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9 10:24:45

김재환(야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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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시즌 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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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환의 수상 경력 / 보유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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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16

보유 기록
연속 경기 타점 13경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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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2018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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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KBO 리그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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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KBO 리그 홈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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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KBO 리그 타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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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환의 역대 등번호 /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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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역대 주장
김재호
(2016 ~ 2017. 7. 30.)
김재환
(2017. 7. 30.~2017. 10. 16.)
오재원
(2017. 10. 17.~)

두산 베어스 등번호 27번
이승엽(2007) 김재환(2008) 용덕한(2009~2011)
용덕한(2009~2011) 김재환(2012~2013) 오장훈(2014~2015)
두산 베어스 등번호 27번
김명제(2008~2010) 김재환(2011) 용덕한(2012)
두산 베어스 등번호 32번
김선우(2008~2013) 김재환(2014~)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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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두산빠따김재환.jpg
두산 베어스 No.32
김재환(金宰煥 / Jae-hwan Kim)
생년월일 1988년 9월 22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강원도 춘천시
출신학교 속초 영랑초 - 상인천중 - 인천고
포지션 포수[2]1루수좌익수, 지명타자[3]
투타 우투좌타
신체조건 183cm, 90kg
프로입단 2008년 2차지명 1라운드 전체 4순위(두산)
소속팀 두산 베어스 (2008~)
등장곡 Zion I & The Grouch - Drop It On The 1
응원가 이정 - '다신'[4][5]
군복무 상무 피닉스 (2009~2010)
연봉 7억 3000만원 (55.3%↑, 2019년)

1. 소개2. 응원가3. 아마추어 시절4. 프로경력
4.1. 2008 시즌4.2. 2009~2010 시즌 (상무 피닉스 소속)4.3. 2011 시즌4.4. 2012 시즌4.5. 2013 시즌4.6. 2014 시즌4.7. 2015 시즌4.8. 2016 시즌4.9. 2017 시즌4.10. 2018 시즌4.11. 2019 시즌
5. 논란
5.1. 도핑 사건
6. 플레이 스타일7. 기타8. 연도별 성적

1. 소개

파일:김재환대기타석.png

두산 베어스외야수이자, 금지약물 복용 선수.

2008년 공격형 포수로 상위 드래프트로 입단 후, 입단 하자마자 팬클럽이 생겨날 정도로 구단과 팬들에게 차세대 4번타자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김경문 감독의 총애속에 일찍 군 문제까지 해결했지만 두산 포수진의 두터운 장벽, 입스 증후군, 잦은 포지션 변경 등으로 8년 동안 1군과 2군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전전하였다.

그러던 도중 데뷔 8년 만인 2016년, 김현수의 메이저리그 진출 공백으로 생겨난 기회에서 주전 외야수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과거의 도핑전력이 수면위로 떠오르며 두산 팬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야구팬들에게 현재의 그 성과를 환호받지 못하고 있다.

2. 응원가

김재환 응원가

3. 아마추어 시절

파일:kiki111.png파일:dkekekek.png

인천고 재학 시절.

태어난 곳은 강원도 춘천으로, 군인이던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에서 많이 이사를 다녔다고 한다. 속초 영랑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부에 입단했고, 이후 한 달만에 아버지가 강릉으로 발령을 받아 혼자 가족과 떨어져 친척집을 전전하며 야구부 생활을 했다고 한다. 6학년 때 야구를 그만뒀다가 설악중학교에 진학, 다시 야구를 시작했다. 3학년 말 무렵 상인천중에서 스카웃했고 가족과 떨어진 인천에 거주하며 이후 인천고로 진학한다. 당시 인천고는 이명기, 김성훈, 김용태, 이재원, 박윤, 김진우 등 우수한 멤버들이 있어 전국대회 성적이 좋았고,[6] 2006년, 2학년 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홈런상을 받았다. 인천고 시절 1년 선배인 이재원에게 밀려 포수 경험이 많지 않았으며, 고1 때 당한 부상의 여파로 1년 유급을 하기도 해 한정적인 포수 엔트리에 경남고 장성우, 광주 동성고 윤도경에게 밀려 최종 명단에서 탈락했다.



2007년 8월 17일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홈런을 치는 장면이다. 당시 홈런을 맞은 투수는 지금 팀 동료인 허준혁이다.

4. 프로경력

두산은 홍성흔의 지명타자 포지션 전향으로 인한 공백에 대비해 2008년 드래프트 2차 1라운드에 김재환을 지명한다.(계약금 1억 5000만원, 연봉 2000만원 총액 1억 7000만원) 본인은 SK에 지명이 될 줄 알고 인천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7] 2008년 프로야구 신인선수 중에서는 김재환 외에도 포수자원이 많은 해였다. 롯데 1차지명 장성우, 한화 2라 이희근, LG 3라 김태군, KIA 5라 백용환, LG 7라 박세혁(고려대 진학 후 2012년 두산 입단) 등. 두산은 2차 1번 김재환 외에도 6라운드에서 청소년 국가대표팀 포수출신 윤도경을 뽑았고, 수비에서 고교 최고로 평가받았으나 체구가 작아 드래프트에서 저평가된 덕수고의 최재훈을 신고선수로 뽑았다.

