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26 08:32:04

윤형배


파일:나무위키+유도.png   개명 전 이름이 윤형배였던 현 한화 이글스 소속의 투수에 대한 내용은 윤호솔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이름 윤형배(尹炯培)
생년월일 1969년 4월 20일
출신지 부산광역시
학력 남일초 - 대신중 - 경남고 - 경성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2년 롯데 자이언츠 신고선수 입단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1992~1997)
쌍방울 레이더스 (1997~1999)
지도자 롯데 자이언츠 2군 투수코치 (2009~2010)
롯데 자이언츠 1군 투수코치 (2011)
롯데 자이언츠 2군 투수·재활코치 (2011~2012)
kt wiz 투수코치 (2013~2014)
kt wiz 2군 투수코치 (2015)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2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61번[1](1992~1997 시즌 중)
공석 윤형배 (1992~1997 시즌 중) 손민한
(1998~2011)

1. 소개2. 선수 시절3. 플레이 스타일4. 지도자 시절5. 여담

1. 소개

롯데 자이언츠, 쌍방울 레이더스 소속 투수. 롯데 자이언츠의 전직 야구선수 출신이자 현재 롯데 자이언츠의 프런트 운영지원팀원 및 2군 상동야구장 소장으로 겸직된 윤동배의 동생이다.

2. 선수 시절

남일초등학교, 경남중학교, 경남고등학교, 경성대학교(1987학번)를 졸업하고 1991년 지명을 받지 못해 롯데 자이언츠연습생으로 입단하였다. 1992년 윤학길, 염종석, 박동희 3명의 에이스 다음가는 투수로 활약하며 8승을 올렸고, 1992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8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롯데의 V2에 공헌하였다.

1993년에는 평균자책점 2.46에 14승 9패 3세이브를 기록하며 부상으로 시달리던 염종석을 능가하는 성적을 올리며 롯데의 에이스로 등극, 커리어 하이를 달성. 특히 이 시즌에 빙그레 이글스노장진[2]과 대결을 벌여 1:0 완봉승을 이끌어 냈던 경기는 롯데 올드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노장진은 알려진 대로 선수 생활을 제대로 지속하지 못 했고 윤형배 역시 1994년부터 부진하면서 명승부로 회자되지는 못 하고 있다.

1994년부터 방위 복무를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좋았던 폼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다. 특히 몸관리에 실패하면서 갑자기 살이 쪘는데 이후 구위와 제구력이 모두 하락한다. 당시 방위병은 홈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지만 팀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6.49의 평균자책점에 승리없이 3패만 기록했다.

방위 복무를 마치고 난 1995년에는 윤학길, 주형광, 강상수, 염종석에 이은 팀의 5선발로 활약하면서 완투 2차례 포함 5승을 거두며 부활의 조짐을 보이나 싶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96년 단 1승에 그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1997년 쌍방울로 이적하여 1999 시즌을 마치고 조용히 은퇴하였다.

3. 플레이 스타일

전성기의 윤형배의 직구 최고 구속은 140km/h가 채 안되는 수준으로 당시 KBO의 수준을 생각해도 강속구 투수라고 하기에는 힘들다. 평균보다는 조금 빠른 구속의 투수로 평가받았고 변화구도 리그 최정상급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나며 리그 정상급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컨트롤과 지저분한 공 끝 때문이었다. 당시 윤형배가 던지는 공의 80%이상이 포수가 미트를 댄 지점으로 정확히 날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거기다가 공 끝도 지저분하니 타자 입장에서는 쉽게 칠 수 있을 것 같아 배트를 내지만 좀처럼 정타가 나지 않았다. 이런 지저분한 공끝 때문에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타자들의 배트가 나무젓가락 마냥 부러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4. 지도자 시절

2009년부터 롯데 자이언츠 2군 투수코치를 맡았다.[3] 2011년에는 재활코치까지 겸임하였다.

2012년 시즌 종료 후 롯데 자이언츠에서 계약 해지되었다.

2013년 kt wiz의 투수코치로 합류하여 2014 시즌부터 현장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2015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했다.

5. 여담

롯데 자이언츠스카우트 팀장으로 있다가 2012년 상동야구장의 소장으로 부임하여 현재 스카우트 및 운영지원팀까지 겸직 중인 형 윤동배롯데 자이언츠에서 투수로 뛰었다.[4] 윤형배와 달리 정식으로 지명받아 입단했지만, 통산 성적은 윤형배만 못하다. 지금도 흔치 않은 형제가 한 팀에서 선수생활을 한 특이 케이스로, 당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형이 승리투수가 된 경기에서 동생이 세이브를 기록하며 마무리하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지만 아쉽게도 그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1] 특이하게도 롯데 윤형배와 NC 윤형배 모두 등번호 61번을 손민한에게 넘겼다.[2] 공주고 3학년 에이스 투수로 1992년 청룡기 결승전에서 선린상고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3] 2011년에는 1군 메인 코치로 시작하였으나 저조한 성적으로 인해 주형광과 시즌 중 보직 변경.[4] 원래는 타자였지만, 투수로 전업하였다. 아들도 야구선수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