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26 03:01:40

김승현(1992)


김승현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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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92번
윤대경(2015) 김승현(2016) 공석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60번
윤대경(2016) 김승현(2017~2019) 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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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 피닉스 야구단 No.99
김승현 (金昇賢 / Kim Seung-Hyeon)
생년월일 1992년 7월 9일 ([age(1992-07-09)]세)
신체 180cm, 105kg
출신지 강원도 강릉시
학력 노암초 - 경포중 - 강릉고 - 건국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16년 2차 1라운드 지명(전체 10번,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2016 ~ 현재)
군복무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20~2021)
연봉 5500만원 (37.5%↑, 2019년)

1. 개요2. 선수 생활
2.1. 프로 이전2.2. 2016 시즌2.3. 2017 시즌2.4. 2018 시즌2.5. 2019 시즌
3. 연도별 주요 성적4. 기타

1. 개요

삼성 라이온즈의 우완 정통파 투수. 고등학교 때 유급한 전력이 있다. 이승현이 아니다!

2. 선수 생활

2.1. 프로 이전

강릉초 4학년 때 당시 노암초 야구부 감독으로부터 스카우트돼 노암초로 전학하면서 야구를 시작했다. 원래는 외야수였는데 강릉고 진학 후 공용우 감독의 권유로 투수로 전향했다. 유급 경력과 고교 3학년 때에야 본격적으로 실전 등판하면서 프로팀의 지명을 받지 못하고 건국대로 진학했다.

건국대 시절, 1차지명이 부활한 이후 2016 신인드래프트에서 삼성의 1차 지명은 김승현의 몫이다란 얘기를 졸업반 이전부터 공공연하게 들을 정도의 평가를 받던 불펜 투수였다. 구속 자체는 최고 150 초반, 평균 140 중후반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강속구를 뿌렸다. 거기다 구속에 비해 구위가 좋지 못하다는 평을 받는 몇몇 투수들과 달리 김승현은 2016 신인드래프트 지명 시점까지 해서 고교 4년간 111.2이닝 1피홈런, 대학 4년간 134.1이닝 1피홈런으로 8년간 피홈런을 4년에 하나씩만 허용했을 정도로 피홈런이 적었고, 대학교 들어와서는 134.1이닝 141삼진을 잡으며 엄청난 구위를 뽐냈다. 그러나 동시에 21개의 폭투, 13개의 사구, 80개의 사사구를 기록하며 삼진을 두 개 잡을 때 사사구를 무조건 하나 이상 허용하는 극악의 제구력을 보였기에 1차 지명을 앞두고 팬들 사이에서도 찬반 의견대립이 치열했다. 특히 14년 말의 U-21이 결정적이었는데, 빠른 구속을 유지하기는커녕 30구도 던지기 전에 구속이 5km 가까이 뚝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

그러나 정작 졸업반 들어 부진에 빠지면서 1차지명은 최충연에게 내줬다. 이후 6월 대회를 거르고 몸을 만들며 재기에 노력했으나 부진의 꼬리표를 떨치지 못하고 오히려 팔꿈치에 문제가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 1라운드 상위지명감이라던 김승현은 순번이 밀렸고, 그렇게 삼성 순번까지 내려오자 1차 지명 당시에도 혼자 김승현을 강력하게 지지했던 이성근 팀장이 김승현을 지명하면서 삼성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 지명 이후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고, 이후 UCL 수술[1]까지 받았다.

2.2. 2016 시즌

부상 때문에 육성선수로 전환됐다. 이후 재활과 체중 감량, 투구폼 교정에 들어갔고 8월 들어 라이브 피칭에 들어갔다.

8월 25일 삼성 라이온즈 3군 소속으로 연천 미라클과의 경기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 투구영상 투구폼 연속사진 2군 등판 이야기도 나왔으나 2군 경기에는 나오지 못했다.

비록 2군 경기에는 나오지 못했지만 이후 컨디션이 나아지면서 9월 28일 1군 선수단에 합류했고, 29일 정식선수로 전환됨과 동시에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9월 29일 NC와의 더블헤더 1차전에서 정식 프로데뷔전을 치뤘다. 팀이 2 대 10으로 크게 지고 있던 8회 등판하여 1이닝동안 15개의 투구수로 1탈삼진을 기록하며 퍼펙트로 깔끔하게 막아냈다. 이날 직구 최고 구속이 150km가 나오고 직구 평균구속이 147km가 나왔으며, 슬라이더도 140km를 기록했고 우려했던 제구도 제법 나쁘지 않았다. 특히 체중 이동이 좋았다는 평. 비록 1경기지만 삼성의 메말랐던 투수팜에 한 줄기 빛이 될 모습을 보였다.