신인때부터 상무에서까지 늘 2군을 초토화 시켰다. 매년 전지훈련에서 MVP급 활약을 했으나, 정규시즌 중반만 되면 페이스가 떨어져 2군으로 내려가곤 했다. 후에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 입스증후군에 시달리며 수비와 멘탈 불안이 공격에도 영향을 미쳐 번번히 균형이 무너졌다고. 도핑 판정을 받은 2011년을 포함, 데뷔 시즌인 2008년부터 2016시즌 전까지 이렇다 할 1군 기록이 없었고, 데뷔 8년차인 2016년에 드디어 처음으로 100경기 이상을 소화하였다.

4.1. 2008 시즌

파일:김재환신인시절.jpg
14경기, 0.143, 21타수 3안타

2007년 SK 와이번스에게 뼈아픈 패배를 당해 준우승을 한 후, 다시 한번 칼을 갈던 두산과 당시 김경문 감독은 타격으로는 검증된 신인 김재환을 교육리그, 마무리캠프, 스프링캠프 모두 참가시켰고 시범경기 등에서 뛰어난 타격 능력으로 당시 감독이던 김경문의 총애를 받았다. 메이저리그 유턴파 투수 김선우의 부진으로 2008년 4월 15일에 1군 콜업이 되었고, 4월 18일 SK전에서 9회말 대타로 출장해 김원형에게 데뷔 첫 안타를 기록했다.[8] 이후, 4월 21일 채상병의 부상으로 9회초부터 11회까지 포수 마스크를 쓰며 수비로도 첫 데뷔를 한다. 2008년 여름까지 채상병의 백업포수로 지내다가 6월, LG에서 포수 이성열최승환이 트레이드 되어 두산에 왔고, 김재환은 출장 기회를 잃고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 퓨처스 올스타전에 출전할만큼 신인치고는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신인시절 특이한 사담이라면 경기 전 타격훈련을 하다 배트가 날아가 팀 내 최고참 김동주의 팔에 정통으로 맞았고 타박상으로 김동주는 그 날 경기를 빠져야 했다. 입단한지 몇개월 되지 않은 김재환은 어쩔줄 몰라했지만 김동주는 괜찮다고 훈련하라고 하고 락커룸으로 돌아갔다고.. 입단 하자마자 팬클럽이 결성될 만큼 반응이 있어 구단에서 대놓고 밀어주는 젊은 루키 중 하나였다.[9] 오죽하면 감독들 마다 야구만 잘하면 전국구스타라는 말을 했을 정도. 그래서 당시 가장 꽃미남으로 손꼽히던 홍성흔이 자신의 후계자라 인터뷰에 대고 말할 정도 였다
포수는 아무래도 조련에 시간이 걸리는 포지션이고, 고교 지명 때부터 타격에 비해 수비가 약하다는 지적을 받아 오던 터라, 구단에서는 트레이드 된 최승환과 채상병, 용덕한으로 주전을 꾸릴 수 있어 군 문제를 일찍 해결하자는 의미에서 김재환을 바로 상무에 입대시켰다. 유급했기 때문에 나이도 입단 동기보다 한 살 많기도 했고, 본인은 일찍 군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해 군대에 갔다고 한다.

4.2. 2009~2010 시즌 (상무 피닉스 소속)

파일:kiki1112222.png

2009년 77경기 0.301 13홈런 49타점
2010년 101경기 0.316 21홈런 124안타 101타점

불사조 시절에 그야말로 2군을 씹어먹었다(...) 특히 2010년에는 같은 시기 상무에 입대한 두산 동료 최주환과 함께 역대 퓨쳐스리그 타점 1, 2위를 쓸어담으면서 도장깨기를 시전하고 다녔다.
2009년에는 2년차 포수를 주전으로 기용하는 상무의 관례로 인해 삼성 라이온즈이정식에게 밀려 주로 지명타자로 출전했다. 2010년이 되어 주전 포수 자리에서 뛰나 싶었더니, 이번에도 삼성 라이온즈 출신의 이지영에게 밀려 포수 및 1루수, 지명타자 자리를 오가면서 경기에 나섰다. 하지만 타격만은 확실해서 2010 시즌 북부리그에서 홈런 21개, 101점을 기록하며 타점왕에 올랐고 두 차례의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다. 상무 감독의 부탁으로 원소속팀 복귀 전 사기 진작을 위해, 잠실 구장에서 싸이클링 히트에 대한 기록상을 따로 시상했다.

제대 즈음하여 대륙간컵 대표팀에 선발되어, 타순이 전체적으로 부진한 가운데 지명타자 자리에서 홀로 분전하며 4할대 타율과 홈런 3개를 기록하였다. 2군 투수들의 실력이 1군 투수들의 실력과 차이가 커, 1군 적응 기간을 잘 거친다면 하드웨어도 탄탄하고 어깨도 훌륭하여 주루를 뺀 4툴 플레이어가 될 가능성이 있는 선수라고 평가받았으며, 당시 번번히 포스트 시즌에서 고배를 마시던 두산팬들은 그의 제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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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간컵 국가대표 시절

