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7 22:17:05

이선희(야구)

이선희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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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6번
팀 창단 이선희(1982~1984) 이홍식(1988)
MBC 청룡 등번호 1번
유백만(1983~1984) 이선희(1985~1987) 이용철(1988~1992)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6번
장효조(2000) 이선희(2001~2007) 성준(2011)
한화 이글스 등번호 81번
이종두(2010~2012) 이선희(2013~2014) 쇼다 고조(2015~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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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선희(李善熙 / Sun-hei Lee)
생년월일 1955년 2월 14일
출신지 대구광역시
학력 경상중 - 경북고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82년 삼성 라이온즈 창단 멤버
소속팀 농협(실업)
삼성 라이온즈(1982~1984)
MBC 청룡(1985~1987)
지도자 경력 빙그레 이글스 투수코치 (1988~1990)
삼성 라이온즈 투수코치 (1991~1993)
한화 이글스 2군 투수코치 (1994~2000)
삼성 라이온즈 1군 투수코치 (2001~2004)
삼성 라이온즈 잔류군 코치 (2005~2007)
한화 이글스 2군 투수코치 (2013)
한화 이글스 재활군 코치 (2014)
영남대학교 야구부 인스트럭터 (2015~현재)

1. 소개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트리비아5.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투수.

등번호는 26번(삼성) - 36번(MBC) - 74번(삼성코치) - 83번(한화코치)

전설을 찾아 이선희편 상, 전설을 찾아 이선희편 중, 전설을 찾아 이선희편 하, 오마이뉴스 이선희 기사.[1]

2. 선수 경력

경북고를 졸업하고 실업 야구 팀인 농협 야구단 소속으로 뛰면서 대한민국 최고의 좌완 투수로 명성을 날렸다. 노히트 노런을 두 번 기록하고, 1978년에는 실업 리그 3관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국제 무대에서는 일본전에서 단 한 번도 지지 않은 원조 일본 킬러로 이름이 높았고, 1977년 니카라과에서 열린 슈퍼 월드컵 대회에서는 다승왕, 구원왕, 대회 MVP를 수상하며 대한민국 야구의 세계대회 첫 우승을 이끌었다.[2]

1982년 한국프로야구 출범 때 권영호, 이만수, 장태수, 황규봉, 함학수, 오대석 등과 함께 삼성의 원년 멤버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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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프로야구 출범 후 그는 스스로를 희생하여 한국프로야구의 성공에 공헌한 숨은 주역으로 변신하게 된다. 바로 원년 개막전과 1982년 한국시리즈 6차전 때 맞은 만루홈런 두 방 때문.

프로야구 사에서 그가 겪은 불운은 1982년 3월 27일 서울 운동장 야구장(당시의 동대문 야구장)에서 열린 개막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막전인 MBC 청룡과의 대결에서 7:7 동점 상황이었던 연장 10회 말. 7회부터 등판해 2이닝을 무실점으로 호투한 이선희는 내야수 김인식[3]몸에 맞는 공으로 내보낸 뒤 김용달에게 2루타를 허용, 1사 2, 3루의 위기를 맞았다. 다음 타자는 7회말 동점 3점포를 쏘아 올린 4번 타자 유승안. 5번인 백인천과의 외나무다리 승부를 감수하며 그를 고의사구로 거르려 했지만, 그날 경기 수훈 선수 상품인 오토바이에 눈이 먼[4] 유승안이 바깥쪽 볼에 무리하게 배트를 갖다대는 바람에 3루 주자 김인식이 홈에서 태그 아웃당하며 본의 아니게 한숨을 돌렸다. 2사 주자 1, 3루 상황으로 돌변한 상황에서 이선희는 후속 타자인 백전노장 백인천과의 정면 승부를 피하고 만루를 채우며 이종도맞짱승부를 겨루고자 했지만, 백거이 결과는 좌측 담장을 넘기는 홈런이었다. 한국프로야구 최초 '개막전 끝내기 만루 포'(…)

그의 불운은 시즌을 마무리짓는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도 이어졌다. 삼성이 OB 베어스에 1승 1무 3패로 몰린 KS 6차전에 선발로 등판한 이선희는 8회까지 3실점으로 잘 버텼으나 9회초 2사 만루에서 신경식에게 밀어내기 볼넷으로 3-4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나마 여기서 끝났으면 다행이었지만, 후속 타자 김유동에게 또 만루홈런을 허용하였고, 결국 원년 한국시리즈는 OB 베어스의 우승으로 마무리되었다.[5]

이로 인해 이선희는 "한국프로야구의 원년을 빛낸 비운의 투수"라는 꼬리표가 붙게 된다. 그나마 이건 양호한 평가이다. 김은식에 따르면 삼성의 처음과 끝을 말아먹은 놈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니(…) 참고로 이 부분에 대해 김은식은 서영무 감독이 체력이 떨어진 이선희를 계속 마운드에 방치한 것을 첫째 원인으로 평가했다. 즉 이선희의 잘못으로 보기 힘들다는 것.

