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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79d0><colcolor=#ffffff> 군산상일고등학교 야구부 (Gunsan Sangil High School) | |
창단 | 1968년 |
소속 리그 | 전라권 |
감독 | 석수철 |
우승 기록[1] | 12회 |
웹사이트 | 군산상고 야구부 |
대회 | 우승 | 준우승 | 4강 |
대통령배 | 4회(1976, 1981, 1986, 2023) | - | 3회(1971, 1975, 2005) |
청룡기 | 2회(1982, 1984) | 5회(1974, 1976, 1988, 1993, 2021) | 3회(1973, 1983, 1990) |
황금사자기 | 3회(1972, 1986, 1999) | - | 3회(1975, 1976, 1985) |
봉황대기 | 3회(1982, 1996, 2013) | 2회(2010, 2016) | - |
이마트배 | - | - | - |
1972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 ||||
경북고등학교 | → | 군산상업고등학교 | → | 대구상업고등학교 |
1976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 ||||
광주제일고등학교 | → | 군산상업고등학교 | → | 공주고등학교 |
1981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 ||||
광주제일고등학교 | → | 군산상업고등학교 | → | 부산고등학교 |
1982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 ||||
경북고등학교 | → | 군산상업고등학교 | → | 북일고등학교 |
1982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 ||||
경북고등학교 | → | 군산상업고등학교 | → | 광주제일고등학교 |
1984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 ||||
북일고등학교 | → | 군산상업고등학교 | → | 서울고등학교 |
1986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 ||||
서울고등학교 | → | 군산상업고등학교 | → | 북일고등학교 |
1986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 ||||
전주고등학교 | → | 군산상업고등학교 | → | 신일고등학교 |
1996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 ||||
충암고등학교 | → | 군산상업고등학교 | → | 신일고등학교 |
1999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 ||||
대구상업고등학교 | → | 군산상업고등학교 | → | 경기고등학교 |
2013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 ||||
대구고등학교[2] | → | 군산상업고등학교 | → | 휘문고등학교 |
2023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 ||||
대전고등학교 | → | 군산상일고등학교 | → | 안산공업고등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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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호남 야구의 산파, 역전의 명수 |
군산상일고등학교 산하 야구부.
4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우승한 구단이자 호남 야구의 산파 역할을 해낸 강호[3]. 1972년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 보여준 기적적인 대역전승으로 인해 일약 역전의 명수라는 별칭이 있다.
2. 연혁
2.1. '역전의 명수'의 탄생
1968년 훗날 프로야구 탄생에 큰 기여를 한 이용일이 사업 기반이 있던 군산 지역에 야구붐을 일으키고 싶어서 만든 팀이 군산상고였다. 단순히 고교팀만 덜렁 만든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팜 시스템 형태로 제대로 구축한 팀이었다. 당시 국가대표 출신으로 선수에서 막 은퇴한 최관수[4] 감독을 영입하면서 1971년에는 신생팀으로 무려 대통령배 4강에 오르면서 돌풍을 일으켰다.가운데가 최관수 감독. 맨 오른쪽은 김봉연이고 김봉연 옆은 김준환이다.
하지만 그 무렵 선수들이 대형사고를 치는데, 당시 고교생이었던 김준환, 김봉연 등이 추석날 군산시내에서 막걸리를 먹던 중 시비가 붙어 싸움을 벌이다가 적발된 것이었다. 자칫 선수들의 퇴단과 야구부의 존폐가 위험해 질 수 있던 상황에서 최관수 감독은 아이들을 잘못 가르친 자신의 책임이라면서 선수들의 퇴단을 말리면서 선수들을 불러놓고 "너희들을 잘못 가르친 내 잘못이 크니, 나를 때리라."는 말을 한다.[5] 그리고 실제로 못 때리겠다는 사람들에게는 손수 이렇게 때리라는 시범을 보였다고(...) 한다. 이에 선수들은 무릎 꿇은 채 눈물을 펑펑 흘리며 최 감독의 엉덩이에 방망이질을 했고[6] 그렇게 탈선으로 인한 문제는 수습되었다.
명장 밑에 약졸 없다고, 이 일 이후 군산상고는 확실히 더욱 강력해졌다. 그리고 고교야구가 지속되는 한 계속 회자되는 명승부가 1972년 황금사자기 결승에서 일어났다. 부산고와 결승에서 만난 군산상고는 9회말 시작 전까지 1:4로 뒤지면서 끌려갔다. 그러나 9회말 공격에서 연속 안타와 상대(3루수 김문희)의 주루 방해를 묶어 극적으로 4점을 내면서 기적적인 대역전승을 이뤄내며 창단 첫 우승에 성공했다. 이 역전승 이후로 군산상고의 별명은 역전의 명수가 되었다. 기적과도 같았던 이 역전 드라마는 훗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1977년에 개봉한 '고교결전 자! 지금부터야'라는 영화가 군산상고의 대역전 스토리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1978년 군산상고 야구부. 가운데줄 제일 왼쪽에 있는 선수가 김성한. |
그 뒤 최관수 감독의 지도 아래 1976년에는 대통령배 우승을 차지하는 등, 강호로 부상했지만 1979년 최관수 감독이 파킨스씨 병으로 은퇴[7] 하면서 군산상고의 태동기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후 지휘봉은 백기성 감독이 잡게 된다.[8]
2.2. 화려한 1980년대
다행히 군산상고는 지역 출신의 우완 에이스 조계현이 등장하면서 활력을 찾았다. 1981년 고교 1학년의 신분으로 에이스 자리를 차지하면서 대통령배 우승, 이듬해인 1982년에는 청룡기와 봉황대기 2관왕을 달성하는데 큰 기여를 하면서 팀의 전성 시대를 활짝 열었다. 그러나 이 세 번의 우승은 강속구를 가진 조계현의 팔을 희생시키면서 얻은 대가였고, 조계현은 팔색조로 불리는 기교파로 프로 무대를 풍미할지언정, 고교 무대에서 보여줬던 속구의 위력은 사라지게 되었다.
