영선은 이후 에콰도르에 대통령 대사로 가서 정치 고짬밥 및 고단수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3.6. 그 외

  • SK하이닉스 인수 - 원래 둘이 떨어져 있을 때 둘 다 흐지부지하다가 인수 후 둘 다 윈윈.
  • 신한은행나라사랑카드 입찰 - 처음 입찰 당시에는 금융사들이 긴가민가 하다가 신한은행만 입찰했는데, 사실 이 때가 계좌를 생전 첫 개설한 경우가 많아 매년 수십만명씩의 신규 가입자를 독점적으로 유치 가능한데다가 남자의 귀차니즘 특성상 대부분 전역하고서도 나라사랑카드를 계속 쓰거나, 만료가 되면 다른 신한카드를 쓰게 되면서 신한은행은 엄청난 이득을 보았고, 이 때문에 2기 입찰에선 그야말로 피튀기는 경쟁이 벌어졌다.
  • 화해권고결정 - 여느 나라 판사들보다도 격무에 시달리는 대한민국 판사들의 업무부담을 유의미하게 줄여 준 제도다.
  • 서울 버스 402 - 개편 전 83-1번 시절부터 강남대로와 남산 자락의 괴물로 군림하며 강남과 사대문안 간 수요를 독차지해왔지만 하필 1005-1번이 등장하는 바람에 이 노선을 운행했던 신진운수는 부도나버렸다. 신진운수가 부도나고 노선을 인수한 진화운수는 한창 신흥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었던 강남대로 권역에 주목했고, 83번은 입지를 점점 좁혀나갔고, 83-1번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쪽으로 경영전략을 굳히게 되었다. 2004년 개편 이후 남산1호터널을 경유하는 주간선버스들이 생겨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상습 정체구간인 남산1호터널을 피해 이 노선을 이용하는 수요는 여전했다. 결정적으로 신분당선이 개통되면서 판교, 광교, 경기광주, 이천 등지에서 강남역을 거쳐 사대문안으로 출퇴근하는 수요까지 확보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83-1번 시절부터 402번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1005-1번은 끝내 폐선되었다. 게다가 이 버스가 83-1번 시절이었던 2002년 4월 1일 서울시 심야전용버스로 선정되서 다니는 덕에, 강남대로 - 광화문ㆍ서울역간 심야버스 수단도 이 버스가 담당하게 될 정도다.
  • 서울 버스 9707 - 주간에는 일산에서 같이 영등포가는 경기도 버스들 한테는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여 이 노선의 존폐여부도 가렸었지만, 자유로 달리는 서울 버스로써 자리매김 하고있다. 게다가 주 52시간 여파와 더 좋은 근무환경으로 타 사 이적등 기사부족으로 인해 경기도 직행좌석 빼면 영등포ㆍ여의도가는 일반좌석버스들의 운행이 바닥 칠 정도로 잘 안 다녀서인지.. 결국 기다리다 못해 이 버스로 몰려타게 된다. 게다가 심야좌석 914번 출신답게 심야버스라는 강력한 무기로 다닐 뿐만 아니라 한강다리 건너가는 버스 끝판왕이 되었다. 강변북로상에 있는 난지한강공원 가는 유일한 상시노선버스가 되시겠다.