4.3. 2011 시즌

1군 30경기 0.185 54타수 10안타 2홈런 4득점 8타점
퓨처스 40경기 타율 2할8푼4리 9홈런 24타점

2011시즌 제대 후 복귀 한 두산의 포수 포지션은 사정이 많이 달라져있었다. 홍성흔, 채상병 이후 안방을 김재환에게 맡기려 했던 두산은 직전해, 하위 라운더(2006년 드래프트 2차 8라운드 59순위)였으나 공수 양면에서 수준급 실력을 갖추고 등장한 신인왕 양의지가 용덕한 마저 밀어내고 주전을 차지하고 있었다. 본인이 포수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팀에서도 어떻게든 활용도를 높히려 했으나, 주전 양의지-백업 용덕한을 굳힌 두산은 김재환의 타격을 살리는 쪽을 선택한다. 2011년 4월 13일 롯데전에서 데뷔 첫 타점을 기록했고, 이튿날 4월 14일 롯데전에서 데뷔 첫 홈런을 기록하였고, 팀은 7:6으로 승리하며 그 날 수훈선수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데뷔시즌 처럼 여름 쯤 되어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 이 시기에 입스가 왔다고 밝혔다.
파일:데뷔첫홈런후.png
데뷔 첫 홈런 후 수훈선수 인터뷰를 하는 장면
신인 때부터 심리적인 부담감을 많이 느꼈다.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긴장되고 불안해서 땀이 날 정도였다. 스스로 ‘고쳐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는 안 될 거야’라는 불안감을 안고 살았다. 벗어나기 위해 죽어라 연습을 해도 이게 잘 던지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고 못 던지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니까 몸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다르더라. 좌절도 많이 했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포수를 했기 때문에 쉽게 놓고 싶지 않았다.

2011년 시즌은 두산베어스 구단 역사상 가장 최악의 한 해 중 하나였다. 각종 추문과 스캔들로 감독이 사임하고, 안팎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김재환은 제대로 기용되지 못했고 결국 2군에서 코칭스탭의 포지션 변경 요구에 포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시즌을 마쳐야했다.

2011년 10월 도핑 양성 반응이 나왔다.

4.4. 2012 시즌

1군 13경기 0.128 39타수 5안타 1홈런 7득점 1타점

무기한 훈련정지로 인해 비활동기간에 배명고등학교 야구부와 함께 훈련했다고 한다.[10] 약물에 대한 징계 치곤 (심각할 정도로) 빨리 해제되었지만, 스프링캠프에 참여도 못하고, 겨울을 통째로 날린 탓에 시즌 초반, 부상과 부진으로 일찌감치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엔트리에 들었지만, 1차전 스코어 8:5로 지던 10회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임재철의 대타로 나와 중견수 플라이로 아웃되고 2, 3, 4차전에서는 출장하지 못했다.

신생구단 창단에 따른 2차 드래프트와 트레이드 등에 매번 이름이 오르내렸다. 보호선수 명단에 포함 되었는지 아닌지는 모르나, 약물전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떡밥이 나올 때마다 타구단 팬들이 가능성을 점치던 타자 중 하나였다.

4.5. 2013 시즌

1군기록 없음

퓨처스 32경기 타율 2할2푼4리

부상, 출전 기회 부족 등으로 최악의 슬럼프를 겪었던 시즌이다.

시즌 중 1군 콜업이 단 한번도 되지 않았다. 없던 종교도 가지고, 여행도 다녔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4.6. 2014 시즌

파일:1012선발출장.jpg
1군 52경기 0.306 85타수 26안타 3홈런 12득점 13타점

포수출신 송일수 감독 부임과 코치진(배터리 코치 강성우)의 권유에 따라 2년만에 다시 포수 수비 훈련을 받았다. 김재환으로서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어린시절부터 평생을 써왔던 포수 마스크를 다시 쓰게 되었다. 2013시즌 양의지의 백업으로 포스트 시즌 최고의 활약을 한 최재훈포스트시즌의 홈 충돌로 인한 어깨부상으로 수술과 그 재활이 길어짐에 따라 양의지의 백업포수 및, 외국인 투수 니퍼트의 전담포수로 출장했다.

5월 27일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대타로 나와 추격의 2점 홈런을 쏘아올렸다. 이 때 기아 K5 홈런존 구조물을 직격하는 홈런을 때리면서 기아 K5를 얻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11] 이후 최재훈이 복귀하면서 19일자로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다 7월 13일에 투수 강동연이 말소된 자리에 다시 등록되었다. 양의지최재훈 둘다 부상을 안고있기 때문에 대비 차원이었다.

10월 12일 LG 트윈스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6번타자 1루수로 선발 출장했으나 3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시즌 중반부터 말까지는 송일수 감독이 타격 능력이 좋지않은 최재훈은 계속 기용하고 대타로 나와서 홈런을 때리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준 김재환은 2군에 박아놓거나 1군에선 벤치에만 앉아놓게 해서 애증의 존재가 되었다. 오죽하면 20인 보호명단에 최재훈을 풀고 김재환은 풀지 말자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2014 시즌이 2016년 이전 데뷔 후 가장 많은 출장 경기수를 보장 받은 해였고, 성적도 좋았다. 본인은 직전 해 최악의 슬럼프에 빠져있었고, 선수로서의 미래도 불투명하던 상황에 포수로서 한번 더 기회를 받고 자주 타석에 나갈 수 있어 만족한다고 평한 시즌이었다. 그만큼 팀 안팎으로 기대를 받는 유망주였던 김재환은 자신감을 많이 잃은 상태였다.

4.7. 2015 시즌

파일:2015김재환.jpg
1군 48경기 0.235 153타수 36안타 7홈런 24득점 22타점

시즌 전 김태형 감독에 의해 오재일과 주전 1루수 후보로 낙점 되었다.[12] 더 이상 포수 포지션에 남은 미련도 없다고 밝히며 본격적인 1루수 주전 싸움을 위해 전지훈련 때부터 많은 노력을 했다.