2.3. 2017 시즌

2월 18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연습경기에 8회 등판해 1이닝 1삼진을 기록했다.

2월 28일 히로시마 도요카프와의 연습경기에 등판해 1.1이닝 무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다.

3월 4일 KIA 타이거즈와의 연습경기에서 9회 등판해 1이닝 무실점했지만, 영 불안불안한 모습을 보여줬다.

3월 31일 KIA와의 홈 개막전에선 8회 등판하자마자 볼넷을 내주더니 나지완에개 만루홈런을 얻어맞았다.. 그뒤로 볼넷 - 뜬공 아웃 - 안타를 기록하고 강판.

4월 7일 KT와의 원정 1차전에서 8회 2사 상황에서 볼넷을 내준 장지훈 다음에 등판하여 2루수 땅볼로 아웃카운트를 잡았으나, 9회 볼넷을 허용한 뒤 희생번트[2]-안타-고의사구로 장작을 쌓고 강판당했다. 결국 권오준의 초구가 1타점 희생플라이가 되어 패전투수가 되었다. 이날 우규민이 7이닝 2실점으로 QS+를 기록한 뒤 나온 백정현이 2타자 연속 삼진을 잡으며 쾌투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접전 상황에서 신인 둘을 쓰고 진 김한수는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5월 21일 한화전에서 벤치클리어링을 유발한 빈볼로 퇴장당한 윤성환의 뒤를 이어 마운드에 올랐는데, 1이닝만에 빈볼[3]로 퇴장당해 하루 경기에서 연달아 2명의 투수가 퇴장당하고 말았다(...)거기다가 다음경기 선발이 퇴장당한거까지 생각하면...

24일 kt전에서 5이닝 3실점한 선발 레나도의 뒤를 이어 등판했다. 1이닝 1실점. 투구수는 19개.

6월 들어서 최충연이 롱릴리프로 전환하면서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장필준도 마찬가지로 안정감을 되찾으면서 등판하는 경기가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제구력에 문제를 보이는 가운데 피안타가 늘면서 6월 28일 임현준과 함께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7월 9일 앤서니 레나도 대신 1군에 올라왔다. 12일 kt전에서 1이닝 2실점을 기록하면서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이었던 14일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7월 28일 김성훈, 안성무와 함께 1군에 올라왔다. 부상 복귀를 앞둔 재크 페트릭을 대신해 8월 21일 1군에서 제외됐다. 9월 초 팔꿈치 통증 때문에 1달간 재활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으며 시즌 아웃됐다.

2.4. 2018 시즌

3월 27일 KIA전 17 : 0의 스코어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8회말에 등판하여 1이닝을 무실점으로 잘 막아내었다.

3월 29일 KIA전에서 백정현이 4.1이닝 4실점으로 5회를 못채우고 내려갔으나 다음으로 올라와 1.2이닝 무실점으로 잘 막아내었다.

3월 30일 넥센전에서 연장 11회초 8 : 8 상황에 등판하여 1이닝은 힘겹게 막아냈으나 연장 12회초 결국 김민성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으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이날의 기록은 1.2이닝 2실점.

4월 4일 NC전에서 신예 양창섭이 5이닝 2실점 호투를 한 뒤6회말에 올라와 1.2이닝 2탈삼진의 호투를 보여주었다

4월 7일 SK전에서 연장 11회말에 등판하였으나 연장 12회말 투아웃 상황에서 초구에 노수광의 끝내기 홈런을 맞고 패전투수가 되었다. 삼성 투수들의 호투가 이어진 경기여서 더욱 아쉬운 상황이다.

5월 17일 LG전에서 9회초 3대2 접전 상황에서 등판하였다. 아웃카운트 두개만 잡으면 되었는데 무려 5실점이나 하면서 무너졌다. 더욱이 9회말 강민호의 3점 홈런이 나오면서 9회초의 대량 실점이 패배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마무리 장필준과 계투 심창민, 우규민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팬들은 중요한 순간에 차라리 김승현을 올리라고 했지만 이 경기로 인해서 그런 이야기는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5월 22일 6이닝 4자책을 기록한 윤성환에 이어 7회 등판해 1이닝 무실점하였고, 7회와 8회 각 5점을 타선과 상대 수비진이 퍼주어 승리투수가 되었다. 프로 데뷔 첫승.

5월 23일 연이틀 등판하여 최고구속 무려 153km/h를 찍으며 1과 1/3이닝 2피안타 3K무실점으로 홀드를 올렸다.

5월 26일 두산전에서 아델만 대신 등판하였다. 지미 파레디스에게 몸에 맞는 볼을 허용해 밀어내기 한점을 내줬지만 이사 만루 상황에서 155km/h을 찍으며 삼진으로 막아냈다.