조계현이 졸업한 후, 이 번에는 이광우가 등장하면서 다시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광우, 정명원, 최해식이 뛰던 1984년의 군산상고는 청룡기 우승에 성공하면서 다시금 정상 정복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 들이 졸업한 후에는 이 번에는 왼손 에이스 조규제가 등장했다. 조규제를 필두로 한 군산상고의 선수들은 대통령배와 황금사자기를 석권하며, 1986년 고교야구를 군산상고의 해로 만들었다.
1986년 대통령배 우승. 마운드에서 껴안고 있는 인물은 조규제(투수)와 이성일(포수). |
1986년에는 대통령배에서 경남고를 상대로 연장 11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2:1 역전승을 거두며 역전의 명수라는 별명을 다시금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군산상고는 1980년대 6번의 우승을 차지하면서 명문으로 이름을 높일 수 있었다.
2.3. 저력을 보여준 1990년대
영광이 많았던 1980년대가 지나간 후에는 전반적으로 군산상고 야구부는 침체기에 빠졌다. 1993년 청룡기 준우승은 있었지만, 4강에 들지 못하고 초반에 짐을 싸야 했던 시절이 더 많았다. 그래도 간간히 걸출한 인재들이 등장하면서 성세를 높은 것은 위안거리였다. 1996년 언더핸드 정대현을 앞세운 군산상고는 김수경의 인천고를 누르고 봉황대기 통산 2번째 우승에 성공하면서 위용을 빛냈고, 1999년에는 초고교급 왼손 투수 이승호를 앞세워 채태인의 부산상고를 누르고 황금사자기 우승에 성공했다.그러나 1999년 이승호의 군산상고가 황금사자기 우승을 차지하던 해는 지역 연고를 하고 있던 쌍방울 레이더스의 마지막 시즌이었고, 쌍방울이 사라지면서 지역 야구단의 공백을 메우기에는 KIA의 지원도 특별한 것이 별로 없었다.[9] 결국 이는 지역 인재들의 꾸준한 유출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채병용[10], 오지환[11], 김혁민[12], 국해성[13], 윤여운[14], 임석진[15], 배제성[16], 고승민[17], 김민준[18] [19] 이런 사례가 계속 증가하면서 군산상고는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지역 유망주의 수도권 유출은 전라북도 지역 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 소재 학교들도 공통으로 겪고 있는 어려움인데 전북이 유독 심한 듯하다.[20][21]
2.4. 2000년대: 암흑 시대
2000년대 군산상고가 과거의 위상과 비슷한 성과를 낸 것은 단 한 번. 2005년 모교 출신인 김성한 감독의 지휘 아래 차우찬, 황선일, 원종현 같은 선수들의 활약으로 대통령배 4강에 입성했을 때였다. 그 외에는 대부분 초반 탈락이 일상이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우수한 인재들이 유출이 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2.5. 2010년대: 서광은 비출 것인가
군산상고에게 어느 정도 서막이 보인 것은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였다. 2010년 봉황대기 준우승을 차지한 후 조현명의 호투 속에 2013년 봉황대기 우승과 전국체전 우승에 성공하면서 제법 길었던 무관의 시대를 끝냈다. 다만, 인재 유출이라는 고민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연고 구단이 지역과 큰 연관이 없는 NC 다이노스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2016년 봉황대기에서 막강한 타선을 앞세워 인천고를 20:7, 개성고를 7:0, 4강에서 덕수고를 8:4로 꺾고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연장 13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휘문고에게 끝내기를 맞고 패배했다. 이날 경기에서 휘문고의 타자주자를 벤치 멤버가 태클(...)거는 바람에 휘문고의 끝내기 안타가 무효처리가 되며 일말의 희망이 피워지나 했으나 다음 타자에게 끝내기 희생플라이를 맞고 패배하여 준우승을 기록했다.
문제의 끝내기 안타 취소 장면.
하지만 2016년 제97회 전국체육대회 고등부 결승전에서 투수 김영중[22]의 호투 속에 충북 세광고를 7:5로 물리치고 우승(금메달), 봉황대기에서 준우승에 그친 한을 풀었다. 2013년 이후, 4년만의 우승.
2.6. 2020년대: 강해진 전북 야구
2021년 청룡기에서 1회전에서 신흥고, 2회전에서 밀성고에 승리했고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로 대회가 순연되었다가 재개된 뒤에는 16강전에서 성남고, 8강전에서 대구상원고, 준결승에서 마산용마고를 각각 꺾고 결승에 올라 충암고와 대결하게 됐다. 청룡기 결승에 오른 것은 1993년 이후 28년 만이며 1984년 이후 37년 만에 이 대회 우승에 도전했으나 3:7로 패하며 아쉽게 준우승했다.2022년 8월 22일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실업계(상업계)에서 일반계 전환을 확정했고 9월 7일 군산상일고등학교로 교명을 정함에 따라 2023년부터 새로운 교명으로 출발하게 됐다.