3월 28일 개막전에서 NC 다이노스의 투수 임정호에게 시즌 1호 홈런을 때려냈다. 4:4에서 4:5가 되는 영양가 만점 역전 홈런.
3월 29일 NC 다이노스 와의 개막 시리즈 2차전에서 팀이 1:0으로 앞서고있는 5회 무사 2,3루 위기 상황에서 테임즈의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를 깔끔하게 호수비로 처리하며 선발투수 장원준이 두산에서의 이적 후 첫 경기에서 승리투수가 되는데 크게 기여했다. 김재환, 역전을 막아내는 환상적인 점프 캐치 만약 이 타구를 잡지 못했다면 최소 2루타는 되었을 것이며, 두산은 역전을 당했을 것이다. 다만 공격에서 3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다. 이 날 두산은 4:1로 승리를 거두었다.

5월 9일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 9회말 동점타를 때려냈는데, 송구가 빗나가서 3루에 도착한 홍성흔이 냅다 홈으로 달려서 끝내기가 되었다.[13]

그러나 후반기 들어서 페이스가 많이 떨어졌고, 오재일에게 경쟁 포지션에서 밀려나면서 다시 2군으로 내려가 시즌을 마무리 해야 했다. 때문에 2015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포함되지 못하며 우승반지를 얻지 못하였다. 이 당시, 김태형 감독이 김재환의 말소에 대해 '도저히 칠 것 같지 않다' 라고 발언하여 김재환의 2015 시즌은 '도칠않'이란 별명도 생겼다.

4.8. 2016 시즌

파일:김재환골글.png
김재환 선수는 정말 이렇게까지 잘 해줄지는 솔직히 정말 몰랐고..
2016 시즌 우승 다큐멘터리에서 시즌을 돌아보며 김태형 감독의 인터뷰 中 #
시즌 초에는 그냥 김현수의 메이저리그 공백을 메꿔줄 후보 유망주에 불과했지만 4월 초 12타수 3안타 중 2개가 홈런일 정도로 좋은 타격감을 보여주고 있었고, 이 타석 이후 이제는 확실하게 폭발적인 기량을 선보이기 시작하며 두산의 주전 좌익수와 팀의 4번타자로 자리매김한 동시에 두산 베어스 좌타자 역대 첫 30홈런 100타점을 달성[14]하고 본인 생애 첫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최고의 커리어를 기록했지만 동시에 잊혀져있던 과거의 주홍글씨가 부각되기 시작한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재환(야구선수)/2016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9. 2017 시즌

파일:재환타격.png
좋은 성적을 낼수록 자신의 약물복용으로 인한 논란이 커져갔던 시즌이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재환(야구선수)/2017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10. 2018 시즌

파일:므브프김재환.png
2018 시즌 KBO MVP

2년 전부터 시작된 타격이 더 발전하며 타이론 우즈 이후 20년만에 잠실홈런왕의 탄생을 알렸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생애 첫 MVP가 되었으나 본인의 약물 복용 때문에 팬들에겐 여전히 좋은 평가를 받진 못한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재환(야구선수)/2018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11. 2019 시즌

개막 시리즈 내내 주춤했으나 3월 26일 잠실 키움전 4번타자로서의 부활을 알렸다. 홈런 포함 3타수 2안타 4타점 1득점으로 맹활약, 팀 승리를 이끌었다.

3월 31일 대구 삼성전에서 5타수 3안타 6타점으로 그야말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3안타 중 2개가 만루홈런과 투런홈런의 연타석 홈런이였다.
'김재환 연타석포+6타점' 두산, 삼성에 주말 3연전 스윕

4월 20일 광주 기아전에서 시즌 4호 홈런을 쏘아올렸다. 타격감에 조금씩 불을 붙이고있다. 현재 7경기 연속 타점 행진 중이다.

4월 21일 광주 기아전에서 1회, 선제 투런포를 작렬했다. 이날 멀티히트로 타격감을 점점 되찾으며, 4번타자의 귀환을 알리고 있는 중. 8경기 연속 타점 행진 중이다.

4월 23일 고척 키움전에서도 5타수 2안타 2타점을 기록. 타점 부문 단독 1위와 9경기 연속 타점 행진을 이어갔다.

4월 24일 고척 키움전에서 홈런 포함 4타수 2안타 2타점을 기록하여 10경기 연속 타점 행진을 이어갔다. 본격적으로 김재환의 몰아치기가 시작 되었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4월 25일 고척 키움전에서 솔로 홈런을 기록하며 홈런 부문 7개로 단독 선두로 올라섰고 11경기 연속 타점 행진을 이어갔다.

4월 26일 잠실 두산전에서 4타수 1안타를 기록했으나 타점을 기록하지 못하며 연속 경기 타점 행진은 막을 내렸다.

5월 2일 대전 한화전에서 2사 만루 상황에서 좌중간을 가르는 3타점 적시 3루타를 쳤다. 그리고 상대 포수 최재훈의 실책으로 김재환까지 홈을 밟으며 4:1로 지고있던 경기를 4:5로 만들어 놓았다. 이떄 최재훈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세러모니를 펼쳐 논란이 되었다. 상대방 선수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5월 19일 SK 와이번스와의 시즌 5번째 경기에서 1회초, 박건우가 상대 투수 박종훈에게 몸에 맞는 공 을 얻어 내면서 2사 1루 상황에서 헤드샷을 맞으면서 박종훈은 규정으로 인해 퇴장 조취가 이루어 졌고, 오재일의 3점 홈런으로 득점 한 후 어지럼증 증세로 인해서 김인태에게 자리를 넘겨주게 되었다.

