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6-08 10:43:12

유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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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우승 코치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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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야구 선수3. 지도자 시절4. 골프 선수 시절

1. 소개

兪百萬, 프로야구 전 감독이자 현 프로골퍼. 1941년생.

2. 야구 선수

울산이 고향인 그는 초등학교를 다니며 축구선수로 활약하다 6학년 때, 부산으로 이사오면서 중학생이 되어서야 야구와 인연을 맺은 특이한 경우이다. 부산상고 출신[1]으로 나름대로 활약했지만, 백인천과 이재환이 이끌던 경동고의 기세에 밀려 우승과 인연을 맺지는 못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고교 졸업 후 실업팀에 입단하면서부터. 원래 내야수였던 그는 실업야구 무대에서 어깨가 강하다는 이유로 투수로 전향했는데[2], 이게 대박이 났다. 실업무대 역사상 최다 노히트 노런 기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1963년 첫 기록을 세운 후, 1969년, 1970년, 1971년에 잇따라 노히트 노런의 대기록을 작성했다. 한 마디로 3년 연속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것. 1971년에는 국가대표로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활약하며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3. 지도자 시절

부산 야구의 대부격인 장태영의 애제자였기 때문에 장태영이 일선에서 물러나 은행 직원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뒤를 이어 1973년 한국상업은행 감독 자리에 올랐다. 1976년 그 뒤 준프로에 가까웠던 한국화장품 야구단의 감독도 역임한다. 1977년에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1977년 코치를 맡았다.[3] 1981년에는 서울고 감독을 1년간 맡았다.

아마 시절 명성도 있고, 야구계에 영향력이 있던 장태영의 애제자라 감독 자리 제안도 몇 번 받았지만, 본인 성격이 감독과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많이 거절했다고 한다. MBC 청룡의 창단 코치로 부임하기도 했고, 삼성에서 코치로 활동하다가 다시 MBC로 돌아왔다. 그리고 김동엽 감독이 중도 해임되자 그 뒤를 이어 1987년 후기리그부터 감독 대행을 역임한다. 나름대로 PO를 두고 접전을 벌였지만, 아쉽게 탈락. 하지만, 접전을 벌인 모습과 5할이 넘는 승률을 인정받아 감독 자리를 제안했고, 결국 감독에 오르게 된다. 본인은 50살까지 코치를 한 후에 감독이 되고 싶다며 계속 거부했지만[4] 스승인 장태영이 "이번에도 거절하면 영원히 무능력자로 찍히게 되니 거절하지 말게." 라는 권유를 듣고 결심한 거라고.

그러나 1988년 MBC 청룡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면서 물러나게 된다. 당시 팀 성적이 전기리그 최하위, 후기리그 6위. 팀도 아니라는 평가를 받던 태평양보다 겨우 반 보 앞선 성적이었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 그리고 팀 선수들에게 자율을 주던 모습이[5] 다소 나약하게 비춰졌다고. 그 뒤 다시 삼성의 코치로 활동하다가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바로 골프.

4. 골프 선수 시절

골프를 시작했지만 곧 바로 정식 투어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는 아니고, 주로 티칭 프로로 활동했다. 1990년에 KPGA 티칭 프로 자격증을 얻으면서 본격적으로 이 세계에 입문했다. 가끔 시니어 투어에 나가서 종종 입상도 했고, 2007년에는 호주 시니어 투어 정규 회원 자격증까지 얻었다고 하니 실력이 만만치 않다. 에이지 슈트[6]를 두 차례, 홀인원은 무려 아홉 차례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의 제자 중에 가장 유명한 선수가 배상문.

그리고 그의 성공 이후 야구 선수 출신으로 골프 티칭 프로로 전향하는 사례도 많이 늘게 되었다.[7] 대표적인 사례가 방수원, 오희주, 김홍기, 윤석민. 2011년부터 제주 어린이들 야구 클럽인 감귤야구사랑야구단 총감독 겸, 여전히 골프 관련 일을 하고 있다.


[1] 김응용(47회), 유백만(48회), 강병철(52회) 등 1950~60년대부터 꾸준히 유명 야구인들을 배출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53회다.[2] 그의 강견에 대한 일화로 펜스 바로 앞에서 홈으로 송구를 했는데 노바운드로 포수가 잡았을 정도였다고 한다.[3] 김일권야사시TV에서 술회하기를 김응용 감독이 계속 경기에 내보내지 않자 김일권은 불만이 쌓였고 결국 한일전에서 김일권을 1루 대주자로 내보냈는데 유백만 당시 1루코치에게 들리게끔 욕설을 했다. 이 사실을 나중에 알게된 김응용 감독은 김일권을 계속 추궁했고 김일권은 왜 비싼 국민세금 들여서 니카라과 대회까지 왔는데도 경기에 안내보내주냐 불만을 표출했다. 그 다음날부터 선발로 내보냈다고 한다.[4] 한번은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고 있는 부산상고 5년 후배 강병철을 찾아가 "나는 수석코치 자리로 족하니, 병철이 네가 감독하라"고 간곡히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강병철이 3년 후에 감독직을 물려주겠다는 김영덕 빙그레 이글스 감독의 감언이설 때문에 빙그레 이글스 수석코치로 계약하면서 무산되었다.[5] 당시 개성이 강했던 MBC 청룡 선수들이 워낙에 자율을 강조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유백만의 전임자였던 김동엽은 선수단의 투표로 인해 해고됐고(...) 유백만의 후임으로 부임한 배성서는 강압적 태도로 선수단을 휘어잡자 투수 정삼흠으로부터 "여기가 무슨 공산당입니까?"라는 항명을 대놓고 들었을 정도로 선수들의 입김이 센 팀이었다. 원년 서울 연고팀답게 이른바 '서울 깍쟁이'가 많고 통제가 어렵다는 이미지는 청룡의 후신인 LG 트윈스로 어느 정도 이어졌다.[6] 나이와 똑같은 타수를 치는 것. 당연히 골프에서 18홀을 모두 돌아 40타를 낼 수는 없으니, 주로 나이가 들어서 달성하게 된다.[7] 앞뒤로 휘두르는 야구의 스윙과 위아래로 휘두르는 골프의 스윙 궤도는 다르지만 기본적인 스윙 원리는 야구 스윙과 골프 스윙이 같다. 특히 하체를 받쳐놓고 스윙을 하는 것이나 일정한 폼으로 공을 앞으로 보내는 원리가 똑같다. 그래서 야구 선수들의 골프 실력이 다른 종목에 비해 좋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