2022년 7월 고교야구 주말리그에서 몰수게임패기사를 당했고 이에 따라 석수철 감독이 6개월간 직무정지 처분을 받아 김태환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았다.
징계조치를 마치고 2023년 6월 석수철 감독이 감독직에 복귀했다. 2023년 8월 대통령배에서 광주제일고에 5-2 승리를 거두고 16강에 진출했다. 16강전에서 율곡고에 9-1(8회 콜드게임), 8강전에서 휘문고에 11-1(6회 콜드게임) 등 2게임 연속 콜드게임 승리를 거두며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선 경기고를 상대로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연장혈전 끝에 6-5로 승리, 1986년 이후로 37년만에 대통령배 결승에 진출했다.
2023년 8월 14일 인천고와의 결승전에서 9회말 10-10 1사 만루에서 박찬우의 좌전 끝내기 안타로 11-10 승리를 거뒀고 37년 만의 대통령배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 게임은 양팀의 에이스(군산상일고 정민성, 인천고 김택연)가 준결승전에서 많은 투구로 인해 투구수 제한 규정에 의해 결승전에 나올 수 없어 양팀은 투수를 총 가동하는 물량전으로 진행했다. 하지만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투수들이 마운드에 오르며 양팀 도합 25안타, 32 4사구를 기록했으며 1시에 시작된 경기는 무려 4시간 10분이 지나서야 종료됐다. 선수 보호를 위해 도입된 투구수 제한 규정이 오히려 경기의 질적 저하를 낳은 안 좋은 사례가 된 경기였다.관련기사
2024년 월명 야구장에서 펼쳐진 대전고와의 경기에서 대전고 타자가 친 타구가 군산상일고 좌익수의 머리를 맞고 담장을 넘어가며 홈런으로 인정됐다.영상
2024년 신세계 이마트배에선 16강까지 갔으나 정우주가 이끄는 전주고에게 13-0 5회 콜드게임패를 당하며 탈락했다. 대통령배에서는 1회전에서 광주일고에 패했다.
전북 라이벌 전주고는 '24년 신세계 이마트배 준우승, '24년 청룡기 첫 우승, '24년 대통령배 4강, '24년 봉황대기 결승 진출 성공 등 창단 후 최고의 한 해를 보내는 등 군산상일고, 전주고 모두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3. 출신 선수[23]
이름 | 포지션 | 프로입단 | 경력 |
김봉연 | 내야수 | 1982년 원년멤버 | 연세대-상업은행-한국화장품-해태(1982~1988) |
김준환 | 외야수 | 1982년 원년멤버 | 상업은행-해태(1982~1989) |
김일권 | 외야수 | 1982년 원년멤버 | 상업은행-한양대-성무-한양대 중퇴-해태(1982~1987)-태평양(1988~1990)-LG(1991) |
김우근 | 외야수 | 1982년 원년멤버 | 건국대-해태(1982~1983)-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1983~1985)-MBC 청룡(1986~1987) |
조종규 | 포수 | 1983년 1차 지명 | 건국대-한국화장품(1979~1980)-경리단(1981~1982)-해태(1982~1983)-OB(1984~1985) |
김용남 | 투수 | 1982년 원년멤버 | 한양대-해태(1982~1986)-빙그레(1987~1989) |
김성한 | 내야수, 투수 | 1982년 원년멤버 | 동국대-해태(1982~1995) |
김평호 | 외야수 | 1986년 1차 5라운드 | 동국대-해태(1986~1990)-쌍방울(1991~1995) |
이건열 | 내야수 | 1986년 1차 지명 | 동국대-해태(1986~1997) |
백인호 | 내야수 | 1987년 1차 지명 | 동국대-해태(1987~1992)-쌍방울(1993~1996)-해태(1997~1999) |
이동석 | 투수 | 1987년 2차 1라운드 1순위 | 동국대-빙그레(1987~1991)-쌍방울(1992~1993) |
조계현 | 투수 | 1988년 1차 지명 | 연세대-농협-해태(1989~1997)-삼성(1998~1999)-두산(2000~2001) |
이광우 | 투수 | 1989년 1차 지명 | 원광대-해태(1989~1991)-OB/두산(1992~2001)-LG(2002) |
정명원 | 투수 | 1989년 2차 2라운드 | 원광대-태평양/현대(1989~2000) |
최해식 | 포수 | 1990년 1차 지명 | 건국대-쌍방울(1990~1994)-해태(1994~2001) |
조규제 | 투수 | 1990년 1차 지명 | 연세대-쌍방울(1991~1998)-현대(1998~2000)-SK(2000~2002)-현대(2003)-KIA(2004~2005) |
석수철 | 3루수 | 1996년 1차 지명 | 성균관대-쌍방울(1996~1997) |
오상민 | 투수 | 1997년 1차 지명 | 성균관대-쌍방울(1997~1999)-SK(2000~2001)-삼성(2002~2007)-LG(2008~2011) |
신경현 | 포수 | 1998년 2차 1라운드 | 동국대-한화(1998~2013) |