5. 논란

5.1. 도핑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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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29일, 파나마 야구월드컵 폐막 후 도핑테스트에서 테스토스테론이 검출되었다. 본인의 말로는 9월 말 경기를 마치고 친구가 일하는 스포츠클럽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는데, 얼굴이 피곤해 보인다며 건네준 약을 일반 피로해소제로 알고 실수로 먹었다고 하는데, 이게 바로 약물 복용자들의 흔한 변명이다.[15]김재환 “실력으로 속죄하겠다”

이 사건으로 김재환은 선수 커리어에 영원히 남을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관련기사 당시 최고 수준의 징계가 10경기였다. KBO가 얼마나 도핑에 둔감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이에 일단 김진욱 감독이 무기한으로 팀 훈련 참가 금지의 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다음해 1월 6일 이 징계가 해제되었다. # 처음에 '무기한 징계'로 강한 처벌 방침이 보도되었던 것에 비해 결과적으로 비시즌 2달 반의 훈련 참가 금지라는 솜방망이로 끝난 셈.[16]

징계 후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 2016년 커리어를 다시 쓰며 주목 받았고 곧바로 질타의 대상이 된다.
봉인이 해제됐어요
ㅡ 금지약물 복용으로 받았던 자신의 출전정지 징계가 풀린 후 한 발언

이 발언은 당시 김재환이 약물복용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반성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고 해석이 될 여지가 상당하다. 약물이 스포츠계에 어떤 취급을 받는지 생각하면 여러모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반응이 많다. 사건 자체는 2011년에 일어났으나 하필 기사가 2011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 떠서 야구팬들의 관심이 온통 이곳에 쏠린데다가, 당시까지만해도 도핑 행위가 야구팬들 사이에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17] 김재환이 야구판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유망주여서 몇몇 두산팬들을 제외하면 거의 묻힌 사건이었다.

그러다가 2016년부터 갑자기 엄청난 활약을 하게되면서 이 사건이 재발굴되었고 모든 야구팬들이 알게 되었다. 한편 이 사건을 계기로 2012년 시즌부터 퓨처스리그 선수들에 대해서도 도핑검사가 실시되었다. 외국인 도핑 전수조사를 실시하게 만든 다니엘 리오스와 더불어서 이래저래 국내야구 도핑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봐야할지도.[18]

2016년 인터뷰 기회가 많아지면서 자주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게 되었는데, 본인도 여론을 알게 되었는지 시즌 초반에 하던 배트 플립도 하지 않고 발언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욕 먹는 것은 본인이 영원히 감수해야 할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꾸준히 반성하고 있는 모습, 도핑 문제 이외에는 그 어떠한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있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김재환 선수 본인도 최대한 자중하면서 지내려 노력하고 있다며 밝힌 바 있다.
Q.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어떻게 이겨냈나?
A. 이겨낸다고 생각할 수는 없고. 욕 먹는 것은 내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항상 죄송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려 한다.

각종 야구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 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전문 프로그램, 팟캐스트 등에서 김재환의 도핑 후 활약을 주제로 다룬 적이 있다. 전문가들의 여론은 강도 높은 비판을 유지하되, 선수 커리어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본인이 생각한대로 이 부분은 선수 커리어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지탄 받아도 방어할 도리가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잊을 만 하면 "이미 지난 일 갖고 그만좀 해라", "니 인성이나 똑바로 챙기고 다녀라", 혹은 "부러워서 그러는 것이다" 와 같은 말을 하며 무작정 쉴드를 치는 팬들이 있어 타팀 팬들과의 2차적인 마찰을 종종 빚고 있으며, 이 때문에 무고한 두산팬들은 물론이거니와 김재환 본인 또한 더더욱 까이는 계기만 생기고 있다.[19]

6. 플레이 스타일

인천고 시절부터 수비는 여타 포수들에 비해 영 아니라는 스카우터들의 평이 많았고 지금도 포수를 포함해 어느 수비 포지션을 가든 수준 이하의 수비를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비를 그토록 중시하는 두산이 2차 1라운드 지명권을 행사해 데려왔을 정도로 타격 포텐 하나는 진짜라는 평이 많았다.

이를 바탕으로 군 복무 시절 퓨처스리그에서 타점왕도 달성하고 사이클링 히트를 무려 2번이나 달성하는 등 2군에서는 더 보여줄 것이 없는 전형적인 2군 본즈형 타자였으나, 그의 타고난 파워에 비해 부족한 컨택과 선구안은 2군 투수들의 밋밋한 공을 쳐내는대는 충분했지만 1군에서는 변화구에 헛스윙질, 그리고 기껏 맞춰도 정타가 안 되서 힘을 살리지 못하고 아웃이 되기 일쑤였다. 매년 스캠에서 감독의 집중조명을 받고 시즌 초 1군에서 기회를 받으나, 한심한 타격 성적을 내고[20] 점차 1군과 2군을 들락날락 거리다가 끝내는 2군에서 시즌을 마치는 것이 일상인 전형적인 1.8군급 타자 생활을 몇 년간 반복하였다. 오죽하면 2015년에는 김태형 감독이 대놓고 "도저히 칠 것 같지 않다"는 코멘트를 남기며 2군으로 보내버렸다. 이 때 탄생한 단어가 도칠않으로 두산 타자들이 타격에서 삽질할 때마다 쓰인다.