사실 원년 시즌 권영호, 황규봉과 함께 나란히 15승 트로이카로 삼성 마운드를 이끌었지만 만루 홈런 두 방의 충격이 컸던지 이선희는 1983 시즌 후 두 번 다시 두 자리 승 수를 올리지 못했고, 1985년 1월 5일 이해창과의 맞트레이드로 철천지 원수MBC 청룡으로 이적했다. 그리고 트레이드 된 그 해 친정 팀이 전후기 통합 우승을 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으며, 끝내 예전의 모습을 되찾지 못한 채 1987년 시즌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6]

3.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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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빙그레 이글스 - 한화 이글스에서 투수코치로 활동했고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를 맡다가 2007 시즌 종료 뒤 스카우트로 보직을 이동하였다. 그래도 현역 시절에 이루어내지 못한 우승을 코치 시절에 우승을 이루어냈으니 그나마 어느 정도 행복한 편이다. 코치로서는 1999년 한화, 2002년, 2005년, 2006년 삼성 코치 시절 재직시에 우승을 한 적이 있다. 다만 1999,2005, 2006시즌은 모두 2군 코치 시절에 우승한 것인지라...

그 뒤 스카우트로 일하다가 삼성시절에 모시던 김응용 감독을 따라 한화 이글스의 투수코치로 선임되었다. 보직은 한화 이글스 2군 투수코치.한화, '원조 일본 킬러' 출신 이선희 코치 영입

2014 시즌부터는 재활군 코치로 보직 변경했으나, 6월 26일 부로 김기남 불펜코치와 보직을 맞바꾸어 1군 불펜코치가 되었다. 이후 김성근 감독이 한화 이글스의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재계약하지 못했다.

2015년에는 영남대학교 야구부 인스트럭터로 취임했다.

4. 트리비아

  • 장효조, 최동원 등과 함께 한국프로야구가 5년만 빨리 생겼더라면[7]라는 단골 떡밥의 주인공이다.
  • 그리고 KBO 역사에 남을 비아냥거리가 될 뻔한 적이 한번 더 있다. 2001년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어떻게 두산한테 집니까? 두산에 누가 있다고..." 라는 역대급 설레발을 친 적 있다. 물론 시리즈가 시작되기 전에는 설마 삼성이 지겠느냐라는 생각을 한 사람이 99.9%였을 것이다. 충분히 나오고도 남을 만한 발언이었지만 결과는...[8] 만약 당시 인터넷 활동이 활발했더라면 '타어강' 처럼 두고두고 놀림감이 되었을만한 설레발이었다. 이래서 설레발은 필패

    허나 그 후 단 1년만에 그렇게 보고 싶었던 팀의 우승을 보게 되었고, 이선희는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이런 말을 남겼다.
…무려 21년입니다. 세월의 무게가 한꺼번에 밀려오더군요. 다들 저보고 안쓰럽다고 해요. 하지만 투수가 홈런 한 두어방 맞는 것은 병가지상사죠. 다만 저의 경우는 너무나 극적인 홈런을 연거푸 맞은 게 문제였습니다. 그래도 제가 있었기에 국내 프로야구의 발전이 한 10년쯤은 앞당겨졌을 겁니다.
  • 황규봉과는 경상중학교 때부터 야구를 해 온 사이라고 한다. 황규봉이 1년 유급하여 둘이 동기생이다. 이런 사이인지라 황규봉이 사망한 사실이 야구와 연을 끊은 황규봉 측이 아닌 이선희 측에서 알려졌을 정도.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2 삼성 라이온즈 38 167 15
(2위)
7 1 0.682
(4위)
2.91 152 11 82 73 67 54 1.35
1983 29 127 5 13 0 0.278 3.76 122 17
(공동 2위)
66 56 66 53 1.43
1984 17 51⅔ 2 4 0 0.333 4.53 58 6 26 23 31 26 1.57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5 MBC 청룡 28 138 5 7 2 0.417 2.28
(4위)
111 5 59 49 44 35 1.20
1986 7 17⅔ 0 2 0 0.000 5.09 25 2 4 12 12 10 1.59
1987 14 38⅓ 1 3 0 0.250 5.40 38 1 30 21 23 23 1.59
KBO 통산
(6시즌)
133 539⅔ 28 36 3 0.438 3.35 506 42 267 234 243 201 1.38
완투, 완봉기록
연도 완투 완봉
1982년 4완투 3완봉
1983년 3완투 1완봉
1985년 4완투 1완봉
KBO 통산 11완투 5완봉


[1] 링크된 기사들은 삼성의 스카우트 시절 취재한 인터뷰인데, 2014년까지 삼성이 정상 자리를 유지할 것이란 예측을 했다. 그리고 그 예측은 실제로 맞아 떨어졌다.[2] 당시 감독이 친정팀에서 사장까지 지낸 갓끼리사마.[3]연천 미라클 감독. 두산, 한화 감독을 지냈던 김인식과는 동명이인이다.[4] 결국 오토바이는 끝내기 만루 포의 주인공인 이종도에게 돌아갔으며, 참고로 이날 프로 출범 1호 타점과 홈런을 기록한 이만수는 등나무 가구 세트를 받았다.[5] 이때 이선희는 글러브를 끌어안고 웅크렸다.[6] MBC 시절을 포함하면 LG의 트레이드 잔혹사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7] 물론 당시 현실에선 어려운, 불가능한 상황이다. 현실은 오히려 실제보다 5년 늦게 생기는게 더 맞았던 상황 한국프로야구 문서를 참조하면 너무 급하게 프로야구리그를 만들어서 생긴 여러 문제를 지금도 남기고 있다. 다만 이런 걸 생각안하고 아쉬운 재능을 가진 선수들을 만약에~이야기하는 것.[8] 당시 코시를 앞둔 삼성이 얼마나 유리한 상황이었는지는 2001년 한국시리즈 항목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