정대현 | 투수 | 1997년 고졸우선지명[24] | 경희대-SK(2001~2011)-롯데(2012~2017) |
이진영 | 외야수 | 1999년 1차 지명 | 쌍방울(1999)-SK(2000~2008)-LG(2009~2015)-KT(2016~2018) |
김상현 | 내야수 | 2000년 2차 6라운드 | 해태/KIA(2000~2002)-LG(2002~2009)-KIA(2009~2013)-SK(2013~2014)-KT(2015~2016) |
이대수 | 내야수 | 2000년 신고선수 입단 | SK(2000~2007)-두산(2007~2009)-한화(2009~2014)-SK(2014~2018) |
이승호 | 투수 | 2000년 1차 지명 | SK(2000~2011)-롯데(2012)-NC(2013~2015)-SK(2016) |
박성혁[25] | 외야수 | 2003년 신고선수 입단 | 탐라대(중퇴)-LG(2003) |
문규현[26] | 내야수 | 2002년 2차 10라운드 | 롯데(2002~2019) |
김연훈 | 내야수 | 2007년 2차 2라운드 | 성균관대-KIA(2007~2008)-SK(2008~2015)-KT(2016~2017) |
이창욱 | 투수 | 2007년 2차 1라운드 | 고려대-SK(2007~2015) |
채형직 | 투수 | 2004년 2차 5라운드 | 삼성(2004~2010) |
원종현 | 투수 | 2006년 2차 2라운드 | LG(2006~2010)-NC(2012~2022)-키움(2023~) |
이준호 | 외야수 | 2010년 신고선수 입단 | 고려대-KIA(2010~2019) |
차우찬 | 투수 | 2006년 2차 1라운드 | 삼성(2006~2016)-LG(2017~2022)-롯데(2023) |
황선일 | 외야수 | 2006년 2차 4라운드 | LG(2006~2014)-한화(2015~2016) |
전우엽[27] | 투수 | 2008년 1차 지명 | KIA(2008~2016) |
최형록 | 내야수 | 2008년 아마추어 자유계약(MIN)/ 2014년 2차 8라운드 | MIN(2008~2011)-두산(2014~2015) |
한희 | 투수 | 2009년 2차 1라운드 | LG(2009~2017) |
박종훈 | 투수 | 2010년 2라운드 | SK/SSG(2010~) |
이준영 | 투수 | 2015년 2차 4라운드 | 중앙대-KIA(2015~) |
김호령 | 외야수 | 2015년 2차 10라운드 | 동국대-KIA(2015~) |
박계현 | 내야수 | 2011년 6라운드 | SK(2011~2018) |
장국헌 | 투수 | 2011년 5라운드 | 롯데(2011~2017, 2018~2020) |
박성모 | 투수 | 2018년 2차 7라운드 | 인하대-두산(2018~2021) |
조현우[28] | 투수 | 2014년 2차 2라운드 | KT(2014~2015)-롯데(2015~2017)-KT(2018~2023) |
이우석 | 투수 | 2015년 2차 6라운드 | NC(2015~2024)-키움(2025~) |
김영중 | 투수 | 2017년 2차 4라운드 | NC(2017~2021) |
김진수 | 투수 | 2021년 2차 2라운드 | 중앙대-LG(2021~) |
고명성 | 내야수 | 2018년 2차 4라운드 | KT(2018~2023)-KIA(2024) |
김민수 | 내야수 | 2022년 2차 10라운드 | 연세대-키움(2022) |
윤민석 | 내야수 | 2022년 육성선수 입단 | 성균관대-KIA(2022) |
임지훈 | 투수 | 2018년 2차 5라운드 | 한화(2018~2019) |
추종민 | 투수 | 2019년 2차 10라운드 | 두산(2019~2020) |
김대호 | 투수 | 2024년 육성선수 입단 | 고려대-삼성(2024~) |
이종준 | 투수 | 2020년 2차 9라운드 | NC(2020~2023)-LG(2024~) |
김진우 | 투수 | 2021년 2차 10라운드 | NC(2021~2022, 2025~) |
유준규 | 내야수 | 2021년 2차 3라운드 | KT(2021~) |
김동준 | 투수 | 2022년 2차 1라운드 | 두산(2022~) |
장세진 | 투수 | 2023년 10라운드 | 롯데(2023~) |
강민제 | 내야수 | 2024년 9라운드 | KIA(2024~) |
박승호 | 투수 | 2024년 10라운드 | 키움(2024~) |
정민성 | 투수 | 2024년 4라운드 | 삼성(2024~) |
4. 역대 감독
이름 뒤에 ★표시가 된 사람은 군산상고 출신 감독이다.순서 | 이름 | 재임 기간 | 비고 |
초대 | 최동현 | 1968 | |
2대 | 서창활 | 1969 | |
3대 | 최관수 | 1970~1979 | |
4대 | 백기성 | 1980~1981 | |
5대 | 최한익★ | 1982~1988 | 최초의 모교 출신 감독 |
6대 | 송상복★ | 1989~1990 | [29] |
7대 | 나창기★ | 1991~2003 | [30] |
8대 | 김용남★ | 2003~2004 | 최초의 프로 선수 출신 감독 |
9대 | 김성한★ | 2004~2005 | |
10대 | 차동열 | 2006~2007 | |
11대 | 이동석★ | 2008~2010 | |
12대 | 석수철★ | 2011~현재 |
5. 여담
- 고등학교 졸업 기수는 아래와 같다.