그러다 2016년들어 컨택과 선구안 능력이 급상승하며 힘을 드디어 살릴 수 있게 되었고, 순식간에 잠실에서 30+홈런을 칠 수 있는 능력의 거포로 거듭나게 되었으나, 그가 주목받기 전 시절에 한 돌이킬 수 없는 행위로 인해 지금의 그 성과를 대부분의 팬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타격폼은 김재환 본인이 켄 그리피 주니어를 그대로 따라한 것이라 밝혔으며, # 본인에게 특화된 타격폼을 선보이며 2016년을 기점으로 리그 최정상급 거포가 되었다. 다만 극단적인 어퍼스윙이다 보니 낮은공에 대처를 잘하고 오히려 높은공에 약점을 보인다.

수비력은 원래 포수출신이고, 1루수를 거쳐서 좌익수를 맡게 되었기 때문에, 좌익수 전향 후 초반엔 수비력은 리그 하위권 수준에 머물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수비훈련등을 하며 보완한 결과, 지금은 리그 상위권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리그 평균 이상의 수비는 해주고있으며, 특히 포수 출신 답게 강견이라 펜스플레이 등을 활용해 주자를 아웃시키는 장면도 많이 목격할 수 있다.

7. 기타

  • 입단 하자마자 팬클럽이 생겼었다. 대충 검색해도 그 시절 오글거리는 사진들을 많이 찾을 수 있다.
  • 남자다운 외모와 달리 목소리가 상당히 의외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포수를 맡으며 과하게 성대를 사용하는 바람에 물혹이 생겨, 병원에서 목을 더이상 써서는 안 된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 하지만 이런 사정을 모르는 팬들은 김재환의 데뷔 첫 인터뷰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팀 동료인 민병헌과 같은 과라고 할 수 있겠다.[21] #

