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
1984 |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9번 | ||||
팀 창단 | → | 박용성 (1982) | → | 차동열 (1983~1983.6.26.) |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번 | ||||
이성득 (1982) | → | 박용성 (1983~1988) | → | 이종운 (1989~1997) |
박용성 朴庸成 | Park Yong-Seong | |
출생 | 1958년 9월 30일 ([age(1958-09-30)]세)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마산상고 - 동아대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82년 롯데 자이언츠 창단멤버 |
소속팀 | 한일은행 야구단 (1981) 롯데 자이언츠 (1982~1988) |
병역 | 예술체육요원[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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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던 前 야구 선수. 포지션은 외야수.2. 선수 경력
1982년 롯데 자이언츠의 원년멤버로 시즌 초반에는 경남고 투수인 조용철이 던진 공에 왼쪽 손목이 골절되는 부상 때문에 별로 출전하지 못했으나 그 후 52경기만에 11홈런을 기록하며 프로 원년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이듬해인 1983년엔 97경기 .287 17홈런 63타점을 기록하며 커리어하이 시즌을 맞이하며 김용철, 김용희와 함께 롯데 중심 타자 중 한명으로 우뚝 섰다. 1984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는 김시진을 상대로 2회초에 2점 홈런을 기록하여 팀의 승리에 공헌하였다.[2]그러나 안타깝게도 박용성은 잦은 부상으로 더 이상 두자릿수 홈런을 치지 못하고 이후 1988년 11월 자유계약선수로 풀려난 후 그대로 은퇴하게 된다. 현재 김해시 진례면에서 삼영하이텍을 운영하는 사업가로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