- 27회: 나창기[31]
- 28회: 김봉연, 김준환
- 29회: 김일권, 양기탁
- 30회: 김우근, 조종규
- 32회: 김종윤, 김용남
- 33회: 김성한
- 37회: 이건열, 김평호
- 38회: 오석환, 백인호
- 39회: 조계현
- 40회: 정명원, 이광우
- 41회: 최해식
- 42회: 조규제
- 47회: 석수철
- 48회: 오상민, 장성진
- 49회: 신경현
- 52회: 정대현
- 54회: 이진영
- 55회: 이승호
- 57회: 문규현
- 58회: 김연훈, 이창욱
- 59회: 채형직
- 61회: 원종현, 차우찬, 황선일
- 63회: 전우엽, 최형록, 최현욱
- 수비 시작 전 모두 먼저 몸을 숙이고 두 팔을 각 무릎에 댄 다음 기지개 하듯이 화이팅을 외치는 전통이 있다. 투수와 포수는 야수들 방향으로 몸을 틀어 화이팅한다.
- 뮤지컬 배우 민우혁이 군산상고 야구부에서 선수로 뛴 적이 있다. 민우혁은 군산상고 졸업 후 탐라대에 진학했지만 탐라대를 1년 만에 중퇴하고 LG에 신고 선수로 입단했다. 그러나 6개월 만에 방출 당하고 뮤지컬 배우로 전향했다.
- 1970년대 대학야구와 실업야구가 인기가 많았을 때 대학을 희망했던 선수들은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성균관대, 경희대, 건국대, 동국대, 중앙대, 원광대로 많이 진학했고, 실업야구팀들인 상업은행 야구단, 한국화장품 야구단, 포항제철 야구단, 농협 야구단, 한일은행 야구단, 한국전력공사 야구단으로 고교 졸업 후 직행하거나 대학 졸업 후 입단하였다.
- 2012년 12월 28일 학교 야구장에 인조 잔디와 야간 조명 시설을 설치하여 재개장하였다.'역전의 명수' 군산상고 인조잔디구장 개장
- 2018년 제99회 전국체육대회 2차 전북지역 예선전에서 승부조작 의혹을 샀다.군산상고 '고의 져주기' 논란…야구부 감독에 '경고 처분'
5.1. 연고권 관련
- 1982년 프로야구 원년부터 1989년까지는 호남 유일의 연고구단이었던 해태 타이거즈가 연고권을 행사했고, 1980년대 중반까지는 해태 선수단 내 중심을 이뤘다.
- 1990년 전라북도를 연고로 하는 쌍방울 레이더스가 창단되면서 호남 연고가 둘로 쪼개지며 자연스럽게 쌍방울의 연고 학교가 되었고, 1999년을 끝으로 쌍방울이 해체된 뒤에는 다시 KIA 타이거즈로 연고권이 넘어갔다.
- 그러다 2013년 5월 KBO가 신인 1차 지명 제도를 부활하면서 지역별 대상 학교를 재분배하는 과정을 통해 전주고와 군산상고는 전북과는 인연이 없는 NC 다이노스로 연고권이 넘어갔다.
- 당시 10구단 창설이 확정되었고, 지역 1차 신인지명이 부활하면서 각 구단 간의 형평성 유지를 위해 구단별 연고 지역 기준으로 5개교씩을 나누되 먼저 도시 연고로 5개교씩 배정하고, 미충족 시에는 광역 연고에서 우선으로 배정하고 그래도 미충족 시에는 전체 구단 배정 후 남은 고교를 대상으로 추첨을 통하여 배정하였다.
- 이러한 사정으로 KIA는 광주제일고, 동성고, 진흥고, 순천효천고, 화순고 5개교를 배정받은 후 추가로 인상고를 배정받았고 당시 연고 지역에 고교가 적었던 NC는 마산고, 용마고, 김해고, 울산공고 4개교에 추첨/선정으로 군산상고와 전주고를 추가배정 받았고, 2013년 10월에는 NC는 경남·울산·전주·군산을 기반으로, KIA의 연고 지역은 전주·군산을 제외한 전북 지역과 전남으로 1차 지명 연고지역 중고등학교 분배도 조정되었다.
- 2013년의 이러한 결정 이후 2014년부터 KIA와의 연결고리는 끊어졌다. 2014년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개장과 맞물리며 근근히 이어오던 월명 야구장에서의 KIA 제2 구장 경기도 사라졌는데, 당연히 전북 지역 내 KIA 팬들은 군산상고의 지명 연고 구단 이전은 역사를 무시하는 일이라며 KBO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 2013년 NC로 연고권이 넘어갈 당시에는 1차 지명 부활과 함께 프로 야구단이 없는 전라북도 3개 고등학교 야구부 구성원은 미아 신세가 되고 역차별을 당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으나 2022년 1차 지명이 폐지되고 전국 지명이 부활할 때까지 NC는 전북 지역 고교에 대한 꾸준한 지원을 이어갔고# 2020년대 들어 NC 연고권 고등학교들이 전국 대회에서 연이어 호성적을 거두면서 투자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군산상일고 역시 긴 침묵을 깨고 2021년 청룡기 준우승, 2023년 대통령배 우승으로 지역 야구의 부활을 알렸다.