    데뷔 첫 홈런을 친 경기에서 인터뷰 (3:12~)
  • 위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홈런을 친 상황을 설명해달란 말에 "투아웃에.. 6대 4였고.." 하며 진짜 경기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괜히 뇌가 청순하다는 말이 나오는게 아니다 당황한 아나운서가 어떤 공이었는지 세심하게 묻자 그때에도 '써클 체인지업. 써클 체인지업였는데...' 하고 말한다. 당시 이 인터뷰는 매우 화제가 되어서 결국 기사까지 났다. '무서운 아기곰' 김재환, 인터뷰는 진짜 새내기 이후 진행된 MBC <야구 읽어주는 남자> '야수와 미녀' 김재환 편에서 밝히길, 주변에서 대체 뭐하는 거냐고 질타를 많이 받았다고.
  • 말주변이 심각하게 없고 인터뷰를 정말 못한다. KBSn 해설위원 안치용이 대놓고 인터뷰 연습 좀 하라고 디스하기도 했다. # 2016년 인터뷰를 많이 하게 되면서 나아지긴 하는 듯 하다. 그래도 아직 멀었다
  • 신인시절 야구선수로서 가장 닮고 싶은 선수는 홍성흔, 포수로서 가장 닮고 싶은 선수는 박경완을 꼽았다.
  • 종종 이름이 비슷하여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당연히 같은 팀인 김재호와는 관계없다. 비슷한 예로 같은 팀에 있는 오재원오재일이 있다.
  • 얼굴이 잘생긴 편, 미남이다. 수훈선수 인터뷰를 하다가 임용수 캐스터가 "그거 알아요? 김재환 선수 엄청 잘생긴 거?"라고 대놓고 찬양하기도 했다. 3:00 부분에서 임용수 캐스터의 훈훈한 발언이 연출된다 그리고 엄청난 어깨 크기와 대비되는 상당히 작은 머리를 가지고 있다. 웬만한 여자보다도 작을 정도. 치어리더와 맞먹는다. # 두산 입단 직후 동료들이 지어준 별명이 얼굴이 콩만하다며 얼콩이라고... 신인 때는 비시즌에 모델 해볼 생각 없냐는 제의도 받았었다고 한다. #
  • 팬 서비스가 좋은 편 이다. 사인도 잘 해준다고 하고, 공수교대 때 볼보이와 캐치볼을 하고 난 다음 관중석에 한 경기에 1~2번 정도 공을 던져주기도 한다.[22]
  • 여성팬보다 남성팬이 월등히 많다. 강민호, 나성범 등과 함께 게이들이 좋아하는 야구선수 랭킹에서 가장 핫하다고 한다. 물론 잘생긴 건 누구에게나 통하기 때문에 여성팬이 없다는 건 아니다. 전임 좌익수의 뒤를 이어 초통령이 될 기미도 보이고 있다.
  • 어린이 팬들을 굉장히 아끼고 좋아한다. 출근길, 퇴근길에 주로 사인을 해주기 때문에 사인은 주차장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어느날은 차가 지나갈 때 어린아이를 자기 몸 쪽으로 끌어안아주고 이내 자동차가 지나가서 그랬다며 조심해야지~ 하면서 사인을 마무리 지어주었던 적도 있다.
  • 2016 시즌, 스포츠 신문사에 의해 헬멧에 "INNER PEACE"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음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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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과 쌍둥이 출산 이후, 유독 인터뷰에서 가족에게 메세지를 보내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이 질문에 시키지도 않았는데 거의 매번 영상편지 식으로 보내고 있다.
  • 등장곡이 Drop it on the 1 의 도입부인데, 이게 굉장히 포스가 넘친다. 최근의 놀라운 퍼포먼스랑 합쳐져 더욱 위압감있게 들린다.
  • 한국시리즈 4차전을 마친 후, 김태형 감독, 니퍼트, 유희관 다음으로 선수대표로 시리즈 소감 인터뷰를 진행했다. 스스로 샴페인을 흔들어 입에 뿌려댄걸로도 모자라 자리까지 펴고 술을 마신 김재환은 거의 모든 질문에 약간 횡설수설한 답변을 했고, 눈이 왜 빨갛냐는 질문에 결국 "술이 약한데 술을 많이 마셨다"라고 대답해 당시 인터뷰를 혼자 하드캐리했다. 직후 진행한 MBC 스포츠 플러스 구새봄 아나운서의 기분을 한마디로 표현해 달라는 질문에도 "뒤질것 같아요" 라고 말했음이 (자막에는 "X질것 같아요"로 표시되었다) 스포츠 매거진을 통해 드러났다.
  • 2016년 우승 후 처음으로 1군에서 시즌을 마무리한 만큼 각종 행사에 주전으로 처음 참여하고 있어 같은 상황인 박건우와 함께 거의 뺑뺑이 수준으로 행사를 돌고 있다. 그런 행사들에 참여하는 게 처음이라 그런지 항상 신기함과 좋음이 섞여있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참여하고 있다. 팬서비스에서는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는 편.
  • 2016 스포츠서울 올해의 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성취상'을 받았다. 상은 커녕 풀타임 주전조차 처음인 해에 받은 상이라 매우 얼떨떨하다는 수상소감을 남겼다. 물론 도핑 전력이 있는 선수한테 무슨 상이냐고 까이긴 했으나 골든글러브만큼 권위있는 상은 아니라 그런지 묻힌듯하다.
  • 2016년 12월 카스포인트 시상식에서 '카스 챌린지'상을 수상했다.
  • 아이돌 그룹 워너원김재환과 동명이인인지라 간혹가다가 대다수의 야구팬들을 움찔하게 하게 만드는 이름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김재환이 실시간 검색어에 뜨면 두산 김재환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워너원 김재환이라든가....[24] 근데 2018년 10월 13일 둘이 실제로 만났다![25] 그러다가 2019년 4월 27일 롯데전에서 두산 유니폼을 입고 진짜 시구를 하였다.
  • 도핑 전력이 있음에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로 선발 되었다. 국제대회 참가를 하면서 도핑에 걸린 것이기 때문에 국가대표로 다시 발탁되리라곤 거의 예상이 없었고, 포털 댓글이나 엠팍과 같은 야구 사이트의 예상 대표팀 명단에도 언급되지 못했다.[26] 대부분의 팬들은 그의 대표팀 발탁에 불만을 가졌다.
  • 2018 한국시리즈 3차전 경기시작에 앞서 프리배팅 타격 훈련 도중 옆구리 통증으로 외복사근 손상 부상을 입으며 나머지 경기에서 출전이 불투명해졌다.
파일:아쉬운김재환1.jpg
파일:아쉬운김재환.jpg
2018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부상으로 인해 출전불가능 상태에서 벤치에서, 그리고 패배가 확정된 후의 모습
  • 크루아상을 상당히 좋아하는지 호텔 조식으로 크루아상을 한번에 10개씩 집어먹었다가 황재균에게 걸린 적이 있다. 참고 영상. 제보자를 황재균, 김현수로 추측한 걸로 보아 아시안 게임으로 자카르타에 갔을 때의 일화로 보인다.
  • 2019년 4월 하반신 마비가 찾아온 경성대 야구부 선수에게 전동 휠체어를 조용히 선물해준 선행 사실이 밝혀졌다. 김재환은 조용히 선행을 하였지만 이 소문은 금새 대학야구 전체로 퍼지게 되었다. 경성대 야구부 감독은 “김재환 선수와 한정수(경성대 선수)가 같은 고교 동문도 아닌데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전동 휠체어였다. 완쾌를 바라는 응원의 마음과 함께 전동휠체어를 선물해줬다. 고맙고 또 고맙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단독] 김재환의 숨은 선행…투병 대학선수에 전동 휠체어 선물

8. 연도별 성적

  • 붉은색은 리그 1위 성적, 볼드체는 리그 5위 내 입상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경기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볼넷장타율출루율OPS
2008두산 14 21 .143 3 0 0 0 0 0 0 0 .143 .143 .286
2009군 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2010
2011 30 54 .185 10 3 0 2 8 4 1 1 .352 .214 .566
2012 13 39 .128 5 1 0 1 1 7 0 4 .231 .209 .440
20131군 기록 없음
2014 52 85 .306 26 6 0 3 13 12 1 11 .482 .385 .867
2015 48 153 .235 36 8 0 7 22 24 4 22 .425 .335 .760
2016 134 492 .325 160 32 3 37
(3위)
124
(3위)
107 8 74 .628
(3위)
.407 1.035
2017 144
(1위)
544 .340 185
(2위)
34 2 35
(3위)
115
(3위)
110
(3위)
1 81
(3위)
.603
(3위)
.429
(3위)
1.032
(3위)
2018 139 527 .334 176 36 1 44
(1위)
133
(1위)
104 2 59 0.657
(2위)
0.405 1.062
(2위)
KBO 리그
통산(8시즌)
574 1915 .314 601 120 6 129 416 368 20 249 .585 .395 .980