6월 21일 백정현이 복귀하면서 대신 1군에서 제외됐다.

시즌 말미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시즌 성적은 지난해보다 향상되어서 평균자책점이 4.45가 되었다. 또한 시즌 중 직구 구속이 155km가 찍히며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볼넷도 작년의 절반인 20개. 하지만 아직 제구가 불안하기 때문에 더 안정적으로 던져주어야 필승조 진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시즌이 끝나고 연봉이 5500만원으로 인상되었다. 선수의 연봉과 팀을 위해서라도 제구를 잡아 불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것이 2019시즌 가장 필요한 점이다.

2.5. 2019 시즌

연습경기는 물론이고 시범경기에서도 제구에 문제를 보이며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5월 7일 김도환, 다린 러프와 함께 1군에 등록됐다.

5월 10일 롯데전에서 7대5로 지고 있는 8회에 올라와서 강로한과 허일은 삼진으로 잡았지만 이대호한테 2루타 허용한 후 손아섭, 전준우, 오윤석까지 4타자 연속 4안타를 맞고 거기에 김문호 타구 때 박계범이 실책을 범하면서 3실점 2자책점 기록했다. 구속은 154km까지 나왔지만 제구가 들쑥날쑥하는모습은 여전했다. 5월 13일 공민규와 함께 1군에서 제외됐다.

7월 2일 김시현 대신 1군에 등록돼 당일 KT전에서 3점 뒤진 5회 2사에 등판해 이후 6회초 팀이 동점을 만든 후인 6회말에도 등판했으나 안타와 볼넷 1개씩을 내주며 강판됐고, 이어 등판한 최지광의 분식회계로 출루시켰던 주자 모두 득점해 패전투수가 됐다. 8월 9일 이학주와 함께 1군에서 제외됐다.

9월 18일 원태인 대신 1군에 등록됐다.

시즌 후, 상무 야구단에 합격해 군복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3.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6 삼성 2 2 0 0 0 0 - 0.00 1 0 0 1 0 0 0.50
2017 41 43⅔ 0 3 0 0 0.000 5.77 51 7 40 37 31 28 1.95
2018 28 32⅓ 1 3 0 0 0.250 4.45 48 3 20 29 18 16 1.95
2019 14 12⅔ 1 1 0 0 0.000 6.39 11 0 10 4 12 9 1.58
KBO 통산
(4시즌)
85 90⅔ 2 7 0 2 0.222 5.26 111 10 70 71 61 53 1.86

4. 기타

  • 대학 4년간 홈런을 하나도 맞지 않았는데, 졸업반이던 15년에 처음으로 홈런을 허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선수는 2차 10번으로 마지막 순번에 삼성의 지명을 받아 입단한 최승민.
  • 대학 입학 때 85kg이던 몸무게가 3학년 때 109kg까지 올랐다가 팔꿈치 수술 이후 115kg까지 올랐다. 프로 입단 후에는 햄버거나 탄산음료를 끊고 체중 조절을 했다. 2016년에는 95kg까지 뺐다가 2017년 들어서는 100kg 전후로 유지한다고.
  • 2군으로 내려가 있던 2017년 8월 26일과 27일 경기가 방송 중계되는 와중에 경기 내내 큰 목소리로 파이팅을 불어넣으며 이틀 연속 중계진으로부터 주목받았다. 보통 덕아웃에서 야수가 응원을 주도하고 투수는 소극적인 경우가 많은데다, 27일 경기의 경우 8회까지는 팀이 뒤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여전히 큰 목소리로 응원하면서 다른 선수들과 대비됐다. 또한 김승현은 8회말에 등판했는데, 9회 초에 팀이 역전한 후 9회 말에는 투수가 바뀌었는데도 등판 때 신었던 스파이크도 갈아신지 않고 여전히 응원에 매진하다 경기가 거의 종료되기 직전에서야 스파이크를 갈아신었다. 이 날 경기의 해설위원이었던 이종범은 그런 김승현을 향해 학창 시절 야구를 잘 배웠다고 칭찬을 했다[4]


[1] 팔꿈치 내측 인대 수술. 기사에는 MCL 수술이라고 나왔는데, MCL은 무릎 내측 인대 수술이다.[2] 무려 지명타자 이진영이 댄 (...) 번트다.[3] 고의적 빈볼이 아닌 제구 미스로 인한 사구로 보였으나, 이전의 벤치클리어링 사건으로 인해 사구에 대해 엄격하게 처분한 듯. 실제로 본인도 모자를 벗고 차일목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4] 같은 건국대 출신이라 이종범에게는 대학 후배가 되기에 농담 삼아 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