- 이것과 연고 구단 외에 1차 지명 제도가 시행될 당시에도 전북 지역 고교 선수 1차 지명에 대한 유권 해석과 관련해선 말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2022년 신인드 래프트 당시 NC의 1차 지명 후보군으로 오르내렸던 전주고 투수 김찬민의 사례[32]가 있는데 결국 NC는 김찬민에 대한 1차 지명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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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colbgcolor=#eeeeef,#191919> | <colbgcolor=#ffd700,#000> 경남고등학교 | 1947년, 1948년, 1949년, 1955년 1967년, 1974년, 2022년 | ★★★★★★★ 7회 | |
2 | 인천고등학교 | 1954년, 1989년 | ★★ 2회 | ||
3 | 동산고등학교 | 1957년, 1988년 | ★★ 2회 | ||
4 | - | 경기공업고등학교[*] | 1958년, 1962년 | ★★ 2회 | |
5 | 경동고등학교 | 1959년, 1960년 | ★★ 2회 | ||
6 | 성동고등학교(해단) | 1961년 | ★ 1회 | ||
7 | 선린인터넷고등학교 | 1963년, 1966년, 1969년 1980년, 2015년 | ★★★★★ 5회 | ||
8 | 성남고등학교 | 1964년, 1970년 | ★★ 2회 | ||
9 | 중앙고등학교 | 1965년 | ★ 1회 | ||
10 | 경북고등학교 | 1968년, 1971년, 1979년, 1981년 | ★★★★ 4회 | ||
11 | 군산상일고등학교 | 1972년, 1986년, 1999년 | ★★★ 3회 | ||
12 | 대구상원고등학교 | 1973년, 1998년 | ★★ 2회 | ||
13 | 개성고등학교 | 1975년 | ★ 1회 | ||
14 | 신일고등학교 | 1976년, 1978년, 1987년, 1991년 1993년, 1996년, 1997년, 2003년 | ★★★★★★★★ 8회 | ||
15 | 광주동성고등학교 | 1977년 | ★ 1회 | ||
16 | 세광고등학교 | 1982년 | ★ 1회 | ||
17 | 광주제일고등학교 | 1983년, 1984년, 2005년 2008년, 2010년, 2018년 | ★★★★★★ 6회 | ||
18 | 전주고등학교 | 1985년 | ★ 1회 | ||
19 | 충암고등학교 | 1990년, 2009년, 2011년 | ★★★ 3회 | ||
20 | 배명고등학교 | 1992년 | ★ 1회 | ||
21 | 덕수고등학교 | 1994년, 1995년, 2004년 2013년, 2016년, 2017년 | ★★★★★★ 6회 | ||
22 | 경기고등학교 | 2000년 | ★ 1회 | ||
23 | 휘문고등학교 | 2001년 | ★ 1회 | ||
24 | 북일고등학교 | 2002년, 2012년 | ★★ 2회 | ||
25 | 장충고등학교 | 2006년, 2007년 | ★★ 2회 | ||
26 | 서울고등학교 | 2014년 | ★ 1회 | ||
27 | 유신고등학교 | 2019년 | ★ 1회 | ||
28 | 김해고등학교 | 2020년 | ★ 1회 | ||
29 | 강릉고등학교 | 2021년 | ★ 1회 | ||
30 | 부산고등학교 | 2023년 | ★ 1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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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colbgcolor=#000080,#191919> | <colbgcolor=#000080,#fff> 개성고등학교 | 1946년, 1964년 | ★★ 2회 | |
2 | 경남고등학교 | 1947년, 1948년, 1973년, 1976년 1990년, 1998년, 2006년, 2007년 2010년 | ★★★★★★★★★ 9회 | ||
3 | 광주제일고등학교 | 1949년, 1988년, 1995년, 2002년 | ★★★★ 4회 | ||
4 | 대구상원고등학교[1] | 1950년, 1970년, 1977년 1999년, 2011년, 2015년 | ★★★★★★ 6회 | ||
5 | 인천고등학교 | 1953년, 1954년 | ★★ 2회 | ||
6 | 동산고등학교 | 1955년, 1956년, 1957년 1959년, 1966년, 2005년 | ★★★★★★ 6회 | ||
7 | - | 경기공업고등학교[*] | 1958년 | ★ 1회 | |
8 | 경동고등학교 | 1960년 | ★ 1회 | ||
9 | 성동고등학교(해단) | 1961년 | ★ 1회 | ||
10 | 부산고등학교 | 1962년, 1978년, 1979년 | ★★★ 3회 | ||
11 | 부산공업고등학교 | 1963년 | ★ 1회 | ||
12 | 청원고등학교 | 1965년, 1989년 | ★★ 2회 | ||
13 | 경북고등학교 | 1967년, 1968년, 1971년, 1974년 1975년, 1981년, 1993년, 2023년 | ★★★★★★★★ 8회 | ||
14 | 선린인터넷고등학교 | 1969년, 1980년 | ★★ 2회 | ||
15 | 중앙고등학교 | 1972년 | ★ 1회 | ||
16 | 군산상일고등학교 | 1982년, 1984년 | ★★ 2회 | ||
17 | 북일고등학교 | 1983년 | ★ 1회 | ||
18 | 서울고등학교 | 1985년 | ★ 1회 | ||
19 | 덕수고등학교 | 1986년, 200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6년 | ★★★★★★ 6회 | ||
20 | 대전고등학교 | 1987년 | ★ 1회 | ||
21 | 부경고등학교 | 1991년 | ★ 1회 | ||