[1] 2017년 7월 26일 kt전 ~ 2017년 8월 9일 한화전[2] 입단은 포수로 했지만 두산에 공수겸장 양의지를 필두로 수비 되는 백업포수들도 많다보니 포수로 나올 일은 앞으로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포지션 전향 이후로는 포수로는 안 나오고 있다고 보면 되고, 2016년 8월 24일 경기 도중 헤드샷 후유증이 남아있던 양의지가 본의 아니게 박용택의 배트에 머리를 맞아 실려가고, 박세혁도 부상의 기미가 보여 경기가 잠시 중단되자 본인이 마스크를 써야 하냐며 유격수 위치까지 걸어온 적은 있다. 다행히 박세혁의 부상은 심각하지 않았고 이 날 박세혁은 연타석 홈런으로 데일리 MVP를 타는 활약을 보였다.[3] 포수를 포기한 이후에는 1루수로 나서다가 2016년부터 오재일이 1루수를 보고 있기 때문에 좌익수로도 나서고 있다. 수비가 좋지 못해서, 지명타자로도 자주 출전한다.[4] 두산! 승리를 위해 다같이 김재환! 두산! 승리를 위해 오오오 오오오[5] 처음 응원가는 김추자의 무인도 였으나 2015 시즌부터 바뀌었다.[6] 2005년 한국야구 100주년 기념 최우수 고교야구대회 우승. 다만 이때 김재환은 저학년이어서 주전 포수로 자주 출전하지는 않았다[7] 다만 김재환은 당시 고교 진학을 앞두고 속초에서 인천으로 전학을 온 전학생 신분이었고, 무엇보다도 고교 시절 부상으로 인해 1년을 유급한 덕분에 1차 지명을 받지 못하는 상태였다. 당시 SK 1차 지명 선수는 황건주, 2차 1번으로 뽑힌 선수는 모창민이었다. 두산은 1차 지명으로 진야곱을 뽑았다.[8] 그러나 주루미스로 2루에서 주루사했다. 사인대로 했는데 스타트가 늦었다고[9] 별달리 보여준 것 없는 신인시절에 언론 인터뷰나 예능 프로그램에 대표로 나가기도 했다.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닉쿤과 빅토리아의 시구 시타를 가르쳐 주던 선수가 김재환이다[10] 인천고등학교 출신이지만 자택이 경기도 남양주인 관계로 잠실 배명고등학교의 배려로 훈련할 수 있었다고[11] 자동차는 부모님께 드렸다고 한다.[12] 두 선수는 공교롭게도 2014년 12월, 같은 날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그래서 어쩌면 둘이 그토록 친할지도 모르겠다.[13] 끝내기 세레머니로 V4 손모양을 했는데 V 싸인을 손가락 뒤에 그리는 바람에 4V가 되었다(...)[14] 김현수가 2015 시즌 달성 가능성이 있었으나 28홈런으로 2개 모자라 달성하지 못했다.[15] 방법이 딱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안 먹으면 되었다. 야구를 포함한 스포츠를 보면 운동선수들이 음식을 가려 먹거나(팬들이 주는 음식과 영양제 역시 받지 않는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처방전을 구단에 신고하는 이유를 알 것이다.[16] 메이저 리그였다면 162경기의 반인 80경기 출장 정지다. 이전 서술에서 KBO도 법이 바뀌어서 72경기로 늘었다고 서술되어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젠 KBO는 도핑에 대해서는 그 어떤 처벌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처벌 자체를 않는 것은 아니고 도핑에 대한 검사 및 처벌은 문체부 관할이기에 문체부 규정을 따른다.[17] 당장 진갑용이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반쯤 삼성의 레전드 취급 받고 있던 시절이었다. 물론 진갑용이 은퇴한 시점에서 최진행 도핑 사건이 터졌고 그에 앞서 2014년에 당시 마이너리거였던 최지만이 도핑 검사에 적발되어 50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은 그냥 넘어가기 힘든 사안이 되었다. 단, 최지만의 약물 검사 적발 건은 아직도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으며 그가 미국에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편이다. 그러나 최지만과 그의 소속사가 잦은 언론 플레이를 해 왔던 점을 봤을 때 이 사안은 그대로 묻히지는 않고 차후 국내 복귀 시에 크게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18] 리오스는 한국에서 압도적인 활약을 찍은 바로 다음 해 일본에서 도핑이 검출되었다. 전성기 다 누리고 나중에 도핑 적발 되는것은 전세계 다양한 종목에서 셀 수없이 많다.[19] 타 팀 팬의 이중적인 태도까지 겹쳐 야구 관련 커뮤니티에서 '김재환' 이름 석 자만 나오면 아수라장이 펼쳐지게 된다.[20] 더군다나 앞서 말한 것처럼 수비까지 폐급이니 백업으로라도 도저히 1군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21] 민병헌이 2016년 올스타전에서 미스타올스타를 수상한 뒤에 했던 인터뷰에서 두산 팬들은 원래 알고 있었으니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타 팀 팬들은 의외의 하이톤 목소리에 상당히 놀란 반응이 대다수였다. 인터뷰 3:58부터[22] 포지션이 좌익수이기 때문에 3루측 원정 관중석에 던져준다.[23]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대표적인 부작용이 성기능 장애이다. 발기부전이나 심하면 성기 축소나 성불구가 되는 경우도 있다.[24] 이건 워너블한테도 공통 사항이기도 하다.[25] 잠실 야구장에서 만난 걸 보니 두산 측에서 준비해 성사된 만남으로 보여진다. 다만 가수 김재환은 당일날 2019년 신인 시구로 인해 시구는 안하고 대신 프리미엄석에서 직접 관람했다.[26] 마찬가지로 도핑 전력이 있는 진갑용이 대표팀 코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했었으나 설마했지 진짜로 뽑힐거라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