4. 관련 문서



[1] 다만, 금서목록 10주년 기념 실황방송에서 게임을 보던 이구치 유카가 이 단어를 활용한 것을 보면 구어로 가끔 쓰긴 하는 모양.[2] 다만 츤데레는 아주 대놓고 일본어이기 때문에 조금 말이 많다. 하지만 이제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많이 쓰고 있는 편.[3] 2014년 개봉한 한국 영화 신의 한 수의 중국어 제목 역시 神之一手였다. 어쩌면 이것의 영향일 수도 있다.[4] 21세기의 한화로 환산하면 약 1조 9천억원밖에 안 되는 헐값 중의 헐값이다.[5] 제2차 세계대전에서 육군 참모총장을 지난 바로 그 분이시다.[6] 천하삼분지계 또는 천하이분지계는 제갈량이 단독으로 고안한 것이 아니며, 당시 형주 및 양주 일대의 명사들이 (조조에 대항해) 각자 또는 함께 구상했던 일종의 세력 간 질서이자 혼란한 상황을 종식시키기 위한 방책이었다. 여기서는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를 의미.[7] 모듈러성 정리.[출처] <우리겨레 위인이야기> (윤승운 저)[9] 8월로 넘어가면 안개일수가 급감하기 때문.[10] 이승만이 비판받을 것도 많으나 이 조약만큼은 분명한 공이다.[11] 알려진 바와 다르게 실제 영입의사를 타진하고 데려온 건 축구협회에 파견나와있던 가삼현 부장이었다.[12] 그때 최은성이 전북에 올 때 전북 센터백 4명은 다 부상 중이라 당시 공격수이던 정성훈이 수비를 봤다.[13] 둘 다 구단 역사상 최초[14] 공교롭게도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선 본인 조국인 프랑스가 우승했다.[15] 한 가지 묘한 사실은 브로조비치의 인테르 이적 초기만 해도 마테오 코바치치를 더욱 더 높게 쳐주고 브로조비치는 그의 하인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3년 후 둘의 처지는 반대가 되었고 코바치치는 이 사실에 큰 충격을 받고 트로피 개수보다는 주전으로 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어떻게든 나가려고 하고 있다.[16] 신태용도 국가대표 감독직을 수행 중일 때 포체티노를 직접 찾아가 손흥민의 활용법에 대해 상담을 나누었으며, 손흥민을 톱으로 올리고 반대편에 섀도 스트라이커인 이근호를 붙여 손흥민의 단점을 커버하고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투톱 전술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17] 실제로 리버풀은 전반 20분까지 리버풀은 촘촘한 수비라인을 바탕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압도하는 경기를 펼쳤다. 특유의 강력한 전방 압박에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당황했는지 여러번의 패스미스를 하기도 했으며, 리버풀 에이스 살라 또한 유기적인 플레이로 몇번의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면서 초반 분위기는 리버풀이 주도했었다.[18] 베일이 터뜨린 두번째 골바이시클 킥은 제아무리 월클 골키퍼라도 막지 못하는 슛이기에 그나마 용납할 수 있었다. 거기다 1:2 스코어 정도면 얼마든지 추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상황을 카리우스의 실수로 인해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만들었으니 이건 변명할 껀덕지가 없을 뿐더러 아예 쉴드도 쳐줄 수 없다.[19] 이 가격은 케파가 기록을 깨기까지는 역대 골키퍼 최고 이적료였다.[20] 물론 시칸이 기록한 네 골 중 약체 파나마전에서 멀티골을 기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21] 이건 마치 포르투갈의 페르난두 산투스 감독이 에이스이자 두말이 필요없는 월클 공격수 호날두를 제외하고, 듣보잡 공격수를 투입시킨 격이다. 만약 그렇다면 날두는 빡쳐서 경기고 뭐고 아예 출전 안 하겠다고 감독한테 개길지도 모른다.[22] 물론 준결승 이탈리아전에서 좋은 모습을 그리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해서 내린 판단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회 내내 골감각을 뽐내던 선수를 뺀다는 것은 굉장한 부담이 큰 결정이었다.[23] 참고로 1981년 카타르, 1999년 일본이 결승에 진출했지만 각각 서독과 스페인에게 4골을 털려먹었다. 거기에 한골도 못 넣고 KO패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대단한 업적이다.[24] 검토된 결과로는 사실 알파고가 79수로 81의 자리에 두었으면 아무 수도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이 대국이 프로기사가 알파고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최초이자 최후의 대국이라 적어도 이때 한정으론 신의 한 수가 맞았다.[25] 이후 구글에서 제작한 알파고 다큐멘터리에서 나오기를 78수 직후 알파고는 해당 포석을 둘 확률을 계산했는데 0.007%, 그러니까 1만번의 대국(지금까지 존재하는 프로기사들의 대국을 모두 합쳐봐야 1만 5천기 정도 밖에 안된다.)중에 딱 한번 나올 그런 수였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 수를 본후 알파고는 오류를 일으켰고 자신이 측정하는 예상 승률(제작진은 이 데이터를 알파고의 자신감이라고 표현한다.)이 1~4 대국 중 처음으로 50% 밑으로 떨어져 최종 18.2%까지 내려갔다.[26] 사실 현재 정규 4집 수록곡인 <Dancing Queen>으로 컴백하려고 했으나, 저작권 문제로 무산되었다고 한다.[27] 특히 모모 같은 경우는 서바이벌 중반부에서 탈락했었기 때문에 이러한 뉘앙스가 더욱 강했다.[28] 매주 일요일 밤 9시 15분에 방송했음.[29] 전소민은 NBA로 예를 들자면 가드이면서, 스몰포워드, 파워포워드를 동시에 수행해낼 수 있는 스윙팬 혹은 올어라운드 플레이어 스타일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그것보다 전소민은 휴스턴 로키츠의 에이스인 제임스 하든 스타일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든은 2012년부터 OKC에서 휴스턴으로 이적했지만 당시 휴스턴은 잘해야 중위권에 전전하는 등 팀 분위기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2016년에 댄토니가 부임한 이후로부터 하든은 물 만난 고기마냥 공격코트를 쓸어버리는 괴물이자 40 내지 50점을 거뜬히 기록, 하위권을 밥먹듯이 전전하던 팀을 단숨에 상위권에 오르도록 멱살캐리한 선수로 변모했다. 양세찬은 리바운드와 수비, 어시스트 등 팀 내에서 존재감은 미미해도 헌신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스타일이라고 보면 된다. 선수로 치자면 하든의 팀 동료인 클린트 카펠라, 우리나라 농구 선수로는 양희종 정도를 들 수 있다.근데 양세찬도 양씨다.[30] 대표적인 예시로, 아모르 파티의 역주행을 시작하게 해준 무대 영상은 트위터에서 무려 1만RT가 넘어간다.[31] 참고로 해외 가격이 그대로 들어왔던 매직 더 게더링은 판매량을 죽쑨 편인데, 이를 보면 동봉카드 엿먹이기는 판매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은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32] 영화들의 단점이 그렇다는 거지, 그렇다고 해서 재미와 장점이 없는 영화는 절대 아니다.[33] 실제로 추미애 대표의 발언 역시 실없는 소리 같은 게 아니라 군 관계자로부터 제보를 받은 정보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