22 | 공주고등학교 | 1992년 | ★ 1회 | ||
23 | 휘문고등학교 | 1994년, 1996년 | ★★ 2회 | ||
24 | 신일고등학교 | 1997년, 1997년 | ★★ 2회 | ||
25 | 성남고등학교 | 2000년, 2004년 | ★★ 2회 | ||
26 | 광주동성고등학교 | 2003년, 2018년 | ★★ 2회 | ||
27 | 대구고등학교 | 2008년 | ★ 1회 | ||
28 | 배명고등학교 | 2017년 | ★ 1회 | ||
29 | 유신고등학교 | 2019년, 2022년 | ★★ 2회 | ||
30 | 장충고등학교 | 2020년 | ★ 1회 | ||
31 | 충암고등학교 | 2021년 | ★ 1회 | ||
32 | 전주고등학교 | 2024년 | ★ 1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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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colbgcolor=#ff2400,#191919> | <colbgcolor=#ff2400,#fff> 경북고등학교 | 1971년, 1975년, 1981년, 2015년 | ★★★★ 4회 | |
2 | 배명고등학교 | 1972년, 1992년 | ★★ 2회 | ||
3 | 대구상원고등학교 | 1973년, 1974년 | ★★ 2회 | ||
4 | 개성고등학교 | 1976년 | ★ 1회 | ||
5 | 충암고등학교 | 1977년, 1988년, 1995년, 2007년 | ★★★★ 4회 | ||
6 | 서울고등학교 | 1978년, 1984년 | ★★ 2회 | ||
7 | 광주동성고등학교 | 1979년, 2004년 | ★★ 2회 | ||
8 | 북일고등학교 | 1980년, 1987년, 1999년 2002년, 2009년 | ★★★★★ 5회 | ||
9 | 군산상일고등학교 | 1982년, 1996년, 2013년 | ★★★ 3회 | ||
10 | 광주제일고등학교 | 1983년 | ★ 1회 | ||
11 | 부산고등학교 | 1985년, 1986년, 1993년, 2022년 | ★★★★ 4회 | ||
12 | 동산고등학교 | 1989년 | ★ 1회 | ||
13 | 대전고등학교 | 1990년 | ★ 1회 | ||
14 | 신일고등학교 | 1991년, 1997년 | ★★ 2회 | ||
15 | 덕수고등학교 | 1994년, 2006년, 2021년 | ★★★ 3회 | ||
16 | 경남고등학교 | 1998년, 2003년 | ★★ 2회 | ||
17 | 진흥고등학교 | 2000년 | ★ 1회 | ||
18 | 청주기계공업고등학교[1] | 2001년 | ★ 1회 | ||
19 | 유신고등학교 | 2005년 | ★ 1회 | ||
20 | 대구고등학교 | 2008년, 2010년, 2018년, 2023년 | ★★★★ 4회 | ||
21 | 휘문고등학교 | 2014년, 2016년, 2019년 | ★★★ 3회 | ||
22 | 야탑고등학교 | 2017년 | ★ 1회 | ||
23 | 인천고등학교 | 2020년 | ★ 1회 | ||
24 | 전주고등학교 | 2024년 | ★ 1회 | ||
[1] 현재 폐단 상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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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colbgcolor=white> | <colbgcolor=#4b0082> 경북고등학교 | 1967년, 1968년, 1970년, 1971년 1972년, 1974년 | ★★★★★★ 6회 | |
2 | 선린인터넷고등학교 | 1969년, 1979년 | ★★ 2회 | ||
3 | 대구상원고등학교 | 1973년, 1993년 | ★★ 2회 | ||
4 | 광주제일고등학교 | 1975년, 1980년, 1983년, 2002년 2007년, 2015년 | ★★★★★★ 6회 | ||
5 | 군산상일고등학교 | 1976년, 1981년, 1986년, 2023년 | ★★★★ 4회 | ||
6 | 공주고등학교 | 1977년, 2013년 | ★★ 2회 | ||
7 | 부산고등학교 | 1978년, 1982년, 1989년, 1992년 1999년, 2000년 | ★★★★★★ 6회 | ||
8 | 서울고등학교 | 1984년, 1985년, 2014년, 2017년 | ★★★★ 4회 | ||
9 | 북일고등학교 | 1987년, 1997년, 2011년 | ★★★ 3회 | ||
10 | 광주동성고등학교 | 1998년, 2005년 | ★★ 2회 | ||
11 | 충암고등학교 | 1990년, 2021년 | ★★ 2회 | ||
12 | 부경고등학교 | 1991년, 1998년 | ★★ 2회 | ||
13 | 대전고등학교 | 1994년, 2022년 | ★★ 2회 | ||
14 | 배재고등학교 | 1995년 | ★ 1회 | ||
15 | 휘문고등학교 | 1996년, 2010년 | ★★ 2회 | ||
16 | 진흥고등학교 | 2001년, 2012년 | ★★ 2회 | ||
17 | 대구고등학교 | 2003년, 2018년, 2019년 | ★★★ 3회 | ||
18 | 인천고등학교 | 2004년 | ★ 1회 | ||
19 | 장충고등학교 | 2006년 | ★ 1회 | ||
20 | 덕수고등학교 | 2008년, 2009년 | ★★ 2회 | ||
21 | 동산고등학교 | 2016년 | ★ 1회 | ||
22 | 강릉고등학교 | 2020년 | ★ 1회 |
[1] 4대 메이저 + 협회장기[2] 2010년 우승팀으로 봉황대기가 주말리그 시행 관계로 2년간 폐지되었다가 부활함[3] 서울, 영남세가 강호로 위세를 떨치던 당시의 전국 야구계에 호남을 대표하는 야구부로 명성을 떨쳤다. 아울러 해태 타이거즈의 막강 타선을 이뤘던 강타자들 역시 이 학교 출신이었다.[4] 전북 출신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인천광역시 출신이며 동산고를 졸업했다. 특히 에이스로 활약하던 1959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5] 비슷한 사례가 대구의 한 학교에서도 있었다. 선수들이 훈련에 무단불참하자 감독이 선수들에게 벌을 주는 대신 "너희들을 잘 통솔하지 못한 내 책임"이라고 말하며 선수단 전원에게 자신의 엉덩이를 1대씩 때리라고 지시했고 선수단 중 1명이 나서서 진짜 감독을 때렸다고 한다. 이 당시 감독은 훗날 삼성 라이온즈와 태평양 돌핀스 감독을 맡았던 정동진이었고 감독을 때린 학생 선수는 SK 와이번스 감독을 맡았던 이만수다.[6] 모든 선수들이 다 때린 것은 아니라고 한다. 선수들이 엉엉 우는 소리를 들었던 야구부장 송경섭 교사가 달려와서 선수들을 말렸다고 한다.[7] 최관수는 기업은행 군산지점에서 은행원과 군산상고 야구부 감독 겸업을 하고 있었다(이용일이 기업은행 사장에게 "군산지점 실적 향상에 도움을 주겠다"라며 부탁해 데려온 케이스). 1978년에 전남북 지역 기업은행 지점 대항 축구대회가 열렸는데 이때 최관수도 참가했다가 철봉에 세게 부딪혔다. 그 후 1년후에 파킨슨병 선고를 받아서 이용일이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8]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이건열이 술회하기를 스카우트는 최관수 감독에게 받았으나 몸이 아파서 백기성 감독이 새로 와서 지도를 했다고 한다.[9] 이미 KIA의 연고 지역인 광주광역시에는 광주일고, 광주동성고, 광주진흥고 등 야구 명문 학교가 줄줄이 있었기에 굳이 전라북도까지 신경을 안 쓰더라도 우수한 지역 출신 신인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이 있었다. 더구나 쌍방울의 해체 이후 KBO 리그의 연고지 제도 자체가 광역연고제에서 도시연고제로 전환되면서 전북야구에 대한 KIA의 관심은 더더욱 줄어들었다. 2003년 말 전북 연고권이 다시 KIA에 환원됐고 군산에서 홈경기를 분산 개최하게 되지만 관심은 그때 뿐이었다.[10] 군산중 졸업 후 한서고 입학 → 신일고 전학[11] 서울 자양중 졸업 후 경기고 입학[12] 군산상고 입학 → 성남서고 전학[13] 군산중 입학 → 동인천중 전학(중학교 3학년때)[14] 광주 충장중 입학 → 광주일고 입학[15] 군산 신풍초등학교 졸업 → 서울 이수중학교 입학 → 서울고 입학[16] 군산 신풍초등학교 → 경기 백마초등학교 전학[17] 군산중 입학 → 서울 배명중 전학[18] 군산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온양중으로 입학 → 북일고 입학[19] 같은 지역 라이벌 전주고도 마찬가지였다. 원래대로라면 전주고로 진학해야 했던 넥센의 강지광은 중3 때 전라중에서 상인천중으로 전학했고 인천고로 진학했다.[20] 어려움의 배경 중 하나는 학교가 있는 지역에 연고팀이 있고 없고의 차이다. 부산·경남, 대구, 광주 등 다른 지역과 달리 전북에는 우선적으로 지명 받아 뛸 수 있는 연고구단이 없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고향에서 안정적으로 선수 생활을 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있다. 군산상고의 경우 NC 다이노스의 지명권역에 있다고 하지만 창원 연고팀이라는 명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군산상고에 초고교급 선수가 나오지 않는 이상 경남지역 학교 선수들에 관심이 우선시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연고구단이 있는 대도시, 특히 수도권으로 전학을 자주 가는 편이다.[21] 학교 동문인 오상민이 박명환야구TV에서 프로팀 스카우터들도 지방 학교들을 모두 다니면서 선수들을 관찰하고 선수 숫자가 적은 지방 학교에서 뛸 수록 출전기회가 늘어나니 눈에 띄기 좋다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학부모 및 선수들의 수도권 진학 러시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22] 우완 정통파 투수로 2017년도 신인지명에서 NC 다이노스에 2차 4라운드 순번으로 지명됐다.[23] 나무위키 등록 선수 한정, 졸업 연도순[24] 프로입단을 거부하고 경희대로 진학했으며 대학 진학중이던 1999년에 쌍방울 레이더스가 해체, 신생팀 SK 와이번스가 지명권을 인수했다.[25] 재학 당시 이름은 박선하[26] 재학 당시 이름은 문재화[27] 학창 시절 이름은 전태현[28] 학창 시절 이름은 조현명[29] 1972년 황금사자기 결승전 당시 대역전 신화의 주역 중 한 명으로 주축 투수였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공을 던진다고 해서 '스마일 피처'라는 별명을 얻었다. 다만 학교 야구부 관리 문제를 두고 학교 측과 동문회 간의 알력이 커지는 바람에 모교 감독 생활은 길지 못했다.[30] 군산상고 감독에서 물러난 후 호원대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31] 모교 감독을 오랜 기간(1991~2003) 역임했다. 호원대 야구부 창단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김용남에게 지휘봉을 넘겼다.#[32] KIA 연고 학교인 이평중을 나왔기에 원칙적으로는 NC의 1차 지명이 불가능했다. 김찬민이 나온 이평중은 정읍시에 있는데 정읍에는 KIA 연고 고등학교인 인상고가 있기 때문이다.